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베드로의 통곡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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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26: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마 26: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마 26: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마 26: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 하노라 하더라
(마 26: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마 26: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오늘 2003년 마지막 주일이 되겠습니다. 2003년도는 지나갑니다. 2004년도가 오는데 참 이상한 것은, 뭐 그 날이 그 날이고 그렇지만 문제는 한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온다고 하면 마음이 달라져요. 문제는 사람도 별 사람 없어요. 2003년도에 그 사람이 2004년도에는 얼굴이 달라져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여러분 역시 다음 주에 오게 되어도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뭐가 하나 달라요? 마음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달라지는 것은 그냥 무심하게 있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과 생각이 달라지게 될 때에 그 사람의 삶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 다음에 특별히 마음이 달라지게 되는 것은, 특별히 신앙생활에서는 뭐가 있어야 됩니까? 믿음의 역사가 달라지게 됩니다. 완전 새로운 인생들이 되어질 수가 있죠.

오늘 이런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면서 상당히 의미 있는 그런 제목이 되겠습니다. "베드로의 통곡"이라고 그랬습니다. 사실은 지나간 시간은 아쉽고 어떤 면에서 억울하기도 하고, 통곡하고도 싶은 그런 날들이 많죠. 늘 추억은 아름답고, 참 추억은 눈물겹고, 현실은 더럽고, 미래는 안보이고, 가물가물 거리고, 상당히 그 모순이 많이 있어요. 사는데 있어서 어떤 면에서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고생스럽게 살아도 추억은 아름다워요.

저도 시골 생활이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지금 생각하면 옛날에 고생하던 그런 때였지만, 먹는 것도 잘 얻어먹지도 못 먹고 그럴 때였지만, 요즘 같으면 물도 없어요. 옛날에 도랑물에서 고기 잡던 추억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요즘에 돌이켜 보면 그건 추억이 될 것도 아닌데, 그러나 인간이란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리 좋아도 그게 현실은 즐겁다, 감사하다! 이게 잘 안됩니다. 현실은 늘 더럽고, 피곤하고, 어렵고, 미래는 복음을 안 가지고 그냥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그저 가물가물 거려요. 그래서 미래를 알기 위해서 점도 치고, 미래의 불안 때문에 이러 저리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베드로의 통곡"이라고 그럴 때에 사실은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은, 그런 어떤 이야기들이 다 나올 수는 없고 오늘 간단하게 어찌해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런 자리에서 통곡을 하게 되었던가? 얼른 생각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까 억울해서 통곡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닙니다. 정 반대의 그런 어떤 것들을 보게 됩니다.

원래 베드로가 예수님께 맹세하고 다짐한 게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네가 닭이 세 번 울고 나면 나를 부인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그러느냐? 한사코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거짓말 한 것이 아니거든요. '내 생명을 걸고 예수님을 따르겠다!' 그러니까 다른 제자들도 똑같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끌려가는 동안에 다른 제자들은 전부 줄행랑을 다 해버렸어요. 그래도 베드로는 용감했습니다. 다른 제자 다 도망쳐버렸는데 혼자서 바로 뒤따라가지는 못하고 그저 보일 정도에서 멀찌감치 따라갔습니다.

따라 가면서 모른척하고 그러면서 딴전 피우고,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그것도 적극적으로 못 박는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고, 그저 비자들하고 모여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서 있는데, 농담하는 것 들으면서 뒤따라갔죠. 그렇게 따라 갔는데, 여자가 하나 비자라는 것은 몸종 비슷하게 요즘은 그런 것이 우리나라 제도에는 없습니다. 그 비자 한 여자가 와서, '네가 예수를 따라다니는 사람 아니냐? 너도 그 당이다!' 이러니까! 첫 번 부인하고, 두 번째 부인하고, 그 다음에 세 번째 정도 가서는 예수님 모른다고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을 했습니다.

그때에 나는 예수님의 심정을 좀 볼 수가 있어요. 뭐냐하면, 그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면서 그래도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쳤는데 베드로라도 따라오니까, 좀 우리가 안되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위로가 되는데 그 가만히 들려오는 소리나 이야기가 어느 시간쯤 와 가지고 따라와서 위로가 되었다 싶은데, 절망적인 소리가 나오거든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에 저주하며 모른다고 부인했거든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느냐 싶어요. 그 누가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뒤돌아 보셨다!'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눈을 마주쳤어요. 그러자 닭이 울었죠.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그래서 밖에 나가서 조용히, 그것도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서 통곡을 못하고, 통곡은 정말 뼈저린 참 너무너무 연약해서 어쩔 줄 모르는 이 베드로의 통곡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어떤 교단에서는 십자가 위에다가 뭘 올려놓느냐 하면, 수탉을 몇 개 올려놓고 있잖아요. 그런걸 많이 봤죠. 그러면 십자가를 쳐다볼 때마다 베드로처럼 통곡하라는 그 이야기입니다. 더 나가서 '말씀을 생각하라!'는 그런 암시적인 뜻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여기서 조금 기억을 해야 될 것이, 베드로가 지은 죄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예수님께 너무 실망을 주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박는 그 사람들보다도 더 못박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제자 하나 따라오는 것 뭔가 위로보다도 인간적으로 봐서 고맙다고 생각하실 수 있었을 것인데, 따라온다는 이 제자녀석이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느냐? 이런 의미에서 볼 때에 가룟유다 보다 죄가 덜하다, 더하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면에서 똑같습니다. 오히려 베드로의 죄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통곡 속에 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 의미가 어떤 의미로서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사실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때에 의도를 가지고 부인한 게 아닙니다. 마음으로는 정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로 가는 길이 너무 아프고 괴로웠지만, 그러나 용감하게 뭔가 가서 대적할 수 있는 용기는 없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따라가다가 갑자기 받은 질문이거든요. 그 갑자기 질문을 받고 나니까 엉겁결에, 자기도 모르게 부인을 했습니다. 그게 한번 그렇게 되니까, 두 번! 또 세 번째는 이미 부인하게 되었으니까, 확실하게 자기가 살려고... 인간의 얕은 생각 아닙니까! 그러면서 뭐 사는 것만 생각하고 살려고 부인을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쳐다보시고, 베드로는 이 사실을 예수님과 함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이 어떠했겠어요? 아마 기가 막혔을 겁니다. 나는 인간적으로 그때에 베드로의 심정을 느껴 볼 수 있다고 그러면 아마 여러분 지금 이 순간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가슴이 찡 할 것 같아요. 그 눈을 쳐다보는 순간에, 그 다음에 또 닭이 세 번 울 때에 견딜 수 없어서 나가서 통곡했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서 또 표 낼 수는 없고, 그러니 진짜 흐느끼는 느낌으로 통곡을 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오늘 길게 말씀을 드리지는 못하고, 여기서 우리가 당하는 사건과 똑같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엉겁결에 말씀을 떠나고, 엉겁결에 자기유익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비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섭섭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멀리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도 모르고 있어요. 만약에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그러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죠. 그래서 특별히 이 연말에, 마지막 시간에 이 말씀이 나왔다는 것은 참 의미가 있다 싶어요.

여러분들이 지난 한해에 내가 신앙 생활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예수님이 나를 쳐다보실 때에 얼마나 분노할 수 있는 괘심한 그런 행동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 살려고, 자기 유익 때문에, 자기 욕심 때문에, 막말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버린 자들인 가룟유다 보다 더한 베드로의 행동들이 우리에게는 너무 많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나를 향하여 우리 주님은 특별히 성령으로 여러분들과 저를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고 계십니다. 아마 이 사실을 믿음으로 생각만 해도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눈길과 베드로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 베드로는 전혀 새로운 생각으로 바꾸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새로운 생각으로 바꾸어지는 그런 모든 것이 베드로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거짓말이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그리고 전심을 다해서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라가겠다고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것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결국 감정이나, 느낌이나, 이런 것들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구나! 뭐가 성취되느냐? 말씀이 성취되어 집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내 인생, 개인이 그 다음에 우리의 삶에 있어서, 또 어떤 사건이나 일이, 내 느낌이나 내 생각이 성취되는 게 아닙니다. 말씀이 성취되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참 갈등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알다시피 지병이 있으니까, 어쩔 때는 참 이 감정의 변동이 많을 때가 있어요. 밤에 기도할 때는 뭔가 결단해서 하다가 아침에 딱 일어나서 또 힘이 없으면 그 결단이 다 무산되어 버리고, 마치 뭡니까? 이 낙엽처럼 왔다갔다하더라 구요. 그런데 지금까지 쭉 오면서 내 개인적인 것, 뭐 다른 것, 큰 것은 놓아두고 내 개인적으로 지나오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지, 내 느낌이나 감정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더라 구요. '곧 죽겠구나!' 그렇다고 죽는 게 아니라, 또 살아난다! 뭐 건강해 지면, '아, 이제 건강을 회복하겠구나!'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가졌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어쨌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엄청난 역사 속에, 내 인생의 과정 속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구나!' 이 사실이 너무 절실하게 부닥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교회 일이나 교단 적인 일이나, 교단 적으로도 앞으로 여러분들이 아마 기도하시면서 우리가 기다리고 또 하나님의 뜻이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우려도 되고, 또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 있는지 때가 되어서 정말 천만요원을 찾고 세계 복음화의 문을 여시려고 그러시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상당히 뭔가 이 합동 측으로 가는 것이 진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뭐 이렇게 정죄하고 그런 과정보다도 진심으로 뭔가 이 합동을 해야 되겠다! 다시 들어가야 되겠다! 이런 과정이 되어 가지고, 아마 성명서가 나오게 되면 일단은 구실도 드려야 되니까, '이렇게 나온 것은 잘못되었다!' 이렇게 성명서도 나오고, 아마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때 혹시 여러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잘못한 것이 있던, 없던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우리가 들어가야 되죠.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세계복음화의 문을 또 열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많은 경우 닫혀있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또 우리 교회로서는 큰 교회를 건축을 하면서 이제 문이 열리게 되면 핵심도 이 자리 가지고는 되지도 않아요. 그 다음에 아마 핵심과 합숙 같은 것은 터져 나가게 됩니다. 전부 오게 되어 있어요. 그런 과정에서 뭔가 사람의 생각이나 사람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하나님이 작업해 가시는 것을 제가 볼 수 있거든요.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지, 인간의 감정이나 느낌으로 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면 왜, 만약에 합치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전도훈련은 없어집니다. 나올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훈련을 옳게 못 받았다! 그러면 억울한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혹시라도 남은 시간 동안에 얼마나 될는지 모르지만, 그것도 1,2년 안에 금방 될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아마 부지런히 훈련을 다녀야 될 것입니다. 누가 훈련을 그렇게 시킬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안되어요. 그리고 특별히 우리 교회가 처음에 잘 따라다니다가 진짜 본격적인 훈련이 왔을 때는, 제 건강문제도 있지만 그만 많은 경우 쳐져 버렸어요. 훈련에 참여를 안 하면, 훈련을 안 하면 체질이 안 바꾸어집니다. 훈련을 해야 생각과 체질이 바뀌어집니다. 그러니 전도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체질로 바꾸어지게 되면 저절로 되어지는데, 그게 안되니까 자꾸 옛날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뭐가 염려스러우냐 하면, 묵은 디이 교인일수록 체질이 안 바꾸어지거든요. 그래서 같이 합쳐놓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전도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리스도도 잊어버리고, '이상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 역사 속에 우리교회가 큰 교회를 세우면서,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서 후대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자신들이 그리스도로 뿌리를 내려서, 복음에 확실히 안 서고 뿌리를 못 내린다! 그렇게 안되면, '후대 살린다!' 말이 안되거든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되겠다!' 이 말을 조금 부탁해야 되겠다 싶어요. 훈련!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특별히 묵은 디이 교인들이 참여하세요. 신학원을 비롯해서 선교사 훈련원 우리 장로님들도 계십니다 만은, 선교사 훈련원 다 나오세요. 그래도 안 되는데 워낙 깊이 들어 있거든요. 저도 제 자신의 어떤 걸 느끼느냐 하면, 무슨 일이 나오면 뭐부터 먼저 나오느냐 하면, 율법부터 먼저 나옵니다. 그러다가 '아, 이게 율법이구나!' 율법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체가 기적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니 여러분들이 지금 뭐 벌서 오랜 신앙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율법이다 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이라도 축복입니다. 그건 감사한 일이에요. 그런데 여기다가 진짜 훈련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그냥 그게 계속해서 습관이 되어져 버리는 겁니다. 이게 바꾸어지지 않아요. 이걸 바꿀 수 있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 훈련 아닙니까! 합숙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훈련을 받아 왔는데, 아마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께서 이제 훈련을 어지간히 시켜서 세계복음화의 문을 여는 시간이 왔는가 보다!' 그렇다 그러면 정말 이 훈련을 다져야 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런 시간 속에서 우리가 다져야 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본 교단에 들어가게 되면, 옛날 교단에 들어가게 되면, 류 목사님 얼굴은 구경하기 힘듭니다. 부흥강사로 뛰어다니기 바쁘고, 우리는 우리 교회대로 지금까지 훈련받은 것 가지고 우리가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증인으로 서야될 이런 시간이 왔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상당히 중요한 그런 시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약에 어떤 면에서 지금까지 이단이라는 이런 누명을 쓰면서 왔을 때에, 이 누명을 쓰고 왔는데 지금에 와서 합쳤다는 것 때문에 전도라는 이 축복된 역사를 놓쳐버린다! 그러면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더 억울한 것이 없고, 그 보다더 고통스러운 것이 없어요. 분명히 아실 것을 성경에 말씀대로, 말세에 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 된 후에야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 복음을 증거 하시기 위해서 여러분과 저를 훈련시켰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속에서 우리가 중요한 시기에 살게 있는 것을 알고, 나는 건축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저 교회가 보통 교회가 아니다! 우리가 건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왜? 이 교회를 통해서 정말 대구를, 진짜 복음화 시켜야 합니다. 진짜 선교와 전도에, 그뿐 아니고 우리가 후대를 살린다고 말만하고 있는데, 우리가 후대 살리고 있는 일이 뭐가 있습니까? 사실은 어떤 면에서 이게 지금 안되어 있거든요. 시설이 좀 부족하다! 안 된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여러분 중심에 후대 살린다 그럴 때에, 후대 살리기 위해서는 여러분부터, 나부터 먼저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죽고 무슨 후대를 살립니까! 엄청난 사명들이 지금 여러분과 제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서 느끼는 것은 완전 우상입니다. 그리고 지금 말세의 사건들이 뭐 줄이어서 터져 나오잖아요. 여러분들이 우리가 그동안 '우리만 안 당하면 괜찮지!'싶은 생각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만 안 당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말세에는 엄청난 재난과 재앙들이 다가 오는데, 그래도 복음전파를 위해서 여러분과 저를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뭐 잘났다고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 한가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시고 역사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좀 하고 있습니다. 좀 걱정을 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 면에서 염려를 하는 분들도 있고, 그러면 마음으로 어떻게 기도하느냐? '하나님, 교회를 건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래서 저는 게아시에 대한 생각을 해봅니다. 걱정을 할 때에, '저희 눈을 열어주옵소서!' 여러분 우리보다도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요, 어떤 사람보다도 우리 형편과 처지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거기에다가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의 마음과 생각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모든 사건과 일들을 정말 그 방향에다가 맞추었을 때에, 축복하신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엄청난 은혜의 역사가 약속이 되어있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이걸 지나치지 마시고, 오늘 제가 이렇게 프로젝트를 하니까 생각이 좀 나는데 이 말을, 이 건축에 대해서 조금 강조를 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정말 진짜 축복 속에 섰다고 그러면서 축복보다는 부담을 더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이런 시간은 한번도 안 오는 수가 많습니다. 이런 축복과 은혜의 기회가 왔다는 것은, 여러분 너무 너무 귀중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에게 뭔가 자격을 따지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작위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일이 진행이 되어 가면서 하나님 앞에 대들 때가 있어요. '하나님, 교회건축을 시작해놓고 목사가 건강해서 팔팔 뛰어도 힘드는 그럴 때인데, 왜 목사 반죽여가면서 옳게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그렇게 하시느냐고...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렇게 막 그냥 대들 때가 있어요. 워낙 답답하니까! 그러나 한편 마음에 돌아오는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내 마음에 느낀 것이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건축해 놓고, 교회건축한 일과 사건 때문에 어떤 면에서 축복과 은혜를 받을 수 있는데도, 혹시 교만과 자만 때문에 다른 데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절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내 개인적인 어떤 것, 자랑하는 이런 마음이나 이런 생각, 혹시라도 우리 속에 있다면 여러분 통곡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하시는 역사를 이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제는 이 베드로의 통곡을 보면서 정말 가룟 유다 보다도 더 엄청난 죄를 저질렀습니다 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참 중요한 겁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이 체험될 때에 뭐가 나오느냐? 진실한 통곡이 나옵니다. 회개가 나올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뭐가 없어졌느냐? 너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건에 뻔뻔스러워져 가지고, 회개를 못하는 사람을 많이 봐요. 실컷 잘못해놓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고 대들고, 그러나 그 사람은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첫 번 불림을 받을 때도, 고기 잡다가 밤새도록 잡아도 고기를 못 잡았는데, '깊은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 그럴 때에,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해서 던집니다. 그랬을 때에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그때에 베드로가 한 말이 뭡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그랬습니다. 말씀이 성취되어야 자신의 부족을 깨닫습니다. 혹시 회개라는 것이 안나오면, 말씀 성취가 여러분들의 삶에 실제로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성취가 이루어지게 되면, 그 주님 앞에, 그 엄청난 축복의 주님 앞에, '나는 너무 부족하구나!' 그리고 '그 은혜를 너무 많이 입었구나!' 저절로 내가 하나님 앞에 이 심정, 이 마음, 이 생각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회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마지막 불림을 받아서, 고향에 돌아와서 또 물고기를 잡았을 때도 똑같이 말씀이 성취될 때에, 베드로는 자기 자신이 '너무 잘못했구나!'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여기서도 우리 신앙생활에 적은 것이라도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이 내게 체험되면, 뭐가 나옵니까? 회개가 나옵니다. '주여, 이렇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이렇게 은혜 주셨는데 내가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이런 회개가 터져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불꽃같은 눈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셨는데, 나는 주님을 너무 몰라서 멀리 떠났습니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절로 뭡니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는 이 말이 너무 절실한 말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이 성취된 사실을 보고, 완전히 '하나님 앞에 말씀 성취 외에 다른 것이 없구나!'라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이 언제 베드로에게 일평생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축복으로 가게 되느냐 하면,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실 때에 비로소 성령이 약속하신 대로,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열두 제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그 성령을 통해서 충만하게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을 보고 난 후에, 베드로의 인생은 옛날의 감정과 느낌과는 전혀 다른 완전한 성령의 인도 받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는 사실이, 말씀이 성취된다는 사실이 그 인생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던 그런 삶으로 바꾸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베드로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알잖아요. 내일 죽게 되는 그 밤에도 베드로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다는 걸 깨달으니까, 염려할 것이 없어져버렸어요. 그냥 옥중에서 정신 없이 잤다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깊이 잠들었던지, 천사가 깨워도 몰라! 흔들어가 모르니까, 천사가 발길로 차버렸습니다. 놀라 가지고 벌떡 일어났잖아요. 놀라 가지고 벌떡 일어나니까! 원래 감옥에 가면 허리띠를 안줍니다. 정신이 있으면 허리춤을 딱 쥐고 일어나야 되는데...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베드로가 그만큼 나중에 모든 걱정근심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지...

그래서 마태복음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런데 이 말씀 성취의 사건이 안보이게 되면 저절로 뭐가 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말세에 어떤 면에서 정신병이 폭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죠. 여러분들이 뭐 정신병이 다른 게 아닙니다. 이 마태복음 11장에 있는 이 사실 자체가 벌써 그런 문제 아닙니까! 옛날보다도 오늘날 얼마나 걱정이 많은지 몰라요. 우리 주변을 조금 돌아보고, 교회 안을 이렇게 좀 돌아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왠 걱정이 그렇게 많은지! 뭐 말할 수 없이 많은 걱정들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교회 온 사람들 얼굴을 보면 예배드리러 오는데도 얼굴에는 웃음이 없어요. 말씀이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됩니다. 다 내어놓으세요.

어떤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 그 말씀 때문에, 그 성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굶었다! 하나님이 가만히 안 있습니다. 그럴 믿음이 없어서 그렇죠. 하나님이 죽었습니까? 왠 걱정이 그렇게 많습니까! 내일이라도 죽으면 천당 가는 것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겁이 납니까!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을 보시고, 정말 하나님 앞에, '아, 이렇게 큰 축복 속에 서있는 내가 하나님 앞에 너무 부족하구나!' 소리 없이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너무 하나님 앞에 이런 은혜를 받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정말 하나님 앞에, '이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아니구나! 완전히 이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이구나!' 조용히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과 저를 말씀으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십니다. 약속이 성공의 약속이에요.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잘했다!' 칭찬 받지는 못해도, 주님이 오실 때에 섭섭해서 주님이 괴로워하시는 일은 안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말씀이 성취됩니다.

여러분과 제게 이 든든한 언약 속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로 그것이 여러분 메시아로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바로 그분이 왕으로 오시고, 제사장으로 오시고, 선지자로 오셔서 문제와 사건을 받는 데로, 있는 데로 영접하는 순간 순간마다 여러분 성령으로, 여러분 마음과 심령 속에 오셔서 말씀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내가 할 수 없어 연약하여 쓰러지고, 넘어지고 있는데도 주님은 나를 바라보십니다.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험한 세상, 정말 말세에 여러분과 저를 세워서 세계를 바꾸시고자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언약에 성취를 보시는 기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람들이 느끼는 과거, 현재, 미래
(1) 지나간 시간은 아쉽고, 억울하기도 하고, 통곡할만하기도 합니다.
(2) 사람들에게 추억은 아름답고, 현실은 더럽고,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3) 아무리 고생스럽게 살아도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4) 현실은 아무리 좋아도 더럽고 피곤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5) 복음이 없으면 미래가 가물가물하게만 느껴집니다.

1. 예수님을 부인하고 통곡했던 베드로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어째서 베드로가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까?
(2) 베드로가 예수님께 맹세한 것이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그때 베드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맹세했었습니다.
(5) 예수님이 잡혀갔을 때, 다른 제자들은 다 달아났지만 베드로는 혼자서 멀찍이 뒤따라갔습니다.
(6) 그렇게 따라갔는데 한 여종이 베드로에게 예수님과 같은 당이라고 말했을 때 베드로가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7) 예수님은 뒤따라오는 베드로 때문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었지만, 이내 절망적인 맹세를 들었던 것입니다.
(8) 세 번째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2.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이유
(1) 베드로가 지은 죄는 예수님께 너무나도 큰 실망을 드린 것이었습니다.
(2)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었으니, 예수님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3) 가룟 유다의 죄나 베드로의 죄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그러나 베드로의 통곡 속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5)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때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6) 베드로는 마음으로는 예수님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다가, 갑작스럽게 받은 질문에 엉겁결에 부인했던 것입니다.
(7)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쳐다보셨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베드로는 가슴이 찡하게 아려왔을 것입니다.
(8) 베드로는 진정으로 흐느끼며 통곡을 했습니다.

3. 말씀이 성취됨을 깨닫고 통곡했던 베드로
(1)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가 보면 엉겁결에 말씀을 떠나고 자신의 유익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비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섭섭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멀리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2)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사실조차도 모르고 그냥 지나갈 때도 많습니다.
(3)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예수님께서 분하게 보실만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4) 그러한 나를 향하여 하나님은 성령으로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5) 이러한 사실을 믿음으로 생각만해도 우리는 달라질 것입니다.
(6) 예수님과 눈길이 마주쳤던 베드로는 새로운 생각으로 바뀌어졌습니다.
(7) 베드로가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8) 내 생각이나 느낌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9)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나의 인생의 과정 속에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4. 우리와 후대가 말씀 성취를 볼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훈련과 교회 건축
(1) 훈련이 되어야 생각과 체질이 바뀌어집니다.
(2) 율법의 체질이 복음의 체질로 바뀌어야 합니다.
(3) 성경의 말씀대로 말세에 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된 후에야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4) 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5) 우리는 참으로 중요한 시기에 있습니다.
(6) 우리가 교회 건축을 통해서 대구와 민족과 세계를 살려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7) 참으로 후대를 살려야 합니다.
(8) 후대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먼저 살아나야 합니다.
(9) 세상에 말세의 징조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10)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서 우리를 남겨두셨습니다.
(11) 복음 전파와 후대를 위한 교회 건축의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12) 교회 건축의 축복 속에 있으면서도 부담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13) 인생에서 교회 건축의 축복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14)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5. 우리를 회개할 수 있도록 이끄는 말씀 성취의 체험
(1)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체험할 때 진실한 통곡이 나올 수 있습니다.
(2) 말씀이 성취되어야 자신의 부족을 깨닫습니다.
(3) 회개가 나오지 않는다면, 삶 속에 말씀 성취를 맛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4) 말씀이 성취될 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돌아올 수 있습니다.
(5) 불꽃같은 눈으로 지금까지 나를 지켜보고 계신 주님을 너무 멀리 떠나있다는 회개가 터져나올 수 있습니다.
(6)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실 때,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완전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7)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체험한 때부터 베드로는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8)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을 보지 못하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9)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을 보고, 축복 속에 서있는 자신의 부족을 깨달아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 우리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삶을 인도하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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