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 승리하는 길
2006-12-0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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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배 성공하는 것이 모든 것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을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길, 출35:1-3절의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생각하고 일주일동안 현장에서 승리하는 응답받는 축복을 누리길 바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적 가운데서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홍해를 건너고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데 크게 보면 두 가지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세계복음화를 위해 나아가는 걸음 속에 하나님이 두 가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것이 오늘 출35장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다. 1-19절까지는 예배, 안식일에 대해서 나오고 있다. 그 뒤에 20절부터는 성막,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막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드는 비용들에 대해서 말씀을 전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하는데 있어서 사실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만 알면 여기에서 모든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고 이 두 가지만 알면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는 예배이고 하나는 성막, 성전에 대한 비밀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배에 성공을 해야 한다. 다음 주에는 성막에 대한 성전에 대한, 왜 자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가는 동안 하나님이 성막을 만들라고 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첫 번째 시간으로 예배에 대한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배이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축복과 특권이 있다면 예배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예배에 대한 갈망함이 있다. 예배가 기다려지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고 그 은혜로 현장을 정복하고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반대로 영적문제를 가진 사람의 특징은 예배가 되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야 되는데 이 사실이 안 되어지게 되어있다. 영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의 특징 중의 특징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예배가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축복과 특권이 예배인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 영적인 문제를 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 영적인 문제로 재앙과 실패, 고난의 삶을 살고 있다.
느8:10에 느헤미야 선지자가 고백한 것이다.「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진짜 우리의 힘이 어디에 있는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다. 요4:23에 보면「하나님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묵상기도를 할 때 읽은 사43:21에 왜 우리를 창조하셨는가?「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다른 말로 해서 왜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이 왜 우리를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케 하시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예배케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예배 속에 모든 축복이 다 담겨져 있다. 우리가 늘 듣는 말씀이지만 예배를 성공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성공하는 것이다.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모든 것이 회복되고 있는 축복이다. 만약 일이 잘 되어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배가 되어지지 않으면 그 인생은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반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적인 힘을 얻게 되고 예배에 성공하고 있다면 그것은 안되는 것이 안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완전한 축복으로 완전한 응답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이 예배를 통해서 모든 응답을 확인하고 모든 축복을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첫 번째로 영적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예배이다. 지금 우리의 현장은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싸움의 현장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보이는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고 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의 주관자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말씀했다.
엡6:10-20에 보면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케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셨다. 누가 뭐하고 해도 우리 현장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이다. 창3:15에 말씀하고 있듯이「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여자의 후손도 너희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싸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마16:16-20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을 때 예수님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축복을 선언하셨다. 그 축복이 무엇인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 참된 응답이, 축복이 찾아오게 되어있다. 신28장을 보면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복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면서 복이 복될 수 있는 요소를 신28:7에서 말하고 있다.「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참된 축복이 참된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은 영적싸움에서 승리해야 참된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12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우리가 한순간 현장에서 그 현장이 영적인 싸움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놓칠 때 우리도 모르게 그 현장에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 되어진다. 세상의 현장이 산업의 현장이 얼마나 각박한가? 산업의 현장, 직장의 현장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불신자와 신자가 섞여 살고 있고 그 속에서 표시나지 않는 갈등이 다 있다. 그리고 자칫 잘못 보면 복음이 전혀 필요 없는 현장으로 보이게 된다. 가장 복음이 필요한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못 보면 복음이 전혀 이곳에는 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필요없는 현장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장의 기독교인들은 참된 영적인 비밀을 알지 못해서 무기력함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장에 우리들이 있다. 이러한 현장 속에서 영적인 싸움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을 모르고 있다면 동일하게 우리가 이 현장에 속고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어 버린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말씀을 주셨다. 롬12장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왜 그러한가? 이 세대는 이익과 유익을 위해서 추구하는 세상이다. 다시 말해 육신에 조그마한 이익과 유익이 되면 거기에 못할 짓이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세상이다. 얼마나 악한 시대인지 모른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있다. 어떤 면에서 북한의 핵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인간이다. 이 인간이 얼마나 악한 인간인가를 우리가 보게 되어진다. 그래서 거짓의 시대에 중독의 시대에 무언가 미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에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비밀이 없다면 결국은 그 속에서 실패하게 되어있다.
저희 성도님 중에서 오래된 신자인데 이런 사업, 저런 사업, 제가 알기에도 많은 부분에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왔던 분이 있다. 이 분이 금요일 낮에 성서지역에 식당을 오픈한다고 해서 예배드려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현장에서 영적인 사실에 대해서 무지하게 되면 결국엔 망하게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현장에는 분명히 악한 사단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현장에는 성령의 역사도 함께 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는 이 축복의 비밀을 누리게 되면 성령 충만한 역사가 자신도 살게 되고 가정과 가문도 살리게 되고 자신과 관계된 모든 사람도 후대도 살리게 되는 응답을 받게 되어있다. 그런데 분명히 현장에는 성령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역사도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해야지’ ‘이 물질을 보면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세계복음화에 쓰임 받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단이 결국은 일과 물질에 빠지게 하고 돈에 중독되게 만들어서 가장 중요한 영적인 축복을 놓치게 만들고 있다.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먼저 영적인 사실,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세상의 다른 좋은 것을 통해서 영적인 것을 놓치게 되어서 결국 세상적의 것도 놓치게 되고 영적인 축복도 무너지게 되어지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악한 사단의 역사들이 궤계와 술수로 우리를 미혹하고 있는 현장이 실제로 있다. 그러한 현장에서 사단의 존재에 대해서 늘 항상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도 모르게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게 만드는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영적인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밀 중의 비밀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예배이다. 어떤 자리이이든지 조용하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하게 될 때 그 현장에 역사하는 사단들이 무너지고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이 축복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 예배가 아니다. 현장 속에서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현장에 역사하는 세력이 무너지고 재앙의 세력이 떠나가는 엄청난 기적의 역사들이 체험되어지게 되어있다.
삼하24:1에 보면「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대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결국 다윗이 군대 싸움 이전에 군대 숫자를 개수하는 인구조사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다윗의 마음의 중심에는 인구 조사하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부분보다도 자신의 군대가 많다는 것을 으스대기 위한 것이 있었다. 본문에 나오는 똑같은 배경 속에서 대상21:1에 보면「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격동했다는 것은 감동시켰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격동시켜서 범죄케 하신 것이 아니라 사단의 격동함을 하나님이 막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두셨다는 것이다.
군대를 계수한 결과로 하나님이 결국 그 일을 싫어하셔서 갓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재앙을 내리는데 3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하라고 하신다. 삼하24장:10-15에 나오고 있다. 「10)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1)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2)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13)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일 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 14)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15)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인이라」
여기에서 해결하는 길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더 갓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서 말씀을 주셨는데 바로 단을 쌓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25절에 보면「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다윗이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단을 쌓음으로 말미암아 그 땅의 재앙이 멈췄더라.
우리의 예배가 이것이다. 개인에게 임하는 저주와 재앙의 역사, 가정과 가문의 일어나는 저주와 재앙의 역사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 인간으로서는 막을 수 없는 것을 재앙이라고 한다. 그 재앙의 역사가 어느 날 나와 내 가정과 가문 속에 우리의 현장 속에 임하게 되어있다. 왜 그러한가? 롬3:10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롬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임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와 더불어 롬6:23에 결국은 그 죄의 값으로 죽음과 재앙이 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결국은 이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 그 어떤 인간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 때부터 시작되어서 우리의 문화 속으로 파고들어서 그것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발전을 하지만 저주와 재앙은 그치지 않는다.
그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우리들이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단을 쌓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을 때 재앙이 그쳤더라’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가 개개인에게 이루어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 땅의 모든 저주와 재앙은 하나님과의 관계, 교제가 끊어짐으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오게 되었다. 창3:6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버렸다. 그 결과 영의 눈이 감겨지고 육신의 눈이 밝아졌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떠남에 따라 이 땅에 식물까지도 저주와 재앙이 미치게 되었다. 그것이 창3:16-20에 나오는 내용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땅까지 식물, 동물까지 저주가 미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담 하와 때부터 시작되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놓친 것은 영원한 문제로 남아있다. 그래서 롬8:19에 지금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함으로 구원을 기다리는데 그 모든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모든 피조물들이 회복되어질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실패한 가인. 예배에 실패한 가인이다. 창4장에 가인이 나오는데 가인이 예배를 안 드린 것이 아니다. 누구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기독교만 예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각 종교에 자기들 나름대로의 예배가 있다. 그러나 어떠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를 가인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신다. 언약 있는 예배,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자들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경건한 폼을 잡고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 중심에 복음과 그리스도가 없다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말라기서 마지막을 보면 이스라엘이 제사하는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무엇 때문인가?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언약을 놓치고 예배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부분들 앞에 진노하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은 자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복음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올바른 예배가 되어지게 되어있다.
우리의 진정한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무엇인가? 내가 복음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능력을 알면 알수록 예배 자체가 살아있는 예배로, 올바른 예배로 모든 저주와 재앙의 역사들이 떠나가는 예배가 되어진다. 그냥 예배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붙잡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 왜 그리스도인가? 오직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래서「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감각도 없다. 불신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 맞는 말이다. 하나님을 볼 수가 없고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길을 열으신 것이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고 볼 수 있도록 하셨다. 성경에 보면 도마도 마찬가지이고 빌립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다. 요14:9-11에 빌립이 보여주면 믿겠다고 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 구원받을 수 없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그래서 불신자들이 하는 말이 맞는 말이다. ‘네가 나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고 볼 수 있도록 길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막10:45에 대속물로써 우리의 모든 것을 대신하셨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타락시키고 실패시키는 사단의 세력을 꺾으셨다. 요일3:8에「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히2장에 보면 구체적으로 마귀를 없이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고 죄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고 마귀의 세력에서 완전 승리할 수 있는 축복의 길을 주셨다. 그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 이름을 아는 만큼 올바른 예배가 되어진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니까 번창하는 것 같지만 죄악이 관영하게 되어있다. 그것이 창6장의 노아시대이다. 번창하는 것 같지만 죄악이 관영해진다. 결국 죄악이 관영하면 그 속에 있는 저주와 재앙, 결국 노아시대에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할 수밖에 없도록 죄악이 관영했다고 하셨다. 잘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면 결국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것이 바로 창6장, 창11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자로 우리를 삼으셨다. 이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한다.
초대교회는 어떠한 예배를 드렸는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은 복음의 참 맛을 보고 참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렸다. 초대교회가 예수를 믿는다고 모여들면 금족령이 내려지고 사형이 언도되고 사회에서 단절되고 그렇게 되어지는데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모여들었다. 참 복음의 맛을 알았기 때문에. 올바른 복음의 가치를 아는 자가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올바른 복음의 가치를 아는 자가 그 복음을 위해서 생명조차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롬16장의 인물들이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생명을 거는 예배였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예배는 눈물로 드려지는 예배였다. 핍박 속에서 모여지니까 그 예배 속에서 사랑이 있고 용서가 있고 이해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풍성하게 누려지고 그래서 눈물로 드려지는 예배였다.
초대교회는 사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예배를 드렸다. 성령충만함을 간단하게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성령충만함이 모든 것이다. 성령충만함을 받게 될 때 행2장의 5가지 문이 열렸다. 성령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현장에서 중직자들로 현장을 바꾸는 일꾼으로 서게 되었고 성령충만함을 받을 때 그렇게 막혀있던 안디옥 선교의 문이 열려졌다. 성령충만함을 받을 때 에베소 지역에 우상지역에 우상이 무너지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다. 이 사실이 예배를 통해서. 그래서 초대교회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복음의 가치를 아는 참 생명 걸고 모이는 모임, 그리고 용서와 사랑과 이해와 눈물이 있는 감격한 예배, 그와 더불어 성령충만한 예배가 되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 가진 자들의 예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령충만한 예배, 복음의 가치를 알고 참된 복음의 맛을 아는 생명 건 자들의 모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씀을 붙잡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떻게 말씀으로 인도해 오셨고 오늘 내게 주어지는 말씀이 무엇이고 한 주간 내가 붙잡고 기도해야할 말씀이 무엇인가 말씀을 붙잡길 바란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신 부분을 보고 또 앞으로 이 번 주간에 말씀으로 내게 응답하실 것이 무엇인가를 기도제목으로 붙잡길 바란다.
그와 더불어 전도의 역사와 함께 우리에게 증거주신 부분들이 현장에 있을 것이다. 그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이번 한 주간 이 말씀을 전하는 나에게 어떤 전도의 문을 여시고 어떤 증거를 주실 것인가를 가지고 모여지길 바란다. 그렇게 되어질 때 말씀을 받을 때마다 말씀을 듣는 부분들이 달라지게 되어있다. 그 말씀들이 한 주간 현장에 그대로 성취되면서 늘 그 말씀이 생각나고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게 되어있다. 그와 더불어 우리가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는 미래가 보여지게 되어있다. 오늘 안식일에 대한 부분들, 하나님께 예배하는 특별히 정한 날이다. 하나님이 축복 주기로 작정하신 날이다. 어떻게 하면 예배에 승리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어제 핵심에서 전달된 메시지이지만 너무 중요한 메시지로 지금 전달하겠다. 예배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초대교회의 예배를 회복할 때 일어나는 역사이다. 바로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시는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창3:15이 성취되어지게 되어있다. 창3:15이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꺾는다는 부분이다. 그 부분이 예배하는 시간에 성취되어진다. 그와 더불어 출3:18이 성취되어지는 날이 예배시간이다. 출애굽의 역사가 예배를 통해서 일어난다. 사7:14이 성취되는 시간이 예배 시간이다. 다시 말해 출바벨론의 역사가 예배시간을 통해서 일어난다. 마16:16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고백을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복음화 했다. 세계 살리는 마16:16이 성취되는 시간이 주일날 예배드리는 시간에 성취되어진다. 이러한 엄청난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예배로 초대하셨다.
주일날 예배하는 동안에 힘을 얻고 또한 우리는 결론을 가져야 한다. 오늘 이 예배가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되어지면 삶은 성공하게 되어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 예배가 나의 최고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기 바란다. 그러면 예배에 성공하게 되고 예배에 성공을 하면 모든 것에 성공을 하게 된다. 가나안땅,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안식을 지켜라. 주일을 통해서 예배에 성공하라는 것이다. 이 예배를 성공함으로 세계복음화의 귀한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서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기적 가운데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가나안땅으로 세계복음화라는 큰 축복을 놓고 인도하여 나가시는데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배와 성막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여기에 세계복음화 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영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에게만 주신 축복과 특권이 있다면 바로 예배입니다. (느8:10, 요4:23, 사43:21)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1. 영적인 싸움의 현장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예배입니다.
1) 우리는 현장에서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① 창3:15 영적인 싸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② 신28:7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 참된 축복이 나타납니다.
③ 마16:13-20 베드로의 고백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축복을 주셨습니다.
④ 엡6:10-20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2) 직장의 현장이 복음이 필요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복음이 필요한 곳입니다.
3)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롬12:1-2) - 영적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단의 전략에 의해 노예, 포로, 속국이 되어집니다.
4) 인간은 재앙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재앙을 해결하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삼하24:1-25)
2. 하나님과의 교제(예배)가 끊어짐으로 모든 저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1) 창3:1-6 아담과 하와가 수치를 알게되고 땅, 식물까지도 저주와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영원한 문제입니다.
2) 예배에 실패한 가인 (창4:1-20)
3) 네피림 시대에 빠진 노아시대(창6:1-20)
4) 창11장 바벨탑
3. 초대교회는 어떤 예배를 드렸습니까?
1) 복음의 참 맛을 보고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2) 핍박 속에서 눈물로 만남을 가졌습니다.
3) 성령충만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4.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예배때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붙잡고 확인해야 합니다.
① 6일 동안 말씀이 계속 생각나게 됩니다. (묵상)
② 미래가 보여지게 됩니다.
2) 예배를 회복할 때 되어지는 일
①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② 창3:15이 성취되는 날
③ 출3:18이 성취되는 날
④ 사7:14이 성취되는 날
⑤ 마16:16이 성취되는 날
<결론>
‘주일날 은혜를 받는 것이 최고의 날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회복하게 될 때에 모든 것이 회복되어 집니다.
예배를 성공함으로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길, 출35:1-3절의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생각하고 일주일동안 현장에서 승리하는 응답받는 축복을 누리길 바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적 가운데서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홍해를 건너고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데 크게 보면 두 가지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세계복음화를 위해 나아가는 걸음 속에 하나님이 두 가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것이 오늘 출35장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다. 1-19절까지는 예배, 안식일에 대해서 나오고 있다. 그 뒤에 20절부터는 성막,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막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드는 비용들에 대해서 말씀을 전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하는데 있어서 사실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만 알면 여기에서 모든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고 이 두 가지만 알면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는 예배이고 하나는 성막, 성전에 대한 비밀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배에 성공을 해야 한다. 다음 주에는 성막에 대한 성전에 대한, 왜 자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가는 동안 하나님이 성막을 만들라고 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첫 번째 시간으로 예배에 대한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배이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축복과 특권이 있다면 예배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예배에 대한 갈망함이 있다. 예배가 기다려지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고 그 은혜로 현장을 정복하고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반대로 영적문제를 가진 사람의 특징은 예배가 되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야 되는데 이 사실이 안 되어지게 되어있다. 영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의 특징 중의 특징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예배가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축복과 특권이 예배인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 영적인 문제를 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 영적인 문제로 재앙과 실패, 고난의 삶을 살고 있다.
느8:10에 느헤미야 선지자가 고백한 것이다.「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진짜 우리의 힘이 어디에 있는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다. 요4:23에 보면「하나님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묵상기도를 할 때 읽은 사43:21에 왜 우리를 창조하셨는가?「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다른 말로 해서 왜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이 왜 우리를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케 하시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예배케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예배 속에 모든 축복이 다 담겨져 있다. 우리가 늘 듣는 말씀이지만 예배를 성공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성공하는 것이다.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모든 것이 회복되고 있는 축복이다. 만약 일이 잘 되어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배가 되어지지 않으면 그 인생은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반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적인 힘을 얻게 되고 예배에 성공하고 있다면 그것은 안되는 것이 안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완전한 축복으로 완전한 응답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이 예배를 통해서 모든 응답을 확인하고 모든 축복을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첫 번째로 영적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예배이다. 지금 우리의 현장은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싸움의 현장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보이는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고 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의 주관자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말씀했다.
엡6:10-20에 보면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케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셨다. 누가 뭐하고 해도 우리 현장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이다. 창3:15에 말씀하고 있듯이「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여자의 후손도 너희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싸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마16:16-20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을 때 예수님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축복을 선언하셨다. 그 축복이 무엇인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 참된 응답이, 축복이 찾아오게 되어있다. 신28장을 보면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복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면서 복이 복될 수 있는 요소를 신28:7에서 말하고 있다.「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참된 축복이 참된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은 영적싸움에서 승리해야 참된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12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우리가 한순간 현장에서 그 현장이 영적인 싸움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놓칠 때 우리도 모르게 그 현장에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 되어진다. 세상의 현장이 산업의 현장이 얼마나 각박한가? 산업의 현장, 직장의 현장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불신자와 신자가 섞여 살고 있고 그 속에서 표시나지 않는 갈등이 다 있다. 그리고 자칫 잘못 보면 복음이 전혀 필요 없는 현장으로 보이게 된다. 가장 복음이 필요한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못 보면 복음이 전혀 이곳에는 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필요없는 현장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장의 기독교인들은 참된 영적인 비밀을 알지 못해서 무기력함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장에 우리들이 있다. 이러한 현장 속에서 영적인 싸움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을 모르고 있다면 동일하게 우리가 이 현장에 속고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어 버린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말씀을 주셨다. 롬12장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왜 그러한가? 이 세대는 이익과 유익을 위해서 추구하는 세상이다. 다시 말해 육신에 조그마한 이익과 유익이 되면 거기에 못할 짓이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세상이다. 얼마나 악한 시대인지 모른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있다. 어떤 면에서 북한의 핵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인간이다. 이 인간이 얼마나 악한 인간인가를 우리가 보게 되어진다. 그래서 거짓의 시대에 중독의 시대에 무언가 미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에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비밀이 없다면 결국은 그 속에서 실패하게 되어있다.
저희 성도님 중에서 오래된 신자인데 이런 사업, 저런 사업, 제가 알기에도 많은 부분에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왔던 분이 있다. 이 분이 금요일 낮에 성서지역에 식당을 오픈한다고 해서 예배드려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현장에서 영적인 사실에 대해서 무지하게 되면 결국엔 망하게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현장에는 분명히 악한 사단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현장에는 성령의 역사도 함께 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는 이 축복의 비밀을 누리게 되면 성령 충만한 역사가 자신도 살게 되고 가정과 가문도 살리게 되고 자신과 관계된 모든 사람도 후대도 살리게 되는 응답을 받게 되어있다. 그런데 분명히 현장에는 성령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역사도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해야지’ ‘이 물질을 보면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세계복음화에 쓰임 받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단이 결국은 일과 물질에 빠지게 하고 돈에 중독되게 만들어서 가장 중요한 영적인 축복을 놓치게 만들고 있다.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먼저 영적인 사실,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세상의 다른 좋은 것을 통해서 영적인 것을 놓치게 되어서 결국 세상적의 것도 놓치게 되고 영적인 축복도 무너지게 되어지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악한 사단의 역사들이 궤계와 술수로 우리를 미혹하고 있는 현장이 실제로 있다. 그러한 현장에서 사단의 존재에 대해서 늘 항상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도 모르게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게 만드는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영적인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밀 중의 비밀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예배이다. 어떤 자리이이든지 조용하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하게 될 때 그 현장에 역사하는 사단들이 무너지고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이 축복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 예배가 아니다. 현장 속에서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현장에 역사하는 세력이 무너지고 재앙의 세력이 떠나가는 엄청난 기적의 역사들이 체험되어지게 되어있다.
삼하24:1에 보면「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대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결국 다윗이 군대 싸움 이전에 군대 숫자를 개수하는 인구조사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다윗의 마음의 중심에는 인구 조사하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부분보다도 자신의 군대가 많다는 것을 으스대기 위한 것이 있었다. 본문에 나오는 똑같은 배경 속에서 대상21:1에 보면「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격동했다는 것은 감동시켰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격동시켜서 범죄케 하신 것이 아니라 사단의 격동함을 하나님이 막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두셨다는 것이다.
군대를 계수한 결과로 하나님이 결국 그 일을 싫어하셔서 갓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재앙을 내리는데 3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하라고 하신다. 삼하24장:10-15에 나오고 있다. 「10)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1)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2)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13)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일 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 14)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15)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인이라」
여기에서 해결하는 길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더 갓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서 말씀을 주셨는데 바로 단을 쌓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25절에 보면「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다윗이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단을 쌓음으로 말미암아 그 땅의 재앙이 멈췄더라.
우리의 예배가 이것이다. 개인에게 임하는 저주와 재앙의 역사, 가정과 가문의 일어나는 저주와 재앙의 역사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 인간으로서는 막을 수 없는 것을 재앙이라고 한다. 그 재앙의 역사가 어느 날 나와 내 가정과 가문 속에 우리의 현장 속에 임하게 되어있다. 왜 그러한가? 롬3:10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롬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임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와 더불어 롬6:23에 결국은 그 죄의 값으로 죽음과 재앙이 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결국은 이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 그 어떤 인간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 때부터 시작되어서 우리의 문화 속으로 파고들어서 그것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발전을 하지만 저주와 재앙은 그치지 않는다.
그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우리들이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단을 쌓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을 때 재앙이 그쳤더라’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가 개개인에게 이루어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 땅의 모든 저주와 재앙은 하나님과의 관계, 교제가 끊어짐으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오게 되었다. 창3:6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버렸다. 그 결과 영의 눈이 감겨지고 육신의 눈이 밝아졌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떠남에 따라 이 땅에 식물까지도 저주와 재앙이 미치게 되었다. 그것이 창3:16-20에 나오는 내용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땅까지 식물, 동물까지 저주가 미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담 하와 때부터 시작되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놓친 것은 영원한 문제로 남아있다. 그래서 롬8:19에 지금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함으로 구원을 기다리는데 그 모든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모든 피조물들이 회복되어질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실패한 가인. 예배에 실패한 가인이다. 창4장에 가인이 나오는데 가인이 예배를 안 드린 것이 아니다. 누구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기독교만 예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각 종교에 자기들 나름대로의 예배가 있다. 그러나 어떠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를 가인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신다. 언약 있는 예배,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자들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경건한 폼을 잡고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 중심에 복음과 그리스도가 없다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말라기서 마지막을 보면 이스라엘이 제사하는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무엇 때문인가?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언약을 놓치고 예배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부분들 앞에 진노하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은 자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복음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올바른 예배가 되어지게 되어있다.
우리의 진정한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무엇인가? 내가 복음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능력을 알면 알수록 예배 자체가 살아있는 예배로, 올바른 예배로 모든 저주와 재앙의 역사들이 떠나가는 예배가 되어진다. 그냥 예배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붙잡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 왜 그리스도인가? 오직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래서「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감각도 없다. 불신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 맞는 말이다. 하나님을 볼 수가 없고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길을 열으신 것이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고 볼 수 있도록 하셨다. 성경에 보면 도마도 마찬가지이고 빌립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다. 요14:9-11에 빌립이 보여주면 믿겠다고 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 구원받을 수 없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그래서 불신자들이 하는 말이 맞는 말이다. ‘네가 나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고 볼 수 있도록 길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막10:45에 대속물로써 우리의 모든 것을 대신하셨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타락시키고 실패시키는 사단의 세력을 꺾으셨다. 요일3:8에「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히2장에 보면 구체적으로 마귀를 없이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고 죄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고 마귀의 세력에서 완전 승리할 수 있는 축복의 길을 주셨다. 그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 이름을 아는 만큼 올바른 예배가 되어진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니까 번창하는 것 같지만 죄악이 관영하게 되어있다. 그것이 창6장의 노아시대이다. 번창하는 것 같지만 죄악이 관영해진다. 결국 죄악이 관영하면 그 속에 있는 저주와 재앙, 결국 노아시대에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할 수밖에 없도록 죄악이 관영했다고 하셨다. 잘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면 결국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것이 바로 창6장, 창11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자로 우리를 삼으셨다. 이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한다.
초대교회는 어떠한 예배를 드렸는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은 복음의 참 맛을 보고 참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렸다. 초대교회가 예수를 믿는다고 모여들면 금족령이 내려지고 사형이 언도되고 사회에서 단절되고 그렇게 되어지는데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모여들었다. 참 복음의 맛을 알았기 때문에. 올바른 복음의 가치를 아는 자가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올바른 복음의 가치를 아는 자가 그 복음을 위해서 생명조차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롬16장의 인물들이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생명을 거는 예배였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예배는 눈물로 드려지는 예배였다. 핍박 속에서 모여지니까 그 예배 속에서 사랑이 있고 용서가 있고 이해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풍성하게 누려지고 그래서 눈물로 드려지는 예배였다.
초대교회는 사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예배를 드렸다. 성령충만함을 간단하게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성령충만함이 모든 것이다. 성령충만함을 받게 될 때 행2장의 5가지 문이 열렸다. 성령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현장에서 중직자들로 현장을 바꾸는 일꾼으로 서게 되었고 성령충만함을 받을 때 그렇게 막혀있던 안디옥 선교의 문이 열려졌다. 성령충만함을 받을 때 에베소 지역에 우상지역에 우상이 무너지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다. 이 사실이 예배를 통해서. 그래서 초대교회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복음의 가치를 아는 참 생명 걸고 모이는 모임, 그리고 용서와 사랑과 이해와 눈물이 있는 감격한 예배, 그와 더불어 성령충만한 예배가 되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 가진 자들의 예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령충만한 예배, 복음의 가치를 알고 참된 복음의 맛을 아는 생명 건 자들의 모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씀을 붙잡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떻게 말씀으로 인도해 오셨고 오늘 내게 주어지는 말씀이 무엇이고 한 주간 내가 붙잡고 기도해야할 말씀이 무엇인가 말씀을 붙잡길 바란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신 부분을 보고 또 앞으로 이 번 주간에 말씀으로 내게 응답하실 것이 무엇인가를 기도제목으로 붙잡길 바란다.
그와 더불어 전도의 역사와 함께 우리에게 증거주신 부분들이 현장에 있을 것이다. 그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이번 한 주간 이 말씀을 전하는 나에게 어떤 전도의 문을 여시고 어떤 증거를 주실 것인가를 가지고 모여지길 바란다. 그렇게 되어질 때 말씀을 받을 때마다 말씀을 듣는 부분들이 달라지게 되어있다. 그 말씀들이 한 주간 현장에 그대로 성취되면서 늘 그 말씀이 생각나고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게 되어있다. 그와 더불어 우리가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는 미래가 보여지게 되어있다. 오늘 안식일에 대한 부분들, 하나님께 예배하는 특별히 정한 날이다. 하나님이 축복 주기로 작정하신 날이다. 어떻게 하면 예배에 승리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어제 핵심에서 전달된 메시지이지만 너무 중요한 메시지로 지금 전달하겠다. 예배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초대교회의 예배를 회복할 때 일어나는 역사이다. 바로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시는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창3:15이 성취되어지게 되어있다. 창3:15이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꺾는다는 부분이다. 그 부분이 예배하는 시간에 성취되어진다. 그와 더불어 출3:18이 성취되어지는 날이 예배시간이다. 출애굽의 역사가 예배를 통해서 일어난다. 사7:14이 성취되는 시간이 예배 시간이다. 다시 말해 출바벨론의 역사가 예배시간을 통해서 일어난다. 마16:16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고백을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복음화 했다. 세계 살리는 마16:16이 성취되는 시간이 주일날 예배드리는 시간에 성취되어진다. 이러한 엄청난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예배로 초대하셨다.
주일날 예배하는 동안에 힘을 얻고 또한 우리는 결론을 가져야 한다. 오늘 이 예배가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되어지면 삶은 성공하게 되어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 예배가 나의 최고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기 바란다. 그러면 예배에 성공하게 되고 예배에 성공을 하면 모든 것에 성공을 하게 된다. 가나안땅,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안식을 지켜라. 주일을 통해서 예배에 성공하라는 것이다. 이 예배를 성공함으로 세계복음화의 귀한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서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기적 가운데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가나안땅으로 세계복음화라는 큰 축복을 놓고 인도하여 나가시는데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배와 성막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여기에 세계복음화 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영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에게만 주신 축복과 특권이 있다면 바로 예배입니다. (느8:10, 요4:23, 사43:21)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1. 영적인 싸움의 현장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예배입니다.
1) 우리는 현장에서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① 창3:15 영적인 싸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② 신28:7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 참된 축복이 나타납니다.
③ 마16:13-20 베드로의 고백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축복을 주셨습니다.
④ 엡6:10-20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2) 직장의 현장이 복음이 필요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복음이 필요한 곳입니다.
3)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롬12:1-2) - 영적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단의 전략에 의해 노예, 포로, 속국이 되어집니다.
4) 인간은 재앙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재앙을 해결하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삼하24:1-25)
2. 하나님과의 교제(예배)가 끊어짐으로 모든 저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1) 창3:1-6 아담과 하와가 수치를 알게되고 땅, 식물까지도 저주와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영원한 문제입니다.
2) 예배에 실패한 가인 (창4:1-20)
3) 네피림 시대에 빠진 노아시대(창6:1-20)
4) 창11장 바벨탑
3. 초대교회는 어떤 예배를 드렸습니까?
1) 복음의 참 맛을 보고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2) 핍박 속에서 눈물로 만남을 가졌습니다.
3) 성령충만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4.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예배때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붙잡고 확인해야 합니다.
① 6일 동안 말씀이 계속 생각나게 됩니다. (묵상)
② 미래가 보여지게 됩니다.
2) 예배를 회복할 때 되어지는 일
①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② 창3:15이 성취되는 날
③ 출3:18이 성취되는 날
④ 사7:14이 성취되는 날
⑤ 마16:16이 성취되는 날
<결론>
‘주일날 은혜를 받는 것이 최고의 날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회복하게 될 때에 모든 것이 회복되어 집니다.
예배를 성공함으로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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