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왜 인간은 행복이 없는가?
2011-10-0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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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전도자의 삶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할렐루야! 오늘 이 한 날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최고로 은혜 받고 한 주간 현장에서 넉넉히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축복의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교회에서 일일전도캠프가 목요일마다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반기를 시작하며 캠프방향이 지교회를 중심으로 다락방과 미션홈을 열어가는 것으로 인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대구지역에 말씀운동이 일어나게 될 때, 여러분의 삶의 현장과 가정 현장에 말씀운동이 일어나게 될 때, 실제로 흑암이 꺾여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면 지역 속에서 말씀운동의 역사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세상이 당하는 어려움들과 불신자들이 당하는 실패들은 그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어려움과 실패를 당하는 것이고, 세상의 유일한 답으로 주신 그리스도를 복음가진 교회와 성도들이 말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운동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 저주와 재앙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말씀운동이 전 지역에 일어남으로 인하여 종교인들과 우상숭배하는 자들이 돌아오는 그러한 응답들을 누렸습니다. 사도행전 6장 7에 보면, ‘허다한 제사장들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그 당시 최고가는 종교인들인 제사장의 무리도 복음 앞으로 나아오는 축복된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현장 속에 흑암이 꺾여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이 엄청난 것이며 저와 여러분이 말씀운동을 통해 지역을 살리고 모든 현장들을 살려야 할 사명들이 주어진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락방 운동을 통해 우리 하나교회(구 송현교회)는 교회 부흥을 가져온 이유 중 한 가지가 있다면, 전 성도들이 말씀 가지고 전 현장에 흩어져서 말씀운동을 일으킴으로 지역의 흑암이 꺾여지고 그때마다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을 붙이셔서 주의 교회 앞으로 인도되어 오는 응답을 증거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교회 중심한 캠프가 진행되어지면서 확인을 해본 결과, 많은 분들이 다락방(말씀운동)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고, 다락방(말씀운동)의 문들이 닫혀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락방 전도운동을 하나교회가 처음 시작했을 때 말씀운동 장소들을 교역자실 게시판에 정리했었는데, 400~500개가 넘는 다락방들이 전 지역에 구축됨으로 인해 그곳에서 귀중한 일꾼들이 응답의 자리에 까지 오게 되었는데, 지금 지교회를 통한 캠프를 진행하며 확인되어지는 것은 많은 다락방(말씀운동)의 문들이 닫혀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교회 내부에서 미션홈과 다락방의 응답을 누려가야 하는데 그러한 응답들을 감당해나가야 하는데 그러한 부분을 감당해야하는 사역자들이 이러한 영적인 감각에 대해 무뎌졌는지 사역에 대한 부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서 현장에서 전도 운동하는 다락방이 활성화 되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님들에게 복음의 메시지가 정리되어져야 하고 복음의 메시지가 정리됨으로 삶의 응답으로 나타나서 정말 현장에 말씀운동과 전도하는 다락방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기도하면서 오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특별히 전도자의 삶(오늘의 말씀, 기도, 전도)을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 현장에서 귀중한 문들을 열어 가실 것인데, 그 일을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메신저(말씀 전달 자)로서 지속할 수밖에 없는 메시지 가지고 지역을 정복하고 현장을 정복하고 참된 하나님의 응답을 현장을 통해 확인토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마음에 확신이 섰습니다.
여러분, 다락방 말씀운동 속에 있게 되면 먼저 내가 살게 되고 말씀 운동 속에 들어온 사람들이 살게 되는 축복이 다락방 말씀운동입니다. 말씀운동 하기 위해 말씀가지고 나가게 될 때, 내게 먼저 은혜를 주시게 되어 있고, 말씀 받는 사람들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우리 교회가 다락방 말씀운동을 통해 일꾼들 확립되었느냐 하면, 교회부터 새가족을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영접시키고 현장에서 양육하다가 시간표가 될 때 교회로 인도해왔습니다. 그래서 다락방 말씀운동초기에는 새가족으로 등록했을 때 거의 80% 이상이 새신자반을 통해 교회로 정착되어졌습니다. 이미 복음으로 준비되어서 답을 가지고 교회로 들어왔기 때문에 떨어져 나갈 수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냐 하면, 우리 교회 새가족 중 어느 사람이 복음을 깨닫고 누리면서 주위에서도 교회에 다니는 줄 알게 되었는데, “어느 교회에 다니냐?”는 질문에 “하나교회에 출석한다” 하니 이상한 이야기들로 공격했던 것입니다. 그때 이 새가족이 “도대체 뭐가 이상하냐?” 라고 오히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정도로 말씀으로 준비되었던 때가 운동이 일어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축복을 회복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정말 우리 개인이 살아나고 교회전체 현장이 살아나야 하겠다는 마음들을 가지고 결단하게 된 것이 ‘복음편지’로 가지고 주일 예배 시간에 말씀으로 정리해나가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복음편지는 나와 현장을 살리는 것이며, 신학 중의 신학입니다. 이 말씀운동이 일어나게 될 때, 말씀운동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동시에 체험케 되는 것이 치유의 역사입니다. 앞으로 연말까지 지교회를 중심으로 다락방과 미션홈을 열기 위한 캠프사역으로 인도 받고 있는데, 이 사역과 발맞추어 복음편지를 가지고 함께 인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오늘 제목은 ‘왜 인간은 행복이 없는가?’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왜 인간은 행복이 없는가?’ 복음편지 1과입니다. 여러분, 왜 인간은 행복이 없습니까? 먼저 전제할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계획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과 28절에 보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렇게 창조된 인간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장 31절)’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 안에 있는 행복과 하나님 안에 있는 평안 그리고 하나님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한 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와 더불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유도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여기에서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참된 행복을 회복하기를 원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소원인 전도가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을 누려야 전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전도란 다른 것이 아니라 행복을 가지고 누리는 자가 그 행복을 전달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그 현실은 행복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공부를 동요합니다. 지난주간에는 너무 자녀에게 공부를 동요하다 보니 이혼사유가 되어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자녀에게 왜 그렇게 공부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자녀가 앞날에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동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혼하는 이유도 참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결혼하지 않습니까? 불행하려고 결혼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버는 이유도, 종교를 가지는 이유도,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이유도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행복에 대한 마음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헌법 10조 1문에는 국민의 기본권이 있는데 바로 행복추구권입니다.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행복추구권’입니다. 요즘 TV나 광고를 보면 금방 행복을 가져다주거나 보장해주는 것처럼 선전을 합니다. 그러나 행복과는 먼 삶을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 때문에 행복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면, 소유와 성취에 행복의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지 뭔가를 소유하고 뭔가를 성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행복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고, 남편이 잘되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좋은 차로 바꾸는 것 모두가 모두 소유와 성취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행복을 가져다주느냐? 아닙니다. 경쟁과 다툼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낙오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고 도태되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결국 소유와 성취를 통해 인간이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세상의 사람들은 소유와 성취에 참 행복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육신적인 것에 빠져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세상적인 것, 육적인 것이 이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줄 알고 여기에 모든 삶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보에 기재된 중직자 편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이 치열한 경쟁 중에서 일부는 승리하고 나머지는 패배합니다. 그러나 승리한 자에게 기쁨은 순간이며 오히려 실망감과 허무만이 남고 승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불안한 경쟁을 계속해야 합니다. 패배한 자에게는 좌절과 고통만이 남아 스스로 실패한 인생에 대한 회의에 빠져들게 합니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승자도 패자도, 일등도 꼴등도 결국 고통 받다가 스스로 인생을 포기해버리는 현실입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에서부터 중고생, 대학생, 청년, 교수, 사회 엘리트층에 이르기 까지 이러한 경쟁에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소유와 성취를 행복의 기준으로 붙잡고 있는 한, 방금 읽은 내용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어느 누구도 예외될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에게 참된 행복이 소유함에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종교인들과 같이 “무소유 즉 다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근본 본심이 욕망과 욕심을 가지고 있기에 명상을 통해 그러한 것들을 다 버려야 참 행복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 근본의 욕망과 욕심들을 인생들이 버릴 수 있습니까? 창세기 3장의 사탄이 붙잡고 있는 영적 문제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인간의 욕심과 욕망들을 벗어 버릴 수 있습니까? 버릴 수 없기에 집착하게 되고 고통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 가져도 행복이 없고 다 버려도 행복이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여러분,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내가 불행하다면 그 불행의 원인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낙심하고 있다면 그 낙심이 무엇 때문인가?”, “내게 마음의 속상함이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내가 행복하다면 그 행복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잘 살펴보면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100 퍼센트 우리 인간은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으로 인하여 행불행을 따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순간 영이 죽었기 때문에 영적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 썩어 없어질 것, 다 지나가는 것에 행복과 불행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실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행복은 다 가져야 행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다 버려야 행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 것이 복음인데, 복음 안에 행복이 있는데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계획을 찾으라 (시16:9; 2, 8, 11)

행복하게 살기 위해 붙잡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찾는 자가 참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많은 말들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창세기 1장 27절과 28절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을 주셨습니다. 그게 뭡니까? 영을 주신 겁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것, 영을 주셨는데 그 영을 소유한 자를 하나님의 형상 가진 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왜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존재로 다른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 거기에서 축복과 권세가 나타나고 참된 복이 임하는데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중의 계획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우리에게 영을 주신 것입니다. 제일 큰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를 불러놓고 실컷 애먹이고 전도하라며 부담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말씀을 살펴봤지만,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시자마자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나가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제일 큰 계획 중의 계획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임마누엘'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했습니다.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모르게 되었고 그 결과로 죄 가운데 빠졌고 그래서 인간에게 고통이 계속해서 오게 된 것입니다. 정신적인 고통이 오고 삶이 무너지는데, 균형 있는 삶, 보람 있는 삶이 안 됩니다. 육신의 질병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데 그것이 미신과 종교생활 하는 것입니다. 해결하려면 할수록 더 증가하는 것이 인간의 실패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 불행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있는데 그 배후에 역사하는 사탄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와 사탄 가운데 인생은 붙잡힌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창세기 3장의 원죄라고 이야기 하고 죄와 사망의 법에 인간이 빠진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절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어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죄가 갈라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9장 2절에‘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창세기 3장의 원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죄의 문제는 누가 해결할 수 있느냐?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작정하셨는데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 받고 우리가 단번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축복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에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을 누리면 누릴수록 참된 행복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행복의 기준은 내가 얼마만큼 많이 소유하고 있는가가 아닙니다. 존재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에 있느냐?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있고,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 속에 참된 행복, 참된 안식이 있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말씀을 통해 이 축복을 누리길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 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최고의 계획을 누리기 바랍니다. 예배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강하게 직접적으로 역사하시는 시간이 예배시간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을 누릴 때 우리가 어떤 상태가 되느냐면, 시편 16편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참 행복이 있습니다. 9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여기에 마음이 기쁘고 영이 즐거우며 육체도 안전하다는 것은 어떤 재난과 위험 속에서도 안전하다는 것이죠. 인간의 전인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이 즐겁고 마음이 기쁘고 육체가 안전한가? 그것은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6편 2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할렐루야!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관계입니다. 마음이 기뻐야 되고 우리 영이 즐거워야 되고 육체가 안전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 나의 주님이 될 때,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할렐루야! 이것은 잠시 잠깐의 즐거움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 중의 계획을 찾는 자가 살아가는 생애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라

두 번째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행복하게 충만한 삶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내게 주셨습니다. 그게 구원입니다. 그리스도가 가진 모든 것을 내게 주셨어요. 그게 구원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란 것은 하나님의 생명,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게 임한 것입니다. 이 생명은 그 어떤 것도 이 생명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축복된 생명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안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내 안에 임하는 순간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왔어요. 그 생명은 로마서 8장 35절에 보면 적신도, 위험도, 기근도, 원수도, 칼도, 죽음도 끊지 못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 생명이 내 안에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죽음도 못 끊는 생명이 내 안에 있다면. 여러분들이 지금 당하는 일들, 문제들, 어려움들을 해결 못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죽음조차도 못 끊는 생명이 우리 안에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그래서 이 생명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동원하셨습니다. 단 한 사람만이 이 지구에 산다 할지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힐 만큼 생명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믿습니까? 이 생명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할 뿐만 아니라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양자의 영을 주사 부르짖도록 했다’고 말씀하면서 16절-17절에는 아예 우리를 상속자로 만들어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물려받게 하셨는데 그게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신분, 이 신분과 함께 따라오는 것이 권세입니다. 여러분의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신분 누리면서 기도하며 나아갈 때 흑암의 권세가 꺾입니다. 하늘군대가 동원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보좌하심을 받게 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권세입니다. 이 축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정복하는 제자를 삼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에 따라서 주신 권세입니다. 이 사실을 사용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신 신분과 권세를 사용하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것을 사용 안합니다. 모르고도 안하고 알면서도 사용 안 합니다. 그러니까 이 땅의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니라, 마지못해 살아가는 생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받은 자에게 주신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이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사는 비밀입니다.

3. 전도자의 삶으로 생을 드려라

마지막 세 번째, 전도자의 삶으로 여러분의 생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참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계획을 찾고, 와 있는 축복을 누리고 전도자의 삶으로 우리 생을 드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지금 어디에 드리고 있습니까? 돈과 물질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돈 따라 가다가 돈 앞에 무릎 꿇는 일이 오게 됩니다. 명예 따라가다가 명예 앞에 무릎 꿇게 됩니다. 현장에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또 사람 앞에 드립니까? 결국 사람 통해 오는 것은 배신과 상처와 아픔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쾌락에 여러분의 생을 드리고 있습니까? 얼마 안 되어서 멸망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내가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겠다' 는 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린 작은 것으로 드리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으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는 역사가 체험될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의 삶을 내 생애에 전도자의 삶으로 하나님께 드려야겠다고 고백할 때, 여러분 남은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예수 믿어서 천국 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3장 14-15절에‘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 이러라’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말씀했습니다. 정말 전도자의 삶을 살기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 사실에 방향 맞추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 모든 남은 것들을 책임지시는 겁니다. 여러분, 축복은 내가 노력하고 애써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노력하고 애쓰고 열심히 살아야하죠. 그런데 근원적인 축복은 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전도자의 삶을 우리 삶에 방향 맞추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행복을 누리면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게 가치 있는 삶입니다. 그걸 가지고 전도자의 삶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정말 복음은 참 행복을 가져다주는데 복음은 환경을 뛰어넘습니다. 빌립보서 4장 10-13절은 바울의 고백입니다. 감옥 속에 있던 바울이 내가 일체에 자족하기를 배웠다. 풍요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비결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모든 환경을 뛰어넘는 비밀을 바울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돈 따라가면 언젠가는 돈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돈이 따라오도록, 행복이 따라오도록 해야 합니다. 전도자의 삶으로 방향을 맞추게 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환경이 문제가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복음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어느 정도로 축복하셨느냐? 우리를 부르시고 축복하신 것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행복을 줄 수 있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했습니다. 행복하게 하는 인생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행복하게 하는 자가 바로 전도자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이 사실에 방향 맞추게 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모든 삶을 참된 축복과 행복으로 책임지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행복을 추구하지만 말고.. 행복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입니다. 세상에서 주는 행복은 잠시 잠깐 임시적인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이고, 육신적인 것이고 쾌락적인 것입니다. 더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행복 말고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이 없는 시대에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누리고 구원 받은 자에게 주신 그리스도 안의 축복을 누리고 전도자의 삶을 살므로 여러분의 생을 드림으로 참된 행복을 누림으로 이 일에 증인되어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론: 왜 인간은 행복이 없는가?
(1)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심(창1:31, 요10:10)
(2) 누구나 행복하기를 소원하지만 실제로는 행복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음
(3) 무엇 때문에 행복하십니까?(세상은 행복의 기준을 소유와 성취 또는 무소유에 두고 있음)
(4)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의 기준은 다 가지는 것도, 다 버리는 것도 아님(이것을 뛰어넘는데 있음)

정말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고 하면 붙잡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참된 행복의 비결).

1. 하나님의 계획을 찾으라(시16:9, 2, 8, 11).
(1)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이를 위해 하나님의 영을 주심).
(2) 하나님과 함께 있지 못하도록 하는 것 - 우리 안에 있는 죄(롬3:23, 히9:28)
1)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에 빠지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정신적인 고통, 육신적인 문제 등이 찾아옴
2) 미신, 종교생활 등을 통해 해결하려 할수록 고통이 더 증가함(배후에 사탄이 있기 때문)
(3) 우리와 함께 있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히9:28).
1) 함께 있을 때 참 행복하게 됨(시16:9)
2)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안전함과 충만하고 영원한 기쁨이 이 옴(시16:2, 11)

2.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라.
(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를 해결 받았으며,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되며(요1:4, 롬8:35), 자녀 된 신분이 주어짐(롬8:15-17)
2) 신분에 따른 권세도 주어짐(기도로 흑암권세 꺾이고 하늘군대 동원됨, 세계정복할 제자 세움)
(2) 가지고 있는 것(신분, 권세)을 기도로 사용하라(영원히 행복한 삶을 사는 비밀).

3. 전도자의 삶(행복하게 하는 인생)으로 드리라.
(1) 지금 나의 삶을 어디에 드리고 있습니까?
1) 돈, 물질, 명예, 쾌락을 따라가는가?
2) 내 생을 ‘전도자의 삶’으로 하나님께 드려야겠다는 고백을 하라(하나님의 소원임. 막3:14-15).
3) 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남은 삶을 책임지심(마6:33)
(2) 복음은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1) 복음은 환경을 뛰어넘음(빌4:10-13)
2)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을 줄 수 있는 자,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로 부르심(고후6:10)


결론: 세상에서 주는 행복은 임시적, 세상적인 것이며 육신적이고 쾌락적인 것입니다. 더 큰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전도자의 삶을 살아 참된 행복을 누리고 증거하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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