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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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2: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마 22: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마 22: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마 22:18)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마 22:19)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마 22: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마 22:21)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 22:22)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본문 말씀에는 아주 고차원 적인 어떤 시험에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제목을 오늘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라 했습니다. 사실은 제일 어려운 시험이 웃으면서 다가오는 시험, 또 뭔가 좋은 것으로서 다가오는 시험, 뒤에는 더 무섭고 또 죽음의 숨겨져 있는데도 웃고 좋은 것으로 다가오는 시험!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제일 무서운 시험이 아예 뿔을 달고 다가오는 사단의 역사가 아니고, 천사로 접근하는 사단의 역사가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께 나온 헤롯 당과 바리새파들의 합당입니다. 말하자면 둘이 협조해 가지고 오랜동안 의논하고 논의해서 나온 아주 악날한 시험이 되겠죠. 그러면서 무슨 시험을 하느냐 하면, 본문 말씀대로 칭찬을 장황하게 해 놓습니다. 16절 말씀에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맞는 말인데도 아첨을 하고 있는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외식하는 말입니다.
바리새파 혹은 헤롯 당원들이 합작을 해서, 본인들은 나서지 아니하고 하수인들, 일꾼들을 시켜서 이렇게 예수님을 아주 치켜세우면서 죽이려고 하는 이런 어떤 그 내포된 시험입니다. 그래서 이 시험에 배경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악하다!' 그랬습니다. '악하다! 외식하는 자다!' 그렇게 표현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내용은 사실은 유대인들이 이 일이 있기 100년 전에 벌써 로마에 속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속국이 되어 있으면서 로마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이런 때에, 바리새인들이 속국이 되어있는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해 가지고 시험을 하는데, 우리가 일제치하에 있었던 것처럼, 일제치하에는 일본에 세금 안내고, 일본에 뭘 내라고 그러면 안내고 숨기고 이런 것을 애국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노예근성 그럴 때는 바로 이런 문제거든요.
우리나라가 지금도 나라 살림에서 어려운 것이 뭐냐하면, 나라에 내려고 그러면 될 수 있으면 안 내려고 하는 것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노예근성이라 그럽니다. 제가 미국에 가 보면서 느낀 것은 뭐냐하면, 그 사람들은 세금 많이 내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거든요. 기쁨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세금 내는 것을 굉장히 수치로 알고 있어요. 그냥 세금을 될 수 있으면 안 내고, 떼어먹으려고 그러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도적놈이라 그러죠. 그런데 그것을 기쁘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아마 일제치하에 어떤 노예근성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많이 내고, 국가가 되도록 많이 밀고, 그 다음에 또 내가 노후에 내가 또 보장을 받고, 이런 떳떳한 과정이 아니고, 이런 것이 바로 그런 문제죠.
그런데 이런 어떤 배경이 되어서, 어떤 유대인들이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을 수치로 알고 세금 안 내는 것을, 그렇게 뭔가 애국하는 것으로 알고 보는 이런 때입니다. 이런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리를 그렇게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세리가 내는 헌금도 안 받았어요. 교회에서도 유대교에서는 '세리가 내는 헌금을 안 받았다!' 성경에 그랬어요. 성경에 보면, '세리와 창기의 헌금을 안 받았다!' 그랬거든요. 왜냐하면 세금을 받아 가지고는 로마에 갖다 바친다고 그런 어떤 배경입니다. 이런 때에 세금을 내는 것이 가합니까? 불가합니까? 이렇게 물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했느냐 하면, '그러면 너희가 갖고 있는 돈이 뭐냐? 가져오너라!' 말하자면, '세 돈이 뭐냐?' 그랬습니다. 세금을 내는 돈! 그때 그 세금을 낼 때에 로마화폐로 세금을 냈습니다. 그래서 세금을 내는 돈이 데나리온인데 그 데나리온을 가지고 왔습니다. 데나리온이라는 것은 로마화폐의 동전으로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한 데나리온이 하루 노동자의 품삯입니다. 가치로 말해서는 우리나라 돈으로 한 5만원 정도입니다. 요즘 많이 받는 사람은 7만원, 또 적게 받는 사람은 3만원 받는다고 그러는데 대략 한 5만원 정도, 그러면 노동자 품삯이니까!
그래서 이 데나리온을 가지고 오니까, 그때 그 데나리온의 새겨져 있는 상이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상이나 이런 게 있는데 거기에는 가이사입니다. '이 화상이, 그림이 누구냐?' '가이사입니다!' 그러니까! '글이 누구 글이냐?' '로마 글입니다!' 그럴 때에 하신 말씀이,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뭐 너무 변명할 수 없는 대답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이히 여기며 돌아갔더라! 그렇게 한 것이 오늘 본문에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뭔가 중요한 몇 가지를 잡고 기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뭐냐하면, '하나님은 다 아신다!' 하는 말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이것만 믿고, 이것만 확인이 되어도 우리 신앙생활이 바로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로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꾸 사기 치려고 그러고, 외식하려고 그러고, 또 거짓말하려고 그러고, 그러니까 성경에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 더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있다! 그러면서도 거짓말하는 자!' 그렇게 보면 어떤 면에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도 참 믿음의 어떤 근본을 못 가지게 되면 진짜 어리석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악하고 악한 자가 되는 겁니다.
우리 18절 말씀에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시험하는 것을, 우리 주님께 나와서 시험하는 것을 우리 예수님께서 다 아셨습니다. 모르실 이가 없잖아요! 다 아시고, 그리고 그 심보도 알고, 배경도 알고, 그들이 뭘 의도하는지도 다 아십니다. 그리고 와서 웃으면서 살랑거릴 때에, '외식하는 자들아, 악한 자들아!' 어떤 면에서 차라리 막 다가와 가지고 성내면서 덤벼드는 것보다도, 이것은 슥 자기들의 정체를 숨기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악하고 더 악날하죠. 여러분들이 먼저 이 점을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나의 형편도 아시고, 나의 문제도 아시고, 나의 모든 것 다 아십니다. 내 하나님은 잘 안 믿는 것도 아시고, 외식하는 것도 아시고, 거짓말하는 것도 아시고, 그런 것도 아십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나오시면서 제일 뭘 느끼느냐 하면, 정말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고 있느냐?'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응답이 안 된다! 기도가 왜 안 되느냐? 할 것 없어요. 진실하지 못해서 그래요. 진실하지 못한 배경이 하나님이 믿어지지 못하니까! 진실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오셨다! 나오셔 가지고, '하나님!' 그럴 때에, '하나님!' 그러니까, 아버지 부를 때에 아버지를 나의 대상으로 확실히 안 믿어지는데 뭐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기도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구하는 것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게 '안 된다!' 그러면 전부 여러분 가식 아닙니까?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것조차도 전부 가식입니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 그 이름을 부를 때에, 정말 하나님 나의 모든 것, 나의 형편, 나의 것, 다 아시는 어떤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죽고 살릴 수 있는 하나님! 내 양심도 아시는 하나님! 다 아십니다. 여기에 조금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도, 하나님 앞에 응답 '받는다, 안 받는다!' 이것은 그 다음에 문제로 올릴 필요조차 없다! 그렇게 봅니다.
교회 와서 내가 하나님 앞에 헌신한다! 내가 하나님 앞에 뭘 한다! 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바로 하느냐? 거짓말하느냐? 양심으로 하느냐? 진짜 전심으로 하느냐? 아니면 가식으로 하느냐? 위선이냐? 외식하는 자냐? 다 아십니다. 그러면 다 알 것 아닙니까! 여러분 뭐 어디 이런 저런 할 이야기가 없어요. 중심으로 조금만 하나님 앞에 섰다! 하나님이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역사가 나오죠.
그래서 흔히 그럽니다. 제일 답답한 것이 상담을 하거나 뭘 하다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참, 다른 사람은 내 이런 고통을 모릅니다!' 그러더라 구요. '나만 이런 것을 받는다!'고 이래요. 그래서 그걸 들어보면 다른 사람도 다 그런 것을 받아요. 다 그런 것을 겪고 그렇게 삽니다. 그런데 '나만 맨 날 이렇냐?' 그게 참 어렵거든요. 그때 보면 얼굴이 그렇게 고독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어요 자기 혼자 세상 짐을 다 지고있는 사람처럼... 우리가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나만 그럴 때에 한가지 하나님도 다 아십니다. 여러분 '어렵다! 힘들다!' 왜 모릅니까? 다 아십니다. 그러면 문제는 달라져 버려요.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뭐 '오해를 받는다, 뭘 받는다!' 오해받고 할 것도 없어요. '하나님은 다 아신다!' 이렇게 되면, 신앙생활이 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기도가 달라져 버려요.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하나님은 내 마음도 아시고, 내 중심도 아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지금 입으로 변명하려고 하지 마시고, 입으로 뭘 말하려고 그러지 마시고, 이 자리에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나와 어떤 관계 속에, 하나님이 나를 어느 정도로 아시고, 내가 하나님을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느냐? 이것만 이해가 되면 이해되는 만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안 하신다는 것은, 나는 그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왜? 자꾸 '축복한다!'고 그러니까, 이건 뭔가 늘 무심히 들려지는 것 같아요. '축복 받아라!' 늘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이 '그냥 말하네...' 이 말이 엄청난 말인데도, 너무 무심히 들어요. 어쩔 때는 이 메시지를 하다가도 워낙 보통으로 알아들으니까,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래요.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말씀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지금 어느 자리에 섰느냐? 나의 통치자가 누가 되어 있느냐? 이것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될 필요가 있죠. '데나리온 하나를 가지고 오라!'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확인시킨 것이 뭐냐하면, '너희가 지금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느냐?' 그걸 확인시켜 준겁니다. 데나리온을 갖고 와서, '이 글과 화상이 누구의 것이냐?'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러면 '가이사에게 바치라!' 그 말이 뭐냐? '너희들은 지금 가이사의 다스림과 가이사의 노예 속에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 당연히 뭡니까? '그대로 순종해 나가라!' 저는 그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이 진리가 안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 어떤 것을 보느냐하면, 국가 시책에 제일 많이 비판하고, '산업선교!' 그래서 산업현장에서 많이 비판하고, 이런 분들이 옛날에 기독교인들이 참 많았거든요. 거의 그런데 성경에 원리는 뭐냐하면,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노예로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 노예로 '다스리는 자에게 순종하라!' 그 로마서에 보면, '정치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뭐냐하면요. 기독교인들이 어떤 산업선교라는 어떤 좋은 선교의 모임으로 통해서 뭐냐하면, 그 기업에 말하자면, 그 주인에게 어떤 항거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그것은 성경에 진짜 원리는 아닙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자들에게 협조하고 거치는 것이 되지 말라!' 이것이 성경에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뭔가 될 수 있으면, 국가에서 뭘 하려고 하는 것은 안 하려고 그러고, 뭔가 국가에서 하는 일에 비 협조가 된다! 그것은 성경적인 원리가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이걸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어떤 자리에 먼저 서야됩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이 말씀을 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가이사의 통치를 받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응당히 가이사의 통치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죠. 여러분과 제가 오늘 누구의 통치를 받느냐? 이 눈이 열리는 것을 성경은, '영적인 눈이 떠졌다!' 그럽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거의 많은 경우 이게 잘 안되었어요. 그래서 이런 눈이 안 열리고 신앙 생활하게 될 때에 우리가 어디에 빠지느냐 하면, 자신도 모르게 '율법에 빠진다! 신비에 빠진다!' 그런 배경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눈이 안 열리고 우리가 자녀를 교육한다! 뭔가 이렇게 가정을 다스린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도 모르게 뭐냐하면, 열심을 낼수록 다른 데로 빠집니다. 다른 데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어있는 상황에서 '뭘 한다!' 전부 다른 열매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 지난주에 말씀드렸죠.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께서는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었지 만은 결국 어떤 열매가 맺혔어요? 들 포도 열매가 맺혔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심어줬는데 종교 열매를 맺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이 전부 지금 여기에 있는 배경이거든요.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바로 이런 문제입니다.
조금 전에 미국에서 신봉준 목사님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오늘 주일날인데 목사님 건강하십니까?' 그러면서 '저는 이제 교인들의 기도 속에서 사역을 잘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이제 이야기를 하다가, '가서 지난번과 다른 어떤 문제점들이 있느냐?' 이러니까! '다른 것은 다 하시려고 애를 쓰는데, 지금까지 교회에서 메시지 듣고 갖고, 메시지 가지고 치유하고 이러니까, 그 메시지 붙들고 막 치유 받고 그 메시지대로 하려고 애를 쓰더라!' 그래요.
애를 쓰고 참 좋은데, 그런데 신 목사님 이야기가 뭐냐하면, '중요한 한가지가 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그게 뭐냐하면, 생명이 구체적으로 임해야 되는데, 이게 이제 생명을 못 받고, 구원에 대한 감격과 축복이 이해가 안되고, 쉽게 말해서 복음이 이해 안된 상황에서 말씀을 받아 가지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애를 쓰니까! 그걸 받아 가지고 실천하고, 그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하니까, 이게 뭔가 더 어려워지는 겁니다. 중요한 문제죠.
여러분 그 아이가 죽어버렸는데, 아무리 옷을 잘 입히면 뭐합니까? 아이 죽었는데 다가 귀고리하고 목걸이 해놓고 안 되는 겁니다. 문제는 뭐냐? 살려놓아야 돼요. 생명이 살아야 다 되는 겁니다. 그때는 생명이 살아버렸다! 옷 못 입어도 예쁘기만 해요. 금방 낳은 아이들은 생긴 것이 이상하잖아요. 나는 금방 낳은 아이를 보니까 진짜 이상하더라 구요. 그런데도 생명이 있는 것 때문에 그게 얼마나 귀엽습니까! 그게 생명이 나와 관계 있다는 이유 때문에 더 귀엽습니다. 여러분 뭔가 저 남의 아이들은 보면, 핏덩이 별로 예쁜 것도 없어요. 이상하게 보이죠. 그런데 그게 '내 손자다, 내 아이다!' 눈이 이상해져 버립니다. 완전히 한 껍질 덥힌 것이지.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워 질 수 없는 거잖아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죽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입혀도 소용이 없어요. 살아버려야 됩니다. 생명이 주어져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정말 이점을 좀 붙잡아야됩니다. 내가 교회 와서 신앙생활 잘 하려고 백 번, 천 번 노력해도,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 안 되었다!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점을 조금 더 말씀을 드리면, 영적 문제가 여러분 인식이 되어야 됩니다. 내가 지금 본질적으로 어디에 속해 있느냐?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이 점치고, 안 믿는 사람들이 우상에 절하고, 그건 당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어요. 안 그러면 더 못사는데, 안 믿으면... 부지런히 우상숭배하고, 부지런히 절하고, 그래야 돼요. 그래야, 그래도 뭔가 생명이 붙어있고, 그래도 뭔가 살아갈 수 있어요.
거기에서 빠져나왔다! 해방 받는 것 아닙니까! 운명과 죽음과 멸망과 저주에서 빠져나오는 것 아닙니까! 누구로 말미암아?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이것이 안된 상황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계속해서 오는 것이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과 괴로움에서부터 빠져 나올 수 없어요. 그리고 집안과 가문에서 내려오는 저주와 재앙에서부터 해방 받을 수 없습니다. 빠져 나올 수 없어요. 개인이 '예수를 믿는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실패를 한번만 혹시 했다! 그러면 이해가 되지만, 거듭 거듭 실패가 온다! 그것은 배경이 벌써 다른 겁니다. 뭔가 근본 문제를 바로 봐야 됩니다.
교회를 10년, 20년 다니면서, 아니 교회를 내가 몇 년 다녔던 간에 계속해서 고통이 밀려옵니다. 그것은 근본문제가 안된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 다녀서, 아무리 '내가 잘하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열심히 새벽기도 안 해서 그런가 보다!' 새벽기도 나오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열심히 기도하지 말라는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근본문제가 해결이 안되어 있는데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 죽는다! 이겁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말이 간단한 말이지만, 이게 엄청난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망하고 싶어서 망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내가 재앙 속에 있고 싶어서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영적인 문제가 보여진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나를 다스리는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겁니다. '내가 사단의 손아귀에서부터 헤어나지 못했다!' 그 이야기가 사단의 다스림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게 우리 원래의 자리에 있었던 부분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 여기에 있는 한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이게 해결이 되는 게 아닙니다.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왜, 기도응답이 없느냐? 그래가지고 막 밤새도록 기도하고, 밤새도록 기도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근본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는데 기도할수록 더 고생입니다. 왜, 응답이 없어요. 응답하고도 남죠. 조금만 진실해 보세요. 이 기본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것이 해결이 안되면 안될수록 뭐냐하면, 점점 더 하는 것만큼 더 어려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더 고통스럽고 더 괴롭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럽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이 배경이, 그리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이 순간 얼마나 위대한 역사가 나오느냐? 간단하거든요. 실패하고, 망하고, 저주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길이, 그 배경이 사단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단의 세력이기 때문에, 막 욕한다고 사단이 물러가지 않거든요. 욕한다고 물러갈 것 같으면 연구하면서 욕하겠어요. 그런다고 물러가지 않거든요. 눈을 부릅뜬다고 날 겁내서 물러갈 수 있느냐? 그러면 눈을 이상하게 떠 가지고 별 짓을 다 해보겠습니다. 그런다고 물러가는 게 아닙니다. 돈 때문에 물러간다! 아닙니다. 돈 때문에 더 덤벼들지 물러가는 게 아닙니다. 명예나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서 성경에서 여러분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여기에 '귀중성과 가치에 눈이 열렸다!' 하는 것이, 여기에 눈이 열렸다! 그겁니다. 왜? 사단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이외에 물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어렵다, 힘들다, 문제 생겼다!' '돈 벌면 해결된다! 뭘 하면 해결된다!' 아닙니다. 여러분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실적인 믿음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기본적인 이것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 문제인데도, 이게 별로 쉬운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 성경에 보면 바울이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의 영광을 위해서하라!' 굉장히 어려운 것처럼 생각되거든요. 바울처럼 하려면 어려운데... 왜? '주안에서, 주안에서, 주안에서...' 그럴 때에 굉장히 어려운 것처럼 생각이 되거든요. 그런데 그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만 해결되어 버리면 그 다음에 딱 여러분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진심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이 자녀가 됐다고 하는 순간부터 뭐가 안 오느냐 하면, 사건과 일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뭐가 나오느냐? '주여!'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여!' 나옵니다. 그게 근본적으로 이것이 확실히 안되어 있으면, 사건과 일이나 문제가 나올 때마다, '주여!' 그러기 전에 내 머리로 돌아가 버립니다. 내 수단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일이 생기면, 먼저 내 머리가 팽팽, 팽팽 돌아가잖아요. 나도 모르게 내 머리가 돌아가는 데로 합니다. 한참 하다가 '아이고, 기도 안 했구나! 한번 물어보고 하자!' 이렇게 되어도 벌써 늦어요. 그게 벌써 나를 잡고 있는 실제적인 지배자는 뭡니까? 다른 배경이라 그 이야기입니다. 그게 안 되어있다! 그럴 때는 아무리 일을 잘 처리 해놓고, 뭔가 되는 것처럼 해도, 열매는 다른 열매가 나옵니다. 여러분 좀 등신 같고, 잘 안 되는 것 같고, 일이 안 되는 것 같아도, 문제나 사건과 일이 생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여!' 주님 바라보고, 그렇게 되면 일이 안 되는 것 같아도, 여러분 분명히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 열매는 엄청난 축복과 은혜로 나옵니다.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했습니다 만은, 여러분 자동차에 앉을 때에, '하나님, 사고 안 나고, 뭐 안 나고...'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없어요. 왜? 그런다고 사고 안 나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 기도한다고 해서 사고 안 나고, 내가 뭔가 기도한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어떤 것이 안나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자동차에 딱 앉았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성령으로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그런 중에도 나도 모르게 하다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사고가 날수도 있고, 그러나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반드시 열매는 축복으로 맺어진다! 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인도 받게 될 때에, 그때부터 뭐냐? 저주와 재앙이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 되어있을 때는 잘 되는 것 같아도 나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저주와 재앙에 주인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무런 일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성공했다!' 그렇게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또 이 자리에 서 있으면서, '나는 실패했다!' 그렇게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미안한 말인지 모르겠고, 건방진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은, 나는 '성공했다!'고 싶은 생각이 더 있지, '실패했다!'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러면 그 동안에 내가 살아오면서 '좋은 일만 생겼다!' 아니거든요. 여러 가지 상상 못할 어려움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뭐 혼자만 들어 누워 있어도 그런데, 둘이 교통사고 나가지고, 이등실에 가 가지고 이렇게 서로 마주보고... 친구 목사님들이 오셔서, '여긴 뭐 새삼스럽게 신혼 여행 하냐?' 그러면서, 그것도 2월 11일인가, 완전히 죽었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오면서 뭘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으냐 하면, 하나님이 모든 사건과 일을 통해서 축복으로 인도해 주셨지, 그게 고통과 괴로움과 저주로 끝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 배경에는 나는 뭘 말씀하고 싶으냐 하면, 잘하든, 못하든, 일단 앉든, 서든, 가든, 시작하든 일이나 사건들 생길 때마다 먼저 주님을 바라봤습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을 이루실수 있다!' 이 믿음 하나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이 암아 하나님의 인도 받으면서 살았다!' 그것이 내가 '생각이나 마음이나 어떤 큰 일을 했다!' 그런 게 아니고, '내 생각과 마음속에 나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이, 나의 삶 속에서 적은 일에도 늘 확인하며 살았다!' 맞습니다! 열매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지금 분명히 성경에 말씀했잖아요. '나를 실제로 다스리시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나를 저주와 재앙으로 이끌어 가는 사단의 배경이 아니다 하나님이시다!' 그 적은 고백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적은 고백이 여러분과 저를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책임지고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뭡니까? '자긍심, 자부심 가져라!'는 말이 그것이거든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게 중요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말씀했죠. 받아합시다. "나는 극상품 포도나무다!" 가짜가 아닙니다. 들 포도가 아닙니다. 극상품 포도나무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귀히 여기고 하나님께서 울타리를 쳐 주셨잖아요. 교회를 주셨고, 교리를 주셨고, 그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집도 주셨고, 그것도 울타리예요.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자식들도 주셨고, 여러 가지 부도 주셨고, 여러 가지 먹고 마실 수 있는 물질도 주셨고, 그것도 다 울타리입니다. 그래가지고 극상품 포도 나무열매를 맺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나가십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래서 우리가 순간, 순간 이 고백이, 사건과 문제가 올 때마다 다른 이름은 없어요 이 땅에 오직 천하인간에 한가지 이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만 축복과 은혜로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언약에 서 있는 동안에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그렇게 인도해 나가실 것입니다. 나가는 동안에 하나님은 훈련도 시키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영적인 문제, 내가 소속되어 있는 문제!' 이것을 빨리 인정하고 시인되어야 됩니다. 정신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하면, 자기를 시인하지 않아요. 이것만 시인되면 해결되어요. 뭐 반 이상 해결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말씀하신 것처럼 딱 시험하러 왔을 때에, '시험하러 왔구나!' 이걸 아는 것만 해도 벌서 반 이상 해결입니다. 여러분 정신적인 문제는, '아, 이게 흑암이 나한테 왔구나! 내가 지금 소속이 이렇게 되었구나!' 이것만 알아도 벌써 반 이상 해결입니다. 이걸 모르면 아무리 애를 쓰고, 아무리 메시지를 줘도 안 들어가요. 이것만 해결되면...
그래서 '흑암에 세력이구나!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 이 죄와 사망의 법이 그 법이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구나!' 이것만 알면 자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요구가 됩니다. 그리고 '참, 이 이름뿐이구나!' 이해가 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의 적은 문제나 적은 사건 속에서도 나도 모르게, '아, 예수 그리스도!' 그게 간단하게 '축복이다!' 그게 아닙니다. 엄청난 여러분 생애와 문제를 바꾸어 버리는 축복의 역사입니다. 거기에 모든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되고, 이것이 확인되는 만큼 그 다음에 다 풀려 나간다니까요.
이런 배경 속에서 교회에 앉아서 기도할수록, 이런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실천할수록, 이런 배경 속에서 주의 말씀 붙잡고 하나님 앞에 나갈수록 힘이 되는 겁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시나니!' 그런데 이것이 안되거든, 안 되는 그런 문제라면, 이 말씀 듣는 동안에 이것이 안되었다 그러면, 말씀이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고, 이 말씀 가지고 한 주간 기도도 안 될 겁니다. 근본 이 문제가 해결되면, '내가 말씀가지고 붙잡고 기도해야지!' 이런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저절로 말씀이 붙잡혀 져서 기도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뭐가 나오느냐? 기도할 때마다 힘이 나오게 되는, 사실적인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뭐라 그랬습니까? '바치라!' 그랬거든요. 바치라 그랬는데, 바치라는 그런 말을 조금 이렇게 유의해서 보면, 바치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이런 것이 되고, 영어로는 'Give' 한다 아니면, '드려라!' 이렇게 되는데, 원래 그 원문에 의미는 '∼되게 하라' 이런 뜻이 되는데, '돌려 드려라!' 이런 의미가 강합니다. 그래서 그 좀 빌려온 것이다! 그러면 랜트했다는 말과 조금 달라요. '원래의 것으로 돌려드려라!' 그런 배경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럴 때에, 여러분과 저는 모든 것이 근본소유주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사실은 앞에 부분을 빼어 버리고, 우리가 시간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런 배경이 우리의 신앙생활이거든요. 이것만 이해가 된다 그러면 여러분 재물 관이라든가, 그 다음에 자식 관이라든가, 모든 삶이 전부 달라져 버립니다. 한번 물어봅시다. 여러분이 몸이 여러분의 것입니까? 누구의 것입니까? 왜 그러면 지 마음대로 하려고 그럽니까? 이 자체가 안되어 있거든요. 여러분이 받은 모든 것들이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것을 너무 알았기 때문에, 성전을 짓기 위해서 많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놓고는 뭐라 그랬습니까?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또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릴 수 있게 하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여기에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것인데도, 하나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쓰면서도 뭐라고 생각하는 줄 압니까? 헌금한다 그러면 '내 것을 가지고 빼앗긴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가지고 될 수 있으면 안 빼앗기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가지고 헌금하려고 그러면 만원 짜리 나오면 쑥 넣어버리고, 천원 짜리 내고... 될 수 있으면 이게 세금 내는 속국이 되어있는 유대인들이 로마에 세금 내는 기분이에요. 노예근성이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 '주인으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 이게 없어요. 지 몸도 지 마음대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데 사용한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데, 그게 안되고 있어요. 한번 물어봅시다. 자식들이 여러분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진짜로? 맞습니까! 그런데 왜 지 마음대로 합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잠시동안 여러분께 맡겨서 복음으로 잘 양육시키라고 맡겨 놓았는데, 지 마음대로 하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도 돌아간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갈 때는 빈손으로 갑니다. 그런데 빈손으로 가는 이유가 뭐냐하면, 그건 내 것이 아닙니다. 벌었지만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그래서 이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중요한 약속을 했어요. 워낙에 이것을 모르고 사니까, 이것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벌은 것 다 좋다! 아홉은 네가 먹어라! 하나만 나한테 맡겨라! 원칙은 다 맡겨야 되는데, 살아야 되니까 아홉은 네가 먹어라! 하나만 나한테 바치면서 내 것을 가지고 빌려 가지고 먹고산다! 이것을 좀 알아라!' 그 이야기입니다.
십일조라는 것은 내 것을 가지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인데, 원래 하나님의 것인데, 내가 하나님의 것으로 이 땅에 살다가 하나님의 것인 것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버는 것마다 1/10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러분 잘 알아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고, 또 돈벌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나는 그 농촌생활을 하면서 보는 것이, 아무리 수고를 해도 하늘이 허락지 않으면 한 톨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이 땅에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다 하는 줄로 생각해요. 이것 하나만 가지고 조금만 되어도 여러분 재대로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여러분 십일조를 떼어먹었을 때에, 성경은 말라기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도적놈이라!' 그랬거든요. 그러니 이게 이해 안되면, '왜, 도적놈이라 그러느냐? 왜, 도적이라 그러느냐?' 이해가 안되거든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홉은 네가 먹어라!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 중에 내 것인 것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1/10을 드려라!'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1/10을 드렸다! '내 것을 가지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드려라!' 그랬는데, 그 하나를 빼어먹었다! 그래서 뭐라 그랬느냐? '네가 도적놈이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것으로 표식을 안 했기 때문에, 도적놈이다! 여러분 도적놈 그러면 율법적으로 큰 죄 정도가 아니고, 구약에서는 사형입니다. 제가 웃기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 조금만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진지한 헌신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몸이, 여러분 가지고 있는 것이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기에 진실한 마음이 되어야 되지, 여기에 조금만 다른 마음이 있어도 축복은커녕 그것은 따귀한대 맞아야 될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뭐 '축복 받는다! 뭐 받는다!' 이 말하기에 부끄러울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말씀을 드리면서, '복 받아라!' 그 말보다도 왜? 너무 자주 말하니까! 그게 식상이 되어 가지고, '복 받아라!' 그래도 감동이 없어요. 복 받으라는 문제의 수준에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연한 것 정도가 아니고, 이건 엄청난 단어입니다. 조금 난 헌신을 진짜 한번 해보세요. 워낙 이게 안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뭔가 이게 '하나님 앞에 드린다!' 그럴 때에, 뭐 주일학교도 그렇고, 기관에도 그렇고, 그 다음에 교역자들한테 좀 '베푼다!' 이럴 때에, 너무 그 자세나 이런 것들이 마음에 안 드는 정도가 아니고, 고만 성질이 저도 좀 더럽고, 이상한 성질이 되어서 보기도 싫어요. 꼴도 보기 싫어요. 그래서 제 마음에 뭐냐하면, 교회 오면서, 개척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느냐 하면, '나는 개인을 통해서 뭘 안 받겠다!' 하는, '꼬락서니가 더러워서 못 받겠다!'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데,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럴 때에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인데, 너무 안되니까! 제게 와서 개인적으로 뭐 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을 안 했어요.
그래서 누가 와서 뭐 양복을 한 벌 해준다! '당신이 뭐하려고 나한테 양복을 해주려고 그러냐!' 이래가지고 돌려 보내버리고, 그래서 지금까지 조금 마음에 뭐냐하면, '개인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이런 기회를 다 막았다!'는 생각이 좀 들고,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왜, 그러냐? 너무 이게 안되어요. 내가 조금만 베풀어 놓으면 뭐같이 그냥 뻐기고, 모르겠어요. 본인들은 안 그런데 내가 눈이 이상해 가지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진실로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에,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조금만 해보세요. 여러분 주의 종들에게 정말 한다! 조금만 진실하게 해보세요.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러느냐? 전도한다! 정말 조금만 해보세요. '전도하면 복 받는다!' 그 말이 아닙니다. 조금만 해 보세요.
그 다음에 성경이 말씀한 것처럼, 주의 종들에게 '보호자가 된다!' 혹은 교회에 '식주인이 된다!' 조금만 진실하게 해 보세요. 이게 왜 그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어떤 면에서 욕이 나올 정도입니다. 뭐 '그냥 꼴랑 해놓고...' 진실하게 조금만 하시면 이것은 축복 받는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것은 뭐 엄청나게... 그래서 나는 교회에 '주여, 우리교회에 재벌이 나게 해 주옵소서! 네 심보를 고치고 말해라!' 하나님 앞에 조금만 하면 재벌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못 주십니까? 너무 우리가 이런 사실들을 우리가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하나님께 뭘 낼 때, 막 내가 뭘 내는 것처럼!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 겸손하게 감사함으로 드릴뿐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세금은 잘 내면서 하나님의 것은 다 떼어먹고 앉아 가지고, 이게 문제라! 진짜 이런 믿음이 전혀 안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맺으면서 여러분 정말 말씀드립니다. 이제 뭐 거창하게 할 것이 없어요. 우리 마음에 한 주간 '조금만 하나님 앞에 진실해 보자! 조금만 하나님 앞에 믿음가지고 살아가 보자! 조금만 하나님 앞에 정말 생명을 근거로 해가기고, 참 생명을 바탕으로 해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사실적인 헌신을 조금만 해보세요.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 땅을 복음화 하기를 원합니다. 복음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바울을 하나님이 유럽에 보냈을 때에 가난뱅이로 안 보냈습니다. 브리스가 부부가 세계 복음화 위해서 바울을 계속해서 후원했을 때에, '재벌이라!' 그랬습니다. 그냥 안 보냈습니다. 여러분 세계 복음화에 위해서 이 땅에 하나님이 모든 필요를 채우시기를 약속하시고 보내셨습니다. 믿음 조금만 회복하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그리고 교회를 짓는다 할 때에 저 교회 짓는 문제에 있어서 여러분 조금만 하나님 앞에 진실해 보세요. 정말 세계를 살릴 교회를 짖는다! 여기에 여러분 조금만 마음 문 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진실하게 될 때에 주신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축복하신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루실 것입니다! 거창하게 하지말고 오늘 조금만 진실해 보자!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유대인들은 이미 100년 전부터 로마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애국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시험했는데, 하수인들을 시켜서 예수님을 높이 치켜올리며 곤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악한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을 악하다고 말씀하시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변명할 수 없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 본론 = 꼭 기억해야 할 것
1. 하나님은 다 아신다.
(1)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를 어리석다고 했는데, 더욱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면서도 외식하는 자입니다.
(2)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외식하지 마십시오.
(3)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진실하게 기도하십시오.
2. 나의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1) 예수님은 하수인들에게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게 하여 그들이 지금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2) '내가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 바로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3)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은 채로 신앙생활을 하면, 율법과 신비에 빠지게 됩니다.
(4) 영적인 눈이 열려, 이 땅에 흑암의 세력이 있어서 우리를 저주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5) 영적인 눈이 열려, 어떠한 사건과 문제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빠져나와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사건과 문제가 생기든지 먼저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십시오.
● 결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치라'는 말씀의 원어적 의미는 '--이 되게하라'로서 '원래의 것으로 돌려드리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의 근본 소유주이신 하나님께 나의 모든 삶을 기쁘게 되돌려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각자가 가진 모든 몸이나 재물이나 자녀를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심정으로 십일조를 하십시오. 이러한 믿음으로 진실한 헌신을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 기도제목
◎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서도록
◎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헌신하도록
(마 22: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마 22: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마 22:18)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마 22:19)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마 22: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마 22:21)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 22:22)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본문 말씀에는 아주 고차원 적인 어떤 시험에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제목을 오늘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라 했습니다. 사실은 제일 어려운 시험이 웃으면서 다가오는 시험, 또 뭔가 좋은 것으로서 다가오는 시험, 뒤에는 더 무섭고 또 죽음의 숨겨져 있는데도 웃고 좋은 것으로 다가오는 시험!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제일 무서운 시험이 아예 뿔을 달고 다가오는 사단의 역사가 아니고, 천사로 접근하는 사단의 역사가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께 나온 헤롯 당과 바리새파들의 합당입니다. 말하자면 둘이 협조해 가지고 오랜동안 의논하고 논의해서 나온 아주 악날한 시험이 되겠죠. 그러면서 무슨 시험을 하느냐 하면, 본문 말씀대로 칭찬을 장황하게 해 놓습니다. 16절 말씀에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맞는 말인데도 아첨을 하고 있는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외식하는 말입니다.
바리새파 혹은 헤롯 당원들이 합작을 해서, 본인들은 나서지 아니하고 하수인들, 일꾼들을 시켜서 이렇게 예수님을 아주 치켜세우면서 죽이려고 하는 이런 어떤 그 내포된 시험입니다. 그래서 이 시험에 배경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악하다!' 그랬습니다. '악하다! 외식하는 자다!' 그렇게 표현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내용은 사실은 유대인들이 이 일이 있기 100년 전에 벌써 로마에 속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속국이 되어 있으면서 로마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이런 때에, 바리새인들이 속국이 되어있는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해 가지고 시험을 하는데, 우리가 일제치하에 있었던 것처럼, 일제치하에는 일본에 세금 안내고, 일본에 뭘 내라고 그러면 안내고 숨기고 이런 것을 애국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노예근성 그럴 때는 바로 이런 문제거든요.
우리나라가 지금도 나라 살림에서 어려운 것이 뭐냐하면, 나라에 내려고 그러면 될 수 있으면 안 내려고 하는 것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노예근성이라 그럽니다. 제가 미국에 가 보면서 느낀 것은 뭐냐하면, 그 사람들은 세금 많이 내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거든요. 기쁨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세금 내는 것을 굉장히 수치로 알고 있어요. 그냥 세금을 될 수 있으면 안 내고, 떼어먹으려고 그러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도적놈이라 그러죠. 그런데 그것을 기쁘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아마 일제치하에 어떤 노예근성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많이 내고, 국가가 되도록 많이 밀고, 그 다음에 또 내가 노후에 내가 또 보장을 받고, 이런 떳떳한 과정이 아니고, 이런 것이 바로 그런 문제죠.
그런데 이런 어떤 배경이 되어서, 어떤 유대인들이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을 수치로 알고 세금 안 내는 것을, 그렇게 뭔가 애국하는 것으로 알고 보는 이런 때입니다. 이런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리를 그렇게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세리가 내는 헌금도 안 받았어요. 교회에서도 유대교에서는 '세리가 내는 헌금을 안 받았다!' 성경에 그랬어요. 성경에 보면, '세리와 창기의 헌금을 안 받았다!' 그랬거든요. 왜냐하면 세금을 받아 가지고는 로마에 갖다 바친다고 그런 어떤 배경입니다. 이런 때에 세금을 내는 것이 가합니까? 불가합니까? 이렇게 물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했느냐 하면, '그러면 너희가 갖고 있는 돈이 뭐냐? 가져오너라!' 말하자면, '세 돈이 뭐냐?' 그랬습니다. 세금을 내는 돈! 그때 그 세금을 낼 때에 로마화폐로 세금을 냈습니다. 그래서 세금을 내는 돈이 데나리온인데 그 데나리온을 가지고 왔습니다. 데나리온이라는 것은 로마화폐의 동전으로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한 데나리온이 하루 노동자의 품삯입니다. 가치로 말해서는 우리나라 돈으로 한 5만원 정도입니다. 요즘 많이 받는 사람은 7만원, 또 적게 받는 사람은 3만원 받는다고 그러는데 대략 한 5만원 정도, 그러면 노동자 품삯이니까!
그래서 이 데나리온을 가지고 오니까, 그때 그 데나리온의 새겨져 있는 상이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상이나 이런 게 있는데 거기에는 가이사입니다. '이 화상이, 그림이 누구냐?' '가이사입니다!' 그러니까! '글이 누구 글이냐?' '로마 글입니다!' 그럴 때에 하신 말씀이,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뭐 너무 변명할 수 없는 대답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이히 여기며 돌아갔더라! 그렇게 한 것이 오늘 본문에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뭔가 중요한 몇 가지를 잡고 기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뭐냐하면, '하나님은 다 아신다!' 하는 말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이것만 믿고, 이것만 확인이 되어도 우리 신앙생활이 바로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로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꾸 사기 치려고 그러고, 외식하려고 그러고, 또 거짓말하려고 그러고, 그러니까 성경에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 더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있다! 그러면서도 거짓말하는 자!' 그렇게 보면 어떤 면에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도 참 믿음의 어떤 근본을 못 가지게 되면 진짜 어리석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악하고 악한 자가 되는 겁니다.
우리 18절 말씀에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시험하는 것을, 우리 주님께 나와서 시험하는 것을 우리 예수님께서 다 아셨습니다. 모르실 이가 없잖아요! 다 아시고, 그리고 그 심보도 알고, 배경도 알고, 그들이 뭘 의도하는지도 다 아십니다. 그리고 와서 웃으면서 살랑거릴 때에, '외식하는 자들아, 악한 자들아!' 어떤 면에서 차라리 막 다가와 가지고 성내면서 덤벼드는 것보다도, 이것은 슥 자기들의 정체를 숨기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악하고 더 악날하죠. 여러분들이 먼저 이 점을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나의 형편도 아시고, 나의 문제도 아시고, 나의 모든 것 다 아십니다. 내 하나님은 잘 안 믿는 것도 아시고, 외식하는 것도 아시고, 거짓말하는 것도 아시고, 그런 것도 아십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나오시면서 제일 뭘 느끼느냐 하면, 정말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고 있느냐?'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응답이 안 된다! 기도가 왜 안 되느냐? 할 것 없어요. 진실하지 못해서 그래요. 진실하지 못한 배경이 하나님이 믿어지지 못하니까! 진실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오셨다! 나오셔 가지고, '하나님!' 그럴 때에, '하나님!' 그러니까, 아버지 부를 때에 아버지를 나의 대상으로 확실히 안 믿어지는데 뭐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기도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구하는 것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게 '안 된다!' 그러면 전부 여러분 가식 아닙니까?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것조차도 전부 가식입니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 그 이름을 부를 때에, 정말 하나님 나의 모든 것, 나의 형편, 나의 것, 다 아시는 어떤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죽고 살릴 수 있는 하나님! 내 양심도 아시는 하나님! 다 아십니다. 여기에 조금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도, 하나님 앞에 응답 '받는다, 안 받는다!' 이것은 그 다음에 문제로 올릴 필요조차 없다! 그렇게 봅니다.
교회 와서 내가 하나님 앞에 헌신한다! 내가 하나님 앞에 뭘 한다! 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바로 하느냐? 거짓말하느냐? 양심으로 하느냐? 진짜 전심으로 하느냐? 아니면 가식으로 하느냐? 위선이냐? 외식하는 자냐? 다 아십니다. 그러면 다 알 것 아닙니까! 여러분 뭐 어디 이런 저런 할 이야기가 없어요. 중심으로 조금만 하나님 앞에 섰다! 하나님이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역사가 나오죠.
그래서 흔히 그럽니다. 제일 답답한 것이 상담을 하거나 뭘 하다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참, 다른 사람은 내 이런 고통을 모릅니다!' 그러더라 구요. '나만 이런 것을 받는다!'고 이래요. 그래서 그걸 들어보면 다른 사람도 다 그런 것을 받아요. 다 그런 것을 겪고 그렇게 삽니다. 그런데 '나만 맨 날 이렇냐?' 그게 참 어렵거든요. 그때 보면 얼굴이 그렇게 고독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어요 자기 혼자 세상 짐을 다 지고있는 사람처럼... 우리가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나만 그럴 때에 한가지 하나님도 다 아십니다. 여러분 '어렵다! 힘들다!' 왜 모릅니까? 다 아십니다. 그러면 문제는 달라져 버려요.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뭐 '오해를 받는다, 뭘 받는다!' 오해받고 할 것도 없어요. '하나님은 다 아신다!' 이렇게 되면, 신앙생활이 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기도가 달라져 버려요.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하나님은 내 마음도 아시고, 내 중심도 아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지금 입으로 변명하려고 하지 마시고, 입으로 뭘 말하려고 그러지 마시고, 이 자리에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나와 어떤 관계 속에, 하나님이 나를 어느 정도로 아시고, 내가 하나님을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느냐? 이것만 이해가 되면 이해되는 만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안 하신다는 것은, 나는 그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왜? 자꾸 '축복한다!'고 그러니까, 이건 뭔가 늘 무심히 들려지는 것 같아요. '축복 받아라!' 늘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이 '그냥 말하네...' 이 말이 엄청난 말인데도, 너무 무심히 들어요. 어쩔 때는 이 메시지를 하다가도 워낙 보통으로 알아들으니까,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래요.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말씀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지금 어느 자리에 섰느냐? 나의 통치자가 누가 되어 있느냐? 이것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될 필요가 있죠. '데나리온 하나를 가지고 오라!'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확인시킨 것이 뭐냐하면, '너희가 지금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느냐?' 그걸 확인시켜 준겁니다. 데나리온을 갖고 와서, '이 글과 화상이 누구의 것이냐?'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러면 '가이사에게 바치라!' 그 말이 뭐냐? '너희들은 지금 가이사의 다스림과 가이사의 노예 속에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 당연히 뭡니까? '그대로 순종해 나가라!' 저는 그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이 진리가 안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 어떤 것을 보느냐하면, 국가 시책에 제일 많이 비판하고, '산업선교!' 그래서 산업현장에서 많이 비판하고, 이런 분들이 옛날에 기독교인들이 참 많았거든요. 거의 그런데 성경에 원리는 뭐냐하면,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노예로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 노예로 '다스리는 자에게 순종하라!' 그 로마서에 보면, '정치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뭐냐하면요. 기독교인들이 어떤 산업선교라는 어떤 좋은 선교의 모임으로 통해서 뭐냐하면, 그 기업에 말하자면, 그 주인에게 어떤 항거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그것은 성경에 진짜 원리는 아닙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자들에게 협조하고 거치는 것이 되지 말라!' 이것이 성경에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뭔가 될 수 있으면, 국가에서 뭘 하려고 하는 것은 안 하려고 그러고, 뭔가 국가에서 하는 일에 비 협조가 된다! 그것은 성경적인 원리가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이걸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어떤 자리에 먼저 서야됩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이 말씀을 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가이사의 통치를 받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응당히 가이사의 통치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죠. 여러분과 제가 오늘 누구의 통치를 받느냐? 이 눈이 열리는 것을 성경은, '영적인 눈이 떠졌다!' 그럽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거의 많은 경우 이게 잘 안되었어요. 그래서 이런 눈이 안 열리고 신앙 생활하게 될 때에 우리가 어디에 빠지느냐 하면, 자신도 모르게 '율법에 빠진다! 신비에 빠진다!' 그런 배경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눈이 안 열리고 우리가 자녀를 교육한다! 뭔가 이렇게 가정을 다스린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도 모르게 뭐냐하면, 열심을 낼수록 다른 데로 빠집니다. 다른 데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어있는 상황에서 '뭘 한다!' 전부 다른 열매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 지난주에 말씀드렸죠.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께서는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었지 만은 결국 어떤 열매가 맺혔어요? 들 포도 열매가 맺혔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심어줬는데 종교 열매를 맺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이 전부 지금 여기에 있는 배경이거든요.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바로 이런 문제입니다.
조금 전에 미국에서 신봉준 목사님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오늘 주일날인데 목사님 건강하십니까?' 그러면서 '저는 이제 교인들의 기도 속에서 사역을 잘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이제 이야기를 하다가, '가서 지난번과 다른 어떤 문제점들이 있느냐?' 이러니까! '다른 것은 다 하시려고 애를 쓰는데, 지금까지 교회에서 메시지 듣고 갖고, 메시지 가지고 치유하고 이러니까, 그 메시지 붙들고 막 치유 받고 그 메시지대로 하려고 애를 쓰더라!' 그래요.
애를 쓰고 참 좋은데, 그런데 신 목사님 이야기가 뭐냐하면, '중요한 한가지가 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그게 뭐냐하면, 생명이 구체적으로 임해야 되는데, 이게 이제 생명을 못 받고, 구원에 대한 감격과 축복이 이해가 안되고, 쉽게 말해서 복음이 이해 안된 상황에서 말씀을 받아 가지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애를 쓰니까! 그걸 받아 가지고 실천하고, 그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하니까, 이게 뭔가 더 어려워지는 겁니다. 중요한 문제죠.
여러분 그 아이가 죽어버렸는데, 아무리 옷을 잘 입히면 뭐합니까? 아이 죽었는데 다가 귀고리하고 목걸이 해놓고 안 되는 겁니다. 문제는 뭐냐? 살려놓아야 돼요. 생명이 살아야 다 되는 겁니다. 그때는 생명이 살아버렸다! 옷 못 입어도 예쁘기만 해요. 금방 낳은 아이들은 생긴 것이 이상하잖아요. 나는 금방 낳은 아이를 보니까 진짜 이상하더라 구요. 그런데도 생명이 있는 것 때문에 그게 얼마나 귀엽습니까! 그게 생명이 나와 관계 있다는 이유 때문에 더 귀엽습니다. 여러분 뭔가 저 남의 아이들은 보면, 핏덩이 별로 예쁜 것도 없어요. 이상하게 보이죠. 그런데 그게 '내 손자다, 내 아이다!' 눈이 이상해져 버립니다. 완전히 한 껍질 덥힌 것이지.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워 질 수 없는 거잖아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죽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입혀도 소용이 없어요. 살아버려야 됩니다. 생명이 주어져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정말 이점을 좀 붙잡아야됩니다. 내가 교회 와서 신앙생활 잘 하려고 백 번, 천 번 노력해도,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 안 되었다!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점을 조금 더 말씀을 드리면, 영적 문제가 여러분 인식이 되어야 됩니다. 내가 지금 본질적으로 어디에 속해 있느냐?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이 점치고, 안 믿는 사람들이 우상에 절하고, 그건 당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어요. 안 그러면 더 못사는데, 안 믿으면... 부지런히 우상숭배하고, 부지런히 절하고, 그래야 돼요. 그래야, 그래도 뭔가 생명이 붙어있고, 그래도 뭔가 살아갈 수 있어요.
거기에서 빠져나왔다! 해방 받는 것 아닙니까! 운명과 죽음과 멸망과 저주에서 빠져나오는 것 아닙니까! 누구로 말미암아?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이것이 안된 상황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계속해서 오는 것이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과 괴로움에서부터 빠져 나올 수 없어요. 그리고 집안과 가문에서 내려오는 저주와 재앙에서부터 해방 받을 수 없습니다. 빠져 나올 수 없어요. 개인이 '예수를 믿는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실패를 한번만 혹시 했다! 그러면 이해가 되지만, 거듭 거듭 실패가 온다! 그것은 배경이 벌써 다른 겁니다. 뭔가 근본 문제를 바로 봐야 됩니다.
교회를 10년, 20년 다니면서, 아니 교회를 내가 몇 년 다녔던 간에 계속해서 고통이 밀려옵니다. 그것은 근본문제가 안된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 다녀서, 아무리 '내가 잘하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열심히 새벽기도 안 해서 그런가 보다!' 새벽기도 나오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열심히 기도하지 말라는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근본문제가 해결이 안되어 있는데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 죽는다! 이겁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말이 간단한 말이지만, 이게 엄청난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망하고 싶어서 망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내가 재앙 속에 있고 싶어서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영적인 문제가 보여진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나를 다스리는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겁니다. '내가 사단의 손아귀에서부터 헤어나지 못했다!' 그 이야기가 사단의 다스림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게 우리 원래의 자리에 있었던 부분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 여기에 있는 한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이게 해결이 되는 게 아닙니다.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왜, 기도응답이 없느냐? 그래가지고 막 밤새도록 기도하고, 밤새도록 기도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근본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는데 기도할수록 더 고생입니다. 왜, 응답이 없어요. 응답하고도 남죠. 조금만 진실해 보세요. 이 기본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것이 해결이 안되면 안될수록 뭐냐하면, 점점 더 하는 것만큼 더 어려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더 고통스럽고 더 괴롭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럽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이 배경이, 그리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이 순간 얼마나 위대한 역사가 나오느냐? 간단하거든요. 실패하고, 망하고, 저주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길이, 그 배경이 사단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단의 세력이기 때문에, 막 욕한다고 사단이 물러가지 않거든요. 욕한다고 물러갈 것 같으면 연구하면서 욕하겠어요. 그런다고 물러가지 않거든요. 눈을 부릅뜬다고 날 겁내서 물러갈 수 있느냐? 그러면 눈을 이상하게 떠 가지고 별 짓을 다 해보겠습니다. 그런다고 물러가는 게 아닙니다. 돈 때문에 물러간다! 아닙니다. 돈 때문에 더 덤벼들지 물러가는 게 아닙니다. 명예나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서 성경에서 여러분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여기에 '귀중성과 가치에 눈이 열렸다!' 하는 것이, 여기에 눈이 열렸다! 그겁니다. 왜? 사단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이외에 물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어렵다, 힘들다, 문제 생겼다!' '돈 벌면 해결된다! 뭘 하면 해결된다!' 아닙니다. 여러분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실적인 믿음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기본적인 이것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 문제인데도, 이게 별로 쉬운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 성경에 보면 바울이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의 영광을 위해서하라!' 굉장히 어려운 것처럼 생각되거든요. 바울처럼 하려면 어려운데... 왜? '주안에서, 주안에서, 주안에서...' 그럴 때에 굉장히 어려운 것처럼 생각이 되거든요. 그런데 그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만 해결되어 버리면 그 다음에 딱 여러분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진심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이 자녀가 됐다고 하는 순간부터 뭐가 안 오느냐 하면, 사건과 일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뭐가 나오느냐? '주여!'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여!' 나옵니다. 그게 근본적으로 이것이 확실히 안되어 있으면, 사건과 일이나 문제가 나올 때마다, '주여!' 그러기 전에 내 머리로 돌아가 버립니다. 내 수단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일이 생기면, 먼저 내 머리가 팽팽, 팽팽 돌아가잖아요. 나도 모르게 내 머리가 돌아가는 데로 합니다. 한참 하다가 '아이고, 기도 안 했구나! 한번 물어보고 하자!' 이렇게 되어도 벌써 늦어요. 그게 벌써 나를 잡고 있는 실제적인 지배자는 뭡니까? 다른 배경이라 그 이야기입니다. 그게 안 되어있다! 그럴 때는 아무리 일을 잘 처리 해놓고, 뭔가 되는 것처럼 해도, 열매는 다른 열매가 나옵니다. 여러분 좀 등신 같고, 잘 안 되는 것 같고, 일이 안 되는 것 같아도, 문제나 사건과 일이 생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여!' 주님 바라보고, 그렇게 되면 일이 안 되는 것 같아도, 여러분 분명히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 열매는 엄청난 축복과 은혜로 나옵니다.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했습니다 만은, 여러분 자동차에 앉을 때에, '하나님, 사고 안 나고, 뭐 안 나고...'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없어요. 왜? 그런다고 사고 안 나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 기도한다고 해서 사고 안 나고, 내가 뭔가 기도한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어떤 것이 안나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자동차에 딱 앉았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성령으로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그런 중에도 나도 모르게 하다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사고가 날수도 있고, 그러나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반드시 열매는 축복으로 맺어진다! 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인도 받게 될 때에, 그때부터 뭐냐? 저주와 재앙이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 되어있을 때는 잘 되는 것 같아도 나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저주와 재앙에 주인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무런 일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성공했다!' 그렇게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또 이 자리에 서 있으면서, '나는 실패했다!' 그렇게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미안한 말인지 모르겠고, 건방진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은, 나는 '성공했다!'고 싶은 생각이 더 있지, '실패했다!'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러면 그 동안에 내가 살아오면서 '좋은 일만 생겼다!' 아니거든요. 여러 가지 상상 못할 어려움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뭐 혼자만 들어 누워 있어도 그런데, 둘이 교통사고 나가지고, 이등실에 가 가지고 이렇게 서로 마주보고... 친구 목사님들이 오셔서, '여긴 뭐 새삼스럽게 신혼 여행 하냐?' 그러면서, 그것도 2월 11일인가, 완전히 죽었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오면서 뭘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으냐 하면, 하나님이 모든 사건과 일을 통해서 축복으로 인도해 주셨지, 그게 고통과 괴로움과 저주로 끝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 배경에는 나는 뭘 말씀하고 싶으냐 하면, 잘하든, 못하든, 일단 앉든, 서든, 가든, 시작하든 일이나 사건들 생길 때마다 먼저 주님을 바라봤습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을 이루실수 있다!' 이 믿음 하나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이 암아 하나님의 인도 받으면서 살았다!' 그것이 내가 '생각이나 마음이나 어떤 큰 일을 했다!' 그런 게 아니고, '내 생각과 마음속에 나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이, 나의 삶 속에서 적은 일에도 늘 확인하며 살았다!' 맞습니다! 열매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지금 분명히 성경에 말씀했잖아요. '나를 실제로 다스리시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나를 저주와 재앙으로 이끌어 가는 사단의 배경이 아니다 하나님이시다!' 그 적은 고백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적은 고백이 여러분과 저를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책임지고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뭡니까? '자긍심, 자부심 가져라!'는 말이 그것이거든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게 중요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말씀했죠. 받아합시다. "나는 극상품 포도나무다!" 가짜가 아닙니다. 들 포도가 아닙니다. 극상품 포도나무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귀히 여기고 하나님께서 울타리를 쳐 주셨잖아요. 교회를 주셨고, 교리를 주셨고, 그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집도 주셨고, 그것도 울타리예요.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자식들도 주셨고, 여러 가지 부도 주셨고, 여러 가지 먹고 마실 수 있는 물질도 주셨고, 그것도 다 울타리입니다. 그래가지고 극상품 포도 나무열매를 맺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나가십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래서 우리가 순간, 순간 이 고백이, 사건과 문제가 올 때마다 다른 이름은 없어요 이 땅에 오직 천하인간에 한가지 이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만 축복과 은혜로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언약에 서 있는 동안에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그렇게 인도해 나가실 것입니다. 나가는 동안에 하나님은 훈련도 시키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영적인 문제, 내가 소속되어 있는 문제!' 이것을 빨리 인정하고 시인되어야 됩니다. 정신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하면, 자기를 시인하지 않아요. 이것만 시인되면 해결되어요. 뭐 반 이상 해결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말씀하신 것처럼 딱 시험하러 왔을 때에, '시험하러 왔구나!' 이걸 아는 것만 해도 벌서 반 이상 해결입니다. 여러분 정신적인 문제는, '아, 이게 흑암이 나한테 왔구나! 내가 지금 소속이 이렇게 되었구나!' 이것만 알아도 벌써 반 이상 해결입니다. 이걸 모르면 아무리 애를 쓰고, 아무리 메시지를 줘도 안 들어가요. 이것만 해결되면...
그래서 '흑암에 세력이구나!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 이 죄와 사망의 법이 그 법이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구나!' 이것만 알면 자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요구가 됩니다. 그리고 '참, 이 이름뿐이구나!' 이해가 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의 적은 문제나 적은 사건 속에서도 나도 모르게, '아, 예수 그리스도!' 그게 간단하게 '축복이다!' 그게 아닙니다. 엄청난 여러분 생애와 문제를 바꾸어 버리는 축복의 역사입니다. 거기에 모든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되고, 이것이 확인되는 만큼 그 다음에 다 풀려 나간다니까요.
이런 배경 속에서 교회에 앉아서 기도할수록, 이런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실천할수록, 이런 배경 속에서 주의 말씀 붙잡고 하나님 앞에 나갈수록 힘이 되는 겁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시나니!' 그런데 이것이 안되거든, 안 되는 그런 문제라면, 이 말씀 듣는 동안에 이것이 안되었다 그러면, 말씀이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고, 이 말씀 가지고 한 주간 기도도 안 될 겁니다. 근본 이 문제가 해결되면, '내가 말씀가지고 붙잡고 기도해야지!' 이런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저절로 말씀이 붙잡혀 져서 기도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뭐가 나오느냐? 기도할 때마다 힘이 나오게 되는, 사실적인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뭐라 그랬습니까? '바치라!' 그랬거든요. 바치라 그랬는데, 바치라는 그런 말을 조금 이렇게 유의해서 보면, 바치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이런 것이 되고, 영어로는 'Give' 한다 아니면, '드려라!' 이렇게 되는데, 원래 그 원문에 의미는 '∼되게 하라' 이런 뜻이 되는데, '돌려 드려라!' 이런 의미가 강합니다. 그래서 그 좀 빌려온 것이다! 그러면 랜트했다는 말과 조금 달라요. '원래의 것으로 돌려드려라!' 그런 배경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럴 때에, 여러분과 저는 모든 것이 근본소유주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사실은 앞에 부분을 빼어 버리고, 우리가 시간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런 배경이 우리의 신앙생활이거든요. 이것만 이해가 된다 그러면 여러분 재물 관이라든가, 그 다음에 자식 관이라든가, 모든 삶이 전부 달라져 버립니다. 한번 물어봅시다. 여러분이 몸이 여러분의 것입니까? 누구의 것입니까? 왜 그러면 지 마음대로 하려고 그럽니까? 이 자체가 안되어 있거든요. 여러분이 받은 모든 것들이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것을 너무 알았기 때문에, 성전을 짓기 위해서 많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놓고는 뭐라 그랬습니까?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또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릴 수 있게 하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여기에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것인데도, 하나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쓰면서도 뭐라고 생각하는 줄 압니까? 헌금한다 그러면 '내 것을 가지고 빼앗긴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가지고 될 수 있으면 안 빼앗기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가지고 헌금하려고 그러면 만원 짜리 나오면 쑥 넣어버리고, 천원 짜리 내고... 될 수 있으면 이게 세금 내는 속국이 되어있는 유대인들이 로마에 세금 내는 기분이에요. 노예근성이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 '주인으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 이게 없어요. 지 몸도 지 마음대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데 사용한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데, 그게 안되고 있어요. 한번 물어봅시다. 자식들이 여러분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진짜로? 맞습니까! 그런데 왜 지 마음대로 합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잠시동안 여러분께 맡겨서 복음으로 잘 양육시키라고 맡겨 놓았는데, 지 마음대로 하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도 돌아간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갈 때는 빈손으로 갑니다. 그런데 빈손으로 가는 이유가 뭐냐하면, 그건 내 것이 아닙니다. 벌었지만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그래서 이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중요한 약속을 했어요. 워낙에 이것을 모르고 사니까, 이것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벌은 것 다 좋다! 아홉은 네가 먹어라! 하나만 나한테 맡겨라! 원칙은 다 맡겨야 되는데, 살아야 되니까 아홉은 네가 먹어라! 하나만 나한테 바치면서 내 것을 가지고 빌려 가지고 먹고산다! 이것을 좀 알아라!' 그 이야기입니다.
십일조라는 것은 내 것을 가지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인데, 원래 하나님의 것인데, 내가 하나님의 것으로 이 땅에 살다가 하나님의 것인 것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버는 것마다 1/10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러분 잘 알아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고, 또 돈벌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나는 그 농촌생활을 하면서 보는 것이, 아무리 수고를 해도 하늘이 허락지 않으면 한 톨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이 땅에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다 하는 줄로 생각해요. 이것 하나만 가지고 조금만 되어도 여러분 재대로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여러분 십일조를 떼어먹었을 때에, 성경은 말라기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도적놈이라!' 그랬거든요. 그러니 이게 이해 안되면, '왜, 도적놈이라 그러느냐? 왜, 도적이라 그러느냐?' 이해가 안되거든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홉은 네가 먹어라!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 중에 내 것인 것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1/10을 드려라!'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1/10을 드렸다! '내 것을 가지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드려라!' 그랬는데, 그 하나를 빼어먹었다! 그래서 뭐라 그랬느냐? '네가 도적놈이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것으로 표식을 안 했기 때문에, 도적놈이다! 여러분 도적놈 그러면 율법적으로 큰 죄 정도가 아니고, 구약에서는 사형입니다. 제가 웃기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 조금만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진지한 헌신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몸이, 여러분 가지고 있는 것이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기에 진실한 마음이 되어야 되지, 여기에 조금만 다른 마음이 있어도 축복은커녕 그것은 따귀한대 맞아야 될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뭐 '축복 받는다! 뭐 받는다!' 이 말하기에 부끄러울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말씀을 드리면서, '복 받아라!' 그 말보다도 왜? 너무 자주 말하니까! 그게 식상이 되어 가지고, '복 받아라!' 그래도 감동이 없어요. 복 받으라는 문제의 수준에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연한 것 정도가 아니고, 이건 엄청난 단어입니다. 조금 난 헌신을 진짜 한번 해보세요. 워낙 이게 안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뭔가 이게 '하나님 앞에 드린다!' 그럴 때에, 뭐 주일학교도 그렇고, 기관에도 그렇고, 그 다음에 교역자들한테 좀 '베푼다!' 이럴 때에, 너무 그 자세나 이런 것들이 마음에 안 드는 정도가 아니고, 고만 성질이 저도 좀 더럽고, 이상한 성질이 되어서 보기도 싫어요. 꼴도 보기 싫어요. 그래서 제 마음에 뭐냐하면, 교회 오면서, 개척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느냐 하면, '나는 개인을 통해서 뭘 안 받겠다!' 하는, '꼬락서니가 더러워서 못 받겠다!'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데,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럴 때에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인데, 너무 안되니까! 제게 와서 개인적으로 뭐 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을 안 했어요.
그래서 누가 와서 뭐 양복을 한 벌 해준다! '당신이 뭐하려고 나한테 양복을 해주려고 그러냐!' 이래가지고 돌려 보내버리고, 그래서 지금까지 조금 마음에 뭐냐하면, '개인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이런 기회를 다 막았다!'는 생각이 좀 들고,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왜, 그러냐? 너무 이게 안되어요. 내가 조금만 베풀어 놓으면 뭐같이 그냥 뻐기고, 모르겠어요. 본인들은 안 그런데 내가 눈이 이상해 가지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진실로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에,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조금만 해보세요. 여러분 주의 종들에게 정말 한다! 조금만 진실하게 해보세요.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러느냐? 전도한다! 정말 조금만 해보세요. '전도하면 복 받는다!' 그 말이 아닙니다. 조금만 해 보세요.
그 다음에 성경이 말씀한 것처럼, 주의 종들에게 '보호자가 된다!' 혹은 교회에 '식주인이 된다!' 조금만 진실하게 해 보세요. 이게 왜 그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어떤 면에서 욕이 나올 정도입니다. 뭐 '그냥 꼴랑 해놓고...' 진실하게 조금만 하시면 이것은 축복 받는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것은 뭐 엄청나게... 그래서 나는 교회에 '주여, 우리교회에 재벌이 나게 해 주옵소서! 네 심보를 고치고 말해라!' 하나님 앞에 조금만 하면 재벌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못 주십니까? 너무 우리가 이런 사실들을 우리가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하나님께 뭘 낼 때, 막 내가 뭘 내는 것처럼!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 겸손하게 감사함으로 드릴뿐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세금은 잘 내면서 하나님의 것은 다 떼어먹고 앉아 가지고, 이게 문제라! 진짜 이런 믿음이 전혀 안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맺으면서 여러분 정말 말씀드립니다. 이제 뭐 거창하게 할 것이 없어요. 우리 마음에 한 주간 '조금만 하나님 앞에 진실해 보자! 조금만 하나님 앞에 믿음가지고 살아가 보자! 조금만 하나님 앞에 정말 생명을 근거로 해가기고, 참 생명을 바탕으로 해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사실적인 헌신을 조금만 해보세요.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 땅을 복음화 하기를 원합니다. 복음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바울을 하나님이 유럽에 보냈을 때에 가난뱅이로 안 보냈습니다. 브리스가 부부가 세계 복음화 위해서 바울을 계속해서 후원했을 때에, '재벌이라!' 그랬습니다. 그냥 안 보냈습니다. 여러분 세계 복음화에 위해서 이 땅에 하나님이 모든 필요를 채우시기를 약속하시고 보내셨습니다. 믿음 조금만 회복하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그리고 교회를 짓는다 할 때에 저 교회 짓는 문제에 있어서 여러분 조금만 하나님 앞에 진실해 보세요. 정말 세계를 살릴 교회를 짖는다! 여기에 여러분 조금만 마음 문 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진실하게 될 때에 주신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축복하신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루실 것입니다! 거창하게 하지말고 오늘 조금만 진실해 보자!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유대인들은 이미 100년 전부터 로마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애국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시험했는데, 하수인들을 시켜서 예수님을 높이 치켜올리며 곤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악한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을 악하다고 말씀하시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변명할 수 없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 본론 = 꼭 기억해야 할 것
1. 하나님은 다 아신다.
(1)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를 어리석다고 했는데, 더욱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면서도 외식하는 자입니다.
(2)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외식하지 마십시오.
(3)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진실하게 기도하십시오.
2. 나의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1) 예수님은 하수인들에게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게 하여 그들이 지금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2) '내가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 바로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3)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은 채로 신앙생활을 하면, 율법과 신비에 빠지게 됩니다.
(4) 영적인 눈이 열려, 이 땅에 흑암의 세력이 있어서 우리를 저주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5) 영적인 눈이 열려, 어떠한 사건과 문제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빠져나와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사건과 문제가 생기든지 먼저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십시오.
● 결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치라'는 말씀의 원어적 의미는 '--이 되게하라'로서 '원래의 것으로 돌려드리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의 근본 소유주이신 하나님께 나의 모든 삶을 기쁘게 되돌려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각자가 가진 모든 몸이나 재물이나 자녀를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심정으로 십일조를 하십시오. 이러한 믿음으로 진실한 헌신을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 기도제목
◎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서도록
◎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헌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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