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능력
2013-11-1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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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의 능력”
(행8:4~13)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행8:4~13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축복된 자리에 세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이 한 날 예배하는 가운데 참된 감사가 회복되고 영적인 추수인 전도자로 부르신 그 축복된 의미를 깨닫고 이 한주간 내내 기도하시는 가운데 참된 축복을 회복하는 그런 축복의 한주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 예배는 우리 한국 교회에서 1904년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04년도부터 추수감사예배가 시작되었는데, 사실 11월에 시작된 것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고, 또 주실 은혜를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시간으로 맞이하게 되어서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원래 추수감사주일 날짜가 11월이 된 것은 1913년 장로교에서 모여서 의논을 했는데 미국 선교사가 입국한 날을 기준으로 해서 한국 초기에는 11월 셋째주 지나고 3일 후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주일 지나고 3일 후면 언제입니까? 수요일입니다. 그런데 가만 예배를 드리다 보니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 드리지 추수감사주일을 수요일에 드리니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 11월 셋째주로 바뀌어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11월 셋째주를 추수감사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들은 지금 추수감사예배가 추수하는 시기와 맞추어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해서 조정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교회들은 추석 때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11월 셋째주에 드리는 것은 선교사가 입국한 날을 기준으로 해서, 사실 복음이 이 땅에 증거된 그 날을 기준으로 해서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먼저 성경적인 의미를 찾아 본다면 출애굽기 2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절기 세 가지, 꼭 지켜야 할 세 가지 절기가 있었습니다. 그 세 가지 절기가 바로 무교절과 맥추절과 초실절이었습니다. 이 초실절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다른 이름으로는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바로 지금 추수감사예배로 드려지고 있는데, 실제 추수감사예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과 함께 가나안에 정착하고 나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열매를 맺게 되니까 그 열매 맺은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예배 드리면서 한 해 열매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드려졌던 것이 성경에 나오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오는 그런 해방되어지는 축복과 함께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해서 드려지는, 그게 바로 추수감사예배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지난 과거에 하나님께서 내 생애를 축복하시고 인도해 주셨던 부분에 대한 감사와 함께 또 현재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는 부분에 대한 기쁨, 또 미래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축복하실 부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추수감사예배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물론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개인과 산업에 축복하신 부분에 대한 감사거리, 그 부분에 대한 감사도 감사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앞으로 주실 하나님의 은혜, 그래서 미래에 메시야의 날을 고대하면서, 소망하면서 추수감사예배가 함께 드려졌다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 뿐만 아니라 지금 내게 주신 은혜, 또 앞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은혜를 바라보면서 감사함으로 주 앞에 나아가는 것이 추수감사예배였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추수감사는 무엇이 진정한 추수감사입니까? 여러분, 영혼 구원이 진정한 추수감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인도 받는 것, 그게 우리의 하늘 창고에 수확되어지는 그런 감사, 그래서 전도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날들 중의 한 날이 있다면 추수감사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자들을 하나님 앞에 불러내는 이 일, 이게 영혼 구원의 역사, 이게 바로 영적인 추수, 이게 진정한 감사를 회복해야 할 부분입니다. 오늘 그래서 사실 추수감사예배와 함께 세례식이 진행되었는데 작년부터 우리는 추수감사예배를 세례식과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시간은 더 많이 소요됩니다만 그러나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 오늘 세례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난 과거의 나는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 가진 자로 오늘 이 자리에 섰다는 것, 진짜 참된 추수입니다. 이게 참된 추수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참된 추수입니다. 그래서 함께 이 추수감사예배를 통해서 세례 받는 자나 오늘 함께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에 영혼의 역사들을 구원하는 진정한 추수꾼으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그런 축복의 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추수감사예배를 통해서 전혀 맞지 않는 본문 같지만 아닙니다. 빌립이라는 전도자가 최고의 추수 현장에 섰습니다. 그게 바로 사마리아 성입니다. 사단의 성으로 말미암아 절대로 무너질 수 없었던 이 사마리아 성이 복음의 능력으로 무너지게 되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이게 추수 중의 추수입니다. 사실은 여러분, 사마리아 성, 이방인을 향한 복음 선교의 역사들이 평신도 집사인 빌립을 통해서 첫문이 열려지는 사마리아 성, 이 추수 현장에 하나님은 빌립을 사용하셨는데 사실 이 사마리아 성은 어떤 현장이냐? 그 동안, 수백 년 동안 막혀 있어 복음이 증거되지 않았던 그 현장, 한 마디로 무너질래야 무너질 수 없었던 사단의 성으로 바뀌어 있던 이 사마리아 성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무너졌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갔는데 사마리아 성은 어떤 성이냐? 사실 B.C. 720년경에 앗수르가 북쪽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은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입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B.C. 722년에 이 북쪽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사마리아 성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에 있는 유대인들을 포로로 노예로 끌고 가고 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앗수르 백성을 그 사마리아 성에 심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니까, 세월이 흐르니까 자연적으로 이 사마리아 안에 있는 유대인들과 함께 앗수르 사람들이 결혼하게 되죠. 그래서 아이를 낳게 되죠. 거기에서 혼혈 아이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성은 혼혈족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성을 혼혈족이라 해서 사람 취급을 하지 아니하고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저 사마리아는 혼혈족이다 해서 순수한 정통 유대인의 그 핏줄을 잃어버렸다 해서 상종을 안 하는 도시가 바로 사마리아 성이었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성, 수가 성 여인을 만나서 물 좀 달라 할 때에 그 사마리아 여인이 무어라 했습니까? “아니,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 당시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는 전혀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완전히 무너져 있는 사단의 성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는 사단의 성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성에 빌립이라는 전도자가 그 당시에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엄청난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핍박이 일어난 내용들이 1절과 3절에 보면 나오는데 거기 보면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흩어졌다 했습니다. 3절에도 보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고 합니다. 큰 핍박이 일어났는데 옥에 넘겨지는 핍박까지 일어났습니다. 그 핍박을 통해서 흩어졌는데 여기서 흩어지는 것은 도망친 게 아니라 전도자들이 가슴 속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흩어진 것입니다. 흩어져 간 곳이 이 사마리아 성이었습니다. 거기에 빌립이라는 사람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 성은 이미 오랜 동안 막혀 있던 땅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저주와 재앙과 멸시와 천대와 무시 당하는 그 사마리아 땅. 그래서 온갖 불치병과 저주의 역사들이 가득한 땅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걷는 사람이 나으니"라고 합니다. 많은 불치병과 모든 저주의 현장이 이 사마리아 성이었고 여기에 사실 빌립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둘러싸인 장벽, 무너지지 않았던 그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성안에 복음이 증거되지 않으니까 온갖 영적인 문제들이 일어나고 그런 가운데 낙후되었습니다. 낙후된 지역이나 나라들마다 미신과 우상과 점술이 깊이 드리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을도 낙후된 곳을 보면 우상, 미신이 심각합니다.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의 사마리아 성도 얼마나 낙후되어 있느냐. 그 성안에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어느 정도 힘이 있었느냐? 9절에 말씀합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여 자칭 큰 자라 하니"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했고 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영적인 문제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증거되지 않는 사마리아 성에 영적인 문제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는데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10절에 보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라고 합니다. 마술사 시몬을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부터 다 따르고 모든 사람이 그 말을 청종하는 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이 완전히 오해되어 있는 현장입니다. 마술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큰 기적을 이루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다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10절 마지막에 말씀합니다.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완전히 복음이 오해되어 있는 현장입니다. 마술하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았습니다. 복음이 오해되어 있는 이런 현장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을 가진 이 빌립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장을 살펴보면 우리 개인과 가정과 지역마다 무너트릴 수 없는 사탄의 성이 있습니다. 이게 오늘 본문에 나온 사마리아 성 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나라마다 집집맘다 도저히 무너트릴 수 없는 사탄의 성들이 꽉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었고 거기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음을 알고 그리로 흩어져 들어갔습니다. 사도행전 1:8에 보면 "오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으르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고 이 빌립이 성령인도 받아서 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짜 관심이 있는 현장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우리의 갈급한 현장, 사탄의 성처럼 막혀있는 현장, 마치 오늘 마술사 시몬에 의해서 온 동네가 그 말을 듣고 따라가는, 그렇게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그 현장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치 않은 현장이 없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사실 26절에 보면 이 빌립을 또 광야로 보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복음을 주셨는데 그 복음이 필요치 않은 현장이 한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갈급한 현장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이 하나님의 관심을 모르고 신앙생활하면 유대인이나 바리새인과 동일합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많은 일들을 하는데 전혀 하나님의 관심과 상관 없었습니다. 이 복음과 전도가 하나님의 관심인데 이 관심과 상관없이 많은 일들을 한 유대인과 바리새인들. 오늘날 복음과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진짜 관심을 놓쳐버리면 우리도 또한 유대인과 바리새인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갈급한 현장, 복음이 필요한 그 현장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9:35-38에 보면 주님께서 탄식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현장에 목자 없는 양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탄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서 4:12에 보면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12만이 있는데 네가 어찌 그들을 아끼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멸망 받는 현장에 주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복음을 가리고 둘러싸는 장벽이 있는 그 현장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관심을 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갔습니다. 그 성에 들어가서 빌립이 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들이 좋은 일과 프로그램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빌립은 그 성에 들어가서 다른 것 한 게 아닙니다. 5절을 보십시오. 우리 교회가 붙잡아야 될 부분입니다. 진짜로 훗날에 기억될 교회로서 저와 여러분이 쓰임 받는 축복된 종들로 세워지기 위해서 끝까지 붙잡아야 할 내용입니다. 5절을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12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그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이 빌립이 한 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이야기했습니다. 교회들이 좋은 일들 많이 합니다. 많은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인도해 나갑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진짜 '그리스도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인생의 문제 가운데 어려움 당하는 자를 건져내는 그 일을 위해서 우리 교회와 여러분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인생이 안 보이는 12가지 문제 가운데 빠져서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멸망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모든 문제의 시작이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아닙니까? 모든 인생들의 모든 삶이 발전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그 속에서 여러가지 영적인 문제, 우상의 문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엄청나게 성공하는 것 같지만 갈수록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창세기 3장, 6장, 11장. 안보이기 때문에 안믿으려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사건입니다. 그것 때문에 이것이 문화가 되어서 거절치 못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하고 성공하기를 원합니다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개인에게 말합니다. 악한 사탄이 개개인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다른 것을 쫓을 수밖에 없는데 출애굽기 20:4-5에 있는 말씀처럼 우상숭배 할수밖에 없습니다. 안하면 망하니까 안하면 어려움 당하니까 우상숭배 할수밖에 업습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큰 영적인 문제가 오는데, 마음과 육신과 정신에 모든 문제를 가져옵니다. 희망을 가지고 노력합니다만 배경자체가 지옥의 배경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영적인 문제를 후대에게 물려주면서 고스란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그 인생의 문제, 어느 누구도 예외 될 수 없어요. 이 사실이 진짜 보인다면 ‘왜 그리스도를 빌립이 말했는가?’ 이유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 이 부분들이 안보이니까 교회가 “함께 가자. 같이 하자.” 좋은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같은 좋은 것이다.” 좋은 소리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이니까, 진짜 이 현장의 문제가 안보이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종교는 다 좋은 것이다. 우리가 함께 가자.’ 얼마나 좋은 말들입니까? 그런데 진짜 현장의 문제는 그리스도만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빌립이 그 사마리아성에 들어가서 진짜 이 성에 현장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봤기 때문에 빌립은 다른 좋은 말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선포했다고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이야기 했다고 했습니다. 흑암세력 이기는 그의 나라 그 비밀을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만 말하는 축복된 사람으로 부르신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교회를 왜 부르셨는가? 그리스도만 말하는 교회로 부르신 줄 믿습니다. 이 일이 사실은 우리가 살 길입니다. 이 일이 진짜 인생의 문제를 제대로 안다면, 사는 게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 인생에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모든 문제해결자로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이 그리스도는 갈라디아서 3:13에 보면 우리의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서 끝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할렐루야.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저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다 끝내 속량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로마서 8:1-2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정도가 아닙니다. 빌립보서 2:9-10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했습니다. 저주를 다 속량하셨고,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축복하셨고, 완전히 해방시키시고, 그리스도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그리스도 이름은 모든 만물이 무릎 꿇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그리스도 그 이름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이름만 말하도록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것. 오늘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가서 그리스도만 말하니까 거기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6절 보세요. “우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그리스도가 간증되어지니까 당연히 역사가 일어나죠. “표적을 보고” 했습니다. 그런데 표적을 봤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표적을 보고 따라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표적과 응답을 보고 따라가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에 나중에는 무너지게 됩니다. 표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표적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응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 증거가 어디 있느냐? 6절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표적을 따라간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따라갔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역이 여러분의 모든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만 따르도록 하는 사역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그리스도만 증거되면 7절에 보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미래가 없고 소망이 없는 사마리아성, 저주와 불치병이 가득한 현장, 와전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그 현장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8절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오늘 세례 받은 분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축복 주시려고 세례 주셨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이 축복을 찾아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의 행복을 빼앗아 가고 평화를 빼앗아 가고 다툼을 일으키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질병을 일으키는 그 배후에 있는 사단의 역사, 흑암의 세력들이 꺾여졌다는 말이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러분, 지금 현장이 사마리아성과 똑같습니다. 소망이 없고, 미래가 없고, 온갖 저주가 가득차있는 현장들입니다. 도저히 과학으로도 지식으로도 의술로도 풀 수 없는 현장이에요. 여러분,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도 절대로 풀 수 없는 현장이 지금 우리의 현장입니다. 사마리아 도성과 똑같아요. 그런데 여기에, 사마리아성과 같은 이 현장에 하나님의 시대적인 요청 그리스도만 말하는 교회로 우리 교회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시대적인 요청 그리스도만 말하는 성도들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이것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왜 세례 받게 하셨는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생명의 축복을 누리고 이제부터 그 그리스도만 말하는 증인들로 세우시기 위해서. ”내 모든 삶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고백이 세례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만 어떤 현장이든지 증거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사단의 성을 무너뜨린 이 복음의 능력. 빌립이 증거한 그리스도 이 복음의 능력들을 성찬식을 통해서 확인하시고 그와 더불어 사마리아성과 같은 이 현장을 살리는 영적인 추수자로 전도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1월 1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의 능력
(행8:4-13)
서론: 추수감사주일예배(한국교회에서 1904년도부터 시작, 미국 선교사의 입국일 기준)는 한해를 마무리하며 주신 은혜를 계수하고 주실 은혜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예배입니다(출23장의 초실절(수장절)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과 함께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신 구속의 은혜와, 그 동안의 축복 가운데 맺은 열매를 가지고 감사함으로 드린 것입니다. 진정한 추수 감사는 바로 영혼구원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통해 한 사람 한사람이 하나님께 인도되어 하늘창고에 수확되어지는 감사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추수감사절은 전도자의 날 중에 최고의 날입니다. 그렇다면 영혼구원의 영적추수를 통해 진정한 감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전도자가 있는 모든 곳은 최고의 추수현장입니다.
(1) 전도자 빌립집사는 최고의 추수현장인 사마리아성에 들어갔습니다.
1) 오래전부터 영적인 문제(미신,점술,우상)가 지속되어 온 낙후된 지역이었음 (9절)
2) 천대를 받고 불치병과 모든 저주가 가득한 땅으로써, 복음이 오해되어 있는 현장이었음 (10절)
(2) 사마리아성은 하나님의 가장 관심 있는 현장이었습니다(사탄에 완전히 사로잡혀 갈급한 현장).
1) 복음과 그리스도가 필요치 않는 현장은 단 한 곳도 없음(지금 우리 현장의 사탄의 성들을 점검하라!!)
2) 사탄배경으로 절대 무너지지 않던 사마리아성이 복음의 능력으로 무너지고, 이방 선교의 첫 문이 열림
2. 전도자가 추수현장에서 할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1) 전도자 빌립집사가 사마리아성에서 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끝까지 붙잡아야 할 언약).
1)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5절)
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12절)
(2) 그리스도만 전함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12가지)로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살려내라!!
1)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하는 시대에 살아감(창3:5, 창6:4, 창11:1-10)
2) 이것이 문화가 되어 점술, 미신, 우상으로 파고듦(행13:1-12, 행16:16-18, 행19:8-21)
3) 결국 불신자 6가지 상태 가운데 멸망함
a. 개인이 사탄에게 붙잡혀(요8:44) 우상숭배를 할 수 밖에 없으며(출20:1-5) 마음과 정신에 문제가 옴(마11:28)
b. 육신마저도 병들고(행8:4-8) 지옥배경 가운데(눅16:19-31) 영적인 문제를 후대에게까지 물려줌(마27:25)
(3) 오직 그리스도만 말하기 위해 부름받은 축복을 누려라!! (갈2:20, 3:23, 고후5:17, 롬8:1-2, 빌2:9-10)
3. 우리의 모든 사역과 삶의 중심은 그리스도만 따르도록 만들어라!!
(1)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한 말을 따르더라(6절)
(2) 그 결과, 인생의 행복과 미래와 소망이 없는 사마리아성에(7절) 큰 기쁨이 있더라(8절)
결론: 지금 우리의 현장은 사마리아성과 같습니다. 과학, 지식, 의술로도 풀 수 없고 돈, 명예, 권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시대적인 요청인 그리스도만 말하는 교회로 하나교회와 성도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한 주간 사마리아 성과 같은 현장을 살리는 영적인 추수자, 전도자로 부른 하나님의 부르심을 앞에서 감사함으로 승리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복음의 능력”
(행8:4~13)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행8:4~13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축복된 자리에 세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이 한 날 예배하는 가운데 참된 감사가 회복되고 영적인 추수인 전도자로 부르신 그 축복된 의미를 깨닫고 이 한주간 내내 기도하시는 가운데 참된 축복을 회복하는 그런 축복의 한주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 예배는 우리 한국 교회에서 1904년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04년도부터 추수감사예배가 시작되었는데, 사실 11월에 시작된 것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고, 또 주실 은혜를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시간으로 맞이하게 되어서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원래 추수감사주일 날짜가 11월이 된 것은 1913년 장로교에서 모여서 의논을 했는데 미국 선교사가 입국한 날을 기준으로 해서 한국 초기에는 11월 셋째주 지나고 3일 후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주일 지나고 3일 후면 언제입니까? 수요일입니다. 그런데 가만 예배를 드리다 보니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 드리지 추수감사주일을 수요일에 드리니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 11월 셋째주로 바뀌어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11월 셋째주를 추수감사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들은 지금 추수감사예배가 추수하는 시기와 맞추어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해서 조정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교회들은 추석 때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11월 셋째주에 드리는 것은 선교사가 입국한 날을 기준으로 해서, 사실 복음이 이 땅에 증거된 그 날을 기준으로 해서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먼저 성경적인 의미를 찾아 본다면 출애굽기 2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절기 세 가지, 꼭 지켜야 할 세 가지 절기가 있었습니다. 그 세 가지 절기가 바로 무교절과 맥추절과 초실절이었습니다. 이 초실절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다른 이름으로는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바로 지금 추수감사예배로 드려지고 있는데, 실제 추수감사예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과 함께 가나안에 정착하고 나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열매를 맺게 되니까 그 열매 맺은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예배 드리면서 한 해 열매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드려졌던 것이 성경에 나오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오는 그런 해방되어지는 축복과 함께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해서 드려지는, 그게 바로 추수감사예배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지난 과거에 하나님께서 내 생애를 축복하시고 인도해 주셨던 부분에 대한 감사와 함께 또 현재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는 부분에 대한 기쁨, 또 미래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축복하실 부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추수감사예배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물론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개인과 산업에 축복하신 부분에 대한 감사거리, 그 부분에 대한 감사도 감사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앞으로 주실 하나님의 은혜, 그래서 미래에 메시야의 날을 고대하면서, 소망하면서 추수감사예배가 함께 드려졌다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 뿐만 아니라 지금 내게 주신 은혜, 또 앞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은혜를 바라보면서 감사함으로 주 앞에 나아가는 것이 추수감사예배였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추수감사는 무엇이 진정한 추수감사입니까? 여러분, 영혼 구원이 진정한 추수감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인도 받는 것, 그게 우리의 하늘 창고에 수확되어지는 그런 감사, 그래서 전도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날들 중의 한 날이 있다면 추수감사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자들을 하나님 앞에 불러내는 이 일, 이게 영혼 구원의 역사, 이게 바로 영적인 추수, 이게 진정한 감사를 회복해야 할 부분입니다. 오늘 그래서 사실 추수감사예배와 함께 세례식이 진행되었는데 작년부터 우리는 추수감사예배를 세례식과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시간은 더 많이 소요됩니다만 그러나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 오늘 세례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난 과거의 나는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 가진 자로 오늘 이 자리에 섰다는 것, 진짜 참된 추수입니다. 이게 참된 추수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참된 추수입니다. 그래서 함께 이 추수감사예배를 통해서 세례 받는 자나 오늘 함께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에 영혼의 역사들을 구원하는 진정한 추수꾼으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그런 축복의 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추수감사예배를 통해서 전혀 맞지 않는 본문 같지만 아닙니다. 빌립이라는 전도자가 최고의 추수 현장에 섰습니다. 그게 바로 사마리아 성입니다. 사단의 성으로 말미암아 절대로 무너질 수 없었던 이 사마리아 성이 복음의 능력으로 무너지게 되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이게 추수 중의 추수입니다. 사실은 여러분, 사마리아 성, 이방인을 향한 복음 선교의 역사들이 평신도 집사인 빌립을 통해서 첫문이 열려지는 사마리아 성, 이 추수 현장에 하나님은 빌립을 사용하셨는데 사실 이 사마리아 성은 어떤 현장이냐? 그 동안, 수백 년 동안 막혀 있어 복음이 증거되지 않았던 그 현장, 한 마디로 무너질래야 무너질 수 없었던 사단의 성으로 바뀌어 있던 이 사마리아 성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무너졌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갔는데 사마리아 성은 어떤 성이냐? 사실 B.C. 720년경에 앗수르가 북쪽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은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입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B.C. 722년에 이 북쪽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사마리아 성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에 있는 유대인들을 포로로 노예로 끌고 가고 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앗수르 백성을 그 사마리아 성에 심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니까, 세월이 흐르니까 자연적으로 이 사마리아 안에 있는 유대인들과 함께 앗수르 사람들이 결혼하게 되죠. 그래서 아이를 낳게 되죠. 거기에서 혼혈 아이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성은 혼혈족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성을 혼혈족이라 해서 사람 취급을 하지 아니하고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저 사마리아는 혼혈족이다 해서 순수한 정통 유대인의 그 핏줄을 잃어버렸다 해서 상종을 안 하는 도시가 바로 사마리아 성이었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성, 수가 성 여인을 만나서 물 좀 달라 할 때에 그 사마리아 여인이 무어라 했습니까? “아니,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 당시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는 전혀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완전히 무너져 있는 사단의 성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는 사단의 성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성에 빌립이라는 전도자가 그 당시에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엄청난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핍박이 일어난 내용들이 1절과 3절에 보면 나오는데 거기 보면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흩어졌다 했습니다. 3절에도 보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고 합니다. 큰 핍박이 일어났는데 옥에 넘겨지는 핍박까지 일어났습니다. 그 핍박을 통해서 흩어졌는데 여기서 흩어지는 것은 도망친 게 아니라 전도자들이 가슴 속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흩어진 것입니다. 흩어져 간 곳이 이 사마리아 성이었습니다. 거기에 빌립이라는 사람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 성은 이미 오랜 동안 막혀 있던 땅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저주와 재앙과 멸시와 천대와 무시 당하는 그 사마리아 땅. 그래서 온갖 불치병과 저주의 역사들이 가득한 땅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걷는 사람이 나으니"라고 합니다. 많은 불치병과 모든 저주의 현장이 이 사마리아 성이었고 여기에 사실 빌립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둘러싸인 장벽, 무너지지 않았던 그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성안에 복음이 증거되지 않으니까 온갖 영적인 문제들이 일어나고 그런 가운데 낙후되었습니다. 낙후된 지역이나 나라들마다 미신과 우상과 점술이 깊이 드리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을도 낙후된 곳을 보면 우상, 미신이 심각합니다.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의 사마리아 성도 얼마나 낙후되어 있느냐. 그 성안에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어느 정도 힘이 있었느냐? 9절에 말씀합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여 자칭 큰 자라 하니"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했고 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영적인 문제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증거되지 않는 사마리아 성에 영적인 문제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는데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10절에 보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라고 합니다. 마술사 시몬을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부터 다 따르고 모든 사람이 그 말을 청종하는 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이 완전히 오해되어 있는 현장입니다. 마술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큰 기적을 이루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다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10절 마지막에 말씀합니다.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완전히 복음이 오해되어 있는 현장입니다. 마술하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았습니다. 복음이 오해되어 있는 이런 현장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을 가진 이 빌립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장을 살펴보면 우리 개인과 가정과 지역마다 무너트릴 수 없는 사탄의 성이 있습니다. 이게 오늘 본문에 나온 사마리아 성 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나라마다 집집맘다 도저히 무너트릴 수 없는 사탄의 성들이 꽉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었고 거기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음을 알고 그리로 흩어져 들어갔습니다. 사도행전 1:8에 보면 "오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으르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고 이 빌립이 성령인도 받아서 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짜 관심이 있는 현장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우리의 갈급한 현장, 사탄의 성처럼 막혀있는 현장, 마치 오늘 마술사 시몬에 의해서 온 동네가 그 말을 듣고 따라가는, 그렇게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그 현장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치 않은 현장이 없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사실 26절에 보면 이 빌립을 또 광야로 보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복음을 주셨는데 그 복음이 필요치 않은 현장이 한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갈급한 현장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이 하나님의 관심을 모르고 신앙생활하면 유대인이나 바리새인과 동일합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많은 일들을 하는데 전혀 하나님의 관심과 상관 없었습니다. 이 복음과 전도가 하나님의 관심인데 이 관심과 상관없이 많은 일들을 한 유대인과 바리새인들. 오늘날 복음과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진짜 관심을 놓쳐버리면 우리도 또한 유대인과 바리새인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갈급한 현장, 복음이 필요한 그 현장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9:35-38에 보면 주님께서 탄식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현장에 목자 없는 양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탄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서 4:12에 보면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12만이 있는데 네가 어찌 그들을 아끼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멸망 받는 현장에 주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복음을 가리고 둘러싸는 장벽이 있는 그 현장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관심을 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갔습니다. 그 성에 들어가서 빌립이 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들이 좋은 일과 프로그램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빌립은 그 성에 들어가서 다른 것 한 게 아닙니다. 5절을 보십시오. 우리 교회가 붙잡아야 될 부분입니다. 진짜로 훗날에 기억될 교회로서 저와 여러분이 쓰임 받는 축복된 종들로 세워지기 위해서 끝까지 붙잡아야 할 내용입니다. 5절을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12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그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이 빌립이 한 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이야기했습니다. 교회들이 좋은 일들 많이 합니다. 많은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인도해 나갑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진짜 '그리스도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인생의 문제 가운데 어려움 당하는 자를 건져내는 그 일을 위해서 우리 교회와 여러분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인생이 안 보이는 12가지 문제 가운데 빠져서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멸망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모든 문제의 시작이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아닙니까? 모든 인생들의 모든 삶이 발전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그 속에서 여러가지 영적인 문제, 우상의 문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엄청나게 성공하는 것 같지만 갈수록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창세기 3장, 6장, 11장. 안보이기 때문에 안믿으려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사건입니다. 그것 때문에 이것이 문화가 되어서 거절치 못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하고 성공하기를 원합니다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개인에게 말합니다. 악한 사탄이 개개인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다른 것을 쫓을 수밖에 없는데 출애굽기 20:4-5에 있는 말씀처럼 우상숭배 할수밖에 없습니다. 안하면 망하니까 안하면 어려움 당하니까 우상숭배 할수밖에 업습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큰 영적인 문제가 오는데, 마음과 육신과 정신에 모든 문제를 가져옵니다. 희망을 가지고 노력합니다만 배경자체가 지옥의 배경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영적인 문제를 후대에게 물려주면서 고스란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그 인생의 문제, 어느 누구도 예외 될 수 없어요. 이 사실이 진짜 보인다면 ‘왜 그리스도를 빌립이 말했는가?’ 이유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 이 부분들이 안보이니까 교회가 “함께 가자. 같이 하자.” 좋은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같은 좋은 것이다.” 좋은 소리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이니까, 진짜 이 현장의 문제가 안보이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종교는 다 좋은 것이다. 우리가 함께 가자.’ 얼마나 좋은 말들입니까? 그런데 진짜 현장의 문제는 그리스도만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빌립이 그 사마리아성에 들어가서 진짜 이 성에 현장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봤기 때문에 빌립은 다른 좋은 말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선포했다고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이야기 했다고 했습니다. 흑암세력 이기는 그의 나라 그 비밀을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만 말하는 축복된 사람으로 부르신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교회를 왜 부르셨는가? 그리스도만 말하는 교회로 부르신 줄 믿습니다. 이 일이 사실은 우리가 살 길입니다. 이 일이 진짜 인생의 문제를 제대로 안다면, 사는 게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 인생에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모든 문제해결자로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이 그리스도는 갈라디아서 3:13에 보면 우리의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서 끝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할렐루야.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저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다 끝내 속량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로마서 8:1-2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정도가 아닙니다. 빌립보서 2:9-10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했습니다. 저주를 다 속량하셨고,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축복하셨고, 완전히 해방시키시고, 그리스도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그리스도 이름은 모든 만물이 무릎 꿇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그리스도 그 이름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이름만 말하도록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것. 오늘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가서 그리스도만 말하니까 거기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6절 보세요. “우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그리스도가 간증되어지니까 당연히 역사가 일어나죠. “표적을 보고” 했습니다. 그런데 표적을 봤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표적을 보고 따라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표적과 응답을 보고 따라가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에 나중에는 무너지게 됩니다. 표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표적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응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 증거가 어디 있느냐? 6절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표적을 따라간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따라갔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역이 여러분의 모든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만 따르도록 하는 사역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그리스도만 증거되면 7절에 보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미래가 없고 소망이 없는 사마리아성, 저주와 불치병이 가득한 현장, 와전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그 현장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8절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오늘 세례 받은 분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축복 주시려고 세례 주셨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이 축복을 찾아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의 행복을 빼앗아 가고 평화를 빼앗아 가고 다툼을 일으키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질병을 일으키는 그 배후에 있는 사단의 역사, 흑암의 세력들이 꺾여졌다는 말이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러분, 지금 현장이 사마리아성과 똑같습니다. 소망이 없고, 미래가 없고, 온갖 저주가 가득차있는 현장들입니다. 도저히 과학으로도 지식으로도 의술로도 풀 수 없는 현장이에요. 여러분,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도 절대로 풀 수 없는 현장이 지금 우리의 현장입니다. 사마리아 도성과 똑같아요. 그런데 여기에, 사마리아성과 같은 이 현장에 하나님의 시대적인 요청 그리스도만 말하는 교회로 우리 교회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시대적인 요청 그리스도만 말하는 성도들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이것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왜 세례 받게 하셨는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생명의 축복을 누리고 이제부터 그 그리스도만 말하는 증인들로 세우시기 위해서. ”내 모든 삶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고백이 세례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만 어떤 현장이든지 증거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사단의 성을 무너뜨린 이 복음의 능력. 빌립이 증거한 그리스도 이 복음의 능력들을 성찬식을 통해서 확인하시고 그와 더불어 사마리아성과 같은 이 현장을 살리는 영적인 추수자로 전도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1월 1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의 능력
(행8:4-13)
서론: 추수감사주일예배(한국교회에서 1904년도부터 시작, 미국 선교사의 입국일 기준)는 한해를 마무리하며 주신 은혜를 계수하고 주실 은혜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예배입니다(출23장의 초실절(수장절)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과 함께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신 구속의 은혜와, 그 동안의 축복 가운데 맺은 열매를 가지고 감사함으로 드린 것입니다. 진정한 추수 감사는 바로 영혼구원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통해 한 사람 한사람이 하나님께 인도되어 하늘창고에 수확되어지는 감사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추수감사절은 전도자의 날 중에 최고의 날입니다. 그렇다면 영혼구원의 영적추수를 통해 진정한 감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전도자가 있는 모든 곳은 최고의 추수현장입니다.
(1) 전도자 빌립집사는 최고의 추수현장인 사마리아성에 들어갔습니다.
1) 오래전부터 영적인 문제(미신,점술,우상)가 지속되어 온 낙후된 지역이었음 (9절)
2) 천대를 받고 불치병과 모든 저주가 가득한 땅으로써, 복음이 오해되어 있는 현장이었음 (10절)
(2) 사마리아성은 하나님의 가장 관심 있는 현장이었습니다(사탄에 완전히 사로잡혀 갈급한 현장).
1) 복음과 그리스도가 필요치 않는 현장은 단 한 곳도 없음(지금 우리 현장의 사탄의 성들을 점검하라!!)
2) 사탄배경으로 절대 무너지지 않던 사마리아성이 복음의 능력으로 무너지고, 이방 선교의 첫 문이 열림
2. 전도자가 추수현장에서 할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1) 전도자 빌립집사가 사마리아성에서 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끝까지 붙잡아야 할 언약).
1)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5절)
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12절)
(2) 그리스도만 전함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12가지)로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살려내라!!
1)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하는 시대에 살아감(창3:5, 창6:4, 창11:1-10)
2) 이것이 문화가 되어 점술, 미신, 우상으로 파고듦(행13:1-12, 행16:16-18, 행19:8-21)
3) 결국 불신자 6가지 상태 가운데 멸망함
a. 개인이 사탄에게 붙잡혀(요8:44) 우상숭배를 할 수 밖에 없으며(출20:1-5) 마음과 정신에 문제가 옴(마11:28)
b. 육신마저도 병들고(행8:4-8) 지옥배경 가운데(눅16:19-31) 영적인 문제를 후대에게까지 물려줌(마27:25)
(3) 오직 그리스도만 말하기 위해 부름받은 축복을 누려라!! (갈2:20, 3:23, 고후5:17, 롬8:1-2, 빌2:9-10)
3. 우리의 모든 사역과 삶의 중심은 그리스도만 따르도록 만들어라!!
(1)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한 말을 따르더라(6절)
(2) 그 결과, 인생의 행복과 미래와 소망이 없는 사마리아성에(7절) 큰 기쁨이 있더라(8절)
결론: 지금 우리의 현장은 사마리아성과 같습니다. 과학, 지식, 의술로도 풀 수 없고 돈, 명예, 권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시대적인 요청인 그리스도만 말하는 교회로 하나교회와 성도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한 주간 사마리아 성과 같은 현장을 살리는 영적인 추수자, 전도자로 부른 하나님의 부르심을 앞에서 감사함으로 승리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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