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은자의 삶(1)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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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오늘 13절부터 15절까지 우리 한 목소리로 합독을 합시다. 13절부터 다같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아멘. 오늘 여기에 말씀해서 13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안 믿는 사람? 믿는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뭐라 그랬습니까? 영생을 좀 확인해라! 확신해라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구원받은 자의 삶이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구원 안 받은 자는 이게 안 되죠. 삶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말할 것도 없고 말할 이유도 없어요. "구원받은 자의 삶" 이라 이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여러분들이 거의 고민하고 있는 것이 뭐냐? 삶이 안 된다. 이겁니다. 삶이! 뭐 말하자면 신앙 삶이 안 된다. 신앙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안 된다! 그래요. 그게 뭐냐하면 종교의 배경입니다. 내 기준으로 해서 신앙의 삶은 착해야 된다. 거짓말 안 해야 된다. 뭐 이렇게 어떤 기준을 세워 가지고 자꾸 살아간다 그런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그 저번 주 금요일 날 꼭 뭔가 말하고 싶은 분들은, 제게 개인적으로 찾아오고 그렇게 안 되니까? 'E-Mail로 좀 들어와서 상담을 해도 좋겠다!' 이랬더니만 현재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E-Mail을 보냈어요. 보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신앙생활이 안 됩니다. 기도가 안 된다. 그리고 기도도 전에는 그냥 막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제 달라고 기도하려고 하니까 이 복음이 아니다 싶은, 이런 생각도 들고 또 그걸 안 하려고 하니까 할 것도 없고 또 막상 필요한 것이 이건데 그러니 목사님 이걸 기도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묻더라 구요. 이 갈등이 여러분들 아마 거의 같은 갈등입니다. 도대체...
그러니까 결국 뭐냐하면, 신앙의 삶이 기도가 된다 안 된다 여기에 집결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 뭐냐하면, 한 주간 동안도 여러분이 딱 들어오면 뭘 생각하느냐하면 삶이 안 되니까? 삶이 내 주관으로 해서 내 기준으로 해서 삶을 살고 있으니까? 뭐에 빠지느냐 하면, 그게 우리가 종교배경이거든요. 그러니까 한 주간에 잘 살았다, 못 살았다. 내 주관에 내 기준에 이걸 생각하고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좀 잘 살았다. 그러면 말하자면 예를 들어서 욕도 좀 안 하고 거짓말도 안 하고 같이 좀 친구들하고 모여서 술도 안 먹고 그렇게 뭐 꽁생원 같이 살았다!
그러면 주여 그래도 지난 한 주간 이 정도로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럴지 모르지만 거의 그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뭐가 되느냐 하면, 자기 기준에 들어와서 그렇게 안 살았으니까! 문만 딱 열고 들어오면, 교회 들어오면 전부 죄인이라! '주여 죄인이 왔습니다.' 이러고 그러고는 뭐 눈물도 안 나는데도 반 슬픈 노조로 해 가지고 기도가 나옵니다. 회개 기도가 나와요. 이게 지금까지 우리가 해 왔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문제만 터지게 되면, 주여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그래서 두들겨 팹니까? 이래가지고 또 회개하려고 잘못한 것 이미 벌써 고생은 하고 있는데도 잘못한 것을 찾아 가지고 또 회개하려고 하니까! 이건 뭐 이중 삼중 고생이에요. 참 어렵다 그러니까 전체교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느냐 하면, 늘 눌린 생활이에요. 늘 눌린 생활이에요. 늘 죄인입니다. 늘 내가 잘못 살았습니다. 강단에서 기도하는 것도 전부 그런 패턴이거든요. 과연 이게 하나님의 사람들에 삶에 모습인가? 성경은 그게 아니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 한마디로 잠깐 말씀을 드리면, 제가 희락이를 보면서 전에는 뭐 옛날에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는 어떻게 키웠는지. 뭐 정신 없이 키웠고 또 요즘은 전보다 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많거든요. 전에는 뭐 내가 또 살아도 교회 일에 너무 바쁘니까, 뛰어 다니는 것이지만 요즘은 그렇게 못하니까? 뭔가 조용히 앉아서 생각을 좀 많이 하게 되는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전에는 뭐 그래도 설교 준비하려고 하면 컴퓨터에 앉아 가지고 뭔가 좀 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것도 못하니까 거의 생각으로 설교를 준비합니다. 요즘 이제 한 얼마 몇 주간 정도는 또 앉아 가지고 대지라도 그래도 컴퓨터에 치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할 시간이 참 많아요.
그러니 제 손자를 가만히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한 4주 동안 감기를 달아놓고 살더라 구요. 이게 어느 정도로 하느냐 하면요. 감기와 함께 오는 눈병도 또 있다 그래요. 눈이 벌겋게 해 가지고 그 할머니까지 전염시키고 이게 안 하는 게 없이 다 하는 겁니다. 그럴 때는 뭐 눈만 뜨면 짜증을 내요. 하여튼 짜증내고 밥도 안 먹고 신경질 부리고 막 고함을 지르고 그때는 내 손자를 보면서 뭔 생각이 드느냐 하면, '야, 저것 참 괴롭네' 그래서 속으로 이제 서울로 보낼 그런 계획이라서 '빨리 보내버려야 되겠다' 그랬는데 이게 이제 한 3, 4일 전부터 그 병이 다 떠나고 나니까 눈만 뜨면 웃네! 그리고 되도 않는 노래를 하고 뭐 고함을 질러가며 또 몸을 흔들어 가면서하고...
그래서 내 마음에 그것을 보는 내 자신이 보는 것만 해도 건강한 생명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만 해도 나는 즐거워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도들의 삶이 뭐냐하면요. 중요한 것을 한가지 붙잡아야 됩니다. 오늘 여기 본문에서 여러분과 제가 뭘 한다, 안 한다. 뜻이다, 아니다. 이것은 나중이야기입니다. 먼저 뭘 확인해야 되느냐? 내 안에... 여기 보면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뭐가? 영생이 있음을 확인해야 됩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나와요. 이게 안 되면 모든 게 끝나요.
그래서 여러분 지금 현재 만약에 희락이가 딱 아침에 일어나서 막 '내가 어떻게 하면 할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살까?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살까?' 고민하고 앉았다 그러면, 그것은 정신병자예요. 그게 말이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 나이또래에 그 형편이 뭐냐? 건강하게 자라고 그저 일어나서 되든 안 되든, 틀리고 맞다 그것은 상관없어요. 노래만 부르면 돼요. 그러면 너무 기뻐요. 그 다음에 밥상 위에 올라가 가지고 찡그리고 짜증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숟가락으로 뭐 퍼 넣든 말든 뭐 몸 흔들고 노래 부르고 하면 온 가족이 웃음덩어리입니다.
여러분 내가 이 말하는 것 간단한 겁니다. 하나님의 생명 확인하고 하나님의 생명 누려버리면 다입니다. 생활자체에 이것이 여기서 생활이 나오는 것이지 뭘 할까 말까 이걸 가지고 종교라 그럽니다. 그래서 사단이 만드는 것이요.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그걸 종교로 만들었습니다. 자기를 섬기게 사단을 섬기게 하면서 하나님 복음만이 안 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도 이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1부 예배도 그랬습니다 만은 '거룩한 걱정' 이라 그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 잘 할까? 거룩을 붙여서 될 일도 아니지만, 하도 여러분 거룩하게 보니까! 그러니 이것을 잘 하는 줄 압니다. 어떻게 하면 주의 뜻대로 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 그것 생각 안 해도 돼요. 뭐,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본질상 진노의 행동이 나오는데 그게 근본적인 문제가 안 되면 이게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걱정도 다 놓으십시오. 어떻게 하면 주의 교회 위해서 잘 살까? 어차피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 나오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그게 맞지도 않아요. 문제는 내가 하나님이 생명 주셨다. 감사하다 여기에 영생 그럴 때는 뭐까지 나갑니까? 뿌리를 영원한 천국! 그게 보여져야. 그러면 기뻐하시죠.
그러면 사단의 뿌리라! 그러면 어디까지입니까? 지옥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 엄청난 겁니다. 지금 뭐 우리는 복 받았다. 그러면 잘산다, 못산다. 자꾸 연결시키고 일! '잘된다 못 된다' 에 자꾸 연결시킵니다. 아닙니다. 세상에 이 말씀이 너무 이해 안되니까!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31절까지 나사로 비유를 한 겁니다. 나사로의 비유에 사실을 말한 거죠. 가난하게 거지로 살아도 이 땅에서 제일 부자로 사는 사람보다 정말 복된 삶이 있다! 그게 뭡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영광을 가진, 영생의 생명이 있는 자다. 바로 그 이야기가 그때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참된 축복의 이 사실이 이게 눈이 열려야 돼요. 그게 뭡니까? 생명입니다. 그 자체가...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 앞에 딱 나올 때에 어차피 우리 수준은 잘 못해요. 지난 한 주간 엉망입니다. 뭐, 별소리 다 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오늘도 내가 생명을 가지고 감히 하나님 전에 나와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하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이 소리 한마디에 우리 주님 녹아 버립니다. 그러니 뭐 씩 웃으면서... 이 소리 한 마디에 이 사실 한마디에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만들어 놓고 생명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 하셨어요. 그래서 창세기에 보면요. 뭐 좋았더라, 좋았더라! 쭉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여러분과 저를 그러니까 인간을 창조하시고 난 후에 뭐라 그랬냐 하면요. 심히 좋았더라 그랬어요.
여러분 자신이 예수그리스도의 생명가지고 영생 가지고 찾아 나왔다! 하나님이 뭐라 그랬습니까? 심히 좋았더라! 그러니 주일날만 와 가지고 예배드리고 말씀 잘 듣고 그것만해도 끝입니다. 나가서 잘 사느냐? 못 사느냐? 어차피 못 생긴 사람은 이상하게 살 것이고 이상하게 생긴 그 본질이 못 바꾸어지면요, 점점 더 심해질 것이고 그것이 바꾸어지게 되면 다음 차례의 문제가 나오는 것이지. 그게 안 되었는데 자꾸 잘 산다, 못산다! 여기에 들어가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죠. 점점 더 눌리게 되고 더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때에 여러분 이제부터 딱 들어올 때에 마음속으로 한가지만 생각하세요. 받아합시다. "주여 내게 영생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 이 한마디에 어떻게 되어요? 하나님이 녹아 버립니다. 너무 좋아서 옳지, 옳지! 그래가지고 좀 잘못된 짓을 했어요? 그래도 뭐라고 그러는 줄 압니까? 야 잘한다. 왜? 우리 손자를 보면서 그래요, 뭐 좀 잘못되고 뭐 해도 박수를 쳐줍니다. 야, 잘한다! 잘한다. 그렇게 되면요. 어지간히 막 뒤통수를 박고 이렇게 해도요. 가만히 있다가 울려고 그러다가도 막 박수를 치면서 '잘한다'! 그러면 씩 웃고 일어납니다. 그게 여러분과 저의 삶에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이것이 이해가 안 되면요.
여러분 삶은 백 번, 천 번 쓰러진다 정도가 아닙니다. 완전히 눌려 버려요.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이 근본적인 문제에 이해가 안 되니까? 이건 받고도 이해가 안 되요. 오늘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한 이야기이거든요. 받고도 이해가 안 되니까? 사단의 종노릇을 자꾸 하는 겁니다. 거기에 눌려서 끌려 다니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우리 눌려서 힘들었습니까! 걸핏하면 '예수님이 그러더냐?' 이러면요. 맞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렇게 해 가지고는 안 되지. 이래서 양보할 것 다 해버리고... 양보했는데 뭘 양보합니까! 여러분 참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생이 내게 있을 때에 양보하면 복이 되지만 그게 안 되었는데 양보하면 오히려 사단의 지배입니다.
그래서 그 마태복음 서에 나온 것이 그게 아닙니까! 비어있고 수리되어 있으면, 누가 없을 때에? 그리스도가 없이 비고 수리되면, 누가? 사단이 일곱 귀신을 더 데리고 들어온다고 그랬습니다. 더 악해지죠. 더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성도의 삶이 정말 축복된 삶을 살아야 되는데 이 땅에 문제는 몽땅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 거듭, 거듭하기도 그래요. 여러분 다 듣고있으니까! 예수 믿는 장로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엄청나고, 예수 믿는 집사에게 돈 띠인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늘 거기에 다 눌리는 겁니다. 이 근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그래서 오늘 정말 여러분과 제가 정말 삶이 어떤 것이 도대체 성도의 삶이냐?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냐? 요렇게 기도하는 것이 성도에 삶이냐? 앞에 것이 되면, 그 다음에 아무렇게나 기도해요. 그 다음은 인도하는 부분이 따로 있으니까 그 다음에는 생각나는 데로 하나님의 인도 받으면 되는 것이죠.'성령이여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말하면 되는 겁니다. 하고싶으면 그렇게 하고 이건 양심이 더 잘 알잖아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뭘 달라고 그라던지!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 먼저 뭐부터 확인해야 되느냐? 받아합시다. "구원이 무엇인가?" 구원 다 받아놓고도 구원이 무엇인가를 몰라서 이걸 다 놓치고 구원이 이제 말한 것처럼 뭐냐?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오시면 됩니다. 그게 영접하면, 곧 믿으면 누가 됩니까? 하나님의 자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시작은 지금부터 어떤 시작이냐? '잘했다, 못했다!'의 시작이 아니고 그리고 복 '받았다, 못 받았다.'의 시작이 아니고 기지개를 딱 켜면서 뭐 하라고 그랬어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생명의 시작입니다. 이 시작이 바로 구원받은 자의 시작입니다. 자 구원받았다는 말 자체가 뭐냐? 이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내가 전에는 예수를 믿었지만 정말 그분이 내게 그리스도로 확인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분을 내 안에 모시게 되는 것을 우리는 영접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뭐 영접도 '잘했느니, 못했느니!' 할 것 없어요. 이것을 사실대로 영접하면, 영접 된 것이고 안 하면, 안 된 겁니다.
여러분 오늘 혹시 이게 안 되면, 이게 안 믿어지면, 또 안 믿고 받아 들였다면, 오늘 알고 '예수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내 안에 오시옵소서.'. 내가 마음에 모시면 돼요. 영접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걸 뭐 어떤 집사 통해서 하라 그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우리 고백입니다. 너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서 어디에?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어렵게 할 것 없어요. 내가 믿으면 하면 됩니다. 그리고 몰랐으면 몰랐다고 고백하고 주여 이제는 알았사오니 이제 그리스도가 누구 신지 알았사오니 내 안에 오시옵소서.
그래서 여러분 그 헬라어에 '성령!' 그럴 때는 '파라크레토스' 라 그래서 보혜사가 옆에 계신다. 이런데 그게 뭐냐하면, 너무 사실적으로 우리가 이 성경의 표현에 구체화시키는 일에 조금 이 해석상 좀 문제가 있다 싶어요. 뭐냐하면, 성령이 어디에 계십니까? 내 안에 계세요. 오셨어요. 그러니 여러분 주체가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그러면 다 끝난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다 출발하는 겁니다. 생명이라는 자체가 내 안에 내주 해야, 하나님을 섬기게 되니까! 이것이 바로 이루어져야 되죠. 이렇게 되는 그때부터 정말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기뻐하시죠.
그래서 이사야서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뭡니까?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지금 현재 잘못 했다, 잘했다. 없이 하나님 바라보면서 무조건 기뻐하시면 됩니다. '주여 구원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만은, 찬양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축복의 은혜를 마음에 조금만 누리면요, 그것이 진짜 찬양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찬양이 아니고 그게 안 되면 유행가나 비슷해요. 진짜 이것이 바로 찬양이 이루어 것이죠.
좀 전에 말씀한 것처럼 생명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뭘 한다, 안 한다.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 건강하다! 그래서 이사야 38장 18절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그렇지만 이건 지옥 불에 들어간 사람, 음부의 권세는 하나님을 근원적으로 찬양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체적으로 지으시고 생명 주시고 난 후에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축복을 주시고 난 후에 제일 먼저 뭘 주었느냐? 안식을 주셨어요.
그래서 사람을 남녀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주신 것이 뭡니까? 안식일을 주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노력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선물로 받은 겁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에게 그냥 선물로 받은 겁니다. 그래서 "(빌 4:7)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빌립보서 4장에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평강의 주인이 내 마음에 왔습니다. 평강의 주인이 나의 마음을 지킵니다. 나의 생각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생각과 판단은 평강 할 때에, 안식이 있을 때에 가장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공포라든가 두려움에 배경이 되면 흐려져 버립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각과 마음이 평강 해질 때에 사업과 직장과 생활에 앞서게 됩니다. 모든 판단이 뛰어나게 됩니다. 이 사실이 안 되니까 전부 빗나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 근본문제가 안 되니까, 불안과 염려와 고통이 계속해서 찾아오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이 없을 때에는 여러분 생명이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께서 말씀한 것처럼 너희 아비 누구라 그랬습니까? 마귀에 지배를 받는다! 그 이야기거든요. 그러니 생명이 없는 영은 누구의 종입니까? 마귀에 종입니다. 완전히 종입니다. 종노릇도 아니고 종입니다. 그러니까 그 삶이라는 것은 너무 비참하죠. 그러니까 마귀에 종이니까, 사단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지배를 하게 됩니다. 지배를 하게 되고 이러니까 어떤 경우가 있느냐 하면, 잠시간 잘 될 수도 있습니다. 잠시간 쾌락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점점 결과적으로 고통과 근심과 괴로움과 비통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 보다 더 큰 원천적인 실패는 영원한 죽음 속에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죽음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게 그들의 고향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뭐 약간 있다해서 정신적으로 어렵다 힘들다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배경이, 영원한 멸망이 와 버립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 들어가면 발광한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왜? 구더기도 죽지 않는데 소금 치듯... 그것은 뭐 상상하기도 힘든 그런 문제 속에 빠지게 되죠.
자, 이렇게 되니까 생명이 없으니까, 이런 문제 속에 빠지게 되면서 구원의 축복을 받았다고 할 때에 물론 제가 지난 시간 많은 그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간단 간단히 좀 지나가게 됩니다. 여러분 구원의 축복을 받았다! 이럴 때에 한마디로 받아합시다. "구원은 곧 해방이다." 해방이다! 그랬습니다. 해방! 여러분 우리는 8.15해방에 대한 감격을 역사 속에 좀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격했는지, 막 뛰어나가서 태극기 흔들고 야단했어요. 그것은 잠시 적이고 육신 적인 해방 아닙니까! 진짜 해방 받았을 때에 이게 나와야 됩니다.
그 문제가 구원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냐? 구원의 축복, 해방이다! 이럴 때에 엄청난 문제 아닙니까! 사단에게서 사단의 종 노릇한데에서 종노릇하는데 그때는 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으니까! 사단에게 손 잡혔으니까! 택한 자들, 그때는 종노릇이 되겠죠. 종노릇하는 그때에... 그래서 죄에 사로잡혔고, 그러면 죄로 통해서 뭐냐? 원죄 아닙니까! 원죄에 사로잡혔고 그 다음에 자범죄에 사로 잡혔고 이것을 통해서 오는 저주! 이것을 통해서 가문에 문제! 여기에 완전히 찌들려 살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서 오랫동안 내려오는 전통!
나는 우리나라에 전통 유교전통, 불교전통 안 많습니까! 거기에 도저히 헤어 날 수 없는 문제 유교 전통 속에서는 여자들이 숨도 못 쉬었잖아요. 여러분 진짜 여자들이요. 다른 어느 사람보다도 요즘 감격해야 됩니다. 그런데 불평은 여자들이 제일 많아요. 남편이 어리 해도 괜찮습니다. 이때에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오랜 유교전통 속에서 숨도 못 쉬고 살았는데 며느리의 서러움, 그럴 때에 요즘은 전 세계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가지고 뭡니까? 여자들 지위가 엄청나게... 요즘 이렇게 보니까, TV보니까! 여자들 못하는 게 없더라 구요. 옛날에는 뭐 금기가 있어 가지고 여자들 오면 뭐 재수 없다고 그래가지고 쫓아 내 버리고 그러는데 요즘은 별것 다 해요. 공군 파일럿도 여자들이 있더라 구요. 그 다음에 힘든 뭐 자동차 정비, 그리고 뭐 큰 트럭에 운전사까지 하기야 못할 것이 없죠. 그 다음에 세밀한 컴퓨터 분야까지! 여자들이 더 잘해요. 여자들의 취업률이 훨씬 증가 됩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남자보다 훨씬 잘한다 그래요. 불평을 좀 하고 잘 흔들려서 그렇지. 얼마나 재치 있어 가지고 잘들 합니다.
이게 여자들이 딱 제 위치만 찾아버리면요. 복음만 제대로 세워 놓아버리면 진짜 이 세대는 하나님이 누구를 쓰시고 계획을 했느냐? 아마 여자들을 쓰시려고 좀 계획을 했다 싶어요. 왜? 여자들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거든요. 남자들은 벌어 먹인다고 정신이 없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벌어온 돈 가지고 얼마든지 활용하고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전도 캠프 나왔는데요. 이것을 생각하고 여러분 진짜하나님 앞에 시간투자 하세요. 그 시간 다른데 다 쓰다가 그때 되어 가지고 못 합니다. 하지말고 하나님 앞에 엄청난 감사가 구체적으로 일어나야 되죠.
그래서 이런 데서부터 완전히 해방 받았습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 법에서" 누구를? 받아합시다. 나를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과거로부터 다 해결되어 버렸습니다. 로마서 8장 2절 아닙니까!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과 사망과 저주 속에, 가문 속에 구속되었던 나를 완전히 해방 받았습니다. 영생입니다. 이 영생이 있음을, 이 생명이 있음을 여러분 확인하라 그랬습니다. '믿는 자들이여 너무 종교에 빠져서 허덕거리지 말고 이것 좀 확인해라! 그렇게 눌려 살지 말라!' 그런 배경이 아닙니까? 이때부터 뭐가 나옵니까? 이때부터 기도에 응답이 나옵니다. 무엇을 구하던지!
그래서 여기 이때부터 뭐라 그랬습니까? 14절에 우리가 이제는 이 사실이 되면, 그 생명의 담보를 가지고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그때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나가지도 못했어요. 죄인이 뭘 기도합니까!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받아합시다. "이때부터 만사형통이다." 만사형통! 집회도 많이 하더라 만은, 그 집회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근본여기서 여러분들이 해방을 받고 이 사실을 알고 확신하고 누리라 이겁니다. 생명 자체를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자체를 누려야 합니다. 잘되고 못되고 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실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나오죠.
그러면 이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여러분들이 해방 받았습니다. 그러면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뭡니까? 자녀가 되었고 권세를 주었습니다. 이 두 가지입니다. 자녀가 되었느냐? 반드시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흔히 우리는 권세! 그럴 때에 자꾸 다른 것을 생각해요. 다른 것을 생각하는데, 여러분 그 히브리어에 '죄' 라는 말이 뭐냐하면, "하말티아!" 이게 뭐냐하면, 옛날에도 교회에서 설명할 때 많이 설명했습니다 만은, 이 궁수가 활을 쏠 때에 이 과녁에, 거기에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정식인데 이게 원래 정석인데 그런데 이게 빗나가 버렸어요. 이것을 가지고 죄라 그랬습니다. 죄!
여러분, 여러분 생명을 가진다는 이 자체가 하나님의 근본 여러분과 저를 향한 목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까? 뭐 위해서? 생명 구하시기 위해서! 왜, 여러분과 저를 이 땅에 보내셔서 생명 주었습니까? 생명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오직 한가지, 하나님의 계획이요. 이게 뜻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뭘 이해해야 되냐 하면요. 생명 주셨다. 뭐, 사단권세 가지고 뭘 한다, 뭘 한다. 할 것 없어요. 그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뭐냐하면, 여기서 이어서 나오는 것이 세계복음화! 이 이야기입니다. 세계를 살려야 되겠다. 이게 하나님의 뜻이고 여기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생리적으로 맞추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붙잡고 기도하는 모든 기도가 다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해적선 이야기를 초기에 많이 안 했습니까! 해적선 타고 있는 사람이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도적질 밖에 안 돼요. 거기서 일단 나와야 돼요. 여러분 사단의 속에 사단의 손에 붙잡혀 있는 이상 아무리 잘 하고 싶어도 받아합시다. "본질상 잘못으로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수준이 아닙니다. 내 수준이 아닙니다. 왜? 사단의 손에 있는 한 이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는 일 마다 엉뚱한 일을 하게 되어 있죠. 거기서 빠져 나왔다. 생명입니다. 내가 한다, 안 한다. 이때부터 이것은 사라져버립니다. 그때부터 주여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양하는 것이 이해가 되거든요. 여기서 노래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건강하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노래가 나오도록 되어 있는데...
제가 딱 아파 보니까요, 딱 안 나오는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어요. 노래가 안 나옵니다. 조금 회복이 되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것이 뭡니까? 노래가 나와요. 하다 못해 유행가라도 나옵니다. 유행가는 잊어버리고 잘 모르니까, 여러분과 제게는 노래가 나옵니다. 그래도 유행가가 나와도 괜찮습니다. 왜? 워낙 인간 체질이 되었는데 어쩝니까! 그런데 이 생명사실 자체가 안되면 건강 차체가 안되면 그게 잘 안나와요. 막 눈만 뜨면 아프다 이렇게 되죠.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거든요. 옛날에 아픔은 눌리는 것도 뭐, 이게 이렇게 가슴이 눌린다, 뭐가 조금만 고단하고 조금만 힘겨우면 눌립니다. 그래도 전에처럼 생각이 안 듭니다. 그것은 별로 내 관심에 없어져 버려요. '주여 이 생명주시고 위로해 주심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찬양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게 되고...
그래서 바울에 생애에 완전히 가는 곳마다 입을 열어 찬송하게 된 배경이 그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 너무 쉽게 되어요. 생명자체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 시간에 아마 따뜻하고 지금 저 꺼야 되겠는데 보니까! 따뜻하고 생명누리라 그러니까! 기분도 좋고 하니까!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그러고 눈을 감고 앉아 계신 분들이 있는데 눈을 뜨세요. 그렇게 되면 생명보다도 다른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뭐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때부터 권세 주었다. 그게 뭡니까? 세상의 정복 권이 세계복음화 권세입니다. 전도할 권세를 주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전도라는 것이 너무 우리가 오해되어 가지고 어렵게 생각합니다. 전도는 뭐냐? 생명 받았다. 생명 받은 사실을 말해주는 겁니다.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요. 자연적으로 감동을 받아 버립니다. 기쁨이 와 집니다. 그러면 믿어라, 안 믿어라 할 것도 없어요. 다 찡그린 얼굴로, 다 죽어 가는 소리로 '예수 믿어라!' 그러면 '너나 잘 믿어라!' 그러고 '얼굴 모습 보니까 내가 오히려 겁난다 전염될까봐!' 그런데 뭐 문제 있다, 없다 상관없이 환하게 웃으면서 정말 주의 평안과 안식을 말씀하게 될 때에 옆에 사람이 봐도 저 사람이 저 웃을 입장이 아니거든, 그런데도 어떻게 웃음이 나올까? 생명입니다.
그러면 뭐가 됩니까? 너무 좋을 것 가지고 많은 것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통 하는 자들에게 어째서 나는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이런 안식과 평안이 없느냐? 생명 들어가게 됩니다. 그게 전도 아닙니까! 그러니 전도하려고 뛰어 다니지 마라 안 그랍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됩니다. 문제는 생명 자체가 안 누려지니까! 자꾸 전도하려고, 자기부터 죽어 있는데, 생명 없는데 옆에 사람 살리려고 그러면 일이 안 되죠. 여러분 가정 허무한 것이 시체를 앞에 놓고 있는 것이 가장 허무한 것 아닙니까? 가장 기쁨이 뭡니까? 생명! 건강한 생명 자체...
우리가 이 사실을 여러분 아실 때에 여러분 교회 왔다, 여러분 교회 오는 정도만 아닙니다. 엎드릴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주여 어찌해서 내가 이 축복과 은혜를 누리고 오늘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기도 할 수 있습니까?' 이 축복에 생명 감사합니다. 내가 잘 했다, 못했다. 아닙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시는 영원한 생명, 행복! 지금 어렵다, 힘들다. 이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 은혜 누리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게 조금만 가면요. 진짜 감사가 나오는 그 반면에 천국영광이 가슴에 부닥치게 됩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 오시겠고 그러니 주님 기다려지는 것 그 정도가 아니죠. 이제 이 땅에서 누려지게 되면요. 이제 뭐냐 주님이 기다려지게 되고 그 영광을 사모하게 됩니다. 바울이 사나 죽으나 오직 사모하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이 아닙니까? 이 구체적인 사실들이 이루어져야 되죠.
그러면 이렇게 되는 그때부터 뭐가 오느냐 하면, 오늘 말씀한 것처럼 기도 응답이 구체적으로 오게 됩니다. 그러면 기도응답은 내가 뭘 잘할 것이나, 못할 것이나, 기도를 잘 해야 응답 받고, 못해야 응답 받는다 그 말이 아닙니다. 좀 전에도 말한 것처럼 생명이 있으면요. 아직까지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내 수준은 아직까지 뭔가 옛날에 쌓였던 그런 수준이기 때문에 잘 못합니다. 엉뚱한 데로 갑니다. 그러니까 암만 그들이 잘 하려고 해도 안 돼요. 제가 숟가락을 우리 손자한테 쥐어 주니까요. 이 놈이 밥을 퍼 가지고 어디로 가느냐? 입에 집어 안 넣고 다른데 퍼 넣는데... 안 돼요. 체질적으로 아직 안 돼요.
여러분이 아무리 하나님 앞에 감격해서 잘 살려고 그래도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숟가락 퍼 가지고 다른데 넣는데... 그렇다고 남의 입에 넣어주면 괜찮은데, 그때는 내가 거들어 줘야 돼요. 옆에서 제가 거들어 줘야 돼요. 그러면 또 기분 좋다고 노래 부르고 막 몸을 흔들고 그러면 옆에서 보는 사람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셔 가지고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녹아버린다." 무엇에? 생명에, 여러분 생명을 누리는 사실에 너무 하나님 기뻐하시고 너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아야 되죠.
이러니까 이때부터 뭐가 없어지느냐? 우리 삶이 이때부터 이어집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빌 4:7)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게 뭡니까? 평안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오는 것이 뭐냐? 모든 일과 사건에서 걱정, 근심, 염려가 조용히 사라집니다. 걱정을 팔자로 알고 앉았잖아요. 밥 먹다가도 걱정! TV보다가도 걱정! 기도하다가 걱정하는 것 때문에 기도가 걱정으로 끌려가요. 이 생명자체가 안 되니까! 그리고 온통 뭐!
그러니 이것이 되니까 뭐냐하면요. 기도할 거리가 별로 없어진다 싶은 생각이 나요. 왜? 다 망상적인 문제가 별로 없으니까! 그러니까 뭐가 나옵니까? 기도할 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뭐냐?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찬송이 나오는 겁니다. 찬송이... 기도할 것이 너무 많으면요. 나올 여가가 없어요. 주여 이것도 해 줘야되고, 저것도 해 줘야되고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은지. 이것도 해주고 그러다가 보면요. 사돈에 팔촌까지 기도한다고... 그걸 가지고 우리가 종교생활이라 그래요. 우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구하게 되는 그런 경우가 되죠. 그러면 전혀 걱정거리 없어집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이죠. 뭡니까? "(벧전 5:7) 염려와 걱정을 다 주께 맡겨버려라" 이때부터 내가 걱정을 주께 맡겨버린다. 이때부터 왜? 그 배경이 뭐냐하면요. 이제 생명이 내 안에 왔고 내 주인은 이제 생명을 주신 그 분이 나에 누구입니까? 주인이요, 주권자이십니다. 여러분 주권자, 주권자! 그래도 이게 실감이 안 되어요.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에 있으니까, 나를 내가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부인이 되어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여기서 이제 이루어집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러면서도 좀 전에도 말씀했습니다. 생명의 주체이신 그 분이 없이 죽어 버리면 누가 역사 합니까? 사단의 배경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배경이 됩니다. 그 분이 있어야 비고 수리되어도 여기에 효과가 나오는 겁니다. 이제 여기서 역사가 나오는 것이죠.
그 분이 없이 비고 수리되면 누가 옵니까? '아이고 여기 깨끗하네!' 그러고 누가 와요? 일곱 귀신이 와 가지고 자리 틀고 앉아요. 더 힘들어요. 왜, 착하게 사는데 왜 잘 살려고 하는데 어려우냐? 그 부분입니다. 우리가 생명가지고도 이것을 놓치고 이 사실이 안 믿어지면요? 그런 것이 자꾸 들어오니까! 구원은 받았지만 삶 자체가 안 되어 집니다. 늘 눌리고 늘 쫓기고...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이 조금만 뭐라 그러면 위축이 되어버리고, 위축 될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러분이 나갈 때마다 흑 암 권세가 깨뜨려지는데 왜 위축이 됩니까! 이 사람들한테 물론 전도도 안 됩니다. 될 이유가 없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권자가 안 되니까 자기가 이제 저절로 포기가 되는 거죠.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것도 어려운 것이 아니더라 구요. 저도 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 부분을 가지고 많이 고민을 했는데요. 시간이 갈수록 오직 그 분이 맞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우리 지난 교사들 중심으로 세미나 했을 때에 참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 주권! 이 문제 가지고 주권자입니다. 이 길 가다가 보면요. 이 취객들이 차를 막 끌어 놓기도 하고 유리창을 뚜드려 부셔버리기도 하고 이렇게 해 놓거든요. 길 가다가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가고 '저 차 어느 놈이 또 뚜드려 부셨냐?' 이래요. 이렇게 한다 그러면, 이 소리까지만 하지만 안 그러면 보고 그냥 지나가요. 그런데 길을 가다가 가 아니고 내가 급한 볼일로 차를 가지고 어디 나가려고 하는데 딱 가보니까 유리창 다 부셔놨고 그 다음에 막 끌어 놓았고 이랬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당장 입이 거친 사람은 별 쌍 시옷자가 다 들어갈 겁니다. '어떤 놈의 쌍 시옷자가 이 짓을 해 놓았냐!' 그러면서 막 화낼 겁니다.
왜, 앞에 부분은 아무 말도 안하고 지나갔는데 왜 뒤에는 그렇게 되느냐? 그 차 주인이 누구입니까? 주인이 자기거든... 여러분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에... 왜? 자기 문제를 건드렸고 손해 되게 만들고 이렇게 될 때에 뭡니까? 신경질 납니다. 불평이 나옵니다. 짜증이 나옵니다. 여러분 이제 내 주인이 누구입니까? 생명주신 하나님이시요, 바로 그 분이 내 안에 계십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누구의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문제예요. 나는 누구입니까? 복음만 있으면 돼요. 그 분에 일이니까? 그러면 뭐가 됩니까? 이것이 딱 이루어지게 되면 걱정, 염려가 떠나버립니다. 문제가 생겼다! 그 분이 하실 것입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를 보라! 그게 모세의 역사 아닙니까!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 더 큰 기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증거 될 것입니다. 이게 마음에 딱 와버립니다. 남편에 문제! 내 주관으로 해서 남편이 이래야 되는데, 저래야 되는데 생각하니까 남편이 '진짜 더럽구나!' 이렇게 되지. 하나님이 주인이라 그러면 더럽던지 말던지 받아합시다. "나와 상관없다!" 그래서 어떤 마음이 나오느냐 하면, 참 이 말하기가 곤란한데, '누가 옆에서' 그 말은 강단에서는 삼가겠습니다.' 개 어떤 짓을 한다' 고 해도 상관 안 합니다. 하나님 바라보게 됩니다. 평안과 안식이 있습니다. 거기에 동요될 필요가 없어요. 교회, 가정, 나 자신까지.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희를 반석 위에 세웠고 내가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그 헬라어에 내가 세우리라는 말은 빠져 있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내가 세우리라 받아합시다. "나는 뭐라고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교회입니다." 너도 누구의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교회! 나는 맞는데 너는 아니다가 아니잖아요. 이게 성질 더러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내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역사입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모든 걱정과 근심염려가 사라집니다. 그 다음에 이때부터 문제될 것이 없어요. 왜? 하나님이 하실 것이니까! 그때부터 나오는 것이 뭡니까? 삶에 안식과 평안!
그 다음에 이때부터 나오는 것이 뭐가 나오느냐?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 왜? 그때부터 들으시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 기도응답 이런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일어나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럴 때에, 생명 주셨습니다. 권세라 그러면 다른 걸로 자꾸 뭔가 막 내가 일하고 이런 것을 생각합니다. 권세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받아합시다. "내가 오직 한가지 권세를 받았다." 그 권세는 세계 정복권! 세계 정복! 전도할 권세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전도한다! 그럴 때에 전도를 막고 있는 것이 뭡니까?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나오는 것이 사단의 추방도 나오고 뭐, 요즘 자꾸 하지 말라고 그래도 확실하니까! 사단 결박도 하고 막 이렇게 이제 나옵니다. 이런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안 나옵니까! 이러니까 이제는 여러분들이 자기도 모르게, 이제 자기도 모르게 여기서 나오는 것이 참 중요한 배경이 나오죠. 삶이 된다! 그러면 불신자는 사단이 주인이고 그 다음에 귀신이 따라 다닙니다. 잘 알죠. 그 다음에 신자들에게는 누가 주인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아버지여!' 그 다음에 누가 역사 합니까? 누가 나를 따라 다닙니까? 성령께서 따라 다닙니다. 범사에... 믿습니까? 이걸 인정을 해야 됩니다. 범사에 성령이 인도하시죠. 그러면 우리가 이제는 어떻게 합니까? 주인이 내가 아니니까! 뭐가 와야 됩니까?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염려, 걱정을 다 버립니다. 주권자인 하나님을 인식하죠. 이때부터 뭐가 있느냐? 나도 모르게 숨은 계산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 오면서도 제가 지난번에 '경건을 이익에 재료로 삼는다.' 이게 교만이거든요. 이게 하나님 떠난 사람들에 특징이거든요. 그러니까 뭐냐하면, 여러분 예수 믿으면서도 예수 이름가지고 자꾸 내가 덕보려고 합니다. 예수 이름 가지고! 예수 이름가지고 뭔가 자꾸 덕보려고 그러는데 여기서 모든 문제가 생깁니다. 덕보려는 배경에 제일 많은 것이 뭐냐? 돈을 많이 벌려고 합니다. 경제적인 덕을 보겠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받아합시다. "돈은 일만 악에 뿌리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에 뿌리다! 그랬어요. 돈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안 되게 되면요. 돈을 쫓아서 돈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되게 되면, 받아합시다.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어떻다 구요? 더하시리라!
암만 말해도 이게 안 되는 것이 앞에 부분에 안 되니까, 이게 안 들어오는 겁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뭘 해야 뭘 얻어낸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이 할 것이 없다니 까요. 여러분 하려고 그러면 하려는 배경이 다른 것인데 이 구체적인 축복이 완전히 임하게 될 때에 숨을 계산이 사라지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그렇고... 우리 주님 앞에 그리고 단순해집니다. 여러분 시간이 갈수록 뭐냐? 자꾸 단순해지거든요. 그러면서 이때부터 나오는 마지막 딱 마음에 담아야 됩니다. 삶에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하고 되고요. 그 다음에 삶에 우선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다음에 내 인생을 건 삶에 전부가 복음 전파입니다. 전도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건축한다! 이렇게 될 때에 여러분 교회 건축한다! 그러면 세상 살릴 교회를 지어야 됩니다. 그냥 보통 짓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보통 여기서 뭐 조금 좋게 짓는다! 이런 배경 가지고는 하나님이 안 주실 것입니다. 아마 세계를 살릴 교회를 지어야 된다. 이렇게 될 때에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이 이 복음이 회복되고 이렇게 되면요. 엄청난 교회가 허락되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왜? 이런 교회가 지금 없으니까!
그리고 이 교인들을 살려야 되니까! 말하자면, 이 대구 시민들 다 모아도 남을 수 있는 이런 교회! 그런 어떤 조직, 시스템들을 해야 됩니다. 뭐, 이제 교회 건축한다! 그럴 때에 영아부, 태아부는 물론 비롯해서 막 금방 여기 뭐 유치부 정도도 이제는 금방 낳으면 들어와도 될 수 있을 정도로 교육시스템이 되고 이렇게 해 가지고 후대를 살려야 되고 구체적으로 이런! 이런 삶들이, 이런 어떤 교회들이 이루어 져야 됩니다.
뭐 조금 나은 교회 그럴 것 같으면, 옛날에 벌써 지었어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기다리신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축복의 교회를, 세상 살릴 축복에 교회와 증거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교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로 붙은 겁니다. 조금 더 낫게 하는 것은 나중에 지으면 되는 것이지만 그래서 붙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할 수 없어요. 터를 비롯해서 모든 지을 것까지 누가 역사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하나 돈 없는데 누가? 염려하지 마세요. 누가 해요? 내가 할 염려가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받아합시다.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자!"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생명이 있어야 삶이 이루어진다.
☞ 구원 받은 자들이 주로 고민하는 것이 삶의 문제입니다. 대부분 자기 기준에서 살아가니까 교회에 올 때마다 죄인의 심정이 되어 항상 눌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 받은 자의 삶이 아닙니다.
☞ 우리는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먼저 내 안에 영생이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을 확인하고 누리는 속에서 삶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2] 생명은 구원 받은 자에게 있다.
☞ 구원은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오신 것입니다. 즉,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알고 내 안에 모실 때 생명을 얻었습니다.
☞ 이 때부터 나의 잘잘못에 관계없이 나를 구원하고 내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하나님께서 평안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렇게 하여, 나의 생각과 마음이 평안해지면 가정과 직장에서 모든 일들이 축복으로 인도됩니다.
[3] 구원의 축복이 넘칠 때 삶이 이루어진다.
☞ 구원의 축복은 곧 해방입니다. 구원받은 나는 사단과 죄에 사로잡혀서 저주 속에 고통받던 상태에서 해방받았습니다. 이 축복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 생명을 얻고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면, 저절로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증거되어 우리가 가진 세계 복음화의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 이 때부터 기도의 응답이 나오고, 우리의 증인된 빛의 삶이 이루어집니다. 즉, 주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셔서 평안을 주시며, 모든 일과 사건에서 걱정, 근심, 염려가 조용히 사라지고 감사와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내 안에 왔고 내게 생명을 주신 그 분이 나의 주권자이시므로, 나의 문제가 그 분의 것이 되어 그 분이 친히 해결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부터 삶의 우선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삶의 전부가 복음 전파가 될 수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내게 생명을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날마다 내게 주신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되게 하소서. 내게 생명을 주신 나의 주권자 하나님 앞에 내 모든 문제를 내려놓으니, 내 주 하나님께서 친히 다 해결해 주시고 홀로 영광 받아 주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오늘 13절부터 15절까지 우리 한 목소리로 합독을 합시다. 13절부터 다같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아멘. 오늘 여기에 말씀해서 13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안 믿는 사람? 믿는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뭐라 그랬습니까? 영생을 좀 확인해라! 확신해라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구원받은 자의 삶이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구원 안 받은 자는 이게 안 되죠. 삶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말할 것도 없고 말할 이유도 없어요. "구원받은 자의 삶" 이라 이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여러분들이 거의 고민하고 있는 것이 뭐냐? 삶이 안 된다. 이겁니다. 삶이! 뭐 말하자면 신앙 삶이 안 된다. 신앙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안 된다! 그래요. 그게 뭐냐하면 종교의 배경입니다. 내 기준으로 해서 신앙의 삶은 착해야 된다. 거짓말 안 해야 된다. 뭐 이렇게 어떤 기준을 세워 가지고 자꾸 살아간다 그런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그 저번 주 금요일 날 꼭 뭔가 말하고 싶은 분들은, 제게 개인적으로 찾아오고 그렇게 안 되니까? 'E-Mail로 좀 들어와서 상담을 해도 좋겠다!' 이랬더니만 현재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E-Mail을 보냈어요. 보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신앙생활이 안 됩니다. 기도가 안 된다. 그리고 기도도 전에는 그냥 막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제 달라고 기도하려고 하니까 이 복음이 아니다 싶은, 이런 생각도 들고 또 그걸 안 하려고 하니까 할 것도 없고 또 막상 필요한 것이 이건데 그러니 목사님 이걸 기도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묻더라 구요. 이 갈등이 여러분들 아마 거의 같은 갈등입니다. 도대체...
그러니까 결국 뭐냐하면, 신앙의 삶이 기도가 된다 안 된다 여기에 집결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 뭐냐하면, 한 주간 동안도 여러분이 딱 들어오면 뭘 생각하느냐하면 삶이 안 되니까? 삶이 내 주관으로 해서 내 기준으로 해서 삶을 살고 있으니까? 뭐에 빠지느냐 하면, 그게 우리가 종교배경이거든요. 그러니까 한 주간에 잘 살았다, 못 살았다. 내 주관에 내 기준에 이걸 생각하고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좀 잘 살았다. 그러면 말하자면 예를 들어서 욕도 좀 안 하고 거짓말도 안 하고 같이 좀 친구들하고 모여서 술도 안 먹고 그렇게 뭐 꽁생원 같이 살았다!
그러면 주여 그래도 지난 한 주간 이 정도로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럴지 모르지만 거의 그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뭐가 되느냐 하면, 자기 기준에 들어와서 그렇게 안 살았으니까! 문만 딱 열고 들어오면, 교회 들어오면 전부 죄인이라! '주여 죄인이 왔습니다.' 이러고 그러고는 뭐 눈물도 안 나는데도 반 슬픈 노조로 해 가지고 기도가 나옵니다. 회개 기도가 나와요. 이게 지금까지 우리가 해 왔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문제만 터지게 되면, 주여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그래서 두들겨 팹니까? 이래가지고 또 회개하려고 잘못한 것 이미 벌써 고생은 하고 있는데도 잘못한 것을 찾아 가지고 또 회개하려고 하니까! 이건 뭐 이중 삼중 고생이에요. 참 어렵다 그러니까 전체교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느냐 하면, 늘 눌린 생활이에요. 늘 눌린 생활이에요. 늘 죄인입니다. 늘 내가 잘못 살았습니다. 강단에서 기도하는 것도 전부 그런 패턴이거든요. 과연 이게 하나님의 사람들에 삶에 모습인가? 성경은 그게 아니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 한마디로 잠깐 말씀을 드리면, 제가 희락이를 보면서 전에는 뭐 옛날에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는 어떻게 키웠는지. 뭐 정신 없이 키웠고 또 요즘은 전보다 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많거든요. 전에는 뭐 내가 또 살아도 교회 일에 너무 바쁘니까, 뛰어 다니는 것이지만 요즘은 그렇게 못하니까? 뭔가 조용히 앉아서 생각을 좀 많이 하게 되는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전에는 뭐 그래도 설교 준비하려고 하면 컴퓨터에 앉아 가지고 뭔가 좀 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것도 못하니까 거의 생각으로 설교를 준비합니다. 요즘 이제 한 얼마 몇 주간 정도는 또 앉아 가지고 대지라도 그래도 컴퓨터에 치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할 시간이 참 많아요.
그러니 제 손자를 가만히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한 4주 동안 감기를 달아놓고 살더라 구요. 이게 어느 정도로 하느냐 하면요. 감기와 함께 오는 눈병도 또 있다 그래요. 눈이 벌겋게 해 가지고 그 할머니까지 전염시키고 이게 안 하는 게 없이 다 하는 겁니다. 그럴 때는 뭐 눈만 뜨면 짜증을 내요. 하여튼 짜증내고 밥도 안 먹고 신경질 부리고 막 고함을 지르고 그때는 내 손자를 보면서 뭔 생각이 드느냐 하면, '야, 저것 참 괴롭네' 그래서 속으로 이제 서울로 보낼 그런 계획이라서 '빨리 보내버려야 되겠다' 그랬는데 이게 이제 한 3, 4일 전부터 그 병이 다 떠나고 나니까 눈만 뜨면 웃네! 그리고 되도 않는 노래를 하고 뭐 고함을 질러가며 또 몸을 흔들어 가면서하고...
그래서 내 마음에 그것을 보는 내 자신이 보는 것만 해도 건강한 생명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만 해도 나는 즐거워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도들의 삶이 뭐냐하면요. 중요한 것을 한가지 붙잡아야 됩니다. 오늘 여기 본문에서 여러분과 제가 뭘 한다, 안 한다. 뜻이다, 아니다. 이것은 나중이야기입니다. 먼저 뭘 확인해야 되느냐? 내 안에... 여기 보면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뭐가? 영생이 있음을 확인해야 됩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나와요. 이게 안 되면 모든 게 끝나요.
그래서 여러분 지금 현재 만약에 희락이가 딱 아침에 일어나서 막 '내가 어떻게 하면 할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살까?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살까?' 고민하고 앉았다 그러면, 그것은 정신병자예요. 그게 말이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 나이또래에 그 형편이 뭐냐? 건강하게 자라고 그저 일어나서 되든 안 되든, 틀리고 맞다 그것은 상관없어요. 노래만 부르면 돼요. 그러면 너무 기뻐요. 그 다음에 밥상 위에 올라가 가지고 찡그리고 짜증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숟가락으로 뭐 퍼 넣든 말든 뭐 몸 흔들고 노래 부르고 하면 온 가족이 웃음덩어리입니다.
여러분 내가 이 말하는 것 간단한 겁니다. 하나님의 생명 확인하고 하나님의 생명 누려버리면 다입니다. 생활자체에 이것이 여기서 생활이 나오는 것이지 뭘 할까 말까 이걸 가지고 종교라 그럽니다. 그래서 사단이 만드는 것이요.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그걸 종교로 만들었습니다. 자기를 섬기게 사단을 섬기게 하면서 하나님 복음만이 안 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도 이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1부 예배도 그랬습니다 만은 '거룩한 걱정' 이라 그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 잘 할까? 거룩을 붙여서 될 일도 아니지만, 하도 여러분 거룩하게 보니까! 그러니 이것을 잘 하는 줄 압니다. 어떻게 하면 주의 뜻대로 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 그것 생각 안 해도 돼요. 뭐,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본질상 진노의 행동이 나오는데 그게 근본적인 문제가 안 되면 이게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걱정도 다 놓으십시오. 어떻게 하면 주의 교회 위해서 잘 살까? 어차피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 나오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그게 맞지도 않아요. 문제는 내가 하나님이 생명 주셨다. 감사하다 여기에 영생 그럴 때는 뭐까지 나갑니까? 뿌리를 영원한 천국! 그게 보여져야. 그러면 기뻐하시죠.
그러면 사단의 뿌리라! 그러면 어디까지입니까? 지옥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 엄청난 겁니다. 지금 뭐 우리는 복 받았다. 그러면 잘산다, 못산다. 자꾸 연결시키고 일! '잘된다 못 된다' 에 자꾸 연결시킵니다. 아닙니다. 세상에 이 말씀이 너무 이해 안되니까!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31절까지 나사로 비유를 한 겁니다. 나사로의 비유에 사실을 말한 거죠. 가난하게 거지로 살아도 이 땅에서 제일 부자로 사는 사람보다 정말 복된 삶이 있다! 그게 뭡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영광을 가진, 영생의 생명이 있는 자다. 바로 그 이야기가 그때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참된 축복의 이 사실이 이게 눈이 열려야 돼요. 그게 뭡니까? 생명입니다. 그 자체가...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 앞에 딱 나올 때에 어차피 우리 수준은 잘 못해요. 지난 한 주간 엉망입니다. 뭐, 별소리 다 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오늘도 내가 생명을 가지고 감히 하나님 전에 나와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하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이 소리 한마디에 우리 주님 녹아 버립니다. 그러니 뭐 씩 웃으면서... 이 소리 한 마디에 이 사실 한마디에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만들어 놓고 생명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 하셨어요. 그래서 창세기에 보면요. 뭐 좋았더라, 좋았더라! 쭉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여러분과 저를 그러니까 인간을 창조하시고 난 후에 뭐라 그랬냐 하면요. 심히 좋았더라 그랬어요.
여러분 자신이 예수그리스도의 생명가지고 영생 가지고 찾아 나왔다! 하나님이 뭐라 그랬습니까? 심히 좋았더라! 그러니 주일날만 와 가지고 예배드리고 말씀 잘 듣고 그것만해도 끝입니다. 나가서 잘 사느냐? 못 사느냐? 어차피 못 생긴 사람은 이상하게 살 것이고 이상하게 생긴 그 본질이 못 바꾸어지면요, 점점 더 심해질 것이고 그것이 바꾸어지게 되면 다음 차례의 문제가 나오는 것이지. 그게 안 되었는데 자꾸 잘 산다, 못산다! 여기에 들어가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죠. 점점 더 눌리게 되고 더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때에 여러분 이제부터 딱 들어올 때에 마음속으로 한가지만 생각하세요. 받아합시다. "주여 내게 영생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 이 한마디에 어떻게 되어요? 하나님이 녹아 버립니다. 너무 좋아서 옳지, 옳지! 그래가지고 좀 잘못된 짓을 했어요? 그래도 뭐라고 그러는 줄 압니까? 야 잘한다. 왜? 우리 손자를 보면서 그래요, 뭐 좀 잘못되고 뭐 해도 박수를 쳐줍니다. 야, 잘한다! 잘한다. 그렇게 되면요. 어지간히 막 뒤통수를 박고 이렇게 해도요. 가만히 있다가 울려고 그러다가도 막 박수를 치면서 '잘한다'! 그러면 씩 웃고 일어납니다. 그게 여러분과 저의 삶에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이것이 이해가 안 되면요.
여러분 삶은 백 번, 천 번 쓰러진다 정도가 아닙니다. 완전히 눌려 버려요.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이 근본적인 문제에 이해가 안 되니까? 이건 받고도 이해가 안 되요. 오늘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한 이야기이거든요. 받고도 이해가 안 되니까? 사단의 종노릇을 자꾸 하는 겁니다. 거기에 눌려서 끌려 다니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우리 눌려서 힘들었습니까! 걸핏하면 '예수님이 그러더냐?' 이러면요. 맞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렇게 해 가지고는 안 되지. 이래서 양보할 것 다 해버리고... 양보했는데 뭘 양보합니까! 여러분 참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생이 내게 있을 때에 양보하면 복이 되지만 그게 안 되었는데 양보하면 오히려 사단의 지배입니다.
그래서 그 마태복음 서에 나온 것이 그게 아닙니까! 비어있고 수리되어 있으면, 누가 없을 때에? 그리스도가 없이 비고 수리되면, 누가? 사단이 일곱 귀신을 더 데리고 들어온다고 그랬습니다. 더 악해지죠. 더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성도의 삶이 정말 축복된 삶을 살아야 되는데 이 땅에 문제는 몽땅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 거듭, 거듭하기도 그래요. 여러분 다 듣고있으니까! 예수 믿는 장로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엄청나고, 예수 믿는 집사에게 돈 띠인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늘 거기에 다 눌리는 겁니다. 이 근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그래서 오늘 정말 여러분과 제가 정말 삶이 어떤 것이 도대체 성도의 삶이냐?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냐? 요렇게 기도하는 것이 성도에 삶이냐? 앞에 것이 되면, 그 다음에 아무렇게나 기도해요. 그 다음은 인도하는 부분이 따로 있으니까 그 다음에는 생각나는 데로 하나님의 인도 받으면 되는 것이죠.'성령이여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말하면 되는 겁니다. 하고싶으면 그렇게 하고 이건 양심이 더 잘 알잖아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뭘 달라고 그라던지!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 먼저 뭐부터 확인해야 되느냐? 받아합시다. "구원이 무엇인가?" 구원 다 받아놓고도 구원이 무엇인가를 몰라서 이걸 다 놓치고 구원이 이제 말한 것처럼 뭐냐?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오시면 됩니다. 그게 영접하면, 곧 믿으면 누가 됩니까? 하나님의 자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시작은 지금부터 어떤 시작이냐? '잘했다, 못했다!'의 시작이 아니고 그리고 복 '받았다, 못 받았다.'의 시작이 아니고 기지개를 딱 켜면서 뭐 하라고 그랬어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생명의 시작입니다. 이 시작이 바로 구원받은 자의 시작입니다. 자 구원받았다는 말 자체가 뭐냐? 이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내가 전에는 예수를 믿었지만 정말 그분이 내게 그리스도로 확인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분을 내 안에 모시게 되는 것을 우리는 영접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뭐 영접도 '잘했느니, 못했느니!' 할 것 없어요. 이것을 사실대로 영접하면, 영접 된 것이고 안 하면, 안 된 겁니다.
여러분 오늘 혹시 이게 안 되면, 이게 안 믿어지면, 또 안 믿고 받아 들였다면, 오늘 알고 '예수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내 안에 오시옵소서.'. 내가 마음에 모시면 돼요. 영접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걸 뭐 어떤 집사 통해서 하라 그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우리 고백입니다. 너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서 어디에?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어렵게 할 것 없어요. 내가 믿으면 하면 됩니다. 그리고 몰랐으면 몰랐다고 고백하고 주여 이제는 알았사오니 이제 그리스도가 누구 신지 알았사오니 내 안에 오시옵소서.
그래서 여러분 그 헬라어에 '성령!' 그럴 때는 '파라크레토스' 라 그래서 보혜사가 옆에 계신다. 이런데 그게 뭐냐하면, 너무 사실적으로 우리가 이 성경의 표현에 구체화시키는 일에 조금 이 해석상 좀 문제가 있다 싶어요. 뭐냐하면, 성령이 어디에 계십니까? 내 안에 계세요. 오셨어요. 그러니 여러분 주체가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그러면 다 끝난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다 출발하는 겁니다. 생명이라는 자체가 내 안에 내주 해야, 하나님을 섬기게 되니까! 이것이 바로 이루어져야 되죠. 이렇게 되는 그때부터 정말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기뻐하시죠.
그래서 이사야서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뭡니까?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지금 현재 잘못 했다, 잘했다. 없이 하나님 바라보면서 무조건 기뻐하시면 됩니다. '주여 구원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만은, 찬양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축복의 은혜를 마음에 조금만 누리면요, 그것이 진짜 찬양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찬양이 아니고 그게 안 되면 유행가나 비슷해요. 진짜 이것이 바로 찬양이 이루어 것이죠.
좀 전에 말씀한 것처럼 생명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뭘 한다, 안 한다.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 건강하다! 그래서 이사야 38장 18절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그렇지만 이건 지옥 불에 들어간 사람, 음부의 권세는 하나님을 근원적으로 찬양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체적으로 지으시고 생명 주시고 난 후에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축복을 주시고 난 후에 제일 먼저 뭘 주었느냐? 안식을 주셨어요.
그래서 사람을 남녀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주신 것이 뭡니까? 안식일을 주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노력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선물로 받은 겁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에게 그냥 선물로 받은 겁니다. 그래서 "(빌 4:7)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빌립보서 4장에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평강의 주인이 내 마음에 왔습니다. 평강의 주인이 나의 마음을 지킵니다. 나의 생각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생각과 판단은 평강 할 때에, 안식이 있을 때에 가장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공포라든가 두려움에 배경이 되면 흐려져 버립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각과 마음이 평강 해질 때에 사업과 직장과 생활에 앞서게 됩니다. 모든 판단이 뛰어나게 됩니다. 이 사실이 안 되니까 전부 빗나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 근본문제가 안 되니까, 불안과 염려와 고통이 계속해서 찾아오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이 없을 때에는 여러분 생명이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께서 말씀한 것처럼 너희 아비 누구라 그랬습니까? 마귀에 지배를 받는다! 그 이야기거든요. 그러니 생명이 없는 영은 누구의 종입니까? 마귀에 종입니다. 완전히 종입니다. 종노릇도 아니고 종입니다. 그러니까 그 삶이라는 것은 너무 비참하죠. 그러니까 마귀에 종이니까, 사단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지배를 하게 됩니다. 지배를 하게 되고 이러니까 어떤 경우가 있느냐 하면, 잠시간 잘 될 수도 있습니다. 잠시간 쾌락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점점 결과적으로 고통과 근심과 괴로움과 비통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 보다 더 큰 원천적인 실패는 영원한 죽음 속에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죽음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게 그들의 고향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뭐 약간 있다해서 정신적으로 어렵다 힘들다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배경이, 영원한 멸망이 와 버립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 들어가면 발광한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왜? 구더기도 죽지 않는데 소금 치듯... 그것은 뭐 상상하기도 힘든 그런 문제 속에 빠지게 되죠.
자, 이렇게 되니까 생명이 없으니까, 이런 문제 속에 빠지게 되면서 구원의 축복을 받았다고 할 때에 물론 제가 지난 시간 많은 그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간단 간단히 좀 지나가게 됩니다. 여러분 구원의 축복을 받았다! 이럴 때에 한마디로 받아합시다. "구원은 곧 해방이다." 해방이다! 그랬습니다. 해방! 여러분 우리는 8.15해방에 대한 감격을 역사 속에 좀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격했는지, 막 뛰어나가서 태극기 흔들고 야단했어요. 그것은 잠시 적이고 육신 적인 해방 아닙니까! 진짜 해방 받았을 때에 이게 나와야 됩니다.
그 문제가 구원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냐? 구원의 축복, 해방이다! 이럴 때에 엄청난 문제 아닙니까! 사단에게서 사단의 종 노릇한데에서 종노릇하는데 그때는 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으니까! 사단에게 손 잡혔으니까! 택한 자들, 그때는 종노릇이 되겠죠. 종노릇하는 그때에... 그래서 죄에 사로잡혔고, 그러면 죄로 통해서 뭐냐? 원죄 아닙니까! 원죄에 사로잡혔고 그 다음에 자범죄에 사로 잡혔고 이것을 통해서 오는 저주! 이것을 통해서 가문에 문제! 여기에 완전히 찌들려 살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서 오랫동안 내려오는 전통!
나는 우리나라에 전통 유교전통, 불교전통 안 많습니까! 거기에 도저히 헤어 날 수 없는 문제 유교 전통 속에서는 여자들이 숨도 못 쉬었잖아요. 여러분 진짜 여자들이요. 다른 어느 사람보다도 요즘 감격해야 됩니다. 그런데 불평은 여자들이 제일 많아요. 남편이 어리 해도 괜찮습니다. 이때에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오랜 유교전통 속에서 숨도 못 쉬고 살았는데 며느리의 서러움, 그럴 때에 요즘은 전 세계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가지고 뭡니까? 여자들 지위가 엄청나게... 요즘 이렇게 보니까, TV보니까! 여자들 못하는 게 없더라 구요. 옛날에는 뭐 금기가 있어 가지고 여자들 오면 뭐 재수 없다고 그래가지고 쫓아 내 버리고 그러는데 요즘은 별것 다 해요. 공군 파일럿도 여자들이 있더라 구요. 그 다음에 힘든 뭐 자동차 정비, 그리고 뭐 큰 트럭에 운전사까지 하기야 못할 것이 없죠. 그 다음에 세밀한 컴퓨터 분야까지! 여자들이 더 잘해요. 여자들의 취업률이 훨씬 증가 됩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남자보다 훨씬 잘한다 그래요. 불평을 좀 하고 잘 흔들려서 그렇지. 얼마나 재치 있어 가지고 잘들 합니다.
이게 여자들이 딱 제 위치만 찾아버리면요. 복음만 제대로 세워 놓아버리면 진짜 이 세대는 하나님이 누구를 쓰시고 계획을 했느냐? 아마 여자들을 쓰시려고 좀 계획을 했다 싶어요. 왜? 여자들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거든요. 남자들은 벌어 먹인다고 정신이 없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벌어온 돈 가지고 얼마든지 활용하고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전도 캠프 나왔는데요. 이것을 생각하고 여러분 진짜하나님 앞에 시간투자 하세요. 그 시간 다른데 다 쓰다가 그때 되어 가지고 못 합니다. 하지말고 하나님 앞에 엄청난 감사가 구체적으로 일어나야 되죠.
그래서 이런 데서부터 완전히 해방 받았습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 법에서" 누구를? 받아합시다. 나를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과거로부터 다 해결되어 버렸습니다. 로마서 8장 2절 아닙니까!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과 사망과 저주 속에, 가문 속에 구속되었던 나를 완전히 해방 받았습니다. 영생입니다. 이 영생이 있음을, 이 생명이 있음을 여러분 확인하라 그랬습니다. '믿는 자들이여 너무 종교에 빠져서 허덕거리지 말고 이것 좀 확인해라! 그렇게 눌려 살지 말라!' 그런 배경이 아닙니까? 이때부터 뭐가 나옵니까? 이때부터 기도에 응답이 나옵니다. 무엇을 구하던지!
그래서 여기 이때부터 뭐라 그랬습니까? 14절에 우리가 이제는 이 사실이 되면, 그 생명의 담보를 가지고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그때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나가지도 못했어요. 죄인이 뭘 기도합니까!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받아합시다. "이때부터 만사형통이다." 만사형통! 집회도 많이 하더라 만은, 그 집회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근본여기서 여러분들이 해방을 받고 이 사실을 알고 확신하고 누리라 이겁니다. 생명 자체를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자체를 누려야 합니다. 잘되고 못되고 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실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나오죠.
그러면 이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여러분들이 해방 받았습니다. 그러면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뭡니까? 자녀가 되었고 권세를 주었습니다. 이 두 가지입니다. 자녀가 되었느냐? 반드시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흔히 우리는 권세! 그럴 때에 자꾸 다른 것을 생각해요. 다른 것을 생각하는데, 여러분 그 히브리어에 '죄' 라는 말이 뭐냐하면, "하말티아!" 이게 뭐냐하면, 옛날에도 교회에서 설명할 때 많이 설명했습니다 만은, 이 궁수가 활을 쏠 때에 이 과녁에, 거기에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정식인데 이게 원래 정석인데 그런데 이게 빗나가 버렸어요. 이것을 가지고 죄라 그랬습니다. 죄!
여러분, 여러분 생명을 가진다는 이 자체가 하나님의 근본 여러분과 저를 향한 목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까? 뭐 위해서? 생명 구하시기 위해서! 왜, 여러분과 저를 이 땅에 보내셔서 생명 주었습니까? 생명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오직 한가지, 하나님의 계획이요. 이게 뜻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뭘 이해해야 되냐 하면요. 생명 주셨다. 뭐, 사단권세 가지고 뭘 한다, 뭘 한다. 할 것 없어요. 그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뭐냐하면, 여기서 이어서 나오는 것이 세계복음화! 이 이야기입니다. 세계를 살려야 되겠다. 이게 하나님의 뜻이고 여기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생리적으로 맞추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붙잡고 기도하는 모든 기도가 다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해적선 이야기를 초기에 많이 안 했습니까! 해적선 타고 있는 사람이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도적질 밖에 안 돼요. 거기서 일단 나와야 돼요. 여러분 사단의 속에 사단의 손에 붙잡혀 있는 이상 아무리 잘 하고 싶어도 받아합시다. "본질상 잘못으로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수준이 아닙니다. 내 수준이 아닙니다. 왜? 사단의 손에 있는 한 이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는 일 마다 엉뚱한 일을 하게 되어 있죠. 거기서 빠져 나왔다. 생명입니다. 내가 한다, 안 한다. 이때부터 이것은 사라져버립니다. 그때부터 주여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양하는 것이 이해가 되거든요. 여기서 노래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건강하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노래가 나오도록 되어 있는데...
제가 딱 아파 보니까요, 딱 안 나오는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어요. 노래가 안 나옵니다. 조금 회복이 되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것이 뭡니까? 노래가 나와요. 하다 못해 유행가라도 나옵니다. 유행가는 잊어버리고 잘 모르니까, 여러분과 제게는 노래가 나옵니다. 그래도 유행가가 나와도 괜찮습니다. 왜? 워낙 인간 체질이 되었는데 어쩝니까! 그런데 이 생명사실 자체가 안되면 건강 차체가 안되면 그게 잘 안나와요. 막 눈만 뜨면 아프다 이렇게 되죠.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거든요. 옛날에 아픔은 눌리는 것도 뭐, 이게 이렇게 가슴이 눌린다, 뭐가 조금만 고단하고 조금만 힘겨우면 눌립니다. 그래도 전에처럼 생각이 안 듭니다. 그것은 별로 내 관심에 없어져 버려요. '주여 이 생명주시고 위로해 주심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찬양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게 되고...
그래서 바울에 생애에 완전히 가는 곳마다 입을 열어 찬송하게 된 배경이 그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 너무 쉽게 되어요. 생명자체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 시간에 아마 따뜻하고 지금 저 꺼야 되겠는데 보니까! 따뜻하고 생명누리라 그러니까! 기분도 좋고 하니까!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그러고 눈을 감고 앉아 계신 분들이 있는데 눈을 뜨세요. 그렇게 되면 생명보다도 다른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뭐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때부터 권세 주었다. 그게 뭡니까? 세상의 정복 권이 세계복음화 권세입니다. 전도할 권세를 주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전도라는 것이 너무 우리가 오해되어 가지고 어렵게 생각합니다. 전도는 뭐냐? 생명 받았다. 생명 받은 사실을 말해주는 겁니다.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요. 자연적으로 감동을 받아 버립니다. 기쁨이 와 집니다. 그러면 믿어라, 안 믿어라 할 것도 없어요. 다 찡그린 얼굴로, 다 죽어 가는 소리로 '예수 믿어라!' 그러면 '너나 잘 믿어라!' 그러고 '얼굴 모습 보니까 내가 오히려 겁난다 전염될까봐!' 그런데 뭐 문제 있다, 없다 상관없이 환하게 웃으면서 정말 주의 평안과 안식을 말씀하게 될 때에 옆에 사람이 봐도 저 사람이 저 웃을 입장이 아니거든, 그런데도 어떻게 웃음이 나올까? 생명입니다.
그러면 뭐가 됩니까? 너무 좋을 것 가지고 많은 것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통 하는 자들에게 어째서 나는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이런 안식과 평안이 없느냐? 생명 들어가게 됩니다. 그게 전도 아닙니까! 그러니 전도하려고 뛰어 다니지 마라 안 그랍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됩니다. 문제는 생명 자체가 안 누려지니까! 자꾸 전도하려고, 자기부터 죽어 있는데, 생명 없는데 옆에 사람 살리려고 그러면 일이 안 되죠. 여러분 가정 허무한 것이 시체를 앞에 놓고 있는 것이 가장 허무한 것 아닙니까? 가장 기쁨이 뭡니까? 생명! 건강한 생명 자체...
우리가 이 사실을 여러분 아실 때에 여러분 교회 왔다, 여러분 교회 오는 정도만 아닙니다. 엎드릴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주여 어찌해서 내가 이 축복과 은혜를 누리고 오늘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기도 할 수 있습니까?' 이 축복에 생명 감사합니다. 내가 잘 했다, 못했다. 아닙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시는 영원한 생명, 행복! 지금 어렵다, 힘들다. 이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 은혜 누리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게 조금만 가면요. 진짜 감사가 나오는 그 반면에 천국영광이 가슴에 부닥치게 됩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 오시겠고 그러니 주님 기다려지는 것 그 정도가 아니죠. 이제 이 땅에서 누려지게 되면요. 이제 뭐냐 주님이 기다려지게 되고 그 영광을 사모하게 됩니다. 바울이 사나 죽으나 오직 사모하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이 아닙니까? 이 구체적인 사실들이 이루어져야 되죠.
그러면 이렇게 되는 그때부터 뭐가 오느냐 하면, 오늘 말씀한 것처럼 기도 응답이 구체적으로 오게 됩니다. 그러면 기도응답은 내가 뭘 잘할 것이나, 못할 것이나, 기도를 잘 해야 응답 받고, 못해야 응답 받는다 그 말이 아닙니다. 좀 전에도 말한 것처럼 생명이 있으면요. 아직까지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내 수준은 아직까지 뭔가 옛날에 쌓였던 그런 수준이기 때문에 잘 못합니다. 엉뚱한 데로 갑니다. 그러니까 암만 그들이 잘 하려고 해도 안 돼요. 제가 숟가락을 우리 손자한테 쥐어 주니까요. 이 놈이 밥을 퍼 가지고 어디로 가느냐? 입에 집어 안 넣고 다른데 퍼 넣는데... 안 돼요. 체질적으로 아직 안 돼요.
여러분이 아무리 하나님 앞에 감격해서 잘 살려고 그래도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숟가락 퍼 가지고 다른데 넣는데... 그렇다고 남의 입에 넣어주면 괜찮은데, 그때는 내가 거들어 줘야 돼요. 옆에서 제가 거들어 줘야 돼요. 그러면 또 기분 좋다고 노래 부르고 막 몸을 흔들고 그러면 옆에서 보는 사람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셔 가지고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녹아버린다." 무엇에? 생명에, 여러분 생명을 누리는 사실에 너무 하나님 기뻐하시고 너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아야 되죠.
이러니까 이때부터 뭐가 없어지느냐? 우리 삶이 이때부터 이어집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빌 4:7)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게 뭡니까? 평안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오는 것이 뭐냐? 모든 일과 사건에서 걱정, 근심, 염려가 조용히 사라집니다. 걱정을 팔자로 알고 앉았잖아요. 밥 먹다가도 걱정! TV보다가도 걱정! 기도하다가 걱정하는 것 때문에 기도가 걱정으로 끌려가요. 이 생명자체가 안 되니까! 그리고 온통 뭐!
그러니 이것이 되니까 뭐냐하면요. 기도할 거리가 별로 없어진다 싶은 생각이 나요. 왜? 다 망상적인 문제가 별로 없으니까! 그러니까 뭐가 나옵니까? 기도할 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뭐냐?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찬송이 나오는 겁니다. 찬송이... 기도할 것이 너무 많으면요. 나올 여가가 없어요. 주여 이것도 해 줘야되고, 저것도 해 줘야되고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은지. 이것도 해주고 그러다가 보면요. 사돈에 팔촌까지 기도한다고... 그걸 가지고 우리가 종교생활이라 그래요. 우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구하게 되는 그런 경우가 되죠. 그러면 전혀 걱정거리 없어집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이죠. 뭡니까? "(벧전 5:7) 염려와 걱정을 다 주께 맡겨버려라" 이때부터 내가 걱정을 주께 맡겨버린다. 이때부터 왜? 그 배경이 뭐냐하면요. 이제 생명이 내 안에 왔고 내 주인은 이제 생명을 주신 그 분이 나에 누구입니까? 주인이요, 주권자이십니다. 여러분 주권자, 주권자! 그래도 이게 실감이 안 되어요.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에 있으니까, 나를 내가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부인이 되어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여기서 이제 이루어집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러면서도 좀 전에도 말씀했습니다. 생명의 주체이신 그 분이 없이 죽어 버리면 누가 역사 합니까? 사단의 배경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배경이 됩니다. 그 분이 있어야 비고 수리되어도 여기에 효과가 나오는 겁니다. 이제 여기서 역사가 나오는 것이죠.
그 분이 없이 비고 수리되면 누가 옵니까? '아이고 여기 깨끗하네!' 그러고 누가 와요? 일곱 귀신이 와 가지고 자리 틀고 앉아요. 더 힘들어요. 왜, 착하게 사는데 왜 잘 살려고 하는데 어려우냐? 그 부분입니다. 우리가 생명가지고도 이것을 놓치고 이 사실이 안 믿어지면요? 그런 것이 자꾸 들어오니까! 구원은 받았지만 삶 자체가 안 되어 집니다. 늘 눌리고 늘 쫓기고...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이 조금만 뭐라 그러면 위축이 되어버리고, 위축 될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러분이 나갈 때마다 흑 암 권세가 깨뜨려지는데 왜 위축이 됩니까! 이 사람들한테 물론 전도도 안 됩니다. 될 이유가 없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권자가 안 되니까 자기가 이제 저절로 포기가 되는 거죠.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것도 어려운 것이 아니더라 구요. 저도 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 부분을 가지고 많이 고민을 했는데요. 시간이 갈수록 오직 그 분이 맞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우리 지난 교사들 중심으로 세미나 했을 때에 참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 주권! 이 문제 가지고 주권자입니다. 이 길 가다가 보면요. 이 취객들이 차를 막 끌어 놓기도 하고 유리창을 뚜드려 부셔버리기도 하고 이렇게 해 놓거든요. 길 가다가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가고 '저 차 어느 놈이 또 뚜드려 부셨냐?' 이래요. 이렇게 한다 그러면, 이 소리까지만 하지만 안 그러면 보고 그냥 지나가요. 그런데 길을 가다가 가 아니고 내가 급한 볼일로 차를 가지고 어디 나가려고 하는데 딱 가보니까 유리창 다 부셔놨고 그 다음에 막 끌어 놓았고 이랬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당장 입이 거친 사람은 별 쌍 시옷자가 다 들어갈 겁니다. '어떤 놈의 쌍 시옷자가 이 짓을 해 놓았냐!' 그러면서 막 화낼 겁니다.
왜, 앞에 부분은 아무 말도 안하고 지나갔는데 왜 뒤에는 그렇게 되느냐? 그 차 주인이 누구입니까? 주인이 자기거든... 여러분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에... 왜? 자기 문제를 건드렸고 손해 되게 만들고 이렇게 될 때에 뭡니까? 신경질 납니다. 불평이 나옵니다. 짜증이 나옵니다. 여러분 이제 내 주인이 누구입니까? 생명주신 하나님이시요, 바로 그 분이 내 안에 계십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누구의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문제예요. 나는 누구입니까? 복음만 있으면 돼요. 그 분에 일이니까? 그러면 뭐가 됩니까? 이것이 딱 이루어지게 되면 걱정, 염려가 떠나버립니다. 문제가 생겼다! 그 분이 하실 것입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를 보라! 그게 모세의 역사 아닙니까!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 더 큰 기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증거 될 것입니다. 이게 마음에 딱 와버립니다. 남편에 문제! 내 주관으로 해서 남편이 이래야 되는데, 저래야 되는데 생각하니까 남편이 '진짜 더럽구나!' 이렇게 되지. 하나님이 주인이라 그러면 더럽던지 말던지 받아합시다. "나와 상관없다!" 그래서 어떤 마음이 나오느냐 하면, 참 이 말하기가 곤란한데, '누가 옆에서' 그 말은 강단에서는 삼가겠습니다.' 개 어떤 짓을 한다' 고 해도 상관 안 합니다. 하나님 바라보게 됩니다. 평안과 안식이 있습니다. 거기에 동요될 필요가 없어요. 교회, 가정, 나 자신까지.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희를 반석 위에 세웠고 내가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그 헬라어에 내가 세우리라는 말은 빠져 있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내가 세우리라 받아합시다. "나는 뭐라고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교회입니다." 너도 누구의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교회! 나는 맞는데 너는 아니다가 아니잖아요. 이게 성질 더러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내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역사입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모든 걱정과 근심염려가 사라집니다. 그 다음에 이때부터 문제될 것이 없어요. 왜? 하나님이 하실 것이니까! 그때부터 나오는 것이 뭡니까? 삶에 안식과 평안!
그 다음에 이때부터 나오는 것이 뭐가 나오느냐?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 왜? 그때부터 들으시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 기도응답 이런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일어나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럴 때에, 생명 주셨습니다. 권세라 그러면 다른 걸로 자꾸 뭔가 막 내가 일하고 이런 것을 생각합니다. 권세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받아합시다. "내가 오직 한가지 권세를 받았다." 그 권세는 세계 정복권! 세계 정복! 전도할 권세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전도한다! 그럴 때에 전도를 막고 있는 것이 뭡니까?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나오는 것이 사단의 추방도 나오고 뭐, 요즘 자꾸 하지 말라고 그래도 확실하니까! 사단 결박도 하고 막 이렇게 이제 나옵니다. 이런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안 나옵니까! 이러니까 이제는 여러분들이 자기도 모르게, 이제 자기도 모르게 여기서 나오는 것이 참 중요한 배경이 나오죠. 삶이 된다! 그러면 불신자는 사단이 주인이고 그 다음에 귀신이 따라 다닙니다. 잘 알죠. 그 다음에 신자들에게는 누가 주인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아버지여!' 그 다음에 누가 역사 합니까? 누가 나를 따라 다닙니까? 성령께서 따라 다닙니다. 범사에... 믿습니까? 이걸 인정을 해야 됩니다. 범사에 성령이 인도하시죠. 그러면 우리가 이제는 어떻게 합니까? 주인이 내가 아니니까! 뭐가 와야 됩니까?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염려, 걱정을 다 버립니다. 주권자인 하나님을 인식하죠. 이때부터 뭐가 있느냐? 나도 모르게 숨은 계산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 오면서도 제가 지난번에 '경건을 이익에 재료로 삼는다.' 이게 교만이거든요. 이게 하나님 떠난 사람들에 특징이거든요. 그러니까 뭐냐하면, 여러분 예수 믿으면서도 예수 이름가지고 자꾸 내가 덕보려고 합니다. 예수 이름 가지고! 예수 이름가지고 뭔가 자꾸 덕보려고 그러는데 여기서 모든 문제가 생깁니다. 덕보려는 배경에 제일 많은 것이 뭐냐? 돈을 많이 벌려고 합니다. 경제적인 덕을 보겠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받아합시다. "돈은 일만 악에 뿌리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에 뿌리다! 그랬어요. 돈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안 되게 되면요. 돈을 쫓아서 돈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되게 되면, 받아합시다.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어떻다 구요? 더하시리라!
암만 말해도 이게 안 되는 것이 앞에 부분에 안 되니까, 이게 안 들어오는 겁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뭘 해야 뭘 얻어낸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이 할 것이 없다니 까요. 여러분 하려고 그러면 하려는 배경이 다른 것인데 이 구체적인 축복이 완전히 임하게 될 때에 숨을 계산이 사라지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그렇고... 우리 주님 앞에 그리고 단순해집니다. 여러분 시간이 갈수록 뭐냐? 자꾸 단순해지거든요. 그러면서 이때부터 나오는 마지막 딱 마음에 담아야 됩니다. 삶에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하고 되고요. 그 다음에 삶에 우선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다음에 내 인생을 건 삶에 전부가 복음 전파입니다. 전도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건축한다! 이렇게 될 때에 여러분 교회 건축한다! 그러면 세상 살릴 교회를 지어야 됩니다. 그냥 보통 짓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보통 여기서 뭐 조금 좋게 짓는다! 이런 배경 가지고는 하나님이 안 주실 것입니다. 아마 세계를 살릴 교회를 지어야 된다. 이렇게 될 때에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이 이 복음이 회복되고 이렇게 되면요. 엄청난 교회가 허락되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왜? 이런 교회가 지금 없으니까!
그리고 이 교인들을 살려야 되니까! 말하자면, 이 대구 시민들 다 모아도 남을 수 있는 이런 교회! 그런 어떤 조직, 시스템들을 해야 됩니다. 뭐, 이제 교회 건축한다! 그럴 때에 영아부, 태아부는 물론 비롯해서 막 금방 여기 뭐 유치부 정도도 이제는 금방 낳으면 들어와도 될 수 있을 정도로 교육시스템이 되고 이렇게 해 가지고 후대를 살려야 되고 구체적으로 이런! 이런 삶들이, 이런 어떤 교회들이 이루어 져야 됩니다.
뭐 조금 나은 교회 그럴 것 같으면, 옛날에 벌써 지었어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기다리신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축복의 교회를, 세상 살릴 축복에 교회와 증거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교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로 붙은 겁니다. 조금 더 낫게 하는 것은 나중에 지으면 되는 것이지만 그래서 붙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할 수 없어요. 터를 비롯해서 모든 지을 것까지 누가 역사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하나 돈 없는데 누가? 염려하지 마세요. 누가 해요? 내가 할 염려가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받아합시다.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자!"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생명이 있어야 삶이 이루어진다.
☞ 구원 받은 자들이 주로 고민하는 것이 삶의 문제입니다. 대부분 자기 기준에서 살아가니까 교회에 올 때마다 죄인의 심정이 되어 항상 눌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 받은 자의 삶이 아닙니다.
☞ 우리는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먼저 내 안에 영생이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을 확인하고 누리는 속에서 삶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2] 생명은 구원 받은 자에게 있다.
☞ 구원은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오신 것입니다. 즉,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알고 내 안에 모실 때 생명을 얻었습니다.
☞ 이 때부터 나의 잘잘못에 관계없이 나를 구원하고 내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하나님께서 평안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렇게 하여, 나의 생각과 마음이 평안해지면 가정과 직장에서 모든 일들이 축복으로 인도됩니다.
[3] 구원의 축복이 넘칠 때 삶이 이루어진다.
☞ 구원의 축복은 곧 해방입니다. 구원받은 나는 사단과 죄에 사로잡혀서 저주 속에 고통받던 상태에서 해방받았습니다. 이 축복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 생명을 얻고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면, 저절로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증거되어 우리가 가진 세계 복음화의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 이 때부터 기도의 응답이 나오고, 우리의 증인된 빛의 삶이 이루어집니다. 즉, 주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셔서 평안을 주시며, 모든 일과 사건에서 걱정, 근심, 염려가 조용히 사라지고 감사와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내 안에 왔고 내게 생명을 주신 그 분이 나의 주권자이시므로, 나의 문제가 그 분의 것이 되어 그 분이 친히 해결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부터 삶의 우선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삶의 전부가 복음 전파가 될 수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내게 생명을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날마다 내게 주신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되게 하소서. 내게 생명을 주신 나의 주권자 하나님 앞에 내 모든 문제를 내려놓으니, 내 주 하나님께서 친히 다 해결해 주시고 홀로 영광 받아 주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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