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2006-06-1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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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를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광고 중에서 경조사를 당했을 때 각 교구 담당교역자만이 가서 일을 볼 수 있도록 앞으로 강력하게 인도할 작정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어느 교구든지 경조사를 당하면 교역자 다 가고, 중직자 다가니까 교역자들이 너무 피곤하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오늘은 전라도 갔다가 내일은 서울 갔다가, 더구나 한번씩 초상나면 줄초상이 나기에 상당히 어렵습니다. 가까운 길이 아니기에, 그래서 담당된 교역자, 중직자, 권찰들이 책임지고 감당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우리 집에 상을 당했을 때에 다른 교역자들이 왜 안 들여다보는가? 섭섭해 하지 마시고 교회의 룰을 함께 준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예배시 광고를 몇 번을 할 것입니다. 광고를 바로 들을 때에 성령인도도 받게 됩니다.
그 다음에 광고 드리고 싶은 것은 본당에 어린아이들 올라오는 것을 자제하도록 1층에 예배실을 마련해 놓았는데 요즘은 느슨해 졌는지 아이들이 올라옵니다. 뭔가 계속 말을 안 하면 잊었는지, 혹 일부러 올라오는지, 혹 은혜받기 위해서 기를 쓰고 올라오는 사람이 있는데 단속하지 않고 잊어버립니다. 안내하시는 분들이 그동안 잊었는지, 뭐가 느슨해 졌는지, 메시지를 전할 때에 아이들이 왔다 갔다하면 마음이 혼돈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장애가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2층에 못 올라가도록 1층에 예배드리도록 마련해 두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온 부모들은 조용히 내려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일에 많은 광고가 나갔었습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으니까 광고가 나갑니다.
이 시간 정말 예배드릴 때에 성령 충만한 역사가 있도록 인도받으시기 바랍니다. 영아, 태아부는 본부에서부터 메시지가 나가고, 어린아이중심으로 메시지가 나가는 게 아니라 어른중심으로 메시지가 나갈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성령의 인도에 대해서 굉장히 강조했습니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받으면 성공하고 못 받으면 실패합니다. 모세와 사무엘과 다윗과 예수님이 성령 충만 받고 난 후에 모든 말이나 행동에 능력이 나갔습니다. 이 점을 저는 상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상과 싸워 이길 길은 성령 인도받고 성령충만할 때에 여러분의 말과 사업과 일에 능력이 함께 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는 역사가 없으면 사회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가만히 보면서 느끼는 것은 세상과 어울려서는 믿는 사람들이 불신자와 비교가 안 되고 결코 승리하거나 이길 수 없습니다. 내가 한 마디 하면 그 사람들은 세 마디 하는데, 믿는 사람들의 한마디는 힘이 없지만,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힘 있게 말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권능과 권세로 승리하게 됩니다.
오늘도 성령 받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봐야 합니다.
눅4:4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전도와 선교의 역사를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는가하는 것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렘넌트 교육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왜 나는 성령인도 받지 못하느냐? 수준 높은 질문입니다. 성령 충만은 무엇인가? 에 대해 지난 시간에 설명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에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성령 인도받는 존재들로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성령인도를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축복의 주권 속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 속에서 인도받는데, 우리는 결코 어렵고 힘든 멸망으로 인도 받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모든 환경과 사건과 일속에서 축복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성도의 신앙입니다. 이걸 믿고 감사함으로 따라가는 것이 승리의 역사입니다. 나보다 나를 잘 아시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시기에 내가 가는 것보다 더 멀리 내다보시고 오늘을 준비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 반대가 운명에 매이게 하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죽도록 노력하고 고생했지만 멸망과 저주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를 세워서 렘넌트들, 후대를 살리는 부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렘넌트들의 진짜 고민이 무엇인가 하면 90%이상이 공부에 대한 고민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후대들을 키울 때에 이 점을 많이 놓치게 됩니다. 저는 남매를 키우면서 박세광 목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등은 한번도 못한 것 같습니다. 늘 2등에서 5등까지 그 안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제가 목회에 전념한다고 해서 너무 마음의 여유를 못가지고 한번도 학교선생님을 만나본 적도 없고 운동회 가 본 적이 없고 졸업식과 입학식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 교육에 대해서 너무 등한시 하고 살았습니다.
맏이 박세광 목사는 목사가 되는 일에 소망을 두고 기준을 두었습니다. 대학갈 때도 목사 되기 위해서는 신학 공부할 때에 어학이 어렵기에 경대 영어영문학과에 지원하여 합격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딱 한번 시험치는 날 경대에 들어가 봤습니다. 그 이외에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메시지를 들으면서 깨달은 것이 10%안에 들었으니까 학교에 들어가고 소원하는 바를 성취할 학과에 들어갔는데 전문성을 키워줘야 하는데 못 키워줬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딸인데 오빠와 달라서 실력이 반도 안 되는 겁니다. 그 실력을 중학교 3학년 때까지라도 그와 함께 공부해주고 관심을 가져 주었다면 뭔가 풀릴 것인데, 전혀 그런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절로 되겠지 하면서 내어버려둔 겁니다.
제가 둘째 딸은 공부는 못해도, 어린 아이들에 대한 기능과 음악에 대한 기능이 있었습니다. 공부가 10%안에 못 들면 성장하면서 아이의 기능과 재능을 발굴해 줘야 합니다. 어머니들이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초등학교 때까지는 10%안에 들 수 있도록 함께 하시고, 거기에 들지 못하면 아이의 기능을 발굴해 주어야 합니다.
저의 둘째 같은 경우에 대학에 들어가려고 시험 칠 때에 성적을 보니 어디갈 수 없는 겁니다. 성적이 되는대로 들어갔는데 사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졸업하고 나니까 이 아이의 진짜 기능이 아이들을 향한 기능이었습니다. 그 기능대로 어린아이들을 위한 업종에 들어갔는데, 4년 동안 공부했던 사람들과 다르게 차별받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음악에도 관심이 있는데 그것도 공부를 못하고 하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과 제가 뭐가 그리 바쁜지, 아이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 신경을 못 썼습니다. 그래서 놓치지 말고 아이를 붙들고 전공을 10%안에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면 미래가 됩니다. 먹고 살 걱정이 없습니다. 10%안에 못 들면 미래가 흔들거립니다.
예로 아주 공부를 잘하는 놈인데 서울대에 갔는데 불문학과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는 공부를 잘 못하는데 사범대를 선택했습니다. 졸업하고 나니까 불문학을 선택한 아이는 아무것도 열리지 않는 겁니다. 사범대 졸업한 자는 금방 취직해서 먹고 사는 겁니다. 자녀들에게 구체적인 길이 마련 안 되면 미래가 어렵습니다. 10%안에 들어서 대학에 가면 장래가 보장되지만 90%는 방황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아이를 키우면 이런 면에 아무리 바빠도 후대 키우는 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데 나도 후대 키우는 일에 생각을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10%안에 들어가도록, 아니면 기능을 개발하도록 부모님들이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다 놓쳐도 방법이 없는 게 아닙니다. 빌1:6에 보면 여러분이 복음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복음뿌리를 내려주게 되면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떤 상황에 있다 상관없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책임져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서 뛰어넘을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모든 과거는 발판이 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빌4:19에 보면 혹시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하더라도 복음에 뿌리내리면,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채우실 것입니다. 욕심을 채우고 욕망을 채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방향 맞추어 나갈 때에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채우실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에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뛰어넘고 그 모든 것은 발판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받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택한 백성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필요를 채우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이것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를 위한 축복과 은혜의 방향입니다. 전도와 선교,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데 가장 선한 것, 가장 큰 선을 이루시기 위해서 지혜와 총명과 명철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이 일에 눈이 열리면 나도 모르게 모든 사건과 일에 명철과 총명과 판단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이 일을 우리와 우리자녀들에게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세우신 이유 참 중요합니다. 그냥 세우신 게 아닙니다. 교회 안이나 교회 밖에는 늘 신앙생활하고 예수를 믿지만 낙오자들이 많습니다. 교회 밖에는 말할 것이 없고 교회 안에도 이 문제가 심각합니다. 제게 많은 상담이 들어오고 이메일이 옵니다. 교회전체의 보고를 받을 때에 어려움을 당하는 가정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힘든 가정이 참 많습니다. 그런 것을 들으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 안에 축복보다도 저주와 재앙의 낙오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건강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창12:1에 보면 완전히 모든 것을 제쳐놓고 성령인도 받으라. 너와 가족만 데리고 떠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인본주의를 가지고 계속 방황합니다. 그런데 12절에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대로 축복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으로 보냈는데도 복을 못 누리고 계속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창13장에 보면 이 고난이 계속되다가 해결되는 역사가 오는데 우리와 똑같은 메시지입니다. 창1:27~28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때에 다스리는 역사, 번성의 역사를 주신다고 약속했는데 누리는 것보다 어려운 것에 매여서 고통당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거기에 매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3:13에 맛을 봐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주와 재앙의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이 후로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 멸망의 역사가 나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가하면, 나와 우리 가족과 가문이 정말 저주와 재앙에 빠짐에 대한 현장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것을 보고도 느끼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감각이 없습니다. 저주와 사단과 흑암의 세력에 빠진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정신문제를 가진 자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에 해결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때에 내가 흑암에 잡혀서 고통을 받았다는 것에 확인하는 그때부터 흑암의 세력을 꺾고 기도하는 힘과 능력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맛을 못 보는 겁니다. 그냥 그저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 하나님에 대한 사실이 구체화 되어있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단에게 매여 살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저주와 운명 속에서 해방됨에 경험한 사람들은 눈이 다릅니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율법에 살고, 신비에 빠지고, 우리도 모르게 예수그리스도 영접하고 복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자꾸 인본주의로 나갑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이 고치지 못할 고질적인 체질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으로 축복받았지만 체질이 안변하는 겁니다. 뭔가 뭔지가 구분이 안 되는 겁니다. 끝까지 놓지 못한 것이 조카 롯입니다. 유대 율법으로는 자식이 없을 때에 친족을 양자로 삼아서 대를 이어가는데 하나님이 후손을 주신다고 했는데 롯을 못 버리다가 계속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 붙잡고 모든 인본주의를 버리는 날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됨을 봅니다. 롯을 버리는 순간에, 롯을 떠나보내는 순간에 하나님이 이 축복의 말씀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창13:17에 보면 완전 복음깨 닫고 인본주의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이 축복을 주시는데 바로 너의 씨로 하나님이 하시겠다는데, 기근을 당하니 애굽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자기 아내를 왕에게 빼앗기고, 그래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도하시는데 창세기 역사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나는 아무리 못해도 아브라함보다는 낫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내를 팔아먹고, 아내를 동생이라고 말하다가 빼앗기기도 하고 이런 사건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빼앗아간 왕족의 잉태 문을 다 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왕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이 선택한 아브라함을 축복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구체적으로 인도하실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서 성공하게 되어있습니다. 마6:33에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게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장사하다보면 인본주의 쓸 때가 너무 많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머리의 체질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신앙이 아니라 안 믿는 사람과 같이 머리를 굴리고 인본주의 쓰는 겁니다. 이러니 하나님이 축복하고 싶어도 기다리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반평생을 인본주의 쓰고 어려움을 당하다가 창22장에 수양을 바치는 사건을 통해서 ‘앞길을 하나님이 준비하셨구나!’ 이삭을 죽이려다가 수양을 준비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준비하셨구나!’ 뼈에 사무치도록 각인시키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창22:17~19에 하나님이 몇 번이나 축복의 문을 얻고 네 씨로 모든 것을 얻는다했는데 현실과 사실에 부딪히면서 아브라함이 안돌아가는 겁니다. 집에 노인 할머니가 있고 자기도 나이 들고 아이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는데 완전복음이 되면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인데, 언약 붙잡고 현장을 보면서 현실은 너무 거리가 멉니다. 우리자신이 믿음으로 살기에는 체질이 못 따라가는 겁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축복하실 자리라면 십일조하는 자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많고 적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자리에 서시면 됩니다. 기도하면서 진심으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장학금, 후대 살리는 일, RUTC를 위한 헌금에 참여한다 할 때에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대구시내 큰 교회의 헌금사항이 우리 교회의 주일헌금보다 비교가 안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들이 이미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십일조 안합니까? 주일헌금 안합니까? 우리가 헌금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축복하지 않았다면 감당 못하고 그렇게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한번 믿음으로 눈을 열고 하나님 앞에 나가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계산이 안 맞습니다. 오늘도 장학금 기금마련위해서 헌금한다고 할 때에 얼마를 해야 할까? 돈이 없으니까 특기가 신학원 과장으로 나오는 기본급이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자꾸 쓰는데 제가 늘 이야기하기를 우리 집에서 말하거든 주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도 50만원 빌려서 거기서 가지고 온 겁니다. 간사들은 목사님은 그러지 말라고 해도 사모님이 와서 달라는데 어떻게 합니까? 계산으로 보면 맞지 않지만 먹고 살았습니다. 헌금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서열에 설 때에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이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복음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인도받는 사람이 이단시되기도 하고 핍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인의 핍박으로 아벨이 죽었습니다. 에서가 장자니까 주류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주류로 흘러온 에서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요셉시대에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약속받았지만 주류가 형들입니다. 쫓겨나서 어려운 고비 고비 통해서 승리했습니다. 복음의 낙오자가 정통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역사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정통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낙오자들의 핍박을 받게 됩니다.
새 신자가 와서 교회가 이단이라는 말을 듣고 떨어지는 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 분명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단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 이단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주류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실 것이다. 이 확신을 안 심어주면 가다가 떨어집니다. 역사 속에 정통이라는 이름으로 복음이 없는 자들이 이렇게 하면서 정말 복음을 가진 자들을 핍박하게 됩니다. 지금 어떤 축복의 대열에 서느냐가 중요합니다.
유1:3에 아무리 정통이 누르고 핍박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멸망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교회밖에 낙오자가 된 이유가 뭡니까? 구원의 축복의 대열에 서지 못해서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성령으로 나를 구원의 대열에 세웠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영적인 축복의 흐름을 놓쳤습니다. 구원도 알고 다 알지만 영적인 흐름을 놓쳤습니다. 사단의 역사입니다. 정말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알지만, 지금도 사단의 역사가 체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영적문제에 잡혀서 복음을 말하면서도 재앙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에 한평생 눈을 뜨지 못하는 게 우리의 상처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상처로 인해서 갈등과 시기가 나오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사명을 받은 거 같은데 다른 사람을 시기하게 됩니다. 이 상처도 정말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치유 받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늘 했습니다. 쪽머리 아픈 것을 가지고 고통당했습니다. 계속 두통약을 먹으면서 머리 아픈 것을 해결했는데, 어느 날 언제부터인가 복음이 들어오면서 머리 아픈 게 없어졌습니다. 머리 아파본 사람은 이해가 갑니다. 머리 아프면 아무것도 싫고 아무것도 못합니다. 책상 앞에 앉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 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약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삼았습니다. 정말 믿어야 합니다. 창12:1에 보면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니라’고 했습니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받았지만 믿지 못해서 인본주의 쓰다가 오랫동안 방황했지만 하나님이 복의 근원을 삼으셨습니다.
창12:3에 너를 대표로 세워서 축복과 저주의 본을 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를 이렇게 크게 세운 것은 하나님이 이 시대에 대표적인 축복의 본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락방전도를 막는 사람들마다 제대로 성한 사람이 없습니다. 대표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복음을 위해서 우리에게 대표적인 축복을 확실히 약속했습니다.
시대적인 축복입니다. 20가지 전략 속에 들어오면 개개인이 시대적인 축복을 받습니다.
기념비적인 축복은, 후손들을 살리는 일에 우리를 기념비적인 축복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정말 후대를 살리는 일꾼이었음을 기념할 사람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증거가 있어야 기념이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후대 살리기 위해서 엄청난 기념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저는 중직자도 좋지만, 우리에게 이 4가지 모든 사건을 이루시기 위해서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언약잡고 나가면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준비, 제자준비를 해야합니다. 소돔고모라가 망한 이유가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방향 맞춘 한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이 언약을 잡고 오늘날 렘넌트를 살려야 합니다. 교회 안 밖의 낙오자를 살려야 합니다. 이런 것을 이루어 나갈 때에 세계교회를 살리게 되는 겁니다. 마음가지고 언약잡고 나가면 지금까지 말씀한 축복이 이루어지게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이끌어 가시는 겁니다.
대표적인 축복이다. 새삼스럽게 감사를 드립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 받으면 성공하고 못 받으면 실패합니다. 모세, 사무엘, 다윗, 예수님은 성령 충만 받고 난 뒤에 모든 말이나 행동에 능력이 나갔습니다. 우리는 이 능력이 함께하는 역사가 없으면 사회에서 이길 수도, 경쟁에서 승리할 수도 없습니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받으면 권능과 권세로 승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야합니까?
1. 전도와 선교의 역사를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눅4:43).
(1)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셔서 인도받는 존재로 세우셨습 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는 주권 속에 서게 하셨습니다.
(2) 후대를 살려야합니다. 후대들은 학업으로 인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합니다. 학업과 기능과 전문성을 두고 양육해야합니다(빌1:6, 4:19).
(3) 전도와 선교를 이루기 위하여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가운데 지혜와 총명과 명철로 인도하십니다.
2. 교회 안이나 밖에 있는 신앙의 낙오자들을 세워야합니다.
(1) 아브라함(창12:1-3)은 이미 복의 근원으로 보냈는데도 복을 못 누리고 계속해서 어려움 을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창13:17 완전복음을 깨닫고 인본주의를 버리고 하나 님만 바라보면 이 축복을 주십니다.
(2) 창1:27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때 28절에 모든 축복을 주십니다.
(3) 창3:13 나와 가정이 저주에 빠진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아야합니다.
(4 )마6:33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5) 헌금생활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십일조, 선교헌금, 장학헌금, RUTC, 건축헌금).
3. 복음을 가진 자들이 주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인도받는 사람이 이단시되기도 하고 핍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① 가인의 핍박으로 아벨이 죽었습니다.
② 에서가 야곱을 핍박했습니다.
③ 요셉시대에 형들이 핍박했습니다.
(2)복음의 낙오자가 정통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봅니다. 복음의 정통을 가지고 있는 자 들이 낙오자들의 핍박을 받게 됩니다(유1:1-11).
(3) 왜 교회 안에 교회 밖에 낙오자가 됩니까?
① 구원의 축복의 대열에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② 영적인 축복의 흐름을 놓쳤습니다.
③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알지만, 지금도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면 영적인 문제에 잡혀서 복음을 말하면서도 재앙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망하게 됩니 다.
④ 한평생 눈을 뜨지 못 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상처입니다. 교회 안에서 상처로 인해서 갈등과 시기가 나오게 됩니다.
⑤ 이 상처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치유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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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5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눅2:8-14 2024-12-22
1464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단3:8-18 2024-12-15
1463 손대지 아니한 돌 단2:25-35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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