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018-01-2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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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6)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히3:1~6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정말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서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만을 경배하고요,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만을 선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이 땅이 살아나게 되어 있고, 재앙의 역사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이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재앙의 역사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오늘도 최고로 은혜 받으시고 힘을 회복하는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제가 우리 렘런트로부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고 또 의미가 있는 편지를 한통 받았습니다. 편지 안의 내용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내일이면 제 인생의 아주 중요한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어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신년에 주신 예수를 바라보라 그 메시지를 지금 다시 들으면서 지금 목사님께 펜을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교회의 기도의 배경 속에, 또 목사님의 기도의 배경 속에 자라왔는데 너무 송구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들 속에서 불신앙에 빠지지 않고, 불신앙에 빠져서 하나님의 응답을 놓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또 하나님이 주신 언약들을 다 이루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약속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주신 이 구원의 역사가 제게만 갇혀지지 않도록, 또 전도의 역사들이 우리 가정, 가문에만 그치지 아니하도록 제게 주신 하나님의 전도와 선교를 위한 부분들, 그 부분들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영적인 서밋에 서는 그런 응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쭈욱 보면서 역시 렘런트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고요, 또 그 편지를 제게 전달한 그 자매의 영적인 상태들을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불신앙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이라 할지라도 그 불신앙에 빠지지 아니하고, 실수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썼어요. 그래서 이 큰 구원의 역사가 내게만 갇혀지지 않도록, 흘러가도록 하길 원하는 소원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또 전도의 역사들이 내 가정과 가문에 그치지 않도록, 이 전도가 흘러가서 남편을 살리고 가문을 살리고 또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기는 오직 영적인 서밋에 서기를 기도로서 원하고 있습니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참 또 많은 기도를 담게 되는 그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주어진 환경과 사건과 일들 속에서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생각이 곧 그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또 어디에 있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그것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생각은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음에 담긴 것은 그게 몸으로 연결되고요,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오는 것은 그게 뇌로 각인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과 우리의 몸의 상태를 놓고 보고 거기에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과 생각입니다. 그만큼 마음과 생각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이 뇌에 각인되면서 그게 우리의 삶의 체질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응답 중에 응답이 있다면 빌립보4:7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응답 중에 응답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이 지키신다. 가장 귀중한 응답이 마음과 생각이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4:23절에도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이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타난다” 말씀했습니다. 네 마음을 지키라 그만큼 마음과 생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응답의 가장 중요한 응답이 마음가 생각이라면 악한 사탄이 공격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무엇이냐 하면 마음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요한복음13:2절에 보면 이미 가룟 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예수를 팔 생각을 집어 넣었다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를 팔 생각을 사탄이 집어넣으니까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아버린 겁니다. 사도행전 5:3절에도 베드로가 지적하지요. 아나니아에게 “네 마음에 사탄이 가득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뇌와 연결되게 되어 있고요, 그로 말미암아 모든 역사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가 거기에 따라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인 우리 인간이 어느 곳에 집중하면 역사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악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영적인 존재라는 말은 영적인 부분에 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이 주어졌다라는 말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부분에 집중하게 되면 악령의 역사가 일어나든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배시간에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 시간에 엉뚱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 여러분 우리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냥 멍하니 예배시간 참여하게 되면요 나도 모르게 실패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게 결국 영혼 속에 다른 것들, 틀린 것들이 자꾸 예배 시간에 각인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신앙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 어떤 생각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 여러분 영혼 속에 각인되어지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냥 멍하니 앉아 계신다 다른 생각들을 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실패를 해도 무엇 때문에 실패하는 줄도 모릅니다. 그냥 오는 것이 아닌데,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 집중함으로 말미암아 치유 받는 그런 축복된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1절에 마지막에 이야기 하고 있지요. 여기에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골똘하게 생각하면서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24시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로 완전 체질화 되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태복음6장에 보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는 부분이 나오지요. 거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피는 백합화를 생각해 보라. 여러분 공중에 나는 새, 들이지도 아니하고 먹이지도 않는데 살아남고 새끼를 낳고 번성하잖아요. 또 들에 나는 백합화 자라나는 것을 생각해 보라 했습니다. 그때 말하는 이 생각은 그냥 생각이 아니지요. 들의 백합화와 공중에 나는 새, 그것을 통해서 주는 교훈들을 생각하라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생각 속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게 될 때에 그로 말미암아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 어느 날 하나님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 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시는가?
1.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
그 첫 번째입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여기에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형제들아~ 그것도 거룩한 형제들아~그렇습니다. 여기에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지금 저와 여러분의 배경이 하늘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에 들어가야 될 배경이 하늘나라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이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살아가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땅의 살아가는 모든 삶의 모습들을 보면 실제로 우리는 하늘의 속한 자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러분 지금 세상은 어떠합니까? 여러분 세상은 요한복음16:11절에 있는 말씀처럼 세상 임금이 장악하고 있어요. 고후4:4절에 있는 말씀처럼 세상 신이 이 땅을 장악하고 있는데 사망의 권세가 모든 세상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여기에 세상 임금, 세상 신은 누구를 말하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마귀, 곧 사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사탄이 이 땅의 임금 노릇하고 있고, 신 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면요 가짜 성공을 심었고, 틀린 성공을 심었고, 실패한 성공을 심었습니다. 이게 사탄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속에 심은 거예요. 가짜 성공이 무엇입니까? 창세기3장에 네가 하나님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 라는 겁니다. 네가 하나님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이 없어도 행복합니까? 하나님 없어도 성공합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다 그 말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될 존재라는 사실이예요.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참 행복과 안식과 축복을 누리며 지음 받은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탄은 가짜 성공을 우리에게 심어서 하나님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고, 하나님이 없어도 네가 행복할 수 있다 라는 것, 네가 하나님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심어놓은 겁니다. 여기에 모든 인생들이 속고 거짓말에 속고 살아가요. 그리고 틀린 성공을 심었는데 바로 물질 기준으로, 세상 기준으로 육신 기준으로 모든 성공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요. 그게 창세기 6장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고 느끼고 모든 판단하는 것들이 세상적인 거예요, 육신적인 거예요. 물질적인 것이예요. 그래서 남들보다 좀 더 좋은 위치에 있고, 좀 더 많은 재산을 가졌으면 축복 받았다 하고요. 그게 전부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 아닙니까? 이게 바로 틀린 성공입니다. 악한 사탄이 심어놓은 틀린 성공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모르게 기준 자체가 틀린 거예요. 세상적인 기준, 육신적인 기준가지고 성공했느니, 성공하지 않았느니 그것을 판단하고 있어요. 그리고 가짜성공과 틀린 성공의 그 결과로 온 것이 바로 실패한 성공입니다. 창세기11:4절에 나오는 결국 무너지는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 속에서 인생들은 살아가요. 누구나 다 여기서 예외될 수 없습니다. 가짜 성공 속에서, 틀린 성공 속에서, 또 실패한 성공으로 살아가는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 일어나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일단 경쟁하고 싸워야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서 발버둥치지 않습니까? 싸워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래서 경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데 오는 결과가 어떻습니까? 결국은 우울증으로, 정신분열로, 공황장애로, 환청으로. 인생 속에 사람들이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들이 가득 차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결국 잘못된 것이 숨겨져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여러분, 사실 그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녀만큼도 내 마음대로 못하고 가족만큼도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알고 보면 그 어떤 것도 우리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니면 사단인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말씀했습니다. 악한 사단이 인생의 주인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상 숭배하고 그러니까 종교생활합니다. 우상숭배하고 종교생활하면 할수록 사단의 역사 속에서 결국은 마음과 생각이 병들고 육신에 온갖 우환, 질고가 찾아오게 되어 있고 그렇게 살다가 결국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지옥 배경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러한 삶이 그대로 또 우리 후대에게 유산으로 물려지고 그 어느 누구도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이 속에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붙여진 이름이 오늘 1절에도 보면 “거룩한 형제들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구별하였습니다. 거룩한 형제들. ‘거룩’이라는 말은 부르심을 받은 자, 다시 말하면 불러냄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구별했다는 말이고 여러분, 거룩이라면 구별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인생의 문제 속에서 저와 여러분을 완전히 구별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축복 가운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현장에 세워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그리스도는 여러분, 우리 인생을 멸망으로, 고통으로 끌고 가는 마귀를 멸하시는 참 왕이십니다.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 예언대로, 그대로 성취되었는데 유한일서 3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말씀했습니다. 많은 인생들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참 선지자로 오셔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지은 죄들이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 조상들이 지은 원죄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은 원죄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짓는 죄들, 그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일어나는데 참 제사장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 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갈라디아 3장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의 근원의 축복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축복이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인생의 빠져나올 수 없는 열두 가지 문제 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별하시고 거룩한 형제들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저와 여러분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내 인생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누가 붙잡고 가느냐?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붙잡고 나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고백을 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우리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내 인생을 그 때부터 누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붙들고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 위해서 몸부림치지 않아도 됩니다.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들고 가기 때문에. 믿습니까? 이 어마어마한 축복이 바로 구별된 자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오늘 그래서 본문에 보면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여러분, 함께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절 마지막에 보면 이 예수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고 있는데 이 예수가 어떤 분이냐?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시다 했습니다.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다. 여러분, 사도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에 보냄 받았습니다. 왜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갖고 있는 죄, 죄로 인한 심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구원하시기 위해서.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느냐?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느냐? 마태복음 9장 13절입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했습니다. 여러분, 그 어느 누구도 죄인인 부분을 부정할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인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잘못해서 교도소 가는 그런 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실. 니체는 목사 아들이었지만 완전히 정신이 돌아서 뭐라 했느냐? 봐라,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 하지 않았느냐? 여기서 니체는 그 죄인을 교도소에 들어가서 잘못되어 있는 그 사람들을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그 죄만 죄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더 큰 죄가 있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죄입니다. 원죄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9장 13절에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했습니다. 의인을 구원하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반드시 심판받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를 사도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이시며 또 대제사장이신. 여러분, 대제사장이 하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개 역할을, 중보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먼저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전에 짐승을 잡아서 피를 가지고 자기의 죄를 먼저 속함 받고 그 다음에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피를 가지고 나아가서 백성들의 죄를 속함 받는 것이 대제사장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 27절에 보면“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여러분, 대제사장이 하는 일들은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잡고 그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는 죄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 지을 때마다 피를 흘려서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어떤 면에서 불완전하고 반복적인 제사입니다. 여러분, 죄 지으면 죄 짓는 그때그때마다 짐승 잡아가지고 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불완전하고 또 반복적인 그 모든 죄 속함 받는 그 방법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해결하셨는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속죄물로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드리신 것입니다. 우리 대신 자신을 드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11절, 1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했습니다. 매번 피 들고 들어갈 필요 없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속죄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것도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 붙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연약함과 어떤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우리 인생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사 단번에 자신의 몸을 드려서 영원한 속죄물이 되신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으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자유함과 해방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께서 사도시며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사도로서, 우리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 예수를 붙잡으라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는 늘 죄 가운데 살 수밖에 없지만 그때그때마다 정말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신 그 그리스도를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자유함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그런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유일하신 그리스도
두 번째입니다. 왜 예수를 바라보라 하느냐? 2절에서 6절에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히브리 기자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여러분, 사실 오늘 히브리 기자가 모세와 그리스도를 2절에서 6절에 비교하면서, 대조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당시에 히브리인들 중에 그리스도 복음을 받아들여서 개종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통 유대인들이 가만있지 않습니다. 사실은 이 히브리인들, 유대인들 가운데 그리스도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개종한 사람들을 자꾸 유대교로 다시 돌아오라고 회유를 합니다. 그러면서 압력을 가합니다. 너희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올바른 구원자가 될 수 없다, 그러면서 자꾸 압력을 가합니다. 그러니까 히브리 기자가 모세와 그리스도에 대한 비교를 하면서 너희가 지금 받아들인 이 복음, 그리스도는 진짜 우리의 구주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들이 세상의 흐름에 떠내려가려고 하고, 또 그 당시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기 때문에 로마가 물리적인 핍박을 자꾸 가하니까 자기 자리에 대해서 이탈하려는 사람들이 자꾸 나옵니다. 여러분, 말이 예수 믿는 사람들 핍박하는 부분이지, 그런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이 당시에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 잡아 죽이고 돌로 쳐 죽이고, 이런 핍박들이 일어나니까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모르게 자기 자리를 자꾸 이탈하려는 생각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끝까지 승리할 것을 말씀하면서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한 것입니다. 왜 모세를 비교했느냐?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유대인들 가운데 모세는 민족의 지도자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추앙 받는 존재 정도가 아니라 신앙 생활의 롤모델이 누구냐? 모세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에게 그 생활의근거가 무엇입니까? 율법 아닙니까? 그런데 그 율법이 누구로부터 수여되었습니까? 모세로 말미암아서 수여되었어요 그렇잖아요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누가 뭐래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킨 민족의 지도자입니다. 이런 모세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세를 비교하면서, 모세도 위대하고 모세도 훌륭하지만은, 그러나 그 모세보다도 오히려 더 우월한 것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오늘 2절에 한번 보십시오.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여기에 신실함에서는 모세를 뛰어줍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그는 여기에 그리스도를 말하거든요 신실한 면에 있어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신실하고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처럼, 그리스도가 모세처럼 신실하였다 말했어요. 유대인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그러면서 여기서 참된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깨닫게 되지요 우리는 내가 맞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무조건 상대방의 의견 잘못되었다고 까뭉개잖아요. 근데 오늘 히브리 기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유대인들 뛰어줍니다. 신실함에서는 모세도 그리스도도 다 신실하다. 그러면서 본 의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 3절입니다.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여기에 집지은 자가 나오고, 집이 나옵니다. 신실함에서는 모세나, 그리스도나 같다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바로, 3절에 보면, 히브리 기자가 유대인들 향해서 이야기 하는데 모세는 집이다. 그리스도는 집 지은 자다 여러분, 집은 무엇을 말합니까? 집은 모세를 이야기 하고 집 지은 자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집은 지은 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집은 피조물이란 말이에요. 집지은 자란 말은 창조주란 말이에요 신실함에서는 그리스도나 모세나, 같을 수 있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모세가 신실하다 할지라도 피조물이란 사실입니다.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주관하고 함께 하셨던 그 그리스도가 창조주란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집과 집지은 자를 비교하면서, 여러분 모세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신실함으로 나타났냐. 민수기 12장 7절에 보면, 모세를 일컬어서 온 집에 충성된 이였더라. 했어요. 여기에 충성됨이란 말은 신실하였다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그러나, 아무리 신실한 모세였지만은 결국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이에요 오직 그리스도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관여했던 창조주란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신 분인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5절, 6절에 덩달아 이어서 설명하기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절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여기에 보면, 모세는 신실함을 종으로써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누구로 써요, 아들로써 여기에 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십니까? 유대인들 가운데 아들은 상속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상속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상속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모세는 종으로써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아들로써, 모든 만물을 상속받는 창조주요 아들로써 신실하였음을, 종과 아들임을 비교하면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에 유일한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될 당위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당위성에 대한 부분들입니다. 집이고 집지은 자고, 종이고, 아들이다. 피조물이고, 창조주고, 종이지만은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들 상속받은 아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된다.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이 시대 속에 던져진 메시지였다면 은, 저는 이 부분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될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없어져가고요, 현장에 복음이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재앙이 일어나고 교회들조차도 복음을 말하지 않고 있어요. 오늘 우리가 찬양대 찬양 드렸던 것처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만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만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하는 교회가 나와야 되요. 하나님이 찾는 교회는 어떤 교회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강조하는 것 중요해요 어떻게 살아야 될까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생에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할 순 없는 겁니다. 오직 그리스도 유일성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우리 교회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모든 교회들이 종교, 다원주의를 찾아가요 어느 것이나 열심히 믿으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현장에서 비록 핍박받고 어려움 당한다 할지라도 사람들 손가락질 당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 자이심을 말하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하는 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에 저와 여러분 쓰시는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6절입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에 방법입니다. 6절 마지막에 보면,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삶의 방법이 뭡니까? 소망의 확신을 가지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에요. 너희들이 소망하고 있는 그 내용에 대해서 확신가지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참된 소망은 무엇입니까? 바라봄의 참된 실체는 뭡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진짜 소망해야 될 부분들은 그리스도 밖에 없어요. 우리의 바라봄의 실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신 가지라 이 말입니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요 그다음에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은 먼저, 우리가 소망의 내용인 그리스도를 굳게 확신하고, 또, 여기에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은 여러분, 여러분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자랑하기를 원하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셔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짓밟히고 있는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자랑하기를 원하세요. 바울은 다메섹 도성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많은 가진 배경들 많은 가진 권력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최고의 고상한 지식이기 때문에 자기는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여러분 어떤 면에서 잘못 보면 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소극적인 부분들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그 당시에 복음, 십자가는 모든 사람의 혐오대상입니다. 저주의 상징이고, 재앙의 상징입니다. 실패의 상징이 뭐냐? 십자가입니다. 로마 제국 하에 십자가는 저주받은 저주의 상징이고, 재앙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오히려, 그것을 자랑한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지금 현장 속에서 정말 그리스도로 확신하고, 그 그리스도로 자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삶에 방법입니다. 우리의 모든 하나교회 성도들 어느 현장, 어떤 자리에 있던지 간에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시고 그리스도만을 드높이고 그리스도만 자랑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모든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고, 한 시대를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1월 2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6)
서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따라 뇌에 각인 되어지고 삶으로 연결 되어져서 체질이 됩니다. 성공과 실패를 좌우 하는 것도 생각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 중 응답은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입니다(빌4:6-7). 사단이 공격하는 통로도 마음과 생각입니다(가롯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 - 요13:2 / 아나니아의 마음에 사단이 가득 - 행5:3).
예수를 깊이 생각 해야 됩니다. 깊이 생각 한다는 것은 집중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체질 되어야 됩니다.
왜 예수를 깊이 생각 해야 합니까?
1.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기에(1)
가.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음 - 마지막에 들어갈 영원한 목적지가 하늘나라
1) 우리가 사는 현장 - 세상 임금, 세상 신(사탄)
가짜 성공(창3장), 틀린 성공(창6장), 실패한 성공(창11장)을 심음
잘못 된 답을 주고(재앙의 불씨 - 행13, 16, 19장), 개인이 멸망 6가지 속에서 살게 됨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 - 거룩한 형제들(부르심을 받은 자, 구별 된 존재)
3) 구별 된 축복을 주심(벧전2:9) - 죄, 저주에서 해방(롬8:1-2, 갈6:14), 길을 열어 주심(롬3:23), 사탄의 머리를 박살 내심
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 되심
1) 사도(보내심을 받은 자) - 죄인을 구원하러 오심(마9:13)
2) 대제사장(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 - 단 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심(히7:24),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심(히9:11-12)
2. 유일하신 그리스도(2-6) -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
가. 비교 할 수 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
1) 기독교로 개종 히브리인들을 다시 돌아오도록 회유
2) 개종 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휩쓸림
나. 모세와 그리스도
1) 모세 - 히브리인들의 신앙 롤 모델, 민족의 지도자
2) 모세보다 우월 하신 그리스도(2-3) - 집(모세, 지어진 것, 피조물), 집 지은 자(그리스도, 지은 자, 창조주)
다. 그리스도의 당위성 -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깊이 생각, 붙잡고, 전달
결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을 방법이 있습니다(6).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잡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된 소망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현장에서 자랑 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고 자랑함으로 한 시대를 살리는 응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6)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히3:1~6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정말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서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만을 경배하고요,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만을 선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이 땅이 살아나게 되어 있고, 재앙의 역사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이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재앙의 역사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오늘도 최고로 은혜 받으시고 힘을 회복하는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제가 우리 렘런트로부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고 또 의미가 있는 편지를 한통 받았습니다. 편지 안의 내용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내일이면 제 인생의 아주 중요한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어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신년에 주신 예수를 바라보라 그 메시지를 지금 다시 들으면서 지금 목사님께 펜을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교회의 기도의 배경 속에, 또 목사님의 기도의 배경 속에 자라왔는데 너무 송구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들 속에서 불신앙에 빠지지 않고, 불신앙에 빠져서 하나님의 응답을 놓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또 하나님이 주신 언약들을 다 이루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약속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주신 이 구원의 역사가 제게만 갇혀지지 않도록, 또 전도의 역사들이 우리 가정, 가문에만 그치지 아니하도록 제게 주신 하나님의 전도와 선교를 위한 부분들, 그 부분들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영적인 서밋에 서는 그런 응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쭈욱 보면서 역시 렘런트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고요, 또 그 편지를 제게 전달한 그 자매의 영적인 상태들을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불신앙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이라 할지라도 그 불신앙에 빠지지 아니하고, 실수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썼어요. 그래서 이 큰 구원의 역사가 내게만 갇혀지지 않도록, 흘러가도록 하길 원하는 소원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또 전도의 역사들이 내 가정과 가문에 그치지 않도록, 이 전도가 흘러가서 남편을 살리고 가문을 살리고 또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기는 오직 영적인 서밋에 서기를 기도로서 원하고 있습니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참 또 많은 기도를 담게 되는 그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주어진 환경과 사건과 일들 속에서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생각이 곧 그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또 어디에 있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그것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생각은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음에 담긴 것은 그게 몸으로 연결되고요,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오는 것은 그게 뇌로 각인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과 우리의 몸의 상태를 놓고 보고 거기에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과 생각입니다. 그만큼 마음과 생각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이 뇌에 각인되면서 그게 우리의 삶의 체질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응답 중에 응답이 있다면 빌립보4:7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응답 중에 응답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이 지키신다. 가장 귀중한 응답이 마음과 생각이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4:23절에도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이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타난다” 말씀했습니다. 네 마음을 지키라 그만큼 마음과 생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응답의 가장 중요한 응답이 마음가 생각이라면 악한 사탄이 공격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무엇이냐 하면 마음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요한복음13:2절에 보면 이미 가룟 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예수를 팔 생각을 집어 넣었다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를 팔 생각을 사탄이 집어넣으니까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아버린 겁니다. 사도행전 5:3절에도 베드로가 지적하지요. 아나니아에게 “네 마음에 사탄이 가득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뇌와 연결되게 되어 있고요, 그로 말미암아 모든 역사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가 거기에 따라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인 우리 인간이 어느 곳에 집중하면 역사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악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영적인 존재라는 말은 영적인 부분에 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이 주어졌다라는 말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부분에 집중하게 되면 악령의 역사가 일어나든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배시간에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 시간에 엉뚱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 여러분 우리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냥 멍하니 예배시간 참여하게 되면요 나도 모르게 실패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게 결국 영혼 속에 다른 것들, 틀린 것들이 자꾸 예배 시간에 각인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신앙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 어떤 생각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 여러분 영혼 속에 각인되어지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냥 멍하니 앉아 계신다 다른 생각들을 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실패를 해도 무엇 때문에 실패하는 줄도 모릅니다. 그냥 오는 것이 아닌데,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 집중함으로 말미암아 치유 받는 그런 축복된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1절에 마지막에 이야기 하고 있지요. 여기에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골똘하게 생각하면서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24시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로 완전 체질화 되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태복음6장에 보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는 부분이 나오지요. 거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피는 백합화를 생각해 보라. 여러분 공중에 나는 새, 들이지도 아니하고 먹이지도 않는데 살아남고 새끼를 낳고 번성하잖아요. 또 들에 나는 백합화 자라나는 것을 생각해 보라 했습니다. 그때 말하는 이 생각은 그냥 생각이 아니지요. 들의 백합화와 공중에 나는 새, 그것을 통해서 주는 교훈들을 생각하라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생각 속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게 될 때에 그로 말미암아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 어느 날 하나님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 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시는가?
1.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
그 첫 번째입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여기에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형제들아~ 그것도 거룩한 형제들아~그렇습니다. 여기에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지금 저와 여러분의 배경이 하늘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에 들어가야 될 배경이 하늘나라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이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살아가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땅의 살아가는 모든 삶의 모습들을 보면 실제로 우리는 하늘의 속한 자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러분 지금 세상은 어떠합니까? 여러분 세상은 요한복음16:11절에 있는 말씀처럼 세상 임금이 장악하고 있어요. 고후4:4절에 있는 말씀처럼 세상 신이 이 땅을 장악하고 있는데 사망의 권세가 모든 세상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여기에 세상 임금, 세상 신은 누구를 말하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마귀, 곧 사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사탄이 이 땅의 임금 노릇하고 있고, 신 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면요 가짜 성공을 심었고, 틀린 성공을 심었고, 실패한 성공을 심었습니다. 이게 사탄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속에 심은 거예요. 가짜 성공이 무엇입니까? 창세기3장에 네가 하나님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 라는 겁니다. 네가 하나님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이 없어도 행복합니까? 하나님 없어도 성공합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다 그 말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될 존재라는 사실이예요.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참 행복과 안식과 축복을 누리며 지음 받은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탄은 가짜 성공을 우리에게 심어서 하나님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고, 하나님이 없어도 네가 행복할 수 있다 라는 것, 네가 하나님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심어놓은 겁니다. 여기에 모든 인생들이 속고 거짓말에 속고 살아가요. 그리고 틀린 성공을 심었는데 바로 물질 기준으로, 세상 기준으로 육신 기준으로 모든 성공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요. 그게 창세기 6장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고 느끼고 모든 판단하는 것들이 세상적인 거예요, 육신적인 거예요. 물질적인 것이예요. 그래서 남들보다 좀 더 좋은 위치에 있고, 좀 더 많은 재산을 가졌으면 축복 받았다 하고요. 그게 전부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 아닙니까? 이게 바로 틀린 성공입니다. 악한 사탄이 심어놓은 틀린 성공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모르게 기준 자체가 틀린 거예요. 세상적인 기준, 육신적인 기준가지고 성공했느니, 성공하지 않았느니 그것을 판단하고 있어요. 그리고 가짜성공과 틀린 성공의 그 결과로 온 것이 바로 실패한 성공입니다. 창세기11:4절에 나오는 결국 무너지는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 속에서 인생들은 살아가요. 누구나 다 여기서 예외될 수 없습니다. 가짜 성공 속에서, 틀린 성공 속에서, 또 실패한 성공으로 살아가는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 일어나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일단 경쟁하고 싸워야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서 발버둥치지 않습니까? 싸워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래서 경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데 오는 결과가 어떻습니까? 결국은 우울증으로, 정신분열로, 공황장애로, 환청으로. 인생 속에 사람들이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들이 가득 차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결국 잘못된 것이 숨겨져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여러분, 사실 그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녀만큼도 내 마음대로 못하고 가족만큼도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알고 보면 그 어떤 것도 우리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니면 사단인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말씀했습니다. 악한 사단이 인생의 주인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상 숭배하고 그러니까 종교생활합니다. 우상숭배하고 종교생활하면 할수록 사단의 역사 속에서 결국은 마음과 생각이 병들고 육신에 온갖 우환, 질고가 찾아오게 되어 있고 그렇게 살다가 결국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지옥 배경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러한 삶이 그대로 또 우리 후대에게 유산으로 물려지고 그 어느 누구도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이 속에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붙여진 이름이 오늘 1절에도 보면 “거룩한 형제들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구별하였습니다. 거룩한 형제들. ‘거룩’이라는 말은 부르심을 받은 자, 다시 말하면 불러냄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구별했다는 말이고 여러분, 거룩이라면 구별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인생의 문제 속에서 저와 여러분을 완전히 구별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축복 가운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현장에 세워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그리스도는 여러분, 우리 인생을 멸망으로, 고통으로 끌고 가는 마귀를 멸하시는 참 왕이십니다.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 예언대로, 그대로 성취되었는데 유한일서 3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말씀했습니다. 많은 인생들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참 선지자로 오셔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지은 죄들이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 조상들이 지은 원죄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은 원죄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짓는 죄들, 그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일어나는데 참 제사장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 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갈라디아 3장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의 근원의 축복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축복이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인생의 빠져나올 수 없는 열두 가지 문제 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별하시고 거룩한 형제들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저와 여러분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내 인생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누가 붙잡고 가느냐?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붙잡고 나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고백을 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우리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내 인생을 그 때부터 누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붙들고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 위해서 몸부림치지 않아도 됩니다.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들고 가기 때문에. 믿습니까? 이 어마어마한 축복이 바로 구별된 자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오늘 그래서 본문에 보면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여러분, 함께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절 마지막에 보면 이 예수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고 있는데 이 예수가 어떤 분이냐?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시다 했습니다.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다. 여러분, 사도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에 보냄 받았습니다. 왜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갖고 있는 죄, 죄로 인한 심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구원하시기 위해서.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느냐?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느냐? 마태복음 9장 13절입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했습니다. 여러분, 그 어느 누구도 죄인인 부분을 부정할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인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잘못해서 교도소 가는 그런 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실. 니체는 목사 아들이었지만 완전히 정신이 돌아서 뭐라 했느냐? 봐라,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 하지 않았느냐? 여기서 니체는 그 죄인을 교도소에 들어가서 잘못되어 있는 그 사람들을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그 죄만 죄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더 큰 죄가 있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죄입니다. 원죄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9장 13절에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했습니다. 의인을 구원하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반드시 심판받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를 사도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이시며 또 대제사장이신. 여러분, 대제사장이 하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개 역할을, 중보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먼저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전에 짐승을 잡아서 피를 가지고 자기의 죄를 먼저 속함 받고 그 다음에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피를 가지고 나아가서 백성들의 죄를 속함 받는 것이 대제사장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 27절에 보면“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여러분, 대제사장이 하는 일들은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잡고 그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는 죄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 지을 때마다 피를 흘려서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어떤 면에서 불완전하고 반복적인 제사입니다. 여러분, 죄 지으면 죄 짓는 그때그때마다 짐승 잡아가지고 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불완전하고 또 반복적인 그 모든 죄 속함 받는 그 방법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해결하셨는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속죄물로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드리신 것입니다. 우리 대신 자신을 드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11절, 1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했습니다. 매번 피 들고 들어갈 필요 없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속죄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것도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 붙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연약함과 어떤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우리 인생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사 단번에 자신의 몸을 드려서 영원한 속죄물이 되신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으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자유함과 해방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께서 사도시며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사도로서, 우리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 예수를 붙잡으라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는 늘 죄 가운데 살 수밖에 없지만 그때그때마다 정말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신 그 그리스도를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자유함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그런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유일하신 그리스도
두 번째입니다. 왜 예수를 바라보라 하느냐? 2절에서 6절에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히브리 기자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여러분, 사실 오늘 히브리 기자가 모세와 그리스도를 2절에서 6절에 비교하면서, 대조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당시에 히브리인들 중에 그리스도 복음을 받아들여서 개종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통 유대인들이 가만있지 않습니다. 사실은 이 히브리인들, 유대인들 가운데 그리스도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개종한 사람들을 자꾸 유대교로 다시 돌아오라고 회유를 합니다. 그러면서 압력을 가합니다. 너희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올바른 구원자가 될 수 없다, 그러면서 자꾸 압력을 가합니다. 그러니까 히브리 기자가 모세와 그리스도에 대한 비교를 하면서 너희가 지금 받아들인 이 복음, 그리스도는 진짜 우리의 구주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들이 세상의 흐름에 떠내려가려고 하고, 또 그 당시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기 때문에 로마가 물리적인 핍박을 자꾸 가하니까 자기 자리에 대해서 이탈하려는 사람들이 자꾸 나옵니다. 여러분, 말이 예수 믿는 사람들 핍박하는 부분이지, 그런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이 당시에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 잡아 죽이고 돌로 쳐 죽이고, 이런 핍박들이 일어나니까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모르게 자기 자리를 자꾸 이탈하려는 생각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끝까지 승리할 것을 말씀하면서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한 것입니다. 왜 모세를 비교했느냐?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유대인들 가운데 모세는 민족의 지도자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추앙 받는 존재 정도가 아니라 신앙 생활의 롤모델이 누구냐? 모세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에게 그 생활의근거가 무엇입니까? 율법 아닙니까? 그런데 그 율법이 누구로부터 수여되었습니까? 모세로 말미암아서 수여되었어요 그렇잖아요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누가 뭐래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킨 민족의 지도자입니다. 이런 모세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세를 비교하면서, 모세도 위대하고 모세도 훌륭하지만은, 그러나 그 모세보다도 오히려 더 우월한 것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오늘 2절에 한번 보십시오.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여기에 신실함에서는 모세를 뛰어줍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그는 여기에 그리스도를 말하거든요 신실한 면에 있어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신실하고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처럼, 그리스도가 모세처럼 신실하였다 말했어요. 유대인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그러면서 여기서 참된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깨닫게 되지요 우리는 내가 맞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무조건 상대방의 의견 잘못되었다고 까뭉개잖아요. 근데 오늘 히브리 기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유대인들 뛰어줍니다. 신실함에서는 모세도 그리스도도 다 신실하다. 그러면서 본 의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 3절입니다.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여기에 집지은 자가 나오고, 집이 나옵니다. 신실함에서는 모세나, 그리스도나 같다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바로, 3절에 보면, 히브리 기자가 유대인들 향해서 이야기 하는데 모세는 집이다. 그리스도는 집 지은 자다 여러분, 집은 무엇을 말합니까? 집은 모세를 이야기 하고 집 지은 자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집은 지은 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집은 피조물이란 말이에요. 집지은 자란 말은 창조주란 말이에요 신실함에서는 그리스도나 모세나, 같을 수 있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모세가 신실하다 할지라도 피조물이란 사실입니다.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주관하고 함께 하셨던 그 그리스도가 창조주란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집과 집지은 자를 비교하면서, 여러분 모세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신실함으로 나타났냐. 민수기 12장 7절에 보면, 모세를 일컬어서 온 집에 충성된 이였더라. 했어요. 여기에 충성됨이란 말은 신실하였다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그러나, 아무리 신실한 모세였지만은 결국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이에요 오직 그리스도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관여했던 창조주란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신 분인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5절, 6절에 덩달아 이어서 설명하기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절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여기에 보면, 모세는 신실함을 종으로써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누구로 써요, 아들로써 여기에 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십니까? 유대인들 가운데 아들은 상속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상속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상속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모세는 종으로써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아들로써, 모든 만물을 상속받는 창조주요 아들로써 신실하였음을, 종과 아들임을 비교하면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에 유일한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될 당위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당위성에 대한 부분들입니다. 집이고 집지은 자고, 종이고, 아들이다. 피조물이고, 창조주고, 종이지만은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들 상속받은 아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된다.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이 시대 속에 던져진 메시지였다면 은, 저는 이 부분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될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없어져가고요, 현장에 복음이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재앙이 일어나고 교회들조차도 복음을 말하지 않고 있어요. 오늘 우리가 찬양대 찬양 드렸던 것처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만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만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하는 교회가 나와야 되요. 하나님이 찾는 교회는 어떤 교회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강조하는 것 중요해요 어떻게 살아야 될까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생에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할 순 없는 겁니다. 오직 그리스도 유일성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우리 교회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모든 교회들이 종교, 다원주의를 찾아가요 어느 것이나 열심히 믿으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현장에서 비록 핍박받고 어려움 당한다 할지라도 사람들 손가락질 당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 자이심을 말하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하는 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에 저와 여러분 쓰시는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6절입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에 방법입니다. 6절 마지막에 보면,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삶의 방법이 뭡니까? 소망의 확신을 가지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에요. 너희들이 소망하고 있는 그 내용에 대해서 확신가지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참된 소망은 무엇입니까? 바라봄의 참된 실체는 뭡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진짜 소망해야 될 부분들은 그리스도 밖에 없어요. 우리의 바라봄의 실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신 가지라 이 말입니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요 그다음에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은 먼저, 우리가 소망의 내용인 그리스도를 굳게 확신하고, 또, 여기에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은 여러분, 여러분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자랑하기를 원하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셔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짓밟히고 있는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자랑하기를 원하세요. 바울은 다메섹 도성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많은 가진 배경들 많은 가진 권력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최고의 고상한 지식이기 때문에 자기는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여러분 어떤 면에서 잘못 보면 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소극적인 부분들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그 당시에 복음, 십자가는 모든 사람의 혐오대상입니다. 저주의 상징이고, 재앙의 상징입니다. 실패의 상징이 뭐냐? 십자가입니다. 로마 제국 하에 십자가는 저주받은 저주의 상징이고, 재앙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오히려, 그것을 자랑한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지금 현장 속에서 정말 그리스도로 확신하고, 그 그리스도로 자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삶에 방법입니다. 우리의 모든 하나교회 성도들 어느 현장, 어떤 자리에 있던지 간에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시고 그리스도만을 드높이고 그리스도만 자랑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모든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고, 한 시대를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1월 2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6)
서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따라 뇌에 각인 되어지고 삶으로 연결 되어져서 체질이 됩니다. 성공과 실패를 좌우 하는 것도 생각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 중 응답은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입니다(빌4:6-7). 사단이 공격하는 통로도 마음과 생각입니다(가롯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 - 요13:2 / 아나니아의 마음에 사단이 가득 - 행5:3).
예수를 깊이 생각 해야 됩니다. 깊이 생각 한다는 것은 집중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체질 되어야 됩니다.
왜 예수를 깊이 생각 해야 합니까?
1.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기에(1)
가.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음 - 마지막에 들어갈 영원한 목적지가 하늘나라
1) 우리가 사는 현장 - 세상 임금, 세상 신(사탄)
가짜 성공(창3장), 틀린 성공(창6장), 실패한 성공(창11장)을 심음
잘못 된 답을 주고(재앙의 불씨 - 행13, 16, 19장), 개인이 멸망 6가지 속에서 살게 됨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 - 거룩한 형제들(부르심을 받은 자, 구별 된 존재)
3) 구별 된 축복을 주심(벧전2:9) - 죄, 저주에서 해방(롬8:1-2, 갈6:14), 길을 열어 주심(롬3:23), 사탄의 머리를 박살 내심
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 되심
1) 사도(보내심을 받은 자) - 죄인을 구원하러 오심(마9:13)
2) 대제사장(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 - 단 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심(히7:24),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심(히9:11-12)
2. 유일하신 그리스도(2-6) -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
가. 비교 할 수 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
1) 기독교로 개종 히브리인들을 다시 돌아오도록 회유
2) 개종 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휩쓸림
나. 모세와 그리스도
1) 모세 - 히브리인들의 신앙 롤 모델, 민족의 지도자
2) 모세보다 우월 하신 그리스도(2-3) - 집(모세, 지어진 것, 피조물), 집 지은 자(그리스도, 지은 자, 창조주)
다. 그리스도의 당위성 -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깊이 생각, 붙잡고, 전달
결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을 방법이 있습니다(6).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잡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된 소망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현장에서 자랑 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고 자랑함으로 한 시대를 살리는 응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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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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