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참된 안식
2020-10-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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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0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된 안식”
(마12:1~13)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아멘.
마12:1~1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십시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중 영광이 크리라’지난 한 주간 추석 명절 통해서 모두가 잘 지냈습니까? 정말로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회복해야 됩니다. 지난날 동안에 힘들고 어려웠더라도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회복하고 참된 안식을 회복하게 되면 정말 우리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날 예배가 속죄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평안, 그 참된 안식이 시작되어짐으로 이번 한 주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을 통틀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중한 약속이 있다면, 또 가장 많은 약속들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 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함께 하시겠다 말씀하시고요, 때를 따라 함께 하시겠다 말씀하시고요, 또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평안하고요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우리의 주변에서 찾아내야 할 것이 있다면 항상 기뻐하라 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늘 우리가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내면 찾아내는 만큼 우리의 생각과 관점이 달라지게 되고요, 이것을 찾아내는 만큼 모든 막혀있던 응답의 문들이 계속 열려지게 되어 있고요, 이것을 찾아내면 찾아내는 만큼 삶에서 참된 안식이 비로소 나오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은 참된 안식이 없어서 거짓에 속아서 죽어가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성공해도 참된 안식을 모르고 있는 세상 인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휴가는 있을지 모르지만 참된 안식이 없어요. 그래서 참된 안식이 없기 때문에 휴가를 지낸다고 지냅니다마는 지내놓고 보면 더 피곤해요. 주일날도 참된 안식을 누려야 되는데, 토요일 주일 계속되어지는 사실 속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니까 주일 지나고 나면 월요일 날 더 피곤해요. 왜 그렇습니까? 참된 안식이 없어서 안식을 누리지 못해서 그렇다 라는 사실입니다. 이 안식은 우리가 노력하거나 참아서 안식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력하고 참고 나가면 병 듭니다. 안식이전에 병이 듭니다. 이 안식은 하나님께서만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아니 이번 한 주간에도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축복인 참된 안식, 그 축복을 찾아 누려야 되겠는데 먼저는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안식을 주셨다 라는 사실입니다.

1. 하나님은 처음부터 안식을 주셨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와 상황을 만나더라도 여러분 안식을 누리면서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늘 우리가 질문해야 합니다. 나에게 참된 안식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지난주에도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마는 마태복음11:28절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쉬게 하는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 앞에 특별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쉼,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안식을 날마다 확인하며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내게 평안이 있는가? 안식이 있는가?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누리는 영적상태의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평안을 누려야 할 것이고요, 또 사역이전에 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평안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안식과 참된 평안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묶인 것들을 풀어주시는 것에서 참된 안식과 참된 평안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묶여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로 인한 재앙 속에 어느 누구가 예외 없이 묶여 있고요, 지옥배경 가운데 묶여 살아가고 있고요, 사탄의 운명 가운데 묶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메시지 듣는 가운데서 해적선에 대한 비유들을 많이 했지요. 창세기3장 문제인 재앙과 지옥배경과 사탄의 문제, 그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풀어주지 아니하시면 참된 자유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모든 인생은 해적선을 탄 사람들처럼 재앙 속에 묶여 있고, 지옥배경 속에 묶여 있고, 사탄의 운명 속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그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무리 양심적으로 살아도,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여러분 모든 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해적선 안에 타 있는 사람이 열심 낸다, 열심 내는 것만큼 해적선장에게 유익이 돌아가지요. 양심적이다, 양심적인 것만큼 해적선장의 말을 잘 듣고 도둑질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 안에 모든 것들은 다 죄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먼저는 재앙과 지옥배경과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를 풀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참된 안식이요, 참된 평안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것이 바로 안식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은 모든 천지만물을 완전하게 창조하셨지요. 사실은 완전한 완성품으로 모든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모자람이 없는,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으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창세기1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창조하신 이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보시기에 좋았더라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전혀 모자람이 없는, 완전한 완성품으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창세기1:26~ 28절에 보면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창세기1:26절에 하나님을 대신해서 천지만물을 관리하고 다스리도록, 다시 말하면 천지만물을 완벽하게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만물을 인간의 손에 위탁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을 관리하고 다스리도록, 이 어마어마한 축복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신 것이지요. 그리고 창세기1:27절에 보면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인 존재로 우리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형상됨의 누리게 될 때에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누리도록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다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1:28절이지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영적인 존재인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축복을 누리게 될 때에 모든 천지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로 우리 인간들을 축복하셨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약속으로 주신 것이 안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2:1~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만물을 인간의 손에 위임하시고 하나님이 안식하셨다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의 날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피곤하셔서, 쉬시기 위해서 안식일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된 천지만물을 보고 자축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안식에 들어가셨고요, 그리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날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날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이고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예배하는 날로 만드시기 위해서 안식의 날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곤해서 쉬시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된 역사들을 창세기1:27~28절의 축복을 늘 공급받고, 그 축복을 확인하면서 세상을 정복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셨다 라는 사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요, 신자이든지 불신자이든지 모두에게는 안식의 유전자가 심겨져 있어요. 창조 때부터 안식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에게는 안식의 리듬이 있게 되어 있어요. 그 안식의 리듬을 어기게 되면 결국은 신자도, 불신자도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게 되는 이 안식의 유전자가 모든 인간에게 다 심겨져 있다니까요? 이것은 믿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도 이것이 심겨져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는 안식에 들어가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참된 안식이, 참된 쉼이 우리에게 정말로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8세기말에 프랑스혁명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에게 의해서 주도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가만히 보니까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는 부분들 보니까 결국은 경제가 어려운데 좀 더 일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 이전에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이 무신론자들이 기독교의 전통을 파괴하기 위해서 6일 동안 일하고 하루 쉬는 부분들을 바꾸었어요. 우리는 너무 경제가 어려우니까 이것은 비생산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9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쉰다. 그래서 아예 달력까지도 그렇게 바꾸었어요. 이게 역사 속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결국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결과로 강도, 살인, 폭행들이 일어나고요, 나중에는 민란까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까지 처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들이 정신 차리고 다시 돌이킨 거지요. 아 안 되겠다 싶어서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것으로 다시 돌이킨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누구에게나 안식에 대한 부분들이 다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어기게 되면 결국은 어려움을 당하고 고생하게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안식의 주인이기 때문에 안식이 필요 없지만 사람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날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안식의 날을 통해서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창세기1:27, 28절의 축복을 공급받고 그 축복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3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참된 안식을 상실해 버렸고요, 그 결과로 인생은 또다시 창세기1:2절의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안 됩니다.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된 공허가 찾아오고, 왜 그렇습니까? 참된 안식을 상실해서 그렇다 라는 사실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악한 사탄이 뱀을 이용해서 모든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것이지요.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라는, 이 말에 속아서 결국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결과로 모든 인생은 사탄에게 속아서 창세기3장과 창세기6장과 창세기11장의 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3장은 무엇입니까? 나 중심한 삶이예요. 그런데 결국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나 중심한 삶을 살아가는데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봤던 것처럼, 나 자신에게 속아요. 나 중심한 삶을 살아가는데 결론은 나에게 속는 거예요. 그리고 창세기 6장은 세상 중심에서, 육신 중심에서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 배후에는 결국은 네피림, 우상이 있는 것이지요. 완전히 네피림에 장악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중심한 삶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세상에 속아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성공합니다마는 결국은 악한 사탄이 준 가짜 성공에 속아서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안식을 상실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모든 문제가 오게 된 것입니다. 이 안식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냐? 마태복음11:28절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안식이 있다면, 진정한 쉼이 있다면 왜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안식과 쉼이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참 안식이 없는 중에 몸부림치면서 만들어 낸 것이 종교입니다. 여러분 종교는 뭐냐? 참 안식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몸부림치면서 만들어 낸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요 종교는 백성들의 안식을 다 빼앗아갑니다. 이 종교는 백성들의 안식 자체를 오해하게 만들고요, 결국은 안식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이것 해야 한다, 저것 해야 된다, 이래라 저래라 이런 많은 것들로 말미암아 오히려 안식 자체를 빼앗아 갈 뿐만 아니라, 오해하게 만들고 안식 자체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종교인 것입니다. 여러분 종교는 백성들에게 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더 지워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1:28절에 보면 그 대상이 지난 주에 바리새인, 유대인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씀했잖아요. 사실은 종교인들이 여러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지워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바라보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참 안식을 모르게 되어 지니까 여기서 인생들이 어려움 당하고 실패하는 삶을, 수고하는 삶을 날마다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참 안식을 모르게 하는 이 사탄의 역사들을 깨트리는 이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바로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참 안식을 모르게 하는 이 사탄의 머리를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캐트리신 것입니다. 이미 실패한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하신 약속이지요. 그리고 창세기3:15절 결국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무슨 말입니까? 참된 안식 속에 들어가는 창세기1:27~28절을 회복한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참된 안식을 예배를 통해서 누리기를 원해서 가인과 아벨에게 예배에 대해서 가르쳤는데 그런데 결국은 가인은 이 예배를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망하게 되었고요, 아벨은 죽었습니다마는 그러나 참된 안식을 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참된 안식을 노아를 통해서 방주를 만드는 것을 통해서 참된 안식을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6:14절에 보면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 여러분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결과이지요. 방주 안에 들어가게 될 때에 참된 안식을 얻게 된다 라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하여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 참된 안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참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안식인 것입니다. 이 안식이 이번 한 주간에 여러분 모든 삶의 현장에서 회복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처음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사탄으로 말미암아 이 안식을 상실해 버렸고, 그 사탄의 머리를 그리스도께서 깨트리심으로 말미암아 참된 안식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고 나갈 때에, 어떤 상황 속에서든지, 어떤 환경 속에서든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안식, 참된 쉼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이번 한 주간 여러분 걸음걸음마다 누리게 되길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안식일을 통한 참된 안식의 체험
두 번째입니다. 안식일을 통한 참된 안식의 체험을 해야 되는데, 사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은 안식일은 6일 동안에 창조하시고 하루를 쉰, 마지막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누리는 것이 주의 날이고, 안식의 날입니다. 오늘 특별히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면서 너무나 배가 고파 가지고 제자들이 벼이삭을 잘라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9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한편 손 마른 자를 고쳤습니다. 여러분 배가 고픈데 이삭을 잘라먹는다, 그게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23:25절에 보면 반드시 이삭을 추수하는 사람들이 남겨두게 되어 있어요. 그 벼 이삭을 잘라서 먹는다 그것은 사실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안식일에 그 일을 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안식일에 벼 이삭을 잘라 먹었다는 것은 잘랐다는 것은 노동을 이야기 하지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이 말씀 속에 유대인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심지어 길거리도, 길을 가도 500미터 이상을 가면 안 되어요. 노동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 제가 지난번에 한번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마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식일에는 그들은 각층마다 다 서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왜냐? 누르지 않기 위해서, 왜냐? 누르는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노동이기 때문에 그만큼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이었는데 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유대인들,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열 받은 것은 첫 번째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나는 성전보다 크다,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 두 가지 말에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화가 나고 열 받은 거예요. 왜냐? 이 당시의 유대인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신앙의 뿌리는 성전에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삶이 성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그들의 신앙의 뿌리가 성전에 있어 성전을 그렇게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오늘 본문에 보면 “나는 성전보다 크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이런 말들을 하거든요, 여기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열 받은 거예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여러분 유대인들의 그들의 신앙의 뿌리가 성전에 있다면 신앙의 열매는 안식일 준수입니다. 어떻게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느냐 안식일 준수가 그들에게 신앙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결국 이때부터 유대인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항상 논쟁의 가장 시작이 안식일을 범한 여기에 있었어요. 그런데 제자들이 안식일에 벼 이삭을 잘라 먹었다 라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병자 치유 하는 것, 여러분 치유하는 것 좋은 일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치유했다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화가 나서 결국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일부러 제자들에게 물은 거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부분들 속에서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에게 이상한, 전혀 얼토 당토 않은 부분들을 끌어와서 말씀을 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서 도망가다가 너무 배 고프니까 성전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이것은 임제의 떡이라는 말인데요, 진설병은 임제의 떡이라는 말이예요. 그런데 이 진설병을 제사장이 다윗과 함께 그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주었어요. 그러면 이것은 율법을 어긴 겁니다. 그런데 율법을 어긴 그 다윗이 죽었느냐? 결국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였다 라는 말이예요. 이것을 오늘 4절, 5절에 보면 다윗을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사장의 이야기를 합니다. 제사장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제사지내기 위해서는 희생제물을 잡잖아요. 그러면 제사장이 잡는 희생제물 잡는 그것도 결국은 하나님께 율법을 어긴 것이 되느냐? 어떤 면에서 여기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제사장의 희생 제물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율법의 약점의 허를 찌른 겁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철저하게 문자에 매여 있어 가지고 그것이 규정이 되어서 참된 자유롭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의 허를 찌른 것입니다. 여러분, 십계명은 우리가 그것을 지키고, 노력해서 애써서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율법 중의 율법 아닙니까? 그런데 그 십계명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생활을 얽매이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예요. 많은 사람들이 하지 말라, 하라 이런 십계명이 나오니까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이 뭔가에 얽매인다 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예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안전장치로 주신 것이 십계명이예요. 우리를 얽어매는 규율로 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자기의 삶을 얽어매는 규율로 붙잡고 문자적으로 해석해 가지고 참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을 가지고 노예생활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어요. 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누구라고요? 안식일의 주인은 나다 라고 했어요.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중요한 말씀을 하셨어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냐?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냐? 성경에 보면 마가복음2:27~28절에 보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면 그 안식에는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격려하고, 사람을 힘을 주는 그 일을 위해서 있다 라는 사실, 그러면서 안식일의 주인은 누구라고요? 인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했어요.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안식일에 무엇을 해야 되느냐? 이것 하지 말라, 저것 해야 한다, 거기에 메이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사람을 위하는 것이고, 사람을 세우는 것이고, 사람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그게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로마서14:5~9절에 보면 안식일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고, 사람의 안식을 위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잘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거기에 메여 가지고 이것 하라, 이것 하지마라, 거기에 매여서 참된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참된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주신 참된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사실이예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너무 중요한 말씀이예요. 그리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했어요.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중요한 안식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를 붙잡고 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된 안식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모든 절기나, 모든 날들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에 대한 그림자라 했습니다. 골로새서2:16~17절에 보면 구약의 안식일은 영원한 안식일의 그림자라는 사실, 특별히 사람의 절기와 날짜 이런 것들을 따지지 말라는 것이예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라는 사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안식일이 성취되었고, 참된 안식이 우리에게 이루어졌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 붙잡으면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힘을 얻게 되고, 모든 현장을 살리는 참된 축복을 누리게 되어진다 라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면에서 여러분 오늘 본문에 한편 손 마른 사람들, 몸이 불편한 불구자이잖아요. 성경에 보면 저는 바리새인들을 바라보면서 이 사람들보다 더 큰 불구자가, 눈은 떠 있지만 몸은 사지가 멀쩡하다고 보여질지 모르지만 더 큰 불구자가 바로 바리새인들이 아닌가? 왜냐? 이들은 예수님의 관심과는 전혀 상관없이 결국은 안식일 그 문제 때문에 결국 눈이 어두워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14절부터 보면 비로소 예수님을 어떻게 잡아서 넘길 것인가? 이 사실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이 생각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한편 손 마른 불구자보다 더 불구자가 바리새인들이 되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을, 안식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혼 속에 참된 안식을 상실한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요, 서기관들이다. 안식의 주인되시는 그리스도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혼 속에 영원히 안식을 상실하게 된 것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분들, 하나님이 관심 가지고 있는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봐야 합니다. 안식일을 꼭 지켜야 된다. 그게 아닙니다.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격려하고, 사람을 힘을 주는 그게 안식일에 가장 귀중한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일과 안식일을 구별해야 되는데요, 사실 구약의 안식일은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20:1절에 보면 안식 후 첫날에 라고 나와요. 안식 후 첫날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지요. 그리고 고린도전서16:1~2절에 보면 고린도교회에 바울이 편지를 쓰면서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특별히 성경에 보면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의 따라 모아 들여서 했어요. 여기에 매주 첫날에,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토요일이 안식일이예요. 그런데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안식이 그리스도 안에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주의 날은 주일이 주의 날이예요. 주일이라는 말은 주님이 주인 되시는 날입니다. 이것이 우리는 주 중에 첫날입니다. 주 중에 마지막 날이 아니고 주 중에 첫날입니다. 그게 바로 주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일날 무엇을 해야 되느냐? 참된 안식 속에 들어가야 되는데, 6일 가운데 있는 첫 날인 이 주일날, 저와 여러분은 세계를 정복하고 살릴 힘 얻기 위해서 힘 얻는 날이 주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일은 어떤 날이냐? 받은 말씀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날이고요, 또 예배 시간에 집중 기도하는 시간이고요, 또 받은 말씀을 가지고 교제하고 새 힘을 얻는 날이 이 주일인 것입니다. 주일은 참된 안식 속에 들어가는 날인데, 다시 말하면 마태복음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인생의 짐을 내려놓고 쉬는 날이 주일이고, 참된 안식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14:27절의 말씀처럼 세상이 줄 수 없을 만큼 평안을 누리는 날이 참된 안식이고, 그것이 바로 주일 날, 그리고 요한복음16:33절에 있는 말씀처럼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 복음 충만 누리는 날이 이 주일이고 그게 참으로 안식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이 아니라, 6일의 첫날인 이 주일날 예배에 성공하게 될 때에 참 안식을 누리게 되고, 그 힘으로 한 주간 현장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승리토록 되어지는 것입니다. 주일 하루 은혜로 말미암아 한 주간 여러분의 삶이 승리하는 축복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축복된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그런 귀한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 10월 4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된 안식
(마12:1-13)
서론: 가장 귀중한 축복과 약속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범사에, 때를 따라,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평안하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은 우리가 확인 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찾아내야 합니다. 히11장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과 관점이 달라집니다. 응답의 문이 계속 열리게 되고 삶 속에서 참된 안식이 나오게 됩니다. 세상은 참된 안식이 없어 거짓에 속아서 죽어갑니다. 아무리 성공해도 참 안식을 모르고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노력하거나 참아서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참된 안식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처음부터 안식을 주셨다
1) 나에게 참 안식이 있는가? 늘 질문하라(마11:28-29)
(1) 평안, 안식이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영적상태
(2) 참된 안식은 하나님이 묶인 것에서 풀어주시는 것(재앙, 사탄, 지옥배경에서 탈출)
2) 하나님이 주신 첫번째 안식
(1) 처음부터 완전한 완성품으로 만드심, 하나님을 대신해서 관리하고 정복할 존재로 만드심(창1:26-28)
: 영혼을 가져서 하나님과 통하는 존재, 하나님을 누리고 은혜받아 살도록 지어짐
(2) 하나님이 처음부터 안식을 주시고 언약을 주심(창2:1-3)
: 사람과 소통하는 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예배하는 날(안식의 유전자)
(3) 회복시키신 두번째 안식
(1) 창3장 하나님을 떠나 안식을 상실, 사탄이 가짜를 가지고 사람들을 속임(창세기 3,6,11장)
(2) 주님이 참 안식으로 초청(마11:28-29) / 안식 자체를 오해하고 불안하게 만든 것이 종교
(3) 참된 안식(창3:15, 창4:1-15, 창6:14) = 창1:27~28을 회복하기 위해

2. 안식일을 통한 참된 안식의 체험
1) 안식일의 참된 의미
(1)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이삭을 비벼먹는 것, 예수님이 병자 고친 것을 비난
(2) 유대인 신앙의 뿌리는 성전 중심, 열매는 안식일 준수 -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 해서 열 받음
(3) 십계명은 사람을 얽매이도록 한 규정이 아님, 구원받은 축복 누리도록 안전장치로 주심
=> 구원받은 자녀로 잘 살아가라고 안식일을 주심(마12:5-6, 막2:27-28, 롬14:5-9)
2) 안식일에 숨어있는 더 큰 의미
(1) 바리새인들은 손 마른자보다 더 불구자가 됨, 예수님을 죽일 일을 의논
(2)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은 안식의 주인을 죽여버림(영혼의 안식을 잃음)
(3) 안식일의 완성은 그리스도(골2:15-17) = 이제는 주의 날!
(4) 초대교회는 안식일과 주일을 같이 지키심
(1) 로마에 기독교가 국교화 된 후 주의 날에 집중 : 안식 후 첫 날(요20장), 연보(고전16:1-2)
(2) 안식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 그래서 우리는 주의 날을 누리는 것
=> 주의 날은 주님이 주인 되는 날!

결론: 주의 날은 6일을 위한 첫 날이 주의 날입니다. 세상을 정복하는 힘을 얻는 날, 받은 말씀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날, 예배 시간에 집중기도하는 날, 말씀 가지고 교제하고 새 힘을 얻는 날. 그 속에 참된 안식이 나오게 됩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날. 요14:27,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누리는 날. 요16:33, 세상을 이기신 복음충만 누리는 날. 6일을 시작하는 첫 날인 오늘에 성공하면 평일에 어떤 날 속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일 하루 은혜받고 승리함으로 한 주간 승리하는 응답 누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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