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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항상 함께 하리라”
(마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마28:18-20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2천 년 전에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그 일을 위해서 하늘과 땅의 권세 가진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만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주님은 이 자리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항상 함께 하리라” 오늘, 이 예배가 주님이 함께하시는 그러한 예배가 되기를 바라고요, 또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 자리에 찾아오신 주님께서 내 마음과 생각을 치유하고 우리에게 영적인 힘을 회복시켜주시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먼저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약속이 있다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리라 말씀하신 부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능력이 체험되어지고 누려져야 되지요. 분명히 항상 함께하리라 약속하셨다면 당연히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부분들이 체험되어지고 누려져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신앙생활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다니는 모습은 있지만, 진정한 능력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디모데후서3:5절에 보면 마지막 때에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다. 참된 모양은 있을지 모르지만, 항상 함께하시는 이 약속들을 누리지 못하니까 경건의 능력들이 사라져 가는, 그래서 사회를 향해서 전혀 교회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그런 지금의 시대인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계시록3:1절에도 보면 사데 교회를 향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살아 있다고 하나 죽은 자이다’ 이름은 살아 있다고 하나 죽은 자이다. 어떤 면에서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모습을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들을 갖게 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리라 말씀하셨는데 우리의 개인도, 우리의 산업도, 우리의 교회들도, 우리의 현장에도 주님이 함께하시는 사실들을 누리지 못하니까 현장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그런 결과들을 가져오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망의 권세, 죽음의 권세 잡은 자 마귀를 깨트려 버리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다 라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바로 사도행전1:4절에 말씀하고 있는데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 요엘서2: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세에 남종과 여종들에게 성령을 물 붓듯 부어 주신다” 약속하셨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사도행전1:4절에 보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연약했던 초대교회 제자들이 이 언약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오순절 날에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게 되고요, 성령이 임하니까 능력이 나타남과 더불어 더 이상 제자들은 무능하고 연약한 인생들이 아니었음을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의 축복을 누려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신앙생활의 삶이 되어 질까요?
1. 편집된 것을 바꾸라
첫 번째입니다. 우리 안에 각인되고 편집된 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우리 안에 각인되고 그 각인들 통해서 내 인생에 많은 부분이 편집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 부분들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 가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응답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응답을 못 누리느냐? 내 속에 오래된 각인, 그로 말미암아 편집되어 있는 부분들 때문에 복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많은 문제들 있지요. 또 오래된 문제들, 질병들, 우리도 모르게 실패하는 부분들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은 알고 보면 우리 안에 편집되어 있는 부분들 때문에 오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왜 말씀 붙잡아야 하고, 왜 기도해야 합니까? 항상 함께하리라 약속의 말씀을 주셨는데 실제로 우리는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말씀 붙잡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말씀 붙잡고 조금만 기도하게 되면 우리 안에 각인되어지고 우리 인생에 편집되어 있는 부분들이 바뀌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 안에 영적인 문제 있는 한은 육신적으로 아무리 몸부림쳐도 안 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문제는 내 노력과 내 수고와 내 육신적인 인격과 상관없이 결국 망하게 되어있는 것이고, 또한 모든 것들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안 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몸부림침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문제와 실패들이 계속 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내 안에 오래된 각인된 영적인 문제, 편집되어 있는 것에서 나오는 영적인 문제 때문에 그런 결과들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는 결국은 수많은 상처와 한계들로 갇혀지게 되고요, 그래서 우리는 1분 후에 일어날 일들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순간순간 넘어지고,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우리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안 될 수밖에 없는 영적인 문제와 개인의 한계는 창세기 3장에서 나오는 문제이고, 원죄의 저주 속에서 나오는 문제이고, 그 배경에는 흑암의 권세가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인생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세기 3장의 원죄의 저주, 그 배경에 있는 흑암의 역사들이 해결되는 것을 가지고 구원받았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아 놓고도 분명히 구원받아 놓고 복음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어려움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안에 이미 오래전부터 각인, 뿌리, 체질 되어있는 부분들, 복음 이전에 먼저 들어가 있는 부분들 통해서 결국 우리도 모르게 순간순간 그 부분이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에 복음은 받았지만, 어렵고 힘들고 실패가 또 계속적인 어려움들을 겪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냥 지날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 내 안에 각인되고 편집되어 있는 그 부분들 때문에 중요한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되고요,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것들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 인생은 무너지게 되고 결국 나중에 열심히 인생을 살아놓고도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복음보다도 더 많은 다른 것들이 들어와 있어요. 이미 복음 받기 이전에 많은 것들이 우리 안에 각인되어 지고 편집되어 있고요, 지금도 우리가 복음을 받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복음의 말씀 앞에 선다고 하지만 세상 현장에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말씀보다도, 복음보다도, 내 안에 세상의 다른 기준들이 내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계속적인 어려움들이 계속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결국은 내 안에 편집되어 있는 그것이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빠져나오게 될 때에 결국은 갈라디아서2:20절이 되는 것이지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내 안에 내가 살면 안 되어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다시 말하면 각인되고 편집된 부분 속에서 빠져나오게 될 때에, 그때 비로소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이고 그때부터 비로소 참된 하나님의 역사가 내 인생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시면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산에 대해서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실은 롯과의 관계 속에 갈등을 겪다가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되고, 아브라함은 창세기13:18절에 보면 상수리 마므레 수풀 가운데 단을 쌓게 되지요. 그리고 창세기 22장에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데 그것이 바로 모리아 산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호렙산에서 나이 80에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들이 이루어지고요, 또 엘리야 선지자도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의 말씀을 받고 그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어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마지막 미션을 어디에서 주셨느냐? 감람산에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중요한 미션을 전달했던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 하나님 앞에 1:1로 서서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는 그 축복 된 비밀의 시간이 내게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던 사람들마다 또 하나님이 쓰실 사람들을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몰아가셨어요.
여러분 우리 인생 한번 보십시다. 내 개인이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1:1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들이 내게 있는 것인가? 이것을 가지고 묵상기도 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특별히 목회대학원에서 말씀 나오기를 우리 성도들이 회복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묵상 기도다. 묵상의 단을 쌓는 것이고, 심지어 묵상 대학, 묵상 아카데미까지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약속의 말씀 붙잡고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는 묵상의 시간들, 여러분 지금 현장의 세상은 육신적인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간에 명상으로, 세상의 것을 가지고 명상으로 사람들을 인도해 가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인간적인 것들을 가지고 명상으로 인도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나오는 것을 가지고 깊은 묵상의 시간들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가지고 깊은 묵상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묵상 기도에 들어가면 창세기3, 6, 11장 그게 뒤바뀌게 되어요. 나와 세상과 성공 중심에서 살아갔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잡고 묵상 기도 속에 들어가면 그것이 뒤바뀌게 되어요. 늘 우리가 메시지를 들어왔잖아요. 창세기 3, 6, 11장 이 땅의 근본문제이고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 부분들이 언제 뒤바뀌게 되느냐 하나님 앞에 서서 여러분 개개인들이 깊은 묵상 기도의 시간을 가지게 될 때에 그 부분들이 뒤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묵상 24시가 되어 질 때에, 우상이 문화화 되어져 버렸는데 그게 사도행전13, 16, 19장 아닙니까? 문화화되어버린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현장의 우상의 역사들이 언제 무너지느냐? 묵상 24시 되어 질 때에 그것이 무너지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묵상 25시 들어가게 될 때에 우리 인생의 운명의 문제 6가지, 불신자 상태 6가지라고 하지요. 그 6가지 문제들이 묵상 25 역사 속에 들어갈 때에 완전히 해결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이제 새롭게 시작하십시다. 무엇을요, 여러분 나름대로 기도한다고 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깊이 묵상하는 묵상기도의 시간, 그것을 통해서 모든 것 치유되어지고 회복하는 시간들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보면 사역 중에 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했던 부분들이 있습니다. 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했다는 말은 24시 기도했다는 말이지요. 여러분 24시 기도했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시간적인 의미보다도 마음의 상태, 마음의 중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묵상기도, 묵상 24, 묵상 25속에 들어가면 그때 따라오는 응답이 있는데 영원의 응답이 오는데, 위로서 보좌의 축복과 함께 시·공간을 초월하는 역사와 함께 우리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빛이 전달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 안에 각인되고 편집되어진 부분들을 바꿀 수 있는 묵상의 기도, 새롭게 도전하십시다. 갈수록 사실은 너무 빠르게 정신없이 변화되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도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많아요. 여러분 우리가 말씀 붙잡고 깊은 묵상의 시간들 가지게 될 때에 내 속에 각인되고 편집된 부분들 속에서 빠져나오게 되고요, 그 속에서 빠져나올 때 비로소 하나님의 축복 된 역사들이 누려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어요. 그러면서 주신 축복이 무엇입니까? 창세기12:1-3절에 보면 “내가 너를 복이 되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겠다”. 그러면서 3절 마지막에 뭐라 했습니까? “천하 만민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겠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면서 완벽한 축복을 선언하신 겁니다. 복이 되게 하겠다 했어요. 그러면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 할게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한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절대적인 배경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이지요. 복이 되게 하고 절대적인 배경이 되어 주는 이유가 뭐냐? 3절 마지막에 보면 천하 만민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아야 하니까, 다시 말하면 237 나라를 살려야 하니까 네가 복이 되게 하고 내가 네 배경이 될게, 완전한 축복을 주신 거에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잘 안 믿어졌어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 안에 각인되고 편집되어진 부분들 때문에, 믿는다고 믿는 폼은 잡았습니다마는 그러나 생각은 딴 데 있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겉으론 믿는 것 같은데 마음과 생각은 딴 데 있었어요. 그래서 희망 가지고 붙잡고 있었던 것이 롯이었어요. 롯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수가 없었어요. 그 롯은 한마디로 말하면 아브라함 마음속에 이미 편집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나름대로 조금이나마 희망 삼고 있던 부분들이에요. 인간적인 부분들이지요. 그런데 창세기13:14절에 보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말씀했어요. 아브라함이 깨닫고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15-17절 보면 “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것도 영원까지 너희에게 이르리라”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 안에 각인되고 편집된 부분들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마어마한 축복 된 역사들이 보여지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한 번쯤은 여러분의 매일 매일의 시간들 속에서 정말로 묵상하면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들을 아무리 바빠도 가져야 합니다. 엄청난 축복이 다 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고 편집되어 있는 그것 가지고 살아가고요, 거기에 모두가 다 사실은 걸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들은 것, 그게 우리 안에 편집되어 있잖아요. 여러분 우리 렘넌트들도 세상에서 음악 듣고, 영상 보고 이런 부분들이 자기도 모르게 계속해서 심어져요. 우리도 마찬가지이고요,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자꾸 심어지는 것이 세상의 것이에요. 그러면 그것이 필요 없다는 말이냐? 그건 아니에요. 다 틀렸다는 말이냐? 그건 아닙니다. “항상 함께 하리라” 이 사실이 안 되어진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약속이 항상 함께하리라 인데 이 약속이 안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출애굽기 3장에 보면 80년 전에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내셔서 모세를 통해서 새로운 일들을, 축복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안에 자기도 원치 않게 이미 다른 것들로 편집되어 있었던 부분들 속에서 나온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고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하리이까?” 이건 모세의 마음속에 편집되어 있는 부분들 속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4: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아가는 걸음 속에 사실은 그 어떤 좋은 환경 속에 있을 때보다도 더 큰 능력의 역사가 모세의 걸음 속에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다윗은 이미 어릴 때 목동으로 있을 때 시편78:70-72절에 나와 있는 말씀처럼 목동으로 있을 때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것으로 심어져 있었습니다. 왕 될 것이라 하면서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 부음을 받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도 다윗에게는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어릴 때에 하나님의 것으로 편집되어 있고, 하나님의 것으로 심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어려움도 어려움이 아니고 오히려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기 때문에 나는 부족함이 없다” 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여러분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 하는 선지자 850명을 하늘에 불을 끌어내려서 다 무찌르게 되는 엄청난 능력을 행했습니다.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불을 끌어내린 것이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19장에 보면 자기의 편집된 것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나를 죽여 주옵소서. 내가 열심히 특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는데 내 할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게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자기 안에 깊이 오랫동안에 각인되고 편집된 부분들이 나온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아니라는 것, 새로운 약속들을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적들을 다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안에 편집되어 있는 것이 안 바뀌어졌습니다. 심지어 여러분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변화산상에 데려갔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변화되는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거기에 놀라가지고,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가 여기에서 집을 세 채 지읍시다. 하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집을 세 채 지읍시다. 무슨 말입니까? 변화산 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되지 않은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런 제자들을 결국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 부르셔서 40일 동안에 집중적으로 그들에게 각인된 것, 편집된 것들을 바꾸신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의 중요한 축복의 역사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1:3절에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거기에 사도행전1:14절에 보면 마가 다락방에서 그들이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다 했습니다. 그 오로지 기도의 비밀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자기 안에 편집된 부분들이 바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오로지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그들이 예배하는 동안에 일어난 역사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2:42절인데“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지금 내 속에 편집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그것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무능입니다. 사실은 무능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은 반드시 한계가 드러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각인되고 편집된 것만 바뀌어도 굉장한 역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각인되고 편집된 것을 바꾸는 묵상기도의 비밀,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회복하십시다. 일이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열매들을 맺느냐? 그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말씀 붙잡고 깊은 기도의 비밀 속에 들어가는 그게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그것 없이 잘 되었다? 반드시 여러분 다른 문제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잘할 수 있는데 다른 문제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일이 아니라, 모든 열매들이 아니라 내 자신이 하나님 주시는 말씀 속에서, 깊은 묵상기도 속에서 주님 주시는 힘을 얻는 그 시간들이 있어야 모든 것 회복되는 역사가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축복의 비밀들이 여러분 모두에게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3가지가 보임
두 번째입니다. 이 묵상의 기도의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게 되면 세 가지가 보입니다. 먼저 첫 번째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18절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 가진 나라는 사실들이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 가진 우리라는 사실들이 보여집니다. 여러분 다시 말하면 내가 창세기 3장 속에 있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 다시 말하면 보좌 속에 있는 나라는 사실들이 보여집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 가진 진정한 나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 안에 있는 나입니다. 아멘입니까? 그게 복음 가진 나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복음화의 시작이고, 내가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어도 성공할 수밖에 없는,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 안에 있는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다른 세상의 그 어떤 배경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걸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아무리 열심히 인생을 산다 할지라도 한마디로 말하면 인생은 여러분 사기당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 가진 나라는 사실을 놓치고 살아가면 열심히 사는데, 그 열심히 사는 인생이 사기당하는 인생이 되어집니다. 반대로 조금만 그 사실을 알면 알수록 나와 나와 관계된 모든 자녀들, 가정과 산업 현장들 시간 가면 갈수록 응답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보여지는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 능력과 권세 가진 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무엇이 보여집니까? 19절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세상 살리는 비밀이 보여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 가진 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그 속에 영적인 힘을 회복하게 되고, 그 영적인 힘을 회복하게 될 때에 그 속에서 보여지는 것이 바로 세상 살리는 비밀이 보여지는데 그 세상 살리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가서’, ‘제자’, ‘세례’, 이 세 가지 단어는 세상 살리는 비밀입니다. 여기에 ‘가서’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무슨 말입니까? 눈으로 보이는 그냥 외면적인 그런 현장이 아니라 여러분 우리의 모든 관계된 현장의 내면을 보는, 영적인 현장을 보는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힘이 있으니까 세상의 모든 것 다 가지고 있는데 한 가지 영적인 비밀들을 알지 못해서 지금도 멸망 가운데, 운명 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세상을 보는 눈이 제대로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게 ‘가서’입니다. 내 가정도, 내 자녀도, 내 모든 현장도, 산업도 영적인 눈으로 보는 눈이 열려집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도행전 3장에 나면서 앉은뱅이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운명에 빠진 그 내면을 본 것입니다. 영적인 현장을 본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영적인 사실을 가지고 영적인 현장을 제대로 보면 볼수록 그리스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말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짜 여러분 현장이 제대로 영적 사실로 보여지면 그리스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결과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이 땅의 모든 현장은 사실 다 가지고 있지만 왜 영적인 문제가 일어납니까? 그리스도 한 가지 몰라서 문제 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현장이 보여지는 눈이 열려지는 그게 ‘가서’입니다. 세상 살리는 비밀입니다. ‘가서’, 모든 현장을 영적인 비밀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힘을,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적인 힘을 얻으면 저절로 영적인 현장이 보여집니다.
두 번째입니다. 여기에 뭐라고 했습니까? 중요한 것은 ‘제자를 삼아’ 했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힘이 있으면 영적인 현장 보는 눈이 열려질 뿐만 아니라 제자 보는 눈도 열려지게 되고, 먼저 하나님이 제자들을 여러분에게 붙이시게 됩니다. ‘제자를 삼아’ 하나님이 전도와 선교의 문을 영적인 힘 가지고 있는 여러분에게 여시게 되어있습니다. ‘제자를 삼아’.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세례를 베풀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교회의 축복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진짜 영적인 비밀을 알면 알수록 올바른 복음을 말하는 교회 속에 내가 신앙생활 하고 있다.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올바른 복음운동 말하는 그 교회에 내가 중직자다, 그 자리 자체가 축복입니다. 여러분 우상 신전이 지역에 세워지게 될 때 우상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흑암의 역사들이 완전히 지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교회가 세워진다 할지라도 복음 전하지 않는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중요치 않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아무리 많은 교회가 세워진다 할지라도 교회가 사명 잃어버리고 복음 전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이 땅에 일어난 일들이 전쟁 같은 재앙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교회사를 한 번 연구해보세요. 교회들이 많이 세워졌지만 교회가 사명 잃어버리니까 전쟁 같은 재앙의 역사들이 시대시대마다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말하면 여러분, 복음 전하는 귀한 교회 속에 내가 신앙생활 한다, 여러분 그 자체가 축복이고, 복음 전하는 주의 교회 속에 주의 종들 볼 때마다 ‘아 너무나 귀하다’ 보여지게 되어있고, 복음 전하는 귀한 교회 속에 중직자로 세워졌다, 또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볼 때마다 그 한 분, 한 분이 귀한 분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여러분 아실 것은 복음 전하는 귀한 교회 속에 세워졌다는 그 자체가, 내가 그 속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축복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기에 뭐라고 했습니까? ‘세례를 주고’, 교회의 축복입니다. 복음 전하는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여러분 영적인 힘을 가지면 가질수록 복음 전하는 주의 종들이 새롭게 보여지고, 앞서서 헌신하는 중직자들이 새롭게 보여지고, 모든 성도들이 이 힘을 내어서 교회를 돕고, 인도받는 부분들 볼 때마다 힘이 나고, 새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오늘 ‘세례를 주고’이 말입니다.
세 번째 보여지는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 20절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세상 끝날까지, 여기에 세상 끝날까지 무슨 말입니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완벽하게, 완전하게 책임지신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언제입니까? 항상, 끝난 것 아닙니까? 나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끝날까지 책임지시는 그 하나님이 항상, 끝난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함께 하시겠다, 하나님이 내 인생 속에 함께 하시고, 내 자녀들의 삶 속에 함께 하시고, 내 산업 현장에 함께 하시고, 나의 모든 미래에 함께하신다면 끝난 것입니다. 이 축복의 역사들을 말씀 붙잡고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을 얻게 될 때에 나타나는, 보여지는 응답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은 여러분 너무나 많이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숱한 설교 가운데서 계속해서 전달된 본문이기도 합니다. 항상 함께 하리라,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고, 그리고 우리 인생의 모든 것들도 여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이 축복 된 역사들을 누리지 못하고 여러분 인생을 살아간다? 그것은 인생이 아닙니다. 인생의 가치가 없는 것이고, 인생의 존재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성경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 인생 전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항상 함께 하리라. 여기에 대한 분명한 언약으로 잡혀지지 않으니까 이런 말 들으면 이런 말 듣고, 저런 말 들으면 저런 말 듣고, 흔들리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게 살아가는 신앙생활의 삶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이 답이 없으면 계속해서 방황하고, 갈등하게 되어있고, 그래서 이런저런 말들 앞에 흔들릴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마어마한 축복을 다 받아놓고도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는 불쌍한 기독교인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붙잡으면 됩니다. 언약으로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항상 함께하리라”. 실패도 그러면 실패가 아닙니다. 모세는 40세에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에 장인의 양을 치면서 살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잘못 보면 모세가 가장 어려운 시간이고, 가장 실패라고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항상 함께 하리라 이 축복 된 언약을 가지고 있는 모세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미디안에서 우리 인생의 모든 답을 말하고 있는 창세기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려움이 어려움이 아니라는 사실, 실패가 실패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감옥소에 갔는데 그 감옥소가 감옥소가 아니었습니다. 항상 함께 하리라 이 축복 된 언약 속에 있었던 요셉은 거기서 많은 응답들을 오히려 찾아낸 것입니다. 혹여나 이 자리에 나는 나 혼자다, 내가 왜 이럴까? 여러분 아닙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언약으로 주셨습니다. “항상 함께 하리라”. 이 사실을 이번 한 주간에도 말씀 붙잡고 깊은 묵상 기도 속에서 여러분이 체험하고, 확인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영적인 힘을 회복하시고, 여러분 나아가는 모든 걸음 속에 여러분 영적인 현장이 보여지고, 세상 살리는 비밀이 보여지고, 거기에 완벽하게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여짐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의 걸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6월 13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항상 함께 하리라
(마28:18-20)
서론: 하나님이 약속하신 최고의 약속이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해결하시고 사망,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행1:4) 말세에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욜2:28) 연약한 제자들은 이 약속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고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축복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어떻게 하면 실제로 역사하실까요?
1. 편집된 것을 바꾸라
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적인 문제가 있는 한 육신적으로 아무리 몸부림쳐도 안 됨
(1) 영적인 문제는 내 육신적인 노력, 수고, 인격과 상관없이 망하게 하고 실패하도록 만듦
(2) 열심, 몸부림치며 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문제와 사건들이 계속 일어남
(3) 마음과 생각은 수많은 상처와 한계를 가짐, 순간순간 한계에 부딪히는 인생임
=> 그래서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것 = 안될 수밖에 없는 영적문제와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오심
나. 구원받고 난 뒤에 어려움 당하는 부분
(1) 그리스도 없이 살아온 인생 = 복음 모르고 살아온 만큼 경험, 체험, 실패, 습관으로 편집
(2) 복음 받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과 상관없는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와 있음
(3) 그것이 중요할 때 중요한 것을 못 보게 함 => 내 속에 걸림돌, 편집된 것이 바뀌어야 역사가 일어남
다. 성경에 하나님이 쓰실 사람들(이것을 버리도록 하셨고, 버릴 때 축복하심)
(1) 하나님과 나와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 = 성경의 산(상수리 수풀, 모리아산, 호렙산, 목장, 감람산)
(2) 예수님이 사역 중에 산에 올라가 기도하신 이유 = 24시간 기도(내 마음의 중심과 상태를 말하는 것)
(3) 각인된 것이 완전히 바뀌는 역사(창13:14, 15-17)
(가)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어마어마한 축복들을 가졌는데 그것을 모르고 편집된 것을 가지고 살아감
(나) 세상에서 들은 것이 그대로 심겨짐, 성경은 다 틀렸다가 아닌 항상 함께하리라 => 이것이 안된다는 것
(4) 모세(출4:24), 다윗(시78:70-72), 엘리야(왕상18-19장), 제자들(감람산 40일 집중)
(5) 초대교회(행1:3, 행1:14) = 이 말을 이해한 사람들이 메시지 붙잡고 예배드림(행2:42)
=> 기도는 보좌의 축복이 임하는, 시공간 초월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237나라 빛이 임하는 시간
2. 3가지가 보임
가. 너희는(마28:18)
(1)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 가진 나, 우리를 말하는 것 => 이것이 복음 가진 진정한 나
(2) 세계복음화의 시작,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어도 성공할 수밖에 없는 비밀
(3) 이 사실을 알수록 그리스도의 능력의 증거가 가정, 자녀, 업, 현장에 구체적으로 나타남
나. 세상 살리는 비밀(마28:19)
(1) 가서 : 모든 민족, 사람 위에 영적 현장이 보임(행3:1-6)
(2) 제자 삼아 : 전도할 사람이 보임, 사람을 붙이기 시작함, 전도와 선교의 문을 여심, 제자를 붙이심
(3) 세례를 주고 : 복음 전하여 재앙을 막는 교회 자체가 축복, 모든 성도와 후대가 너무나 소중함
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마28:20)
(1)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가 보이기 시작 => 항상, 이것이면 끝임
(2) 내 인생, 자녀, 사업, 미래에 함께하신다면 끝!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완전히 책임진다는 말
결론: 한 가지 딱 언약 잡길 바랍니다.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언약 붙잡으면 됩니다. 실패했습니까? 실패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항상 함께하고 계십니다. 모세가 살인자로 미디안에 도망가서 장인의 양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리였습니다. 그곳에서 창세기를 기록했습니다. 요셉은 감옥소에 갔습니다. 감옥이 감옥이 아니었습니다. 한 주간도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리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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