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에서의 신앙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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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7: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창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 17:17)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 17: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3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 17:20)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창 17:21)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 17: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어릴 때 꿈들을 많이 꿉니다. 좋은 꿈도 있고 나쁜 꿈도 있고, 그런 꿈을 꾸는데 저도 어릴 때는 상당히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한번은 꿈을 꾸는데 바닥에 동전이 떨어져 있더라 구요. 그 동전을 하나씩, 하나씩 줍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주어도 끝이 안나요. 줍는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 구요. 여러분 꿈에라도 돈 줍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이래가지고 계속 주었는데요, 잠을 깰 때까지 줍는 거 있죠... 나중에 깨고 나니까 허탈하더라 구요. 계속 좀 더 꾸었으면 싶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한번은 꾸었는데 악한이 저를 따라오더라 구요. 그래서 막 골목길로 도망을 가는데, 뒤에 치한은 계속 따라오고 저는 겁이 나가지고 막 달려가는데, 하필이면 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다. 여러분 꿈에서 한번 도망가 봤습니까? 아무리 달려도 잘 가지를 못하죠. 꿈에서는 이상하더라 구요. 열심히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이 다리가 잘 안 떨어지고, 그리고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결국에는 이 막다른 골목을 딱 만났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당하다가 발버둥 치는 가운데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래도 꿈이니까 괜찮죠. 만일 이게 내 현실에서 이루어졌다면 상당히 문제가 될 겁니다. 지금 우리 여자 분들이 밤길을 지나가는데, 치한이 따라오고 막다른 골목을 만났다. 그러면 상당히 위험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 즉, 전혀 피할 수 없는 일들을 혹시 만날 때가 있습니다. 좀 피하고 싶은데, 아니 차라리 좀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 도저히 내가 감당치 못할 그런 어려운 문제들이 자꾸만 여러분들을 괴롭혀 왔을 때,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 딱 부딪혔을 때에 그때 오는 이 상실감, 그때 오는 고통과 좌절감은 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또 한번 인정을 하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창세기 3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난 현장입니다. 그러니까 언제 어느 시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몇 날, 몇 시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 큰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어떤 시한적으로 딱 정해준다면 좀 대비하고 준비를 하는데,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떻습니까?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큰 문제, 큰 사건, 너무 고통스러운 이런 사건들이 순식간에 밀어닥쳤을 때에 그때 오는 좌절감, 그때 오는 이 낙심, 그 고통 참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우리를 어디까지 몰고 갑니까? 오늘 메시지의 제목처럼 막다른 골목까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계속해서 몰아닥치는데요. 심지어 어느 정도까지 몰고 가느냐 하면, 전혀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막다른 골목까지 저와 여러분들을 몰고 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물질 때문에 너무 고통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경제계 현실이 참 어렵죠. 뭐 명예퇴직 이런 말들이 자꾸만 또 붉어지고 있고, 또 사업을 벌여놓아도 이게 제대로 되지 않고, 그래서 깡그리 무너지고 힘들어 졌을 때, 그때 오는 그 상실감! 그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어느 누가 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좀 많이 벌고 싶고, 좀더 풍성하게 쓰고 싶고, 좀더 잘 쓰고 싶은데...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단돈 만원, 단돈 천 원도 너무 아쉬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총신에 다닐 때에 한번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저희들이 학교에 올라갈 때는 월요일에 올라가면 금요일 밤에 내려왔습니다. 그때에 가지고 가는 돈이 얼마나 하면? 4만원 내지 5만원, 조금 기분 좋아서 집에서 줄 때는 5만원까지 받아 가는데, 그렇게 올라가면 이것 가지고 차비를 해야되고, 밥을 사먹어야 되고, 그 주간에 한두 권 정도 책을 사봅니다. 딱 맞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번은 책을 한 권 더 사고 싶어 가지고 한 권 더 샀거든요. 나중에 내려올 때, 밤에 늦게 내려오는데 잠깐 차가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배는 너무 고픈데 우동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려고 보니까, 돈이 하나도 없는 거 있죠. 그런데 화장실을 가려고 식당 앞으로 지나가는데, 그때 그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우동냄새가 얼마나 그렇게 좋은지! 평생에 그렇게 향기로운 우동냄새는 없었습니다.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은 없지! 그 날 밤에 쫄쫄 굶고 내려온 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그런 푸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명색이 제가 주의 종인데, 왜 이렇게 돈이 없습니까! 책도 좀 마음대로 사보고, 좀 마음대로 하고싶은 것도 하고, 좀 잘 쓰고 싶은데, 하나님 나는 왜 이렇게 돈이 없습니까? 얼마나 원망이 나오고, 또 내 자신이 참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겪은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훨씬 어려움을 겪는 그런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금 전에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은, 단돈 천 원이 어려운 사람, 단돈 만원이 없어서 참 어려움을 당하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물질을 통해서 막다른 골목으로 그렇게 내어 몰렸을 때에, 여러분 참 그 마음은 너무 씁쓸하고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사업을 하시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더 이상 소생할 길은 없고 힘들고 어려워지니까 어디에 손을 댔느냐 하면, 그 복권 있죠. 요즘 대박 터트리는 이 로또 복권! 여리게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뭐 로또 복권이 그렇게 쉽게 터집니까? 아무리 사도 소용이 없어요. 도리어 있는 돈만 다 깔아먹고... 그런데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그 사실을 알고 그 집사님을 불렀습니다. '집사님,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바라봐야 되지! 왜, 자꾸만 그런 쓸데없는 그런 복권에 손을 대십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이 말을 들은 집사님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목사님, 성경에도 로또가 있습니다!'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이 생전 처음 듣는 말이거든요. '성경 어디에 로또가 있습니까?' 이 집사님 왈 '창14장 12절에 보시면 소돔왕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사로잡아가고' 있답니다. '롯도 사로잡아가고' 그래서 이 목사님도 웃고, 그분도 웃고... 하도 답답하니까, 너무 힘들고 어려우니까, 그런 로또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자기도 어이가 없었겠죠. 그래서 웃는 이야기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조금 이제 살만한데, 겨우 겨우 어렵게 해 가지고 이루어 놓고 집 한 채 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그런 분들이 많더라 구요. 저도 한번 그런 분을 제가 심방을 해 봤거든요. '목사님, 이제 겨우 살만한데 왜 내게 이런 문제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엉엉 우시는 이런 분들을 봤습니다. 또 어떤 분은 남편과의 관계, 또 자녀들,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여러분들이 평생을 드려서 투자하고 양육을 해 놓았는데, 그런 자녀들에게 엄청난 문제가 왔다! 그때에 찾아오는 참 답답한 마음들! 이것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으로 시달립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떤 분하고 같이 대화를 했는데,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목사님, 밤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새벽까지 잠 한숨을 내가 잘 수 없습니다!'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여러분 지금 현실을 가만히 보십시오. 어떤 분들은 물질로, 어떤 분들은 건강으로, 자녀문제, 남편문제, 또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래서 너무 너무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왔을 때에,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그런 막다른 골목이 왔을 때에 여러분들은 과연 그때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이걸 내가 해결하고 싶다고 해결되어집니까? 아무리 힘쓰고 노력을 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에, 참 고통스럽고 내 자신이 너무 처절해 진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 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후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후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사도 바울이 한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어려움들이 오고, 얼마나 고통이 찾아왔던지! 그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살 소망이 끊어졌다!' 더 나아가서는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고난과 핍박을 많이 받았던지, 전혀 살 소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막다는 골목까지 갔다는 말입니다. 살 소망이 없을 정도로... 여러분 너무 어려움을 당하고 살 소망까지 없어지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 경험이 없으십니까? 갑자기 충격을 받고, 갑자기 어려운 문제를 딱 당하면 숨이 탁탁 막히죠. 그래서 '숨도 내가 제대로 쉬지 못하겠다!' 그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현실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요! 이런 문제를 당했을 때에 자칫하면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지고, 너무 불신앙이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내가 지금까지 평생 믿어왔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어쩌면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얼마든지 그런 푸념과 원망들이 일어날수가 있습니다. 숨도 제대로 쉴 수도 없고요. 힘들고 어려운 문제는 자꾸만 구석구석에 일어나죠. 그래서 이런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런 자리에까지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주의 성도들을 이런 구석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자꾸만 몰아가십니까?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답을 얻지 못하면 진짜로 불신앙이 일어납니다. 차라리 믿지 않는 게 더 나을 뻔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 모르고 믿지 않으면 더 좋은데, 그런데 내가 명색이 하나님의 자녀고 하나님을 믿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렸을 때에, 여러분 그때 오는 처절한 마음, 그때 오는 배신감!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답은 제가 조금 있다가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진행되는 과정을 제가 몇 가지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창세기 17장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17장 전체를 나중에 꼭 한번 읽어보십시오. 여기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바꾸는 그런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원래 아브라함의 이름이 뭐죠? 아브람이죠. 그리고 사라의 원래이름을 사래입니다. 이 '아브라함'이라는 말은 '높은 아버지다!' 그런 뜻을 가집니다. 또 사래도 마찬가지로 '높은 어머니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창세기 17장에 보시면,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완전히 바꾸시는 거죠. 이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이렇게 이름을 바꾸는데, 이 '아브라함'하는 말은, '열국의 아버지다! 많은 무리의 아버지다!' 이런 표현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 '사라'라는 말은, '열국의 어머니, 많은 무리의 어머니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지금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많은 무리의 아버지다! 많은 무리의 어머니다! 이런 이름으로 바뀌어 졌는데, 그런데 사실은 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아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전혀 소생이 없습니다. 아들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하나님께서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를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 전혀 없는데... 그런데 '너는 열국에 아버지가 되겠다! 너는 열방에 어머니가 되겠다! 많은 무리를 거느리는 그런 조상이 되겠다!' 지금 전혀 소생이 없는데, 아들이 없는데, 지금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지금 이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습니다. 나이가 지금 90세입니다. 그 말은 자손을 얻을 수 있는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는 많은 무리에 조상이 되겠다!'
지금 이 사라는 완전히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도 그렇습니다 만은, 옛날 이 아브라함 당시에는 만일 여자가 한 가문에 시집을 갔는데 아들이 없어서 그 가문에 대를 이어주지 못하면, 하나님께 최고의 징계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금 사람들이 얼마나 놀리고 비웃고 조롱합니다. '참, 너는 시집가서 어떻게 아들도 하나 없느냐?' 그런 식으로 얼마나 조롱하고 비웃고 있는데, 그래서 지금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렸는데, 그런 사라를 향해서, '너는 열국에 어머니가 되겠다!' 이름을 바꾸라는 겁니다. 이름을!
이때에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그 앞에 보시면, '민족에 열왕이 너에게서 나리라!' 이런 말씀을 했죠.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이 17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갖잖다는 말이죠. 여기서 웃는다는 말은, 여러분 의미를 잘 아십시오.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자기는 100세, 아내는 90세! 전혀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도 갖잖아 가지고 심중에 웃으며 가로되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도 안 믿으니까 나중에 성경에 배경을 쭉 보시면,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아브라함아, 하늘을 봐라!' 아브라함이 하늘을 봤습니다. '뭐가 있느냐?' 예, 별이 있습니다! '네 후손이 하늘에 별처럼 번성하겠다!' 하도 안 믿으니까! '100세 된 내가 어찌 아들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물론 인간적으로는 얼마든지 그렇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늘에 별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별처럼 너의 모든 후손을 번성하게 하겠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잘 믿어지지를 않습니다.
또 보십시오. 그 뒤에 18절에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렇겠죠. 지금 겨우 첩을 통해서 아들 하나 얻어놨습니다. '이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 말은 전혀 소망이 없다는 말이죠. 완전히 지금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그 뒤에 18장에도 한번 보십시오. 18장 12절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남편이나 아내나 똑같습니다. 그렇죠.
이 18장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대화하는 도중에 이 사라가 엿들었습니다. 엿들어 보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남편에게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너를 통해서, 또 네 아내를 통해서 아들을 주겠다!'는 겁니다. 그때에 바깥에서 들은 사라가 속으로 웃습니다. 12절입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그렇습니다.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경수가 끊어졌는데요. 여자의 기능을 전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참 답답하죠. 완전히 지금 골목으로 몰려있는데, 더 이상 헤어나올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 그런데다가 '너희들은 나를 믿어라!' 했을 때에 참 이 사람들이 지금 제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도 남편도 씩씩 웃습니다. '하나님, 이스마엘이나 잘 살기 원합니다!' 그런 식으로 완전히 인생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런 인생을 포기하고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린 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었다는 겁니다. 영원한 대를 이어갈 수 있는 축복을 주었다는 겁니다. 그 낳은 자식이 누구입니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삭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걸로 끝나야 되죠. 모든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진짜 우리도 큰 확신을 가지고 '그렇다! 하나님의 능력이 막강하구나!' 이게 조금 체험되어질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타난 사건이 참 괴롭게 합니다. 왜냐하면, 보십시오.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얻은 아들이죠. 그런데 이런 아들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창세기 22장에 넘어오시면, '네 독자 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내게 바쳐라!' 그것도 '번제로 바쳐라!' 참 희한합니다. 여러분 꼭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데리고 장난치는 것 같아요. 주시려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또 바치라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바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불에 바짝 태워 가지고, 그래서 '내게 바쳐라!' 참 하나님의 식성이 희한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는 언제고 또 바치라고 했을 때에, 그때 오는 이 절박감!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제 류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던데, 차라리 이삭을 바치라고 하지말고 늙은 사라를 바치라고 하면 좋을 건데...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생각이 그래요. 늙은 아내 바치면 새 장가가고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90세 된 늙은 아내는 놔두고, 이 새파란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아브라함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완전히 지금 골목으로 몰고 갔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왜 아브라함과 이삭 부자를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그렇게 몰아 가십니까? 여러분 오늘 여기에 우리가 진정한 답을 얻지 못하면 진짜로 불 신앙합니다. 진짜로 원망이 함께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뭡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렇게 쭉 골목으로 몰아가실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중요한 비밀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수양의 비밀입니다. 수양의 비밀! 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하는 순간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독자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마라!' 그러면서 그 독자 대신에 뭘 준비했습니까? 수양을 준비했습니다. 수풀에 걸려있는 이 수양을 준비했죠. 그래서 '수양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성경에 있습니다. 창세기 22장을 꼭 읽어보십시오.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을 번제로 드렸더라!'
무슨 말이냐? 대속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남으로 통해서 영원한 멸망 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려고 대속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셨다는 것! 그 수양의 비밀! 이 그리스도 예수의 언약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이삭! 이 부자를 극적으로 깊은 골목으로 그렇게 몰고 가셨다는 사실을 여러분 절대로 놓치지 마십시오. 어쨌든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막 밀어붙일 때는, 거기에 완벽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보십시오.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골목에 부딪힌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으로, 어떤 사건이죠? 홍해사건입니다. 이제 출애굽하면서 얼마나 감사하며, 기뻐하며, 춤을 추며, 노래하며 그 애굽 땅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딱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죠? 홍해바다입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까 바로의 군사, 이 마병들이 쫓아옵니다. 참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매장지 운운이 되어졌습니다. '애굽 땅에 매장지가 없느냐? 왜, 우리를 바다에 빠져 죽게 하느냐?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않느냐?' 이래가지고 얼마나 불평과 원망의 소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출애굽기 14장을 가만히 한번 읽어보십시오. 중요한 말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하면, 이렇게 이제 '진퇴양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그런 어려움에 딱 직면해 있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알스본 맞은편으로 장막을 치게 해라!' 그런데 바알스본이라는 뜻이 뭐냐하면, '하나님의 숨겨진 보석이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닷물이 출렁이고, 심지어는 바로의 애굽 군사들이 아무리 쫓아와도 하나님의 숨겨진 그 바알스본, 거기에 정착을 딱 하는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홍해 바다를 믿음으로 건너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어려움으로 몰고 가실 때는 거기에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계획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꾸만 우리는 불평부터 먼저하고, 원망부터 먼저하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믿지 못하는 그런 불신앙의 자리로 자꾸만 빠져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막다른 골목을 만났을 때에 절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한사람 더 보겠습니다. 다윗의 인생이 있습니다. 시편 3편 1절에 보시면,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계속해서 말합니다. 시편 3편 2절에 보시면,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참 다윗의 인생을 가만히 보십시오. 이런 기고한 운명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로... 사울 왕에게 늘 내어 쫓김을 당하죠. 생명에 위협을 받습니다. 이제 조금 살만하니까, 이제는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킵니다. 나중에는 자기 속으로 난 자식까지 이 아버지를 죽이고 밀어내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울 왕의 눈을 피해서 도망을 가는데 물도 떨어지고, 양식도 떨어지고, 이 다윗도 마찬가지로 또 그 신하들도 전부다 굶어 죽을 그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에 마침 그 동네에 사는 아비멜렉이라는 제사장이 있습니다. 이 제사장이 물과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이 다윗과 그 신하들에게 대접을 했습니다.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알았습니까? 사울 왕이 알았습니다. 그래가지고 이 사울 왕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자기는 죽이려고 하는데, 이 죽이려는 다윗을 환대하고 도와줬으니까, 너무 화가 났겠죠. 그래서 아비멜렉과 그 밑에 있는 제사장 85명을 다 잡아들여 가지고 일시에 쳐죽였습니다. 그리고 뭐라 그랬습니까? '만일 다윗을 살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전부다 이렇게 멸족시키겠다!' 그리고 반대로 '만일 다윗이 어디에 있다는 사실을 밀고하는 사람에게는 풍성하게 대가를 치러주겠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다윗에게 그래도 조금 호의를 가졌던 이런 사람들이 포상금을 준다는 그 말 때문에, 그때부터 완전히 사람들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다윗을 밀고하고 잡아죽이려고 합니다.
이때에 다윗이 외친말 "(시 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급기야 이 다윗이 어디까지 도망을 갑니까?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는 살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도망 도망치다가 어디까지 흘러들었느냐 하면, 블레셋까지 도망을 갑니다. 그 블레셋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데로 이 다윗이 골리앗을 쳐죽인 그 고향이 블레셋입니다. 얼마나 피할 때가 없었으면 그 원수 나라인 블레셋까지 도망을 했겠습니까? 그만큼 참 위급한 상황이 그에게 들이닥칩니다.
그것도 블레셋으로 도망할 때에 그냥 도망한 것이 아니고, 그냥 도망가면 죽으니까 미친 척 했습니다. 막 고함을 지르고, 침을 질질 흘리고, 옷도 다 찢고, 이런 상태로 도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시 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주여 주는 나의 방패 되시고 나의 도움이 되시나이다!' 그때 했던 고백이 시편 3편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다윗의 인생도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주의 성도들을 왜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자꾸만 몰아가십니까? 오늘 여기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좀 얻어야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주의 종들을 당신의 백성들을 자꾸만 어렵고 힘든 고통 속으로 몰아 가시느냐? 여기에 대한 우리가 실제적인 답을 좀 얻어야 될 것입니다. 그 답이 고린도후서 1장 8절, 9절 두절 말씀 속에 있습니다. "(고후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후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아멘. 여러분 여기에서 진짜로 아멘이 터져 나와야됩니다.
왜,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가십니까? 오늘 바울이 고백을 합니다. 얼마나 고난과 핍박을 많이 받았던지, '이제는 내게 살 소망이 없다! 내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렇게 고백할 정도로...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참 우리는 지금까지 믿음, 믿음 하면서도 자꾸만 자기 자신을 의지합니다. 사람 바라보고, 물질을 바라보고, 부모 바라보고, 자식 의지하고... 그래서 '더 이상 너희 자신들을 의지하지 마라!' 이게 실패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무엇을 의뢰해야 됩니까? 그 바로 뒤에 보시면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했습니다. 왜.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그렇게 몰아가십니까? 결국에는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지 말고 누구를? 살아 계신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언약되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 여기에 모두 살아나고 회복되어지는 이런 축복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사람보지 마십시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절대로 우리가 의지할 대상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소망의 대상은 하나님이지 절대로 인간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몰릴수록 더욱더 하나님 의지하십시오. 그 뒤에 고린도 후서 4장 7절, 8절에 보시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내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내가 싸이지 않는다!' 왜, 그렇습니까? '내 속에 보배를 가졌다!' 누구입니까?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여기에 회복되어지는 축복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참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순간에 사업이 무너질 때가 있고, 물질적으로 쪼들릴 때가 있고, 또 여러분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찾아올 때도 있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그런 고통도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남는 길이 뭡니까? 오직 그리스도!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여기에 살아나는 축복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그랬습니다.
지난 금요일 날 우리 청년 하나가 잠깐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해서 전도학교를 마치고 사무실에 와서 잠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목사님, 내가 아무리 책을 읽어도 책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되고, 얼마나, 얼마나 가슴이 답답한지...' 그래서 너무 답답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엉엉 울었답니다. '하나님, 내가 책을 읽어도 성경을 봐도 이해가 안 되는데, 하나님 내게 지혜를 주시고, 은혜 주셔서 이 책이 좀 이해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그런 식으로 얼마나 하나님께 울고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책을 읽으면 그렇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답니다. 그러면서 책을 두 권 제게 보여주더라 구요. '목사님, 이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니면 읽지 말아야 될 책인지 한번 확인을 해 달래요.' 책을 꺼내는데 보니까요 신학생들이 보는 어려운 그런 신학서적인 거 있죠. 그래서 하도 내가 어이가 없어 가지고, '야, 이게 이해가 되냐? 목사님 너무 재미있어요. 아니 신학생들도 잘 이해 못하는데 재미있냐? 재미있데요!' 보십시오, 여러분 아무리 극적으로 몰려도 진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지금 신학생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 책들이 그렇게 재미가 있고 그렇게 좋데요. 아주 건전한 책입니다. 그래서 '마음껏 읽어라! 그리고 은혜 받아라!'
여러분 무엇 때문에 걱정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지금 낙심하십니까? 제가 볼 때는 하나님을 제대로 의지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니까! 자꾸만 자기의 마음과 생각들이 인간적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말씀처럼, 하나님 바라보십시오. 전적으로 하나님 의뢰하고 하나님 바라 볼 때에 여기에 최고의 축복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제가 새벽기도회 때 잠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되 99%도 믿지 말고, 몇 퍼센트요? 100% 여러분들이 1%를 믿지 못하면, 1%믿지 못하는 만큼 불신앙이 들어옵니다. 제가 볼 때는 지금 99%는 둘째치고 50%도 제대로 못 믿습니다. 그러니까 50% 믿지 못하면 50% 믿지 못하는 만큼, 불신앙과 사단의 세력이 여러분 속에 틈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꼭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되 100%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하옵소서! 100% 이번 주간 성령 충만하게 하옵소서!' 여러분 진짜로 기도하십시오. 이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고 의지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100% 하나님 능력 믿으시고 최고의 응답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릴 때 뒤에서 괴한이 쫓아오는데 아무리 도망을 가도 도망이 가지지 않는 꿈을 꾸었습니다. 다행히 꿈이었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막다른 골목이 우리의 인생에 다다른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우리가 있는 현장이 창세기 3장의 힘든 현장입니다. 어떤 고통이 올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는 현장입니다.
1. 막다른 골목에 몰린 현실
① 우리들은 경제, 사업, 건강, 자녀, 영적 문제에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②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핍박을 받았던지 살 소망이 없어졌다고 합니다.(고후 1:8-9)
③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이 있는데도, 막다른 골목에 몰릴 때 여러분의 심정이 어떻습니까?
2.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성경의 예
① 첫째로, 창세기 17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꾸는 일이 있었습니다.
② 아브람은 ‘높은 아버지’, 사래는 ‘높은 어머니’라는 이름입니다. 아브라함이란 ‘열국의 아버지’,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③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자손을 낳을 수 없는 나이에 이름을 바꾸시며 많은 무리의 부모라고 하셨습니다.
④ 한탄에 젖은 아브라함을 밖으로 인도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던 사라에게 웃었느냐고 질책하시며,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시게 됩니다.
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라고 이야기하십니다. 피해갈 수 없는 골목으로 밀어가셨습니다.
⑥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수양의 비밀을 보여주십니다. 메시아의 언약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⑦ 둘째는, 출애굽하여 홍해를 만난 이스라엘 백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향해서 불평하며 원망을 하게 됩니다.
⑧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비하신 곳의 이름이 ‘바알스본 - 숨겨진 안온한 장소‘입니다.
⑨ 셋째로, 다윗이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3:1의 원수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⑩ 젊었을 때는, 사울 왕이 죽이려고 하고, 나이가 들자 신하와 아들이 반역을 저질렀습니다.
⑪ 다윗이 도망하여 곤경에 처했을 때 아히멜렉이라는 제사장이 그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어 살아났습니다.
⑫ 화가 난 사울은 아히멜렉과 85명의 제사장을 죽이고, 다윗에게 포상금을 걸게 됩니다.
⑬ 너무 괴로웠던 살기위해 다윗은 미친척하며,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까지 흘러갑니다.
⑭ 넷째로, 사도행전 3장의 성전의 미문 앞에 앉아있던 앉은뱅이가 있습니다. 40년간 구걸을 하며 빌어먹었습니다.
⑮ 마지막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전했지만, 죽음으로 사지로, 풍랑으로, 나중에는 감옥에까지 몰렸습니다,
3. 막다른 골목으로 모시는 이유
① 바울은,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백합니다 (고후 1:8-9)
②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하고 낙심하고 핍박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고후 4:8-9),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고, 이를 전적으로 믿을 때 다시 살아남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고후 4:7)
많은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를 잡을 때 온전한 축복을 주십니다. 100%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만큼, 문제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제대로 바라볼 때 엄청난 기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기적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최고의 축복을 주십니다.
(창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 17:17)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 17: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3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 17:20)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창 17:21)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 17: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어릴 때 꿈들을 많이 꿉니다. 좋은 꿈도 있고 나쁜 꿈도 있고, 그런 꿈을 꾸는데 저도 어릴 때는 상당히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한번은 꿈을 꾸는데 바닥에 동전이 떨어져 있더라 구요. 그 동전을 하나씩, 하나씩 줍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주어도 끝이 안나요. 줍는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 구요. 여러분 꿈에라도 돈 줍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이래가지고 계속 주었는데요, 잠을 깰 때까지 줍는 거 있죠... 나중에 깨고 나니까 허탈하더라 구요. 계속 좀 더 꾸었으면 싶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한번은 꾸었는데 악한이 저를 따라오더라 구요. 그래서 막 골목길로 도망을 가는데, 뒤에 치한은 계속 따라오고 저는 겁이 나가지고 막 달려가는데, 하필이면 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다. 여러분 꿈에서 한번 도망가 봤습니까? 아무리 달려도 잘 가지를 못하죠. 꿈에서는 이상하더라 구요. 열심히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이 다리가 잘 안 떨어지고, 그리고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결국에는 이 막다른 골목을 딱 만났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당하다가 발버둥 치는 가운데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래도 꿈이니까 괜찮죠. 만일 이게 내 현실에서 이루어졌다면 상당히 문제가 될 겁니다. 지금 우리 여자 분들이 밤길을 지나가는데, 치한이 따라오고 막다른 골목을 만났다. 그러면 상당히 위험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 즉, 전혀 피할 수 없는 일들을 혹시 만날 때가 있습니다. 좀 피하고 싶은데, 아니 차라리 좀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 도저히 내가 감당치 못할 그런 어려운 문제들이 자꾸만 여러분들을 괴롭혀 왔을 때,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 딱 부딪혔을 때에 그때 오는 이 상실감, 그때 오는 고통과 좌절감은 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또 한번 인정을 하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창세기 3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난 현장입니다. 그러니까 언제 어느 시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몇 날, 몇 시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 큰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어떤 시한적으로 딱 정해준다면 좀 대비하고 준비를 하는데,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떻습니까?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큰 문제, 큰 사건, 너무 고통스러운 이런 사건들이 순식간에 밀어닥쳤을 때에 그때 오는 좌절감, 그때 오는 이 낙심, 그 고통 참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우리를 어디까지 몰고 갑니까? 오늘 메시지의 제목처럼 막다른 골목까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계속해서 몰아닥치는데요. 심지어 어느 정도까지 몰고 가느냐 하면, 전혀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막다른 골목까지 저와 여러분들을 몰고 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물질 때문에 너무 고통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경제계 현실이 참 어렵죠. 뭐 명예퇴직 이런 말들이 자꾸만 또 붉어지고 있고, 또 사업을 벌여놓아도 이게 제대로 되지 않고, 그래서 깡그리 무너지고 힘들어 졌을 때, 그때 오는 그 상실감! 그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어느 누가 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좀 많이 벌고 싶고, 좀더 풍성하게 쓰고 싶고, 좀더 잘 쓰고 싶은데...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단돈 만원, 단돈 천 원도 너무 아쉬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총신에 다닐 때에 한번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저희들이 학교에 올라갈 때는 월요일에 올라가면 금요일 밤에 내려왔습니다. 그때에 가지고 가는 돈이 얼마나 하면? 4만원 내지 5만원, 조금 기분 좋아서 집에서 줄 때는 5만원까지 받아 가는데, 그렇게 올라가면 이것 가지고 차비를 해야되고, 밥을 사먹어야 되고, 그 주간에 한두 권 정도 책을 사봅니다. 딱 맞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번은 책을 한 권 더 사고 싶어 가지고 한 권 더 샀거든요. 나중에 내려올 때, 밤에 늦게 내려오는데 잠깐 차가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배는 너무 고픈데 우동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려고 보니까, 돈이 하나도 없는 거 있죠. 그런데 화장실을 가려고 식당 앞으로 지나가는데, 그때 그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우동냄새가 얼마나 그렇게 좋은지! 평생에 그렇게 향기로운 우동냄새는 없었습니다.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은 없지! 그 날 밤에 쫄쫄 굶고 내려온 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그런 푸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명색이 제가 주의 종인데, 왜 이렇게 돈이 없습니까! 책도 좀 마음대로 사보고, 좀 마음대로 하고싶은 것도 하고, 좀 잘 쓰고 싶은데, 하나님 나는 왜 이렇게 돈이 없습니까? 얼마나 원망이 나오고, 또 내 자신이 참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겪은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훨씬 어려움을 겪는 그런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금 전에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은, 단돈 천 원이 어려운 사람, 단돈 만원이 없어서 참 어려움을 당하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물질을 통해서 막다른 골목으로 그렇게 내어 몰렸을 때에, 여러분 참 그 마음은 너무 씁쓸하고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사업을 하시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더 이상 소생할 길은 없고 힘들고 어려워지니까 어디에 손을 댔느냐 하면, 그 복권 있죠. 요즘 대박 터트리는 이 로또 복권! 여리게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뭐 로또 복권이 그렇게 쉽게 터집니까? 아무리 사도 소용이 없어요. 도리어 있는 돈만 다 깔아먹고... 그런데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그 사실을 알고 그 집사님을 불렀습니다. '집사님,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바라봐야 되지! 왜, 자꾸만 그런 쓸데없는 그런 복권에 손을 대십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이 말을 들은 집사님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목사님, 성경에도 로또가 있습니다!'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이 생전 처음 듣는 말이거든요. '성경 어디에 로또가 있습니까?' 이 집사님 왈 '창14장 12절에 보시면 소돔왕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사로잡아가고' 있답니다. '롯도 사로잡아가고' 그래서 이 목사님도 웃고, 그분도 웃고... 하도 답답하니까, 너무 힘들고 어려우니까, 그런 로또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자기도 어이가 없었겠죠. 그래서 웃는 이야기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조금 이제 살만한데, 겨우 겨우 어렵게 해 가지고 이루어 놓고 집 한 채 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그런 분들이 많더라 구요. 저도 한번 그런 분을 제가 심방을 해 봤거든요. '목사님, 이제 겨우 살만한데 왜 내게 이런 문제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엉엉 우시는 이런 분들을 봤습니다. 또 어떤 분은 남편과의 관계, 또 자녀들,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여러분들이 평생을 드려서 투자하고 양육을 해 놓았는데, 그런 자녀들에게 엄청난 문제가 왔다! 그때에 찾아오는 참 답답한 마음들! 이것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으로 시달립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떤 분하고 같이 대화를 했는데,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목사님, 밤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새벽까지 잠 한숨을 내가 잘 수 없습니다!'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여러분 지금 현실을 가만히 보십시오. 어떤 분들은 물질로, 어떤 분들은 건강으로, 자녀문제, 남편문제, 또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래서 너무 너무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왔을 때에,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그런 막다른 골목이 왔을 때에 여러분들은 과연 그때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이걸 내가 해결하고 싶다고 해결되어집니까? 아무리 힘쓰고 노력을 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에, 참 고통스럽고 내 자신이 너무 처절해 진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 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후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후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사도 바울이 한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어려움들이 오고, 얼마나 고통이 찾아왔던지! 그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살 소망이 끊어졌다!' 더 나아가서는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고난과 핍박을 많이 받았던지, 전혀 살 소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막다는 골목까지 갔다는 말입니다. 살 소망이 없을 정도로... 여러분 너무 어려움을 당하고 살 소망까지 없어지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 경험이 없으십니까? 갑자기 충격을 받고, 갑자기 어려운 문제를 딱 당하면 숨이 탁탁 막히죠. 그래서 '숨도 내가 제대로 쉬지 못하겠다!' 그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현실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요! 이런 문제를 당했을 때에 자칫하면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지고, 너무 불신앙이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내가 지금까지 평생 믿어왔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어쩌면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얼마든지 그런 푸념과 원망들이 일어날수가 있습니다. 숨도 제대로 쉴 수도 없고요. 힘들고 어려운 문제는 자꾸만 구석구석에 일어나죠. 그래서 이런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런 자리에까지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주의 성도들을 이런 구석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자꾸만 몰아가십니까?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답을 얻지 못하면 진짜로 불신앙이 일어납니다. 차라리 믿지 않는 게 더 나을 뻔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 모르고 믿지 않으면 더 좋은데, 그런데 내가 명색이 하나님의 자녀고 하나님을 믿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렸을 때에, 여러분 그때 오는 처절한 마음, 그때 오는 배신감!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답은 제가 조금 있다가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진행되는 과정을 제가 몇 가지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창세기 17장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17장 전체를 나중에 꼭 한번 읽어보십시오. 여기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바꾸는 그런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원래 아브라함의 이름이 뭐죠? 아브람이죠. 그리고 사라의 원래이름을 사래입니다. 이 '아브라함'이라는 말은 '높은 아버지다!' 그런 뜻을 가집니다. 또 사래도 마찬가지로 '높은 어머니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창세기 17장에 보시면,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완전히 바꾸시는 거죠. 이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이렇게 이름을 바꾸는데, 이 '아브라함'하는 말은, '열국의 아버지다! 많은 무리의 아버지다!' 이런 표현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 '사라'라는 말은, '열국의 어머니, 많은 무리의 어머니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지금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많은 무리의 아버지다! 많은 무리의 어머니다! 이런 이름으로 바뀌어 졌는데, 그런데 사실은 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아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전혀 소생이 없습니다. 아들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하나님께서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를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 전혀 없는데... 그런데 '너는 열국에 아버지가 되겠다! 너는 열방에 어머니가 되겠다! 많은 무리를 거느리는 그런 조상이 되겠다!' 지금 전혀 소생이 없는데, 아들이 없는데, 지금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지금 이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습니다. 나이가 지금 90세입니다. 그 말은 자손을 얻을 수 있는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는 많은 무리에 조상이 되겠다!'
지금 이 사라는 완전히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도 그렇습니다 만은, 옛날 이 아브라함 당시에는 만일 여자가 한 가문에 시집을 갔는데 아들이 없어서 그 가문에 대를 이어주지 못하면, 하나님께 최고의 징계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금 사람들이 얼마나 놀리고 비웃고 조롱합니다. '참, 너는 시집가서 어떻게 아들도 하나 없느냐?' 그런 식으로 얼마나 조롱하고 비웃고 있는데, 그래서 지금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렸는데, 그런 사라를 향해서, '너는 열국에 어머니가 되겠다!' 이름을 바꾸라는 겁니다. 이름을!
이때에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그 앞에 보시면, '민족에 열왕이 너에게서 나리라!' 이런 말씀을 했죠.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이 17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갖잖다는 말이죠. 여기서 웃는다는 말은, 여러분 의미를 잘 아십시오.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자기는 100세, 아내는 90세! 전혀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도 갖잖아 가지고 심중에 웃으며 가로되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도 안 믿으니까 나중에 성경에 배경을 쭉 보시면,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아브라함아, 하늘을 봐라!' 아브라함이 하늘을 봤습니다. '뭐가 있느냐?' 예, 별이 있습니다! '네 후손이 하늘에 별처럼 번성하겠다!' 하도 안 믿으니까! '100세 된 내가 어찌 아들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물론 인간적으로는 얼마든지 그렇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늘에 별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별처럼 너의 모든 후손을 번성하게 하겠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잘 믿어지지를 않습니다.
또 보십시오. 그 뒤에 18절에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렇겠죠. 지금 겨우 첩을 통해서 아들 하나 얻어놨습니다. '이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 말은 전혀 소망이 없다는 말이죠. 완전히 지금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그 뒤에 18장에도 한번 보십시오. 18장 12절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남편이나 아내나 똑같습니다. 그렇죠.
이 18장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대화하는 도중에 이 사라가 엿들었습니다. 엿들어 보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남편에게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너를 통해서, 또 네 아내를 통해서 아들을 주겠다!'는 겁니다. 그때에 바깥에서 들은 사라가 속으로 웃습니다. 12절입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그렇습니다.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경수가 끊어졌는데요. 여자의 기능을 전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참 답답하죠. 완전히 지금 골목으로 몰려있는데, 더 이상 헤어나올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 그런데다가 '너희들은 나를 믿어라!' 했을 때에 참 이 사람들이 지금 제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도 남편도 씩씩 웃습니다. '하나님, 이스마엘이나 잘 살기 원합니다!' 그런 식으로 완전히 인생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런 인생을 포기하고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린 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었다는 겁니다. 영원한 대를 이어갈 수 있는 축복을 주었다는 겁니다. 그 낳은 자식이 누구입니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삭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걸로 끝나야 되죠. 모든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진짜 우리도 큰 확신을 가지고 '그렇다! 하나님의 능력이 막강하구나!' 이게 조금 체험되어질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타난 사건이 참 괴롭게 합니다. 왜냐하면, 보십시오.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얻은 아들이죠. 그런데 이런 아들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창세기 22장에 넘어오시면, '네 독자 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내게 바쳐라!' 그것도 '번제로 바쳐라!' 참 희한합니다. 여러분 꼭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데리고 장난치는 것 같아요. 주시려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또 바치라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바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불에 바짝 태워 가지고, 그래서 '내게 바쳐라!' 참 하나님의 식성이 희한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는 언제고 또 바치라고 했을 때에, 그때 오는 이 절박감!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제 류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던데, 차라리 이삭을 바치라고 하지말고 늙은 사라를 바치라고 하면 좋을 건데...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생각이 그래요. 늙은 아내 바치면 새 장가가고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90세 된 늙은 아내는 놔두고, 이 새파란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아브라함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완전히 지금 골목으로 몰고 갔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왜 아브라함과 이삭 부자를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그렇게 몰아 가십니까? 여러분 오늘 여기에 우리가 진정한 답을 얻지 못하면 진짜로 불 신앙합니다. 진짜로 원망이 함께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뭡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렇게 쭉 골목으로 몰아가실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중요한 비밀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수양의 비밀입니다. 수양의 비밀! 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하는 순간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독자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마라!' 그러면서 그 독자 대신에 뭘 준비했습니까? 수양을 준비했습니다. 수풀에 걸려있는 이 수양을 준비했죠. 그래서 '수양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성경에 있습니다. 창세기 22장을 꼭 읽어보십시오.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을 번제로 드렸더라!'
무슨 말이냐? 대속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남으로 통해서 영원한 멸망 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려고 대속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셨다는 것! 그 수양의 비밀! 이 그리스도 예수의 언약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이삭! 이 부자를 극적으로 깊은 골목으로 그렇게 몰고 가셨다는 사실을 여러분 절대로 놓치지 마십시오. 어쨌든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막 밀어붙일 때는, 거기에 완벽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보십시오.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골목에 부딪힌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으로, 어떤 사건이죠? 홍해사건입니다. 이제 출애굽하면서 얼마나 감사하며, 기뻐하며, 춤을 추며, 노래하며 그 애굽 땅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딱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죠? 홍해바다입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까 바로의 군사, 이 마병들이 쫓아옵니다. 참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매장지 운운이 되어졌습니다. '애굽 땅에 매장지가 없느냐? 왜, 우리를 바다에 빠져 죽게 하느냐?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않느냐?' 이래가지고 얼마나 불평과 원망의 소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출애굽기 14장을 가만히 한번 읽어보십시오. 중요한 말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하면, 이렇게 이제 '진퇴양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그런 어려움에 딱 직면해 있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알스본 맞은편으로 장막을 치게 해라!' 그런데 바알스본이라는 뜻이 뭐냐하면, '하나님의 숨겨진 보석이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닷물이 출렁이고, 심지어는 바로의 애굽 군사들이 아무리 쫓아와도 하나님의 숨겨진 그 바알스본, 거기에 정착을 딱 하는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홍해 바다를 믿음으로 건너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어려움으로 몰고 가실 때는 거기에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계획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꾸만 우리는 불평부터 먼저하고, 원망부터 먼저하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믿지 못하는 그런 불신앙의 자리로 자꾸만 빠져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막다른 골목을 만났을 때에 절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한사람 더 보겠습니다. 다윗의 인생이 있습니다. 시편 3편 1절에 보시면,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계속해서 말합니다. 시편 3편 2절에 보시면,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참 다윗의 인생을 가만히 보십시오. 이런 기고한 운명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로... 사울 왕에게 늘 내어 쫓김을 당하죠. 생명에 위협을 받습니다. 이제 조금 살만하니까, 이제는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킵니다. 나중에는 자기 속으로 난 자식까지 이 아버지를 죽이고 밀어내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울 왕의 눈을 피해서 도망을 가는데 물도 떨어지고, 양식도 떨어지고, 이 다윗도 마찬가지로 또 그 신하들도 전부다 굶어 죽을 그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에 마침 그 동네에 사는 아비멜렉이라는 제사장이 있습니다. 이 제사장이 물과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이 다윗과 그 신하들에게 대접을 했습니다.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알았습니까? 사울 왕이 알았습니다. 그래가지고 이 사울 왕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자기는 죽이려고 하는데, 이 죽이려는 다윗을 환대하고 도와줬으니까, 너무 화가 났겠죠. 그래서 아비멜렉과 그 밑에 있는 제사장 85명을 다 잡아들여 가지고 일시에 쳐죽였습니다. 그리고 뭐라 그랬습니까? '만일 다윗을 살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전부다 이렇게 멸족시키겠다!' 그리고 반대로 '만일 다윗이 어디에 있다는 사실을 밀고하는 사람에게는 풍성하게 대가를 치러주겠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다윗에게 그래도 조금 호의를 가졌던 이런 사람들이 포상금을 준다는 그 말 때문에, 그때부터 완전히 사람들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다윗을 밀고하고 잡아죽이려고 합니다.
이때에 다윗이 외친말 "(시 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급기야 이 다윗이 어디까지 도망을 갑니까?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는 살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도망 도망치다가 어디까지 흘러들었느냐 하면, 블레셋까지 도망을 갑니다. 그 블레셋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데로 이 다윗이 골리앗을 쳐죽인 그 고향이 블레셋입니다. 얼마나 피할 때가 없었으면 그 원수 나라인 블레셋까지 도망을 했겠습니까? 그만큼 참 위급한 상황이 그에게 들이닥칩니다.
그것도 블레셋으로 도망할 때에 그냥 도망한 것이 아니고, 그냥 도망가면 죽으니까 미친 척 했습니다. 막 고함을 지르고, 침을 질질 흘리고, 옷도 다 찢고, 이런 상태로 도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시 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주여 주는 나의 방패 되시고 나의 도움이 되시나이다!' 그때 했던 고백이 시편 3편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다윗의 인생도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주의 성도들을 왜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자꾸만 몰아가십니까? 오늘 여기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좀 얻어야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주의 종들을 당신의 백성들을 자꾸만 어렵고 힘든 고통 속으로 몰아 가시느냐? 여기에 대한 우리가 실제적인 답을 좀 얻어야 될 것입니다. 그 답이 고린도후서 1장 8절, 9절 두절 말씀 속에 있습니다. "(고후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후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아멘. 여러분 여기에서 진짜로 아멘이 터져 나와야됩니다.
왜,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가십니까? 오늘 바울이 고백을 합니다. 얼마나 고난과 핍박을 많이 받았던지, '이제는 내게 살 소망이 없다! 내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렇게 고백할 정도로...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참 우리는 지금까지 믿음, 믿음 하면서도 자꾸만 자기 자신을 의지합니다. 사람 바라보고, 물질을 바라보고, 부모 바라보고, 자식 의지하고... 그래서 '더 이상 너희 자신들을 의지하지 마라!' 이게 실패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무엇을 의뢰해야 됩니까? 그 바로 뒤에 보시면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했습니다. 왜.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그렇게 몰아가십니까? 결국에는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지 말고 누구를? 살아 계신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언약되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 여기에 모두 살아나고 회복되어지는 이런 축복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사람보지 마십시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절대로 우리가 의지할 대상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소망의 대상은 하나님이지 절대로 인간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몰릴수록 더욱더 하나님 의지하십시오. 그 뒤에 고린도 후서 4장 7절, 8절에 보시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내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내가 싸이지 않는다!' 왜, 그렇습니까? '내 속에 보배를 가졌다!' 누구입니까?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여기에 회복되어지는 축복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참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순간에 사업이 무너질 때가 있고, 물질적으로 쪼들릴 때가 있고, 또 여러분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찾아올 때도 있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그런 고통도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남는 길이 뭡니까? 오직 그리스도!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여기에 살아나는 축복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그랬습니다.
지난 금요일 날 우리 청년 하나가 잠깐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해서 전도학교를 마치고 사무실에 와서 잠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목사님, 내가 아무리 책을 읽어도 책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되고, 얼마나, 얼마나 가슴이 답답한지...' 그래서 너무 답답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엉엉 울었답니다. '하나님, 내가 책을 읽어도 성경을 봐도 이해가 안 되는데, 하나님 내게 지혜를 주시고, 은혜 주셔서 이 책이 좀 이해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그런 식으로 얼마나 하나님께 울고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책을 읽으면 그렇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답니다. 그러면서 책을 두 권 제게 보여주더라 구요. '목사님, 이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니면 읽지 말아야 될 책인지 한번 확인을 해 달래요.' 책을 꺼내는데 보니까요 신학생들이 보는 어려운 그런 신학서적인 거 있죠. 그래서 하도 내가 어이가 없어 가지고, '야, 이게 이해가 되냐? 목사님 너무 재미있어요. 아니 신학생들도 잘 이해 못하는데 재미있냐? 재미있데요!' 보십시오, 여러분 아무리 극적으로 몰려도 진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지금 신학생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 책들이 그렇게 재미가 있고 그렇게 좋데요. 아주 건전한 책입니다. 그래서 '마음껏 읽어라! 그리고 은혜 받아라!'
여러분 무엇 때문에 걱정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지금 낙심하십니까? 제가 볼 때는 하나님을 제대로 의지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니까! 자꾸만 자기의 마음과 생각들이 인간적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말씀처럼, 하나님 바라보십시오. 전적으로 하나님 의뢰하고 하나님 바라 볼 때에 여기에 최고의 축복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제가 새벽기도회 때 잠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되 99%도 믿지 말고, 몇 퍼센트요? 100% 여러분들이 1%를 믿지 못하면, 1%믿지 못하는 만큼 불신앙이 들어옵니다. 제가 볼 때는 지금 99%는 둘째치고 50%도 제대로 못 믿습니다. 그러니까 50% 믿지 못하면 50% 믿지 못하는 만큼, 불신앙과 사단의 세력이 여러분 속에 틈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꼭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되 100%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하옵소서! 100% 이번 주간 성령 충만하게 하옵소서!' 여러분 진짜로 기도하십시오. 이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고 의지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100% 하나님 능력 믿으시고 최고의 응답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릴 때 뒤에서 괴한이 쫓아오는데 아무리 도망을 가도 도망이 가지지 않는 꿈을 꾸었습니다. 다행히 꿈이었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막다른 골목이 우리의 인생에 다다른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우리가 있는 현장이 창세기 3장의 힘든 현장입니다. 어떤 고통이 올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는 현장입니다.
1. 막다른 골목에 몰린 현실
① 우리들은 경제, 사업, 건강, 자녀, 영적 문제에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②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핍박을 받았던지 살 소망이 없어졌다고 합니다.(고후 1:8-9)
③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이 있는데도, 막다른 골목에 몰릴 때 여러분의 심정이 어떻습니까?
2.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성경의 예
① 첫째로, 창세기 17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꾸는 일이 있었습니다.
② 아브람은 ‘높은 아버지’, 사래는 ‘높은 어머니’라는 이름입니다. 아브라함이란 ‘열국의 아버지’,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③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자손을 낳을 수 없는 나이에 이름을 바꾸시며 많은 무리의 부모라고 하셨습니다.
④ 한탄에 젖은 아브라함을 밖으로 인도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던 사라에게 웃었느냐고 질책하시며,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시게 됩니다.
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라고 이야기하십니다. 피해갈 수 없는 골목으로 밀어가셨습니다.
⑥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수양의 비밀을 보여주십니다. 메시아의 언약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⑦ 둘째는, 출애굽하여 홍해를 만난 이스라엘 백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향해서 불평하며 원망을 하게 됩니다.
⑧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비하신 곳의 이름이 ‘바알스본 - 숨겨진 안온한 장소‘입니다.
⑨ 셋째로, 다윗이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3:1의 원수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⑩ 젊었을 때는, 사울 왕이 죽이려고 하고, 나이가 들자 신하와 아들이 반역을 저질렀습니다.
⑪ 다윗이 도망하여 곤경에 처했을 때 아히멜렉이라는 제사장이 그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어 살아났습니다.
⑫ 화가 난 사울은 아히멜렉과 85명의 제사장을 죽이고, 다윗에게 포상금을 걸게 됩니다.
⑬ 너무 괴로웠던 살기위해 다윗은 미친척하며,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까지 흘러갑니다.
⑭ 넷째로, 사도행전 3장의 성전의 미문 앞에 앉아있던 앉은뱅이가 있습니다. 40년간 구걸을 하며 빌어먹었습니다.
⑮ 마지막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전했지만, 죽음으로 사지로, 풍랑으로, 나중에는 감옥에까지 몰렸습니다,
3. 막다른 골목으로 모시는 이유
① 바울은,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백합니다 (고후 1:8-9)
②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하고 낙심하고 핍박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고후 4:8-9),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고, 이를 전적으로 믿을 때 다시 살아남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고후 4:7)
많은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를 잡을 때 온전한 축복을 주십니다. 100%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만큼, 문제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제대로 바라볼 때 엄청난 기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기적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최고의 축복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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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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