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대제사장-예수를 바라보라
2018-02-1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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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큰 대제사장 – 예수를 바라보라”
(히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4~16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구정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보니까 우리 출타하신 분들도 많지만 또 설 명절 당해서 고향으로, 교회로 찾아오신 렘런트들 가족들도 많이 계시는데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 하십니다.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정말로 우리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자로 세워지고, 또 제자 남기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찬양대 찬양 드렸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제자 되어지고, 제자 남기는 그런 축복된 생애로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정 명절이지만 교회에서는 명절이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바쁜 일정들이 지나갔습니다. 어제까지 다민족 수련회가 우리 교회에서 54명 정도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어졌고요, 그 다음에 중남미 40일 집중 훈련도 지난 주간에 개강예배를 시작으로 진행되어져서 지금 계속해서 3월12일까지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구절 명절 때 많은 일손들 때문에 걱정을 했습니다마는 걱정할 필요가 없이 다 설 명절을 반납하고 이것이 나의 선교다라는 마음들을 가지고 모두가 하나같이 아름답게 헌신해 주시고, 식당 봉사는 봉사대로 간식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간식 담당하는 사람들대로, 이런 저런 수고하고 또 아름답게 헌신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중남미 10개국이 집중훈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보니까요 우리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들을 가지고 헌신을 하시는지 물질로도 헌신을 하고, 또 앞서서 식당을 맡은 책임 중직자는 이분들에게 어떻게 해 드리는 것이 편하게 해 드리고, 음식을 어떻게 잘 해 드릴까 이런 마음들 때문에 밤잠이 안온다고 해요. 그런 마음에 선교를 향한 중심이지요. 그러면서 보니까 그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분들이 나오셔서 일을 하시는데 우리 원로목사님 사모님도 계속 나오셔서 일하시고, 또 이런 저런 많은 분들이 함께 거들어서 정말로 아름답게 귀하게 훈련들이 계속 되고 있는 이런 부분들을 보고 참 감사하다, 행복하다 하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서울에 계시는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뭐 굳이 그렇게 어렵게 안 좋은 환경들 속에서 훈련을 시켜나갈 필요가 있느냐 아니 돈만 주면 본부에 훈련을 의뢰해서 좋은 환경들 속에서 진행되면 좋지 않으냐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그 말을 듣는 가운데서 글쎄 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사실 참된 제자라는 부분들은요 환경이 좋든 나쁘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얼마만큼 정말로 그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있고, 그들도 어떻게 함께 하면서 어떠한 마음으로 훈련에 참여하고 이런 배경들이 전부 다 합쳐져서 제자들이 세워지는 부분들 이거든요. 지금 우리가 중남미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중남미 신학교를 위해서 애써 모은 돈을 헌금하는 분들도 있고 또 어떤 분은 훈련을 앞두고 아이들 급식하는 데에 들어가서 한 달 받은 월급을 고스란히 중남미 훈련에 써 주십시오 하고 내어 놓으신 어르신도 있고요, 이런 분들의 기도가 담긴 헌금들, 또 정말 나의 선교라고 생각하면서 마음과 중심을 다해서 함께 돕는 한 분 한 분의 수고들이 다 합쳐져서 결국 제자가 훈련되어지고, 세워지는 것이지요. 이번에 참여하는 훈련생들 가운데서도 보면 한 가족 6명이 동시에 다 나온 가족도 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을 그냥 놔 둘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 같이 데리고 나왔는데 6명 일가족이 다 나왔어요. 그러면 거기에 드는 돈 경비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리고 또 어떤 신학생 한명은 밤에는 야간 신학교 세뗌 신학교에 출석하고 공부하면서 낮에는 여기에 훈련에 참석하기 위해서 길거리에 나가서 사탕수수를 팔아 모아서 이 훈련에 참여하고 있어요. 사실 이런 중심을 가지고 이 훈련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런 중심을 가지고 모인, 그러니까 환경들이 물론 좋으면 좋겠습니다마는 이들에게는 그런 환경들이 그렇게 썩 이들에게 영향을 주지를 못해요. 환경이 문제가 아니예요. 사실은... 어떻게 내가 집중해서 훈련받고 인도받으면서 한 나라를 살리는 제자로 세워질 것인가 여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물론 환경이 좋으면 좋겠습니다마는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하나 되어서 훈련 받고 마치고 나면 전체 포럼을 하고 이런 부분을 보면서 결국 이런 가운데서 제자가 세워지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우리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이 일에 헌신해 주신데 대해서 너무나 감사함을 드리고요, 분명한 것은 여러분의 귀한 사역이 여러분은 작은 사역 같지만 중남미 37개 나라를 살리는 귀한 제자들이 세워지는 축복된 사역인 줄 믿습니다. 계속해서 여러분 기도해 주시고 함께 인도받아 주시기 바랍니다.지난 주간에 선교대회가 있었고, 그 전 주간에 선교사 합숙이 전체적으로 진행되어졌습니다. 한해 모든 민족을 치유하는 선교운동이라는 주제로, 선교현장에 성취될 메시지를 주셨는데 먼저 선교지에 중직자 집중훈련, 선교지에 렘런트 집중 훈련으로 인도를 받으라 그렇게 말씀을 주시면서 본 선교사 대회 때는 237개 나라를 치유하고 237개 나라 서밋을 찾으라 라는 말씀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진짜 능력의 복음을 가지고 집중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치유받고 서밋의 응답을 가지고 전 세계를 살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특별히 오늘 새벽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집중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치유하면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로 개인화하며 어디, 어느 현장, 언제든지 사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임마누엘 하시는 나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집중훈련입니다. 특별히 한 해 선교지에 미션이 주어졌는데 중직자들 중심한 집중훈련, 렘런트들 중심한 집중훈련, 그래서 결국은 치유하고 서밋으로 찾으라 말씀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 선교지 현장을 위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해야 될 부분들이고요, 선교지 현장만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필요한 답입니다. 우리에게 진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을 누리는 나의 방법을 찾는 이 집중훈련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가면 갈수록 우리도 모르게 분열하고, 분산되어지고, 어느 곳에 집착되어지게 되어있고,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정말 우리 자신들이 참된 말씀 가지고 각인, 뿌리, 체질을 바꾸어 나감으로 말미암아 영적 시스템이 되어짐으로 나만의 귀중한 집중의 비밀을 가지고 치유와 함께 서밋의 응답을 누리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우리가 히브리서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참된 안식-예수를 바라보라는 주제를 우리가 히브리서4:1~11절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았지요. 사실 히브리서4장 전체가 같이 이어지는 부분들입니다. 히브리서4:1~16절까지 나오는 전체 내용들이 이어지는 부분들인데, 참된 안식이라는 주제로 이어지는 부분들인데 먼저 참된 안식에 들어가는 비밀이 무엇이냐 지난번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했어요. 모든 인생들이 안식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느 인생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구원이 필요치 않은 인생이 없어요. 그러면 그 구원의 역사, 참된 안식이 어디에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말씀을 나누었어요. 그리고 오늘 그냥 넘어갔습니다마는 히브리서4:12~13절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운동력이 있다. 그래서 좌우의 날선 검과 같이 쭉 말씀이 나오면서 이 말씀 앞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 없을 것이다. 4:12~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마는 여기에 한 부분만 떼어놓아서 말씀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들도 있습니다마는 물론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은 전체 흐름 속에 보면 참된 안식이 결국은 말씀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지금 성경에는 활력이 있다고 말씀했는데 지난 성경 개혁개정 전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운동력이 있다 했습니다. 이 말씀에 중요하게 담겨진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 말씀이 우리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라는 말이예요. 우리가 넘어질지언정, 실수할지언정, 죄를 지을지언정, 우리가 넘어질 수 있잖아요. 실수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말씀 붙잡게 될 때에 그리스도 십자가 붙잡을때에 회복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어요. 굳이 우리가 실수할 필요없어요. 넘어질 필요없어요. 그러나 넘어질지언정, 실수할지언정, 우리가 그리스도 붙잡게 될 때에, 말씀 붙잡게 될 때에 그 말씀이 우리를 놓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은 승리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참된 안식은 말씀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냐? 말씀이 우리를 붙들고 계세요.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 참된 안식이다. 오늘 세 번째로 참된 안식은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했어요. 여러분 특별히 여기에 큰대제사장 이라고 나오지요. 4절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여러분 ‘대’ 라는 단어 속에 ‘크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그런데 왜 굳이 이 히브리서 기자가 대제사장이라고 하면 될 것인데 큰대제사장이라고 썼을까요? 대제사장과는 다르다는 말이지요. 차별이 있다라는 말이지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실은 1년에 한차례씩 지은 죄를 가지고 제사장 앞에 가면 대제사장이 그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대제사장들입니다. 속죄일에 한 번씩, 일 년에 한번 속죄일에 대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함 받는 것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이 제사장의 반열이 레위인인 아론의 반열이예요. 그래서 반열, 반차 같은 말인데 히브리서 5장에 보면 멜기세덱의 반차라고 나오는데 똑같은 말로 반차, 반열 같은 말이예요. 레위인인 아론의 후대들이 사실 제사장 그룹을 이루고 있는데 이 대제사장의 반열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느 정도로 중요하냐? 여러분 대제사장이 바뀌어지면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자유함을 받아요. 그만큼 대제사장이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그런 대제사장이 아니라 큰 대제사장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특별히 성경에 나오잖아요. 문둥병이 걸렸다 그 문둥병이 나았는지 안나았는지 그것을 누구에게 보여서 판결을 받느냐? 대제사장한테 가서 문둥병이 나았는지 안나았는지 판결 받게 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나았다고 하면 나은 거예요. 그만큼 대제사장이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그런 대제사장이 아니라 큰 대제사장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또 여러분 이 사람이 감옥에 갈 사람인지 가지 않을 사람인지의 죄를 범해서 감옥에 갈 사람인지, 가지 않을 사람인지의 그 판결도 누가 하느냐? 대제사장이 해요. 그런데 그 대제사장이 중요하다면 그런 대제사장과 다른 차별된 큰대제사장,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게되어요. 그 큰 대제사장이 누구시냐?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다른 제사장들과 다른 차별된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큰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식이 있는 것이다. 참된 우리를 위한 완전한 구원이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차별 시켜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참된 안식 속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의 걸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 어떤 분이신가?
그러면 첫 번째입니다. 큰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 어떤 분이신가? 14절에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바로 승천하신 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렇게 나오지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다. 그렇게 나옵니다. 큰 대제사장이 어떤 분이시냐 가장 중요하게 정의하고 있는 것인데 바로 승천하신 이다. 여기에서 승천하신다 라는 말의 의미와 목적을 우리가 제대로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5백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지요. 그러면서 내가 너희들이 본 그대로 다시 오리라 이런 의미의 승천이 아니예요.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승천하심의 의미들을 깨닫기 위해서는 히브리서 9장에 살펴보시면 알 수 있어요. 히브리서 9장 한번 보십시다. 히브리서9:11~12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여기 보세요. 여기에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이 땅의 육세 속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일 년에 한차례 들어가는 땅에 속한 그런 지성소가 아니라는 사실, 하늘에 속한 것임을, 하늘의 성소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사장으로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절 보십시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여기에 단번에 성소에 들어갔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일회적인 한 번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영원히 계속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늘의 성소를 이야기합니다.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제사장들이 매년 한차례씩 반복적으로 들어가는 그런 지성소가 아니라 하늘에 속하는, 창조에 속하지 아니하는 하늘의 성소를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야 될 하늘나라의 성소, 그 성소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소에 승천하셨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9:24,25,26절입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냥 위로 올라간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내용인데요.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서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으셔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 나셨느니라” 할렐루야!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자기를 제물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 그게 바로 승천하신 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려서 완성하신 구원의 역사, 하늘에 있는 영원한 성소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이 완전히 이루어진 사실들을 말하고 있는 이 승천하신 이, 여기에 대한 의미가 바로 승천하신 이의 의미이고 목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시라 했지요.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하는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 어떤 훌륭한 제사장들도 아무리 훌륭해도 제사장들 가운데서는 승천하신 이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이들이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4장 14절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장 14절 마지막에 보면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 마지막에 보면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여러분, 여기 굳게 잡을지어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언약을 붙잡고 확신하라는 말입니다. 힘을 가지고 집요하게 달라붙으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매달려 있으라는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승천하신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그 예수 그리스도, 이것을 굳게 붙잡으라는 말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는 말은 우리의 행위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아닙니다. 우리 편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구원이라는 것이 우리의 지성으로 얻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우리의 공덕으로 얻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의 완전함을 가지고 그것을 붙잡고 매달려 있으라는 말입니다. 여기 매달려 있다는 이 부분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우리 신앙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의 역사를, 그 구원의 역사를, 완전하게 이루신 그 구원의 역사를 붙잡고 우리는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확신 가운데 언약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신앙 생활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주셨느냐? 여러분,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이 당시에 유대교에서 복음 받고 기독교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이 힘을 가지고 핍박을 가하고 자꾸 돌아오라고 회유를 하니까 그 가운데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떠내려가지 않도록, 흔들리니까, 흔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떠내려가지 않도록 흔들리지 말라, 그래서 여기 하나님이 주신 언약 붙잡고 거기 매달려 있으라, 왜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큰 대제사장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주신 분이니까 그 사실을 흔들리지 말고 붙잡고 매달려 있으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다른 게 없습니다. 사실 언약 붙잡고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축복으로 이루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란 무엇입니까? 완전한 구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큰 대제사장으로 이루신 구원의 역사, 이것이 우리의 믿는 도리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붙잡고 우리가 흔들리지 아니하고 매달려 있게 될 때 하나님이 주신 승리의 축복을 우리가 누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뭐라 해도 세상은 가면 갈수록 힘듭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어렵다, 괴롭다, 힘들다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결국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사실 원죄 가운데 태어납니다. 그게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가운데 태어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원죄 가운데 태어납니다. 어떤 인생도 원죄 없이 태어나는 인생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을 잘 안 믿고 있습니다. 특히 중남미 현장에는, 지금 훈련받고 있는 중남미 현장에는 너무 강한 가톨릭의 뿌리 때문에, 행위를 강조하는 것 때문에 사실 아이들이 죽으면 지옥 간다, 예수 믿지 않는 아이들이 죽으면 지옥 간다, 이해를 못합니다. 사역 현장에 나가서 부딪히는 부분이 그 부분이고 어제도 보니까 사역하면서 메시지 가운데 그런 부분이 딱 나오니까 이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한 부딪힘이 오고 그 부분을 가지고 포럼되어지는 부분을 봤는데 왜냐하면 어릴 때 갓난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지옥 간다는 말을 이해를 못합니다. 여러분, 한 살을 살았던 구십 세를 살았던 전부 다 일생입니다. 모든 인생은 사실은 원죄 가운데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창세기 3장 가운데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 가운데서 태어납니다. 그런 가운데서 결국은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으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서 살아가는데 그게 우상숭배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6장, 19장.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안의 영적인 문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실력이 있든 없든 상관 없습니다. 많이 배웠든 안 배웠든 상관 없습니다. 가지고 있든 없든 상관이 없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국은 창세기 3장으로부터 시작된 그 영적 문제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불신자 상태 여섯 가지 아닙니까? 그래서 결국은 드러나니까 그것을 가지고 길을 모르니까 포장합니다. 답이 없으니까 포장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속이게 됩니다. 안 그러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속이게 됩니다. 그래서 포장하고 속이게 되는데 결국은 그래서 말세에 디모데후서 3장 13절에 보면 속고 속이는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 말씀하면서 마지막 13절에 보면 뭐라 했습니까?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결국은 속고 속이니까 모든 사람이 다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 힘든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그냥 거기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이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구약 성경에 예언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은 뭡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 그 메시야가 오셨는데 바로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사단의 모든 일들을 완전히 해결하시고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신 것입니다. 그 분이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뭐로요? 성령으로. 그리고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하심을 누리게 될 때 증거 누리게 되고 세계복음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증인 삼으셔서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면서 결국 그 분이 재림주로,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역사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마다 참된 승리가 보장된 축복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고 흔들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루신 일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큰 대제사장이 이루신 일들이 무엇이냐? 15절, 16절에 나옵니다만 먼저 15절에 보면 대제사장의 사역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대제사장의 사역이 세 가지로 나오는데 그 첫 번째 사역이 무엇이냐 하면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는 말입니다. 옛날 성경에는 체휼하신다고 나오는데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한계 속으로 들어와서 한계 없으신 하나님이 인간의 한계 속에 들어와서 우리의 연약한 모든 것들을 다 체험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받는 고통들, 우리가 받는 시험들, 우리가 아파하는 것들, 우리가 몸부림치는 부분들,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다 체험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여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치유의 축복이 보장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한 모든 일들, 여러분이 당한 모든 것들 주님이 다 체험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5절에 이 부분을 한 단어로 말씀하고 있는데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징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찔리고 상하고 징계 받음으로, 채찍에 맞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허물이 사함 받고 죄악을 용서함 받고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다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도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식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축복과 참된 기쁨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연약한 것을 친히 다 체험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것들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체험하셨기 때문에. 그러면서 두 번째로 큰 대제사장으로서 하신 일이 뭐냐? 여기 보면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았다. 그래서 시험 받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이해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28절에 보면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시험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은 바로 우리 자신들을 이해하기 위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히브리서 2장 18절에 보면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할렐루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저와 여러분을 능히 도울 수 있는 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5절 마지막에 뭐라 했습니까? 죄는 없으시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절에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큰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뭐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그러나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 분이 바로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일어나는 결과는 무엇이냐? 16절입니다. 16절,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동정하시고 우리의 모든 시험을 주님께서 대신 당하시고 죄 없으신 분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대신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신 일이 뭐냐? 첫 번째, 여기 나옵니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았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 용서함을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 세계에서 가장 큰 전제는 뭐냐?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꽃 중의 꽃이 뭐냐?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용서하심입니다.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긍휼하심을 입은 자가 된 것입니다. 믿습니까? 용서함을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 나오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이루어진 결과가 무엇이냐? 때를 따라서 돕는 은혜를 얻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오늘이 새날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에 우리가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여러분,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창세기 3장 현장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꾸 옛날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지 못하면 옛날로 자꾸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이유가 뭡니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하나님이 내게 주시기 때문에 나는 그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이 무엇이냐?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나아갈 때마다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여러분, 우리가 이 은혜 없이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날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고 그 다음 16절 마지막에 보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간다, 마치 자녀가 부모 앞에 나아갈 때 아무 거리낌 없이 나아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녀들이 자기 원하는 것 막 다 해 달라 하지 않습니까? 우리 집에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빠, 이리 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 왜, 하면 돈 십만 원 줘, 이야기합니다. 이유도 말 안 합니다. 돈 십만 원 줘, 이야기합니다. 왜, 하면 휴대폰 값 내야 하니까. 아니, 너는 뭔데 학생이 나보다 휴대폰 값이 더 많이 나오냐 이야기를 하면 두 달 밀린 거라고 합니다. 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휴대폰 좀 그만 만지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결국 줍니다. 안 주는 게 아니잖아요. 이게 자녀입니다. 부모에게 당당히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 있잖아요. 한 번씩 그냥 아빠, 이리 와! 가면 돈 줘! 줍니다. 이유는 묻죠. 줍니다. 자녀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지니라. 그 어떤 인생도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인생이 없었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저와 여러분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로마서 8장 34절에 보면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브리서 7장 25절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할렐루야!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우리를 의롭다, 죄 없다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면 죄 많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시고 의롭다 하셨습니다. 죄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거룩하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큰 대제사장 예수를 바라보라. 늘 항상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은혜와 사랑을 늘 기억하십시오. 성경의 시편 50편 22절에 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반대로 말하면 늘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들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와 그 은혜의 사랑을 늘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구원의 완전한 축복이 날마다 누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이루신 그 구원의 완전한 증거는 누구냐?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구원의 근거를 말씀하고 있는데 히브리서 5장 8절, 9절에 보면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누구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그럼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5장 9절~11절에 보면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로 우리를 세우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생명의 역사, 아무도 빼앗아갈 자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 29절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의 역사를 하나님의 손에서 아무도 빼앗아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 성경 한번 찾아봅시다. 마지막으로요. 히브리서 10장 35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여러분, 큰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 참된 승천하신 이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참된 생명으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승리케 되는 축복된 응답이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2월 1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큰 대제사장 - 예수를 바라보라
(히4:14-16)
서론: 모든 사람들은 안식과 구원을 찾습니다. 구원의 역사, 참된 안식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오게 됩니다. 그리고 참된 안식은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히4:12). 넘어지더라도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말씀이 우리를 놓지 않게 됩니다.
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대제사장이라는 단어 속에 “크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이스라엘의 백성의 죄를 해결, 대제사장이 바뀔 때 특별대사면, 모든 판결을 담당). 더 중요한 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식과 구원이 있습니다.
1.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 어떤 분이신가?
가. 승천하신 이(14) - 승천의 의미, 구체적인 목적
1) 단순한 하늘에 올라가는 승천이 아님 - 단 번에, 영원성을 가지고 지금까지도 계속 됨(히9:11-12)
2)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 몸을 재물로 삼음(히9:24-26)
나. 곧 하나님의 아들(14) -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
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승천 하심 - 완전한 구원을 완성
2)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음(14) - 그리스도께 매달려 있으라(행위, 공덕, 노력이 아님)
3) 그리스도로 완성 된 구원 -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성령으로 내주, 인도, 역사, 증거를 주심(우리가 믿는 도리)
2. 이루신 일(15-16)
가. 대제사장의 사역(15)
1) 연약함을 동정(체휼) - 연약함을 아시고 도와주심(사53:5, 마8:17), 참 치유가 보장
2) 모든 일에 시험을 받으심 - 시험 받는 우리를 능히 도우심(눅22:28, 히2:18)
3) 죄 없으신 분 - 죄를 범하지 않으시고 거짓이 없으심(벧전2:22)
나. 사역의 결과(16) - 우리에게 일어날 일
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긍휼하심을 얻음 - 용서함을 받음
2)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음 - 매일 새로운 은혜를 받음, 은혜로 살아감
3)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감 -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림(롬8:34, 히7:25, 롬8:30)
결론: 큰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을 늘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사50:22). 구원의 증거는 그리스도입니다(히5:9, 엡5:2, 갈1:4). 생명의 축복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요10:10). 큰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참된 생명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 이름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큰 대제사장 – 예수를 바라보라”
(히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4~16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구정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보니까 우리 출타하신 분들도 많지만 또 설 명절 당해서 고향으로, 교회로 찾아오신 렘런트들 가족들도 많이 계시는데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 하십니다.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정말로 우리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자로 세워지고, 또 제자 남기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찬양대 찬양 드렸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제자 되어지고, 제자 남기는 그런 축복된 생애로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정 명절이지만 교회에서는 명절이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바쁜 일정들이 지나갔습니다. 어제까지 다민족 수련회가 우리 교회에서 54명 정도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어졌고요, 그 다음에 중남미 40일 집중 훈련도 지난 주간에 개강예배를 시작으로 진행되어져서 지금 계속해서 3월12일까지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구절 명절 때 많은 일손들 때문에 걱정을 했습니다마는 걱정할 필요가 없이 다 설 명절을 반납하고 이것이 나의 선교다라는 마음들을 가지고 모두가 하나같이 아름답게 헌신해 주시고, 식당 봉사는 봉사대로 간식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간식 담당하는 사람들대로, 이런 저런 수고하고 또 아름답게 헌신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중남미 10개국이 집중훈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보니까요 우리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들을 가지고 헌신을 하시는지 물질로도 헌신을 하고, 또 앞서서 식당을 맡은 책임 중직자는 이분들에게 어떻게 해 드리는 것이 편하게 해 드리고, 음식을 어떻게 잘 해 드릴까 이런 마음들 때문에 밤잠이 안온다고 해요. 그런 마음에 선교를 향한 중심이지요. 그러면서 보니까 그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분들이 나오셔서 일을 하시는데 우리 원로목사님 사모님도 계속 나오셔서 일하시고, 또 이런 저런 많은 분들이 함께 거들어서 정말로 아름답게 귀하게 훈련들이 계속 되고 있는 이런 부분들을 보고 참 감사하다, 행복하다 하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서울에 계시는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뭐 굳이 그렇게 어렵게 안 좋은 환경들 속에서 훈련을 시켜나갈 필요가 있느냐 아니 돈만 주면 본부에 훈련을 의뢰해서 좋은 환경들 속에서 진행되면 좋지 않으냐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그 말을 듣는 가운데서 글쎄 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사실 참된 제자라는 부분들은요 환경이 좋든 나쁘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얼마만큼 정말로 그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있고, 그들도 어떻게 함께 하면서 어떠한 마음으로 훈련에 참여하고 이런 배경들이 전부 다 합쳐져서 제자들이 세워지는 부분들 이거든요. 지금 우리가 중남미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중남미 신학교를 위해서 애써 모은 돈을 헌금하는 분들도 있고 또 어떤 분은 훈련을 앞두고 아이들 급식하는 데에 들어가서 한 달 받은 월급을 고스란히 중남미 훈련에 써 주십시오 하고 내어 놓으신 어르신도 있고요, 이런 분들의 기도가 담긴 헌금들, 또 정말 나의 선교라고 생각하면서 마음과 중심을 다해서 함께 돕는 한 분 한 분의 수고들이 다 합쳐져서 결국 제자가 훈련되어지고, 세워지는 것이지요. 이번에 참여하는 훈련생들 가운데서도 보면 한 가족 6명이 동시에 다 나온 가족도 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을 그냥 놔 둘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 같이 데리고 나왔는데 6명 일가족이 다 나왔어요. 그러면 거기에 드는 돈 경비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리고 또 어떤 신학생 한명은 밤에는 야간 신학교 세뗌 신학교에 출석하고 공부하면서 낮에는 여기에 훈련에 참석하기 위해서 길거리에 나가서 사탕수수를 팔아 모아서 이 훈련에 참여하고 있어요. 사실 이런 중심을 가지고 이 훈련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런 중심을 가지고 모인, 그러니까 환경들이 물론 좋으면 좋겠습니다마는 이들에게는 그런 환경들이 그렇게 썩 이들에게 영향을 주지를 못해요. 환경이 문제가 아니예요. 사실은... 어떻게 내가 집중해서 훈련받고 인도받으면서 한 나라를 살리는 제자로 세워질 것인가 여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물론 환경이 좋으면 좋겠습니다마는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하나 되어서 훈련 받고 마치고 나면 전체 포럼을 하고 이런 부분을 보면서 결국 이런 가운데서 제자가 세워지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우리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이 일에 헌신해 주신데 대해서 너무나 감사함을 드리고요, 분명한 것은 여러분의 귀한 사역이 여러분은 작은 사역 같지만 중남미 37개 나라를 살리는 귀한 제자들이 세워지는 축복된 사역인 줄 믿습니다. 계속해서 여러분 기도해 주시고 함께 인도받아 주시기 바랍니다.지난 주간에 선교대회가 있었고, 그 전 주간에 선교사 합숙이 전체적으로 진행되어졌습니다. 한해 모든 민족을 치유하는 선교운동이라는 주제로, 선교현장에 성취될 메시지를 주셨는데 먼저 선교지에 중직자 집중훈련, 선교지에 렘런트 집중 훈련으로 인도를 받으라 그렇게 말씀을 주시면서 본 선교사 대회 때는 237개 나라를 치유하고 237개 나라 서밋을 찾으라 라는 말씀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진짜 능력의 복음을 가지고 집중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치유받고 서밋의 응답을 가지고 전 세계를 살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특별히 오늘 새벽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집중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치유하면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로 개인화하며 어디, 어느 현장, 언제든지 사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임마누엘 하시는 나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집중훈련입니다. 특별히 한 해 선교지에 미션이 주어졌는데 중직자들 중심한 집중훈련, 렘런트들 중심한 집중훈련, 그래서 결국은 치유하고 서밋으로 찾으라 말씀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 선교지 현장을 위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해야 될 부분들이고요, 선교지 현장만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필요한 답입니다. 우리에게 진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을 누리는 나의 방법을 찾는 이 집중훈련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가면 갈수록 우리도 모르게 분열하고, 분산되어지고, 어느 곳에 집착되어지게 되어있고,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정말 우리 자신들이 참된 말씀 가지고 각인, 뿌리, 체질을 바꾸어 나감으로 말미암아 영적 시스템이 되어짐으로 나만의 귀중한 집중의 비밀을 가지고 치유와 함께 서밋의 응답을 누리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우리가 히브리서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참된 안식-예수를 바라보라는 주제를 우리가 히브리서4:1~11절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았지요. 사실 히브리서4장 전체가 같이 이어지는 부분들입니다. 히브리서4:1~16절까지 나오는 전체 내용들이 이어지는 부분들인데, 참된 안식이라는 주제로 이어지는 부분들인데 먼저 참된 안식에 들어가는 비밀이 무엇이냐 지난번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했어요. 모든 인생들이 안식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느 인생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구원이 필요치 않은 인생이 없어요. 그러면 그 구원의 역사, 참된 안식이 어디에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말씀을 나누었어요. 그리고 오늘 그냥 넘어갔습니다마는 히브리서4:12~13절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운동력이 있다. 그래서 좌우의 날선 검과 같이 쭉 말씀이 나오면서 이 말씀 앞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 없을 것이다. 4:12~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마는 여기에 한 부분만 떼어놓아서 말씀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들도 있습니다마는 물론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은 전체 흐름 속에 보면 참된 안식이 결국은 말씀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지금 성경에는 활력이 있다고 말씀했는데 지난 성경 개혁개정 전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운동력이 있다 했습니다. 이 말씀에 중요하게 담겨진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 말씀이 우리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라는 말이예요. 우리가 넘어질지언정, 실수할지언정, 죄를 지을지언정, 우리가 넘어질 수 있잖아요. 실수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말씀 붙잡게 될 때에 그리스도 십자가 붙잡을때에 회복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어요. 굳이 우리가 실수할 필요없어요. 넘어질 필요없어요. 그러나 넘어질지언정, 실수할지언정, 우리가 그리스도 붙잡게 될 때에, 말씀 붙잡게 될 때에 그 말씀이 우리를 놓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은 승리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참된 안식은 말씀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냐? 말씀이 우리를 붙들고 계세요.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 참된 안식이다. 오늘 세 번째로 참된 안식은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했어요. 여러분 특별히 여기에 큰대제사장 이라고 나오지요. 4절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여러분 ‘대’ 라는 단어 속에 ‘크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그런데 왜 굳이 이 히브리서 기자가 대제사장이라고 하면 될 것인데 큰대제사장이라고 썼을까요? 대제사장과는 다르다는 말이지요. 차별이 있다라는 말이지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실은 1년에 한차례씩 지은 죄를 가지고 제사장 앞에 가면 대제사장이 그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대제사장들입니다. 속죄일에 한 번씩, 일 년에 한번 속죄일에 대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함 받는 것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이 제사장의 반열이 레위인인 아론의 반열이예요. 그래서 반열, 반차 같은 말인데 히브리서 5장에 보면 멜기세덱의 반차라고 나오는데 똑같은 말로 반차, 반열 같은 말이예요. 레위인인 아론의 후대들이 사실 제사장 그룹을 이루고 있는데 이 대제사장의 반열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느 정도로 중요하냐? 여러분 대제사장이 바뀌어지면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자유함을 받아요. 그만큼 대제사장이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그런 대제사장이 아니라 큰 대제사장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특별히 성경에 나오잖아요. 문둥병이 걸렸다 그 문둥병이 나았는지 안나았는지 그것을 누구에게 보여서 판결을 받느냐? 대제사장한테 가서 문둥병이 나았는지 안나았는지 판결 받게 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나았다고 하면 나은 거예요. 그만큼 대제사장이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그런 대제사장이 아니라 큰 대제사장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또 여러분 이 사람이 감옥에 갈 사람인지 가지 않을 사람인지의 죄를 범해서 감옥에 갈 사람인지, 가지 않을 사람인지의 그 판결도 누가 하느냐? 대제사장이 해요. 그런데 그 대제사장이 중요하다면 그런 대제사장과 다른 차별된 큰대제사장,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게되어요. 그 큰 대제사장이 누구시냐?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다른 제사장들과 다른 차별된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큰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식이 있는 것이다. 참된 우리를 위한 완전한 구원이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차별 시켜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참된 안식 속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의 걸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 어떤 분이신가?
그러면 첫 번째입니다. 큰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 어떤 분이신가? 14절에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바로 승천하신 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렇게 나오지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다. 그렇게 나옵니다. 큰 대제사장이 어떤 분이시냐 가장 중요하게 정의하고 있는 것인데 바로 승천하신 이다. 여기에서 승천하신다 라는 말의 의미와 목적을 우리가 제대로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5백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지요. 그러면서 내가 너희들이 본 그대로 다시 오리라 이런 의미의 승천이 아니예요.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승천하심의 의미들을 깨닫기 위해서는 히브리서 9장에 살펴보시면 알 수 있어요. 히브리서 9장 한번 보십시다. 히브리서9:11~12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여기 보세요. 여기에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이 땅의 육세 속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일 년에 한차례 들어가는 땅에 속한 그런 지성소가 아니라는 사실, 하늘에 속한 것임을, 하늘의 성소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사장으로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절 보십시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여기에 단번에 성소에 들어갔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일회적인 한 번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영원히 계속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늘의 성소를 이야기합니다.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제사장들이 매년 한차례씩 반복적으로 들어가는 그런 지성소가 아니라 하늘에 속하는, 창조에 속하지 아니하는 하늘의 성소를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야 될 하늘나라의 성소, 그 성소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소에 승천하셨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9:24,25,26절입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냥 위로 올라간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내용인데요.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서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으셔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 나셨느니라” 할렐루야!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자기를 제물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 그게 바로 승천하신 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려서 완성하신 구원의 역사, 하늘에 있는 영원한 성소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이 완전히 이루어진 사실들을 말하고 있는 이 승천하신 이, 여기에 대한 의미가 바로 승천하신 이의 의미이고 목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시라 했지요.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하는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 어떤 훌륭한 제사장들도 아무리 훌륭해도 제사장들 가운데서는 승천하신 이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이들이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4장 14절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장 14절 마지막에 보면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 마지막에 보면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여러분, 여기 굳게 잡을지어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언약을 붙잡고 확신하라는 말입니다. 힘을 가지고 집요하게 달라붙으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매달려 있으라는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승천하신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그 예수 그리스도, 이것을 굳게 붙잡으라는 말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는 말은 우리의 행위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아닙니다. 우리 편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구원이라는 것이 우리의 지성으로 얻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우리의 공덕으로 얻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의 완전함을 가지고 그것을 붙잡고 매달려 있으라는 말입니다. 여기 매달려 있다는 이 부분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우리 신앙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의 역사를, 그 구원의 역사를, 완전하게 이루신 그 구원의 역사를 붙잡고 우리는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확신 가운데 언약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신앙 생활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주셨느냐? 여러분,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이 당시에 유대교에서 복음 받고 기독교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이 힘을 가지고 핍박을 가하고 자꾸 돌아오라고 회유를 하니까 그 가운데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떠내려가지 않도록, 흔들리니까, 흔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떠내려가지 않도록 흔들리지 말라, 그래서 여기 하나님이 주신 언약 붙잡고 거기 매달려 있으라, 왜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큰 대제사장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주신 분이니까 그 사실을 흔들리지 말고 붙잡고 매달려 있으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다른 게 없습니다. 사실 언약 붙잡고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축복으로 이루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란 무엇입니까? 완전한 구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큰 대제사장으로 이루신 구원의 역사, 이것이 우리의 믿는 도리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붙잡고 우리가 흔들리지 아니하고 매달려 있게 될 때 하나님이 주신 승리의 축복을 우리가 누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뭐라 해도 세상은 가면 갈수록 힘듭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어렵다, 괴롭다, 힘들다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결국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사실 원죄 가운데 태어납니다. 그게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가운데 태어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원죄 가운데 태어납니다. 어떤 인생도 원죄 없이 태어나는 인생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을 잘 안 믿고 있습니다. 특히 중남미 현장에는, 지금 훈련받고 있는 중남미 현장에는 너무 강한 가톨릭의 뿌리 때문에, 행위를 강조하는 것 때문에 사실 아이들이 죽으면 지옥 간다, 예수 믿지 않는 아이들이 죽으면 지옥 간다, 이해를 못합니다. 사역 현장에 나가서 부딪히는 부분이 그 부분이고 어제도 보니까 사역하면서 메시지 가운데 그런 부분이 딱 나오니까 이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한 부딪힘이 오고 그 부분을 가지고 포럼되어지는 부분을 봤는데 왜냐하면 어릴 때 갓난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지옥 간다는 말을 이해를 못합니다. 여러분, 한 살을 살았던 구십 세를 살았던 전부 다 일생입니다. 모든 인생은 사실은 원죄 가운데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창세기 3장 가운데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 가운데서 태어납니다. 그런 가운데서 결국은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으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서 살아가는데 그게 우상숭배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6장, 19장.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안의 영적인 문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실력이 있든 없든 상관 없습니다. 많이 배웠든 안 배웠든 상관 없습니다. 가지고 있든 없든 상관이 없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국은 창세기 3장으로부터 시작된 그 영적 문제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불신자 상태 여섯 가지 아닙니까? 그래서 결국은 드러나니까 그것을 가지고 길을 모르니까 포장합니다. 답이 없으니까 포장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속이게 됩니다. 안 그러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속이게 됩니다. 그래서 포장하고 속이게 되는데 결국은 그래서 말세에 디모데후서 3장 13절에 보면 속고 속이는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 말씀하면서 마지막 13절에 보면 뭐라 했습니까?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결국은 속고 속이니까 모든 사람이 다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 힘든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그냥 거기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이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구약 성경에 예언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은 뭡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 그 메시야가 오셨는데 바로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사단의 모든 일들을 완전히 해결하시고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신 것입니다. 그 분이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뭐로요? 성령으로. 그리고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하심을 누리게 될 때 증거 누리게 되고 세계복음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증인 삼으셔서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면서 결국 그 분이 재림주로,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역사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마다 참된 승리가 보장된 축복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고 흔들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루신 일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큰 대제사장이 이루신 일들이 무엇이냐? 15절, 16절에 나옵니다만 먼저 15절에 보면 대제사장의 사역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대제사장의 사역이 세 가지로 나오는데 그 첫 번째 사역이 무엇이냐 하면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는 말입니다. 옛날 성경에는 체휼하신다고 나오는데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한계 속으로 들어와서 한계 없으신 하나님이 인간의 한계 속에 들어와서 우리의 연약한 모든 것들을 다 체험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받는 고통들, 우리가 받는 시험들, 우리가 아파하는 것들, 우리가 몸부림치는 부분들,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다 체험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여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치유의 축복이 보장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한 모든 일들, 여러분이 당한 모든 것들 주님이 다 체험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5절에 이 부분을 한 단어로 말씀하고 있는데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징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찔리고 상하고 징계 받음으로, 채찍에 맞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허물이 사함 받고 죄악을 용서함 받고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다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도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식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축복과 참된 기쁨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연약한 것을 친히 다 체험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것들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체험하셨기 때문에. 그러면서 두 번째로 큰 대제사장으로서 하신 일이 뭐냐? 여기 보면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았다. 그래서 시험 받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이해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28절에 보면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시험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은 바로 우리 자신들을 이해하기 위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히브리서 2장 18절에 보면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할렐루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저와 여러분을 능히 도울 수 있는 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5절 마지막에 뭐라 했습니까? 죄는 없으시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절에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큰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뭐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그러나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 분이 바로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일어나는 결과는 무엇이냐? 16절입니다. 16절,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동정하시고 우리의 모든 시험을 주님께서 대신 당하시고 죄 없으신 분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대신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신 일이 뭐냐? 첫 번째, 여기 나옵니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았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 용서함을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 세계에서 가장 큰 전제는 뭐냐?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꽃 중의 꽃이 뭐냐?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용서하심입니다.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긍휼하심을 입은 자가 된 것입니다. 믿습니까? 용서함을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 나오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이루어진 결과가 무엇이냐? 때를 따라서 돕는 은혜를 얻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오늘이 새날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에 우리가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여러분,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창세기 3장 현장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꾸 옛날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지 못하면 옛날로 자꾸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이유가 뭡니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하나님이 내게 주시기 때문에 나는 그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이 무엇이냐?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나아갈 때마다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여러분, 우리가 이 은혜 없이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날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고 그 다음 16절 마지막에 보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간다, 마치 자녀가 부모 앞에 나아갈 때 아무 거리낌 없이 나아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녀들이 자기 원하는 것 막 다 해 달라 하지 않습니까? 우리 집에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빠, 이리 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 왜, 하면 돈 십만 원 줘, 이야기합니다. 이유도 말 안 합니다. 돈 십만 원 줘, 이야기합니다. 왜, 하면 휴대폰 값 내야 하니까. 아니, 너는 뭔데 학생이 나보다 휴대폰 값이 더 많이 나오냐 이야기를 하면 두 달 밀린 거라고 합니다. 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휴대폰 좀 그만 만지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결국 줍니다. 안 주는 게 아니잖아요. 이게 자녀입니다. 부모에게 당당히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 있잖아요. 한 번씩 그냥 아빠, 이리 와! 가면 돈 줘! 줍니다. 이유는 묻죠. 줍니다. 자녀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지니라. 그 어떤 인생도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인생이 없었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저와 여러분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로마서 8장 34절에 보면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브리서 7장 25절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할렐루야!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우리를 의롭다, 죄 없다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면 죄 많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시고 의롭다 하셨습니다. 죄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거룩하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큰 대제사장 예수를 바라보라. 늘 항상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은혜와 사랑을 늘 기억하십시오. 성경의 시편 50편 22절에 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반대로 말하면 늘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들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와 그 은혜의 사랑을 늘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구원의 완전한 축복이 날마다 누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이루신 그 구원의 완전한 증거는 누구냐?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구원의 근거를 말씀하고 있는데 히브리서 5장 8절, 9절에 보면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누구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그럼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5장 9절~11절에 보면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로 우리를 세우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생명의 역사, 아무도 빼앗아갈 자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 29절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의 역사를 하나님의 손에서 아무도 빼앗아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 성경 한번 찾아봅시다. 마지막으로요. 히브리서 10장 35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여러분, 큰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 참된 승천하신 이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참된 생명으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승리케 되는 축복된 응답이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2월 1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큰 대제사장 - 예수를 바라보라
(히4:14-16)
서론: 모든 사람들은 안식과 구원을 찾습니다. 구원의 역사, 참된 안식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오게 됩니다. 그리고 참된 안식은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히4:12). 넘어지더라도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말씀이 우리를 놓지 않게 됩니다.
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대제사장이라는 단어 속에 “크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이스라엘의 백성의 죄를 해결, 대제사장이 바뀔 때 특별대사면, 모든 판결을 담당). 더 중요한 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식과 구원이 있습니다.
1.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 어떤 분이신가?
가. 승천하신 이(14) - 승천의 의미, 구체적인 목적
1) 단순한 하늘에 올라가는 승천이 아님 - 단 번에, 영원성을 가지고 지금까지도 계속 됨(히9:11-12)
2)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 몸을 재물로 삼음(히9:24-26)
나. 곧 하나님의 아들(14) -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
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승천 하심 - 완전한 구원을 완성
2)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음(14) - 그리스도께 매달려 있으라(행위, 공덕, 노력이 아님)
3) 그리스도로 완성 된 구원 -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성령으로 내주, 인도, 역사, 증거를 주심(우리가 믿는 도리)
2. 이루신 일(15-16)
가. 대제사장의 사역(15)
1) 연약함을 동정(체휼) - 연약함을 아시고 도와주심(사53:5, 마8:17), 참 치유가 보장
2) 모든 일에 시험을 받으심 - 시험 받는 우리를 능히 도우심(눅22:28, 히2:18)
3) 죄 없으신 분 - 죄를 범하지 않으시고 거짓이 없으심(벧전2:22)
나. 사역의 결과(16) - 우리에게 일어날 일
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긍휼하심을 얻음 - 용서함을 받음
2)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음 - 매일 새로운 은혜를 받음, 은혜로 살아감
3)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감 -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림(롬8:34, 히7:25, 롬8:30)
결론: 큰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을 늘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사50:22). 구원의 증거는 그리스도입니다(히5:9, 엡5:2, 갈1:4). 생명의 축복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요10:10). 큰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참된 생명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 이름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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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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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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