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으므로
2017-09-0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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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너와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으므로”
(창26:12~31)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창26:12~31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네~ 우리 앞에 앉은 렘런트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요? 여러분이 주역입니다. 오늘 이 한 날도 예배하는 가운데 진짜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함이 참된 기쁨이 됨을 확인하고 누리는 최고의 예배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분이 새벽에 산에 등산, 운동을 갔었어요. 그런데 산에 올라가서 쭉 걷고 있는데 앞에 보니까 뭔가 흐릿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여요. 저게 뭘까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까 멧돼지예요. 겁이 덜컥 난 거예요. 도망갈 수도 없고,, 나무 뒤에 숨으려고 하니까 그렇고 그래서 그 순간에 생각이 났어ㅛ. 천하 만군이 복종하는 이름이 그리스도 이름인데 그러면서 그 주간에 주신 말씀이 만물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복종한다는 그 말씀이 생각나고요, 그러면서 누가복음8장에 보면 거라사인 지방에 군대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께서 그 군대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떠나보내잖아요. 그때 그 귀신들이 어디에 들어갔습니까? 돼지 떼에 들어 가서 그래서 결국은 비탈길로 내려가서 바다에 몰살하는 이런 부분들이 나오는데 그 부분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렇다면 내가 그리스도 그 이름 선포해야 되겠다 싶어 멧돼지를 향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고 선언했어요. 그런데 이 멧돼지가 흐늘흐늘하면서 사라진 거예요. 요즘 멧돼지들이 동네로 내려오는 이런 것들을 많이 보고, 곡식들도 피해 없는 사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사실 우리가 멧돼지 이런 것들을 만나면 두려움이 들잖아요. 그런데 그 두려움 속에서도 그 멧돼지를 물러가게 하는 길이 있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우리의 몸집이 크게 보이도록 하면 멧돼지가 오히려 겁을 먹고 도망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이나 우산 같은 것들이 있다면 우산 같은 것들을 펴서 덩치가 크게 보이면 오히려 멧돼지가 두려워서 도망간다 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사실 멧돼지가 두려움 가운데 빠진다 그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인생이 두려움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안 그런 척 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가 문제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특별히 우리보다 더 큰 일들을 당하면 우리도 모르게 두려움에 빠질 수가 있어요. 그런데 오늘 창세기26장은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진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면 참된 진짜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창세기 26장입니다. 오늘 전체를 다 읽어야 됩니다마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한 부분만을 읽었습니다마는 오늘 전체를 배경으로 여러분이 말씀을 좀 생각하시고요, 진짜 하나님이 주신 복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발견하고 또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정말 우리가 우리의 영혼도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육신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진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참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데 진짜 참된 복이 무엇인가를 오늘 26장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 날 예배하는 가운데 이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고 참된 복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시작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각인된 세상의 것.
그럼 우리가 진짜 하나님이 주신 응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각인된 세상의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평안할 때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도 모르게 어디로 돌아가느냐? 내가 그 문제를 책임지려고 하고,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게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요. 각인되어 있다 정도가 아니라 이미 그 부분들이 우리에게 뿌리내리고 체질되어 있어요. 내가 문제를 책임지고,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각인된 것입니다. 사실은..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창세기 1:27절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 말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행복과 축복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되고,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되고, 새는 공중을 날며 살아야 되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아멘입니까? 저는 이 부분들을 말씀 드릴 때마다, 또 이 부분을 제가 묵상할 때마다 사실 힘 얻는 것이 그거예요. 아!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 안에 있어야 되는구나. 그런데 사실은 이 땅에 문제가 시작되었지요. 그게 바로 창세기 3장의 문제인데 모든 고통의 시작입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결국은 사탄의 운명 가운데 인생이 빠지게 되었고, 그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지옥배경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형상 따라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처럼 되리라 하는 이 악한 사탄의 말에 속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 먹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죄가 시작된 거예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존재가 되었고요, 그리고 창세기3:10절에 보면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시는데 아담이 뭐라 했습니까?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했습니다. 결국 죄로 말미암아 인생은 두려움 가운데 빠지게 된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면서 그 안에서 모든 축복을 누려야 될 존재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되고 두려움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이 두려움을 이용해서 장사하는 직업이 있는데 그게 바로 보험회사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래서 두렵기 때문에 돈을 냅니다. 내는 그 돈 가지고 결국 보험회사는 장사하고 건물을 짓고 그렇게 해요. 모든 인생은 죄로 말미암아 두려움 가운데 빠졌는데 특별히 그 죄는 바로 하나님을 떠난 죄입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사실은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한 이 말씀처럼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어요. 그래서 문제를 당하면 그 문제를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세서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잘한다고 칭찬하고 박수를 칩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당연한 것이지요.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해야 합니다. 진짜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지 않았다면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문제, 내가 책임지고 해결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까? 결국은 우리 인생은 한계를 맞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의 결과로 결국 인생은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이삭이 그 한계와 그 두려움 속에 사로잡혔는데, 먼저 한계와 두려움을 당하기 이전에 문제를 당할 때에 그 문제들을 자기가 해결하고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삭을 바라보면서도 오늘 읽지 않은 1절~11절에 보면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구나 라는 사실을 보게 되지요. 아브라함이 했던 일들을 이삭이 그대로 행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바로 왕 앞에서, 아비멜렉 앞에서 누이라고 거짓말로 속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이삭이 똑같이 오늘 본문에 보면 하게 되어요. 부전자전이라고 할까요? 이 부분을 보면서 진짜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이삭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오늘 본문 읽지 않은 1~11절에 보면 흉년이 들었다했어요. 문제가 생긴 거지요. 그 흉년을 피하기 위해서 이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에게는 그냥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허락을 했는데 이삭에게는 오늘 성경 2절에 보면 그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하나님이 막으신 부분들이 나와요. 일단은 이삭의 마음에는 내가 흉년 드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굽에 내려가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하나님이 그 이삭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랄 그 블레셋, 아비멜렉 왕 앞에 머물도록 만든 사실들을 보게 되어요. 그러면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막으면서 또다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다시 이삭에게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3,4절에 나와요. 그러면서 5절에 보면 결국 이삭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데 그 복이 아브라함 때문이다. 오늘 읽은 24절도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내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누구를 위하여?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앉은 우리 어르신들, 여러분이 여러분 자녀들에게 믿음의 배경이 되어진다는 것 엄청난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 때문에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신 사실이 읽지 않은 5절에도 나와요.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앞에 앉은 우리 렘런트들, 여러분 믿음의 기도의 배경을 가진 우리 부모님들, 어른들, 우리 하나교회를 가졌다는 것은 최고의 여러분의 배경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면요 뭔가 모르게 어렵게 어렵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봐요. 그런데 가만히 알고 보면 그 가정과 가문에 믿음이 당대예요. 그러면 뭔가 모르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되고요, 신앙생활을 하기는 합니다마는 어렵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별로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 않은데 순탄하게 하나님의 인도받는 부분들을 봐요. 그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고요, 그 배후에는 믿음의 부모들의 기도의 배경이 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이 흘러들어가고 있는 이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렘런트들, 여러분 믿음에 기도의 배경을 가진 부모님들이 여러분의 배경에 있다라는 것, 이것이 최고의 영적인 자산입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을 우리 자녀들 위해서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여러분의 영적인 축복이 우리 후대에게 바로 전달된다 라는 것을 아시고 다른 것 이전에 믿음을 전달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래서 결국은 그랄 땅에 머물면서 이 이삭이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 가지고 결국은 아비멜렉에게 거짓말하게 되는데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사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아무도 탐내는 사람이 없었어요. 물론 리브가가 아름다웠다고 성경에는 나와요. 그런데 아무도 탐내는 사람이 없었고 이미 그 신분이 노출되었어요. 왜냐하면 이삭이 창을 열어놓고 자기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아비멜렉이 보았거든요. 그리고 이미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은혜를 주었어요. 그런데 괜히 이 이삭은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서 혹이나 너무 아름다운 내 아내를 이 땅에서 빼앗기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 속에서 자기 생각이지요. 밖은 괜찮은데 내 속에서 이게 우리가 빠져있는 문제 예요. 내게 주어진 환경과 사건과 문제 속에서 나도 모르게 그 환경 속에 빠지고 문제 속에 빠지는 것, 밖은 괜찮은데 내 속에서, 내 생각 속에서... 그래서 거기에 대한 정확한 답을 하고 있는 것이 7절, 9절인데요. 제가 보겠습니다. 7절에 “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움으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 함이었더라” 9절에 보십시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오늘 이삭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말들 아닙니까? 내 생각에...내 생각에 내가 죽을까 하여...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쉽게 하는 말들 아닙니까? 여러분 나도 모르게 되어진 나,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이지요. 나도 모르게 내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어요. 나도 모르게 되어진 “나”때문에 ...그래서 내 중심으로 살아가요. 내 생각대로 살아가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야 되는데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지 못해요. 그래서 은혜 받지 못하면 생각이 많아져요. 전혀 쓸데없는 생각들, 내 생각들,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물고, 그렇게 밤잠을 못자지 않습니까? 그것 생각한다고. 그게 무엇에 나오느냐? 내 생각에, 내가 죽을까 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문제를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가 해결해야 하니까 생각이 많은 겁니다. 그런데 그 배경은 결국 뭡니까? 사단입니다. 그 배경은 사단입니다. 그런데 이삭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경우 우리에게 있는 문제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삭이 실수해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도 바로 왕 앞과 아비멜렉 왕 앞에 두려워했습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삭도 마찬가지이고 야곱이 에서에게서 도망질쳤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두려워서. 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 사십 년 가는 동안 그들의 특징이 무엇이었느냐?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결국은 광야 2세대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 광야길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결국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 부분들, 우리에게 무엇을 통해서 보여줍니까? 대표적으로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어떻게 보고했습니까? 우리가 스스로 메뚜기 같더이다. 그런데 거기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러분, 여호수아와 갈렙이 안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도 사실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이 더 크게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실이 더 크게 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은 뭐라 했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는 위기, 위험을 당했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 들어가야 하는 위기를 당했습니다. 사실 인간이기 때문에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는 사자굴에 집어넣는, 풀무불 가운데 집어넣는 왕 보다도 진짜 무서워할 자를 제대로, 두려워할 자를 제대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환경과 사건과 문제 속에 두려워하느냐? 진짜 두려워할 자를 모르기 때문에, 진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환경과 사건과 문제를 더 두려워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육신만 죽이는 게 아니라 영혼까지도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말씀했지 않습니까? 진짜 우리가 두려워할 자를 제대로 두려워하고 제대로 안다면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데 두려워할 자를 모르니까 결국 세상의 것들이 두려움으로 닥쳐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그렇다면 그 두려움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기느냐? 어떻게 이기느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두려움입니다. 인생에게 누구에게나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이기느냐? 고린도전서 2장 2절~5절에 보면 바울이 중요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 배경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그런데 3절에 보면 바울이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했습니다. 그 상황이 어떤 배경이었느냐?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바울은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고린도로 왔습니다. 그런데 아덴에서 어떤 면에서 바울이 생각하기에는, 아덴에서의 사역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왜냐? 제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의 사역이 심히 두려워서 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냐?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만.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만 붙잡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우리의 두려움을 해결하는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께 집중되게 될 때, 오직 그리스도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두려움은 사라질 줄로 믿습니다. 왜냐?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셨고 그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셨고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첫 번째 증거가 뭐냐? 평안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너희에게, 뭐요? 평안이 있을지어다 했습니다. 여러분, 혹여나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습니까? 정말 그리스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 여러분, 혹여나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4장 18절에 보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했습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랑은 뭐냐? 요한일서, 바로 이어서 4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그리스도 바라보게 될 때 두려움이 내어쫓긴다는 사실, 그리스도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했습니다. 그 두려움은 반드시 형벌이 있다고 했는데 그 두려움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 바라보게 될 때 해결되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된 것이, 내가 문제를 당하면 그 문제를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몸부림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뭐요? “쉬게 하리라”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모든 두려움이 해결되는 참된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진정한 복은 임마누엘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참된 복을 주시는데 진정한 복은 무엇이냐? 바로 오늘 아비멜렉이 이삭을 보고서 고백한 것입니다. 28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에게 진정한 복은 임마누엘입니다. 오늘 읽은 12절부터 14절을 봅시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여러분, 12절부터 14절을 보면 여기 창대하고 왕성하다, 거부가 되었다, 백 배나 얻었다, 너무나 좋아하는 말들 아닙니까? 모두가 이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 아닙니까? 여기는 우리가 아멘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여러분, 구약에 보면 물질적인 축복을 주신 것, 하나님의 축복된 증거로 주신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한, 우리에게 참된 복이냐? 참된 복이냐? 그렇다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 참된 복이라면 이스라엘백성을 출애굽 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 출애굽해서 어디에 보내기 위해서였습니까? 가나안 땅에 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은 좋은 땅이 아닙니다. 황폐한 땅입니다. 육신적으로 말하면 황폐한 땅입니다. 보잘 것 없는, 쓸모없는 땅입니다. 오히려 좋은 땅은 바로 나일 강 하류, 애굽에 있는 것이 더 좋은 땅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육신적인, 물질적인 축복이 진짜 복이라면 출애굽 시킬 이유가 없다니까요? 여러분, 또 모세 시대에 애굽에 있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번성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애굽에 또 열 가지 재앙까지 내렸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을 차지하면 됩니다. 이집트, 더 좋은 땅 아닙니까? 그 땅 차지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쿠데타, 반란을 일으켜서 바로 왕을 쫓아내고 애굽 사람들을 벽돌 굽게 만들고 이게 내 땅이다 차지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것이 친정한 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보십시오. 창세기 12장을 보면 바로 왕 앞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들통 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이 결국 바로 왕에게서 쫓겨 나오지 않습니까? 나올 때에 바로 왕이 한몫 챙겨 줬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면 부자 되어서 나왔습니다. 거짓말하고 속였는데 부자 되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 되어서 나온 그것 때문에 13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다툼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결국은 사실은 오늘 12절부터 14절에 거부가 되고 왕성하고 창대하여 백 배나 얻었고, 그런데 14절부터 보면 결국 시기가 일어났다 했습니다. 진짜 물질적인, 육신적인 것이, 보이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축복이라면 거부가 되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백 배나 얻었고 거기에 “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블레셋 사람에게서 시기를 받았다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축복, 물질적인 축복, 그게 진정한 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 가운데서도 말씀했지 않습니까? 우리가 물질적인 축복이 진정한 복이라면 정주영, 재벌들,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주신 복은 따로 있다는 것을, 오늘 바로 12절부터 14절 이후에 길게 설명하면서 따로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복이 무엇이냐? 여러분, 사실은 왜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들을 막고 빼앗았느냐? 왜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막고 빼앗았느냐? 거기에 이삭은 전혀 대항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다 양보하고 쫓겨 가고 쫓겨 갔느냐? 사실은 우리 눈에 보이는 우물 같은 그런 축복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눈에 보이는 일차적인 축복이 다라면 여러분, 여러분, 그것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시험 들고 그것 때문에 고통당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물질 때문에, 건강 때문에 범죄하게 되고 실패하고 고통당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네가 바라보는 그 우물, 물론 우물은 중요합니다. 그 당시 우물은 자기 생명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사막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주신 축복은 그 우물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그 축복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 우물을 죽음을 놓고도 빼앗겨도 그게 전혀 아깝지 않은, 다른 축복된 역사가 네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보면 사실 이삭에게 백 배나 축복하셨지 않습니까? 한해 농사 지었는데 백배, 얼마나 대단한 겁니까? 그런데 사실 여러분, 아셔야 할 것은 이삭은 농사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전문은 유목민입니다. 그런데 농사 지었는데 한해 백 배나 얻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떤 면에서 이삭은 그 당시 블레셋 사람이 농사짓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면서 배워서 농사지었습니다. 그런데 한 해 농사 백 배나 지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비밀을 누릴 때 이 물질보다 더 큰 축복이, 더 큰 축복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면 그 복이 무엇이냐? 그 복이 무엇이냐? 오늘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와서 고백한 내용입니다. 바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바로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의 모든 삶을 책임지시고 지금도 나의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시는 그 임마누엘의 축복, 그게 우리에게 진정한 축복이라는 사실, 육신적인 축복이 우리에게 진정한 축복이 아니라 영적인 축복, 임마누엘의 축복이 가장 귀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비멜렉이 이삭 앞에 와서 무릎 꿇었지 않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줄 아십니까? 말씀에 성취에요.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다. 이것은요 26장 4절에 나오는 말씀에 나오는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은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에 나오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약속이었죠. 너무나 중요한 말씀, 잘 알고 있는 말씀인데 한번 읽어 보십시다. 창세기12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할렐루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그 언약이 이삭을 통해서 주어졌고, 그 언약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 아비멜렉 불신자 블레셋 왕인 아비멜렉이 이삭 앞에 와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다” 이 말씀의 성취가 바로 여기서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 여기에 천하 만민이 내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겠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결국은 우리 자신들이 임마누엘의 그 축복을 누리고, 그 축복이 드러나서, 모든 인생들이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앞에 무릎 꿇게 되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시죠.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십자가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그 그리스도 앞에 결국은 모든 만민이 무릎 꿇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 축복된 임마누엘의 역사가 드러나는 축복, 그게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진짜 하나님이 주신 복이 뭐냐? 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누리는 임마누엘,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들이 나타나는 임마누엘의 역사들이 드러나는 그 역사, 전도 선교죠 그게 우리 인생에 있어서 진짜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임마누엘을 여러분 누리시구요 우리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임마누엘의 역사들이 드러나는 이 일에 우리가 쓰임 받는 다면은 여러분 인생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한번 보세요. 정말로 내가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고 있느냐? 그리고 나의 모든 삶을 통해서 이 임마누엘이 드러나는 전도, 선교, 천하 만민이 그 이름 앞에 무릎 꿇는다 했는데 이 임마누엘이 드러나는 전도, 선교 이 축복에 내가 쓰임 받고 있느냐? 그렇다면 나는 최고로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이 임마누엘을 누리고 있을 때, 어려움을 당할 수 있어요. 문제없다 아닙니다. 어려움 없다 아닙니다. 어려움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임마누엘을 누리고 있으면 은 그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요한복음 15장 18절, 19절에 보면 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꼭 기억하세요. 내가 임마누엘 축복을 갖고 있어도, 어려움 올수 있다는 것.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했어요. 로마서 8장 17절, 18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분명히 믿는 자에게 고난도 함께 있다 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할렐루야! 어려움과 고난, 실패와 좌절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은 그 속에 우리는 결코 승리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삭이 거부가 되었을 때에 아비멜렉이 와서 네가 복 받은 자다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에요. 쫓겨 가고 도망갔을 때 거기에 아비멜렉이 찾아와서 너는 여호와께 복 받은 자다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상관없어요. 바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길 원하시고, 그 임마누엘 축복을 드러내게 하시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 사실 붙잡으시고, 여러분 환경과 사건과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들 속에서 속지 마시고요. 진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축복, 우리의 존재 이유가 뭐냐? 임마누엘을 누리는 것이고, 임마누엘의 그 역사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살아야할 존재 이유입니다. 이 사실 붙잡음으로 승리하는 전도자의 삶이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내 중심된 나의 문제를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해야 된다는 그 모든 염려, 그 모든 두려움들을 내려놓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귀한 축복 있도록 도와주옵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고 임마누엘의 축복의 역사들을 드러내는 증인의 삶이 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의 생애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9월 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너와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으므로
(창26:12-31)
서론: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두려움은 찾아 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말씀 하면서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 하게 되면 복 받을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창26장).
1. 각인 된 세상의 것
가. 문제, 어려움 - 내가 책임지고 해결 하려는 본능(세상의 각인, 뿌리, 체질)
1) 원래인간 - 창1:27-28절 속에서 살아야 함
2) 고통의 시작 - 창3장(원죄, 사단, 지옥의 배경)
3) 하나님을 떠남으로 문제를 내가 책임, 해결 하려는 본능 - 한계, 두려움
나. 한계를 보이는 인생 -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인생
1) 흉년(문제) -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으나 하나님이 막으심(2)
2)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말씀 하심(3-4) - 아브라함 때문에 이삭이 복을 받음(부모가 가진 언약은 반드시 자녀에게 전달)
3) 두려움 때문에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누이라 속임(7, 9) - 생각, 환경에 빠짐(나도 모르게 나 중심에 빠짐)
다. 어떻게 이기는가?
1)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
2)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님(딤후1:7)
3)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음(요일4:18)
2. 진정한 복은 임마누엘
가. 이삭이 창대, 왕성, 거부가 됨(12-14)
나. 눈에 보이는 복이 참된 복이 아님
1) 이삭이 우물을 빼앗김 - 물질적인 것이 모든 축복은 아님
2) 100배의 축복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비밀을 누릴 때 더 큰 축복
3) 아비멜렉이 이삭 앞에 무릎 꿇음(28) - 언약의 성취(창12:1-3)
다. 최고의 축복 - 하나님이 함께 하심(임마누엘), 임마누엘이 드러남(전도, 선교)
결론: 그리스도를 잘 믿으면 어려움이 올 수 있지만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요15:18, 롬8:17-18).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누리는 것,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심을 드러나는 것이 삶의 존재이고,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날마다 누리시는 전도자 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너와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으므로”
(창26:12~31)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창26:12~31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네~ 우리 앞에 앉은 렘런트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요? 여러분이 주역입니다. 오늘 이 한 날도 예배하는 가운데 진짜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함이 참된 기쁨이 됨을 확인하고 누리는 최고의 예배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분이 새벽에 산에 등산, 운동을 갔었어요. 그런데 산에 올라가서 쭉 걷고 있는데 앞에 보니까 뭔가 흐릿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여요. 저게 뭘까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까 멧돼지예요. 겁이 덜컥 난 거예요. 도망갈 수도 없고,, 나무 뒤에 숨으려고 하니까 그렇고 그래서 그 순간에 생각이 났어ㅛ. 천하 만군이 복종하는 이름이 그리스도 이름인데 그러면서 그 주간에 주신 말씀이 만물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복종한다는 그 말씀이 생각나고요, 그러면서 누가복음8장에 보면 거라사인 지방에 군대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께서 그 군대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떠나보내잖아요. 그때 그 귀신들이 어디에 들어갔습니까? 돼지 떼에 들어 가서 그래서 결국은 비탈길로 내려가서 바다에 몰살하는 이런 부분들이 나오는데 그 부분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렇다면 내가 그리스도 그 이름 선포해야 되겠다 싶어 멧돼지를 향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고 선언했어요. 그런데 이 멧돼지가 흐늘흐늘하면서 사라진 거예요. 요즘 멧돼지들이 동네로 내려오는 이런 것들을 많이 보고, 곡식들도 피해 없는 사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사실 우리가 멧돼지 이런 것들을 만나면 두려움이 들잖아요. 그런데 그 두려움 속에서도 그 멧돼지를 물러가게 하는 길이 있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우리의 몸집이 크게 보이도록 하면 멧돼지가 오히려 겁을 먹고 도망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이나 우산 같은 것들이 있다면 우산 같은 것들을 펴서 덩치가 크게 보이면 오히려 멧돼지가 두려워서 도망간다 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사실 멧돼지가 두려움 가운데 빠진다 그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인생이 두려움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안 그런 척 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가 문제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특별히 우리보다 더 큰 일들을 당하면 우리도 모르게 두려움에 빠질 수가 있어요. 그런데 오늘 창세기26장은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진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면 참된 진짜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창세기 26장입니다. 오늘 전체를 다 읽어야 됩니다마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한 부분만을 읽었습니다마는 오늘 전체를 배경으로 여러분이 말씀을 좀 생각하시고요, 진짜 하나님이 주신 복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발견하고 또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정말 우리가 우리의 영혼도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육신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진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참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데 진짜 참된 복이 무엇인가를 오늘 26장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 날 예배하는 가운데 이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고 참된 복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시작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각인된 세상의 것.
그럼 우리가 진짜 하나님이 주신 응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각인된 세상의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평안할 때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도 모르게 어디로 돌아가느냐? 내가 그 문제를 책임지려고 하고,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게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요. 각인되어 있다 정도가 아니라 이미 그 부분들이 우리에게 뿌리내리고 체질되어 있어요. 내가 문제를 책임지고,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각인된 것입니다. 사실은..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창세기 1:27절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 말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행복과 축복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되고,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되고, 새는 공중을 날며 살아야 되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아멘입니까? 저는 이 부분들을 말씀 드릴 때마다, 또 이 부분을 제가 묵상할 때마다 사실 힘 얻는 것이 그거예요. 아!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 안에 있어야 되는구나. 그런데 사실은 이 땅에 문제가 시작되었지요. 그게 바로 창세기 3장의 문제인데 모든 고통의 시작입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결국은 사탄의 운명 가운데 인생이 빠지게 되었고, 그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지옥배경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형상 따라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처럼 되리라 하는 이 악한 사탄의 말에 속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 먹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죄가 시작된 거예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존재가 되었고요, 그리고 창세기3:10절에 보면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시는데 아담이 뭐라 했습니까?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했습니다. 결국 죄로 말미암아 인생은 두려움 가운데 빠지게 된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면서 그 안에서 모든 축복을 누려야 될 존재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되고 두려움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이 두려움을 이용해서 장사하는 직업이 있는데 그게 바로 보험회사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래서 두렵기 때문에 돈을 냅니다. 내는 그 돈 가지고 결국 보험회사는 장사하고 건물을 짓고 그렇게 해요. 모든 인생은 죄로 말미암아 두려움 가운데 빠졌는데 특별히 그 죄는 바로 하나님을 떠난 죄입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사실은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한 이 말씀처럼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어요. 그래서 문제를 당하면 그 문제를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세서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잘한다고 칭찬하고 박수를 칩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당연한 것이지요.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해야 합니다. 진짜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지 않았다면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문제, 내가 책임지고 해결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까? 결국은 우리 인생은 한계를 맞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의 결과로 결국 인생은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이삭이 그 한계와 그 두려움 속에 사로잡혔는데, 먼저 한계와 두려움을 당하기 이전에 문제를 당할 때에 그 문제들을 자기가 해결하고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삭을 바라보면서도 오늘 읽지 않은 1절~11절에 보면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구나 라는 사실을 보게 되지요. 아브라함이 했던 일들을 이삭이 그대로 행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바로 왕 앞에서, 아비멜렉 앞에서 누이라고 거짓말로 속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이삭이 똑같이 오늘 본문에 보면 하게 되어요. 부전자전이라고 할까요? 이 부분을 보면서 진짜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이삭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오늘 본문 읽지 않은 1~11절에 보면 흉년이 들었다했어요. 문제가 생긴 거지요. 그 흉년을 피하기 위해서 이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에게는 그냥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허락을 했는데 이삭에게는 오늘 성경 2절에 보면 그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하나님이 막으신 부분들이 나와요. 일단은 이삭의 마음에는 내가 흉년 드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굽에 내려가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하나님이 그 이삭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랄 그 블레셋, 아비멜렉 왕 앞에 머물도록 만든 사실들을 보게 되어요. 그러면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막으면서 또다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다시 이삭에게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3,4절에 나와요. 그러면서 5절에 보면 결국 이삭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데 그 복이 아브라함 때문이다. 오늘 읽은 24절도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내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누구를 위하여?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앉은 우리 어르신들, 여러분이 여러분 자녀들에게 믿음의 배경이 되어진다는 것 엄청난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 때문에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신 사실이 읽지 않은 5절에도 나와요.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앞에 앉은 우리 렘런트들, 여러분 믿음의 기도의 배경을 가진 우리 부모님들, 어른들, 우리 하나교회를 가졌다는 것은 최고의 여러분의 배경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면요 뭔가 모르게 어렵게 어렵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봐요. 그런데 가만히 알고 보면 그 가정과 가문에 믿음이 당대예요. 그러면 뭔가 모르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되고요, 신앙생활을 하기는 합니다마는 어렵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별로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 않은데 순탄하게 하나님의 인도받는 부분들을 봐요. 그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고요, 그 배후에는 믿음의 부모들의 기도의 배경이 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이 흘러들어가고 있는 이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렘런트들, 여러분 믿음에 기도의 배경을 가진 부모님들이 여러분의 배경에 있다라는 것, 이것이 최고의 영적인 자산입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을 우리 자녀들 위해서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여러분의 영적인 축복이 우리 후대에게 바로 전달된다 라는 것을 아시고 다른 것 이전에 믿음을 전달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래서 결국은 그랄 땅에 머물면서 이 이삭이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 가지고 결국은 아비멜렉에게 거짓말하게 되는데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사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아무도 탐내는 사람이 없었어요. 물론 리브가가 아름다웠다고 성경에는 나와요. 그런데 아무도 탐내는 사람이 없었고 이미 그 신분이 노출되었어요. 왜냐하면 이삭이 창을 열어놓고 자기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아비멜렉이 보았거든요. 그리고 이미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은혜를 주었어요. 그런데 괜히 이 이삭은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서 혹이나 너무 아름다운 내 아내를 이 땅에서 빼앗기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 속에서 자기 생각이지요. 밖은 괜찮은데 내 속에서 이게 우리가 빠져있는 문제 예요. 내게 주어진 환경과 사건과 문제 속에서 나도 모르게 그 환경 속에 빠지고 문제 속에 빠지는 것, 밖은 괜찮은데 내 속에서, 내 생각 속에서... 그래서 거기에 대한 정확한 답을 하고 있는 것이 7절, 9절인데요. 제가 보겠습니다. 7절에 “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움으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 함이었더라” 9절에 보십시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오늘 이삭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말들 아닙니까? 내 생각에...내 생각에 내가 죽을까 하여...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쉽게 하는 말들 아닙니까? 여러분 나도 모르게 되어진 나,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이지요. 나도 모르게 내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어요. 나도 모르게 되어진 “나”때문에 ...그래서 내 중심으로 살아가요. 내 생각대로 살아가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야 되는데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지 못해요. 그래서 은혜 받지 못하면 생각이 많아져요. 전혀 쓸데없는 생각들, 내 생각들,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물고, 그렇게 밤잠을 못자지 않습니까? 그것 생각한다고. 그게 무엇에 나오느냐? 내 생각에, 내가 죽을까 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문제를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가 해결해야 하니까 생각이 많은 겁니다. 그런데 그 배경은 결국 뭡니까? 사단입니다. 그 배경은 사단입니다. 그런데 이삭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경우 우리에게 있는 문제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삭이 실수해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도 바로 왕 앞과 아비멜렉 왕 앞에 두려워했습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삭도 마찬가지이고 야곱이 에서에게서 도망질쳤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두려워서. 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 사십 년 가는 동안 그들의 특징이 무엇이었느냐?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결국은 광야 2세대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 광야길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결국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 부분들, 우리에게 무엇을 통해서 보여줍니까? 대표적으로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어떻게 보고했습니까? 우리가 스스로 메뚜기 같더이다. 그런데 거기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러분, 여호수아와 갈렙이 안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도 사실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이 더 크게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실이 더 크게 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은 뭐라 했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는 위기, 위험을 당했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 들어가야 하는 위기를 당했습니다. 사실 인간이기 때문에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는 사자굴에 집어넣는, 풀무불 가운데 집어넣는 왕 보다도 진짜 무서워할 자를 제대로, 두려워할 자를 제대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환경과 사건과 문제 속에 두려워하느냐? 진짜 두려워할 자를 모르기 때문에, 진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환경과 사건과 문제를 더 두려워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육신만 죽이는 게 아니라 영혼까지도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말씀했지 않습니까? 진짜 우리가 두려워할 자를 제대로 두려워하고 제대로 안다면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데 두려워할 자를 모르니까 결국 세상의 것들이 두려움으로 닥쳐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그렇다면 그 두려움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기느냐? 어떻게 이기느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두려움입니다. 인생에게 누구에게나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이기느냐? 고린도전서 2장 2절~5절에 보면 바울이 중요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 배경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그런데 3절에 보면 바울이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했습니다. 그 상황이 어떤 배경이었느냐?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바울은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고린도로 왔습니다. 그런데 아덴에서 어떤 면에서 바울이 생각하기에는, 아덴에서의 사역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왜냐? 제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의 사역이 심히 두려워서 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냐?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만.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만 붙잡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우리의 두려움을 해결하는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께 집중되게 될 때, 오직 그리스도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두려움은 사라질 줄로 믿습니다. 왜냐?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셨고 그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셨고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첫 번째 증거가 뭐냐? 평안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너희에게, 뭐요? 평안이 있을지어다 했습니다. 여러분, 혹여나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습니까? 정말 그리스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 여러분, 혹여나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4장 18절에 보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했습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랑은 뭐냐? 요한일서, 바로 이어서 4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그리스도 바라보게 될 때 두려움이 내어쫓긴다는 사실, 그리스도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했습니다. 그 두려움은 반드시 형벌이 있다고 했는데 그 두려움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 바라보게 될 때 해결되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된 것이, 내가 문제를 당하면 그 문제를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몸부림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뭐요? “쉬게 하리라”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모든 두려움이 해결되는 참된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진정한 복은 임마누엘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참된 복을 주시는데 진정한 복은 무엇이냐? 바로 오늘 아비멜렉이 이삭을 보고서 고백한 것입니다. 28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에게 진정한 복은 임마누엘입니다. 오늘 읽은 12절부터 14절을 봅시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여러분, 12절부터 14절을 보면 여기 창대하고 왕성하다, 거부가 되었다, 백 배나 얻었다, 너무나 좋아하는 말들 아닙니까? 모두가 이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 아닙니까? 여기는 우리가 아멘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여러분, 구약에 보면 물질적인 축복을 주신 것, 하나님의 축복된 증거로 주신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한, 우리에게 참된 복이냐? 참된 복이냐? 그렇다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 참된 복이라면 이스라엘백성을 출애굽 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 출애굽해서 어디에 보내기 위해서였습니까? 가나안 땅에 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은 좋은 땅이 아닙니다. 황폐한 땅입니다. 육신적으로 말하면 황폐한 땅입니다. 보잘 것 없는, 쓸모없는 땅입니다. 오히려 좋은 땅은 바로 나일 강 하류, 애굽에 있는 것이 더 좋은 땅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육신적인, 물질적인 축복이 진짜 복이라면 출애굽 시킬 이유가 없다니까요? 여러분, 또 모세 시대에 애굽에 있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번성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애굽에 또 열 가지 재앙까지 내렸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을 차지하면 됩니다. 이집트, 더 좋은 땅 아닙니까? 그 땅 차지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쿠데타, 반란을 일으켜서 바로 왕을 쫓아내고 애굽 사람들을 벽돌 굽게 만들고 이게 내 땅이다 차지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것이 친정한 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보십시오. 창세기 12장을 보면 바로 왕 앞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들통 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이 결국 바로 왕에게서 쫓겨 나오지 않습니까? 나올 때에 바로 왕이 한몫 챙겨 줬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면 부자 되어서 나왔습니다. 거짓말하고 속였는데 부자 되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 되어서 나온 그것 때문에 13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다툼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결국은 사실은 오늘 12절부터 14절에 거부가 되고 왕성하고 창대하여 백 배나 얻었고, 그런데 14절부터 보면 결국 시기가 일어났다 했습니다. 진짜 물질적인, 육신적인 것이, 보이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축복이라면 거부가 되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백 배나 얻었고 거기에 “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블레셋 사람에게서 시기를 받았다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축복, 물질적인 축복, 그게 진정한 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 가운데서도 말씀했지 않습니까? 우리가 물질적인 축복이 진정한 복이라면 정주영, 재벌들,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주신 복은 따로 있다는 것을, 오늘 바로 12절부터 14절 이후에 길게 설명하면서 따로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복이 무엇이냐? 여러분, 사실은 왜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들을 막고 빼앗았느냐? 왜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막고 빼앗았느냐? 거기에 이삭은 전혀 대항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다 양보하고 쫓겨 가고 쫓겨 갔느냐? 사실은 우리 눈에 보이는 우물 같은 그런 축복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눈에 보이는 일차적인 축복이 다라면 여러분, 여러분, 그것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시험 들고 그것 때문에 고통당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물질 때문에, 건강 때문에 범죄하게 되고 실패하고 고통당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네가 바라보는 그 우물, 물론 우물은 중요합니다. 그 당시 우물은 자기 생명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사막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주신 축복은 그 우물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그 축복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 우물을 죽음을 놓고도 빼앗겨도 그게 전혀 아깝지 않은, 다른 축복된 역사가 네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보면 사실 이삭에게 백 배나 축복하셨지 않습니까? 한해 농사 지었는데 백배, 얼마나 대단한 겁니까? 그런데 사실 여러분, 아셔야 할 것은 이삭은 농사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전문은 유목민입니다. 그런데 농사 지었는데 한해 백 배나 얻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떤 면에서 이삭은 그 당시 블레셋 사람이 농사짓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면서 배워서 농사지었습니다. 그런데 한 해 농사 백 배나 지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비밀을 누릴 때 이 물질보다 더 큰 축복이, 더 큰 축복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면 그 복이 무엇이냐? 그 복이 무엇이냐? 오늘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와서 고백한 내용입니다. 바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바로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의 모든 삶을 책임지시고 지금도 나의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시는 그 임마누엘의 축복, 그게 우리에게 진정한 축복이라는 사실, 육신적인 축복이 우리에게 진정한 축복이 아니라 영적인 축복, 임마누엘의 축복이 가장 귀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비멜렉이 이삭 앞에 와서 무릎 꿇었지 않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줄 아십니까? 말씀에 성취에요.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다. 이것은요 26장 4절에 나오는 말씀에 나오는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은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에 나오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약속이었죠. 너무나 중요한 말씀, 잘 알고 있는 말씀인데 한번 읽어 보십시다. 창세기12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할렐루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그 언약이 이삭을 통해서 주어졌고, 그 언약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 아비멜렉 불신자 블레셋 왕인 아비멜렉이 이삭 앞에 와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다” 이 말씀의 성취가 바로 여기서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 여기에 천하 만민이 내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겠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결국은 우리 자신들이 임마누엘의 그 축복을 누리고, 그 축복이 드러나서, 모든 인생들이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앞에 무릎 꿇게 되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시죠.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십자가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그 그리스도 앞에 결국은 모든 만민이 무릎 꿇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 축복된 임마누엘의 역사가 드러나는 축복, 그게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진짜 하나님이 주신 복이 뭐냐? 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누리는 임마누엘,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들이 나타나는 임마누엘의 역사들이 드러나는 그 역사, 전도 선교죠 그게 우리 인생에 있어서 진짜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임마누엘을 여러분 누리시구요 우리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임마누엘의 역사들이 드러나는 이 일에 우리가 쓰임 받는 다면은 여러분 인생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한번 보세요. 정말로 내가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고 있느냐? 그리고 나의 모든 삶을 통해서 이 임마누엘이 드러나는 전도, 선교, 천하 만민이 그 이름 앞에 무릎 꿇는다 했는데 이 임마누엘이 드러나는 전도, 선교 이 축복에 내가 쓰임 받고 있느냐? 그렇다면 나는 최고로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이 임마누엘을 누리고 있을 때, 어려움을 당할 수 있어요. 문제없다 아닙니다. 어려움 없다 아닙니다. 어려움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임마누엘을 누리고 있으면 은 그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요한복음 15장 18절, 19절에 보면 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꼭 기억하세요. 내가 임마누엘 축복을 갖고 있어도, 어려움 올수 있다는 것.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했어요. 로마서 8장 17절, 18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분명히 믿는 자에게 고난도 함께 있다 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할렐루야! 어려움과 고난, 실패와 좌절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은 그 속에 우리는 결코 승리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삭이 거부가 되었을 때에 아비멜렉이 와서 네가 복 받은 자다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에요. 쫓겨 가고 도망갔을 때 거기에 아비멜렉이 찾아와서 너는 여호와께 복 받은 자다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상관없어요. 바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길 원하시고, 그 임마누엘 축복을 드러내게 하시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 사실 붙잡으시고, 여러분 환경과 사건과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들 속에서 속지 마시고요. 진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축복, 우리의 존재 이유가 뭐냐? 임마누엘을 누리는 것이고, 임마누엘의 그 역사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살아야할 존재 이유입니다. 이 사실 붙잡음으로 승리하는 전도자의 삶이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내 중심된 나의 문제를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해야 된다는 그 모든 염려, 그 모든 두려움들을 내려놓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귀한 축복 있도록 도와주옵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고 임마누엘의 축복의 역사들을 드러내는 증인의 삶이 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의 생애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9월 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너와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으므로
(창26:12-31)
서론: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두려움은 찾아 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말씀 하면서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 하게 되면 복 받을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창26장).
1. 각인 된 세상의 것
가. 문제, 어려움 - 내가 책임지고 해결 하려는 본능(세상의 각인, 뿌리, 체질)
1) 원래인간 - 창1:27-28절 속에서 살아야 함
2) 고통의 시작 - 창3장(원죄, 사단, 지옥의 배경)
3) 하나님을 떠남으로 문제를 내가 책임, 해결 하려는 본능 - 한계, 두려움
나. 한계를 보이는 인생 -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인생
1) 흉년(문제) -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으나 하나님이 막으심(2)
2)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말씀 하심(3-4) - 아브라함 때문에 이삭이 복을 받음(부모가 가진 언약은 반드시 자녀에게 전달)
3) 두려움 때문에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누이라 속임(7, 9) - 생각, 환경에 빠짐(나도 모르게 나 중심에 빠짐)
다. 어떻게 이기는가?
1)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
2)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님(딤후1:7)
3)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음(요일4:18)
2. 진정한 복은 임마누엘
가. 이삭이 창대, 왕성, 거부가 됨(12-14)
나. 눈에 보이는 복이 참된 복이 아님
1) 이삭이 우물을 빼앗김 - 물질적인 것이 모든 축복은 아님
2) 100배의 축복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비밀을 누릴 때 더 큰 축복
3) 아비멜렉이 이삭 앞에 무릎 꿇음(28) - 언약의 성취(창12:1-3)
다. 최고의 축복 - 하나님이 함께 하심(임마누엘), 임마누엘이 드러남(전도, 선교)
결론: 그리스도를 잘 믿으면 어려움이 올 수 있지만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요15:18, 롬8:17-18).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누리는 것,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심을 드러나는 것이 삶의 존재이고,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날마다 누리시는 전도자 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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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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