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형제들이 어떠한가
2014-06-29 00:00:00
관리자
조회수   31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6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형제들이 어떠한가”
(행15:36-41)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 행15:36~41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도 막을 수 없는 복음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체험되고 누려지는 최고의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보면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신앙 생활하다 그만둔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교회 안에 교회 열심히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상처 받은 부분들 때문에 교회를 멀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에게 있어 응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특히 교회 안에서, 또는 인간 관계를 통해서 오는 응답, 그 인간 관계를 통해서 오는 갈등, 이런 인간 관계 속에서 오는 문제와 갈등을 통해서 많은 응답들을 실제로 놓치고 있는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보면 전도자 바울의 걸음 속에 2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는 그 걸음의 시작부터 사람 때문에 오는 갈등이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나 신앙 생활하지 않는 사람이나 이 땅에 살아 있다는 그 존재로 사람들은 누구나 갈등을 다 갖고 있습니다. 공동묘지에 가면 갈등이 없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들은 다 갈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갈등을 축복으로 바꾸느냐, 아니면 그 갈등들 때문에 우리가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느냐, 그 부분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붙잡고 다시 생각하면서 나아가야 할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갈등에 부딪혀서 무너지고 또 교회들도 갈등들 때문에 그 갈등이 심화되면 결국 교회에 싸움이 일어나고 교회가 완전히 사단의 놀이터가 되어지는, 그런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복음 안에 있다면 어떤 갈등이라도 여러분을 축복으로 만드는 것이지, 여러분을 실패시키지 못한다는 이 결론을 먼저 여러분이 붙잡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찬양대 찬양 불렀던 것처럼 아픔도 갈등도 복음 안에 있다면 상관 없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데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완전한 것이고 복음은 충분한 것이고 복음은 모든 것이 되기 때문에 복음 안에서 갈등하고 복음 안에서 뭔가 모르는 다툼이 있다면, 괜찮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복음, 그 안에 있는 자들을 기어코 승리토록 하신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바울이 복음에 대해 얼마만큼의 열정이 있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1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에 얼마 있지 않아 하나님께서 바울의 마음에 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이 복음을 다시 증거할 수 있도록 불을 지폈는데, 그래서 바울이 바나바와 이야기해서 지난 날 우리가 복음 전함으로 복음 받고 세워졌던 그 제자들을 다시 확립시키러 나가자, 그래서 오늘 이 바울과 바울의 팀이 제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걸음으로 인도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3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이게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복음을 전한, 복음을 받은 제자들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다시 만나서 그들을 복음으로 확립시키고 복음으로 제자세우는 그 사역을 감당해야겠다는 그 뜨거운 마음이 전도자 바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재촉해서 다시 우리가 나가서 이제까지 우리를 통해서 복음 받은 자들이 어떠한 상황 속에 있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복음으로 확립하자고 했습니다. “형제들이 어떠한가.” 여러분, 현장에 전도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무엇보다도 현장이 어떤 영적인 상태에 놓여있는가를 안다면 이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전도 현장에 임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바울은 복음을 전한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에게 귀신도 내어쫓고, 또 능력도 행하고 또 병도 고쳐주고 그런 가운데 세워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는가 갈급한 마음으로 그들을 다시 찾아서 복음으로 확립시키고자 하는, 그런 전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그런데 이렇게 2차 전도여행을 나서는 바울의 걸음을 하나님께서 결국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이어서 나오는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울의 전도의 걸음을 막으시고, 아시아로 행하고자 하는 바울의 전도의 걸음을 막으시고 마게도냐로, 유럽을 향해서 복음 전도를 시작케 하시는 하나님의 걸음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자로 나가는 바울의 이 걸음 속에 첫 번째 오는 문제가 있었다면 인간 관계를 통해서 오는 갈등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마가라는 사람을 전도 현장에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사람 때문에 오는 갈등들, 이로 인한 싸움이 일어난 것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는데, 이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입니다. 그래서 마가를 데리고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나자 하는 것이고, 바울은 1차 전도여행시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지 못하지만 이 마가가 함께 전도 역사에 동참하다가 중도에 하차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마가를 다시 데려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 두 사람의 의견 차이로 말미암아 39절에 보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하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좋은 것만 우리에게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다는 것, 아마 성경에서 좋은 것만 기록한다면 이 부분은 빼 버려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실어 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전도자 바울입니다. 또 바나바도 엄청난, 훌륭한 인품과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 훌륭한 인품과 인격을 가진 사람이냐? 특히 바나바를 보면 뭔가 연약한 사람들,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특별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 아시다시피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자기 모든 전재산을 교회 앞에 내어놓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것을 통해서 함께 나누어 가짐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에 핍절한 자가, 어려움을 당한 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자기 모든 재산을 팔아서 교회 앞에 내어놓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전도자 바울조차도 품었던 사람이 누구냐? 바나바입니다. 이런 넓은 마음과 훌륭한 인격을 가진 바나바가 바울과 함께 서로 심히 다투어 갈라섰다고 했습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갈라섰다,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은 완전한 인생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생은 없기 때문에 사람보고 실망하고 사람보고 갈등하고 사람보고 시험에 빠지면 그게 바보입니다. 그게 실수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서로 심히 다투어 갈라섰다는 본문을 통해서 완전하지 않은 인간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님들, 진짜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여러분 인생에 참된, 완전하시고 충분하시고 모든 것되시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서로 심히 다투어 갈라섰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 안에 의견들이 서로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교회 싸움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줄 아십니까? 나와 같아야 된다 라는. 왜 내가 가진 생각을 당신은 가지지 않는냐는 그래서 자기의 주장만 계속해 나가기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자기의 주장, 자기의 고집만 계속해서 내세우기 때문에 교회 안에 많은 싸움이 일어나고 그 싸움을 악한 사탄이 이용해서 결국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이런 사실들을 한국교회를 통해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서로 심히 다투어 갈라섰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있지만은 교회 안에 의견들이 다 다를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에 제대로 인도받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의견들은 다를 수 있다라는. 그런데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교회가 복음의 것이라면, 그리스도 하나님의 것이라면 절대 양보하면 안 됩니다. 영적인 싸움을 생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문화 때문에 오는, 또 개인의 지식과 경험들, 이런 것들 때문에 오는 차이라면 의견이라면 그 부분들을 서로가 수용할 수 있어야 되고, 배려할 수 있어야 되고, 양보할 수 있어야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교회가 싸움을 하게 되고 많은 갈등들 가운데 교회가 어려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2차 전도여행의 바울의 걸음 속에 이 갈등을 이겨내는 귀중한 답을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해 붙잡아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전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전도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들을 넘어 설 수 있는 것인가? 거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돌아가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여러분은 전도자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현장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역사하지만 그러나 악한 사탄으로 말미암아 많은 갈등들 또한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갈등들 앞에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그 갈등들을 갱신의 기회로 삼고 축복의 발판으로 삼고 승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답을 가지고 나가야 되는데 먼저 복음에 대한 사실적인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기도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됩니다. 세 번째로 전도에 대한 바른 체험이 있어야 됩니다. 복음과 기도와 전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들어왔습니까? 우리가 늘 말씀 들으면 복음, 기도, 전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바른 복음을 체험하게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지금 복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잘 되는 것만 복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음 가지고 있으니 잘 되어야 한다. 물론 맞겠지요. 그러면 잘 안 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또 우리가 당연히 기도응답 받아야 되지요. 불신자들도 기도응답 받는데 당연히 기도응답 받아야 되지요. 그러면 기도응답 받지 못한다면 기도 안할 겁니까? 그것도 아니잖아요. 여러분 무조건 잘되는 것이 복음이고, 기도응답 꼭 받아야 된다, 그게 기도다. 그건 아닌 것입니다. 또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전도 열매가 나와야 되지요. 그리고 열매가 없다고 해서 전도 안할 겁니까? 실제로 우리가 저나 여러분이나 현장에서 전도열매 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도 안할 겁니까?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그냥 복음, 기도, 전도를 들은 것이 아니라, 또 오늘도 그냥 복음, 기도, 전도를 듣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복음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되고, 기도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되고, 전도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여러분의 배후에 역사를 하시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먼저 우리의 모든 전도현장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을 없애고 전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그 일을 위해서 체험해야 될 가장 먼저가 있다면 복음에 대한 체험입니다.

1. 복음체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선물은 하나님이 우리의 노력과 애씀과 열심과 상관없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 구원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3절 마지막에 보면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 시인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임한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말미암아 되어진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능력 있다 없다 그 이전에 능력을 행한다 안한다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은혜로 주신 이 구원의 역사들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 나타나고 안 나타나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다음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구원을 은혜로 주셨다 라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을 하게 되지요. 그때 예수님이 그 고백하는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 여기에서 혈육이 아니다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 인간의 노력과, 우리의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사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이 축복된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능력도 아닙니다. 어떤 일을 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 다음 이예요. 먼저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은혜로 주어졌다는 사실. 왜 은혜로 주어졌느냐? 지난번에 우리가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전적인 타락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그 어떤 조건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그런 근거가 없어요.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15: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우리가 능력을 행하는 것도 제대로 복음을 알고 능력을 행해야지요. 복음도 모르는데 능력을 행한다는 것, 그것은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했습니다. 에베소서2:8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된 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진짜 구원에 대한,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주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감사와 감격들이 먼저 우리 속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가졌던 바울은 고린도전서15:10절에 보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4: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신 그 은혜의 역사들은 아무도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역사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세우신 것입니다. 로마서8:31~39절에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저와 여러분을 끊을 수 없다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의 역사는 취소를 할 수가 없어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어요. 죽음조차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가 없어요. 왜냐?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우리를 일방적으로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 어떤 죽음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오늘 이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까? 여기에 대한 감사와 감격. 회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에 대한 체험이라는 것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은혜로 되어진 구원의 역사 속에 봐야 합니다. 뭔가를 봐야 합니다. 복음의 유일성을 봐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이 땅의 모든 문제는 복음 아니고는 안되는 구나! 이 사실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 우리가 단순히 은혜로 받은 구원의 역사를 감사할 것이 아니라 뭔가를 봐야 하는데 아! 우리가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구나 이 사실을 봐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유일성을 체험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복음 속에 주어진 축복은 모든 것입니다. 축복의 유일성을 봐야 하는데 저와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주신 축복은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어요. 여러분 구약성경, 신약성경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복음알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 어떤 것도 멸망시킬 수 없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구약성경이고 신약성경입니다. 구약에 애굽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구원받은 한사람을 멸망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는 동안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은 모세오경은 구원받은 한사람, 한 국가를 멸망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역사서가 있습니다.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의 역사서가 있습니다. 역사서는 무엇을 말합니까? 많은 강대국이 일어났습니다마는 아무리 크고 강한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망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이예요. 그 주인공이 오셨는데 신약에 그리스도가 오셨고, 그 그리스도 언약 붙잡은 자들이 승리했다는 그 증거로 서신서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어디까지 영원히 하늘보좌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계시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복음 안에 있는 유일한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체험.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 체험이 있게 될 때에 우리에게 전도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인간관계를 통한 갈등들, 뛰어 넘을 수가 있는 것이고, 오히려 그 갈등들이 갱신의 기회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먼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함께 복음의 유일성과 축복의 유일성 속으로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도 체험
그 다음에 두 번째로 기도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꼭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 된다 그 말이 아닙니다. 물론 응답 받아야 되겠지요. 불신자들도 응답 받는데, 아니 3단체는 이상한 귀신을 들리게 해서, 접신해서 세상을 장악해 버렸는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응답 받아야 되겠지요. 그렇다고 응답 못 받는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응답받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기도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이 나름대로 기도해서 응답 받는데 그들은 기도하면 하는 만큼 어려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점점,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도를 합니다마는 영적으로 점점 문제들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속으로 빠져들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기독교인들, 진짜 응답받아야 될 그래서 현장을 정복해야 될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가 안 되고 있다라는 것, 기도를 못하고 있어요. 교회에서 좀 이상한 사람들을 보면 나름대로 기도가 됩니다. 그런데 거의 정상적인 사람은 기도가 안 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가 안 되고 있고, 못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때문에 그래요. 다윗은 성공했습니다. 목동으로 있을 때도 성공했고, 소년으로 청년으로 있을 때도 성공했고, 왕으로 노년에도 성공했습니다. 그 성공의 비밀이 있었다면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환경 상관없이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5편3절에 보면 다윗이 아침에 기도했던 사실을 보여주고 있고요, 17편3절에 보면 밤에, 저녁에 기도했던 사실을 보게 되고요. 늘 항상 낮에도 평상시 기도했던 사람인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시편23편1절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침에, 저녁에, 그리고 생활 속에, 삶속에, 낮에 이것이 다윗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기도가 안 된다. 기도를 못하고 있다 라는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른 기도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바른 생각들이 기도응답의 시작입니다. 바른 응답을 위해서는 올바른 생각들이 기도의 시작이 되어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1절에 보면 의사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편지를 써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부분들을 내가 데오빌로에게 전해야 되겠다는 올바른 생각을 가진 것이죠. 이게 바로 바른기도응답 받는 시작입니다. 생각에 대한 부분, 올바른 생각. 의사 누가로서 하나님의 일어난 역사들을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데오빌로 총독에게 내가 이 편지를 써서 전달해야 겠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당연히 가져야 될 바른 생각이죠. 이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도행전의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어요. 참된 바른 기도의 시작이 뭐냐? 올바른 생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도가 안되고 있는 이유 중의 한가지가 또 뭐냐하면, 구원 받았는데 나름대로 지난날 경험했던 부분들이 각인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각인된 것을 못 버려가지고 기도가 안되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제자들을 부르셔서 40일 동안 집중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제자들의 각인된 부분들을 바꾼 것입니다. 우리 안에 기도응답 받을 수 없는 잘못 각인된 우리도 모르게 세상의 모든 것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그게 우리안에 각인되어 있어요. 거짓것으로, 틀린 것으로 각인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기도도 안되고 있고 기도하다가 말다가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이게 바꾸어져야 합니다. 각인된 것.
그 다음에 우리의 체질들 있잖아요. 사도행전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진짜 성령충만함을 받게 될 때 우리의 체질들이 바꾸어지게 되어 있어요. 바른 기도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올바른 생각이 되어야 되고 또 우리의 각인들이 바뀌어져야 되는 것이고 우리의 체질들이 바꾸어 져야 되요. 이렇게 될 때 실제적인 기도가 되어지는데 사도행전 2장 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이들이 약속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마가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로 봤느냐? “이 사람들이 새 술에 취한 것이 아니냐?” 실제적인 기도가 되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전도의 문과 함께 모든 문들이 열려지는 사건들이 일어났어요. 이렇게 실제적인 기도가 되어지니까 혼자 있을 때에도 기도가 되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 1절에 보면 “제 구시 기도시간에” 혼자 있을 때에도 기도가 계속 지속되어지는 겁니다. 이게 바로 바른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올바른 복음을 체험하고 있다면 거기서 나오는 기도의 색깔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복음을 어떻게 알고 있냐에 따라서 기도의 색깔이 나오는데 중요한 것은 혼자서 기도할 수 있다면 다 끝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 렘넌트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여러분의 학교 현장에 또 우리 친구들의 현장속에서 많은 문화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어요. 그 현장에서 우리가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혼자서 기도할 수 있는 그 비밀이 없이는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산업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사탄이 흑암경제를 가지고 산업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런 현장에 우리 산업현장에서 조용히 혼자서 기도할 수 없다면, 산업현장에 승리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올바른 복음을 알고 있고 그 복음을 누리는 올바른 기도를 통해서 혼자서 내가 기도할 수 있다면, 어떤 현장에 있던지 간에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혼자 있을 때 기도가 되어지면 그때부터 문제와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아! 하나님이 내게 축복의 기회로 주시는 것이구나! 혼자 기도의 비밀을 누리지 못하면 문제 당하고 어려움 오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아니 하나님 왜 내가 예수 믿는데 이런 문제가 내게 있습니까? 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나아가지만, 진짜 혼자서 기도의 비밀, 이 비밀을 누리고 있으면 문제, 사건 생기면 아! 하나님께서 내게 갱신하라고 주시는 기회구나! 복음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주시는 기회구나! 내 자신을 갱신 시키게 되어 있어요. 모든 문제와 사건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응답 오는 것에 교만하지 않습니다. 들뜨지 않습니다. 왜냐? 그 응답 후에 다른 더 큰 응답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응답 받고 나서 그 응답 이후에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요. 그러나 진짜 혼자서 실제적인 기도의 비밀을 누리는 사람은 응답 통해서 교만하지 않고 또 다시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봄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에베소 지역에 일어난 응답, 여러분, 말이 에베소 지역에 일어난 응답이죠.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우상숭배하는 자들이 우상 숭배하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그 정리한 것이 은 오만이나 되었다고 했잖아요.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주께 나아왔습니다. 흑암의 역사가 떠나가게 되고 에베소 지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응답이 일어났어요. 그렇다면, 우리 같으면 기뻐서 교만할 것인데 바울은 그 응답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응답을 바라보며 나아갔어요. 사도행전 19장 21절에 보면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응답이 와도 응답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됩니다. 혼자서 기도하면 이 비밀을 누리게 되면... 그리고 기도응답이 없다, 무응답이다면, 그건 더 큰 응답이고요, 또 다른 쪽으로 응답하시는 이 사실을 보면서 아! 하나님은 내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최선으로 응답을 하시는구나! 믿음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올바른 기도에 대한 체험, 기도가 개인화 되어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기도가 개인화 되지 않으면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은혜는 받을지 모르지만, 현장에 들어가면 현장에 지게 됩니다. 그 생활을 반복하실 겁니까? 정말 우리가 기도가 개인화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주일날 은혜 받은 말씀들이 현장에서 한 주간 정복하는, 승리하는 말씀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말씀을 가지고 한주간 모든 현장에서 일어나는 그 일들과 사건들을 그 말씀의 눈으로 보면서 현장에 일어나는 문제에 속지 아니하고 그 문제를 오히려 갱신의 기회로, 발판으로 삼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이 혼자서 기도하는 기도의 개인화가 되어질때에, 우리의 현장에 일어나는 모든 갈등들을 뛰어 넘어서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축복된 응답을 누릴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3. 전도체험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전도에 대한 체험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면, 무조건 나가서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 데리고 와야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먼저 전도를 이해해야 되는데, 전도는 사실,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데서부터 전도가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에 보면 70인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현장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가지고 나와서 예수님 앞에 보고했습니다. “예수, 당신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더이다” 하고 보고를 하게 되죠. 예수님이 그 보고를 들으시고 “나는 이미 하늘에서 사탄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말씀하시며, 누가복음 10장 20절에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무슨 말입니까? 귀신 쫓겨나가고 능력 나타나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너희의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된 그것으로 기뻐하라. 아무리 능력을 행해도 내가 구원의 확신이 없는데 뭐합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는데 전도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까? 불신앙이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전도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먼저 전도 이전에 구원에 대한 확신들이 먼저 이루어져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죠.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나가서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기 위함이라. 그렇습니다. 전도는 먼저 내가 임마누엘을 누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축복을 누리는 임마누엘, 그게 바로 전도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가지고 그 전도의 역사와 함께 이 땅의 모든 전도자와 이 땅의 모든 역사를 움직여 간다라는 사실을 전도자는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 인생의 모든 답으로 주신 것이에요. 우리 가정의 모든 답으로 주신 것이에요. 우리의 산업 현장에 모든 답으로 주신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 바르게 알면 우상 숭배 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 그리스도로 충분하니까요. 그리스도는 사탄의 머리를 깨트린 왕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재앙의 문제를 해결한 제사장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신 참 선지자이십니다. 왕, 제사장, 선지자 이 세 가지 직분을 합쳐서 그리스도라 이야기 합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제대로 알면, 우상숭배 끝입니다. 왜냐, 그리스도로 충분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상 숭배 속에서 습관적으로 어디에 빠져 있느냐? 점술, 뭔가 알아야 되고 미래를 알아야 되고 미신에 빠져있어요. 그런데 진짜 그리스도를 알면,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갈 길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알지 못해서 창세기 3, 6, 11장에 묶여 있기 때문에, 무속과 점술과 우상 사도행전 13, 16, 19장에 묶여 있기 때문에, 개인이 불신자 6가지 상태 멸망 가운데 상태에 묶여 있기 때문에 그들은 미래를 알아야 되고 그래서 점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분이기 매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미래를 알게 되어지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다른 모든 종교는 점술이 있지만, 기독교만은 점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안타깝게도 그리스도가 완전하신 분이신 것을 알지 못하니까 기독교인들조차도 점술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라는 사실.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세상 이길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은 세상 기준으로 살아왔는데 그리스도는 세상 이길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가지셨다고 말씀했어요. 그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가진 그 그리스도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늘의 권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나중에 죽어서 천국 가는 것도 가는 것이지만, 지금 현장에서 우리의 배경이 천국 배경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아가는 모든 걸음 속에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천군 천사를 동원하셔서 모든 걸음걸음마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들을 여시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하늘의 권세에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가 배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배경 가진 저와 여러분의 모든 걸음 속에 하늘 보좌의 문들을 하나님께서 여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천군 천사를 동원하셔서 하나님이 축복의 문들을 열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권세에요.
땅의 권세는 무엇입니까? 땅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과 사탄의 권세를 꺾는 그 권세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권세를 그리스도께서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요한복음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 언제? 에베소서 1:3-5에 보면 "창세전에"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셨습니다. 언제? 로마서 16:25-27에 보면 "영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9:30에 "다 이루었다." 끝났습니다. 그러면서 뭐라 했습니까? 누가복음 10:19에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다 이루신 주님께서 우리에게"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 말씀했습니다. 마가복음 3:13-15에 보면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나가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로 누리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요한복음 1:4,9에 보면 생명이요 빛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참된 생명과 빛이 나타나게 됩니다. 거기에 어두움은 물러가게 됩니다. 어두움으로 인한 모든 절망과 모든 슬픔과 모든 죄악의 역사들은 물러가게 됩니다. 생명으로, 빛으로 인도받게 됩니다. 그 그리스도 그 이름가지고 계속해서 기도하게 되면, 골로새서 1:27에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다" 했습니다. 어떤 절망의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소망이 생기는데 그냥 소망이 아니라 영광의 소망이라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6:24에 "너희가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우리 안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참된 기쁨이 충만케 되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을 맛본 전도자 바울의 고백입니다. 빌립보서 4:4에 "너희는 기뻐하라 또한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했어요.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바울의 고백이죠. 그러니까 감옥 안에 있는 상황인데 감옥밖에 있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너희가 기뻐하라 또한 기뻐하라. 빌립보서 4:10에 내가 기뻐한다 말씀하면서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씀하시면서 4:13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붙잡고 기도하는 자에게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된 위로와 기쁨이 넘쳐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4:7-8에 오늘 묵상하면서 읽었던 말씀인데요. 거기에 보면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포도주가 풍성할 때 보다 더하니이다." 곡식과 새포도주가 풍성한 것 기쁜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8절에 보면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하리니 나를 안전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십니다." 지금 쫓겨 다니는 도망자로 살고 있고 죽음의 위협과 어려운 환경들이 처해있는 속에서도 평안히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리니. 왜냐, 내 안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내 마음에 두신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있기 때문이라 말씀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이 누려야 될 축복. 하나님이 주신 위로와 기쁨. 당연한 것을 여러분이 누리시고 이번 토요일 행복나눔축제입니다. 여러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까지 여러분이 전도대상자를 놓고 기도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특별히 하나님의 참된 위로와 하나님의 기쁨이 필요한 이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귀중한 기회가 되어지심으로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이 체험되어지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6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형제들이 어떠한가
(행15:36-41)


서론: 현장에는 신앙생활 하다가 그만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통적인 이유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그런 경우(인간관계)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제자들을 다시 확립시키기 위해(36절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오는 첫 번째 오는 문제(마가를 데려가는 문제), 즉 인간관계의 갈등(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이었습니다. 이 땅에는 완전한 인생이 없기에 오직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교회 안의 싸움은 다른 사람도 나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주로 일어나기에 개인의 문화, 지식, 경험들로 오는 차이의 의견이라면 서로가 수용, 배려, 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복음의 것,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것이라면 절대 양보하지 말고 생을 걸고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도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을 이겨내는 중요한 답은 무엇일까요?
1. 말씀 체험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구원입니다.
1) 이것은 우리의 노력, 능력, 열심과 상관없이 은혜로 주신 것임(고전12:3, 마16:17)
2) 일방적인 은혜로 택하신 것이기에(요15:16, 엡2:8)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회복되어야 함(고전15:10)
3)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하며(빌4:13) 죽음조차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음(롬8:31-39)
(2) 은혜로 받은 구원 가운데 복음의 유일성을 보아야 합니다 (복음 아니면 안된다는 체험)
(3) 축복의 유일성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아무리 크고 강한 강대국일지라도 멸망 못시킴)
2. 기도 체험
(1) 많은 종교단체들과 달리 기독교인들은 거의 기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적상태 때문)
(2) 우리는 빨리 바른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1) 올바른 생각이 기도의 시작(행1:1) - 의사 누가: 데오빌로 총독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전달해야겠다
2) 하나님 나라를 누림으로 기도할 수 없는 잘못 각인된 것을 치유(행1:3)
3)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의 체질들이 바뀜(행1:8)
4) 이때부터 실제적인 기도를 함으로 모든 전도의 문이 열림(행2:1)
5) 혼자 있을 때도 기도가 계속 되어짐(행3:1) - 혼자서 기도할 수 있다면 끝난 것
(3) 문제와 사건을 보는 눈이 달라지며(축복의 기회), 응답이 와도 들뜨지 않습니다(행19:21 더 큰 문).
3. 전도 체험
(1) 전도는 구원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시작되며(눅10:20), 먼저 임마누엘을 누리는 것입니다(창39:2).
1) 하나님께서 전도의 역사와 함께 이 땅의 모든 역사를 움직여간다는 것을 체험해야함(마24:14)
2) 하나님께서 전도자에게 모든 생명을 맡기시는 것을 체험해야함(행27:24)
(2) 바른 전도체험 가운데, 현장의 많은 갈등들을 축복과 갱신의 기회로 바꿔라!!

결론: 우리에게 전도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복음, 기도, 전도에 대한 체험(개인화)으로 전도현장에서 오는 많은 갈등들을 넘어설 수 있는 답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복음 안에서라면 다툼과 갈등은 응답과 축복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마가: 마가복음을 기록, 바울이 동역자라 함(몬1:24), 내게 유익을 주는 마가를 데려오길 부탁(딤후4:11)] 복음 안에서 영원한 싸움, 영원한 다툼은 없습니다. 지금은 아니라할지라도 복음의 역사 속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한사람 한사람을 세우실 것입니다. 한주간 완전하고 충분하며 모든 것인 복음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현장을 향한 전도자의 마음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인 구원을 통하여 복음과 축복의 유일성을 보게 하옵소서. 바른 기도를 시작함으로 문제와 사건, 축복과 응답가운데 더 큰 계획을 생각하게 하옵소서. 구원의 감사와 임마누엘 가운데 정체성에 맞는 전도를 체험함으로 현장의 많은 갈등들을 축복과 갱신의 기회로 바꾸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469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단6:16-28 2025-01-12
1468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단5:17-31 2025-01-05
1467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갈4:4-7 2024-12-31
1466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단4:28-37 2024-12-29
1465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눅2:8-14 2024-12-22
1464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단3:8-18 2024-12-15
1463 손대지 아니한 돌 단2:25-35 2024-12-08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