성찬 참여의 준비
2004-12-0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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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참여의 준비라는 제목을 삼았다. 1년에 한 두 차례 드리는 의식이기 때문에 소홀하기 쉽다. 그러나 이 의식이 너무 귀해서 바울을 통해 매년 매 때마다 성찬예식참여를 기념하라는 명령까지 하셨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맨날 모여 성찬을 했다. 교회마다 1년에 한차례 1년에 두차례 하기도한다. 준비라는 말 전에 성찬예식의 의미를 깨달으면 참여가 된다. 오늘 말씀 통해 잠깐동안 왜 참여해야 하느냐 성찬의 어떤 의미인가 말씀드리고자한다.
사람의 불행이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쉽다. 많은 사람들이 왜 내가 불행과 저주와 재앙을 당하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답을 성경에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착각하며 산다. 잠시는 그렇게 보일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허무와 재난과 흑암에 빠져가는 것을 볼수 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제 옆자리를 거쳐가는 사람은 나이 가 많던 적든 친구가 된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얼마간 지낸 곳에서 근사한 74세 정도의 노인이 들어왔다. 아주 미남이었다. 덩치도 크고 키도 컸다. 그리고 그 부인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았다. 저는 불을 켜놓고는 잠을 못 자는데 이 영감이 있는 불을 다 켜놓고 있었다. 그래놓고 자신도 잠을 못자고 있고 나도 못자고 있었다. 잠시 누웠다가 답답하다며 일어났다가 밖에 나갔다가 하는 것이었다. 노이로제증상이었다. 그런데 이 노이로제를 인정을 못하고 왜 병원에 입원했냐하니 그냥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다. 병원에 들어와서 계속 잠을 못 잤다. 내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기도 미안했던지 12시에 밖에 나가더니 5시간 동안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잠을 잤다. 노이로제라고 해도 그 사람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녀들도 다 성공해서 잘 살고 있다. 내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 우리 집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메시지가 들어갈 리가 없다. 절대 영접을 하지 않는다. 그 부인이 너무 안타까워 했다.
여러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한순간 한순간이 허무와 재난속에서 벋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노이로제 증상이 오면 진짜 가슴이 답답하다. 한견딜 수 없으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집에서도 한시도 가만히 못 누워있다는 것이다. 병으로 생각하고 진단 받아 보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 분은 3-4일 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이 왔음에도 왜 왔는지 모르고 자신의 불행을 수긍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친 사람의 특징이 자신은 안 미쳤다고 한다. 술 취한 사람이 자신이 안 취했다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영적문제 있는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꼬집으면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 해결할 길이없다. 그래서 성경이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원래 사람이 불행을 인식만 해도 되는데 인식을 못한다. 우리교회안에서 메시지 나가도 진짜 자신에게 필요한 메시지인데도 다른 누군가가 들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한다. 교회안에서 말씀이 내 것으로 들려지는 것은 은혜입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말을 했을 때 점점 더 강팍해진다. 인간이 이 불행에 대해 왜 안되느냐 하는 가장근본적인 문제가 한마디로 하나님을 못 만났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듣고 내 이야기구나 라는 것을 못 느낀다면 내가 진짜 구원받았느냐 확인해 보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럴 리가 없다. 하나님 은혜주시면 가정의 재앙에 대해 이해하고 그러면 말씀에 귀를 귀울이도록 되어있다. 루디아의 귀를 열어 하나님이 말씀주셨듯이 은혜받은 자에게는 말씀이 깨달아진다. 교회 나와서 말씀이 깨달아 지는 것이 보통일이 아닐뿐더러 조금 더 들어가서 감격이 저절로 나오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있도록 창조되었다. 창1:27 하나님의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런데 이렇게 창조받은 아담하와가 불행이 하나님 떠난 창 3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하나님 떠난 즉시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생령을 부어주셨을 때 산 영이었다. 이때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축복하셨는데 하나님 떠난 즉시 산 영은 죽은영이 된다.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 떠났다는 말이다. 영이 하나님과 함께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담 하와 이후에 사람은 본래 죽은 영이 되었다. 이 죽은영이 어떻게 하나님 만날 수 있느냐는 순순한 은혜이다. 그 은혜의 배경이 오늘 성찬에 참여하는 이유와 연결된다. 엡2:1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다했다. 하나님 떠나는 자체가 허물과 죄와 연결된다. 그래서 이 영을 성경은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죽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이 사단의 손에 붙잡혔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문제이다. 여러분 쉽게 다른 사람에게 영적문제있다고 말하지 말라. 사단의 조종받으면 모두 영적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창 3의 얘기이다. 하나님영이 떠나니 사단의 영이 인간의 영을 사로잡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니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옛날에 하나님과 행복했던 그 때를 그리워하게 된다. 사단에 붙잡혀 고생하는 중에도 그 행복을 찾아가려는 본능이 생긴다. 이것을 사회학자들이 종교성이 있다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오지에 있는 사람들도 신을 찾고 있다. 신을 찾지 않는 종족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미개인일수록 더 신을 찾고 불행한 사람일수록 더 신을 찾는다.
그래서 이 종교성에 부흥하기위해 자신도 모르게 무엇을 섬기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귀신을 섬기는 일이 우리 본성이기 때문에 자기도 싫지도 않고 열심이다. 옛날에 당제할 때 추운겨울에 목욕하는 사람을 보면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본성이 종교성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하면서도 복음을 모르면 예수를 믿어도 종교성으로 믿을 수 있다.
우리는 새벽기도 올 때에 세수 안하고 온 사람이 많다. 그런데 옛날에 저희 부모님의 경우 예수를 종교성을 가지고 믿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 하니 아무리 추운 겨울에라도 얼음을 깨어 세수를 꼭 하고 교회를 갔다. 정성을 말로 다 할수 없다. 거기에 눌려 저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복음에서 자유로움이 아닌 열심과 철저였다. 바리새인들이 역시 얼마나 엄격한지 모른다. 주일날 일 안한다는 규범을 만들고 머리 댕기 길이 까지 정해져있다. 복음의 본질을 놓치면 종교성에 빠지는 것이다. 어떤 교회의 목사님이 자신은 차 안탄다고 청년의 자전거를 뒤에 타고 갔다. 진짜 철저하게 살았다. 지금 우리의 주일 성수는 그 사람들이 보면 말이 안 된다. 그 이유가 하나님을 만나려는 본성적으로 잃어버린 본향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의미가 무섭다.
제가 몸이 아주 고통스러울 때에 밖으로 나간다. 나가면 나도 모르게 고향을 찾아간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산청만 돌고 온다. 본향에 대한 의미가 이렇게 강하다. 죽을 때가 되면 더 강하다. 불행해질수록 어려워질수록 종교성에 강하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헤매지만 불행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만날 수 없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인은 지식으로, 철학인은 철학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다. 종교성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불경을 천 날 드려도 구원얻을 수 없고 요가를 백번 천 번 해도 원죄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이 불행중의 불행이다.
이래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내어 주셨다. 그것이 오늘 행하는 성찬식의 의미 중의 의미이다. 이를 알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성탄절을 통해 찾아오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그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구체적으로 만날 길을 여셨다. 왕, 제사장, 선지자 이 사역을 다 행한 후에 다 이루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자리에 앉아 간단하게 성찬식에 참여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 자리에 세웠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구원의 축복과 역사가 지금 내가 임하셨다. 여러분 오늘 성찬예식에 참여할 때 철학으로도 안되고 노력으로도 안되고 분노해도 안되고 울어도 안되는 차에 우리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이땅에 오셨다. 내 안에 오시옵소서. 답답한것도 어려운 것도 재난도 재앙도 주 예수그리스도 내안에 오신순간에 해결할 것이다.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도 성찬예식에 참여할 때 성찬예식을 하게하신 축복의 은혜를 깨닫고 참여한 자들마다 떡과 포도즙을 먹고 마실때마다 감격하게 하옵소서 된다 안된다 이전에 주의 종들에게 구원의 축복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되신 예수그리스도 그 상징으로 떡과 포도즙을 먹고 마실수 있는 세운 구원의 영광을 찬양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성찬 참여의 준비’라는 제목을 삼았습니다. 너무 중요하기에 매년 매때마다 이 예식을 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도 성찬 참여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매번 성찬 참여를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 두차례 성찬을 참여하게 됩니다. 이 참여의 ‘준비’의 이전에 성찬에 참여하는 준비보다도 성찬 의식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성찬에 참여해야 하는가. 성찬의 의미가 어떤 것인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1)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①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성경은 답을 주었습니다.
② 잠깐 행복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흑암과 재앙에 빠져가게 됩니다.
③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같이 입원했던 사람이 방의 불을 끄지 못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④ 불행이 왔는데도 인식하지 못하고, 재앙이 왔는데도 수긍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꼬집어도 알지 못합니다.
⑤ 인식만 되어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자신의 이야기로 들려지는 것은 은혜를 입어야 가능합니다.
(2) 사람의 불행의 근본 - 사단의 손에 붙잡힘
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②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③ 은혜를 주시면 시대와 가정의 재앙이 이해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나아가 구원의 감격이 나오게 됩니다.
④ 창 1:27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창3장에서 하나님을 떠나서 문제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모든 허물과 죄로 연결이 됩니다. 성경에는 이것을 죽었다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⑥ 그 배경으로 사단의 손에 붙잡혔다. 이것이 ‘영적문제’인 것입니다. 사단의 조정을 받으면 다 영적문제입니다.
(3)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람들의 본능 - 종교성
① 그렇기에 인간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과 함께 하던 시절의 향수가 있습니다.
② 그 행복을 그리워하며 행복을 찾으려는 본능을 사회학자는 ‘종교성’이 있다고 합니다.
③ 아프리카의 오지의 사람들도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④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귀신을 열심히 섬기게 됩니다.
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복음의 역사를 모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종교성을 가지게 됩니다.
⑥ 새벽기도를 올때도 항상 얼굴을 씻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얼마나 엄격했는지 모릅니다.
⑦ 본성적으로 잃어버린 본향을 찾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⑧ 인간이 불행해지면 불행할수록 종교성이 강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불행입니다.
⑨ 지식으로 철학으로 요가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들의 종교성으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만 만날 수 없습니다.
2. 성찬의식의 의미
(1) 하나님을 만나는 길
① 하나님이 우리를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오시고, 십자가에서 만나는 길을 여셨습니다.
② ‘다 이루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③ 성찬의식에 참여할 자리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주의 이름으로 해결하실 것입니다.
사람의 불행이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쉽다. 많은 사람들이 왜 내가 불행과 저주와 재앙을 당하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답을 성경에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착각하며 산다. 잠시는 그렇게 보일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허무와 재난과 흑암에 빠져가는 것을 볼수 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제 옆자리를 거쳐가는 사람은 나이 가 많던 적든 친구가 된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얼마간 지낸 곳에서 근사한 74세 정도의 노인이 들어왔다. 아주 미남이었다. 덩치도 크고 키도 컸다. 그리고 그 부인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았다. 저는 불을 켜놓고는 잠을 못 자는데 이 영감이 있는 불을 다 켜놓고 있었다. 그래놓고 자신도 잠을 못자고 있고 나도 못자고 있었다. 잠시 누웠다가 답답하다며 일어났다가 밖에 나갔다가 하는 것이었다. 노이로제증상이었다. 그런데 이 노이로제를 인정을 못하고 왜 병원에 입원했냐하니 그냥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다. 병원에 들어와서 계속 잠을 못 잤다. 내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기도 미안했던지 12시에 밖에 나가더니 5시간 동안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잠을 잤다. 노이로제라고 해도 그 사람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녀들도 다 성공해서 잘 살고 있다. 내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 우리 집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메시지가 들어갈 리가 없다. 절대 영접을 하지 않는다. 그 부인이 너무 안타까워 했다.
여러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한순간 한순간이 허무와 재난속에서 벋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노이로제 증상이 오면 진짜 가슴이 답답하다. 한견딜 수 없으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집에서도 한시도 가만히 못 누워있다는 것이다. 병으로 생각하고 진단 받아 보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 분은 3-4일 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이 왔음에도 왜 왔는지 모르고 자신의 불행을 수긍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친 사람의 특징이 자신은 안 미쳤다고 한다. 술 취한 사람이 자신이 안 취했다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영적문제 있는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꼬집으면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 해결할 길이없다. 그래서 성경이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원래 사람이 불행을 인식만 해도 되는데 인식을 못한다. 우리교회안에서 메시지 나가도 진짜 자신에게 필요한 메시지인데도 다른 누군가가 들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한다. 교회안에서 말씀이 내 것으로 들려지는 것은 은혜입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말을 했을 때 점점 더 강팍해진다. 인간이 이 불행에 대해 왜 안되느냐 하는 가장근본적인 문제가 한마디로 하나님을 못 만났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듣고 내 이야기구나 라는 것을 못 느낀다면 내가 진짜 구원받았느냐 확인해 보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럴 리가 없다. 하나님 은혜주시면 가정의 재앙에 대해 이해하고 그러면 말씀에 귀를 귀울이도록 되어있다. 루디아의 귀를 열어 하나님이 말씀주셨듯이 은혜받은 자에게는 말씀이 깨달아진다. 교회 나와서 말씀이 깨달아 지는 것이 보통일이 아닐뿐더러 조금 더 들어가서 감격이 저절로 나오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있도록 창조되었다. 창1:27 하나님의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런데 이렇게 창조받은 아담하와가 불행이 하나님 떠난 창 3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하나님 떠난 즉시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생령을 부어주셨을 때 산 영이었다. 이때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축복하셨는데 하나님 떠난 즉시 산 영은 죽은영이 된다.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 떠났다는 말이다. 영이 하나님과 함께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담 하와 이후에 사람은 본래 죽은 영이 되었다. 이 죽은영이 어떻게 하나님 만날 수 있느냐는 순순한 은혜이다. 그 은혜의 배경이 오늘 성찬에 참여하는 이유와 연결된다. 엡2:1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다했다. 하나님 떠나는 자체가 허물과 죄와 연결된다. 그래서 이 영을 성경은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죽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이 사단의 손에 붙잡혔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문제이다. 여러분 쉽게 다른 사람에게 영적문제있다고 말하지 말라. 사단의 조종받으면 모두 영적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창 3의 얘기이다. 하나님영이 떠나니 사단의 영이 인간의 영을 사로잡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니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옛날에 하나님과 행복했던 그 때를 그리워하게 된다. 사단에 붙잡혀 고생하는 중에도 그 행복을 찾아가려는 본능이 생긴다. 이것을 사회학자들이 종교성이 있다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오지에 있는 사람들도 신을 찾고 있다. 신을 찾지 않는 종족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미개인일수록 더 신을 찾고 불행한 사람일수록 더 신을 찾는다.
그래서 이 종교성에 부흥하기위해 자신도 모르게 무엇을 섬기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귀신을 섬기는 일이 우리 본성이기 때문에 자기도 싫지도 않고 열심이다. 옛날에 당제할 때 추운겨울에 목욕하는 사람을 보면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본성이 종교성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하면서도 복음을 모르면 예수를 믿어도 종교성으로 믿을 수 있다.
우리는 새벽기도 올 때에 세수 안하고 온 사람이 많다. 그런데 옛날에 저희 부모님의 경우 예수를 종교성을 가지고 믿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 하니 아무리 추운 겨울에라도 얼음을 깨어 세수를 꼭 하고 교회를 갔다. 정성을 말로 다 할수 없다. 거기에 눌려 저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복음에서 자유로움이 아닌 열심과 철저였다. 바리새인들이 역시 얼마나 엄격한지 모른다. 주일날 일 안한다는 규범을 만들고 머리 댕기 길이 까지 정해져있다. 복음의 본질을 놓치면 종교성에 빠지는 것이다. 어떤 교회의 목사님이 자신은 차 안탄다고 청년의 자전거를 뒤에 타고 갔다. 진짜 철저하게 살았다. 지금 우리의 주일 성수는 그 사람들이 보면 말이 안 된다. 그 이유가 하나님을 만나려는 본성적으로 잃어버린 본향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의미가 무섭다.
제가 몸이 아주 고통스러울 때에 밖으로 나간다. 나가면 나도 모르게 고향을 찾아간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산청만 돌고 온다. 본향에 대한 의미가 이렇게 강하다. 죽을 때가 되면 더 강하다. 불행해질수록 어려워질수록 종교성에 강하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헤매지만 불행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만날 수 없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인은 지식으로, 철학인은 철학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다. 종교성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불경을 천 날 드려도 구원얻을 수 없고 요가를 백번 천 번 해도 원죄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이 불행중의 불행이다.
이래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내어 주셨다. 그것이 오늘 행하는 성찬식의 의미 중의 의미이다. 이를 알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성탄절을 통해 찾아오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그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구체적으로 만날 길을 여셨다. 왕, 제사장, 선지자 이 사역을 다 행한 후에 다 이루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자리에 앉아 간단하게 성찬식에 참여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 자리에 세웠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구원의 축복과 역사가 지금 내가 임하셨다. 여러분 오늘 성찬예식에 참여할 때 철학으로도 안되고 노력으로도 안되고 분노해도 안되고 울어도 안되는 차에 우리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이땅에 오셨다. 내 안에 오시옵소서. 답답한것도 어려운 것도 재난도 재앙도 주 예수그리스도 내안에 오신순간에 해결할 것이다.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도 성찬예식에 참여할 때 성찬예식을 하게하신 축복의 은혜를 깨닫고 참여한 자들마다 떡과 포도즙을 먹고 마실때마다 감격하게 하옵소서 된다 안된다 이전에 주의 종들에게 구원의 축복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되신 예수그리스도 그 상징으로 떡과 포도즙을 먹고 마실수 있는 세운 구원의 영광을 찬양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성찬 참여의 준비’라는 제목을 삼았습니다. 너무 중요하기에 매년 매때마다 이 예식을 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도 성찬 참여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매번 성찬 참여를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 두차례 성찬을 참여하게 됩니다. 이 참여의 ‘준비’의 이전에 성찬에 참여하는 준비보다도 성찬 의식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성찬에 참여해야 하는가. 성찬의 의미가 어떤 것인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1)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①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성경은 답을 주었습니다.
② 잠깐 행복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흑암과 재앙에 빠져가게 됩니다.
③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같이 입원했던 사람이 방의 불을 끄지 못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④ 불행이 왔는데도 인식하지 못하고, 재앙이 왔는데도 수긍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꼬집어도 알지 못합니다.
⑤ 인식만 되어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자신의 이야기로 들려지는 것은 은혜를 입어야 가능합니다.
(2) 사람의 불행의 근본 - 사단의 손에 붙잡힘
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②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③ 은혜를 주시면 시대와 가정의 재앙이 이해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나아가 구원의 감격이 나오게 됩니다.
④ 창 1:27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창3장에서 하나님을 떠나서 문제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모든 허물과 죄로 연결이 됩니다. 성경에는 이것을 죽었다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⑥ 그 배경으로 사단의 손에 붙잡혔다. 이것이 ‘영적문제’인 것입니다. 사단의 조정을 받으면 다 영적문제입니다.
(3)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람들의 본능 - 종교성
① 그렇기에 인간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과 함께 하던 시절의 향수가 있습니다.
② 그 행복을 그리워하며 행복을 찾으려는 본능을 사회학자는 ‘종교성’이 있다고 합니다.
③ 아프리카의 오지의 사람들도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④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귀신을 열심히 섬기게 됩니다.
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복음의 역사를 모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종교성을 가지게 됩니다.
⑥ 새벽기도를 올때도 항상 얼굴을 씻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얼마나 엄격했는지 모릅니다.
⑦ 본성적으로 잃어버린 본향을 찾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⑧ 인간이 불행해지면 불행할수록 종교성이 강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불행입니다.
⑨ 지식으로 철학으로 요가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들의 종교성으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만 만날 수 없습니다.
2. 성찬의식의 의미
(1) 하나님을 만나는 길
① 하나님이 우리를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오시고, 십자가에서 만나는 길을 여셨습니다.
② ‘다 이루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③ 성찬의식에 참여할 자리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주의 이름으로 해결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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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136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135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134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133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132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 3:8-18 | 2024-12-15 | |
1131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
1130 | 뜻을 정한 자 | 단1:1-9 | 2024-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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