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하나님은 하신다
2015-06-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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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은 하신다”
(롬7:14~8:4)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롬7:14~8:4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의 손이 그 일을 마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역사,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 축복의 역사를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확인하고 누리는 최고의 축복의 자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분들을 현장에서 만나 보면 신앙 생활 잘 하고 계시겠지 하는 분들도 남에게 말 못할 문제와 갈등 속에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제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아, 그렇구나, 많은 분들이 응답받고 인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에 대다수의 많은 분들이 응답 받으려고 몸부림칩니다만 잘 안 되고 어렵구나, 신앙 생활 자체가 어렵구나, 이런 부분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모습들을 살펴보게 됩니다. 여러분, 갈등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은 다 갈등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갈등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 갈등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현실적인 여러 가지 갈등들이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들, 가정이 평안하고 자녀들이 잘 되면 좋은데 또 그렇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가정의 문제들, 또 육신의 질고들 때문에, 건강의 문제들 때문에 갈등하는 경우도 있고, 또 의식주에 대한 문제, 다시 말하면 제일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경제 문제 아닙니까? 경제에 대한 부분들 가운데 갈등하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와 반면에 또 신앙 생활 속에서 갈등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십일조하는 문제나, 또 주일성수하는 문제나, 또 갓 교회 나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들, 세상에서 하던 주초 문제, 이 부분을 정리하는 문제들, 이런 부분들이 사실은 신앙 생활을 시작했는데 내가 정리해야 할 것인가, 정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잘 정리가 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갈등하는 이런 모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을 내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면서 안 되니까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빠지느냐 하면 이중적인 생활, 삼중적인 생활로 빠져듭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갈등들을 내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데 그게 내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그것을 가지고 종교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침으로 말미암아 해결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 어떤 갈등을 갖고 있든지간에, 특히 오늘 또 이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들 한 주간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들 가운데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 어떤 문제를 가져왔든지 간에, 어떤 갈등을 가져왔든지 간에 그것을 주님께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도 보면 바울이 자기 신앙 생활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오늘 내용에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로마서를 우리가 같이 살펴보고 있는데 로마서를 신학자들, 성경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성경 가운데 가장 깊고 가장 뜻을 잘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 로마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깊은 말씀, 또 깊긴 깊은데 그 뜻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깨달을 수 없는 부분들이 로마서에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특히 로마서 16장 가운데 7장, 오늘 읽은 7장은 그 가운데 더 어려운 부분이라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쇠고기 갈비살로 비유를 한다면 이 로마서 7장은 갈비살에 붙어 있는 질긴 힘줄로 비유를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 주석가들이 이야기하기를 그냥 단순히 이해할 수 없을 뿐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깊고도 오묘한 것이고 그런데 가장 정확하게 복음의 비밀을 가장 잘 말씀하고 있는 것이 로마서인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 1절~12절까지는 우리의 소속이 어디냐, 법 아래 있느냐 은혜 아래 있느냐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도 원래 소속은 법 아래 있는 소속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소속이 되었다, 그래서 은혜 아래 있는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로마서 7장 전반에 나오는 부분들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남자와 여자, 결혼하는 부분에 비유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넘어가서 오늘 로마서 7장에 전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으라. 로마서 6장은 죄, 죄로 인한 죄의식 가운데서 자유를 누리라는 것이고 로마서 7장은 율법 가운데서 자유함을 누리라는 것이고 로마서 8장은 사망과 죽음에서 자유함을 얻으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로마서를 통해서 복음을 가지고 누려야 할 부분이 어떤 부분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게 죄에 매이게 되고 자유함을 누리기는 커녕 죄에 매여 죄의식 가운데 빠져들게 되고 또 율법에 매인 바 되고 사망과 죽음에 매인 바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 가운데 오늘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갈등하고 있는 부분들을 오늘 본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을 살펴보면 고민하고 갈등했던 부분이 여러 곳에서 나오는데 먼저 오늘 본문은 율법에 대한 고민들, 그래서 24절에 보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기 안에 있는 율법에 대한 부분에 대한 갈등들을 이야기하고 있고, 또 바울은 자기의 육신의 문제 가운데 갈등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육신의 질병 때문에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하며 나아갔던 그 갈등하는 부분들이 나옵니다. 또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나온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인간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들, 그에 대한 답을 붙잡은 것이고 또 육신의 질고 가운데서 갈등하다가 그에 대한 답을 붙잡은 것입니다.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이구나, 아, 하나님의 능력이 이것 때문에 내게 머물게 되는 것이구나, 답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율법 가운데 갈등하다가 바로 답을 붙잡았습니다. 갈등하는 것이 오래 가지 아니하고 갈등이 고민으로 연결되어서 그 고민 속에 빠지지 아니하고 바로 답을 붙잡았는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렇게 말씀하면서 바로 25절에 이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바로 복음의 역사를 선택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예한 여러분, 어떤 갈등들을 가지고 왔습니까? 그 갈등들을 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으로 붙잡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갈등 그 자체가 기도응답이고, 갈등 그 자체를 기도할 제목으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특히 오늘 이 시간에 짧은 시간입니다만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안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 갈등들, 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서 일어서 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자의 갈등
그러면 첫 번째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갈등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갈등.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큰 일들을 감당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갈등이 없었겠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한 사람들도 하나같이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연약함을 볼 수 있는 것인데, 바로 많은 갈등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그 당시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의 갈멜산 전투에서 영적으로 싸움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거기서 엘리야의 당당한 모습, 담대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치 사자와 같이, 불을 뿜어내는 것같이, 그렇게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시대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싸움에서, 850:1 아닙니까, 완전 엘리야 선지자가 승리하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승리했단 소식을 듣고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내가 이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 이렇게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열왕기하 19장에 보면 그 말을 듣고, 내가 이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 그 말을 듣고 엘리야는, 그 당당했던, 담대했던 엘리야 선지자는 그 길로 호렙산으로 도망가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뭘 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이제 나는 할 일을 다 했으니 나를 죽여 주시옵소서, 엘리야의 연약한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사실. 아니,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싸움에서 이겨놓고 그 여자, 한 여자의 말, 물론 얼마나 힘 있겠습니까, 힘이 있었겠죠,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말을 듣고 호렙산으로 피해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나를 죽여 주옵소서, 절망에 빠져 있는 그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다시 힘을 주시면서 새 일을 맡기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엘리야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또 교회사에도 보면 종교개혁을 이룬 마틴 루터, 여러분, 수도사에 불과한 마틴 루터 한 사람이 그 당시에 교황을 대적해서, 막강한 천주교, 가톨릭 천주교를 대항해서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바위에 계란치기나 마찬가지인 그런 힘 있는 가톨릭 앞에 한 사람의 수도사, 힘없는 수도사가 이거는 성경이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종교개혁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종교개혁을 시작하고 진행하는 가운데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무력감에 빠지고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루터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루터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루터가 물었습니다. 아니, 우리 식구 중에 누가 죽었습니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루터의 아내가 무어라 했습니까? 하나님이 죽었습니다. 아니, 무슨 그런 불경한 소리를 합니까 하면서 막 꾸짖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루터의 아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그 하나님, 또 불의한 자, 악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진멸하시는데 그 하나님을 믿는 당신이 낙심 가운데, 절망 가운데 있는 모습을 보니까 하나님은 죽은 것 아닙니까? 그 말을 듣고 루터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어서 종교 개혁의 깃발을 다시 쳐들고 돌아갔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조차도 낙심하고 절망 가운데, 갈등 가운데 있었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전도자 사도 바울, 사실은 이 사도 바울이 자기 안에 있는 많은 갈등들을 오늘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히 예상 밖의 고백들을 하고 있는데 7장 1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에 대한, 갈등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행하지 않고 자꾸 미워하는 것만 행하게 된다는 것, 자기 마음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18절에도 보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그러면서 22절~23절에 바울의 탄식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자기 안에, 자기 속에서 싸움을 싸우는 이런 모습들이 나오고 있는데 22절~23절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롬7:22~23“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자기도 어쩔 수 없이 죄의 법아래 끌려가는 모습을 바르게 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부분들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삶 속에서도 이런 갈등들이 반드시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갈등이 있다라는 것은 싸움이 있기 때문에 갈등이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두 부류의 싸움이 있어요. 요즘 메르스로 전국이 난리입니다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부분에 세균들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을 통해서 힘을 얻잖아요. 힘을 얻는 것은 우리 안에 저항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세균과 상관없이 얻게 되는 것이지요.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잘못 먹으면 우리가 배탈을 맞게 되고요.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됩니다. 심지어 안 좋으면 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모든 부분에 대장균 등 세균들이 다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 안에 그것을 저항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우리에게 힘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환자들을 투병한다고 하잖아요. 이기느냐 지느냐입니다. 싸움입니다. 싸움.. 지면 결국은 그것은 죽는다고 하고 거기에서 이기면 병이 낫는다고 하는 데 이것이 싸움입니다. 영적으로도 우리 안에 두 부류의 싸움이 일어나는 데 그 싸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싸움이 일어나느냐하면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육신의 법, 죄와 사망의 법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래서 싸움할 필요도 없고, 갈등할 필요도 없어요. 왜냐하면 겉과 속이 같기 때문에...바로 생명의 법, 죄와 사망의 법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갈등할 필요가 없어요. 안 믿는 사람들이 내 기도가 안 된다고 고민하는 사람을 봤습니까? 그 사람들은 육신의 법을 따라가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말씀이 잘 안 들려지고 말씀에 순종이 잘 안되어진다고 갈등 안하잖아요. 그들은 사망의 법, 죄의 법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갈등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전도 현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사실 우리는 그대로 믿어진다는 것이 은혜이지요. 어떻게 저렇게 안 믿으려고 애쓸까? 안 믿으려고 몸부림칠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것만 알고 있고, 이상하게 받아 들이는 그것이 뭔 줄 아십니까? 사망의 법, 죄의 법, 육신의 법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이 듣는 이야기가 그것 아닙니까?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어 가지고...안 만들면 되지. 또 노아 홍수 때에 사람의 마음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했잖아요. 하나님이 다 아시면서 왜 홍수를 내려서 사람들을 멸망 시키느냐 그것은 악한 하나님이 아니냐고 이상하게 그런 쪽으로만 돌아가요. 사망의 법, 죄의 법, 육신의 법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단순히 사망과 죄, 육신의 법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영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탄의 역사입니다. 결국은 이 땅에는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냐 사탄이냐, 성령이냐 악령이냐 어디에 인도를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육신의 법, 죄, 사망의 법에 인도를 받으며 그 배후에 사탄의 역사 속에 붙잡혀 결국은 악한 사탄의 종노릇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는 갈등과 여러 가지 어려움들, 영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갈등들이 있어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것은 불신자들이 갖고 있지 않은 다른 생명의 법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불신자들과 다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겨진 생명의 법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로마서8:2절에 보면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순간에 불신자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생명의 법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이 잘 안될 때에 갈등하고요,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사람들이 뭔가 운동을 하고 싶고, 등산을 하고 싶고, 낚시는 가고 싶고, 그러니까 뭔가 그냥 예배 안 드리고 가면 마음이 불편하고 찝찝하니까 1부라도 드리고 가야 되겠다 하면서 그나마 위안을 받잖아요. 등산을 가면서도 뭔가 찜찜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생명의 법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등산하고, 낚시하면서도 뭔가 찜찜합니다. 그러다가 혹이나 그냥 주일을 제쳐버리고 등산을 갔는데 마침 사고를 당했다면 우리의 생각이 어디로 돌아갑니까? 아! 우리가 주일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다...그것이 그냥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고 그 안에 생명의 법이 있기 때문에 뭔가 찜찜하고 그렇게 돌아가는 겁니다. 로마서8: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 했고요, 요한복음14:16~17절에 보면 “우리 안에 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우리와 함께 영원히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2:10~12절에 보면 “우리에게 세상의 영을 거두어 가시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주셨는데 그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통한다”고 말씀했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생명의 법, 다른 법이 들어와 있어요. 그러니까 기도가 안 되면 뭔가 갈등이 되어지고, 말씀에 순종이 안 되어지면 거기에 대한 갈등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것 없는데도 뭔가 당당하다면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또 여러분 특별히 젊은 렘런트들이 나는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모르겠다고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어떤 때는 구원 받은 것 같고, 어떤 때는 구원 받지 못한 것 같고...여러분 그런 갈등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법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그렇지 않으면 절대 그런 생각조차 없어요. 육신의 법, 죄의 법에 인도를 받고, 사망의 법에 인도를 받으면 거기에 대한 생각도 없다니까요. 그런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명의 법이 내 속에 있기 때문에 때에 따라 어떨 때는 내가 구원 받은 것 같고, 어떨 때는 구원 받지 못한 것 같고...거기에 대한 갈등들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우리도 원치 않는 일을 하잖아요. 그러면 처음에는 믿는 사람들은 이러면 안 되는데....이러면 안 되는데...이런 마음을 가지고 안돼 안돼...이러다가 돼요..돼요...돼요...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두 싸움이 있어요. 그 생명의 배후에는 바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는 것이지요. 두 싸움이 있는데 바로 악령과 성령의 싸움입니다. 그리스도와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누구의 지배를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생명의 법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법의 인도를 받고 나가야 그 속에서 모든 평안함이 누려지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예수를 믿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고 갈등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없었던 갈등들이 다른 갈등들이 생기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새생명 새생활 제 7과에 보면 ‘새로운 갈등에 도전하라’는 제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에 애굽에서 노예생활 했습니다. 그러면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랐을 때 빠져나왔어요. 그러면 빠져 나왔다면 애굽에 있는 그 고통과 고난을 당할 필요가 있나요? 없나요?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430년 노예생활에서 빠져 나왔다면 애굽의 노예살이 할 때 당하던 그 고통을 고난으로 받을 필요가 없어요. 빠져 나왔기 때문에....그런데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가는 걸음 속에 다른 갈등들이 생기는데 그 갈등들은 우리를 망하게 하고 실패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의 그릇들을 만들고 우리를 축복을 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문제였어요. 지난 주간에 우리가 살펴보았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러면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첫 번째 만난 것이 아말렉과의 싸움이예요. 그 아말렉과의 싸움은 애굽의 종으로 있으면 싸울 필요도 없는 싸움이예요. 그런데 거기에서 빠져 나왔기 때문에 나오는 싸움이예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저주에서 해방 받았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이 심겨진 사람으로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 속에서 다 다른 갈등들이 있는데 그 갈등들은 우리의 축복을 위한 것이고, 우리의 그릇들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은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는데 그 가나안 땅에는 7족속, 31왕이 도사리고 있어요.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광야 길을 그냥 가면 안 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문제와 사건들을 통해서 그 영적인 힘들을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회복하게 하시고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섰을 때에 7족속, 31왕을 한 자리에서 멸하는 그 엄청난 축복의 역사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 그렇다면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모든 문제와 사건, 갈등거리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이고, 축복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는 것...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입니다. 지금 어떤 문제와 어떤 갈등들 속에 있습니까? 그 갈등들은 여러분을 실패시키지 못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 갈등들을 통해서 새로운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의 축복 받을 수 있는, 갱신할 수 있는 그런 축복의 기회로 삼게 되고, 응답 받을 수 있는 또 그 갈등들 통해서 복음을 제대로 알고 아! 문제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 구나 하고 사람을, 현장을 이해할 수 있는 축복의 문제들로 여러분에게 있을 줄로 믿습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두 싸움이 있어요. 날마다 날마다 일어나는 싸움인데 중요한 것은 이 싸움에서 싸우면 싸울수록 그 배후에 악한 사탄이 계속해서 더욱더 공격해 온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디모데후서3:12절에 보면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명의 역사들을 가지고 영적싸움을 싸우면서 살아가려고 할 때 어떤 갈등들이 오느냐 하면 딤후3:12절에 보면“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했어요. 더욱 더 큰 싸움, 더 큰 갈등들이 믿는 것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지요. 마10:34~35절에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로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그러면서 3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 사람이 그 아버지로, 딸이 어머니로, 며느리가 시어머니로 더불어 불화하게 된다”했습니다. 그러면서 원수가 바로 집안 식구라 했어요. 이 말은 남편을 원수로 여기라, 아내를 원수로 여기라 이 말이 아니고요, 진짜 우리가 영적싸움을 제대로 싸우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가정 속에, 우리의 삶 속에 가장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할 부분들이 있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적인 싸움에 문제를 당하게 되면 오는 결론이 뭐냐? 아! 내 힘으로는 안되는 구나 .. 그래서 오늘 이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것은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이 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하나님의 제대로된 은혜와 능력을 안 바울의 고백이예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것을 알면 알수록 이것은 내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더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바울의 이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바울의 고백이에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성경의 참 중요한 것을 보게 되는데 먼저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다” 그런데 좀 더 시간이 지나서 더 큰 은혜를 받고 누렸는데 바울의 고백입니다. 에베소 3장 8절에 보면 “모든 성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더 큰 은혜를 받았는데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나’라는 부분에 전혀 힘이 없고 전혀 가치 없는 것을 보게 되요. 진짜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안 되구나! 이 고백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천사들, 스랍들이 하나님 좌우편에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6장 5절에 고백한 내용입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아니,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의 고백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어요. 그 뒤에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의 배에 오르셔서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어요. 그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물을 거두어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옆에 있던 배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그물을 끌어올리고 나서 그때 베드로가 뭐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맛본 사람들의 고백이죠. 나는 전혀 영적인 싸움을 싸울 힘이 없다라는 사실에 대한 고백과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제대로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들 정말 우리 자신들을 제대로 발견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어떻게 영적 싸움에 승리할 수 있는가?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 갈등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영적싸움에 승리할 것인가? 바로 거기에 대한 답이 25절에 바울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우리가 영적싸움에 승리할 수 있는 방법, 오직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말을 할 때의 배경은, 그 당시 로마시대에 사람을 죽이는 방법 중에 십자가에 사람을 죽이는 사형 틀이 있었고 또 한 가지 방법은 아주 극악한 부분인데 죽은 송장과 함께 산 사람을 같이 묶어 놓는 겁니다. 이게 사람 사형 시키는 방법이에요. 그러면 죽은 자의 몸에서 나쁜 세균이 나오죠. 그게 산 사람의 몸에 전달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같이 죽어가게 만드는, 그래서 이것은 한 순간에 죽는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한 달, 두 달 지나야 죽는 겁니다. 그런 배경들을 가지고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고백을 하면서 여기에 바울이 바로 복음을 붙잡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렇습니다. 모든 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모든 흑암의 역사들,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은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창세전의 문제, 그게 우리에게 근본문제로 찾아와서 우리에게 문화로 우상을 만들어 내었고 그게 우리의 가문에 파고들고 우리 개인을 멸망으로 끌고 가는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어요.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사탄의 역사들을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의 실력과 우리의 권력과 우리의 명예들을 가지고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죄의 문제, 사탄의 문제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이 고백 후에 우리를 예수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성령의 역사”라고 이야기 했어요. 그게 바로 오늘 로마서 8장 1~4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로마서 8장 전체에 나오는 내용인데 전체는 다음 주에 한번 살펴 보구요. 먼저 로마서 8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으로 성령을 주시는데 로마서 8장 1~2절을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니라” 할렐루야!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임하면 이 모든 싸움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선언한 내용이 오늘 로마서 8장 1~2절입니다. 내 노력, 내 힘으로는 이 사망의 법에서 사망의 몸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내 속에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게 되면 이 모든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라는 선언이 로마서 8장 1~2절에 선언이에요. 그러면서 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없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무슨 말입니까?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역사하면은 연약하여 육신으로 할 수 없는 그 부분들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은 안 되는데 성령이 역사하면 된다는 사실입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데 우리 속에 거하고 계시는 성령이 역사하시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한 마디로 하면, 성령에 의지하는 삶의 인도를 받는 것이 성도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충만”을 누립니까? 분명히 성령의 충만함이 누려지게 되면(내 속에 충만하게 되면)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되고요, 모든 사망의 법에서 우리의 노력으로 빠져 나올 수 없는데 성령의 역사가 우리 속에 충만하게 역사되면 빠져 나오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게 되느냐? 그래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 속에 들어가는 그게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가랴 4장 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않고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되느니라” 영적싸움에서 우리가 이를 악문다고 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되면 못하는 것이 없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는, 아니 지금도 우리 안에 거하셔서 모든 사망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케 하시고 말씀의 역사들을 우리 안에 거하셔서 이루어 가시는 그 성령의 충만함의 역사를 힘입음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전도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갈등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갈등들 때문에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마세요. 갈등들이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라는 겁니다. 바로 생명의 법에 인도받는 싸움과 육신의 법에 인도 받는 성령의 인도 받는 것과 사탄의 역사들과의 싸움이 있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러면 그 싸움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래서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바로 이어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렇습니다. 갈등들, 그 싸움 속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은 그리스도 밖에 없어요.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면 우리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되고요, 심지어 어느 정도 하게 되느냐?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 했어요. 진짜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되면 주님보다 더 큰일도 하게 된다고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많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전도자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갈등들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응답으로, 축복으로 누려짐으로 하나님의 역사 속에 쓰임 받는 그런 우리 모든 전도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영광을 주 앞에 드립니다. 많은 문제와 사건과 일들, 그 속에 일어나는 갈등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 갈등들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나갈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하나님의 큰 일 들을 감당하는 전도자들로 우리를 세우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날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갈등들, 그 가운데 빠져서 고민하고 낙심하고 절망가운데 있을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고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서 모든 갈등이 발판되게 하시고 갈등 그 자체가 응답으로 누려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5년 6월 1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이 하신다
(롬7:14-8:4)


서론: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을 것 같은 성도님들도 남에게 말 못할 문제와 갈등 속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갈등(가정, 건강, 의식주, 경제, 신앙생활)이 없을 수는 없지만, 갈등이 축복이 될 수도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답이 없으면 결국은 이중, 삼중생활을 하게 되고, 종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나 갈등도 주님께 가져가시면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육신의 질고(고후12:7-10)나 인간관계(갈2:20)에서도 답을 얻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율법에 대한 부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롬7:24). 갈등이 고민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바로 답을 붙잡은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역사를 선택(25절)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갈등 자체가 기도할 제목이요, 응답으로 주신 것입니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갈등
(1)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자들의 갈등
1)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호렙산으로 도망하여 로뎀나무로 피신함(왕하18~19장)
2) 종교개혁을 이룬 마틴루터도 낙심했으며,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도 갈등 가운데 있었음(15절, 22~23절)
(2) 성도의 삶 속에서도 반드시 갈등이 있습니다.
1) 육신적으로도 병과의 싸움이 있듯, 영적으로도 두 부류의 싸움이 있음(롬8:2, 요14:16-17, 고전2:10-11)
2)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생명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싸움이 있는 것임(생명의 법 vs 죄와 사망의 법)
(3) 새로운 갈등에 도전하라!! (날마다 일어나는 싸움)
1)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노예생활의 고통이 아닌, 가나안으로 가는 그릇과 축복을 준비하는 갈등이 기다림
2)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만 도전할 수 있음 [바울(고전15:9→엡3:8→딤전1:15) / 이사야(사6:5) / 베드로(눅5:8)]

2. 어떻게 영적싸움에 승리할 수 있는가?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25절)
1) 우리를 사망의 몸(24절)에서 건져내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
2) 그리스도만이 5가지 문제(창세전문제, 근본문제, 우상문화, 가문, 개인)에서 건져내실 유일한 분이심
(2)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도우시는 성령님
1)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승리할 수 있고(롬8:1-2) 육신으로 할 수 없는 부분까지 하나님께서 하심(롬8:3)
2) 말씀과 기도와 전도 속에 들어감으로 성령의 충만을 누려라(슥4:6) - 성도는 성령에 의지한 삶을 사는 자


결론: 우리 안의 갈등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갈등이 있다는 것은 우리 안에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오래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이길 힘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또한 그 이름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면 하지 못했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주님보다 더 큰일도 하게 됩니다(요14:12) 한주간 하나님의 역사 속에 쓰임 받는 가운데 많은 일을 하는 전도자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와 갈등을 주님께 가져감으로, 고민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 축복과 응답이 되길 원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자녀로서, 날마다 일어나는 새로운 갈등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도우시는 성령님으로 도전하게 하옵소서. 한주간 말씀과 기도와 전도 속에 들어감으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까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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