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여
2007-04-2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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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제목을 "어리석은 자여"라고 잡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자인지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 사람의 생각, 여러분 개인적인 생각과 다른 문제이기에 이 내용 자체를 소화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13절에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앞에서는 예수님이 영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당장 사람들이 육적인 문제로 돌아갑니다. 성경은 주로 영적 문제를 다루는데 우리는 늘 육적인 문제로 다루니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어리석은 자가 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19-21절에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자기를 위하다가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신앙도 헌신도 거의 자기를 위한 겁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는 재물에 대한 부분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어리석은 자라 했습니다. 교회 신앙생활 하면서 십일조를 내라, 주일헌금을 내라 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꾸 의심이 되고 이해가 잘 안됩니다. 특히 다락방에서 RUTC, 렘넌트는 육적인 장래를 내다보고 나온 게 아니고 영적인 우리 후대와 장래를 내다보고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 모든 힘을 쏟는 것이 지금의 나아가는 방향입니다. 많은 이가 여기에 적응되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거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렘넌트라고 말하면서도 기초적인 이해조차 못해서 자기 자식과 연결되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됩니다. 저도 우선 이 문제가 이해되기 위해서 내 자녀의 신앙과 교육에 신경을 쓰며 주로 메시지가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 렘넌트라는 문제가 그 정도가 아니고 세계를 품는 것이 렘넌트의 사역이며 그것이 RUTC의 역사입니다.
우리 현재의 과제가 자신의 일에 충실히 투자하는 것보다도 영적인 일에, 영적인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것 우리 장래와 미래를 위해서 건축에 투자하는 것이고 먼저 내 자녀의 신앙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나가서 세계를 살리는 렘넌트의 사역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 그러면 먼저 우리가 할 일이 일단 세계 렘넌트를 위해 재물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내 자녀의 신앙에 시간과 금전을 투자해야 합니다. 내 자식에 대한 눈부터 바로 열려야 합니다.
저는 어릴 때 저의 아버지가 무얼 걱정하셨냐 하면, 맏이도 객지생활 나가고 둘째도 객지생활 나가니 셋째 이 놈은 꼭 붙들어서 농사를 짓게 만들어 내 후계자를 만들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졸업 전까지는 그래도 학교는 고등학교까지 시켜야 되지 않겠나 하시다가 어느덧 마음이 변해서 졸업하자마자 붙들어놓고선 농사를 지으라 하시는 겁니다. 영적인 부분에 대한 투자가 전혀 없었어요. 저희 형편이라면 얼마든지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나올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어머니 생각은 어쨌든 맏이도 목사로 세워서 하나님께 헌신해야 되겠다고 했는데 맏이도 딴 데로 들어가 버리고 둘째도 딴 데로 가버리고 해서 셋째는 어쨌든 목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농사짓고 있으면 안 되니 어쨌든 공부 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의 두 사람을 목사로 키워야겠다는 어머니의 소원이 못 이루어지면서 저와 제 동생을 꼭 목사로 세워야겠다고 집중 기도하셨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집에 있으면서 그 해 겨울에 토끼 잡고, 꿩을 잡고 하니까 어린 제 마음에 농사짓고 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마리씩 잡고 들어오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차비를 줄 테니 집을 나가라 하셨습니다. 목사를 시켜야 되겠다는 어머니의 의지에 따라 사실상 저를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예민한 사춘기에 형님 집에 가서 기거하면서 하나님 은혜 가운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27살에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우고, 또 특히 렘넌트에게 중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제일 먼저 할 것이 교육에 대한 투자입니다. 제 주변에도 보면 좀 잘 못살고 해도 자녀를 교육시킨 가정은 어쨌든 축복을 받더라고요. 우리 가정 같은 경우는 얼마든지 시킬 수 있는 데도 투자를 안 해요. 아버지는 육적인 것이 항상 앞서고 했지 영적인 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하고 정 반대였습니다. 요즘 들어서 제 성질이 더러운 것은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성격이 너무 다른 차이 속에 그 갈등을 소화시키며 나대로 극복하며 자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부가 한 마음이 되어서 자녀에게 투자를 하는 것과 마음으로 갈등을 가지고 자녀가 성장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다행히 세계복음화라는 한 방향을 가지고 자녀에게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자녀에 대해 영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가 진짜 지혜로운 자라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 저는 어릴 때부터 신앙의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교회는 열심히 다녔습니다. 요즘 류목사님에게 질문하는 렘넌트들의 질문을 보면 늘 제가 겪었던 것들입니다. 그 질문의 내용이 “선악과는 왜 만들었냐?” 하는 것입니다. 중학교 때 10리를 왕복하며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입이 닳도록 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을 줄 몰랐는가?” 이것도 똑같은 갈등이었습니다. 안 믿는 옆 자리의 친구가 너무 똑똑한데 10리를 걷는 동안 계속 토론입니다. 입씨름이죠. 그리고 “그걸 먹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 그리고 실제로 있었던 사실인가 신화인가?” 많은 신학자들이 신화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선악과는 지금 어떤 과실이냐?” 혹자는 사과라고 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모릅니다. 사실은 얘들에게 설교를 하러 나갈 때 저도 사과를 많이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런 질문들이 거의 불신앙 속에서 나온 질문들입니다. 어릴 때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오래 갑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신앙보다 불신앙이 늘 앞섭니다. 어른들도 이게 해결 안 되면 답을 주지 못합니다. 오늘 당장 나이는 많지 않지만 지능이 발달한 아이들이 "아빠, 선악과는 왜 만들었어요?"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하나님이 다 아시면서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고 만들었습니까?" 하면 벌써 안 되는 겁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기 전에 아이들이 빨리 답을 가질 수 있도록 부모가 신앙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신앙이 서지 않으면 하나도 답이 안 나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인이 안 되면 답이 나오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신화로 알게 되고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불신앙으로 자라게 됩니다.
이것은 꼭 대답을 해줄 필요가 있다 해서 답해준 거지만, 답하기 전에 이 문제를 들으면서 신앙으로 눈이 떠져야 합니다. 정말 이들에게 부모들이 신앙부터 투자를 해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교육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 그러면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선악과란 도대체 뭐냐? 왜 만들었냐? 입니다. 여기서 신앙생활의 근본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소원이 임마누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인간을 모든 동식물과 달리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교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창조했습니다. 특히 창세기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생명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초기에 많은 말씀을 했습니다만 개는 100마리가 모여 있어도 예배를 못 드립니다. 원숭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 두 명만 있어도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속에 생명을 갖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교제할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인간을 하나님의 인격과 생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죄악 속에서 영영히 돌아올 수 없는 저주 속에 빠지게 되니까 또 하나님이 함께 있고 싶어서 보내신 분이 누구냐?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내가 너와 함께 하마.”하고 오신 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역사입니다. 또 인간이 그래도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땅의 모든 육신의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을 준비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잘나서 함께 있는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간절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너희와 함께 하고 싶다"입니다. 오늘도 성령으로 나와 함께 계신다,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내 힘으로 하고 싶다 해서는 안 됩니다. 각 심령에 성령을 주시고 성령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과 역사를 누리게 되는 겁니다.
■ 그러면 선악과를 왜 만들었나? 이걸 자꾸 행위언약이라고 하고, 율법적으로 언약에 대해 막 구분을 하고 합니다만, 원래 하나님은 언약을 주실 때에 인간에게 기대하고 주신 법이 없어요. 왜? 인간은 아예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은 쌍방언약이 아닌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언약을 잡았다고 백 번 천 번 고함을 질러도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다 소용없습니다. 언약을 잡았다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중요한 것이 임마누엘. 이것은 언약 중 언약입니다.
선악과를 주셨다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마"하는 임마누엘의 언약입니다. 선악과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기억해서 순종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너와 함께 존재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이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따먹고 죽고 사는 문제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절대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하신 일차적으로 주신 이유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하는 존재의 언약입니다. 이것을 바로 기억하지 못하면 성경해석이 이상하게 됩니다.
■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이 언약을 배반하면 죽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붙잡고 나가면 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언약은 임마누엘의 언약이라 간단히 말하지만 거역하면 영원한 멸망이요, 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입니다. 엄청난 언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죽고 사는 것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사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아담 하와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뭐냐? 하나님의 언약을 건드리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라고 할 때에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의 전부입니다. 이걸 가지고 원죄라고 그랬습니다. 여기서 모든 흑암, 저주, 죽음의 문제가 나오게 된 겁니다. 이걸 해결하자면 하나님을 만나야 하니 임마누엘입니다. 처음 주셨던 약속을 확실히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실패 이후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겁니다. 사실은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흑암과 사단의 세력을 직접 꺾으신 것이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어야 영원한 축복과 역사로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유혹한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동산에 있는 것을 다 먹되 그것만 먹지 말라. 선악과 먹는 날에 네가 정녕 죽으리라"하셨는데 하와가 바로 이해 못해서 "죽을까 하노라"했습니다. 그런 틈을 타고 사단이 절대로 죽지 않고 하나님처럼 된다 했습니다. 오늘날 인간 모든 사람들의 철학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뉴 에이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의 유혹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이 함께 있겠다는 첫 언약을 배신하는 동안에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언약에 대해서 정말 두려운 마음을 가지지 않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지 따먹었다 안 따먹었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반드시 어릴 때부터 진짜 신앙생활에 이해되고 믿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계획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계획과 주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제일 안 되는 것이 이겁니다. 걸핏하면 내 생각과 마음이 나옵니다. 중요한 부분마다 하나님 계획은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왜 이럽니까? 왜 고생시킵니까?” 계획을 못 깨달을 때에 스스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이런 계획도 주시고 말씀도 주셨지만 사단의 소원은 이들을 붙잡아서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못 들어가도록 하는 겁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떠나 영원한 저주 속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이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데 약속을 잡고 있는 한 사는 겁니다. 그러나 약속을 놓치고 사단에게 속았을 때에 오는 문제가 죽는 것보다 더 큰 문제인 마귀의 자녀로 전락했습니다. 저주와 죽음과 재난의 자녀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지옥을 하나님이 그냥 만드신 게 아닙니다. 지옥은 인간을 영원한 죽음과 멸망 속으로 몰락시키기 위해서 눈을 부릅뜨고 속이려고 하는 사단과 그의 졸개들을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요8:44 말씀처럼 인간이 결국 마귀의 노예 되는 순간에 마지막 때 심판 날에 사단과 졸개들이 가는 지옥으로 따라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원래 지옥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구덩이입니다. 오늘날 어떤 이는 워낙 죄를 많이 짓는 세대가 되어서 지옥이 다 차버렸고 이제는 가려고 해도 갈 수 없다고 변명하며 위안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옥은 들어가도, 들어가도 한이 없습니다. 아무리 들어가도 표시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무한한 하나님의 지혜와 뜻을 누가 측량할 수 있습니까? 창세기 3장에 여자의 후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있고 싶다고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저주와 죽음의 세력을 완전히 해결하시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복음입니다. 여기에 섰을 때에 순간순간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행복과 기쁨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기에 여러분 스스로 벗겨내고 없앨 힘이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단 결박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사단이 고통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추방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었지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영적 세계를 알고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도 이런 투자가 거의 나오지를 않습니다. 육신의 문제를 구하다가 맙니다. 우리는 영적 안목 가지고 완전히 흑암 세력 꺾고 이런 것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영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물질도 여기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뿐 아니라 RUTC, 세계 렘넌트들 위해서 렘넌트에게도 이걸 해야 합니다. 이걸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을 향해서 오늘 본문이 "어리석은 자여"라고 합니다. 일생을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서 쌓아놓을 곡간이 없는 한 농부의 이야기를 들잖아요. 그래서 그 해에 농부가 곡간을 더 크게 짓고 가득히 쌓아놓고 하는 말이 "내 영혼아 먹을 것 많이 쌓아라. 사는 건 이제 어려움도 없고 이제 평안히 내 영혼아 잘 살자" 할 때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했습니다. 이것이 불신자의 생활이요. 복음 알지 못하는 자의 생활이요. 영적인 눈 열리지 않아 엉뚱한 곳에 투자한 모든 어리석은 자의 생활이라고 그렇게 규정을 지었습니다.
■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도 바로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대로 영원한 멸망에 쳐 넣을 수 있는 그 하나님을 정말 두려워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그리고 영원히 썩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는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영원토록 지속되는 축복의 영적인 역사에 우리의 모든 삶을 투자해야 합니다. 특별히 재물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여기에 투자 안 되면 다 헛된 겁니다. 여러분의 봉사도, 헌신도, 신앙생활 자체도 내가 지금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가? 자신을 위한 것이냐? 잘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결과는 이런 엄청난 결과가 닥치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사단에 속하게 되는 그 때부터 마귀가 아비가 되는 것이고, 고후4:4-5에는 세상 신으로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16:11-14에 세상 임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세상임금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저주와 고통이 마귀와 사단을 통해서 영원히 인간위에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땅 끝까지 저주를 받아서 곡식도 아닌 엉겅퀴와 가시가 나와서 축복을 방해하는 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여러분이 해결될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생명, 예수님의 생명, 새 생명을 받지 않는 한 해결될 길이 없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창3:15에 말씀대로 여러분들이 빠르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 영원한 멸망 속에서 해방되는 오직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예수 생명을 받는 것,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는 것이 확인되고 이해되는 배경에서 영원한 죽음과 형벌에서 해방되도록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믿는 것이 언약입니다.
늘 말하고 싶은 것이 행동한다, 어떻게 산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혹시 누가 와서 나하고 일주일만 같이 살면서 나를 보면 정떨어질 겁니다. 강단에 섰을 때는 아내, 자녀에게 잘 하는 것 같지만, 정 의심 있는 사람은 제가 잘 하는가 집사람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생각해도 강단에서 설수 있는 일이, 모르고 그냥 그래도 따라오는 교인이 너무 착하고 귀여워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내 삶이나 행동 자체로는 구원 못 받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지, 구원 받은 사람이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길도 은혜로 인도받는 것이지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행동이 엉망이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잡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너무 체질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가끔씩 나는 체질에 따라서 실망하기도 하는데 아무리해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율법 체질입니다. 우리 당회에서 제일 율법이 센 사람이 박 목사입니다. 그 다음 센 게 장로님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교회 대를 이어갈 목사를 찾는다면 율법이 센 사람, 그리고 복음의 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겸비가 되지 않으면 당회를 이끌어 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눌려서 못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도 늘 율법 세계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간단한 말 같지만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복음 받았다. 교회에 메시지를 전할 때는 참 복음으로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자기도 모르게 본질적인 체질인 율법이 나옵니다. 그러나 한 번 받아합시다. "괜찮다. 약속만 바로 잡으면 만사형통이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 복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조차 없어지는 날에는 온 교회가 저주 속에 빠지게 됩니다. 복음 속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이 하나님의 생명을 붙잡지 아니하면 영원한 저주와 멸망에서 나올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너희와 함께 있겠다. 임마누엘, 임마누엘의 축복과 역사를, 창세기 때부터 약속하신 일방적 약속을 붙잡기만 하면 해결됩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임마누엘의 놀라운 축복과 역사를 오늘도 붙잡을 수 있도록 오늘도 은혜 주시고 이 일에 우리의 눈이 열리도록, 그래서 영적인 일에 우리의 삶을 투자할 수 있는 축복과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자인가?
1) 자기를 위하다가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자
2)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21절)
3) 진짜 지혜로운 자는 내 자녀에 대해 영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자
- 내 자녀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렘넌트를 살려야 한다.
2. 신앙의 갈등 - 선악과
1) 렘넌트들의 질문:
- 선악과는 왜 만들었나? 선악과를 먹을 줄 몰랐는가? 그걸 먹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 실제로 있었던 사실인가? 선악과는 지금 어떤 과실이냐?
2) 하나님의 주권에 신앙이 서지 않으면 여기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음.
3) 선악과는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언약 붙잡도록 해줌.
3. 사단은?
1) 사단의 소원은 하나님 자녀를 붙들어서 하나님 계획 속으로 못 들어가도록 함.
2) 성도가 가는 길에 사단은 완전히 추방되는 권세를 주심(기도-영적세계).
3) 요8:44 마귀의 자녀, 고후4:4-5 세상 신, 요16:11-14 세상 임금.
결론
1) 영원한 멸망 속에서 해방되는 오직 한 가지 길은 예수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창3:15).
2) 너무 체질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잡으면 구원 받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는 재물에 대한 부분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어리석은 자라 했습니다. 교회 신앙생활 하면서 십일조를 내라, 주일헌금을 내라 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꾸 의심이 되고 이해가 잘 안됩니다. 특히 다락방에서 RUTC, 렘넌트는 육적인 장래를 내다보고 나온 게 아니고 영적인 우리 후대와 장래를 내다보고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 모든 힘을 쏟는 것이 지금의 나아가는 방향입니다. 많은 이가 여기에 적응되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거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렘넌트라고 말하면서도 기초적인 이해조차 못해서 자기 자식과 연결되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됩니다. 저도 우선 이 문제가 이해되기 위해서 내 자녀의 신앙과 교육에 신경을 쓰며 주로 메시지가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 렘넌트라는 문제가 그 정도가 아니고 세계를 품는 것이 렘넌트의 사역이며 그것이 RUTC의 역사입니다.
우리 현재의 과제가 자신의 일에 충실히 투자하는 것보다도 영적인 일에, 영적인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것 우리 장래와 미래를 위해서 건축에 투자하는 것이고 먼저 내 자녀의 신앙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나가서 세계를 살리는 렘넌트의 사역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 그러면 먼저 우리가 할 일이 일단 세계 렘넌트를 위해 재물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내 자녀의 신앙에 시간과 금전을 투자해야 합니다. 내 자식에 대한 눈부터 바로 열려야 합니다.
저는 어릴 때 저의 아버지가 무얼 걱정하셨냐 하면, 맏이도 객지생활 나가고 둘째도 객지생활 나가니 셋째 이 놈은 꼭 붙들어서 농사를 짓게 만들어 내 후계자를 만들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졸업 전까지는 그래도 학교는 고등학교까지 시켜야 되지 않겠나 하시다가 어느덧 마음이 변해서 졸업하자마자 붙들어놓고선 농사를 지으라 하시는 겁니다. 영적인 부분에 대한 투자가 전혀 없었어요. 저희 형편이라면 얼마든지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나올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어머니 생각은 어쨌든 맏이도 목사로 세워서 하나님께 헌신해야 되겠다고 했는데 맏이도 딴 데로 들어가 버리고 둘째도 딴 데로 가버리고 해서 셋째는 어쨌든 목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농사짓고 있으면 안 되니 어쨌든 공부 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의 두 사람을 목사로 키워야겠다는 어머니의 소원이 못 이루어지면서 저와 제 동생을 꼭 목사로 세워야겠다고 집중 기도하셨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집에 있으면서 그 해 겨울에 토끼 잡고, 꿩을 잡고 하니까 어린 제 마음에 농사짓고 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마리씩 잡고 들어오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차비를 줄 테니 집을 나가라 하셨습니다. 목사를 시켜야 되겠다는 어머니의 의지에 따라 사실상 저를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예민한 사춘기에 형님 집에 가서 기거하면서 하나님 은혜 가운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27살에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우고, 또 특히 렘넌트에게 중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제일 먼저 할 것이 교육에 대한 투자입니다. 제 주변에도 보면 좀 잘 못살고 해도 자녀를 교육시킨 가정은 어쨌든 축복을 받더라고요. 우리 가정 같은 경우는 얼마든지 시킬 수 있는 데도 투자를 안 해요. 아버지는 육적인 것이 항상 앞서고 했지 영적인 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하고 정 반대였습니다. 요즘 들어서 제 성질이 더러운 것은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성격이 너무 다른 차이 속에 그 갈등을 소화시키며 나대로 극복하며 자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부가 한 마음이 되어서 자녀에게 투자를 하는 것과 마음으로 갈등을 가지고 자녀가 성장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다행히 세계복음화라는 한 방향을 가지고 자녀에게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자녀에 대해 영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가 진짜 지혜로운 자라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 저는 어릴 때부터 신앙의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교회는 열심히 다녔습니다. 요즘 류목사님에게 질문하는 렘넌트들의 질문을 보면 늘 제가 겪었던 것들입니다. 그 질문의 내용이 “선악과는 왜 만들었냐?” 하는 것입니다. 중학교 때 10리를 왕복하며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입이 닳도록 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을 줄 몰랐는가?” 이것도 똑같은 갈등이었습니다. 안 믿는 옆 자리의 친구가 너무 똑똑한데 10리를 걷는 동안 계속 토론입니다. 입씨름이죠. 그리고 “그걸 먹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 그리고 실제로 있었던 사실인가 신화인가?” 많은 신학자들이 신화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선악과는 지금 어떤 과실이냐?” 혹자는 사과라고 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모릅니다. 사실은 얘들에게 설교를 하러 나갈 때 저도 사과를 많이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런 질문들이 거의 불신앙 속에서 나온 질문들입니다. 어릴 때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오래 갑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신앙보다 불신앙이 늘 앞섭니다. 어른들도 이게 해결 안 되면 답을 주지 못합니다. 오늘 당장 나이는 많지 않지만 지능이 발달한 아이들이 "아빠, 선악과는 왜 만들었어요?"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하나님이 다 아시면서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고 만들었습니까?" 하면 벌써 안 되는 겁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기 전에 아이들이 빨리 답을 가질 수 있도록 부모가 신앙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신앙이 서지 않으면 하나도 답이 안 나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인이 안 되면 답이 나오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신화로 알게 되고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불신앙으로 자라게 됩니다.
이것은 꼭 대답을 해줄 필요가 있다 해서 답해준 거지만, 답하기 전에 이 문제를 들으면서 신앙으로 눈이 떠져야 합니다. 정말 이들에게 부모들이 신앙부터 투자를 해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교육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 그러면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선악과란 도대체 뭐냐? 왜 만들었냐? 입니다. 여기서 신앙생활의 근본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소원이 임마누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인간을 모든 동식물과 달리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교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창조했습니다. 특히 창세기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생명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초기에 많은 말씀을 했습니다만 개는 100마리가 모여 있어도 예배를 못 드립니다. 원숭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 두 명만 있어도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속에 생명을 갖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교제할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인간을 하나님의 인격과 생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죄악 속에서 영영히 돌아올 수 없는 저주 속에 빠지게 되니까 또 하나님이 함께 있고 싶어서 보내신 분이 누구냐?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내가 너와 함께 하마.”하고 오신 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역사입니다. 또 인간이 그래도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땅의 모든 육신의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을 준비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잘나서 함께 있는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간절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너희와 함께 하고 싶다"입니다. 오늘도 성령으로 나와 함께 계신다,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내 힘으로 하고 싶다 해서는 안 됩니다. 각 심령에 성령을 주시고 성령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과 역사를 누리게 되는 겁니다.
■ 그러면 선악과를 왜 만들었나? 이걸 자꾸 행위언약이라고 하고, 율법적으로 언약에 대해 막 구분을 하고 합니다만, 원래 하나님은 언약을 주실 때에 인간에게 기대하고 주신 법이 없어요. 왜? 인간은 아예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은 쌍방언약이 아닌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언약을 잡았다고 백 번 천 번 고함을 질러도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다 소용없습니다. 언약을 잡았다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중요한 것이 임마누엘. 이것은 언약 중 언약입니다.
선악과를 주셨다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마"하는 임마누엘의 언약입니다. 선악과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기억해서 순종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너와 함께 존재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이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따먹고 죽고 사는 문제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절대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하신 일차적으로 주신 이유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하는 존재의 언약입니다. 이것을 바로 기억하지 못하면 성경해석이 이상하게 됩니다.
■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이 언약을 배반하면 죽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붙잡고 나가면 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언약은 임마누엘의 언약이라 간단히 말하지만 거역하면 영원한 멸망이요, 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입니다. 엄청난 언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죽고 사는 것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사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아담 하와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뭐냐? 하나님의 언약을 건드리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라고 할 때에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의 전부입니다. 이걸 가지고 원죄라고 그랬습니다. 여기서 모든 흑암, 저주, 죽음의 문제가 나오게 된 겁니다. 이걸 해결하자면 하나님을 만나야 하니 임마누엘입니다. 처음 주셨던 약속을 확실히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실패 이후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겁니다. 사실은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흑암과 사단의 세력을 직접 꺾으신 것이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어야 영원한 축복과 역사로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유혹한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동산에 있는 것을 다 먹되 그것만 먹지 말라. 선악과 먹는 날에 네가 정녕 죽으리라"하셨는데 하와가 바로 이해 못해서 "죽을까 하노라"했습니다. 그런 틈을 타고 사단이 절대로 죽지 않고 하나님처럼 된다 했습니다. 오늘날 인간 모든 사람들의 철학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뉴 에이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의 유혹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이 함께 있겠다는 첫 언약을 배신하는 동안에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언약에 대해서 정말 두려운 마음을 가지지 않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지 따먹었다 안 따먹었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반드시 어릴 때부터 진짜 신앙생활에 이해되고 믿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계획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계획과 주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제일 안 되는 것이 이겁니다. 걸핏하면 내 생각과 마음이 나옵니다. 중요한 부분마다 하나님 계획은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왜 이럽니까? 왜 고생시킵니까?” 계획을 못 깨달을 때에 스스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이런 계획도 주시고 말씀도 주셨지만 사단의 소원은 이들을 붙잡아서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못 들어가도록 하는 겁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떠나 영원한 저주 속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이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데 약속을 잡고 있는 한 사는 겁니다. 그러나 약속을 놓치고 사단에게 속았을 때에 오는 문제가 죽는 것보다 더 큰 문제인 마귀의 자녀로 전락했습니다. 저주와 죽음과 재난의 자녀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지옥을 하나님이 그냥 만드신 게 아닙니다. 지옥은 인간을 영원한 죽음과 멸망 속으로 몰락시키기 위해서 눈을 부릅뜨고 속이려고 하는 사단과 그의 졸개들을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요8:44 말씀처럼 인간이 결국 마귀의 노예 되는 순간에 마지막 때 심판 날에 사단과 졸개들이 가는 지옥으로 따라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원래 지옥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구덩이입니다. 오늘날 어떤 이는 워낙 죄를 많이 짓는 세대가 되어서 지옥이 다 차버렸고 이제는 가려고 해도 갈 수 없다고 변명하며 위안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옥은 들어가도, 들어가도 한이 없습니다. 아무리 들어가도 표시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무한한 하나님의 지혜와 뜻을 누가 측량할 수 있습니까? 창세기 3장에 여자의 후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있고 싶다고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저주와 죽음의 세력을 완전히 해결하시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복음입니다. 여기에 섰을 때에 순간순간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행복과 기쁨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기에 여러분 스스로 벗겨내고 없앨 힘이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단 결박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사단이 고통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추방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었지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영적 세계를 알고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도 이런 투자가 거의 나오지를 않습니다. 육신의 문제를 구하다가 맙니다. 우리는 영적 안목 가지고 완전히 흑암 세력 꺾고 이런 것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영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물질도 여기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뿐 아니라 RUTC, 세계 렘넌트들 위해서 렘넌트에게도 이걸 해야 합니다. 이걸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을 향해서 오늘 본문이 "어리석은 자여"라고 합니다. 일생을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서 쌓아놓을 곡간이 없는 한 농부의 이야기를 들잖아요. 그래서 그 해에 농부가 곡간을 더 크게 짓고 가득히 쌓아놓고 하는 말이 "내 영혼아 먹을 것 많이 쌓아라. 사는 건 이제 어려움도 없고 이제 평안히 내 영혼아 잘 살자" 할 때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했습니다. 이것이 불신자의 생활이요. 복음 알지 못하는 자의 생활이요. 영적인 눈 열리지 않아 엉뚱한 곳에 투자한 모든 어리석은 자의 생활이라고 그렇게 규정을 지었습니다.
■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도 바로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대로 영원한 멸망에 쳐 넣을 수 있는 그 하나님을 정말 두려워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그리고 영원히 썩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는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영원토록 지속되는 축복의 영적인 역사에 우리의 모든 삶을 투자해야 합니다. 특별히 재물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여기에 투자 안 되면 다 헛된 겁니다. 여러분의 봉사도, 헌신도, 신앙생활 자체도 내가 지금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가? 자신을 위한 것이냐? 잘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결과는 이런 엄청난 결과가 닥치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사단에 속하게 되는 그 때부터 마귀가 아비가 되는 것이고, 고후4:4-5에는 세상 신으로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16:11-14에 세상 임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세상임금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저주와 고통이 마귀와 사단을 통해서 영원히 인간위에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땅 끝까지 저주를 받아서 곡식도 아닌 엉겅퀴와 가시가 나와서 축복을 방해하는 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여러분이 해결될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생명, 예수님의 생명, 새 생명을 받지 않는 한 해결될 길이 없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창3:15에 말씀대로 여러분들이 빠르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 영원한 멸망 속에서 해방되는 오직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예수 생명을 받는 것,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는 것이 확인되고 이해되는 배경에서 영원한 죽음과 형벌에서 해방되도록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믿는 것이 언약입니다.
늘 말하고 싶은 것이 행동한다, 어떻게 산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혹시 누가 와서 나하고 일주일만 같이 살면서 나를 보면 정떨어질 겁니다. 강단에 섰을 때는 아내, 자녀에게 잘 하는 것 같지만, 정 의심 있는 사람은 제가 잘 하는가 집사람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생각해도 강단에서 설수 있는 일이, 모르고 그냥 그래도 따라오는 교인이 너무 착하고 귀여워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내 삶이나 행동 자체로는 구원 못 받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지, 구원 받은 사람이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길도 은혜로 인도받는 것이지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행동이 엉망이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잡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너무 체질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가끔씩 나는 체질에 따라서 실망하기도 하는데 아무리해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율법 체질입니다. 우리 당회에서 제일 율법이 센 사람이 박 목사입니다. 그 다음 센 게 장로님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교회 대를 이어갈 목사를 찾는다면 율법이 센 사람, 그리고 복음의 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겸비가 되지 않으면 당회를 이끌어 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눌려서 못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도 늘 율법 세계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간단한 말 같지만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복음 받았다. 교회에 메시지를 전할 때는 참 복음으로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자기도 모르게 본질적인 체질인 율법이 나옵니다. 그러나 한 번 받아합시다. "괜찮다. 약속만 바로 잡으면 만사형통이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 복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조차 없어지는 날에는 온 교회가 저주 속에 빠지게 됩니다. 복음 속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이 하나님의 생명을 붙잡지 아니하면 영원한 저주와 멸망에서 나올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너희와 함께 있겠다. 임마누엘, 임마누엘의 축복과 역사를, 창세기 때부터 약속하신 일방적 약속을 붙잡기만 하면 해결됩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임마누엘의 놀라운 축복과 역사를 오늘도 붙잡을 수 있도록 오늘도 은혜 주시고 이 일에 우리의 눈이 열리도록, 그래서 영적인 일에 우리의 삶을 투자할 수 있는 축복과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자인가?
1) 자기를 위하다가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자
2)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21절)
3) 진짜 지혜로운 자는 내 자녀에 대해 영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자
- 내 자녀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렘넌트를 살려야 한다.
2. 신앙의 갈등 - 선악과
1) 렘넌트들의 질문:
- 선악과는 왜 만들었나? 선악과를 먹을 줄 몰랐는가? 그걸 먹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 실제로 있었던 사실인가? 선악과는 지금 어떤 과실이냐?
2) 하나님의 주권에 신앙이 서지 않으면 여기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음.
3) 선악과는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언약 붙잡도록 해줌.
3. 사단은?
1) 사단의 소원은 하나님 자녀를 붙들어서 하나님 계획 속으로 못 들어가도록 함.
2) 성도가 가는 길에 사단은 완전히 추방되는 권세를 주심(기도-영적세계).
3) 요8:44 마귀의 자녀, 고후4:4-5 세상 신, 요16:11-14 세상 임금.
결론
1) 영원한 멸망 속에서 해방되는 오직 한 가지 길은 예수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창3:15).
2) 너무 체질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잡으면 구원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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