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살아나심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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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8:1)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 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위에 앉았는데
(마 28: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마 28: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 28: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마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 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마 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마 28: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 28: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마 28:11) 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마 28: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마 28:13)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마 28: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마 28:15)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부 예배에 박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는 동안에 아들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용돈을 주면 십일조 떼고, 선교헌금으로 십이조를 떼고, 또 십삼조는 건축헌금 떼고, 그러니까 불평이 너무 많은 겁니다. 천 원 주면 300원을 빼야 하니까! '다는 아이들은 천 원 다 쓰는데 나는 왜 300원을 떼느냐고...' 그런 불평 속에서 정착하기가 상당히 힘들고 어렵더라! 어느 정도 이것이 이제 뭔가 믿음으로 받게 되니까, 이번 설에 용돈이 갑자기 많이 생겼습니다. 몇 십 만원이 생기니까 하는 말이,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를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만 하나님이 내게 복을 쏟아부어 주더라고...' 그게 이제 응답이 보인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린아이 하나의 고백이지만, '내가 어떤 자세로 신앙 생활하느냐?' 이게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나와도, 복을 쏟아 부어줬는데도 모르고 앉아있는 겁니다. 왜? 신앙에 자세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감사가 나올 수 없는 거죠. 전에는 뭔가 용돈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게 '하나님이 복을 쏟아 부어주더라!' 이런 고백이 안 나오거든요. 그러나 내가 어떤 신앙의 자세로 섰느냐? 그걸 가지고 우리가 흔히 그릇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성도들이 속고 있는 것이 뭐냐하면, 조금만 그릇준비가 되면 늘 입이 벌어져 있고 감격 감사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지만, 그게 지금 안보이거든요. 안보이고 또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말씀에서 뭘 제목으로 선택했느냐 하면, 6절 말씀을 우리가 다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그래서 제목을 "말씀대로 살아나심"이라고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도 말씀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는 역사도 말씀대로, 여러분과 저의 모든 사실과 사건도 뭐대로? 말씀대로! 이런 말씀대로의 신앙의 배경이 확인되면 모든 사건과 일들이,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뭐 내게 어렵다! 힘들다! 이 모든 것들이 뭐라 구요? 말씀대로!
여러분 말씀 대로라는 배경이 바로 누구입니까?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가 하나님의 뜻 대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 배경이 뭐냐?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대로! 그러니 여러분과 제가 이 땅에 보내어졌다! 돌들도 그냥 무심히 이 땅에 던져진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확실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서 보내어 졌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내게 되어지는 사건과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지금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이루시는 뭐라 그랬습니까? 과정에 있을 뿐이지,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 왜, 저런 일이 생기느냐?' 그런 우연히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말씀대로' 그러면,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과 역사 속에 서 있는 자의 고백인 것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되죠. 저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 우리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현장을 찾을 때에 뭐냐?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어디서 자꾸 발생하고,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느냐하면,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은 어디에? 말씀 속에 다 예언하고, 이미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나갈 때에 현장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아, 성경에 말씀대로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구나!' 그렇게 이해가 되는데, 그것이 안될 때에 뭐가 나오느냐? 내 개인의 감정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게 복음으로 뿌리 내지지 않으면 자꾸 사단이 틈타게 되는 배경이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복음에 뿌리를 내린다!' 그게 바로 뭡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여러분과 저의 삶에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바탕이 되어야 되죠. 그 다음에 무슨 문제와 사건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흑암이 들어올 통로가 없는 거죠. 그게 안되면 흑암에 통로가 되고, 흑암의 역사에 모든 뿌리가 되어 있는 것을 바로 성경에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시기 때문에 이 갈등을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중에서 볼 수 있죠. 분명히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과정 속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어려운 고통과 고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되어 가는 과정임을 확인하고, 또 믿음으로 이 사건을 맞이하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지잖아요. 그때에 첫 번째 가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이여, 원하시면 이 잔을 물러가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안 받고 구세주가 되면 안됩니까? 내가 십자가를 안 지고 메시아가 되면 안됩니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할 수 있거든요. 말이 되거든요. 한번 받아합시다. "말이 되네!" 우리가 기도 속에서 이런 일들을 많이 겪게 되죠.
저는 이 뭔가 상당히 누구보다도 현실적으로 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계획이다!'이래가지고 참기도 하고, 그 다음에 뭔가 하나님 계획을 고통 속에서, '무슨 계획이 있을까!' 찾아보기도 하고, 이렇게 하다가 무슨 생각이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은 창조주 아니십니까! 이렇게 안 해도 할 수 있는데, 꼭 이렇게 사람을 반 죽여가면서 만들어 가야 됩니까? 하나님 오늘이라도 확 한번 기적을 주시고, 뭘 주시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말이 되거든요.
그 다음에 우리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주님도 똑같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사람으로! 그래서 하나님 앞에 또 두 번째로 나가서, '하나님, 내가 이 잔을 안 마시고, 십자가 안 지고 메시아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꼭 기도 뒤에 붙인 것이 뭐라 그랬습니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게 믿음의 자세에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내가 어떤 자세로, 어떤 그릇으로,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느냐? 사건과 문제를 놓고서 내가 어떻게 그 사건과 문제를 이해하고 해석하느냐! 배경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참 복음으로 뿌리내리지 못하면, 자꾸 사단의 통로가 된다는 배경이 바로 이러 배경이거든요. 우리가 복음에 진짜 뿌리를 내려놓고, 참 복음에 서 있지 못하면 뭐가 나오느냐? 사단이 들어올 수 있는 자세로 바꾸어지게 됩니다. 뭔가 순간, 순간 욕심과 순간, 순간 감정과 순간, 순간 내 뜻과 내 생각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 뜻과 내 생각을 하나님 앞에 말할 때도 얼마든지 합리성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참 복음에 뿌리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그게 안되어 있는 만큼 이런 배경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문제나 모든 사건이 전혀 비 복음적으로 이해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복음적으로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이 바로 안 되었을 때에, 자꾸 종교로 빠진다는 것 참 듣기 싫은 말이죠. '네가 복음이 안되었구나! 복음에 뿌리를 아직 못 내렸구나!' 참 듣기 싫은 말이죠. 그 말 한마디가 듣기 싫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에 그만큼 흑암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지는 겁니다. 그런 배경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확실하게 예수님께서 어떤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감정과 느낌이나 생각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계획은 가장 선하고 복된 역사입니다. 받아합시다. "기어코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진다!"그래서 어쩔 때는 그렇게 기도하다가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반죽이든지, 완전히 죽던지, 완전히 사라지던지, 어찌 하던지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히 끝을 봐야 됩니다.
끝을 봐야 된다는 말을 여러분들이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루다가 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느낌과 내 감정이 이렇고 저렇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중간에 가다가 네가 너무 반발하니까, '안되겠구나!'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기어코 어떻게 해요? 이루어집니다. 받아합시다. "일찌감치 맡기고 순종하자!" 진작 하는 것이 낫습니다. 뭐 '왜, 이렇습니까!' 지만 괜히 괴롭지 그런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찌감치 '주여, 죽여주시옵소서!' 바울이 이 고백을 잘했어요.
그래서 어떤 생각이 오느냐 하면, 그래도 뭔가 내 감정이 들어있을 때는 하나님 때에 따라서 용기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 뭐냐하면, 내가 살겠다는 생각이 되면, 하나님 뭐 이렇게 저렇게 사는데 대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다가 안 될 때는 어떻게 기도하느냐 하면, 막 낙심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러다가 어떤 경우가 생기느냐하면, 진짜 내 중심의 포인트가 다 사라지고 정말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서, 말하자면 복음의 뿌리가 내리는 만큼 뭐가 달라지느냐 하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가끔 느낄 때가 있어요.
여러분 뭔가 여유가 있을 때에, '주여, 죽이려면 죽이시고 살리려면 살리시고 하나님의 뜻에 맡깁니다!' 그건 좀 여유가 있을 때입니다. 덜 답답할 때입니다. 그러나 막상 막다른 골목에 가서 죽음 직전에 이렇게 될 때에, 죽음에 붙잡혔을 때에, 뭐라고 기도하는 줄 압니까? '하나님, 살려 주이소!' 안 당해보면 잘 모릅니다. 그래도 뭐 하나님의 뜻이면 가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뭐 죽겠습니다. 이러는 것은 덜 답답해서 그런 겁니다. 진짜 답답하면, '하나님 살려주이소!' 그것도 안되면 '하나님, 하나님!' 이것밖에 나오는 것이 없어요. 되게 급하면 살려달라는 소리도 못해요.
여러분 여기서 정말 내 감정과 내 느낌이 다 사라지게 될 때에 오는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내 감정과 느낌은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죽는 것이 영광이 된다면 죽게 하시고, 사는 것이 영광이 된다면 살게 하시고,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이 영광이 된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고, 저렇게 되는 것이 영광이 된다 그러면 저렇게 하시고...' 바울이 사나 죽으나 오직 내 안에서 누구만? 주님만 영광되기를 원한다! 그 고백이 간단한 고백이 아닙니다.
거의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뭔가 마지막 막다른 골목에서 결정할 때에, 내게 연관된 것으로 결정하려고 하지 완전히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다 맡기고 '주님께 영광되게 하옵소서!' 이게 잘 나와요. 그래서 여러분 '복음에 참 뿌리를 내린다!' 이 말이 보통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결정이 다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는 문제생길 때에 내게 연관된 감정으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직 좀더 기다려봐라! 그릇이 멀었다!' 그래서 받아합시다. "당한 만큼 당해야 눈이 열린다!" 아직 조금 뭔가 이런 저런 소리가 나오거든, '덜 당했구나! 그릇이 덜 만들어졌구나!' 그래서 우리가 삶에 있어서 이런 부분들을 많이 느낄 때가 있죠. 우리 예수님께서 지난 주일에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선언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를 만족하게 다 이루었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서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다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뭐라고 하는가하면, 우리 목사님은 말씀대로, 말하자면 말씀이 쭉 진행하는 과정에서 말씀대로 '죽는 것은 죽고, 그 다음에 부활되면 살아날 것이다!' 그러더라 구요. 그러면 부활을 빨리 한 주간 앞당기지 뭐... 그래가지고 오늘 부활을 앞당겼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장사 지내는 그 시간은 지나가도 되겠다 싶어요. 그래서 오늘 말씀대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오늘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고통 하셔도, 애를 쓰셔도, 또 괴로움을 당하셔도, 어떤 면에서 볼 때는 사단에게 조롱을 받는 것 같고, 또 여러 가지 많은 것이 안 보입니까! 지금 예수님께 가시관을 덮어 씌워놓고, 가시로 관을 만들어 가지고 예수님 머리에 눌러 피를 흘리게 만들고, 그리고는 이상한 것을 손에 쥐어놓고, 홍포를 입히고, 조롱하고 받을 것을 쭉 안 받습니까! 당할 만큼 당하도록 쭉 그대로 두시더라 구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마음속에... 더러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런 과정을 준비하면서 내가 지금 당하는 것이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어쩔 때는 분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괴롭기도 하고... 왜 그러냐 하면, 여러 가지 정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은 뭐냐하면, 사단이 조롱하는 것 같고, 사단이 놀리는 것 같고, '하나님의 이름이 이 땅에서 멸시를 받습니다!' 이런 소리도 하다가, 그러다가 그것도 가만히 생각하면 내 감정과 연관시키면서, '정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정말 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 구요.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당할 만큼 다 당하시고 결국 돌아갔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수모의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마지막에 가서 다 완성하시고 예수님께서 고백하신 것이 뭡니까? '다 이루었다!' 그게 뭡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 강단을 통해서 여러분이 당하는 일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하여 계획하신 것 다 이루십니다. 이루다가 그만두지 않으십니다. 계획한 것 그만두지 않습니다. 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과 계획은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어코 여러분을 향하신 축복과 계획은 완벽하게 성취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에 오늘 여러분과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에, 문제생길 때에, 또 강단에 와서 주일날 말씀 듣는 것이 뭡니까?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내 모든 것을 향하여 계획하신 것을, 하나님이 오늘도 내게 이루실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말씀 붙잡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야기 아닙니까! 주일날 와서 말씀을 붙잡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어요. 그래서 요즘 우리 신앙생활에서 기도수첩 만들고 말씀이 오늘 이런 말씀인데 어떻게 내게 성취되어 가는가? 기도 수첩을 기록하는 것 얼마나 실질적인 믿음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거의 지금까지 우리가 안되어 왔는데 우리가 오늘날 '전도, 전도!' 그러면서 이것이 내게 조금 이루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뭡니까? 이것이 개인적으로 기도응답이 된다! 그런 사건이거든요. 그래서 이 말씀대로 성취되는 이러 놀라운 역사를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제게 사실적으로 보여주시는 내용이 되는 겁니다. 그 내용이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6절에 주신 말씀이 바로 예언하신 말씀대로, 이미 여러분과 제게 주신 말씀대로,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내가 어떤 자세와 믿음의 그릇으로 신앙 생활하느냐? 이걸 정말 분명히 확인해야 합니다. 뭐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할 수 있죠. 어려운 시대에 어려운 사건과 어려운 문제 어려운 일들이 부닥치는 말세의 시대입니다. 만약에 이런 어떤 분명한 하나님께 향한 기준과,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향하신 주신 축복 속에 세워진 확실한 기준이 없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방황하게 됩니다. 그것이 확실하게 세워진다! 그러면 여러분은 모든 분야에서, 모든 사건 속에서 뭘 보게 됩니까? 비로소 그때부터 응답이라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아, 하나님이 이렇게 또 응답하시는 구나! 저렇게 또 응답하시는 구나!' 이것이 그 요셉에게 보여준 말씀 아닙니까! 요셉이 분명히 하나님 앞에 엄청난 비전을 보았잖아요.
비전을 보고 난 후에 어떤 문제가 생겼느냐? 더 어려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노예로 팔렸습니다.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럴 때에 그 믿음에 자세를 따라서, '아, 노예로 팔릴 때에 이렇게도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구나! 저렇게도 응답해 주시는 구나!' 그래서 그 형제들과 총리가 되었을 때에 만남 속에서 형제들이 요셉인 줄 알고 너무 두려워할 때에, '내 형제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당신들과 내 형제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당신들 보다 앞서' 뭐라 그랬습니까? '나를 애굽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뭐냐하면 그 형제들과 같이 안 살고 형제들에게 팔려서 쫓겨 나온 사실조차도 요셉에게는 뭡니까? 응답으로 보였습니다. 이게 사실이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특별히 성도들이 이게 보여지게되면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이게 안 보여지니까,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 하나님 왜 저럽니까?' 하나님이 그걸 모르겠습니까? 더 잘 아시죠.
그러면 왜 굳이 하나님이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그러시고, 예수님이 죽기까지 두셔야 되고,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왜 또 굳이 살리셔야 됩니까? 그 이유만 좀 밝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가 여러분과 저를 사망의 손에서, 말하자면 마귀의 사단의 손에서 완벽하게 해방시켜줄 수 있는 자격자가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의 자격자 중에 중요한 것이 완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 누구이어야 합니까? 완전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사람을 사단의 손에서 건져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 하나님이요, 참 신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참 사람으로는 죽었습니다. 이건 눈에 보이는 사건이니까!
참 하나님이라는 표로, 참 하나님이 되셔야 되는 이유로는 반드시 사망에 그대로 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이란 확실한 증거로 부활하셨다!" 할렐루야! 중요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렇고, 후대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서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이다!' 말씀할 때에 제일 못 믿었던 부분이, '네가 지금 사람으로 있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사기 치느냐?' 그게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돌멩이를 들고 덤벼들었던 제일 큰 원인입니다.
만약 지금 내가 '나는 하나님이다!'이랬다. 그러면 '네가 지금 박지온이 아니냐! 무슨 그런 사기꾼 같은 소리를 하느냐!' 아마 여러분 중에서 한사람도 안 믿을 겁니다. 안 믿는 것이 당연합니다. 유대당시에 예수께서, '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나는 같다!' 이랬을 때에 제일 못 믿었던 부분이, '나는 참 사람이다!' 그건 믿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다!' 그건 못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참 신이십니다. 참 하나님이신 그분은 생명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 자체이십니다. 사망과 죽음에 매여있을 수 없습니다. 창조 받은 분이 아니고 바로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사망에 던져짐을 당해도 사망 속에 그대로 방치될 수 없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하나님이라는 증거로 살아나셨습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다 풀려버렸습니다. 왜? 여러분과 저를 사단의 손에서 해방 할 수 있는 구원자로서 메시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여기서 완성된 것입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셨느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이 일이 여기서 완성이 된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고 여기서 메시아의 완성된, 다 이루었다는 메시아로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겁니다. 다 이루어지는 겁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다 끝났습니다. 그래서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 끝났습니다. 다 성취되고 다 이루어지게 됩니다. 오직 뭡니까? 그 이름! 바로 그 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시기에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막 말로해서 우리가 볼수 있듯이 기도하며 갈등하시던 데로 이걸 안 당해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안 거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왜, 그렇게 거쳐야 되느냐?' 믿음 주시기 위해서! 안 거치면 못 믿으니까! '왜, 그렇게 홍해를 갈라야 되느냐?' 그렇게 갈라도 못 믿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인데, 갈라놓고 광야 속에 집어넣었는데도 못 믿고 불평하고 맨 날 죽느니 사느니... 그러니까 여러분 한번 살펴보세요. 신앙생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나의 주되신다!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구나!' 그래 놓고도 늘 불평하고 근심, 걱정, 염려를 팔자로 하고 있잖아요. 밤새도록 염려하다가 아침에 조금 잠들고... 그게 왜 그러냐? 그게 인간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믿는 만큼 내가 어떤 자세로 지금 신앙생활 하느냐? 다 해결되는 겁니다. 그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고 체험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면서도 죽었다가 살아 나셔야 합니다. 그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게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위대한 자격입니다. 이 자격 속에 세웠다는 것조차 우리는 감사 정도가 아닙니다. 깜박 넘어가야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별로 없거든요. 우리가 이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로 죽음에 매여 있을 수 없습니다. 다윗의 고백했고 바로 성경의 고백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영원한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할 자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 땅에 있으면서 정말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은 오직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구누구는 '내가 죽으면 3일 후에 살아난다!'고 시체를 그냥 놔두고 암만 기다려도 살아나지 않고, 썩어져서 구더기가 굼실거리며 돌아다녀도 살아난다고 놔뒀다가 경찰이 가서 시신을 수습한 사건이 있었던 것을 우리가 잘 알잖아요.
만약에 이 땅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예수님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으면 헷갈려요. 메시아가 누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간단한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여럿이 있으면 헷갈리잖아요. 만약 내가 오늘 중요한 만남을 약속했습니다. 약속할 때에 '이 왼편 가슴 양복주머니에 장미꽃을 딱 달고 나오거든 아무개 그렇게 생각하고 만나자!'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딱 내려서 보니까, 장미꽃을 달고 나온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러면 헷갈립니다.
여러분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으냐? 우리는 참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신앙을 요구할 때에 어렵게 만들지 안았습니다. 너무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자주 중요한 역사 속에, 중요한 말씀은 오직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헷갈리지 않도록 너무 편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여럿이 있었다면 이 사람이라고 그랬다가 저 사람이라고 그랬다가 헷갈릴텐데,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축복주시는 것! 또 너무 축복하신 것은 오직 예수!
그래도 오직 예수 못해요. 이 오직 예수 안 하려고 얼마나 기를 쓰고 이빨을 갈면서 안 하잖아요. 오직 예수! 변화 산에서도 모세도 가고 엘리야도 갔지만 오직 예수만이 남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에 여러 가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막 그냥 봅니다. '목사님이 아무리 그래도 이 일은 해 야죠!' 해 야죠. 상관없습니다. 오직 한 분! 딱 붙드세요. 여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말세에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올지라도 여러분과 제게 약속하신 말씀! 하나님의 계획! 그분이 여러분과 제게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확실하게 오늘 마음에 영접하시고, 모시고 확인하십시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내가 어떤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① 복을 쏟아 부어주었는데도 전혀 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② 쏟아 부어주신 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그릇입니다.
③ 조금만 그릇이 준비되면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1.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6절)
①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도 말씀대로, 부활하시는 역사도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② 우리의 모든 것도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③ 이 신앙이 확인되면 모든 사건과 일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④ 어렵고 힘든 것도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⑤ ‘말씀대로’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⑥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⑦ 우리는 확실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속에서 이 땅에 보내어졌습니다.
⑧ 어려움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성취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일 뿐입니다.
⑨ ‘말씀대로’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⑩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⑪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계획을 찾아나가면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감을 보게 됩니다.
⑫ 이렇게 되면 흑암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2.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① 예수님도 인간이시기 때문에 갈등을 가지셨습니다.
②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③ 예수님은 인간이기에 그 어려운 고통과 고비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④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도 될 수 있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말씀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⑤ 참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또 다시 기도하시며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⑥ 우리도 복음에 뿌리를 내린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을 철저히 따르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⑦ 그러나 복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순간순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나의 뜻’을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⑧ 이렇게 되면 전혀 복음과 관계없는 엉뚱한 것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⑨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고백 속에 예수님의 자세가 보입니다.
⑩ 하나님의 계획은 가장 선하고 복된 역사입니다.
⑪ 하나님의 계획은 기어코 이루어집니다.
⑫ 그러므로 일찌감치 맡기고 순종합시다.
⑬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⑭ 진정으로 중심이 하나님께로 맞추어지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⑮ 바울이 ‘사나 죽으나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고백한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문제가 생길 때 내게 연관된 감정을 가지고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당할 만큼 당해야 눈이 열립니다.
아직까지 ‘내’가 나온다면 그릇이 덜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은 계획을 이루어가다가 그만두시지 않고 기어코 완성하십니다.
①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② 예수님께서는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③ 예수님께서는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④ 예수님께서 고통하시고, 애를 쓰시고, 괴로움을 당하셔도, 조롱을 받으셔도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셨습니다.
⑤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습니까?
⑥ 예수님께서 당할 만큼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⑦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⑧ 우리가 당하는 모든 사건과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다 이루십니다.
⑨ 하나님은 계획을 이루어가다가 그만두시지 않고 완성하십니다.
⑩ 나를 향하여 계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늘도 말씀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⑪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 수첩에 적으면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어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어떤 자세로, 어떤 믿음의 그릇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지를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① 6절 말씀처럼 이미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서 주신 확실한 기준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왔다 갔다 하며 방황할 수 있습니다.
③ 하나님께서 주신 확실한 기준을 볼 수 있으면 모든 사건과 일들 속에서 응답을 볼 수 있습니다.
④ 요셉이 엄청난 비전을 보았는데, 더 큰 어려움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⑤ 요셉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믿음의 그릇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⑥ 요셉이 쫓겨나온 것조차도 응답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⑦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면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 됩니다.
5. 하나님은 왜 굳이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두시고, 또 다시 살리셔야 했습니까?
① 우리를 사망의 손에서 완벽하게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자격자가 메시야입니다.
② 메시야의 자격자 중에 중요한 것은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고, 완전한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③ 참 사람으로는 죽었고, 참 하나님의 증거로 사망에 그대로 버려질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④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습니다.
⑥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사망에 던져짐을 당해도 그대로 버려질 수 없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⑦ 여기에서 예수님이 구원자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신 것입니다.
⑧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어진 것입니다.
⑨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면 다 끝난 것입니다.
⑩ 그 이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못할 것이 없습니다.
⑪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신 “오직 예수”의 이름을 붙잡으십시오.
(마 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위에 앉았는데
(마 28: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마 28: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 28: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마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 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마 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마 28: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 28: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마 28:11) 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마 28: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마 28:13)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마 28: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마 28:15)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부 예배에 박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는 동안에 아들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용돈을 주면 십일조 떼고, 선교헌금으로 십이조를 떼고, 또 십삼조는 건축헌금 떼고, 그러니까 불평이 너무 많은 겁니다. 천 원 주면 300원을 빼야 하니까! '다는 아이들은 천 원 다 쓰는데 나는 왜 300원을 떼느냐고...' 그런 불평 속에서 정착하기가 상당히 힘들고 어렵더라! 어느 정도 이것이 이제 뭔가 믿음으로 받게 되니까, 이번 설에 용돈이 갑자기 많이 생겼습니다. 몇 십 만원이 생기니까 하는 말이,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를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만 하나님이 내게 복을 쏟아부어 주더라고...' 그게 이제 응답이 보인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린아이 하나의 고백이지만, '내가 어떤 자세로 신앙 생활하느냐?' 이게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나와도, 복을 쏟아 부어줬는데도 모르고 앉아있는 겁니다. 왜? 신앙에 자세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감사가 나올 수 없는 거죠. 전에는 뭔가 용돈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게 '하나님이 복을 쏟아 부어주더라!' 이런 고백이 안 나오거든요. 그러나 내가 어떤 신앙의 자세로 섰느냐? 그걸 가지고 우리가 흔히 그릇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성도들이 속고 있는 것이 뭐냐하면, 조금만 그릇준비가 되면 늘 입이 벌어져 있고 감격 감사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지만, 그게 지금 안보이거든요. 안보이고 또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말씀에서 뭘 제목으로 선택했느냐 하면, 6절 말씀을 우리가 다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그래서 제목을 "말씀대로 살아나심"이라고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도 말씀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는 역사도 말씀대로, 여러분과 저의 모든 사실과 사건도 뭐대로? 말씀대로! 이런 말씀대로의 신앙의 배경이 확인되면 모든 사건과 일들이,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뭐 내게 어렵다! 힘들다! 이 모든 것들이 뭐라 구요? 말씀대로!
여러분 말씀 대로라는 배경이 바로 누구입니까?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가 하나님의 뜻 대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 배경이 뭐냐?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대로! 그러니 여러분과 제가 이 땅에 보내어졌다! 돌들도 그냥 무심히 이 땅에 던져진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확실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서 보내어 졌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내게 되어지는 사건과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지금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이루시는 뭐라 그랬습니까? 과정에 있을 뿐이지,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 왜, 저런 일이 생기느냐?' 그런 우연히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말씀대로' 그러면,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과 역사 속에 서 있는 자의 고백인 것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되죠. 저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 우리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현장을 찾을 때에 뭐냐?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어디서 자꾸 발생하고,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느냐하면,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은 어디에? 말씀 속에 다 예언하고, 이미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나갈 때에 현장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아, 성경에 말씀대로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구나!' 그렇게 이해가 되는데, 그것이 안될 때에 뭐가 나오느냐? 내 개인의 감정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게 복음으로 뿌리 내지지 않으면 자꾸 사단이 틈타게 되는 배경이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복음에 뿌리를 내린다!' 그게 바로 뭡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여러분과 저의 삶에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바탕이 되어야 되죠. 그 다음에 무슨 문제와 사건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흑암이 들어올 통로가 없는 거죠. 그게 안되면 흑암에 통로가 되고, 흑암의 역사에 모든 뿌리가 되어 있는 것을 바로 성경에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시기 때문에 이 갈등을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중에서 볼 수 있죠. 분명히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과정 속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어려운 고통과 고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되어 가는 과정임을 확인하고, 또 믿음으로 이 사건을 맞이하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지잖아요. 그때에 첫 번째 가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이여, 원하시면 이 잔을 물러가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안 받고 구세주가 되면 안됩니까? 내가 십자가를 안 지고 메시아가 되면 안됩니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할 수 있거든요. 말이 되거든요. 한번 받아합시다. "말이 되네!" 우리가 기도 속에서 이런 일들을 많이 겪게 되죠.
저는 이 뭔가 상당히 누구보다도 현실적으로 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계획이다!'이래가지고 참기도 하고, 그 다음에 뭔가 하나님 계획을 고통 속에서, '무슨 계획이 있을까!' 찾아보기도 하고, 이렇게 하다가 무슨 생각이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은 창조주 아니십니까! 이렇게 안 해도 할 수 있는데, 꼭 이렇게 사람을 반 죽여가면서 만들어 가야 됩니까? 하나님 오늘이라도 확 한번 기적을 주시고, 뭘 주시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말이 되거든요.
그 다음에 우리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주님도 똑같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사람으로! 그래서 하나님 앞에 또 두 번째로 나가서, '하나님, 내가 이 잔을 안 마시고, 십자가 안 지고 메시아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꼭 기도 뒤에 붙인 것이 뭐라 그랬습니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게 믿음의 자세에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내가 어떤 자세로, 어떤 그릇으로,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느냐? 사건과 문제를 놓고서 내가 어떻게 그 사건과 문제를 이해하고 해석하느냐! 배경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참 복음으로 뿌리내리지 못하면, 자꾸 사단의 통로가 된다는 배경이 바로 이러 배경이거든요. 우리가 복음에 진짜 뿌리를 내려놓고, 참 복음에 서 있지 못하면 뭐가 나오느냐? 사단이 들어올 수 있는 자세로 바꾸어지게 됩니다. 뭔가 순간, 순간 욕심과 순간, 순간 감정과 순간, 순간 내 뜻과 내 생각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 뜻과 내 생각을 하나님 앞에 말할 때도 얼마든지 합리성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참 복음에 뿌리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그게 안되어 있는 만큼 이런 배경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문제나 모든 사건이 전혀 비 복음적으로 이해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복음적으로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이 바로 안 되었을 때에, 자꾸 종교로 빠진다는 것 참 듣기 싫은 말이죠. '네가 복음이 안되었구나! 복음에 뿌리를 아직 못 내렸구나!' 참 듣기 싫은 말이죠. 그 말 한마디가 듣기 싫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에 그만큼 흑암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지는 겁니다. 그런 배경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확실하게 예수님께서 어떤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감정과 느낌이나 생각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계획은 가장 선하고 복된 역사입니다. 받아합시다. "기어코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진다!"그래서 어쩔 때는 그렇게 기도하다가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반죽이든지, 완전히 죽던지, 완전히 사라지던지, 어찌 하던지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히 끝을 봐야 됩니다.
끝을 봐야 된다는 말을 여러분들이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루다가 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느낌과 내 감정이 이렇고 저렇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중간에 가다가 네가 너무 반발하니까, '안되겠구나!'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기어코 어떻게 해요? 이루어집니다. 받아합시다. "일찌감치 맡기고 순종하자!" 진작 하는 것이 낫습니다. 뭐 '왜, 이렇습니까!' 지만 괜히 괴롭지 그런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찌감치 '주여, 죽여주시옵소서!' 바울이 이 고백을 잘했어요.
그래서 어떤 생각이 오느냐 하면, 그래도 뭔가 내 감정이 들어있을 때는 하나님 때에 따라서 용기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 뭐냐하면, 내가 살겠다는 생각이 되면, 하나님 뭐 이렇게 저렇게 사는데 대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다가 안 될 때는 어떻게 기도하느냐 하면, 막 낙심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러다가 어떤 경우가 생기느냐하면, 진짜 내 중심의 포인트가 다 사라지고 정말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서, 말하자면 복음의 뿌리가 내리는 만큼 뭐가 달라지느냐 하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가끔 느낄 때가 있어요.
여러분 뭔가 여유가 있을 때에, '주여, 죽이려면 죽이시고 살리려면 살리시고 하나님의 뜻에 맡깁니다!' 그건 좀 여유가 있을 때입니다. 덜 답답할 때입니다. 그러나 막상 막다른 골목에 가서 죽음 직전에 이렇게 될 때에, 죽음에 붙잡혔을 때에, 뭐라고 기도하는 줄 압니까? '하나님, 살려 주이소!' 안 당해보면 잘 모릅니다. 그래도 뭐 하나님의 뜻이면 가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뭐 죽겠습니다. 이러는 것은 덜 답답해서 그런 겁니다. 진짜 답답하면, '하나님 살려주이소!' 그것도 안되면 '하나님, 하나님!' 이것밖에 나오는 것이 없어요. 되게 급하면 살려달라는 소리도 못해요.
여러분 여기서 정말 내 감정과 내 느낌이 다 사라지게 될 때에 오는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내 감정과 느낌은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죽는 것이 영광이 된다면 죽게 하시고, 사는 것이 영광이 된다면 살게 하시고,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이 영광이 된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고, 저렇게 되는 것이 영광이 된다 그러면 저렇게 하시고...' 바울이 사나 죽으나 오직 내 안에서 누구만? 주님만 영광되기를 원한다! 그 고백이 간단한 고백이 아닙니다.
거의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뭔가 마지막 막다른 골목에서 결정할 때에, 내게 연관된 것으로 결정하려고 하지 완전히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다 맡기고 '주님께 영광되게 하옵소서!' 이게 잘 나와요. 그래서 여러분 '복음에 참 뿌리를 내린다!' 이 말이 보통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결정이 다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는 문제생길 때에 내게 연관된 감정으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직 좀더 기다려봐라! 그릇이 멀었다!' 그래서 받아합시다. "당한 만큼 당해야 눈이 열린다!" 아직 조금 뭔가 이런 저런 소리가 나오거든, '덜 당했구나! 그릇이 덜 만들어졌구나!' 그래서 우리가 삶에 있어서 이런 부분들을 많이 느낄 때가 있죠. 우리 예수님께서 지난 주일에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선언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를 만족하게 다 이루었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서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다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뭐라고 하는가하면, 우리 목사님은 말씀대로, 말하자면 말씀이 쭉 진행하는 과정에서 말씀대로 '죽는 것은 죽고, 그 다음에 부활되면 살아날 것이다!' 그러더라 구요. 그러면 부활을 빨리 한 주간 앞당기지 뭐... 그래가지고 오늘 부활을 앞당겼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장사 지내는 그 시간은 지나가도 되겠다 싶어요. 그래서 오늘 말씀대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오늘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고통 하셔도, 애를 쓰셔도, 또 괴로움을 당하셔도, 어떤 면에서 볼 때는 사단에게 조롱을 받는 것 같고, 또 여러 가지 많은 것이 안 보입니까! 지금 예수님께 가시관을 덮어 씌워놓고, 가시로 관을 만들어 가지고 예수님 머리에 눌러 피를 흘리게 만들고, 그리고는 이상한 것을 손에 쥐어놓고, 홍포를 입히고, 조롱하고 받을 것을 쭉 안 받습니까! 당할 만큼 당하도록 쭉 그대로 두시더라 구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마음속에... 더러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런 과정을 준비하면서 내가 지금 당하는 것이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어쩔 때는 분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괴롭기도 하고... 왜 그러냐 하면, 여러 가지 정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은 뭐냐하면, 사단이 조롱하는 것 같고, 사단이 놀리는 것 같고, '하나님의 이름이 이 땅에서 멸시를 받습니다!' 이런 소리도 하다가, 그러다가 그것도 가만히 생각하면 내 감정과 연관시키면서, '정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정말 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 구요.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당할 만큼 다 당하시고 결국 돌아갔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수모의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마지막에 가서 다 완성하시고 예수님께서 고백하신 것이 뭡니까? '다 이루었다!' 그게 뭡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 강단을 통해서 여러분이 당하는 일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하여 계획하신 것 다 이루십니다. 이루다가 그만두지 않으십니다. 계획한 것 그만두지 않습니다. 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과 계획은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어코 여러분을 향하신 축복과 계획은 완벽하게 성취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에 오늘 여러분과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에, 문제생길 때에, 또 강단에 와서 주일날 말씀 듣는 것이 뭡니까?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내 모든 것을 향하여 계획하신 것을, 하나님이 오늘도 내게 이루실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말씀 붙잡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야기 아닙니까! 주일날 와서 말씀을 붙잡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어요. 그래서 요즘 우리 신앙생활에서 기도수첩 만들고 말씀이 오늘 이런 말씀인데 어떻게 내게 성취되어 가는가? 기도 수첩을 기록하는 것 얼마나 실질적인 믿음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거의 지금까지 우리가 안되어 왔는데 우리가 오늘날 '전도, 전도!' 그러면서 이것이 내게 조금 이루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뭡니까? 이것이 개인적으로 기도응답이 된다! 그런 사건이거든요. 그래서 이 말씀대로 성취되는 이러 놀라운 역사를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제게 사실적으로 보여주시는 내용이 되는 겁니다. 그 내용이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6절에 주신 말씀이 바로 예언하신 말씀대로, 이미 여러분과 제게 주신 말씀대로,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내가 어떤 자세와 믿음의 그릇으로 신앙 생활하느냐? 이걸 정말 분명히 확인해야 합니다. 뭐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할 수 있죠. 어려운 시대에 어려운 사건과 어려운 문제 어려운 일들이 부닥치는 말세의 시대입니다. 만약에 이런 어떤 분명한 하나님께 향한 기준과,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향하신 주신 축복 속에 세워진 확실한 기준이 없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방황하게 됩니다. 그것이 확실하게 세워진다! 그러면 여러분은 모든 분야에서, 모든 사건 속에서 뭘 보게 됩니까? 비로소 그때부터 응답이라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아, 하나님이 이렇게 또 응답하시는 구나! 저렇게 또 응답하시는 구나!' 이것이 그 요셉에게 보여준 말씀 아닙니까! 요셉이 분명히 하나님 앞에 엄청난 비전을 보았잖아요.
비전을 보고 난 후에 어떤 문제가 생겼느냐? 더 어려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노예로 팔렸습니다.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럴 때에 그 믿음에 자세를 따라서, '아, 노예로 팔릴 때에 이렇게도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구나! 저렇게도 응답해 주시는 구나!' 그래서 그 형제들과 총리가 되었을 때에 만남 속에서 형제들이 요셉인 줄 알고 너무 두려워할 때에, '내 형제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당신들과 내 형제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당신들 보다 앞서' 뭐라 그랬습니까? '나를 애굽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뭐냐하면 그 형제들과 같이 안 살고 형제들에게 팔려서 쫓겨 나온 사실조차도 요셉에게는 뭡니까? 응답으로 보였습니다. 이게 사실이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특별히 성도들이 이게 보여지게되면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이게 안 보여지니까,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 하나님 왜 저럽니까?' 하나님이 그걸 모르겠습니까? 더 잘 아시죠.
그러면 왜 굳이 하나님이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그러시고, 예수님이 죽기까지 두셔야 되고,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왜 또 굳이 살리셔야 됩니까? 그 이유만 좀 밝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가 여러분과 저를 사망의 손에서, 말하자면 마귀의 사단의 손에서 완벽하게 해방시켜줄 수 있는 자격자가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의 자격자 중에 중요한 것이 완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 누구이어야 합니까? 완전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사람을 사단의 손에서 건져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 하나님이요, 참 신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참 사람으로는 죽었습니다. 이건 눈에 보이는 사건이니까!
참 하나님이라는 표로, 참 하나님이 되셔야 되는 이유로는 반드시 사망에 그대로 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이란 확실한 증거로 부활하셨다!" 할렐루야! 중요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렇고, 후대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서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이다!' 말씀할 때에 제일 못 믿었던 부분이, '네가 지금 사람으로 있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사기 치느냐?' 그게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돌멩이를 들고 덤벼들었던 제일 큰 원인입니다.
만약 지금 내가 '나는 하나님이다!'이랬다. 그러면 '네가 지금 박지온이 아니냐! 무슨 그런 사기꾼 같은 소리를 하느냐!' 아마 여러분 중에서 한사람도 안 믿을 겁니다. 안 믿는 것이 당연합니다. 유대당시에 예수께서, '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나는 같다!' 이랬을 때에 제일 못 믿었던 부분이, '나는 참 사람이다!' 그건 믿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다!' 그건 못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참 신이십니다. 참 하나님이신 그분은 생명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 자체이십니다. 사망과 죽음에 매여있을 수 없습니다. 창조 받은 분이 아니고 바로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사망에 던져짐을 당해도 사망 속에 그대로 방치될 수 없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하나님이라는 증거로 살아나셨습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다 풀려버렸습니다. 왜? 여러분과 저를 사단의 손에서 해방 할 수 있는 구원자로서 메시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여기서 완성된 것입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셨느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이 일이 여기서 완성이 된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고 여기서 메시아의 완성된, 다 이루었다는 메시아로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겁니다. 다 이루어지는 겁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다 끝났습니다. 그래서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 끝났습니다. 다 성취되고 다 이루어지게 됩니다. 오직 뭡니까? 그 이름! 바로 그 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시기에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막 말로해서 우리가 볼수 있듯이 기도하며 갈등하시던 데로 이걸 안 당해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안 거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왜, 그렇게 거쳐야 되느냐?' 믿음 주시기 위해서! 안 거치면 못 믿으니까! '왜, 그렇게 홍해를 갈라야 되느냐?' 그렇게 갈라도 못 믿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인데, 갈라놓고 광야 속에 집어넣었는데도 못 믿고 불평하고 맨 날 죽느니 사느니... 그러니까 여러분 한번 살펴보세요. 신앙생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나의 주되신다!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구나!' 그래 놓고도 늘 불평하고 근심, 걱정, 염려를 팔자로 하고 있잖아요. 밤새도록 염려하다가 아침에 조금 잠들고... 그게 왜 그러냐? 그게 인간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믿는 만큼 내가 어떤 자세로 지금 신앙생활 하느냐? 다 해결되는 겁니다. 그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고 체험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면서도 죽었다가 살아 나셔야 합니다. 그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게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위대한 자격입니다. 이 자격 속에 세웠다는 것조차 우리는 감사 정도가 아닙니다. 깜박 넘어가야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별로 없거든요. 우리가 이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로 죽음에 매여 있을 수 없습니다. 다윗의 고백했고 바로 성경의 고백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영원한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할 자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 땅에 있으면서 정말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은 오직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구누구는 '내가 죽으면 3일 후에 살아난다!'고 시체를 그냥 놔두고 암만 기다려도 살아나지 않고, 썩어져서 구더기가 굼실거리며 돌아다녀도 살아난다고 놔뒀다가 경찰이 가서 시신을 수습한 사건이 있었던 것을 우리가 잘 알잖아요.
만약에 이 땅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예수님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으면 헷갈려요. 메시아가 누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간단한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여럿이 있으면 헷갈리잖아요. 만약 내가 오늘 중요한 만남을 약속했습니다. 약속할 때에 '이 왼편 가슴 양복주머니에 장미꽃을 딱 달고 나오거든 아무개 그렇게 생각하고 만나자!'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딱 내려서 보니까, 장미꽃을 달고 나온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러면 헷갈립니다.
여러분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으냐? 우리는 참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신앙을 요구할 때에 어렵게 만들지 안았습니다. 너무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자주 중요한 역사 속에, 중요한 말씀은 오직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헷갈리지 않도록 너무 편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여럿이 있었다면 이 사람이라고 그랬다가 저 사람이라고 그랬다가 헷갈릴텐데,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축복주시는 것! 또 너무 축복하신 것은 오직 예수!
그래도 오직 예수 못해요. 이 오직 예수 안 하려고 얼마나 기를 쓰고 이빨을 갈면서 안 하잖아요. 오직 예수! 변화 산에서도 모세도 가고 엘리야도 갔지만 오직 예수만이 남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에 여러 가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막 그냥 봅니다. '목사님이 아무리 그래도 이 일은 해 야죠!' 해 야죠. 상관없습니다. 오직 한 분! 딱 붙드세요. 여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말세에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올지라도 여러분과 제게 약속하신 말씀! 하나님의 계획! 그분이 여러분과 제게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확실하게 오늘 마음에 영접하시고, 모시고 확인하십시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내가 어떤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① 복을 쏟아 부어주었는데도 전혀 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② 쏟아 부어주신 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그릇입니다.
③ 조금만 그릇이 준비되면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1.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6절)
①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도 말씀대로, 부활하시는 역사도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② 우리의 모든 것도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③ 이 신앙이 확인되면 모든 사건과 일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④ 어렵고 힘든 것도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⑤ ‘말씀대로’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⑥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⑦ 우리는 확실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속에서 이 땅에 보내어졌습니다.
⑧ 어려움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성취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일 뿐입니다.
⑨ ‘말씀대로’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⑩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⑪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계획을 찾아나가면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감을 보게 됩니다.
⑫ 이렇게 되면 흑암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2.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① 예수님도 인간이시기 때문에 갈등을 가지셨습니다.
②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③ 예수님은 인간이기에 그 어려운 고통과 고비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④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도 될 수 있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말씀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⑤ 참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또 다시 기도하시며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⑥ 우리도 복음에 뿌리를 내린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을 철저히 따르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⑦ 그러나 복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순간순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나의 뜻’을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⑧ 이렇게 되면 전혀 복음과 관계없는 엉뚱한 것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⑨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고백 속에 예수님의 자세가 보입니다.
⑩ 하나님의 계획은 가장 선하고 복된 역사입니다.
⑪ 하나님의 계획은 기어코 이루어집니다.
⑫ 그러므로 일찌감치 맡기고 순종합시다.
⑬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⑭ 진정으로 중심이 하나님께로 맞추어지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⑮ 바울이 ‘사나 죽으나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고백한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문제가 생길 때 내게 연관된 감정을 가지고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당할 만큼 당해야 눈이 열립니다.
아직까지 ‘내’가 나온다면 그릇이 덜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은 계획을 이루어가다가 그만두시지 않고 기어코 완성하십니다.
①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② 예수님께서는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③ 예수님께서는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④ 예수님께서 고통하시고, 애를 쓰시고, 괴로움을 당하셔도, 조롱을 받으셔도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셨습니다.
⑤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습니까?
⑥ 예수님께서 당할 만큼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⑦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⑧ 우리가 당하는 모든 사건과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다 이루십니다.
⑨ 하나님은 계획을 이루어가다가 그만두시지 않고 완성하십니다.
⑩ 나를 향하여 계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늘도 말씀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⑪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 수첩에 적으면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어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어떤 자세로, 어떤 믿음의 그릇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지를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① 6절 말씀처럼 이미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서 주신 확실한 기준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왔다 갔다 하며 방황할 수 있습니다.
③ 하나님께서 주신 확실한 기준을 볼 수 있으면 모든 사건과 일들 속에서 응답을 볼 수 있습니다.
④ 요셉이 엄청난 비전을 보았는데, 더 큰 어려움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⑤ 요셉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믿음의 그릇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⑥ 요셉이 쫓겨나온 것조차도 응답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⑦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면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 됩니다.
5. 하나님은 왜 굳이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두시고, 또 다시 살리셔야 했습니까?
① 우리를 사망의 손에서 완벽하게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자격자가 메시야입니다.
② 메시야의 자격자 중에 중요한 것은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고, 완전한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③ 참 사람으로는 죽었고, 참 하나님의 증거로 사망에 그대로 버려질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④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습니다.
⑥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사망에 던져짐을 당해도 그대로 버려질 수 없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⑦ 여기에서 예수님이 구원자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신 것입니다.
⑧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어진 것입니다.
⑨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면 다 끝난 것입니다.
⑩ 그 이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못할 것이 없습니다.
⑪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신 “오직 예수”의 이름을 붙잡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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