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입을 열면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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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17: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마 17: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마 17:26)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마 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오늘 "입을 열면" 이럴 때에, 얼른 시편 기자가 한 말이 생각나죠. '너희 입을 넓게 열라 그러면 채우리라!' 그런데 이 입은 사람 입이 아니고 무슨 입입니까? 고기 입입니다. 그런데 이 상당히 귀중한 뜻을 오늘 볼 수가 있어서, 여기 "입을 열면" 말씀에 제목을 삼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고기 입이나 우리 입이나 하나님 앞에서 열릴 때에 축복이 옵니다. 고기 입도 안 열리면 세겔이 나올 수 없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입을 이제는 믿음으로 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본문 내용이 세금 내는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복음이 바로 되면 율법은 저절로 따라온다!' 그래서 '율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율법은 누리는 것이다!' 이번에 그 조직 신학을 강의하던 민병환 목사님이 그렇게 표현을 했어요. 맞는 말로 저도 역시 긍정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걸핏하면 뭐 '율법주의, 율법주의!' 그러는데, 율법주의라는 것은, 복음을 깨달으면 나올 수가 없어요. 그것은 율법주의라는 말은 복음 모를 때에 하는 이야기이고, 복음 깨달으면 율법주의가 아니고, 복음 깨닫게 되면 저절로 율법이 나오게 되고, 율법은 나온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율법은 누리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 다음에 여기에서 나오는 것은, 그 열매가 전도로 맺혀진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그 복음 깨닫고 나서 율법이 안 나오면, 율법이 누려지지 못하면 전도라는 것이 나올 수 없어요. '당신 보니까, 예수 믿을 마음 없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이 율법은 내가 노력하고, 애쓰고, 시행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의 능력으로 율법은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따라서 전도가 되어진다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바로 되면 현장은 규모로 바꾸어집니다. 규모로 바꾸어진다는 말이 지금 우리 율법, 율법이 오해되어서 규모라고 자꾸 말했는데, 그게 성경에는 율법입니다. 그 열매가 바로 전도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해되어야 현장에 말씀이 성취됩니다. 그러니 결국은 여러분, 그 율법은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행한 것이 내 것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에 완성이라 그랬습니다. 율법에 폐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될 때에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보이게 되고, 그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이 바로 보여지게 되는 그곳에, 전도라는 것이 자연적인 열매로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 세겔의 세금은 성전 세입니다. 유대인이라면, 유대인 성인이 되면, 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이 반 세겔! 반 세겔이라는 말이 아니고, 한 세겔의 반이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반 세겔을 내도록 유대인들에게 의무가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이 예수님을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그 세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세금 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저들이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금을 내겠다!' 그러면서 베드로에게 낚시를 던져서 올라오는 고기 입을 열면 그곳에 반 세겔이 나올 것이다! 이걸 그대로 했더니만, 그 반 세겔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 이야기죠. 그래서 이 반 세겔을 내는 유대인들의 세금은, 하나님의 집, 성전 유지를 위해서, 예배를 위해서 내는 세금입니다. 원래 이 배경이,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성전 자신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반 세겔의 유대인들이, 인간이 내는 세금을 사실 낼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 세금을 받으실 자리에 있지, 세금을 내는 자리에 있지 않다! 그랬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5절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베드로에게 한 말씀이죠.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금을 내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여기에 먼저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먼저, 먼저 되어야 되고, 먼저 알아야 되고, 먼저 확인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복음이다! 그렇게 말이 되죠. 그러나 조금 더 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그 다음에 만물에 창조자이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그런 배경에, 모든 만물에 상속자이십니다! 만물을 누리고, 찬양 받으실 그런 말씀이죠. 그래서 이것이 되면 바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되어진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죠.

그러나 주권이 해결되면서 따라오는 것이 뭐냐하면, 나와 여러분이 해야 될 책임도 따라온다는 것이, 저절로 여기에 연결되어집니다. 그 열매가 전도입니다. 여기에 여러분 '주권!' 그러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 책임에 눈이 열리고, 책임이라는 것은 현장입니다. 내가 주권 속에, 현장에 들어가면, 여러분과 제가 해야될 책임이 자연적으로 보여집니다. 그 열매가 전도다! 그렇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말라기서 3장 1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 전에 임하리니'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 부분을 말씀하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바로 성전이시다!' 그리고 또 바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요한복음 2장 16절에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3장 6절에는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모세는 사환으로 충성했지만, 예수님은 뭐로 그랬습니까? 아들로, 상속받을 아들로 그렇게 히브리서에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요,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주시오, 예수님은 바로 성전이시오, 예수님은 바로 모든 창조물을 누리실 창조하실 뿐 아니라, 누리실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 1장 2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온 것이 우리가 도저히 인간의 지혜로 이해가 안 되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창조 당시에는 성부로, 그 다음에 구속하실 당시에는 성자로, 주로 나타나셨다는 이야기이지, '성자만 일하셨다! 성자만 하셨다!'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종말에는, 현재 여러분들이 예수께서 오신 후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 다 합쳐서 종말이라 그럽니다. 종말 일에는 누구입니까? 성령으로! 그런데 여러분 창조할 당시에 성부로, 주로 엘로임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죠. '하나님!' 그럴 때에, 하나님 홀로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 배경에,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똑같이 누가 함께 했습니까? 성부 하나님이 나타났을 때에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똑같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똑같이!

그러면 지금 이시기에 성령 하나님! 그럴 때에, 여러분에게 누구도 같이 있습니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내 안에 계신다!' 그럴 때에, 누구도 내 안에 있습니까? 예수님도 내 안에, 누구도 내 안에 있습니까? 성령으로 내 안에, 이것이 이해되어야 됩니다. 이것은 죽었다 깨어도 여러분 지혜로는 되는 게 아니에요. 삼위이면서도 또 하나입니다. 어떻게 세 개가 하나가 되느냐! 여러분 세 사람이 모이면 하나가 된다! 이건 말도 안되거든요. 그러나 각각 또 세 개입니다. 세 위가 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삼위를 건드리고, 삼위에 대해서 설명을 열심히 하려고 할수록, 이단이 되었다는 것이 이건 뭐 쭉 역사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삼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설명을 하려고 아이들한테 많이 애를 썼죠. '전기 불을 봐라! 들어오면 빛이 되고, 또 들어오면 열이 되고, 또 들어오면 또 뭐가 됩니까...' 뭐 이래가지고, 그것은 양태 설이라고 삼위일체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성경대로 '삼위일체다! 믿어라!' 그것으로 끝입니다. 가만히 있는 게 제일 낮습니다. 자꾸 말하면 점점 더 이단이 되고, 이상해지는 것이 삼위 일체 설입니다. 왜? 우리 입으로 말로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말로, 생각으로, 이성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입니다. '성경을 안다! 하나님 다 알았다!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 자다! 난 다 알았다! 다 되었다!' 여러분이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극히 부분적인 것 밖에 더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겸손하게 이해를 하셔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오신 그분 요한복음 1장 9절에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이 삼위로 내 안에 오시고 바로 그 분이 창조주요. 바로 그분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신앙이 나온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되고, 누림도, 감사도, 인도도, 기쁨도, 누구를 통해서? 그 분! 우리가 기도도, 예배도, 전부 그분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와지지 않으면, 이걸 복음이라 안 그럽니까! 이 복음이 모든 문제 해결 자다라는 이 복음이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해가 안되면 삶이 나올 수 없어요.

그러니 지금 우리가 삶이 나온다는 것은 억지로 살아간다. 그래서 억지로 산다는 것은, 전부 위선이 될 수밖에 없죠. 그러니 삶이라는 것으로 누리면 되요. 여러분 그 복음에서 삶이라는 것은 누림입니다. 그러니 누림이라는 것은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뭐가 됩니까? 되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안되니까 뭐가 나오느냐? 위선이 나오는 겁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올 때 웃어야 되죠. 웃음이 안나오는데 억지로 웃으려고 하면 주름살만 껴요. 그러니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에 누림입니다. 우리가 먼저 뭐가 있느냐? 복음이 되어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나와 여러분 안에 오셨고, 모든 문제 해결하셨다! 그 다음에 문제는 따라온다! 진짜 이 고백이 체험되고 이 일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이상 뭐가 나오느냐? 비로소 오해되지 않는 삶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오늘 17장 27절에 보면,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그랬습니다. 잘 정리를 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복음이 되면 복음을 통해서 여러분과 제가 살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그 복음을 통해서 산다는 것은 내가 노력하는 게 아니고 복음이 주체가 되어서, 복음에 의해서 살고, 복음을 위해서 살고, 복음 때문에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의해서 인도 받고, '복음에 의해서 인도 받는다!' 그럴 때에, 복음에 능력에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지, 내가 뭘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여러분 복음 모를 때에 율법주의가 나오고, 복음 모를 때에 율법이 나옵니다. 복음 모를 때에, '내 힘으로 뭘 하겠다!' 그게 율법이 되고, 인본주의가 되는 것이지, 복음을 알고 나오는 것은 율법이 아니고, 그것은 누림입니다. 여러분들이 주일날 거룩하게 지낸다! 복음을 알면 거룩하게 지낼 수밖에 없도록 되는 겁니다. 뭐 예를 들어서, '참,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있다!' 말씀 받기 위해서 주일날 저절로 준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말씀 듣는 일을 기다리면 기쁨이 와요. 주일날 온다는 것이 기쁨이지, 여러분 올 때에, '아이고, 주일날 왔구나!' 찡그리면서 보얀 성경책 먼지 다 털고, 그래가지고 교회 온다! 그건 지금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주일날! '벌써, 주일날 됐느냐!' 새벽부터 준비한다 아닙니까! 그리고 오는 발걸음이 콧노래가 나와 야죠. 여기 딱 오는 순간 벌써 여러분 기쁨이 있고, 찬송 부를 때에 감사가 있고, 그리고 주일날 말씀들을 때에 너무 감사하고, 이것이 바로 주일날을 거룩하게 지낸다! 거룩이 지킨다기보다도, 주일날은 저절로 거룩한 나의 기쁨의 날입니다. 이게 바로 복음이 되고 난 후에 저절로 따라오는 문제거든요.

이때부터 뭔가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오해하지 않는 삶이 나옵니다. 그러면 내게도 하나님은 이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나도 너도 오해되지 않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조금 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상당히 이 말은 중요합니다. 뭐냐하면 우리가 가난하다! 그 다음에 어렵다! 고난이 온다! 이런 모든 문제는, 그러니 예수 믿고 난 후에 대번 오는 문제들이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사람은 초 신자들 중에 교회 오면, 교회 오는 마침 그 날! 생전 안 오다가 한번 왔는데, 마침 그 날 도적이 들어 가지고 몽땅 가지고 갔다! 이게 바로 그런... 왜, 교회 왔는데 이 문제가 생기느냐! 교회 올수록 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러냐! '교회 왔기 때문에 복 받았다!' 오해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그런 하나님, 돈 몇 푼 주는 것으로 주시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감격과 감사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데, 그 근원이 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근원이 되어야 되는데, '교회 왔더니 복 받았다! 사업이 잘 되었더라!' 사업 잘 되는 것 그걸 보고 기뻐하면 안 되거든요. 오해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오해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니 어떤 면에서 과정 속에 이런 부분이 있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난 후에 오는 고난은, 또 오는 일들은, 안 되는 문제는 되어지는 일입니다. 생명에 중요한 핵심이 뭐냐? 바로 이 부분이에요. 여러분 어린 아이를 낳아놓고, 말하자면 생명이 바로 아이에게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아이는 계속해서 저지래합니다. 똥싸고 오줌싸고, 똥싸고 오줌싼다고 해서 안 되어지는 게 아니고, 똥싸고 오줌싸는 것이 되어지는 과정입니다. 만일 여러분 아이를 낳았다! 똥 안 싼다! 죽는 겁니다. 그건 안되어지는 것 아닙니까! 똥 싸는 게 되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알지 못하면, '똥싼다! 에이 내버려 버려라!' 그것이 이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안되어지는 것이 되어지는 생명의 원리입니다. 지금 안되어지고 있느냐? 되어지고 있다는 것이 생명입니다. 참 생명을 가진 것이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여러분 고난을 받을수록, 어려움이 있을수록, 이상하게 집안에 문제 있을수록, 더 복음 앞으로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죠. 이게 우리가 이상하게 생명의 원리입니다. 참 생명이 들어가면 이렇게 나오도록 되어 있어요. 여러분 참 생명이 들어가면, 주일날 한번 와 가지고 도둑 들었다고 해서 그 다음에 '에이, 치워버려라! 안 나오겠다!' 그게 아닙니다. '아, 이건 또 희한한 게 틈타네!' 그러고 '이게 또 사단의 역사 하는구나!' 이렇게 되는 것이지,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그래서 참 복음이 바로 깨달아 지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축복이 섞어질 것과 비교되어져서 그것을 더 중히 여기는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되어지는 과정에서, 생명의 역사 속에서, 이런 문제들이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고, 고난 당하는 문제가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때에 여러분 '되어지는 구나!' 이래되어야지, 이게 안되면 곤란하죠. 그래서 생명 주었다! 그때부터 안 되는 게 일입니다. 계속해서...

제가 요즘 희락이가 와있는데, 하여튼 오고 난 후부터 계속해서 우리 입에, '그러지 마라! 이리 온나! 하지 마라, 하지 마라!' 그런다고 내어 던져 버리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게 과정입니다. 되는 과정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아이들 보면서 농땡이 중에 농땡이요. 그때에 제일 어렵게 만들었던 아이들이, 그게 되어지는 과정이에요. 언제 보니까 벌써 커 가지고 점잖게, 전화 받을 때도 점잖게, '그래 너 아무개냐! 예!' 그러면 끊고 난 후에 웃습니다. 아이고 벌서 그놈이, 벌써 커 가지고 이 점잖더라! 전화를 받을 줄 안다!' 그게 되어지는 과정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중요하고, 축복된 역사가 되어지는 과정인데 안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이걸 깨달으면 되어진다는 사실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들이, 너무 절실한 문제죠. 전도 안 되어집니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래서 오해되지 않기 위해서, 교회 봉사도 지금 상당히 어렵습니다. 여러분 교회 봉사가 2003년도에 우리 교회가 준비해야 됩니다. 뭔가 우리 그릇이 준비 안되고, 봉사에 준비가 안되면, 큰 교회를 맡겨 놓을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봉사하는 구체적인 것이 안 되어지면, 이게 문제가 어렵게 되거든요.

우선 보세요. 성가대 딱 왔다! '한 달에 100만원씩만 준다!' 그래보세요. 성가대 들어오려고 막 시험을 쳐도 힘들 겁니다. 여기 아마 우리 송현 교회 교인이라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싸매고 성가대 들어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가대 대장을 비롯해서 성가대 지휘자가 연초마다 시험 친다고, '누구를 떨구어내어야 될 것인가?' 이럴 겁니다. 그러면 누가 들어오느냐? 가짜만 다 들어온다! 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진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 중심이 되고, 그런 것은 안 받아야 되요. 완전히 봉사하고, 정말 하나님 바라볼 수 있는 이게 되었다! 그게 되어야 되는데, 만약에 성가대가 돈준다! 그것은 오해케 만드는 문제입니다.

여러분 늘 그런 이야기 안 합니까! 주일학교 얼마나 귀중한 교사들입니까!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다! 뭐 1억까지 줄 것도 없어요. '10만원만 준다!' 그래도 여러분 보통 일이 아닙니다. 만약에 주일날 여기 왔다! 여기에 뭐 100만원 준다, 할 것 없어요. 만원만 준다고 해도 대구시내 거지 때들 다 모입니다.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뭘 보느냐? 정말 예수는 그리스도,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는 참 생명의 본질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교회 왔으나 거들 떠도 안보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교회 와서, 송현 교회 와서 '거들 떠도 안보더라!' 자신 있으니 거들 떠도 안 보지! 자신이 없으면, '굽신, 굽신 어서 옵쇼, 다음에 또 옵쇼!' 이러지, 뭐 거들 떠도 안보거든! '야, 이 교회 확실히 복음 있으니 거들 떠도 안 보는구나!'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 이 축복된 역사가 여러분이 보셔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거들 떠도 보지 말라 그랬다 그래도, 또 뒤에 안내하는 집사님들이나 거들 떠도 안보고 이러지 말고... 지금 왜 이런 말하느냐! 이 금년도에 모든 이걸 해결해야 됩니다. 오는 사람도, 또 오시는 분들도 이 해결이 되어야 되죠.

그래서 참으로 하나님은 이 축복의 역사! 엄청난 이 축복의 역사!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과 제게 십자가로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십자가로...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런 의미에서 참 복음에 눈이 열릴 때에 뭘 지고 가야 합니까? 십자가를 깨닫고 이해해야 되는 관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2장 20절이 복음에 관문 아닙니까! 이 깨닫는 만큼 복음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복음을 통해서 옛사람은 죽고, 새롭게 복음을 통해서 되어지는 역사가 나올 때에, 비로소 여기에 모든 것이 약속이 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칫 잘못하면 우리 자신부터 복음을 오해할 수 있어요. 복음을 통해서 '뭘 받는 것!' 그래서 '복음은 돈이다!' 오해할 수 있어요. 유대인들이 깨달은 것처럼, 여러분 돈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게 이해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욥기에서 보면 욥도 이것 깨닫기까지 많은 과정을 안 거쳤습니까! 나중에는 뭡니까? 너무 너무 힘들어서 앞을 봐도 없고, 뒤를 봐도 없고, 왜? 다른 것을 보고 있으니까! 이 오해하고 있으니까! 이걸 깨닫기 위해서, 그래서 욥기 마지막 부분에 가서, '내가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 후부터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배나 엄청난 축복을 욥에게 부어 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습니까! 손이 짧습니까! 귀가 어둡습니까! 그런데도 왜, 안주십니까! 너무 오해하고 있으니까! 복음을 오해하고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오해하고 있고,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주신 이 축복과 은혜가 이해가 안되니까! 믿는 성도들이 늘 어렵고 힘든 과정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내용에서 이 사실들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로마서 14장 13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그래서 이 교회 안에서 여러분 이 복음이 이해가 되고, 복음을 깨닫게 되면, 아무리 좀 이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상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 것을 하지 말아라! 조금 뭐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비판하지 마라! 그게 '내가 비판하지 않아야 되겠다!' 이건 율법이 되지만, 복음 깨닫게 되면 자연적으로 이것이 나와요. 비판하지 않는 삶을 뭡니까? 누리게 된다! 이걸 이해 하셔야 됩니다.

비판 안하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화병에 걸려요. 말하고 싶은데, 말 안하고 있으면 오히려 병이 걸려요. 그렇지만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복음이 나를 인도해 갑니다.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누린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래서 교회 안에서 남을 상하게 한다기보다, 뭐 서로 서로간 갈등하게 만들고, 좋은 말이라도 서로 서로간 뭔가 이렇게 나누어지게 만드는 일들은, 다 그것은 속는 이야기들입니다. 속는 일이고, 그것은 이상한 이야기가 되죠.

고린도 후서 8장 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께서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참 복음을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친히 아주 가난한 자 중에 가난한 자로 나왔습니다. 그게 뭡니까? 구유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사실을 동방 박사가 알고, 반드시 왕궁에 있을 것이다라고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를 하니까!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별이 나타나서, 예수님을 가장 가난한 자들도 그렇게 나오지 않는데, 구유에 오셔서, 그러니까 마구간에서, 더군다나 소죽 통에, 구유에 그러는 것보다는 소죽 통에, 우리는 말이 없으니까 말죽통인데, 소죽 통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움푹 패여 있으니까, 거기다가 보자기를 깔고 거기 뉘이셨죠. 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해서, 참 복음이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사실을 바로 이해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했습니다. '너희를 위해서 가난하심이요. 너희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 가난하게 오셨다!' 그 말씀이 참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누가복음 8장 3절에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얼마든지 기적을 행하시고, 돈을 마음대로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남자가 아닌 주로 여기 보면 여인들입니다. 여인들의 뭐로 통해서? 헌금을 통해서, 그 헌금가지고 쓰셨습니다.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면 특별한 경비를, 할 수 없이 특별한 경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오병이어' 라든가, '칠병이어' 라든가, 4000명, 5000명 먹이시는 그런 일들은, 그 다음에 다른 여러 가지 일들... 그런 일들은 기적들을 일으켜서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면서 교훈을 해 나갔던 사실들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과 제가 이런 가난함으로 이 땅에 오셨고, 이런 연약함으로 오셨지만, 그 분은 본래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가 이것을, 앞에 부분이 이해가게 될 때에 그때부터 여러분과 제가 삶이란 것이 이해가 됩니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앞에 부분이 이해가 될 때에,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뭔가 하나님의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이제 이것이 구체적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전능하심은 물고기 입에 성전 세를 넣어 두셨습니다. 이 전능하심인데 아주 사소한 겁니다. 이 말씀을 잘 오해 없도록 하셔야 됩니다. 그는 전능하시지만, 물고기 입을 창고로 삼았습니다. 물고기 입이 얼마나 큽니까? 그런데도 창고로 삼았다는 것은, 하나의 비사적인 이야기지만, 여러분 잘 알아들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참 복음을 알게 되면,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고, 확실하게 알면 하나님은 물고기 입 속에도 기초적인 의무를 감당할 세겔을 준비해 두셨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참 복음을 깨닫게 되면, 우리가 상상지도 못할 곳에 하나님은 모든 문제의 탈출구가, 말하자면 해결점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 내가 여기 기도했다고 해서 이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기도 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해결점이 나옵니다. 여기 기도했는데 이쪽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큰 것을 기도했는데, 큰 게 나왔다!' 아닙니다. 보잘것없는 곳에서도 큰 문제가 해결됩니다. 심지어는 여기서 뭐냐? 아주 보잘것없는 것까지도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이 나옵니다. 전능하심이 이해가 안되면 그게 안 나오죠.

여러분 뭔가 바느질 하다가 바늘이 떨어져 버렸다. 보통 찾잖아요. 찾지만 전능하심이 이해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뭐가 나옵니까? '하나님 바늘 찾게 해 주옵소서!' 옆에서 보다가 '야, 별걸 다 기도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삶이 나온다니까요. 이런 부분이 많은 경우 체험되지 않습니까! 이 사실이 구체화 될 때에 여기에서 우리도 알지 못하게 엄청난 기적이 나온다는 그런 문제가 아니고, 삶과 생활에 해결이, 말하자면 문제가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게 풀려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만물의 여호와 시라는 증거가, 적고 큰 사건 속에서 다시 말하면, 물고기 입 속에서 이해가 됐다! 그런 것이 아니고, 이것이 이해가 될 때에 비로소 물고기 입 속에서 반 세겔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 믿음이 아니면 받을 수가 없는 것이죠.

여러분 지금 현재 우리가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이게 안 되어서 그래요. 왜? 기도가 안되어요. 물고기 입에서 반 세겔이 나온다는 이 믿음이 안되어요. 그러니까, 아예 받을 수 없다고 믿고 있으니까! 아예 안 하는 것이죠. 문제 생겼다. 죽도록 땀흘리고, 그 다음에 절대로 하나님 안 바라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전부 뭔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과 연결되어 진다는 부분을 잘 보셔야 됩니다.

시편 8편 6절에 보면,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우리 주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전능자이신 것을 알게 될 때에, 모든 것을 그 발아래 두셨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은, 이것은 믿음으로 그것을 이해되는 동시에 모든 것이 해결되어진다! 이 말씀을 잘 붙잡아야 됩니다. 이 부분이 간과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말하는 것은, 그리고 이것을 이룬다는 것은, 이것을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합니다. 그걸 가지고 우리가 누린다! 그랬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누린다는 것이 앞에 부분이 안 되는데, 누린다! 그것은 거짓말이에요. 그것은 외식입니다.

이때부터 여러분 아실 것은, 주일날 말씀이 임했다! 말씀이 나왔다! 그러면 우리는 그때부터 전능자의 말씀이기 때문에 뭐가 됩니까? 구체적으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믿음이 나옵니다. 여러분 한 주간 말씀 붙잡고 기도할 때에, 말씀이 성취된다! 그게 바로 누리는 것 아닙니까! 이 앞에 부분이 안되면 말씀이 나왔다! 그건 뭐 박 목사가 준비해 나온 말이요, 박 목사가 갖고 있는 어떤 것에서 나온 말이요. 이렇게 되면 이것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요, 전능자의 말씀이요, 성취될 말씀이라고 믿어지게 될 때에 뭐가 나옵니까? 행동이 나옵니다. 말씀을 붙잡고 구체적인 행동이 나옵니다.

그래서 다음주에 오실 때는 마태복음 한 권을 한번 읽고 오시는 것이 좋겠다! 적어도 마태복음 지금 17장하고 있거든요. 다음 18장, 19장... 그래서 적어도 10장부터 20장까지라도 읽고 오셔야 되겠다. 그래서 숙제를 낼께요. 다음주에는 10장부터 20장까지 숙제입니다. 한 권 다 읽으면 더 좋고요. 내가 10장부터 20장까지는 숙제입니다. 내가 강단에 서서, '다 읽은 분들 손들어 보세요!' 한번 물을 거예요. 워낙 말씀을 안 읽으니까!

그 다음에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을 붙잡고 뭐합니까? 행동하게 됩니다. 안 그러면 절대로 말씀 붙잡고 행동할 필요가 없어요.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 체험되어져야 되고, 이 축복이 사실적으로 와져야 되는 것이죠. 그러면 말씀 붙잡고 행동하게 되고, 말씀 붙잡고 살아가는 구체적인 사건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기만 하면 물고기 입에서 반 세겔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게 베드로의 역사 아닙니까! 이게 바로 성경이 약속하는 여러분과 제의 약속입니다.

보잘것없는데서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더니 일이 풀리기 시작해요.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한번, 두 번 체험되면요, 그 다음부터는 걱정할래야 걱정할게 없어지는 것이죠. 그게 안되니까 자꾸 걱정을 하게 되고, 염려가 나오게 되는 것을 봅니다. 주님의 명령을 지킬 때에, 물고기가 동전을 물고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주의 명령을 따라 갈 때에, 물고기가 돈을 물고 올라오더라 그랬습니다. 이 말을 또 잘못이해하면, 낚시 들고 또 밖에 나가서 '주여, 합니다!' 그러고 만약에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됩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안 그랬습니까! '앉은뱅이 일으켰다 그랬는데, 나는 왜 못하느냐! 하나님께서 내게도 은혜 주옵소서!' 앉은뱅이 붙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안되고, 한쪽 귀퉁이에 가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한다! 앉은뱅이야, 일어나라!' 얼마나 잡아당겼던지 팔이 빠져버렸다! 그래요. 그러니 그분이 한국에서는 전무후무한, 지금도 그런 분이 없어요. 신유에 병 고치는 은사로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오늘 이 말씀 붙잡고, 낚시 던져서 '물고기야 동전 물고 오너라!' 행동할 수 있는 단순한 마음이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킬 겁니다. '아이고, 유치한 소리하지 마라!' 이래서 죽어도 안 하지. 여기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그곳에 모든 것을 하나님이 준비하시겠다! 준비하실 때에, 하나님의 방법이 아주 우리가 상상밖에 방법으로 준비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물고기 입에다가 동전을 넣어 놓았습니다. 그것으로 준비하셨다! 이 말은 여러분들이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셨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19편 11절에 보면,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말씀 붙잡고 말씀으로 나가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헛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안 된다 안 된다 말씀 붙잡고 하느냐? 헛되지 않습니다. 안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과 역사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이면 항상 물고기를 낚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는 그 물고기 속에 준비된 하나님의 축복에 손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 오늘 약속한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주의 할 것이 있어요. 주의 할 것이 뭐냐하면, 딱 맞게 주십니다! 절대로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고, '필요를 채워주신다!' 그랬습니다. 성전 세는 반 세겔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아마 다른 제자들은 다른 지역에서 아마 낸 것 같아요. 예수님과 베드로에게 성전 세는 한 세겔 밖에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물고기 입에서 나온 것은 딱 맞게 한 세겔만 딱 나왔어요. 예수님과 제자가 낼 수 있도록, 예수님은 동전 한 닢으로 한 자루 만드실 수 있습니다. 아니 두 자루도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예수님은 물고기 입에서 동전 20개도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필요한 딱 한 세겔! 베드로와 예수님께 의무를 행할 수 있는, 그것도 먹고 마시는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의무를 행하시는 딱 필요한 한 세겔 이상 더 이상 주시지 않았다! 그 말씀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여러분 필요를 채우시지,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가장 기도에 그물이 뭐냐? 또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누림에 대한 그물이 뭐냐? 욕심과 다른 동기가 가장 방해합니다. 정말 여러분과 제게 솔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하나님은 채우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1년 먹을 양식을 달라 하지 않고 뭐라 그랬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저 광야에서도 매일 매일!

그래서 제가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광야에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만나를 주신 것 너무 감사한 은혜입니다. 만약에 광야에 1년 먹을 양식 만나를 한꺼번에 다 주었다. 큰일납니다. 이것을 짊어지고 가려고 그러면 모래땅에 사람 죽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고, 딱 눈을 뜨면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그것도 운동도 적당히 하라고... 만나를 딱 먹을 수 있는 양만큼, 그것도 욕심을 내어서 가지고 오면 뭐가 됩니까? 하루 밤만 지나면 벌레가 다, 썩어져 버리고 딱 먹을 있도록, 일용할 양식을 필요한 부분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여러분 오늘 이 사실을 조금 붙잡으면 여러분 오늘 먹을게 있고, 오늘 입을 것이 있고, 오늘 내가 교회 왔을 때에 하나님 앞에, '주여, 오늘 내게 필요를 채워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러면 행복해 진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오늘 내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은 앞으로 모든 것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다 내 것입니다. 여기에 일이 이루어지는 거죠. 이 사실을 바로 아셔야 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이 2,500만이 넘는다고 그래요. 1달러면 얼마입니까? 우리 돈으로 요즘 1,200원 까지도 안 되죠. 그런데 여러분과 저는 얼마입니까? 아무리 못살아도 한 달에 10만원가지고 사는 사람 없죠. 한 달에 5만원가지고 사는 사람 없죠. 1달려 보다 훨씬 많은... 그래서 여러분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은, 우리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 빈곤이지, 밥 못 먹어서 못 사는 게 아니거든요. 너무 밥을 많이 먹어 가지고 보리밥 먹으려고 야단하잖아요. 너무 밥 많이 먹어 가지고, 옛날에 등겨 먹던 시절을 생각해서 현미 먹으려고 그러고, 또 요즘은 등겨를 갈아 가지고 마시고 안 그렇습니까! 옛날에 그 등겨 떡을 먹고 안 그랬습니까! 혹시 여러분들 젊은 사람들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제 나이 또래면 등겨 떡 많이 먹었어요. 그것도 못 먹어 가지고 송구 벗겨 가지고 송구 떡 먹고, 그걸 송구라 그럽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오늘에 먹고 마시는 축복! 오늘에 만족하게 하셨다! '한날에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하나님께 전 인생을 맡기고 나갈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필요를 채워주신 것이 이해가 될 때에, '염려, 걱정, 근심!' 나올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어요. 여기서부터 뭐가 나옵니까? 그 다음에 누림이라는 것이 나오고, 누림이라는 것이 나오면 그때부터 뭐냐? 여러분 기적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 또 중요한 것이 사도행전 4장 35절에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그랬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이것이 필요하다! 저것이 필요하다!' 그릇입니다. 그릇대로, 여러분 그릇대로, 그릇에 필요한대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교회를 건축한다!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건축하는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를 살려라!' 하나님의 필요입니다. 마음은 좁아 터져 가지고 막 요만한 것도 못 놔두고, '복음 전파하라!' 이것은 절대로 안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성전 건축합니다! 내게 뭘 주옵소서!' 주기는커녕 있는 것도 뺏어 버립니다. 여러분 그릇입니다.

앞으로 성전 건축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마음을 넓혀야 됩니다. 정말 여기 사도행전에 보면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복음이 되었다! 이게 나오는 겁니다. 이때부터 뭐냐? 봉사다! 헌신이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안되면 나 혼자, 나의 것, 어느 때보다도 강한 것이 교회 안에 이기주의입니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그릇준비가 되어진다! 그러면 그때부터 진실로 너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신 우리 주님의 역사! 이게 이해가 되면 그때부터 뭐냐? 내가 헌신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고, 그 다음에 봉사하는 것이 이해가 되고...

여러분 이게 성가대 앉아서 한다! 훨씬 힘든 일이거든, 아침 일찍 와야지, 또 노래 불러야지, 감기 걸려도 노래 불러야지, 소리안내면 안 좋다 그러지, 또 지휘자 우리 집사님 얼마나 까다로운지! 안 된다 그러지, 그러면 성도 나지! 여러분 문제는 정말 하나님의 약속, 복음에 분명한 역사 나오면, 그때부터 여러분들에게 그릇만큼 필요가 나옵니다. 내가 뭘 해야 될 것인가? 봉사만큼 필요가 나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비로소 뭐가 나옵니까? 채우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채우시는 역사가 인색하냐? 성경은 '흔들고, 누르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리라!' 죽어도 안 되는데, 그릇 꽁꽁 다 덮어놓고, 도대체 안 되는데, 거기에 맨 날 흔들고 넘쳐... '아, 나 흔들고 넘친다!' 그러지, 오늘 하나님의 약속을 잘 붙들어야 됩니다. 복음을 깨닫고, 흔들고 넘치도록 채운다는 것은 누림 속에서 나옵니다. 조금만 열고 우리 그릇을 조금만 넓히면, 엄청난 축복과 역사로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넘치는 역사! 그래서 조금만 주님 앞에 역사 이루어지게 되면, 전혀 상상치도 못할 물고기 입에서, 우리가 물고기 입만 열면, 여기서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도저히 상상도 못할 곳에 입만 열면, 나가기만 하면, 헌신만 하면, 하나님이 채우시리라!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복음이 바르게 되면 율법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율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전도로 맺혀집니다.

● 본론
1. 복음을 정확하게 알게 될 때 삶이 누림으로 따라옵니다.
(1) 먼저 복음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이루시는 주권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2) 주권이 내게 이루어지면, 나에게 책임이 따라옵니다.
(3) 내가 현장에서 가지는 책임을 누리게 되면, 그 열매로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4) 이 누림은 내 노력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2. 축복된 삶에 대해서 오해하지 마십시오.
(1) 예수 믿고 생명을 얻었을 때 가난하고, 어렵고, 고난이 오는 문제는, 우리가 복음의 축복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 아이가 태어나서 똥을 싸고 오줌을 싸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자라가는 과정입니다.
(3) '안 되어지는 것이 되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 바로 생명의 신비입니다.
(4) 어려움이 있을수록 더욱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참 생명의 축복된 삶입니다.

3. 사소한 부분의 삶에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체험될 수 있습니다.
(1) 베드로는 물고기 입에 성전세를 낼 수 있는 한 세겔을 얻었습니다.
(2) 복음을 깨닫게 되면 우리가 상상치도 못할 보잘 것 없는 곳에서 해결점을 얻게 됩니다.
(3)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4) 크고 작은 모든 일들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믿음의 기도로 구체적인 행동을 할 때,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얻는 것처럼 일들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 결론 = 주의할 점
(1) 물고기 입에서 예수님과 베드로의 몫으로 딱 한 세겔만 얻도록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맞게 주십니다. 욕심을 버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그릇만큼 채워주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줄 수 있는 봉사와 헌신의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 기도제목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깊이 깨닫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허락해 주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입을 열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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