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 받는자의 복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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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 5: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을 제목을 "핍박받는 자의 복"이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여기에 핍박을 받는다고 할 때에 그냥 자칫 잘못하면 아무나 핍박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이 될 수가 있습니다. 반드시 성경은 뭐라 그랬냐 하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다!' 하는 것은, 이 의가 도대체 뭐냐? 지난주에도 조금 설명을 드렸습니다 만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만은 자꾸 다른 길로 가고 잘못 되고 실패하게 되고 하는 그런 배경이 불신앙이라 그랬습니다. 또 그 불신앙을 하게 하는 배경이 예수는 그리스도 믿지 만은 우리가 워낙 그동안 신앙의 체질이 안 되어 있습니다. 불신앙의 체질이 되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은 믿고 있다고 하면서도 또 불신앙 하게되는 그런 배경!
그래서 불신앙의 체질의 하나 하나 지적해 주는 부분이 오늘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8복을 중심으로 해서 계속 설명을 했습니다. 얼른 보면 여러분들이 간단한 것 같이 느껴질지 모르지만 여기에 우리의 불신앙 하는 체질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그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어떤 체질이 되어야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첫 번부터 많이 언급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될 수 있으면 이걸 가지고 산상수훈이라 그래서 너무 너무 귀중한 말씀이다! 그래서 산에서 가르쳤다고 그래서 산상보훈이라! 그렇게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그 중에서 8복을 맺으면서 제일 마지막 부분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좀 이해가 된다면 앞에 부분과 다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만은, 도대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 뭐냐? 그런데 성도다 아니다 하는 것을 간단히 구분을 한다 그러면, 간단히 표식을 본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로 핍박을 받는 겁니다. 핍박을 당한다! 가장 그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갖는 의는 세상이 갖는 의와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갖는 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는 의와 전혀 다르다는 것보다도 상반됩니다. 반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의라고 말하면 대게 자기로부터 시작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아니 자기로부터 시작이 된다! 그렇게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세상에부터 오는 의라고 말할 때에 그저 선한 일, 착한 행실, 또 종교배경 이런 것들로 되어지죠.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해서는 의로울수록, 세상의 배경을 가지고 오는 의는 의로울수록 악과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종교라는 것이 왜 그렇게 우리가 무섭느냐 하면, 바로 이 배경과 연결됩니다. 인간은 자기를 나타내기를 원하고, 자기가 선하면 선할수록 이 의로워 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는 선하면 선하여 질수록, 자기가 선하여 질수록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데로 원래 타락의 중요한 내용이 뭐냐하면, 아담하와에게 이 사단이 꼬이기를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네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에 어떻게 된다 그랬습니까? 하나님처럼 되겠다! 그랬습니다. 이게 인간 본연의 중요한 흐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의로워 진다고 할 때에 인간적인 의는, 세상 적인 의는 뭐냐하면,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기 중심적!
그래서 세상 적인 의는 대접을 받게 되고, 착하게 되면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게 되고, 또 그런 어떤 것으로 인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의와 다른 어떤 그 인간적인, 종교적인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선행을 하고, 착한 행실을 하고, 그 다음에 꾸준히 노력하고, 애를 쓰고 이렇게 해서 신앙이라는 것과 근본적인 이것이, 기독교인들도 속기 쉬운 것이 신앙이라는 것과 이것을 대치를 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잘못 빠지게되는 그런 경우를 우리가 많이 보게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의는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것입니다. 다른데서 부터 와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신앙생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를 위해서 살아간다! 그럴 때에 따라오는 필연적인 것이 핍박이다. 그렇게 말씀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경에서 말씀한 것이 보면 빌립보서 3장 5절에 보면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절에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절에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그랬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씀했어요. 종교적인 의! 율법으로 자기는 의를 이루기 위해서 전역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 할 정도로 그렇게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 배설물처럼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비로소 새로운 한 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구나!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다! 그래서 우리기독교인들이 특별히 신앙 인들이 갖는 의는 하나님 앞에 선 의입니다. 이걸 바로 이해를 하셔야 돼요. 그러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의다! 그런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의요? 내게서부터, 나로 말미암아, 내가 해서 얻는 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의다!' 이렇게 되니까! 완전히 반대되는 겁니다. 이래서 기독교인들이 어리석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독선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면에 그렇게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럴 때에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까, '내게서 나고 내가 하는 의는 너무 너무 허무한 의다!' 그것은 말할 수 없어요. 도대체 이것은 너무 참 이런 것이 깨닫고 나니까 배설물이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배설물! 그 옛날에 번역에는 똥으로 여겼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뭐 이런 표현은 많이 했습니다 만은, 여러분 화장실 가서 요즘 화장실 시설이잘 되어 있기 때문에 보지도 않고 내어놓아 버립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갈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니 내 안에 의가 있는데 의는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나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나는 죽어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으로 의를 추구하던 나는 죽었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까 문제는 뭐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왜 세상의 의가 기독교인들의 의를 독선이라 말하고 왜 핍박을 하게 되느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세상의 의가 뭐로 나오느냐! 죄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죄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세상에서 잘한다고 잘하는 것이 뭐냐? 죄로 드러나게 되니까 세상에 자기 의을 위해서 의롭다 함을 받고 의로울 것을 약속 받고 살아나가는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핍박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이런 배경에서 기독교인들은 자연적으로 종교와 싸워야 되고 이렇게 되니까! 그 다음에 세상과 싸워야 되고 또 세상에 모든 다른 종교가 기독교와는 비교할 때에 기독교인들이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세상에서 의롭다 하면 의롭다 할수록 하나님 앞에 서면 뭔가 죄인인데, 그러니까 그보다 더 억울한 일이 없고 그 보다더 억울한 사건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세상이 억압하고 누르고 그렇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런 핍박과 이런 어려움 속에서 정말로 견뎌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바로 알아야 됩니다.
반드시 핍박이 오고 반드시 어려움이, 이 어려움과 핍박을 바로 해석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어려움을, 괴로움을, 고통을 바로 해석하지 못하면 넘어진다!" 이게 지금현재! 그러니 사단이 노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어려움과 고통이 올 때에 우리에게 불신앙을 주고, 또 불신앙의 체질을 지금 갖고 있기 때문에 그걸 최대한 이용을 해 버리니까! 그러니까 또 자꾸 넘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이 땅에 참 된 의는 없습니다. 오직 참된 의는 어디서 온다구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중요한 것이 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원한 의를 입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이것은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뭘 이해를 해야 되느냐 하면, 내가 예수 믿고 이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게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엄청난 누구도 흔들릴 수 없고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주권 적인 역사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이게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3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절에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받아합시다.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의 선택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여러분을 이 자리에 세워서 이 자리에 나와 가지고 함께 성경 말씀을 따라할 수 있는 이 은혜의 축복이, '은혜의 축복이지, 우리의 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점을 잘 붙들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그래서 먼저 뭘 이해를 해야 되느냐? 의롭다 하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뭐가 오느냐? 해방의 참 기쁨이 옵니다. 바로 구원의 참 확신이 여기에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참 확신이 내게서 온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서 온 것이다?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다. 이것이 확실하게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앉아 있는 것 이것이 우연히 나왔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벌써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완벽하게 나를 계획하시고 기억하셨다가 때가 되어서, 또 사건을 가지고, 일을 가지고 어느 시간 이 자리에 불렀습니다. 할렐루야! 확실한 이 사건을 여러분 바로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우리는 완전히 죽어 버렸어요. 하나님 앞에는 죄인 중에 죄인으로 사단의 손에 붙잡혀서 영원히 멸망을 받아버렸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떤 상황과 어떤 입장을 만들어 낼 수도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과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주권 적인 은혜에 선물로 구원받았다!" 할렐루야 이 사건을 바로 알아야 됩니다. 우리 혹시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근본 신학적인 배경이 바로 깔려있지 못하면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어요.
요즘 조금 우리 무속사역 때문에 교회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와 있어요. 조금 곤란하게 잘못 이해를 한 사람들이 있어 가지고 조금 밝혀야 되겠다, 싶어요. 내가 무속 사역자에게 가든, 안 가든! 내가 현장에 어느 현장에 가든, 안가든!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지! 뭘 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 교회가 현장을 많이 강조하니까 현장이 없다는 것 때문에 어떤 생각까지 하느냐 하면, 구원 못 받은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더라 구요. 그래서 현장에 가니까 많은 말씀은, 현장에 대해서 이야기 하니까, 현장 못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갈등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여러분 잘 알아야합니다. 현장이 어떤 것이 현장이냐? 바로 여러분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기 전 모든 현장이 현장입니다.
그게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이 일제 36년 치하에 있다가 해방을 받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받았죠. 무조건 일본이 항복하면서 완전히 해방 받았습니다. 사단이 손을 떼면서 해방 받았죠. 그러면 잘 아셔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가만히 있던지 방 밖에 있던지 아프던지 슬프던지 어떻든지 간에 대한민국 국민은 일제 치하에서부터 해방 받았습니다. 아파도 슬퍼도 상관없이 해방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단의 손아귀에 잡혀있던 이 현장을 깨닫는 한 이 현장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사역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좋은 일을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사단의 손아귀에 완전히 빠져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려 버렸습니다. 뭐로? 은혜로 누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이 일을 이루셨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뭘 알아야 되느냐 하면, 거기서부터 오는 고통이나 어려움은 그때부터 해석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때부터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떤 문제에 있다. 어떤 사건에 있다. 어떤 형편에 있다. 상관없이 받아합시다. "나는 해방 받았다! 완전히 해방 받았다!" 해방 받았어요. 아파도 해방 받았고, 슬퍼도 해방 받았고, 그 다음에 어려워도 해방 받았고, 고통 받아도 해방 받았습니다. 받아합시다. "그래도 예수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해방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붙잡아야 비로소 여기에서 뭐가 나올 수 있습니까? 핍박이라는 문제가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여러분이 주를 위해서 산다! 핍박을 받는 문제가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오는 핍박과 여러 가지 문제는 뭐냐? 전부 답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안 되면 오히려 어떤 핍박과 어려움이 온다! 그러면 더 큰 고통으로 빠져 버리게됩니다. 내가 잘못되어 있는 체질이, 불신앙의 체질이 바로 이런 문제로 빠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1절에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누구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라! 그런데 여기 말할 때에 뭐라고 말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해서 불렀나니 그랬습니다. 지명해서 하나님이 일을 이루셨다. 그랬습니다. 이때부터 뭐가 오느냐? 구원의 확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했어요. 구원의 확신이 아니고 구원의 확∼신이 옵니다. 그러면 이때부터 구원의 확신이 오는 그때부터 여러분과 제게 모든 사건과 모든 일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다 해결된 사건입니다. 다 해결되었습니다. 내가 어디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디 가든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벌써 해방되었습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장 2절에 완전히 이 해방의 약속을 말씀했습니다. 이때부터 오는 것이 뭡니까? 여러분과 제게 해방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때부터 성령께서 내 안에, 이걸 자지고 내주라 그랬습니다. 내주! 성령이 여러분 안에 지금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임마누엘!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을 이루시고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천하시면서 이 땅에 개인 개인에게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누가? 성령으로! '성령으로 임마누엘 하신 그 임마누엘의 역사가 개인 개인에게 내주 하셨다!' 그랬습니다. 구약에는 성령께서 왔다가 기분 나쁘면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제일 걱정했던 것이 뭐냐? '성령께서 나를 떠나지 마옵소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나를 떠나지 마옵소서!'
그런데 신약에는 한번 임하면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상한 사람이라도 괜찮습니다.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한번 해방 받았으면 완전히 성령께서 그 안에 내주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다가 실수할 수 있어요. 실수하게 되면 잘못된 우리의 체질이 뭘 생각하느냐? 조금 실수하고 넘어지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아, 하나님이 떠나버렸구나! 하나님이 없구나!' 그래가지고 그것 때문에 또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에 대한 고통이 뭐냐하면요. 욥이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고민이 욥에 최고의 고통에 고민의 절정입니다. 그래서 욥이 고백한 것이 '앞을 봐도 없죠. 옆을 봐도 없죠. 뒤를 봐도 없다!' 그러죠. 하나님이 없다고 그럽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실수했든, 넘어졌든, 또 업어졌든, 자빠졌든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함께 계신다! 그 이야기입니다. 한번 오셨다. 떠나지 않습니다. 이 언약에 사실을 확실히 붙잡아야 돼요. 왜? 이것은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고 내가 그렇게 하겠다!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하나님의 것이라!' 바로 그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바로 이 부분이 바로 안 되면요. 우리 지난날 오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합니까? 청소년들은 더 하죠. 그러면 조금만 잘못에 빠지면 '하나님이 나를 떠났구나!' 여기에 빠져서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확신 가져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 한번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다! 안 떠나십니다. 언제까지 안 떠나시느냐? '영원히 안 떠나신다!' 그랬습니다. 주님 앞에 서서, 영원히 주님 앞에 서서, 주님께 영광 돌리는 그 시간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떠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뭐냐? 임마누엘이라! 그랬습니다. 임마누엘! 그래서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하고 그래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혹시 뭔가 이 연말연초에 이제 각 제직원들에게 이렇게 직원 서약하는 것 그것을 받으려고 하면은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내가 이걸 못해서, 저걸 못해서, 양심에 조금 가책이 안 됩니까!' 또 내려고 그러니까 못하는 것이 많이 있으니까! 그러면 그걸 안 내려고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그래요. 받아합시다.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비로소 해석이 달라져요. 그러면 그때부터 뭐하면 되느냐?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신다. 이게 와져야 돼요. 그리고 사실적으로 기도하게 되면 거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죠. 또 그뿐 아니고 문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많은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많은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핍박을 받는 사람 치고 여러분 구체적으로 이 약속을 잡고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가정과 가문은 다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특별히 기독교의 역사가 핍박의 역사 아닙니까! 그 핍박의 역사가 교회사 적인 역사의 배경도 그렇고 모든 역사의 배경이 핍박을 받는 국가나 가정이나 그 다음에 개인이 이 약속을 붙잡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 속에 서 있는 사람은 그 국가나 그 가정이나 가문에 완전히 가려졌습니다. 뭐 핍박 그러면 로마에 10대 핍박만큼 더 핍박이 있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얼토당토 않는 거짓말을 덮어씌워 가지고 기독교인들에게 완전히 죽일 자로 몰아가지고 죽였잖습니까!
그래도 250년 만에 로마는 완전히 기독교 국가로 바꾸어져 버렸습니다.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언약을 잡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핍박이 온다! 그것이 어려움이 온다! 문제가 온다! 사건이 온다!' 여기에 모든 해석이 다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게 될 때에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되는 그 날부터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 하셨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때부터 성령이 역사 하시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역사 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내 앞에 내주 했다는 것은 구원으로 끝난다 그렇지만 성령의 역사 하신다 그럴 때는 성령의 충만이라! 그러죠.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성령이 임하셔서 성령께서 여러분 삶과 생활을 지배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그때부터 뭐냐? 성경 말씀이 성취되는 내용과 실제를 우리가 보게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조금씩, 조금씩 우리 계속해서 끊이지 않으면 됩니다. 계속해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또 심령이 가난한자! 그 다음에 애통하는 자! 이게 전부 체질입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부족한 줄 알고 이 약속을 붙잡고 넘어졌다가도 일어나고 쓰러졌다가도 또 일어나고 그 다음에 애통하며 일어나고 슬퍼하며 일어나고 그러면서 약속을 붙잡고 나갈 때마다 체질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큰 응답으로 역사 하실 것입니다. 8복의 내용이에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마지막으로 뭐라 그러느냐? 천국을 받을 뿐 아니라 많은 상급을 주시겠다! 약속했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로부터 온 의(義)
☞ 하나님 앞에서 큰 은혜를 받았는데도, 자꾸만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불신앙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신앙의 체질을 지적하여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팔복의 내용입니다.
☞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다는 말씀에서 의(義)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 성도를 구분하는 표가 바로 핍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의는 세상이 가지는 의와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핍박이 따릅니다.
☞ 세상의 의(義)는 자기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의로울수록 악과 연결됩니다. 인간은 자기를 나타내기를 원하기 때문에 선하여질수록 교만하게 됩니다.
☞ 기독교인의 의(義)는 자신의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어리석다는 말을 듣고 핍박이 따라옵니다.
☞ 하나님 앞에 서면 세상에서 잘한다고 하는 것이 죄로 드러나게 되니까, 세상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서서 살아가면서 세상으로부터 배타적이라고 비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도의 표시입니다.
[2] 의(義)와 핍박
☞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영원한 의를 입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한 중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선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 이 사실을 확신할 때부터 주를 위해 받는 모든 핍박이 해답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사건과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다 해결되었습니다.
☞ 여기서부터 내게 오신 성령께서 나와 항상 함께 계시는 사실을 확실히 붙잡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 놓여 있어도 나는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영은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어려움과 핍박에 대해서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으며, 언제나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영원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게 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셨으니, 내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살아가는 순간마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의로 말미암아 세상으로부터 핍박받는 것을 즐거워할 수 있는 확신을 주옵소서. 날마다 담대함으로 살아가되 결코 교만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 5: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을 제목을 "핍박받는 자의 복"이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여기에 핍박을 받는다고 할 때에 그냥 자칫 잘못하면 아무나 핍박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이 될 수가 있습니다. 반드시 성경은 뭐라 그랬냐 하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다!' 하는 것은, 이 의가 도대체 뭐냐? 지난주에도 조금 설명을 드렸습니다 만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만은 자꾸 다른 길로 가고 잘못 되고 실패하게 되고 하는 그런 배경이 불신앙이라 그랬습니다. 또 그 불신앙을 하게 하는 배경이 예수는 그리스도 믿지 만은 우리가 워낙 그동안 신앙의 체질이 안 되어 있습니다. 불신앙의 체질이 되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은 믿고 있다고 하면서도 또 불신앙 하게되는 그런 배경!
그래서 불신앙의 체질의 하나 하나 지적해 주는 부분이 오늘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8복을 중심으로 해서 계속 설명을 했습니다. 얼른 보면 여러분들이 간단한 것 같이 느껴질지 모르지만 여기에 우리의 불신앙 하는 체질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그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어떤 체질이 되어야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첫 번부터 많이 언급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될 수 있으면 이걸 가지고 산상수훈이라 그래서 너무 너무 귀중한 말씀이다! 그래서 산에서 가르쳤다고 그래서 산상보훈이라! 그렇게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그 중에서 8복을 맺으면서 제일 마지막 부분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좀 이해가 된다면 앞에 부분과 다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만은, 도대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 뭐냐? 그런데 성도다 아니다 하는 것을 간단히 구분을 한다 그러면, 간단히 표식을 본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로 핍박을 받는 겁니다. 핍박을 당한다! 가장 그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갖는 의는 세상이 갖는 의와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갖는 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는 의와 전혀 다르다는 것보다도 상반됩니다. 반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의라고 말하면 대게 자기로부터 시작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아니 자기로부터 시작이 된다! 그렇게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세상에부터 오는 의라고 말할 때에 그저 선한 일, 착한 행실, 또 종교배경 이런 것들로 되어지죠.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해서는 의로울수록, 세상의 배경을 가지고 오는 의는 의로울수록 악과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종교라는 것이 왜 그렇게 우리가 무섭느냐 하면, 바로 이 배경과 연결됩니다. 인간은 자기를 나타내기를 원하고, 자기가 선하면 선할수록 이 의로워 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는 선하면 선하여 질수록, 자기가 선하여 질수록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데로 원래 타락의 중요한 내용이 뭐냐하면, 아담하와에게 이 사단이 꼬이기를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네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에 어떻게 된다 그랬습니까? 하나님처럼 되겠다! 그랬습니다. 이게 인간 본연의 중요한 흐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의로워 진다고 할 때에 인간적인 의는, 세상 적인 의는 뭐냐하면,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기 중심적!
그래서 세상 적인 의는 대접을 받게 되고, 착하게 되면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게 되고, 또 그런 어떤 것으로 인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의와 다른 어떤 그 인간적인, 종교적인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선행을 하고, 착한 행실을 하고, 그 다음에 꾸준히 노력하고, 애를 쓰고 이렇게 해서 신앙이라는 것과 근본적인 이것이, 기독교인들도 속기 쉬운 것이 신앙이라는 것과 이것을 대치를 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잘못 빠지게되는 그런 경우를 우리가 많이 보게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의는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것입니다. 다른데서 부터 와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신앙생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를 위해서 살아간다! 그럴 때에 따라오는 필연적인 것이 핍박이다. 그렇게 말씀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경에서 말씀한 것이 보면 빌립보서 3장 5절에 보면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절에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절에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그랬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씀했어요. 종교적인 의! 율법으로 자기는 의를 이루기 위해서 전역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 할 정도로 그렇게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 배설물처럼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비로소 새로운 한 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구나!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다! 그래서 우리기독교인들이 특별히 신앙 인들이 갖는 의는 하나님 앞에 선 의입니다. 이걸 바로 이해를 하셔야 돼요. 그러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의다! 그런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의요? 내게서부터, 나로 말미암아, 내가 해서 얻는 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의다!' 이렇게 되니까! 완전히 반대되는 겁니다. 이래서 기독교인들이 어리석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독선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면에 그렇게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럴 때에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까, '내게서 나고 내가 하는 의는 너무 너무 허무한 의다!' 그것은 말할 수 없어요. 도대체 이것은 너무 참 이런 것이 깨닫고 나니까 배설물이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배설물! 그 옛날에 번역에는 똥으로 여겼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뭐 이런 표현은 많이 했습니다 만은, 여러분 화장실 가서 요즘 화장실 시설이잘 되어 있기 때문에 보지도 않고 내어놓아 버립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갈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니 내 안에 의가 있는데 의는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나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나는 죽어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으로 의를 추구하던 나는 죽었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까 문제는 뭐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왜 세상의 의가 기독교인들의 의를 독선이라 말하고 왜 핍박을 하게 되느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세상의 의가 뭐로 나오느냐! 죄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죄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세상에서 잘한다고 잘하는 것이 뭐냐? 죄로 드러나게 되니까 세상에 자기 의을 위해서 의롭다 함을 받고 의로울 것을 약속 받고 살아나가는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핍박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이런 배경에서 기독교인들은 자연적으로 종교와 싸워야 되고 이렇게 되니까! 그 다음에 세상과 싸워야 되고 또 세상에 모든 다른 종교가 기독교와는 비교할 때에 기독교인들이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세상에서 의롭다 하면 의롭다 할수록 하나님 앞에 서면 뭔가 죄인인데, 그러니까 그보다 더 억울한 일이 없고 그 보다더 억울한 사건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세상이 억압하고 누르고 그렇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런 핍박과 이런 어려움 속에서 정말로 견뎌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바로 알아야 됩니다.
반드시 핍박이 오고 반드시 어려움이, 이 어려움과 핍박을 바로 해석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어려움을, 괴로움을, 고통을 바로 해석하지 못하면 넘어진다!" 이게 지금현재! 그러니 사단이 노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어려움과 고통이 올 때에 우리에게 불신앙을 주고, 또 불신앙의 체질을 지금 갖고 있기 때문에 그걸 최대한 이용을 해 버리니까! 그러니까 또 자꾸 넘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이 땅에 참 된 의는 없습니다. 오직 참된 의는 어디서 온다구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중요한 것이 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원한 의를 입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이것은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뭘 이해를 해야 되느냐 하면, 내가 예수 믿고 이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게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엄청난 누구도 흔들릴 수 없고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주권 적인 역사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이게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3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절에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받아합시다.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의 선택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여러분을 이 자리에 세워서 이 자리에 나와 가지고 함께 성경 말씀을 따라할 수 있는 이 은혜의 축복이, '은혜의 축복이지, 우리의 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점을 잘 붙들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그래서 먼저 뭘 이해를 해야 되느냐? 의롭다 하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뭐가 오느냐? 해방의 참 기쁨이 옵니다. 바로 구원의 참 확신이 여기에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참 확신이 내게서 온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서 온 것이다?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다. 이것이 확실하게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앉아 있는 것 이것이 우연히 나왔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벌써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완벽하게 나를 계획하시고 기억하셨다가 때가 되어서, 또 사건을 가지고, 일을 가지고 어느 시간 이 자리에 불렀습니다. 할렐루야! 확실한 이 사건을 여러분 바로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우리는 완전히 죽어 버렸어요. 하나님 앞에는 죄인 중에 죄인으로 사단의 손에 붙잡혀서 영원히 멸망을 받아버렸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떤 상황과 어떤 입장을 만들어 낼 수도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과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주권 적인 은혜에 선물로 구원받았다!" 할렐루야 이 사건을 바로 알아야 됩니다. 우리 혹시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근본 신학적인 배경이 바로 깔려있지 못하면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어요.
요즘 조금 우리 무속사역 때문에 교회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와 있어요. 조금 곤란하게 잘못 이해를 한 사람들이 있어 가지고 조금 밝혀야 되겠다, 싶어요. 내가 무속 사역자에게 가든, 안 가든! 내가 현장에 어느 현장에 가든, 안가든!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지! 뭘 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 교회가 현장을 많이 강조하니까 현장이 없다는 것 때문에 어떤 생각까지 하느냐 하면, 구원 못 받은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더라 구요. 그래서 현장에 가니까 많은 말씀은, 현장에 대해서 이야기 하니까, 현장 못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갈등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여러분 잘 알아야합니다. 현장이 어떤 것이 현장이냐? 바로 여러분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기 전 모든 현장이 현장입니다.
그게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이 일제 36년 치하에 있다가 해방을 받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받았죠. 무조건 일본이 항복하면서 완전히 해방 받았습니다. 사단이 손을 떼면서 해방 받았죠. 그러면 잘 아셔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가만히 있던지 방 밖에 있던지 아프던지 슬프던지 어떻든지 간에 대한민국 국민은 일제 치하에서부터 해방 받았습니다. 아파도 슬퍼도 상관없이 해방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단의 손아귀에 잡혀있던 이 현장을 깨닫는 한 이 현장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사역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좋은 일을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사단의 손아귀에 완전히 빠져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려 버렸습니다. 뭐로? 은혜로 누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이 일을 이루셨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뭘 알아야 되느냐 하면, 거기서부터 오는 고통이나 어려움은 그때부터 해석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때부터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떤 문제에 있다. 어떤 사건에 있다. 어떤 형편에 있다. 상관없이 받아합시다. "나는 해방 받았다! 완전히 해방 받았다!" 해방 받았어요. 아파도 해방 받았고, 슬퍼도 해방 받았고, 그 다음에 어려워도 해방 받았고, 고통 받아도 해방 받았습니다. 받아합시다. "그래도 예수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해방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붙잡아야 비로소 여기에서 뭐가 나올 수 있습니까? 핍박이라는 문제가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여러분이 주를 위해서 산다! 핍박을 받는 문제가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오는 핍박과 여러 가지 문제는 뭐냐? 전부 답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안 되면 오히려 어떤 핍박과 어려움이 온다! 그러면 더 큰 고통으로 빠져 버리게됩니다. 내가 잘못되어 있는 체질이, 불신앙의 체질이 바로 이런 문제로 빠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1절에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누구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라! 그런데 여기 말할 때에 뭐라고 말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해서 불렀나니 그랬습니다. 지명해서 하나님이 일을 이루셨다. 그랬습니다. 이때부터 뭐가 오느냐? 구원의 확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했어요. 구원의 확신이 아니고 구원의 확∼신이 옵니다. 그러면 이때부터 구원의 확신이 오는 그때부터 여러분과 제게 모든 사건과 모든 일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다 해결된 사건입니다. 다 해결되었습니다. 내가 어디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디 가든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벌써 해방되었습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장 2절에 완전히 이 해방의 약속을 말씀했습니다. 이때부터 오는 것이 뭡니까? 여러분과 제게 해방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때부터 성령께서 내 안에, 이걸 자지고 내주라 그랬습니다. 내주! 성령이 여러분 안에 지금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임마누엘!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을 이루시고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천하시면서 이 땅에 개인 개인에게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누가? 성령으로! '성령으로 임마누엘 하신 그 임마누엘의 역사가 개인 개인에게 내주 하셨다!' 그랬습니다. 구약에는 성령께서 왔다가 기분 나쁘면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제일 걱정했던 것이 뭐냐? '성령께서 나를 떠나지 마옵소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나를 떠나지 마옵소서!'
그런데 신약에는 한번 임하면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상한 사람이라도 괜찮습니다.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한번 해방 받았으면 완전히 성령께서 그 안에 내주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다가 실수할 수 있어요. 실수하게 되면 잘못된 우리의 체질이 뭘 생각하느냐? 조금 실수하고 넘어지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아, 하나님이 떠나버렸구나! 하나님이 없구나!' 그래가지고 그것 때문에 또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에 대한 고통이 뭐냐하면요. 욥이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고민이 욥에 최고의 고통에 고민의 절정입니다. 그래서 욥이 고백한 것이 '앞을 봐도 없죠. 옆을 봐도 없죠. 뒤를 봐도 없다!' 그러죠. 하나님이 없다고 그럽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실수했든, 넘어졌든, 또 업어졌든, 자빠졌든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함께 계신다! 그 이야기입니다. 한번 오셨다. 떠나지 않습니다. 이 언약에 사실을 확실히 붙잡아야 돼요. 왜? 이것은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고 내가 그렇게 하겠다!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하나님의 것이라!' 바로 그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바로 이 부분이 바로 안 되면요. 우리 지난날 오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합니까? 청소년들은 더 하죠. 그러면 조금만 잘못에 빠지면 '하나님이 나를 떠났구나!' 여기에 빠져서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확신 가져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 한번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다! 안 떠나십니다. 언제까지 안 떠나시느냐? '영원히 안 떠나신다!' 그랬습니다. 주님 앞에 서서, 영원히 주님 앞에 서서, 주님께 영광 돌리는 그 시간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떠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뭐냐? 임마누엘이라! 그랬습니다. 임마누엘! 그래서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하고 그래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혹시 뭔가 이 연말연초에 이제 각 제직원들에게 이렇게 직원 서약하는 것 그것을 받으려고 하면은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내가 이걸 못해서, 저걸 못해서, 양심에 조금 가책이 안 됩니까!' 또 내려고 그러니까 못하는 것이 많이 있으니까! 그러면 그걸 안 내려고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그래요. 받아합시다.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비로소 해석이 달라져요. 그러면 그때부터 뭐하면 되느냐?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신다. 이게 와져야 돼요. 그리고 사실적으로 기도하게 되면 거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죠. 또 그뿐 아니고 문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많은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많은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핍박을 받는 사람 치고 여러분 구체적으로 이 약속을 잡고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가정과 가문은 다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특별히 기독교의 역사가 핍박의 역사 아닙니까! 그 핍박의 역사가 교회사 적인 역사의 배경도 그렇고 모든 역사의 배경이 핍박을 받는 국가나 가정이나 그 다음에 개인이 이 약속을 붙잡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 속에 서 있는 사람은 그 국가나 그 가정이나 가문에 완전히 가려졌습니다. 뭐 핍박 그러면 로마에 10대 핍박만큼 더 핍박이 있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얼토당토 않는 거짓말을 덮어씌워 가지고 기독교인들에게 완전히 죽일 자로 몰아가지고 죽였잖습니까!
그래도 250년 만에 로마는 완전히 기독교 국가로 바꾸어져 버렸습니다.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언약을 잡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핍박이 온다! 그것이 어려움이 온다! 문제가 온다! 사건이 온다!' 여기에 모든 해석이 다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게 될 때에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되는 그 날부터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 하셨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때부터 성령이 역사 하시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역사 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내 앞에 내주 했다는 것은 구원으로 끝난다 그렇지만 성령의 역사 하신다 그럴 때는 성령의 충만이라! 그러죠.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성령이 임하셔서 성령께서 여러분 삶과 생활을 지배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그때부터 뭐냐? 성경 말씀이 성취되는 내용과 실제를 우리가 보게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조금씩, 조금씩 우리 계속해서 끊이지 않으면 됩니다. 계속해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또 심령이 가난한자! 그 다음에 애통하는 자! 이게 전부 체질입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부족한 줄 알고 이 약속을 붙잡고 넘어졌다가도 일어나고 쓰러졌다가도 또 일어나고 그 다음에 애통하며 일어나고 슬퍼하며 일어나고 그러면서 약속을 붙잡고 나갈 때마다 체질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큰 응답으로 역사 하실 것입니다. 8복의 내용이에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마지막으로 뭐라 그러느냐? 천국을 받을 뿐 아니라 많은 상급을 주시겠다! 약속했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로부터 온 의(義)
☞ 하나님 앞에서 큰 은혜를 받았는데도, 자꾸만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불신앙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신앙의 체질을 지적하여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팔복의 내용입니다.
☞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다는 말씀에서 의(義)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 성도를 구분하는 표가 바로 핍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의는 세상이 가지는 의와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핍박이 따릅니다.
☞ 세상의 의(義)는 자기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의로울수록 악과 연결됩니다. 인간은 자기를 나타내기를 원하기 때문에 선하여질수록 교만하게 됩니다.
☞ 기독교인의 의(義)는 자신의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어리석다는 말을 듣고 핍박이 따라옵니다.
☞ 하나님 앞에 서면 세상에서 잘한다고 하는 것이 죄로 드러나게 되니까, 세상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서서 살아가면서 세상으로부터 배타적이라고 비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도의 표시입니다.
[2] 의(義)와 핍박
☞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영원한 의를 입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한 중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선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 이 사실을 확신할 때부터 주를 위해 받는 모든 핍박이 해답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사건과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다 해결되었습니다.
☞ 여기서부터 내게 오신 성령께서 나와 항상 함께 계시는 사실을 확실히 붙잡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 놓여 있어도 나는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영은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어려움과 핍박에 대해서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으며, 언제나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영원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게 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셨으니, 내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살아가는 순간마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의로 말미암아 세상으로부터 핍박받는 것을 즐거워할 수 있는 확신을 주옵소서. 날마다 담대함으로 살아가되 결코 교만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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