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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
(마27:56-66)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아멘.
마27:56-66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오늘 은혜로운 찬양, 성가대 감사드립니다. 오늘 찬양을 듣는 가운데서 오늘 제목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여러분 정말로 여러분이 주와 함께 가는 길이 즐거운 일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기 때문에 우리는 주와 같이 가는 길이 날마다 날마다 즐거운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 걸음걸음마다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누림으로 승리하는, 그런 말씀의 성취를 보는 걸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오프라인으로 예배를 드린 지가 꽤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문직에 계신 분들이나 또 연세가 좀 계신 분들은 이 자리에 나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분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매주 온라인으로 예배를 동시에 접속하는 분들 보면 170군데에서 같이 메시지를 지금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앉은 이 자체가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많은 응답들을 찾아내시고 확인하시고요, 혹이나 개개인의 사정들 때문에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 온라인으로 지금 이 시간에 함께 참여하는 여러분들도 있는 그 자리에서 정말로 갑절의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그런 축복 있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그 자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우리도 원치 않는 일들도 있을 수 있고요, 또 예상치 못한 일들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맞다면 그것조차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주신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말씀하셨지요. 그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대상으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에 마가복음3:13절에 주님께서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 말씀하시면서 14절에 보면 “함께 있게 하시고” 왜 우리를 부르셨느냐? 함께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부활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제자들 앞에서 마지막 부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28:20절에 보면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제대로 영안의 눈이 열려서 주님이 함께하시는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면 그 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힘들을 얻게 되지요. 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들을 누리게 되어 있고요, 걸음걸음마다 구체적으로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말씀이 성취되어지는 현장에 서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에 그 뒤에 따라오는 응답들은 우리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 된 응답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정말로 눈이 열려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눈이 열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눈이 열려진 것을 가지고 영안이 열렸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진짜 우리가 매일 매일 살아가는 삶 속에 많은 염려들, 불신앙들 하고 있잖아요. 그것은 사실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 역사들을 안다면 우리가 염려하는 것, 우리가 불신앙 한다는 것 크나큰 죄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 구체적으로 모든 때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누려감으로 진정한 축복 된 응답들을 현장을 통해서 찾아냄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먼저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영안이 어두워 실패한 유대인들
그러면 성경에 보면 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실을 누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영안이 어두워서 실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표적으로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육신 적으로는 너무나 바르게 살고요, 너무나 훌륭하게 살고요, 또 철저하게 살면서 영안이 어두워서 영적인 부분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해서 놓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호세아서4:6절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오늘 제목처럼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해서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나를 버렸기 때문에 나도 너희를 버린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호세아4:7절에 보면 결국 육신의 눈만 밝아져 있고 영적인 사실을 모르니까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든 삶은 발전하는 것 같은데 영적인 사실을 모르니까 점점 더 발전과 함께 범죄 가운데 빠지게 된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축복의 비밀들, 다시 말해서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세상 속에 살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 있고, 점점 발전할수록 하나님을 떠나면서 범죄 하게 되어 있고, 뭔가 영화를 누려야 되는데 영화가 변하여 욕이 되어지는 그런 결과가 드러나게 됨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3:5-7절에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지요.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했어요.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악한 사탄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습니다. 특별히 악한 사탄이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수준과 같이 되리라” 한 이 사탄의 말을 듣고 아담 하와가 그럼 한번 따먹어 보자 해서 결국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게 된 것입니다. 결국은 그로 말미암아 육안이 활짝 열려지게 되고 영적인 축복 된 가치 있는 것을 보는 눈이 닫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수치스럽고 실패하는 부분에 눈이 열려지게 되면서 하나님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3:10절에 보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악한 사탄의 말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수치를 당하고 실패하는 부분에 눈이 열려서 결국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들어가야 해요.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속에서 힘을 얻고, 그 힘 속에서 생각하고, 그 힘 속에서 판단하고, 그 힘 속에서 선택해야 되어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은혜 없이 무엇이든지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한다면 거기에서부터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은 고난과 고통이 계속되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려지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이 보여지는데, 그와 반대로 육신의 눈이 열려지니까 찾아오는 것이 뭐냐 하면 결국은 육신적인 것에 충실하게 되어집니다. 그게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흠모할 정도로 육신적인 부분에 눈이 밝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리니까 그러면 당연히 생각을 달리해야 하잖아요. 아! 결국은 메시야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육신에 잡혀서 영적인 부분을 못 보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섰던 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모습이지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안이 열려지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실에 눈이 열려지지 아니하면 우리도 똑같아요. 육신의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3:1-9절에 보면 고린도교회 모습들이 나오는데,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는 육신에 속한 자다. 고린도교회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고린도교회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고린도전서를 쭉 살펴보시면 어떤 면에서 세상에 있는 모습이 그대로 교회 안에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되어요. 교회의 타락한 부분들, 세속화되어있는 부분들이 고린도교회 안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뭐라고 했느냐? 너희는 육신에 속한 자구나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밥을 줄 수가 없구나, 젖을 먹어야 하는, 다시 말하면 죽을 먹일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구나! 그러면서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부분들 이야기했습니다. 왜 시기하고 분쟁하느냐?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문제들이에요. 전부 다 육신 속에 빠져있기 때문에 영적인 사실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모르기 때문에 시기하고 분쟁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를 이야기하는데 여러분 영적인 사실에 눈이 열려지지 아니하면 결국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인본주의를 쓸 수밖에 없고요, 그 인본주의 중에 인본주의가 뭐냐 하면 교회 안에 파당을 짓는 겁니다. 그게 고린도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 서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원받아 놓고도 육신적인 수준으로 신앙생활 하면 결국 우리도 원치 않게 이익, 손해를 따라서 살아가게 되고요, 거기에 파당을 짓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1:1-18절에 보면 마가다락방에 오직 복음으로 시작된 예루살렘교회, 마가 다락방의 귀중한 체험을 했던 예루살렘교회, 교회 안에 중요한 사실을 놓쳐버리고 결국은 계속적인 응답들을 처음에는 받았습니다마는 시간 가면 갈수록 그 부분들 속에 희미해지게 되면서 영적인 쓸데없는 논란과 해명들이 예루살렘교회, 초대교회인 마가 다락방이 시작된 예루살렘교회 안에 있었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되어요. 사도행전 10장에 이방인 고넬료가 베드로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그 고넬료 집안이 전체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놓고 사도행전11:1-8절에 보면 예루살렘교회가 논란에 휩싸이고, 거기에 대한 베드로가 해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러분 이방인 고넬료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면 당연히 아! 사도행전1:8절의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구나! 이렇게 보여져야 되는데, 예루살렘교회 논란이 무엇입니까? 아니, 어떻게 할례받은 자가 무 할례자의 집에 들어가서 먹느냐 이 논란이었어요. 거기에 대해서 베드로가 바로 사도행전1:8절의 성취 아니냐 라고 말하면 될 것인데, 여러분 성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베드로조차도 거기에 해명하는데 머뭇머뭇함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결국은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세계복음화의 푯대를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교회로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영안을 열어야 합니다. 옛날 관습과 옛날 율법과 옛날 어떤 제도, 습관에 메여있을 것이 아니라,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영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특별히 영안이 어두워지고 육신의 것이 눈이 밝아지면 찾아오는 것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영안이 어두워지고 육신의 눈이 밝아지면 세상 속에 살면 살수록 결국은 두려움이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요한일서4:18절에 보면“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 하나님의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했습니다. 두려움은 반드시 형벌이 따름이라 했습니다. 어떻게 두려움이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지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영안이 어두워지고 육신의 눈이 밝아지면 밝아질수록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있다면 두려움인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부분들을 볼 수 있는데요,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서 십자가에 사형선고해서 무덤에 넣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 앞에 유대인들이 빌라도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아니, 예수님의 시신을 놓고 경비들을 더 충원시킬 것을 부탁하고요, 그리고 무덤 입구를 큰 바윗돌로 막아가지고 총독의 도장을 찍어서 결국 아무도 손을 못 대도록 경비들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왜 이렇게 했을까요? 결국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 반드시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실제로 두려워가지고 결국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들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또 거기에 빠져들 것을 두려워해 가지고 결국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놓고 결국 빌라도에게 더 군인들을 동원해서 무덤을 지키자, 그리고 큰 바윗돌로 무덤을 막게 되고, 총독의 도장을 받아서 경비병을 세워가지고 무덤을 지키게 되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두려움이 올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진 자에게 두려움이 엄습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은 바로 세상의 영이 그를 잡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성경 고린도전서2:12절에 보면 세상의 영이 인생을 붙잡고 있으면 어느 누구도 두려움을 피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세상의 영은 어떤 영이냐? 로마서8:15절에 보면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다 했어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의 영에 붙잡혀 있으니까 무서워하는 종의 영에 붙잡혀서 결국 시간 가면 갈수록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죽음 앞에 대책만 세운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해 가지고 유대인들의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이 가득 찼던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여나 우리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까? 뭔가 모르기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습니까?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회복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그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죄책감의 문제들을 오래 두게 되면 자기도 원치 않게 많은 문제들 가운데 빠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니 죄를 지었으면 죄책감이라도 있어야지’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죄책감을 여러분 오래 두게 되면 영적인 문제 속에 빠지게 됩니다. 맞는 말입니다마는,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지은 모든 죄, 죄로 인한 죄책감에서부터 우리를 완전히 해방하셨습니다. 그 해방하심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참된 평안과 함께 주님 주시는 참된 자유함이 여러분에게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지은 죄책감 속에서 염려하고 있으면 거기에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되어서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을 다 놓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5: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여러분 무엇이든지 염려하는 부분들이 있습니까? 여러분 지금 혹여나 염려 속에서 두려움 가운데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까? 그것을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주께 맡겨버리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염려와 두려움을 갖고 있으면 베드로전서5:8절에 보면 악한 사단, 살아있는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데 염려하는 자들, 두려움에 있는 자들을 찾아서 결국은 무너뜨리기 때문에 “너희 염려를 주께 맡기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책감이 있어야 합니다마는 거기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죄책감 가져야 합니다마는, 그게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게 맞지만,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죄책감조차도 다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욥을 보면 참으로 신앙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염려 체질이었습니다. 그런 욥이 욥기3:25-26절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 일이 내게 임했다.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했습니다. 그러면서 26절에 보면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라고 고백함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두려움과 염려들 가운데 혹여나 있는 분들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앞에 여러분 모든 것들을 가지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도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부족함도 상관없습니다. 혹여나 지금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증거로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언제입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아니 그러면 됩니까? 아니 그렇게 살아가면 됩니까? 상관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정하셨다 말씀했습니다. 연약함이 있으면 연약함이 있는 대로 나아가면 됩니다. 히브리서4:15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동정하실 못하실 이가 아니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는 분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연약함을 주님께서 먼저 다 체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그대로 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히브리서4:16절에 말씀했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러분 연약함에 빠져있기 말고, 좀 담대하게, 당당하게, 얼굴에 철판 깔고 오늘도 그리스도 붙잡으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와 함께, 해방과 함께, 그 속에서 주시는 참된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이 축복 된 응답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인들은 두려움에 붙잡힌 부분들 때문에, 그 속에서 내린 결정들 때문에 결국 역사 속에서 전 지구에도 알 만큼 2,000여 년 동안에 나라 없는 백성들로 고난 가운데 빠졌던 결과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이 두려운 그 사실 때문에, 두려움을 가졌던 그 부분들 때문에 결국은 지구의 역사, 전 민족이 알 만큼 2,000년 동안에 고생했던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모든 두려움과 모든 걱정들, 염려들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아 해방받는 그런 축복 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무덤 속에서도 진행되는 하나님의 역사
두 번째입니다. 무덤 속에서도 진행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 말씀을 드렸는데 언제도? 무덤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 다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무덤 속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모든 때에 계속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과 함께 요한복음 19장에 똑같은 상황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19:32-36절에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신하들이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으로 찔렀습니다마는 거기에 피와 물이 쏟아져나왔고, 죽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뼈를 꺾지 아니했다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뼈를 꺾지 아니한 그것이 이미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출애굽기12:46절에 보면 성경에 뼈가 꺾이지 않는다 라고 이미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 예언이 성취되는 현장이었습니다. 유월절 고기를 먹을 때에 뼈를 꺾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뼈를 손상하지 말라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다 예언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요한복음19:32절에 보면 다른 사람의 뼈는 꺾었습니다. 그런데 33절에 보면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그냥 단순히 뼈가 꺾여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지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34:20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했습니다. 그냥 단순히 뼈가 꺾이지 않은 사실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어진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시신을 부자인, 공 회원 중의 한 사람인, 그 시대에 존경받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아리마대 요셉이 그 예수님의 시신을 빌라도에게 달라고 청원하고, 그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의 묘에 안치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사야53:9절에 보면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사실 예수님은 사용되지 않은 부자의 새 무덤에 들어갈 것이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리마대 요셉을 하나님께서 들어가지고 그 말씀의 성취를 이루는 일에 쓰게 된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이 썩지 않을 것을 말씀했는데 성경에 요한복음19:39절에 보면 니고데모가 방부제를 시체에 넣게 되는 본문을 보게 됩니다. 방부제를 예수님의 시체가 썩지 않도록 넣게 되는 부분을 보게 되는데 여러분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밤중에 예수님께 와가지고 예수님께 질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숨어있다가 위험한 순간에 지금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숨어있는 두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키는 이 일을 위해서 드러나게 하신 사실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이고, 한 사람은 니고데모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어떠한 경우를 통해서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고, 또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들을 준비시켜서 일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는 두려움 가운데 숨어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아와서, 또 할 수 있는 담대함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시신을 아리마대 요셉이 요청했고, 또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을 넣음으로 말미암아 썩지 않도록 한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을 들어서 쓰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에 엄청난 복음으로 말미암은 핍박들이 이 땅에 일어날 것을 이미 성경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순교 당할 자리에 갈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을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죽음의 자리까지 내어준다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신앙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때에 우리에게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교회사 속에 순교자들을 보십시오. 하나같이 많은 핍박과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그 순교자들이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그 순교의 제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순교의 역사들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때에, 그 사람에게 필요한 힘을 주셔서 그 일을 이기게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반드시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 저와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여러분 말씀을 받을 때에 이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그냥 교회 왔다 나가지 마시고,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 담은 말씀들이 한 주간 여러분의 현장 속에서 어떻게 걸음걸음마다 성취되어지는가 그 사실들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한 주간 모든 현장 속에, 모든 문제와 사건들, 모든 때가 있습니다.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그 역사들을 여러분 마음속에 말씀이 담겨진 그 부분들을 가지고 확인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어떤 것도 우리는 승리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까? 모든 역사의 최고의 중심은 복음 사역입니다. 모든 일이 전도 중심으로 진행되어집니다. 여러분 마태복음24:4-14절에 보면 말세 때에 전쟁과 자연재해가 일어남을 이미 성경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갈수록 전쟁과 자연재해가 심해지지만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복음 증거의 흐름에 필요한 일입니다. 마태복음24: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갈수록 전쟁과 재앙의 역사들이 더더욱 일어나지만 전부 다가 복음 증거의 흐름에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모든 삶의 방향을 어디에 맞춰야 합니까? 복음 증거하는 이 사역 속에 삶의 모든 방향들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나가서 나귀를 달라 하라.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그 나귀를 줄 것이다 했습니다. 마태복음21:3절에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아무리 어려운 현장 속에서도 복음 사역을 위해서 필요한 사람과 조건을 하나님이 차질없이 준비해 놓으시고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만물의 주인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빌립보서4:1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풍성한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한 자들도 하나님께서 악한 날에 반드시 쓰신다 했습니다. 하물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전도자로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언제입니까?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들, 필요한 조건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게 되어있습니다. 그게 바로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의 최고의 흐름이 전도의 흐름이고, 그 속에 있으면 다 보입니다. 그리고 그 전도의 흐름 속에 있으면 결국은 다른 생각과 다른 대책과 다른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전도의 흐름 속에 있으면 결국 모든 축복들이 회복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은 다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영안 하나가 어두워서 실패했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흐리면 다 틀린 것입니다. 영적으로 흐리면 결국 틀릴 뿐만 아니라 실패하게 되고, 불필요한 것들이 자꾸 보여지고, 결국은 그 불필요한 것에 사로잡혀서 그것이 생각나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선택과 판단들을 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열려지면, 다시 말해서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이 사실에 대한 눈이 열려지면 선한데 지혜롭게 됩니다. 악한데 미련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가치 없는 것에는 점점 둔해지고, 중요한 부분이 우리의 눈에 보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삶의 순간순간 걸음걸음이 가치 있는 삶으로 살아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안이 열려져서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누림으로 여러분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바라고, 걸음마다 승리케 되어지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5월 30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모든 때에 구체적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
(마27:56-66)
서론: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약속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로 살도록 증인으로 살도록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하면 힘을 얻고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되고 참된 성공이 따라오게 됩니다. 이 눈이 열리는 것이 영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는 언약이기에 염려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죄입니까? 오늘 예배를 통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야겠습니다.
1. 영안이 어두워 실패한 유대인들
가. 영안이 어두운 유대인들
(1) 바르게 훌륭하게 철저히 살지만 영안이 어두워 영적인 부분을 못 보고 하나님에 대해 놓쳤음(호4:6-7)
(2)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탄의 말을 들었음(창3:5-7)
나. 육신적인 것에 충실한 유대인들
(1) 예수님 쪽으로 사람이 몰리니 메시아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인데 육신에 잡혀 영적인 부분을 못 봄
(2) 구원받아놓고도 육신적인 수준으로 신앙생활을 해서 유익 된 쪽을 선택하고 파당을 짓게 됨(고전3:1-9)
(3) 마가 다락방 역사를 체험한 예루살렘 교회가 영적으로 쓸데없는 논란에 해명함(행11:1-18)
다. 따라오는 두려움과 염려
(1)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에 처형 후 경비를 늘리고, 무덤 입구를 바윗돌로 막고, 총독 도장으로 인봉
(2) 하나님을 떠난 사람,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올 수밖에 없음(롬8:15)
(3) 죄를 짓고 죄책감에 오래 붙잡히면 문제가 옴 = 죄책감으로 망하지 않도록 모든 죄를 십자가에 사하심
(4) 죄책감에 붙잡혀 있지 않고 해방 받은 그 사실을 입으라(요일4:18) / 염려를 주께 맡기라(벧전5:7-8)
(5) 욥은 믿음은 좋은데 워낙 염려 체질(욥3:25-26)
(6) 유대인들이 두려움 때문에 온 결과는 온 지구의 역사, 전 민족이 알만큼 1,500년 동안 고생함
=> 뻔뻔스럽게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라(롬5:8, 히4:15-16) -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2. 무덤 속에서도 진행되는 하나님의 역사
가. 모든 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1)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셔서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와 확실히 죽었기에 뼈를 꺾지 않음(요19:32-36)
(2) 성경에 뼈가 꺾이지 않는다고 예언(출12:46) -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된 죽음이 성취된 것(시34:20)
(3) 예언된 말씀을 성취하실 하나님이 그 때에 숨어있던 두 사람을 불러낸 것(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4)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을 준비하셔서 쓰심 – 문제와 사건 당할 때 힘을 주시고 감당하게 하심
(5) 순교자는 그 시간에 그 현장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힘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심
=>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 속에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성취시키심
나. 모든 역사의 최고 중심은 복음사역
(1) 마지막 때에 전쟁과 자연재해가 더 심해지는 것은 복음증거의 흐름에 필요한 일(마24:4-14)
(2) 하나님은 아무리 어려운 현장에서도 복음사역을 위해서 필요한 사람과 조건을 차질없이 공급하심
(3) 그리스도 안에 풍성한 준비가 되어 있기에 너희 쓸 것을 채우심(빌4:19) / 악한 사람도 적당하게 쓰심(잠16:4)
(4) 복음과 전도의 흐름 속에 있는 것만 확인하면 됨 – 하나님의 최고 흐름은 전도의 흐름
=> 그 속에 있으면 전부 다 보이고, 하나님께서 전도 흐름 안에 있는 자의 모든 것을 책임지심
결론: 유대인들이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영안 하나 어두워서 실패했습니다. 영적으로 흐리면 다 틀립니다. 생각도 판단도 다 틀립니다. 그래서 실패하고, 불필요한 것들이 자꾸 보이고 생각납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지면 선한데 지혜롭게 됩니다. 악한데 미련하게 됩니다. 영안이 열려지면 가치 없는 것들에 점점 둔해지고, 중요한 부분에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삶의 순간순간, 걸음걸음이 가치 있는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정말로 모든 때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이 사실을 보는 영안이 열려짐으로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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