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2011-06-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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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5일 주일 2부 주일예배 신봉준 목사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출애굽기 32장 1~14절)

1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 출32:1~14

■ 할렐루야!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하나님의 주권 안에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전도자의 삶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라는 제목으로 안식일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약속들을 붙잡았습니다. 다시 한번 더 이 부분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현장에서 기독교를 공격하는 단체들 가운데서 “왜 개신교는 안식일을 지키라 했는데 안식일을 지키지 않느냐?” 며 공격해 오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 중에 한 가지는 주일(일요일)은 로마사람들이 태양을 숭배하던 날이기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며 주장하면서 기독교인들을 미혹하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안식일을 지키고 있고 성경에 나오는 유월절이나 수장절 등 일곱 가지 절기들을 그들 스스로 지키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공격해 옵니다. 그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환경 운동하는 등 그들 나름대로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주인 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안식일은 오실 메시아 곧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주신 것이고 실체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림자를 이제는 더 이상 붙잡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대해서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주일에 대하여서도 정리를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무엇보다도 안식일을 지킨다 할 때, 유월절, 수장절, 오순절 등 다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할례도 행해야 하고 예배도 사실 이곳에서 예배드리면 안 되고 예루살렘 성에 가서 예배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약의 그림자로 주신 것으로 우리에게 공격하는 사탄의 전략을 알 수 있는데, 그리스도를 희미하게 만들고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건들을 헛일로 만들기 위한 사탄의 전략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서 안식일의 모든 것은 그림자라 했습니다. 우리는 실체되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림자를 따라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주인공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를 붙잡고 실제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축복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안식일의 모든 시효가 소멸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붙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식일과 주일의 개념을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 하신 분들은 안식일과 주일과 같은 개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바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일성수를 잘해야 한다는 것과 그래야 복 받는다는 의식들이 대부분 안식일을 지키는 개념 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안식일과 주일은 다릅니다. 안식일은 구약 시대의 신앙의 구심점이었고, 주일은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절기였고 물론 예외적인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유대인들을 중심한 안식일이었고 주일은 모든 사람들이 지키는 날인 것입니다. 기억하실 것은 안식일과 주일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은 주중 마지막 날인 금요일부터 토요일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주일은 마지막 날이 아니라 주중의 첫 날입니다. 왜 첫 날로 주셨느냐? 첫 날을 모델로 삼아 육일동안 모든 시간과 날들에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주일을 모델로 그렇게 살라고 주일을 첫 날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주일이란 말이 일찍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주일이란 말은 AD 4년경 로마시대에 요일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유대교를 믿는 자들과 구분 짓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날인 안식 후 첫 날을 주님의 날로 정하여 주님께 예배하며 영광 돌리는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축복을 누렸던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교와 구분되어지는 것이 바로 초대교회안의 안식후 첫 날로 규정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마땅한 단어가 없이 “안식 후 첫날”이라 사용하다가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유대인들의 안식일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안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교와 주일을 지키는 기독교인들이 같이 공존해 있었던 것이 초대교회였습니다. 안식 후 첫 날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여서 그들 나름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살아난 자들이다” 해서 “주님의 날” 곧 “주일”로 정해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주의 날, 주님의 날, 주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말하는 요일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 모든 생애 주인 되신다, 시간과 날들의 주인 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주일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안식일과 주일이 통합되어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착각하도록 되었느냐? 이것이 사탄의 전략으로 기독교를 종교화 하려는 움직임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콘스탄틴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됩니다.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자신 황제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적인 의도로 개종케 되었다고도 합니다. 어떠하든지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되어지고 31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일요일”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아실 것은 “주일”이 진행되어 오다가 “일요일”이 생성되니 내용은 안식일을 취하고 그 이름은 로마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태양숭배의 날로 해서 제정된 것이 일요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과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분명히 다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미 알고 있듯이 안식일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킨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받는 것은 어떤 규례를 지킴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구원받습니다. 많은 경우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데 안식일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는 구원이 없다” 라고 이야기 하는데 아닙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켜야 한다며 주일 지킴으로 구원받는다고도 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는 하나님의 최고 축복된 응답 받는 날인 것입니다.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여러분 예배에 참석하여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한주간 현장 을 이길 힘을 얻는 시간이 예배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날을 그렇게 정해놓으셨습니다. 오늘 축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육일동안 주일을 모델로 삼아서 이 한 날 한 날 승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날이기에 가장 복된 날입니다. 어느 정도로 응답받으면 되느냐? 한주간의 현장 나가기 전에 현장의 문제들에 대한 답이 보여질 만큼, 한 주간 일어나는 문제들을 넉넉히 이길 만큼 힘을 얻어야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헤미야8:10)” 말씀했습니다. 정말 우리 마음에 이 시간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게 될 때, 한주간의 현장에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건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말씀의 성취를 확인하고 문제, 사건, 일들 속에서 말씀을 확인하고 주일 말씀이 기대되어지면서 이번주간에는 어떤 말씀을 주실 것인가 하고 기대하고 현장에서 말씀의 성취를 보는 것이 계속되어지면 그 사람 주위에 이상하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별스럽지 않는 말을 던졌음에도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전도의 문이 열려지면서 현장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누릴 수 있는 엄청난 축복의 역사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회복하는 날이 언제이냐? 주일입니다.
여러분, 한주간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세상에 나가면 믿음의 고백이 없습니다. 전부 낙심케하고 실망시키는 것뿐이지 여러분에게 힘 주는 메시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마치 가나안 땅을 정탐한 정탐꾼의 고백이 현장을 사는 우리들의 고백들입니다. “메뚜기 같더이다(민수기13:33)” 현장에 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힘주는 말을 하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 현장을 살다가 주일날 하루만큼이라도 은혜입어야 하는데 교회 안의 이런 저런 온갖 불신앙의 말들을 듣고 불신앙이 가득차 현장에 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씀을 마음에 담고 현장에 나가도 승리하기 힘든 영적 싸움의 현장에 있는 여러분들이 한주간 내내 말씀 없이 살다가 주일날에도 말씀이 아니라 또 다른 것 담고 나가는 것이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년, 이년, 십년, 이십년이 지나게 되면 그 자체가 무너지는 삶 곧 흑암이 가득한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 불신자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이길 배경인 하나님의 나라 그 축복의 비밀들이 오늘 예배를 통해 회복되는 날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날 주일은 하나님이 그 축복 주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마 어마한 축복 받은 우리가 주일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입고서 현장에서 승리할 신분인 우리가 이 축복을 알지 못하게 될 때, 어디로 빠지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빠진 문제와 동일하게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32장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죠.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해 만들라” 고 요구를 해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들을 확인하고 가졌던 백성들입니다. 이런 응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잠간, 문제에 부딪히니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하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애굽에서 빠져나온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체험한 민족입니다. 그것도 400년간이나 애굽이라는 저주 가운데서 빠져 있었는데 어떻게 빠져나왔습니까?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유월절의 어린 양의 피, 희생제사의 피로 인하여 애굽에서 빠져나오는 엄청난 능력과 역사 체험했고 10가지 기적을 체험한 민족입니다. 그와 더불어 가나안 땅에 대한 완벽한 축복을 이미 말씀하셨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은 문제 앞에서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붙잡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1. 오늘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출32:21-24)

그래서 첫 번째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32장 1절에서 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몸은 출애굽했지만 마음은 그대로 애굽에 남아 있는 사실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32:1에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노예근성이 그대로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모릅니다. 잘나갈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자신이 가진 내면 속에 뿌리내려져 있는 것이 드러납니다. 오늘 여기에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에서 우상숭배 하던 그 부분들이 습관화되어 있어서 조금만 문제 오면 금세 옛 체질로 돌아가는 노예근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백성들을 인도할 지도자라도 제대로 역할을 하면 다행인데 오늘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있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대제사장 아론을 보면 그 수준이 그 수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야기 하는 것이나, 최초로 대제사장으로 위임받은 아론임에도 그의 대처하는 방법이나 아론의 고백을 봐도 아론조차 백성들이 아무리 틀린 길을 가려해도 “그러면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고 이미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았지 않느냐? 분명히 우리에게는 가나안 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라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도록 해야 할 것인데, 이 대제사장 아론이 백성에게 무엇이라 합니까? 모세가 아론을 책망할 때, 아론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완전히 애굽사상에 빠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1절부터 24절입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지도자인 아론이나 수준이 서로 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선언할 대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애굽사상에 빠져있는 아론의 모습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본문을 준비하면서 “웃을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나의 모습이 아닌가?” 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고백입니다. “내가 복음 복음 이야기 하지만 속과 내면은 그대로이고 복음을 덮어 쓰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결정적인 순간에 복음보다는 율법으로 상대방을 상처주고, 말도 수용하면 되는데 사람을 죽이는 말을 쉽게 내뱉어요. 그것이 복음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면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경험한 것, 배운 것들 그런 부분들이 주가 되어 복음보다 복음 아닌 부분이 먼저 표출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목사님, 제가 예배 드리기 위해 성령충만함으로 앉았는데 앉는 순간에 잠시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예배 온 시간동안 말씀을 듣지 못해서 나중에야 “내가 속았구나” 하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늘 모임을 인도해나가시는 오너(Owner)이신데 평안할 때는 모르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함부로 말을 퍼부어서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를 않는다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 고백하는 그분이나 저나 고상한 척, 그렇지 않은 척하고 있어서 그렇지 똑같지 않는가?”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왜 복음을 반복하고 강조하며 왜 복음에 뿌리내리라 하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평안할 때는 모릅니다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 부분들이 복음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이 나옵니다. 율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가 나와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게 합니다.
어제 핵심집회에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세상의 경험들, 체험들, 지식들 이 모든 것들 곧 복음 깨닫기 전에 알게 된 것들이 오물로 가득차 있고 그 오물 위에 상처들이 있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4시간 하나님의 배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왜 계속 복음을 강조하고 뿌리내리라 하느냐? 오늘 본문을 보세요. 그렇게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놓고서도,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한 신을 만들라”는 요구. 사실 복음에 뿌리내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표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이런 요구들이 있지 않습니까? 왜 계속 그리스도만 이야기 하고 복음만 이야기 하느냐? 뭔가 좋은 것이 있는데, 왜 복음만 이야기하느냐? 그런 요구들이 은근히 자리 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지식 있는 척하면서 그러한 요구들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담대하게 “아니다!(No)” 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절에 보면 우리의 색다른 갈망에 대해 다른 것들을 요구하는 현실 앞에 담대하기 “아니다” 했습니다.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오늘도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그리스도 그 사실에 뿌리내려야 하며 체질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다른 것이 나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잘나갈 때는 모릅니다만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축복받아야 할 사람이 복음 뿌리내리지 못하면 다른 것이 나옵니다. 복음 아닌 다른 것으로는 사람과 현장을 살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를 살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지금 내 앞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의 노력과 애씀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해결되어야만 완전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체질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삶이 무엇입니까 ? 3오늘―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을 실천함으로 우리의 체질, 근본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과 오늘의 기도와 오늘의 전도를 통해서 우리 깊숙이 상처와 오물로 가득차 있는 부분들이 그리스도로 충만해져서 문제가 해결되고 나 자신이 살고 사람을 살리는 현장을 살리는 이 축복된 응답을 받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자의 삶입니다. 분명한 것은 나의 체질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의 근본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그 이유를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빠진 우상숭배. 이것은 악한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우상숭배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응답을 받았던 사람들의 하나같은 특징이 뭐냐? 그 시대의 우상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고 있는데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하면서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는데 첫 번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 돈, 쾌락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오게 됩니다. 두 번째로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안 믿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로 진리를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우상과 종교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이 가면 갈수록 시대에 우상과 종교들이 일어나서 우리의 영혼을 멸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뿐만 아니라 시대의 역사를 보세요. 강대국들마다 우상숭배로 부흥했고, 그 부흥으로 인해 그 시대의 기독교는 완전히 실패했고 반드시 우상숭배로 인하여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것이 시대의 역사의 반복입니다.
그래서 시대마다 우상문제를 해결한 교회와 단체를 하나님은 무조건 축복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를 이 우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단을 왜 이토록 축복하셨는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현장에 있는 우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거기서 건져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교단을 축복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냥 드리지 마시고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정말 우리 교단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오직 우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답인 그리스도만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헌금해야합니다.
여러분, 시대 시대마다의 문제는 우상의 문제입니다. 우상이 문화가 되어 있어요. 그로 인하여 재앙이 일어났어요. 우상은 창세기 3장의 결과로 온 것이고 그 우상의 배경은 반드시 악한 사탄이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우상숭배 하지 않아도 되는 참된 축복, 가짜 축복이 아니라 참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는 영원한 길로 그리스도를 주셨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고 그 성령의 인도를 받아 걸음걸음 나아갈 때마다 흑암의 권세가 꺾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해방과 참된 승리의 응답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지게 되어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이것을 알지 못해서 우상숭배하는 것입니다. 망하면서도 우상숭배 하는 것입니다. 왜냐? 마귀의 나라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진짜 참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출32:11-13; 32:14)

두 번째 이 우상숭배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중요하게 언약으로 붙잡아야 될 내용들이 그 다음에 나옵니다. 이런 멸망과 진노가운데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고 한 사람의 사명자의 기도가 본문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 한 시대에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이 기도를 회복하기를 원하시는데 11절부터 13절 모세의 중보기도가 나옵니다.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멘.
“애굽에서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으면 하나님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죽이려고 애굽에서 건져 냈다고 애굽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지키시옵소서.” 언약을 가지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32절입니다. 정말 이 기도가 우리 현장을 놓고 회복되는 그런 축복된 사명자들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무슨 말입니까? 현장에 있는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멸망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더라도 내 백성을 구원해 주옵소서. 사명자 한 사람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14절에 “뜻을 돌이키사” 여러분 한 사람의 기도가 가정을 살릴 줄로 믿습니다. 가문을 살리고 이 지역 살릴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소망이 없고 교회를 향해서 공격해 온다 할지라도 언약 잡은 저와 여러분의 기도로 말미암아 이 땅은 회복될 것입니다.

제가 어떤 주간지를 봤는데 어떤 내용이냐면, 지금 기독교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유 두 가지 중에 첫 번째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사라지고 있다. 사실은 교회의 본질을 놓쳐버렸다는 것이죠. 두 번째가 교회가 다른 종교보다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거기의 내용들을 보면 3000개씩 교회가 문을 닫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주 기독교계 신문을 보더라도 지금 신학생들 절반이상이 사역지가 없어서 목회실업자들이 대거 양산되고 있다고 나왔습니다. 참 어렵고 힘든 현실을 이야기 하는데 거기에 글을 읽은 내용 중에 다른 종교에 비해서 영적인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다른 종교는 영적인 해답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여러분,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 인생에 영적인 해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죄와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건지시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답은 안 됩니다. 오직 교회만이 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교회가 회복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이 땅의 우상의 문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그 복음을 회복해야 되는 겁니다. 주님 오시는 날 까지 그 사실을 놓치지 않고 영적문제에 빠진 자들,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에게 해답을 주며 그들을 건져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는 잘못되었고 우리 교회는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정신 차려서 이 한 시대 우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적인 문제에 진정한 바른 답을 교회만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주께서 뜻을 돌이키사” 저와 여러분이 언약 잡고 서게 될 때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현장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그 축복된 응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 지역에 교회를 놓고 기도하는 부분이 무엇 때문입니까? “주께서 뜻을 돌이키사” 이 언약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장에 전도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 현장에 전도조직을 왜 세워 나가려고 합니까? 다락방부터 지교회 까지 왜 세우려고 합니까? “주께서 뜻을 돌이키사” 이 응답 때문입니다. 우리 중직자들이 유일한 축복을 가지고 현장에 이 사명을 감당할 자로 왜 세워져야 합니까? “주께서 뜻을 돌이키사” 이들이 세워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다민족 선교캠프를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메시지를 받으면서 지금 우리나라에 이주해온 다민족이 120~130만 명 정도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미 보도에 나온 바와 같이 무슬림들이 한국을 그들의 기지로 삼아 2025년까지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한국을 완전히 모슬렘화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격들이 지금 우리 현장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주해 온 다민족들이 각기 나름대로의 신들을 섬기고 모시며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단순히 선교캠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역사하는 흑암세력과의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영상을 통해 기도를 부탁드렸고, 금요전도학교 시간에도 기도하는 분들 중심으로 기도를 부탁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통해서 다민족 안에 제자를 찾아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문)들을 열어 가실 것인데 이 일을 위해서 먼저 영적인 싸움들이기 때문에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을 꺾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뜻을 돌이키사” 언약 잡고 기도하는 그 한 사람을 통해 분명히 지역과 민족과 세계가 살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축복을 주시기 위해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명자로 여러분 때문에 모든 현장이 살아나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년 6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출32:1-14)

서론: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주일을 지키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누릴 수 있는 엄청난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복을 회복하는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느8:10). 모든 시간과 날들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기념하며 복을 누리는 날입니다.
본문 출애굽기 32장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을 이미 확인하고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이 문제에 부딪히자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 속에서 중요한 교훈과 답을 깨닫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1. 오늘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 우리의 문제(21-24절).
(1) 애굽의 노예사상(노예근성)(32:1)
1) 몸은 출애굽했지만 마음은 그대로 애굽에 남아 있음
①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의 내면에 뿌리내려진 것이 드러남(백성과 지도자 아론(21-24절)
② 결정적인 순간에 율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가 나와 하나님 인도 받지 못하게 함
2) 왜 계속 복음을 강조하고 뿌리내리라고 하느냐?
① 날마다 그리스도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다른 것이 나옴(1절)
② 오늘도 필요한 것은 내 인생 문제 해결자 그리스도(빌3:1)
③ 전도자의 삶을 통해 나의 체질과 근본을 바꾸어야 함
(2) 우상숭배
1) 시대마다 가장 큰 응답 받은 사람은 우상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
2) 우상숭배로 인한 재앙의 역사
① 말세에 우상과 종교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음(딤후3:1)
② 시대마다 우상문제를 해결한 교회와 단체를 하나님은 무조건 축복하심
③ 우상은 창세기 3장의 결과이며, 우상숭배의 배경은 악한 사탄임
3)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상숭배하지 않아도 되는 참된 축복으로 그리스도를 주셨음

2. 우상숭배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11-13, 14절).
(1) 모세의 중보기도 - 사명자의 기도(9-13절)
1) 언약 가진 자의 우리의 기도로 말미암아 이 땅은 회복될 것임
2) 그리스도만이 이 땅의 우상 문제, 영적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됨
(2) 모세의 중보기도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습니다(32절).
1) 교회만이 우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적인 문제에 진정한 답을 줄 수 있음
2) 하나교회가 받을 응답 - “주께서 뜻을 돌이키사”
① 현장에 전도조직(말씀운동 시스템. 다락방~지교회)을 세움
② 중직자가 현장에서 사명자로 세워짐


결론: 다민족 선교 캠프는 다민족 배경에 역사하는 흑암세력과의 영적인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 다민족 가운데 제자를 찾아,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을 열어가실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먼저 그들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을 꺾어야 합니다. “주께서 뜻을 돌이키사”, 이 언약을 잡고 기도하십시오. 언약 잡고 기도하는 나 한 사람 때문에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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