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일
2012-07-0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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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일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1:12~21
■ 박수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날마다 우리로 하여금 기쁨을 주시고 또 찬송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오늘 이 날 최고로 누리는 그런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행복자이십니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오늘 제목을 빌립보 1장 12절에 나와 있는 성경 구절을 그대로 해서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일’,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일’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신앙의 역사를 보면 알기 위해서 믿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와 반대로 믿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 바람직한 믿음일까요?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일까요 믿기 위해서 아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 지식인 일수록,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일수록 빠지기 쉬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실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어야 믿음 생활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신앙생활 가운데서 이해가 될 때에 믿음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들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해도 아주 복잡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 하면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해서 믿게 되는 것이 아니고요, 믿게 될 때에 이해되는 것이 더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믿음을 포기한다는 것은 굉장히 교만한 사람이고 굉장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똑똑하다고 하는 지식인들일수록 “이성적으로 납득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안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이 우리가 이성적으로 다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죠. 믿게 되면 이해되어지는 부분들이 더 많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자체도 그렇잖아요. 사실 우리 인생 자체를 살펴보면 도저히 우리의 이성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문제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 성도님들의 가정에, 자녀들에, 또 개인에 당한 일들을 보고받고 또 직접 우리 성도님들 통해서 이야기를 듣게 될 때 좋은 소식만이 아니죠, 나쁜 소식들, 이런 이야기들을 듣게 될 때에 ‘진짜 어떻게 저렇게 신앙 생활하려 몸부림치는 저런 가정에 저런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저 사람과 저 가정에 무엇을 하시려고 어떻게 인도하시려고 저런 문제를 주셨을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 실제로 우리가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만날 때에 앞길이 전혀 열리지 아니하고 또 생각했던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에 그런 어려운 힘든 일들을 만나게 될 때에 ‘정말 내가 이렇게 힘들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 바르게 신앙 생활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볼 때가 종종 있잖습니까? ‘과연, 정말 내 삶이 이토록 어렵고 힘들까?’하는 생각해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늘 평안한 것만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참 힘들고 어려운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전개되어지는 상황들을 보면 전혀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지나고 보면 내게 가장 선한 걸음으로, 내게 가장 유익한 모습으로 일이 처리되어지는 그런 경우들을 보곤 합니다. 이런 것들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이야기하기를 ‘우연이다.’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이야기하죠. 당장 일이 진행되어지는 것은 전혀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내게 가장 유익한 대로 인도되어짐을 보면서 ‘아, 하나님이 개입하셨구나. 하나님이 간섭하셨고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해 주셨구나.’ 이런 고백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제와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쉽게 위로할 수 있는 말씀이 있다면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은 최고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또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보십시다.” 그렇게 인사들을 많이 나누잖아요.
로마서 8장 28절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들의 인생들을 영화롭게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려운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그 앞에서 해석할 수 없는 부분들 가운데 많은 성도들이 힘들어 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어려운 문제와 고난과 환란을 당할 때 그 문제를 보는 우리의 눈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다 있어요. 없는 사람이 없어요. 다 어려움과 문제는 다 가지고 있어요. 개인과 가정과 산업과 자녀의 문제, 경제의 문제,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런 어려운 문제들, 또 환란들 앞에서, 또 심지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오는 핍박들 앞에서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러분 잘 아는 말씀이죠. 바울이 빌립보 1장에 보면 복음 증거하는 사역 속에 로마 감옥에 갇힌바 되었어요. 그런데 로마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두 가지 부류의 반응이 나왔어요. 한 부류는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성경의 오늘 본문에 보면 투기와 분쟁함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다 했어요. 투기와 분쟁함으로.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바울을 통한 시위대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고 하나님의 귀한 축복된 계획, 생명을 구원하는 이 계획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면서 바울이 감옥에 갇히니 연민의 마음들로, 연약한 사람들이 ‘우리가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바울을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사실은 바울의 복음 증거하는 사역에 있어서 경쟁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이 사람들은 투기와 분쟁함으로, 다시 말하면 ‘야, 이때가 기회다. 찬스다. 바울이 복음 전하다 감옥에 갇혔는데 이때, 이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현장에서 전하면 우리의 이름이 드러날 것이 아닌가?’ 그래서 투기와 분쟁함으로 복음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오늘 본문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어떠한 고백을 했느냐? 18절에 나옵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착한 마음으로 하든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든지 상관없이 이것 통해서 결국은 복음이 증거되기 때문에 나는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20절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절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얼마만큼 복음의 가치를 제대로 바울이 깨달았던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정도 고백이 되어지면 사탄이 역사할 수가 없죠.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비록 겉모습은 감옥에 갇힌, 매인 바 되어지는 그런 상황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진전이 되어지는 일이다!’ 여러분, 끝난 게 아닙니까? 여기에 사단이 역사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바로 이 축복 속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여러분의 일에 되어지는 부분보다 안 되어지는 부분이 더 많을 거에요.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당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 가운데 복음 안에 들어와 있는 여러분이 그 일들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보면 기어코 하나님은 여러분 통해서 그 일들 때문에 오히려 복음이 전파되는, 귀중한 축복된 역사들을 감당케 하는 사람으로 세워나갔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그래요.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일이다. 비록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이 일을 싫어해서 감옥에 가두었지만 감옥에 매인 바 된 몸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그것조차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기어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인 복음 전파하는 그 일을 이루어나가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내용들입니다. 우리가 이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와 사건과 일들 속에 진짜 열려져야할 눈이 있다면 이 눈입니다. 아!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복음전파의 진전이 되어지는 그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구나, 그러면 문제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문제 그 속에서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고난의 어려움에 대한 부분들을 보아야 할 것인가?
1. 우리 인생 전체를 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지금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도 아시지만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완벽하고 가장 정확하게 인도해 나가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눈이 먼저 열려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동방의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욥의 이야기를 여러분이 잘 아십니다. 욥은 영적으로도 육신적으로도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도 많았습니다. 7남 3녀, 10남매를 두었고, 재산도 날마다 만찬을 베풀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소유들이 넉넉했습니다. 그런데 이 욥의 가정에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자녀들이 한꺼번에 죽게 되고, 욥의 소유물인 가축들도, 재산들도 강도가 와서 다 앗아가 버리는 어려움들이 왔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욥의 몸이 피부병으로 살이 썩어져 들어가는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이런 상황들을 세상 사람들이 봤다면 욥에게 뭐라고 했겠습니까? 아! 하나님이 욥에게서 떠난 게 분명하다, 하나님이 욥을 축복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보았을 것입니다. 사실 욥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렇게 보았습니다.
욥의 어려움 당하는 소식을 듣고 친구 세 사람이 와서 욥에게 위로 한다고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욥이 고백한 내용은 그것이 내게 전혀 위로가 안 되고 친구들의 그 말들이 나를 번뇌케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욥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내조차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진짜 어려울 때 아내가 이해해 주고, 남편이 이해해 주면 쉽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남편과 아내들이 싸우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이해해 주어야 할 남편이 이해해 주지 않고, 아내가 이해해 주지 않는 부분들 때문에 많은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욥이 더욱더 힘들었던 것은 욥의 아내가 악처 중에 악처 였는가 봅니다. 욥에게 와서 “당신 하나님 죽었다. 하나님 욕하고 죽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으니까 당신 하나님 욕하고 죽어라”고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 욥이었습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이 욥을 바라보았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욥이 멀어 졌구나 그렇게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욥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런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욥을 축복하셨는데 그 욥에 대한 축복들을 욥기서42:10절에 보면 한 줄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욥의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의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찾아왔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간섭하시는 기회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을 봅니다. 멀리 내다보지를 못합니다. 근시안적인 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만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과거를 아시고 오늘을 아시고 우리의 미래를 놓고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우리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보다도 억울하고 가슴 아픈 삶을 산 사람이 요셉입니다. 형제들에 의해서 은 20에 팔려서 노예로 가고 또 억울하게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간 나이가 언제냐? 10대, 20대입니다. 여러분 10~20대에 얼마나 많은 상처들, 마음의 상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결국 하나님께서 그 요셉을 인도하셨는데 그의 인생의 마지막은 전 세계 앞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일에 쓰임 받는 증인으로 요셉이 서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어느 정도로 요셉이 축복을 받았는가하면 요셉이 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애굽 사람들을 살리게 되었고, 자기 민족들도 살리게 되는 그 축복된 응답을 받은 사람이 요셉입니다.
한 순간을 보지 마세요. 쉽게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말을 해 버리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놓고 오늘 지금 나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각으로 렘런트 7명 전체를 한번 보십시오. 전부다 사실은 인생 전체를 인도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인생 전체를 어떻게 하나님이 인도해 나가시는가 보게 되는 되는것이 렘런트 7명입니다. 교회사에 영국의 왕인 메리(Mary) 여왕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을 핍박했던 메리여왕입니다. 그 시대에 「버나드 길핀」(Bernard Gilpin) 이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보너(Bonner) 주교에 의해서 이단으로 억울하게 고발당하고 재판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가야하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버나드 길vls」이라는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말씀이 롬8: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런던으로 가는 중에 길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넘어짐으로 다리가 부러졌어요. 그러니까 옆에 있던 조롱하는 한 사람이 “그래도 네 길이 최선의 길이냐?”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에 「버나드 길vls」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해 나가실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나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부러졌으니까 제 속도를 낼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걸어서 걸어서 런던을 향해 걸어가는데 참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하면 이 「버나드 길핀」을 죽이기 위해 사형대를 마련한 메리여왕이 그 사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이「버나드 길핀」은 화형대에서 죽음대신에 고향으로 승리하며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순간을 보고 고난이고 인생의 마지막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 끝났구나라고 보여지는 문제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사실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설령 베드로와 바울처럼, 수많은 순교자들처럼 죽게 되더라도 결코 그의 인생을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나게 내버려두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보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앞길을 하나님이 아시고 내가 지금 당하는 어려움도, 고난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렵고 힘들고 고난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가장 정확하게 시간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인생 속에 개입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기어코 승리토록 하실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여러분들 불신앙 버리고, 염려 버리고, 걱정하지 마시고 믿음 붙잡고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걸어갈 때에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 길로 들어왔습니다. 그 광야 길은 이정표도 없고 어디로 가야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길입니다. 그렇잖아요. 언제 광야길이 끝날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할 지 이정표도 없는 방황할 수밖에 없는 광야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광야길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함께 할 수 있는 성소를 지으라”고 하십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 인생길이 광야 길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정확하게 우리의 걸음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간섭하고 계십니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습니까? 그 자체가 하나님의 간섭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염려, 걱정 버리시고 진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그 눈들이 열려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려움, 고난 당할 때 첫 번째 가져야 될 눈은 우리 인생 전체를 하나님이 아시고 우리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입니다.
2. 고난 가운데 성도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
두 번째입니다. 고난 속에서 성도가 가져야 될 삶의 태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고난이라는 가면을 쓰고, 고통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잘못보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게 되고 많은 축복을 놓치게 되어진다 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성경에 봐도 하나님의 축복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임하여지는 것인가? 고난, 어려움을 빼면 성경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고난, 고통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데 왜 그렇게 나타나는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축복을 참 믿음 가진 사람만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나 누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 믿음가진 사람만 누리게 하기 위해서이고요, 진짜 겸손함으로 인내하는 사람만이 누리게 하기 위해서 이고요, 정말로 기도의 비밀을 아는 사람만이 누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고난과 고통이라는 가면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내 보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고보서5: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분이시라”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나가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두 가지 부류가 나옵니다.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로 알고 하나님의 약속 붙잡고 믿음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나님이 왜 이렇게 이런 문제를 가져오느냐고 원망, 불평함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그의 책에서 인간은 누구나 불행할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을 다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행한 조건을 당하게 될 때에 4가지 인간상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1) 그 불행한 조건을 당할 때에 그런 환경들을 도피하려고 술이나 쾌락과 환락에 빠져 자신을 완전히 파괴시키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파괴시키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2) 두 손 들고 항복하고 포기하고 인생을 절망하는 그래서 결국은 무위도식에 빠지는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고
3) 독한 마음으로 싸워 나가자 이런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존중합니다. 독한 마음으로 이를 깨물고 열심히 살아나가는 사람,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은 부럽게 봅니다.
4)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그 불행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이겨나가는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불행할 조건들 한 가지 이상씩 다 있는데 그 불행을 당할 때에 나타나는 4가지 형태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형태입니까? 완전히 포기해서 무위도식에 빠져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반대로 쾌락과 타락에 빠져 자신도, 남도 파괴시키는 사람이니까? 아니면 내가 내 힘으로 열심히 뭔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그런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계획이 여러분 속에 있을 것인데 그 뜻이 무엇일까? 그래서 나를 살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명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 가는데 막상 앞에 홍해라는 바다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 대해서 원망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서 죽게 하느냐? 우리가 애굽 사람 섬기는 것 더 좋다 안하더냐? 그러면서 모세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 원망, 불평했던 사람들 그대로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똑같은 문제와 사건을 당했지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믿음의 역사를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하실 일 들을 바라보며 믿음의 역사를 고백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응답들이 출14:31에 이렇게 나옵니다. 환란이후에 실제적인 축복들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음으로 내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환란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제적인 축복이 나타났는데 그 축복이 하나님의 큰일을 보았다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었다 하고,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되는 그 축복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환란을 통과하고 나니까,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보았고,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었고, 여기에 모세를 믿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환란이후에 주실 귀중한 축복에 대한 부분들입니다. 여기에서 모세를 믿었더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이 믿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진다는 것이 축복 아닙니까?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그 말씀이 어떻게 믿어지느냐? 환란을 통과하고 나니까 그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내게 믿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그 어떤 것도 그냥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과 뜻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난과 어려움 당하면 왜 불평하고 원망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하실 일을 몰라서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방법을 몰라서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여러분은 믿음 고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이 어느 정도로 어려움을 당했는가 하면 자기가 죽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의지할 것 전혀 없고 완전히 사형에 처하는 자기의 자리인 것을 고백했는데 그것을 통해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위로를 깨달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환란 중에도 찾아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할렐루야!
환란을 맞이해 보면 우리 위해서 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다. 대속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바울은 그냥 환란이 아니라 그 환란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 고난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위로를 받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는데 진정한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그 환란가운데 인도하셨구나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려움들 환난당하고 있는 부분들 조금만 그 사실을 놓고 기도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부분 아 나를 위해 하나님이 이런 고난을 당하셨구나 그래서 그리스도로 위로를 받게 되고 그 위로를 아는 사람은 진짜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위로자가 될 수있는 것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사랑의 위로를 아는 사람만이 진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위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어디서 옵니까? 환난당함을 통해서 옵니다. 그러면 환난이 축복이지 않느냐. 그런데 바울이 어느 정도 환난가운데 빠졌는가하면, 8~10절,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아멘. 살 소망까지 완전히 끊어졋습니다. 그때 바울은 하나님이 내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기위한 것이구나, 그래서 하나님은 그 위기 가운데 우리를 건지셨고 앞으로도 건질실 것에 대한 확신들이 바울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환난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의 비밀, 이 비밀을 제대로 안다면 어려움과 환난가운데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사실에 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문제 있습니까? 하나님 무지막지한 분이 아닙니다. 고전10:13,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밖에 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시험주신 것은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감당치 못할 것은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내시고 능력을 주시고 힘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려움, 문제 염려 있다, 그렇다면 감사하십시오. 염려꺼리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십시오. 감사로 바꾸십시오.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선한 계획을 세우십니다.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이 선한계획을 붙잡고 염려 ,모든 것들을 기도제목으로 붙잡고 감사하십시오. 언제까지? 그 문제 속에 어려움 속에 편안할 때까지 감사하십시오. 빌4:6~7에 모든 것을 아무것도 염려하지말라 그랬습니다.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진짜 어려움 속에서 환난 속에서 마음이 편안할 때까지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신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내 영광의 칼이다 내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절대 기억해야 될 부분이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모든 삶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절대 망할래야 망할 수가 없는 축복된 신분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나라는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어떤 문제 앞에서도 이사실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선택하셔서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만 왔다갔다하고 그냥 응답받고 그렇게 살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세계 복음화의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과거실패, 상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세계 살릴 메시지와 간증이 됩니다. 세계복음화 언약 이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문제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 7월 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전파에 진전이 된 일
(빌1:12-21)
서론: 신앙생활은 이해해서 믿는 게 아닙니다. 믿게 될 때 이해되는 게 더 많습니다. 이성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믿음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신자로서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내게 가장 유익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신자는 우연이라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한 사람도 있었고, 투기와 분쟁으로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깨달은(18, 20절) 바울은 감옥에 매여 있었으나 자신이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전파에 진전이 된다고 고백했습니다(12절). 이처럼 성도에게 이해 안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성도에게 일어나는 고난에 대해 우리는 어떤 눈을 가져야 합니까?
1.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보시고 인도하신다.
(1) 욥 -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이 역사하심
1) 어느 날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아내와 친구들에게서도 위로를 얻지 못함
2)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은 사람처럼 보였으나 그는 이전에 누렸던 축복보다 더 많은 복을 누리게 됨(욥42:10)
(2) 요셉 - 하나님의 손길이 인생 전체를 인도함(7명의 렘넌트)
1)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힘(누구보다도 억울하고 가슴 아픈 삶)
2) 하나님이 축복을 받아 그는 인생 마지막에 전 애굽과 자기 민족을 살림
(3) 버나드 길핀(영국 교회사 인물) - 하나님은 끝까지 자녀를 지키심
(4) 그러니 불신앙과 염려를 버리고, 믿음을 잡고서 끝까지 승리하십시오.
2. 고난 속에서 성도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
(1)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십시오.
1) 축복은 자주 고난과 고통의 가면을 쓰고 나타남(약속 붙잡고 기도하며 인내하라 약5:11)
2) 시험과 어려움, 고난을 당할 때 두 부류의 사람 있음(출14:10-14)
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모세) ② 믿음이 더욱 연약해져서 넘어지는 사람(백성들)
3)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이 이루어짐(시119:71 고난 통해 주의 율례 배움)
4)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환란 가운데로 인도하심(고후1:3-4, 8-10)
(2) 시험 당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십시오.
1) 감당할 힘과 능력을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심(고전10:13)
2) 문제, 염려를 기도제목으로 바꾸고 감사로 바꾸라(빌4:6-7)
결과: 신33:29, "너는 행복자로다",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모든 일이,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선택하고 부르신 게 아닙니다.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세계복음화 할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문제는 복음전파에 진전이 되는 일입니다. 이 언약을 놓치지 마십시오.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일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1:12~21
■ 박수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날마다 우리로 하여금 기쁨을 주시고 또 찬송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오늘 이 날 최고로 누리는 그런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행복자이십니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오늘 제목을 빌립보 1장 12절에 나와 있는 성경 구절을 그대로 해서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일’,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일’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신앙의 역사를 보면 알기 위해서 믿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와 반대로 믿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 바람직한 믿음일까요?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일까요 믿기 위해서 아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 지식인 일수록,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일수록 빠지기 쉬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실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어야 믿음 생활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신앙생활 가운데서 이해가 될 때에 믿음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들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해도 아주 복잡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 하면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해서 믿게 되는 것이 아니고요, 믿게 될 때에 이해되는 것이 더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믿음을 포기한다는 것은 굉장히 교만한 사람이고 굉장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똑똑하다고 하는 지식인들일수록 “이성적으로 납득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안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이 우리가 이성적으로 다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죠. 믿게 되면 이해되어지는 부분들이 더 많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자체도 그렇잖아요. 사실 우리 인생 자체를 살펴보면 도저히 우리의 이성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문제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 성도님들의 가정에, 자녀들에, 또 개인에 당한 일들을 보고받고 또 직접 우리 성도님들 통해서 이야기를 듣게 될 때 좋은 소식만이 아니죠, 나쁜 소식들, 이런 이야기들을 듣게 될 때에 ‘진짜 어떻게 저렇게 신앙 생활하려 몸부림치는 저런 가정에 저런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저 사람과 저 가정에 무엇을 하시려고 어떻게 인도하시려고 저런 문제를 주셨을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 실제로 우리가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만날 때에 앞길이 전혀 열리지 아니하고 또 생각했던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에 그런 어려운 힘든 일들을 만나게 될 때에 ‘정말 내가 이렇게 힘들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 바르게 신앙 생활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볼 때가 종종 있잖습니까? ‘과연, 정말 내 삶이 이토록 어렵고 힘들까?’하는 생각해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늘 평안한 것만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참 힘들고 어려운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전개되어지는 상황들을 보면 전혀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지나고 보면 내게 가장 선한 걸음으로, 내게 가장 유익한 모습으로 일이 처리되어지는 그런 경우들을 보곤 합니다. 이런 것들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이야기하기를 ‘우연이다.’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이야기하죠. 당장 일이 진행되어지는 것은 전혀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내게 가장 유익한 대로 인도되어짐을 보면서 ‘아, 하나님이 개입하셨구나. 하나님이 간섭하셨고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해 주셨구나.’ 이런 고백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제와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쉽게 위로할 수 있는 말씀이 있다면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은 최고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또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보십시다.” 그렇게 인사들을 많이 나누잖아요.
로마서 8장 28절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들의 인생들을 영화롭게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려운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그 앞에서 해석할 수 없는 부분들 가운데 많은 성도들이 힘들어 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어려운 문제와 고난과 환란을 당할 때 그 문제를 보는 우리의 눈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다 있어요. 없는 사람이 없어요. 다 어려움과 문제는 다 가지고 있어요. 개인과 가정과 산업과 자녀의 문제, 경제의 문제,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런 어려운 문제들, 또 환란들 앞에서, 또 심지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오는 핍박들 앞에서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러분 잘 아는 말씀이죠. 바울이 빌립보 1장에 보면 복음 증거하는 사역 속에 로마 감옥에 갇힌바 되었어요. 그런데 로마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두 가지 부류의 반응이 나왔어요. 한 부류는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성경의 오늘 본문에 보면 투기와 분쟁함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다 했어요. 투기와 분쟁함으로.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바울을 통한 시위대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고 하나님의 귀한 축복된 계획, 생명을 구원하는 이 계획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면서 바울이 감옥에 갇히니 연민의 마음들로, 연약한 사람들이 ‘우리가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바울을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사실은 바울의 복음 증거하는 사역에 있어서 경쟁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이 사람들은 투기와 분쟁함으로, 다시 말하면 ‘야, 이때가 기회다. 찬스다. 바울이 복음 전하다 감옥에 갇혔는데 이때, 이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현장에서 전하면 우리의 이름이 드러날 것이 아닌가?’ 그래서 투기와 분쟁함으로 복음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오늘 본문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어떠한 고백을 했느냐? 18절에 나옵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착한 마음으로 하든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든지 상관없이 이것 통해서 결국은 복음이 증거되기 때문에 나는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20절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절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얼마만큼 복음의 가치를 제대로 바울이 깨달았던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정도 고백이 되어지면 사탄이 역사할 수가 없죠.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비록 겉모습은 감옥에 갇힌, 매인 바 되어지는 그런 상황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진전이 되어지는 일이다!’ 여러분, 끝난 게 아닙니까? 여기에 사단이 역사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바로 이 축복 속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여러분의 일에 되어지는 부분보다 안 되어지는 부분이 더 많을 거에요.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당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 가운데 복음 안에 들어와 있는 여러분이 그 일들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보면 기어코 하나님은 여러분 통해서 그 일들 때문에 오히려 복음이 전파되는, 귀중한 축복된 역사들을 감당케 하는 사람으로 세워나갔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그래요.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일이다. 비록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이 일을 싫어해서 감옥에 가두었지만 감옥에 매인 바 된 몸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그것조차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기어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인 복음 전파하는 그 일을 이루어나가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내용들입니다. 우리가 이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와 사건과 일들 속에 진짜 열려져야할 눈이 있다면 이 눈입니다. 아!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복음전파의 진전이 되어지는 그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구나, 그러면 문제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문제 그 속에서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고난의 어려움에 대한 부분들을 보아야 할 것인가?
1. 우리 인생 전체를 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지금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도 아시지만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완벽하고 가장 정확하게 인도해 나가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눈이 먼저 열려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동방의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욥의 이야기를 여러분이 잘 아십니다. 욥은 영적으로도 육신적으로도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도 많았습니다. 7남 3녀, 10남매를 두었고, 재산도 날마다 만찬을 베풀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소유들이 넉넉했습니다. 그런데 이 욥의 가정에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자녀들이 한꺼번에 죽게 되고, 욥의 소유물인 가축들도, 재산들도 강도가 와서 다 앗아가 버리는 어려움들이 왔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욥의 몸이 피부병으로 살이 썩어져 들어가는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이런 상황들을 세상 사람들이 봤다면 욥에게 뭐라고 했겠습니까? 아! 하나님이 욥에게서 떠난 게 분명하다, 하나님이 욥을 축복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보았을 것입니다. 사실 욥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렇게 보았습니다.
욥의 어려움 당하는 소식을 듣고 친구 세 사람이 와서 욥에게 위로 한다고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욥이 고백한 내용은 그것이 내게 전혀 위로가 안 되고 친구들의 그 말들이 나를 번뇌케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욥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내조차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진짜 어려울 때 아내가 이해해 주고, 남편이 이해해 주면 쉽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남편과 아내들이 싸우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이해해 주어야 할 남편이 이해해 주지 않고, 아내가 이해해 주지 않는 부분들 때문에 많은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욥이 더욱더 힘들었던 것은 욥의 아내가 악처 중에 악처 였는가 봅니다. 욥에게 와서 “당신 하나님 죽었다. 하나님 욕하고 죽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으니까 당신 하나님 욕하고 죽어라”고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 욥이었습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이 욥을 바라보았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욥이 멀어 졌구나 그렇게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욥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런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욥을 축복하셨는데 그 욥에 대한 축복들을 욥기서42:10절에 보면 한 줄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욥의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의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찾아왔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간섭하시는 기회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을 봅니다. 멀리 내다보지를 못합니다. 근시안적인 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만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과거를 아시고 오늘을 아시고 우리의 미래를 놓고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우리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보다도 억울하고 가슴 아픈 삶을 산 사람이 요셉입니다. 형제들에 의해서 은 20에 팔려서 노예로 가고 또 억울하게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간 나이가 언제냐? 10대, 20대입니다. 여러분 10~20대에 얼마나 많은 상처들, 마음의 상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결국 하나님께서 그 요셉을 인도하셨는데 그의 인생의 마지막은 전 세계 앞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일에 쓰임 받는 증인으로 요셉이 서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어느 정도로 요셉이 축복을 받았는가하면 요셉이 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애굽 사람들을 살리게 되었고, 자기 민족들도 살리게 되는 그 축복된 응답을 받은 사람이 요셉입니다.
한 순간을 보지 마세요. 쉽게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말을 해 버리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놓고 오늘 지금 나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각으로 렘런트 7명 전체를 한번 보십시오. 전부다 사실은 인생 전체를 인도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인생 전체를 어떻게 하나님이 인도해 나가시는가 보게 되는 되는것이 렘런트 7명입니다. 교회사에 영국의 왕인 메리(Mary) 여왕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을 핍박했던 메리여왕입니다. 그 시대에 「버나드 길핀」(Bernard Gilpin) 이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보너(Bonner) 주교에 의해서 이단으로 억울하게 고발당하고 재판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가야하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버나드 길vls」이라는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말씀이 롬8: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런던으로 가는 중에 길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넘어짐으로 다리가 부러졌어요. 그러니까 옆에 있던 조롱하는 한 사람이 “그래도 네 길이 최선의 길이냐?”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에 「버나드 길vls」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해 나가실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나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부러졌으니까 제 속도를 낼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걸어서 걸어서 런던을 향해 걸어가는데 참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하면 이 「버나드 길핀」을 죽이기 위해 사형대를 마련한 메리여왕이 그 사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이「버나드 길핀」은 화형대에서 죽음대신에 고향으로 승리하며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순간을 보고 고난이고 인생의 마지막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 끝났구나라고 보여지는 문제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사실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설령 베드로와 바울처럼, 수많은 순교자들처럼 죽게 되더라도 결코 그의 인생을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나게 내버려두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보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앞길을 하나님이 아시고 내가 지금 당하는 어려움도, 고난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렵고 힘들고 고난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가장 정확하게 시간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인생 속에 개입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기어코 승리토록 하실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여러분들 불신앙 버리고, 염려 버리고, 걱정하지 마시고 믿음 붙잡고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걸어갈 때에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 길로 들어왔습니다. 그 광야 길은 이정표도 없고 어디로 가야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길입니다. 그렇잖아요. 언제 광야길이 끝날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할 지 이정표도 없는 방황할 수밖에 없는 광야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광야길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함께 할 수 있는 성소를 지으라”고 하십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 인생길이 광야 길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정확하게 우리의 걸음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간섭하고 계십니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습니까? 그 자체가 하나님의 간섭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염려, 걱정 버리시고 진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그 눈들이 열려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려움, 고난 당할 때 첫 번째 가져야 될 눈은 우리 인생 전체를 하나님이 아시고 우리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입니다.
2. 고난 가운데 성도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
두 번째입니다. 고난 속에서 성도가 가져야 될 삶의 태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고난이라는 가면을 쓰고, 고통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잘못보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게 되고 많은 축복을 놓치게 되어진다 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성경에 봐도 하나님의 축복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임하여지는 것인가? 고난, 어려움을 빼면 성경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고난, 고통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데 왜 그렇게 나타나는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축복을 참 믿음 가진 사람만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나 누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 믿음가진 사람만 누리게 하기 위해서이고요, 진짜 겸손함으로 인내하는 사람만이 누리게 하기 위해서 이고요, 정말로 기도의 비밀을 아는 사람만이 누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고난과 고통이라는 가면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내 보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고보서5: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분이시라”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나가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두 가지 부류가 나옵니다.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로 알고 하나님의 약속 붙잡고 믿음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나님이 왜 이렇게 이런 문제를 가져오느냐고 원망, 불평함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그의 책에서 인간은 누구나 불행할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을 다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행한 조건을 당하게 될 때에 4가지 인간상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1) 그 불행한 조건을 당할 때에 그런 환경들을 도피하려고 술이나 쾌락과 환락에 빠져 자신을 완전히 파괴시키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파괴시키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2) 두 손 들고 항복하고 포기하고 인생을 절망하는 그래서 결국은 무위도식에 빠지는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고
3) 독한 마음으로 싸워 나가자 이런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존중합니다. 독한 마음으로 이를 깨물고 열심히 살아나가는 사람,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은 부럽게 봅니다.
4)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그 불행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이겨나가는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불행할 조건들 한 가지 이상씩 다 있는데 그 불행을 당할 때에 나타나는 4가지 형태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형태입니까? 완전히 포기해서 무위도식에 빠져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반대로 쾌락과 타락에 빠져 자신도, 남도 파괴시키는 사람이니까? 아니면 내가 내 힘으로 열심히 뭔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그런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계획이 여러분 속에 있을 것인데 그 뜻이 무엇일까? 그래서 나를 살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명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 가는데 막상 앞에 홍해라는 바다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 대해서 원망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서 죽게 하느냐? 우리가 애굽 사람 섬기는 것 더 좋다 안하더냐? 그러면서 모세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 원망, 불평했던 사람들 그대로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똑같은 문제와 사건을 당했지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믿음의 역사를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하실 일 들을 바라보며 믿음의 역사를 고백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응답들이 출14:31에 이렇게 나옵니다. 환란이후에 실제적인 축복들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음으로 내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환란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제적인 축복이 나타났는데 그 축복이 하나님의 큰일을 보았다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었다 하고,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되는 그 축복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환란을 통과하고 나니까,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보았고,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었고, 여기에 모세를 믿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환란이후에 주실 귀중한 축복에 대한 부분들입니다. 여기에서 모세를 믿었더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이 믿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진다는 것이 축복 아닙니까?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그 말씀이 어떻게 믿어지느냐? 환란을 통과하고 나니까 그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내게 믿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그 어떤 것도 그냥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과 뜻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난과 어려움 당하면 왜 불평하고 원망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하실 일을 몰라서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방법을 몰라서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여러분은 믿음 고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이 어느 정도로 어려움을 당했는가 하면 자기가 죽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의지할 것 전혀 없고 완전히 사형에 처하는 자기의 자리인 것을 고백했는데 그것을 통해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위로를 깨달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환란 중에도 찾아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할렐루야!
환란을 맞이해 보면 우리 위해서 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다. 대속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바울은 그냥 환란이 아니라 그 환란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 고난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위로를 받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는데 진정한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그 환란가운데 인도하셨구나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려움들 환난당하고 있는 부분들 조금만 그 사실을 놓고 기도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부분 아 나를 위해 하나님이 이런 고난을 당하셨구나 그래서 그리스도로 위로를 받게 되고 그 위로를 아는 사람은 진짜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위로자가 될 수있는 것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사랑의 위로를 아는 사람만이 진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위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어디서 옵니까? 환난당함을 통해서 옵니다. 그러면 환난이 축복이지 않느냐. 그런데 바울이 어느 정도 환난가운데 빠졌는가하면, 8~10절,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아멘. 살 소망까지 완전히 끊어졋습니다. 그때 바울은 하나님이 내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기위한 것이구나, 그래서 하나님은 그 위기 가운데 우리를 건지셨고 앞으로도 건질실 것에 대한 확신들이 바울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환난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의 비밀, 이 비밀을 제대로 안다면 어려움과 환난가운데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사실에 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문제 있습니까? 하나님 무지막지한 분이 아닙니다. 고전10:13,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밖에 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시험주신 것은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감당치 못할 것은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내시고 능력을 주시고 힘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려움, 문제 염려 있다, 그렇다면 감사하십시오. 염려꺼리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십시오. 감사로 바꾸십시오.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선한 계획을 세우십니다.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이 선한계획을 붙잡고 염려 ,모든 것들을 기도제목으로 붙잡고 감사하십시오. 언제까지? 그 문제 속에 어려움 속에 편안할 때까지 감사하십시오. 빌4:6~7에 모든 것을 아무것도 염려하지말라 그랬습니다.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진짜 어려움 속에서 환난 속에서 마음이 편안할 때까지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신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내 영광의 칼이다 내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절대 기억해야 될 부분이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모든 삶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절대 망할래야 망할 수가 없는 축복된 신분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나라는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어떤 문제 앞에서도 이사실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선택하셔서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만 왔다갔다하고 그냥 응답받고 그렇게 살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세계 복음화의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과거실패, 상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세계 살릴 메시지와 간증이 됩니다. 세계복음화 언약 이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문제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 7월 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전파에 진전이 된 일
(빌1:12-21)
서론: 신앙생활은 이해해서 믿는 게 아닙니다. 믿게 될 때 이해되는 게 더 많습니다. 이성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믿음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신자로서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내게 가장 유익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신자는 우연이라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한 사람도 있었고, 투기와 분쟁으로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깨달은(18, 20절) 바울은 감옥에 매여 있었으나 자신이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전파에 진전이 된다고 고백했습니다(12절). 이처럼 성도에게 이해 안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성도에게 일어나는 고난에 대해 우리는 어떤 눈을 가져야 합니까?
1.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보시고 인도하신다.
(1) 욥 -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이 역사하심
1) 어느 날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아내와 친구들에게서도 위로를 얻지 못함
2)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은 사람처럼 보였으나 그는 이전에 누렸던 축복보다 더 많은 복을 누리게 됨(욥42:10)
(2) 요셉 - 하나님의 손길이 인생 전체를 인도함(7명의 렘넌트)
1)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힘(누구보다도 억울하고 가슴 아픈 삶)
2) 하나님이 축복을 받아 그는 인생 마지막에 전 애굽과 자기 민족을 살림
(3) 버나드 길핀(영국 교회사 인물) - 하나님은 끝까지 자녀를 지키심
(4) 그러니 불신앙과 염려를 버리고, 믿음을 잡고서 끝까지 승리하십시오.
2. 고난 속에서 성도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
(1)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십시오.
1) 축복은 자주 고난과 고통의 가면을 쓰고 나타남(약속 붙잡고 기도하며 인내하라 약5:11)
2) 시험과 어려움, 고난을 당할 때 두 부류의 사람 있음(출14:10-14)
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모세) ② 믿음이 더욱 연약해져서 넘어지는 사람(백성들)
3)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이 이루어짐(시119:71 고난 통해 주의 율례 배움)
4)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환란 가운데로 인도하심(고후1:3-4, 8-10)
(2) 시험 당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십시오.
1) 감당할 힘과 능력을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심(고전10:13)
2) 문제, 염려를 기도제목으로 바꾸고 감사로 바꾸라(빌4:6-7)
결과: 신33:29, "너는 행복자로다",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모든 일이,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선택하고 부르신 게 아닙니다.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세계복음화 할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문제는 복음전파에 진전이 되는 일입니다. 이 언약을 놓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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