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세상을 이길 힘 가진 자의 삶
2022-0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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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세상을 이길 힘 가진 자의 삶”
(신16:18-22)

1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19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20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2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22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아멘.
신16:18-2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장자의 축복으로 237시대 만 명의 성도를 회복하십시다. 어느 분이 저한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내용이 뭐냐 하면 ‘왜 하나홀에서만 찬양대 하느냐? 지금 각 실에서 5군데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있는데 찬양대를 좀 파견해서 각 실에서 예배도 드릴 수 있도록 그래야 예배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다’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비록 이 자리에 같이 참여하지는 못하시지만 각 실에서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도 이 시간에 최고의 보좌의 축복이 여러분 예배드리는 그곳에 임하는 귀한 응답 있기를 축원합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정말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든지 간에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집중해서 바라본다면 이 자리에 뿐만 아니라, 있는 그 현장에도 더 큰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특별히 짧은 시간입니다마는 여러분 있는 자리에서 최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오늘 찬양대 찬양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 만드신 나를 발견하고 돌아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신명기서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신명기서는 마지막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준비해야 될 가장 귀중한 것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명기서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렇다면 우리가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 교회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부분들을 미리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가만히 보면 이 광야는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한 준비하는 장소에요. 모든 것들을 준비하는 장소가 어디이냐? 바로 광야인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들을, 특별히 광야에서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될 부분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들어가기 이전에 광야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집중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준비토록 하기 위해서 이 신명기 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신명기 서에 광야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말씀하고 있는 그 전체적인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면 한 단어로 말한다면 보좌의 축복입니다. 물론 신명기에서 복음과 언약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마는 광야 길을 가는 중에 전체 메시지로 우리에게 주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보좌의 축복을 찾아내야 된다 라는 것. 보좌의 축복을 찾아낸 사람이 가나안 땅을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보좌의 축복을 찾아내야 참된 응답들이 가나안 정복 이후에도 참된 응답들이 주어진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40년 동안에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거의 다 죽게 되었어요.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주역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보좌의 축복을 본 사람이에요. 여러분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양생활에 가장 귀중한 응답이 있다면 보좌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광야에서 보좌의 축복을 찾아내느냐? 아니 광야길 가기도 힘든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기에서 성막을 만들라고 했어요. 그 성막이 무엇을 말합니까? 보좌의 축복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막 안에 들어가 있는 모든 기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온갖 성막 안에 가득 차 있는 여러 가지 기구들이 있지요. 그 모든 것들은 하나하나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막 안에 들어가 있는 모든 기구들도 보좌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신명기 16장에 세 가지 절기를 말하고 있는데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세 가지 절기를 잊지 말라고 하면서 또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일 년에 이 세 가지 절기는 꼭 지킬 것을 명령하셨는데, 이 세 가지 절기가 한 단어로 말하면 바로 보좌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홍해를 건넜지요. 그리고 여리고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요단을 건넜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요단을 건너는 거기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도 보좌의 축복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좌의 축복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어려운 때에, 가장 어려울 때에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보좌의 축복을 말씀하셨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보좌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보여져야 되어요. 특별히 우리 신앙생활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우리의 인생을 광야 길을 걸어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여정, 평생의 여정이 될 수 있고, 그 여정을 걸어가는 길에 광야 같은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주신 보좌의 축복이 누려진다면 지난날 많은 문제로 보였던 것들이 아, 하나님께서 이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한 것이었구나!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난날에 여러분의 모든 것들이 진정한 보좌의 축복을 알고 누리게 된다면 그 모든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은 그 문제 속에 준비된 축복을 누리라고 주신 사실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가장 귀중한 것이 있다면 보좌의 축복을 찾아내야 되어요. 이 보좌의 축복이 찾아져야 우리가 누구나 다 하고 있는 자리싸움 하지 않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이 보좌의 축복이 진정한 눈이 열려져야, 보여져야 우리가 매일 매일의 염려의 삶을 사는데 그 염려조차도 내려놓게 되어 있어요. 이 보좌의 축복이 보여져야, 이 보좌의 축복이 보여져야 세상 사람들이 나름대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 거기에 우리의 마음이 빼앗겨서 흔들리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예배가 여러분 정말로 보좌의 축복이 열려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 속에서 반드시 찾아내야 할 축복이 있다면 보좌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여러분 신앙생활 한다할지라도 신앙생활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이 보좌의 축복을 우리가, 내가 어떻게 누릴 것인가? 지금 내가 이 보좌의 축복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내게 지금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신명기6:4-9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의 흐름 속에서 그 말씀이 내게 각인되어지는 것, 그게 보좌의 축복을 지금 내가 누리는 것입니다. 신명기6:4-9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아 들으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부분들을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각인하라 했어요. 지금 내게 보좌의 축복이 누려지는 가장 귀중한 비밀이 있다면 이 말씀의 흐름 속에서 이 말씀이 이 내 안에 각인되어지는 것, 그게 보좌의 축복을 누리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매주 마다 훈련되어지는 말씀들 있잖아요. 그 말씀을 놓치지 말고요, 그 매주 마다 진행되어지는 훈련들 속에서 토요일 되면 우리는 핵심이나 산업선교회나 전도학 이 모든 메시지를 통해서 주중에 전달되어진 메시지가 다시 정리되어집니다. 그리고 주일되면 강단을 통해서 그 메시지를 가장 확실하게 우리가 정리된 메시지로 붙잡을 수 있도록 또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의 흐름을 인도를 받다 보면 그 말씀이 나도 모르게 한 문장으로, 한 단어로 딱 붙잡혀지게 되어 있어요. 그때 그 말씀 가지고 내가 한 주간 24시 할 수 있다면 그 말씀이 나도 모르게 내 속에 각인되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때에 나와 상관없이 보좌의 능력이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저도 주일을 준비하면서 여러분 심지어 묵상기도 할 때에 성경을 읽고 가장 짧게 묵상기도를 제가 앞에서 하잖아요. 그냥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한 주간 말씀을 놓고, 그 말씀을 붙잡고 오늘 전달될 메시지를 놓고 그 메시지를 가지고 한 줄로 제가 기도를 합니다. 그냥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보니까 우리교회 성도들 가운데서도 주중에 강단을 통해서 전달된 메시지들을 나름대로 자기의 글로 메모를 남기는 분들이 있어요. 글을 써서, 그런데 제가 많은 은혜를 받고 있어요. 몇 몇 분들이 계시는데 그것을 올리더라고요. 처음에는 제가 좋아요 한번 눌러주었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제가 은혜를 받고 있는데 계속 누르려고 하니까 좀 그렇잖아요. 목사가 자꾸 좋아요 누르면, 그런데 주일날 제가 했던 메시지인데 제가 여러분을 섬기는 자리에서 함께 나누었던 말씀인데 성도분이 받은 메시지를 정리를 해서 글로 딱 올리는데 제가 은혜를 받아요. 제가 힘을 얻고요, 아! 이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라는 사실들을 새롭게 또 붙잡아요.
제가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인도받았는데 그 올려진 글들을 보면서 전달된 메시지를 저도 따로 생각하게 되고, 또 제 자신이 은혜를 받아요. 그리고 그때 훈련 나오는 메시지를 글로 올리는 분들 계시고, 또 매일 매일의 기도수첩을 통해서 나오는 메시지들을 글로 올리고, 그림으로 올리는 분들 있는데 진짜 제가 은혜를 받아요. 그런데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한 줄로 썼던 그 내용들이, 한 단어로 여러분 나름대로 각인시키기 위해서 한 단어로 붙잡았던 그 부분들이 나도 모르게 뇌 속에 각인되어지고 뿌리내려지고 결국 그 속에서 체질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서 참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능력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나의 삶이 능력 속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좌의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요.
그래서 지난주에 우리가 같이 숙제를 내어드렸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하루 5분 묵상 시간을 가지라 했습니다. 오늘도 숙제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하루하루 시작하면서 한주 시작하면서 한번만 해도 괜찮아요. 메시지를 받을 때 그 메시지를 가지고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여러분의 글로 남겨보세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니에요. 그게 쌓이고 쌓여서 어느 날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능력 속으로 들어가 있고, 보좌의 축복 속에 들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메시지 흐름을 가지고 그것을 여러분의 글로 남겨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안 되면 그냥 제목만이라도 적어놓고 보세요. 우리교회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든 넘으신, 여든 다섯, 여섯 되신 이런 분들도요 가만 보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제 방에 찾아와서 수첩을 내어놓아요. 뭔가 싶어서 보면 주일날 강단 제목하고 본문, 또 핵심 훈련 되어진 그 메시지들을 제목하고 본문하고, 받은 은혜들을 한 줄로 적어서 기도수첩을 만들어서 저한테 와요. 그래서 제가 그분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이것을 절대 버리지 말고 그대로 간직했다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말씀들을 인도 하셨는가 한번 확인해 보시고, 이것을 가보로 물려주시라고 후대들한테,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았노라고 가보로 물려주시라고 그렇게 제가 부탁을 드립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니에요. 말씀이 내 생각을 바꾸고요,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요, 나도 모르는 순간에 어느 순간에 내 자리를 하나님께서 보좌의 축복된 자리로 인도해 가시는 사실들을 보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평생에 누려야 할 부분들입니다. 말씀의 흐름 속에서 그 한 줄로, 한 단어로,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는 각인들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정확한 언약을 붙잡았다고 해요.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정확한 언약을 붙잡았다고 해요. 그러면 중요한 것은 내가 그대로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정확한 언약을 붙잡기만 하면 거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게 되어 있어요. 뭐로 역사하시느냐? 보좌의 축복으로 역사하시게 되어 있어요. 자꾸 강단에서 숙제를 내느냐?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살아야 하니까, 또 위기시대를 살려야 하니까, 또 우리 후대를 살려야 하니까 여러분 자신들이 먼저 살아나야 되겠지요. 그래서 정말로 정확한 언약을 시간시간마다 붙잡는 그래서 여러분 삶이 보좌의 축복이 나타나는 삶이 되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오늘 제목은 “세상을 넉넉히 이길 세상 힘 가진 자의 삶”이 무엇인가?

1. 매일 누려야 할 구원의 축복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을 이길 힘은 보좌의 축복 밖에 없어요. 그러면 이 보좌의 축복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느냐? 여러분 구원의 축복이 보좌의 축복을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받은 구원이 보좌의 축복이에요. 보좌에서 하나님이 생명을 주관하시는데 여러분을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불러주시고 여러분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셨어요. 내가 구원받았다, 내게 보좌의 축복이 임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매일 누려야할 축복이 있다면 보좌의 축복이요, 구원의 축복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매일 누려야 될 축복이 있다면 구원의 축복이요, 이 구원의 축복은 보좌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매일 누려야 될 구원의 축복에 대한 부분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에 급하게 빠져나왔어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 뿐 만 아니라 발효된 누룩이 들어가 있는 그런 빵을 가지고 먹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워낙 급하게 애굽에서 나오다 보니까 오늘 3절에도 시급하게 나왔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급하게 나오다보니까 음식 챙기지도 못했고요, 그러니까 누룩 없는 빵, 그게 무교병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나온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무교병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세상 백성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라고 이것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삶을 따라 살아가지 말고 구별된 삶을 살라는 말씀을 이 무교병을 통해서 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누룩이 들어가 있지 않은 떡, 그게 무교병이거든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나서 무교절에 고난의 떡이라 해서 먹은 겁니다. 유월절에 애굽에서 빠져나오게 되었지요.
그리고 홍해를 건너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생했습니다. 그때 먹은 떡이 무교병입니다. 고난의 떡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거기 보면 결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던지느냐?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법대로 살아가지 말고 너희들은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라고 그것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유월절 절기는 하루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무교절을 지키라고 했느냐? 유월절을 통과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주일의 삶을 무교절로 지키라고 했는데 왜 무교절을 일주일을 지키라고 했느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구원의 축복들을 계속해서 누리며 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에 무교절을 지키면서 구원받은 유월절에 축복에 대한 부분들을 일곱 배로 누리는, 구원의 축복의 역사들, 구원의 감사를 누리며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구원은 받았지만 그 사실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구원받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데 그 축복된 삶을 날마다 매일 매일의 감사와 감격과 축복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겁니다. 그게 유월절 이후의 무교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그 풍성한 비밀을 누리며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주일에 올 인해야 하느냐? 일주일 동안에 이 구원의 축복의 은혜의 역사들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7일 동안에 그것을 누리고 확인하고 또 승리토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일 날 올 인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하루에 예배드리는 모든 시간들, 또 각 모임들 있지 않습니까? 이 모든 모임들 통해서 딴 것 하지 마세요.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에 대한 축복, 그 구원에 대한 감사, 그 사실 속에 풍성히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한 주간에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그 구원의 은혜에, 그 구원의 감사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을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구원의 역사는 완전하고 엄청난 것이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누리라고 주신 것이 바로 구원이에요. 매일 누리라고 주신 것이 바로 구원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유일하고 완전한 것은 구원밖에 없습니다. 왜 유일하고 완전하냐?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엄청난 겁니다. 여러분 구원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 사람들은 열심히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데 한 가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삶의 배경에 흑암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요. 흑암이 이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요.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도 살아가는 삶의 방법이 내가 열심히 살면 되지, 내가 바르게 살면 되지, 그래서 고생해요.
분명히 여러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의 배후에는 악한 사탄이 흑암의 역사들이 지금도 우리의 인생을 끌고 가고 있어요. 그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8:44절에 보면 이것이 모든 불신자들의 아비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탄이 무엇이냐?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 했습니다. 거짓말로서 지금도 우리를 속이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속임수에 속아가지고 악한 사탄이 우리 인생을 공격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그 영향 속에 있으면서도 모르고 살아가요. 그리스도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느냐? 이 모르고 살아가는 모든 인생의 배후에 있는 악한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또 이 땅에 일어나는 고통에 대한 이유를 모릅니다. 왜 저주와 재앙이 계속되어지는 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내가 잘못해서 되는 줄 알아요. 내가 잘 못 살기 때문에 저주와 재앙이 임한 줄 알아요.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렸잖아요. 그런데 왜 죽어야 되는지 이유가 없었어요. 거기에 왜 죽어야 되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삭대신 수양을 준비하셨지요. 지금 어떤 면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왜 고통이 임하느냐? 왜 이 땅이 가면 갈수록 파라다이스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왜 저주와 재앙이 계속 임하느냐? 딴 게 아닙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저주와 재앙이 계속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열심히 살아도 그 원죄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도덕적으로 바르게 산다할지라도 그 원죄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실제적으로 이 땅에 임하는 고통은 원죄 때문이에요. 큰 고통이, 큰 잘못해서이냐? 아니에요. 원죄 때문이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고통의 이유를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죄 문제 때문인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것도 대속물로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10:45절에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우리를 대신해서 속죄물이 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저와 여러분이 저주와 재앙 속에 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셨는데 히브리서9: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는데 무엇으로? 자기의 피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 영원한 속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서10:14절에도 말씀하고 있죠. “한 재물로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한 번의 재물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에요.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당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주팔자, 운명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속에서 해방하신 것입니다. 왜 사주팔자, 운명 가운데 살아가느냐? 에베소서2:1절의 말씀에 의하면 영이 하나님을 떠나서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영이 죽으니까 그 영이 누구를 인도받느냐? 에베소서2:2절에 보면 “세상 풍속을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악한 사단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사단을 따라가는 자들이 어떻게 세상 풍속을 따라가요. 세상 풍속이 뭡니까? 점하고, 굿하고, 사주팔자, 운명에 매인 삶을 사는 거에요. 세상 사람들이 왜 점하고, 굿하고, 사주팔자, 운명에 매여 삽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저와 여러분을 완전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하신 것입니다. 로마서8: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할렐루야! 여러분 이 구원의 축복의 비밀들을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진정한 참된 자유함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돼 있어요. 요한복음8:32절이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축복을 날마다 여러분 확인하고 누리면 누릴수록 자유로워질 뿐만 아니라 이 사실 속에서 날마다 확인하며 나갈 때마다 여러분 삶이 여러분 수준과 상관없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진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누려야 될 축복이 있다면은 모자람이 없는 구원의 축복, 우리를 위해서 완전한 축복을 주신 이 구원의 축복, 이 사실들을 누리는 것,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이번 한 주간 여러분 모든 삶의 현장에서 체험되고 누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구원받은 축복이 얼마나 완전하고 대단한 것이냐? 세상 모든 사람이 점칩니다. 종교인들, 모든 사람이 우상숭배하고 점치고 있어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점칠 필요가 없어요 간단하게 말하면. 왜 그렇습니까? 말씀 속에 모든 답이 있음이 확인되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 말씀의 흐름만 잘 받아오면 말씀 속에 여러분의 미래가 보여집니다. 여러분 당하는 문제, 어려움들, 모든 것들 말씀 흐름만 제대로 붙잡고 인도받아 오면 그 말씀 속에서 미래가 보여지고요. 결국은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나중에 보면은 나도 모르게 과거가 발판되어지고, 또 오늘을 통해서 미래가 보여지고, 미래를 앞당겨서 오늘로 보여질 수 있는 축복이 말씀이 내 속에 쌓이게 될 때, 여러분 우리 속에 무엇이 쌓이느냐 중요해요. 그게 결국은 나타나게 되거든요.
근데 말씀이 내 속에 말씀의 흐름 속에서 계속 쌓이게 되면은 나도 모르게 모든 과거들이 어느 날 발판이 딱 되어지는 축복과 함께 오늘을 통해서 미래를 보고, 그러니까 점칠 필요가 없는 거죠. 미래를 오늘로 앞당겨 볼 수 있는 거에요. 불신자들은 점치기 위해서 점쟁이 찾아가는데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는 거에요. 그러면서 어떻게 되느냐? 그리고 모든 현장을 정복하게 되는데 미래를 볼 뿐만 아니라 미래를 보니까 당연히 정복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보좌의 축복,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뭐냐?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이 말씀이 내게 각인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림으로 여러분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귀중한 증거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 믿는 순간에 주어진 두 가지 축복이 있어요. 그게 뭔 줄 아십니까? 여러분은 절대 멸망당할 수 없는 우리의 근본을 바꾸신 축복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신분이 바뀌었어요. 세상이 어찌 할 수 없는 신분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이 우리에게 주어졌어요.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신분이 우리에게 주어졌어요. 신분이 바뀌어졌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근원을 바꾸셨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근원을 바꾸신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겁니다. 세상을 살리라고, 사람들을 살리라고, 현장을 살리라고 우리에게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신분, 보좌의 축복이에요. 우리에게 주신 권세, 보좌의 축복이에요. 이 축복을 누리면 누릴수록 정말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실제적인 역사들과 함께 말씀이 성취되어지는, 말씀 자체가 힘 있게 우리에게 올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성취되어지는 귀중한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구원의 축복을 누리면서 사는 참된 신앙생활
그때 오는 축복이 뭔 줄 아십니까? 내가 지난날 실제적으로 두려워했는데 그게 기도가 딱 되어져요. 그리고 지난날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매일매일 한숨 속에 살아갔는데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어지는, 늘 뭔가 모르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궁핍함을 느꼈는데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사실들을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구원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오늘 찬송가 37장 불렀잖아요. 여러분 지난날의 모든 염려들, 한숨들이 변하여 노래가 되는 축복. 내가 모자라고 부족한 삶을 살았고, 늘 궁핍함을 느꼈는데 여러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궁핍함을 느끼잖아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어느 날 보니까 그 궁핍함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이 내 삶이 되어지는 부분들, 이 사실이 되어지면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뭐냐?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는 축복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가운데서 문제를 당하는 것 같고, 구원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문제를 당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문제를 당하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여러분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가운데 문제를 당하면 그 문제가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축복이 되어져요. 하나님의 영예 인도받는 가운데서 여러 가지,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과 문제들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 축복의 문들을 더 열어 가시는 사실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여러분 예수 믿는데 왜 어려움이 있느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 어려움이 없다면, 문제없다면 하나님 응답도 없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런데 그 어려움과 문제들을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받느냐? 구원의 축복의 역사를 누리는 가운데 당하느냐? 그렇지 못한 가운데 당하느냐? 다르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우리는요. 거의 세 가지에 영향을 받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받아요. 무슨 말이냐? 나도 모르게 내 삶을 살아오면서 무의식 속에서 내게 형성되어지는 체질이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지 못하면 저 자신도 그래요. 성령충만 받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내 체질들이 나와요. 세상 습관들, 무의식 속에 내 안에 들어갔던 것들 그게 나와요. 대부분의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죠.
두 번째 현장의 문제입니다. 현장의 문제는 사단의 12가지 문제, 이건 절대 멸망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영향받고, 이 속에 아예 빠져 있는 사람도 있고 여기에 영향을 받아요. 그리고 세 번째 문제는 뭐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말이나 생각 속에서 오는 불신앙, 여러분 말이나 생각 속에서 오는 불신앙 그게 내게 영향을 주고 있잖아요. 나도 모르게 내가 영향 받고 있고, 말들 때문에 상처도 받고요. 힘도 빠지고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자칫 사람들이 흔들리는 부분이 뭐냐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불신앙의 말을 듣고, 흔들리고 거기에 착각이 와요. 또 세상 앞에 서면 사람들을 이렇게 보면은 좀 나름대로 복음 없이 성공한 사람들 많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들 한 마디가 뭔가 대단한 것 같고, 힘 있는 것 같고,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면 어떤 면에서 ‘내가 뭘 했는가?’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래서 흔들릴 수도 있어요. 그게 착각하는 겁니다. 진정 그 사람은 복음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말에 의해서 내가 영향받고, 거기에 흔들린다는 것은 그건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자신의 체질과 세상적인 체질과 현장에 일어난 사단의 12가지 문제로 말미암아 절대 멸망의 문제, 거기에 사람들 주위에 일어나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많은 부문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뭐냐?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보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의 역사를 입는 가운데 있으니까 그들에게 문제가 안 생긴 게 아닙니다. 어려움이 안 생긴 게 아닙니다. 문제와 어려움들은 여전히 더 핍박으로 다가왔지만은 그렇다고 해서 이 복음의 역사가 막혔느냐? 아니에요.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언제 일으켰느냐? ‘제 구시 기도시간에’중요한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은 복음 누리고 있는 그 시간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운명에 빠진 자들을 봤어요. 거기에 이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니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니까 그 베드로가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향해서 선포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거기에 앉은뱅이가 걷게 되어지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사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베드로가 그리스도 이름을 선포했다는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뭐냐?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하니까 그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베드로는 나면서 현장에 앉은뱅이 된 자를 보면서 그리스도 유일한 복음의 역사들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 앉은뱅이 일으킨 사건 때문에 사도행전 4장에 보면은 종교 법정에 서게 되었어요. 근데 거기에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하니까 지구상 유일한 그리스도 선포, 지구상에 처음 선포되는 메시지를 베드로가 하게 되죠. 사도행전4:12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다른 이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하나님의 성령이 베드로에게 임하니까 그 말을, 그 있는 현장에 하나님이 주신 말을, 하나님 베드로를 통해서 주시는 그 말을 베드로가 전달한 겁니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놀랐잖아요. 아니 어떻게 말 못하는 베드로가 저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느냐?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어부로써 무식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저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느냐? 무슨 말입니까?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하니까 자기가 갖고 있는 수준과 능력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베드로를 통해서 하게 하신 사실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 6장에 교회 안에 문제들이 왔어요. 사도행전 5장에 보면 하루아침에 두 사람이 죽어 나갔어요 교회 안에. 여러분 만약에 우리 교회 안에 하루아침에 사람이 두 명이 죽어 나갔다, 교회 안에 큰 문제거리 아닙니까? 문제죠 그런데 초대교회에 하루아침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어 나갔는데 거기에 교회의 시험이 들었느냐? 전혀, 오히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그것을 통해서 초대교회는 영권을 회복하는 기회가 돼요. 많은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두려워했다 했어요. 영권을 회복하는 기회가 됐어요. 사도행전 6장도 마찬가지고, 7장, 8장 계속해서 무엇을 말합니까? 그 어떤 핍박과 어려움들이 있었지만은 성령충만함을 입으니까 그 핍박도, 어려움도 영향 주지 못했다 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복음의 귀한 비밀들, 구원의 축복의 역사들을 날마다 말씀을 듣고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성령의 충만함 속에 내 자신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내 능력과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에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이 하신 전도와 선교의 문들이 계속해서 열려지게 돼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붙잡으면 돼요. 보좌의 축복인 구원의 축복의 은혜를 날마다 누리고, 확인하고, 이 사실 속에 서자는 겁니다. 뭐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보좌의 축복은 구원의 축복을 말해요. 이 구원의 축복을 날마다 여러분 감사하고, 회복하고 누리게 되면은, 그것도 말씀을 통해서 회복하고 누리게 되면은 나도 모르게 어느 날 내게 성령충만함 가운데 들어가게 되고, 그 성령충만함 속에서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내게 영향 주지 못하는, 나의 모든 걸음걸음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그 일에 증인 되어지는 그 축복된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하나교회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절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축복을 누리라고 주신 세 절기뿐입니다. 사실 이 명절 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에 모였느냐? 예루살렘 성전에 모였어요.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았어요. 그리고 그 은혜를 가지고 재앙과 우상이 가득한 현장 속에 들어가서 오히려 그들을 정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구별된 삶을 회복하면서 살았던 사실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 절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중심한 삶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따라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 절기가 다 완성된 것입니다. 사도행전1:1절, 3절, 8절 우리가 잘 아시는 말씀이죠. 사도행전1:1절 그리스도, 유월절을 말하고 있죠. 사도행전1:3절 하나님의 나라, 우리의 배경인 수장절을 말하고 있어요. 사도행전1:8절 오직 성령, 오순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세 가지 절기가 누구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 성취가 되었어요. 그러면은 지금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따라 살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는 무엇을 따라서 역사합니까? 세계복음화를 따라서 역사합니다. 그러면은 당연히 우리의 삶이 237에 방향이 맞아야죠. 그리스도께서 다 완성하시고, 지금 그리스도께서 세계복음화의 역사를 따라서 역사하신다면은 당연히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춰야죠. 237에 방향 맞춰야 되죠. 거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축복을 몰아주시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우리교회, 지금 237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 많은 부분에 갱신들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르고 계시겠지만 지금 우리 예배도 5개 나라 언어로 지금 통역이 되고 있고요. 앞으로 우리교회를 통해서 15개 나라 언어로 통역되어지는 그런 시스템을 통해서 237 나라를 살리는, 심부름 하는 그 일들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여기에 다민족 우리 팀들이 들어와 계시는데 이분 한 분, 한 분들이 너무 중요해요. 이분들 사역하는 분들도 너무 중요한 분들이고, 이분 한 분, 한 분이 한 나라에요. 정말 우리가 다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돼요. 또 차세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이미 우리 교회 안에 237 시스템들이 많이 있어요. 우리가 못 보고 있는 부분이지,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눈을 열고 함께 기도해야 되고요. 또한 그와 더불어 정말로 우리의 틀들도 깨뜨려가야 돼요. 237 나라를 향한, 지난주 우리가 237을 향하는 마음이라고 했는데 단순히 그냥 마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237을,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들을 우리의 틀들을 깨뜨려가면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마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은 하나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저 자신도 그렇고요. 그런데 하나교회라는 틀들도 어떤 면에서 237을 놓고는 깨뜨려가야 합니다. 좋은 것이지만 237을 향해서는 깨뜨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237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나는 계속해서 ‘하나교회, 하나교회’한다면은 하나님이 주실 축복의 역사를 담을 수 있는 그릇들이 준비되지 않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세계복음화를 따라서 역사하시듯이 237을 준비해놓고 우리에게 역사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은 우리의 그릇들을 준비해가야 합니다.
특별히 기도해 주실 것은요. 본 교회 장로회 수련회가 매년 있어왔어요. 우리 장로님들이 전체 교회 방향을 놓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들을 가지고 그것도 외부에 팔공산, 이런데 호텔에 가서 식사하면서 같이 메시지 나누는 시간들도 있었고, 아니면 또 교회 안에서도 나누는 시간들이 있었고요. 그런데 작년에도 그렇고, 코로나 때문에 사실 자체 장로회 수련회를 가지지 못했어요. 그런 가운데 제가 올해 들어오면서 우리 장로님들 장로회 수련회는 어떻든 가지면서 정말로 237을 향한 축복을 우리 장로님들이 먼저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될 것인데 라는 기도 가운데서 어떻게 인도받을 것인가 라는 것들을 생각하다가 지금 우리 전체 같이 가는 다락방 운동 속에서 어떤 면에서 시스템적으로 가장 앞서가고 있는 교회가 예원교회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시스템들을 한번 전체 우리 장로님들 한번 좀 보고 왔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같이 우리끼리 메시지 나누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만 명 성도를 향해서 나가기 위해서는 237 시대, 만 명 성도를 향해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만 명 성도의 응답을 받고 있는 예원교회에 가서 우리가 전체 어떻게 시스템들이 진행되어 오고 있는가 라는 것들을 우리가 한번 장로님들 중심으로 해서 한번 보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중략) 제가 이렇게 보고를 들으면서 우리는 그냥 가서 한번 보고 오려고 했는데 이게 아닌 거구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237을 향해서 그릇을 준비하라고 귀중한 교회를 통해서 또한 보게 하시는구나. 그래서 제가 오늘 아침에 교역자들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사실 교역자들도 토요일날 바쁜 시간들인데 특별한 경우 없으면 참석할 사람하고, 참석 못 할 사람은 못 하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모든 교역자들이 다 가서 교육부서, 교육국에 대한 인턴쉽을 반드시 받으라 했어요.
우리 장로님들에게 부탁합니다. 물론 그 시간들, 환경들 여러분 시간들 내는 것이 좀 불편함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우리 장로님들도 다 참석해 주십시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말만 237이 아니라 지금 어떤 면에서 앞서서 237에 응답을 받아가고 있는 귀한 교회를 통해서 우리 교회의 틀들을 좀 벗어버릴 것 벗어버리고, 237을 향한 시스템들을 우리가 갖춰 나가야 될 것이 아닌가. 여러분 특별히 대구라는 보수, 또 우리 하나교회 여러분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하나교회에 와서 적응하기 위해서 3년 살아남으면 그때 적응한다고 해요. 여러분 아무도 모르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우리의 틀이에요. 여러분 이 새가족들이 와가지고 좀처럼 적응하기가 어려운 곳이 하나교회에요. 하나교회 색깔이에요. 이제는 정말로 237을 향해서 나간다면 그 부분들을 깨뜨려져야 돼요. 그래서 우리교회라는 틀을 넘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세계복음화를 중심으로 역사해 나가신다면은 그러면 우리교회가 그 세계 복음화을 중심으로 해서, 237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역사에 인도 받을 수 있도록 틀들을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여러분 특별히 성도들 기도해 주시고, 우리 장로님들 다 참석해 주시고, 우리 미디어국도 참여할 것이고, 우리 교역자들도 참여할 것입니다. 아마 제가 생각하기에는 중요한 응답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그런 시간이 될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으로 237 시대, 만 명 성도. 그를 위한 그릇들이 준비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년 1월 23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세상을 이길 힘 가진 자의 삶
(신16:18-22)
서론: 신명기서는 가나안을 눈앞에 준비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광야는 가나안을 준비하는 장소입니다. 광야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들을,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을 준비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광야길 가는 동안에 전체 메시지 던지고 있는 내용은 보좌의 축복입니다. 어떻게 광야에서 보좌의 축복을 찾아내느냐? 성막, 성막안의 모든 기구, 세절기가 보좌의 축복을 이야기 합니다. 지금 내가 이 보좌의 축복을 어떻게 붙잡느냐? 신6:4-9,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말씀이 내게 각인, 뿌리, 체질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주중훈련, 토요일 핵심, 주일강단을 제목이라도 정리해서 한 줄, 한 단어로 정리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쌓여 보좌의 축복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확한 언약을 붙잡을 때 보좌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시103:20-22) 보좌의 축복으로 시공간, 환경, 사건, 문제들을 초월하게 됩니다. 세상을 이길 힘은 세상 끝날 까지 누려야 할 구원의 축복입니다.

1. 매일 누려야 할 구원의 축복
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급하게 나오게 됨(신16:3)
(1) 무교병 가지고 나온 것 =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
(2) 구원받은 사실을 기념하는 것은 하루이지만 구원받은 감격과 축복 누리는 것은 일곱 배로 더해서 누려야
(3) 그래서 주일에 올인하는 것 = 구원의 축복을 일주일 내내 누리면서 살아가도록
나. 완전하고 엄청난 구원 - 이 세상에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유일하게 완전한 것이 구원
(1) 이 세상이 흑암인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를 그리스도로 건져내신 것(요8:44, 요일3:8)
(2) 이 땅에 고통당하는 것은 죄 때문,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이 계속해서 이 땅에 임함(막10:45)
: 그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심(막10:45, 히9:12, 히10:14)
(3) 또 세상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당하고 있는 문제가 운명, 사주, 팔자. 그 속에서 해방(엡2:1-2, 롬8:2)
(4) 그래서 구원의 축복을 알면 알수록 자유로워짐(요8:32)
(5) 그리스도 믿는 사람은 말씀 속에서 모든 답이 내려짐, 말씀 쭉 들으면 참된 미래가 보여짐
(6) 하나님은 예수를 믿을 때 처음부터 두 가지를 주심(하나님 자녀된 신분, 세상나라 살리는 권세)

2. 구원의 축복을 누리면서 사는 참된 신앙생활
가. 구원의 축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참된 신앙생활
(1)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던 것 기억하고, 생각하고, 누리라는 이야기
(2) 구원받은 사실을 늘 확인하고 감사하면서 누리는 중에 문제를 당하는 것이 신앙생활
(3) 구원의 축복 누리다보니 두려움이 기도가 됨, 한숨이 노래가 됨, 궁핍함이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응답
나.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모든 것을 당하면 된다
(1)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문제 있다면 3가지로 나눌 수 있음
(가) 자신문제(무의식중에 체질), 현장문제(사탄 12가지 문제), 사람문제(불신앙)
(2) 그것을 듣고 흔들리고 착각, 우리가 대단한 사람 혹은 잘나가는 사람 만나면 흔들리고 착각
다.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가운데 일들이 일어남
(1) 사도행전 3장 : 베드로, 제 구시 기도시간에 앉은뱅이 일으켜 세움= 복음 누리는 시간에 베드로에게 성령충만 허락
(2) 사도행전 4장 : 베드로가 핍박 가운데 한 말,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행4:12)
(3) 사도행전 5장 : 교회 안 시험, 초대교회는 영권회복
(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게 축복으로 변하게 됨
(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것이 더 큰 복음의 문들이 열리는 시간, 아무 것도 문제 될 것 없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가지 명절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축복을 누리라고 주신 절기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새 은혜를 받고 그들을 정복하고 치유할 구별된 삶을 회복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세계복음화 중심으로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계복음화를 따라서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모든 방향을 237에 맞추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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