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3월 13일 주일 2부 예배 박관희 목사
“율법이냐 복음이냐”
(갈3:1-14)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멘.
갈3:1-14
■ 할렐루야!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장자의 축복으로 237시대 만 명의 성도를 회복하십시다. 오늘 찬양대 찬양처럼 말씀가지고 세상을 살려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이 갈라디아서3:1-14절 말씀 가지고 “율법이냐 복음이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매번 인사하는 것처럼 일만 성도를 향해 가야되겠지요. 237과 5천 종족을 살려야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일만 성도를 향해서 갈 때, 과연 우리가 율법이냐 복음이냐 라는 부분을 한 번 살펴보고 우리가 어디에 서 있어야 되는가? 라는 부분을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 주위에 죄 지은 자나 실수한 자가 옆에 있습니까? 그 사람을 어떤 눈으로 보고 계십니까? 저를 비롯해서 아마 여러분들도 실수를 하고,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이때 하나님은 나를, 또 여러분들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오늘 갈라디아서 3장에 나오는, 창세기12:1-3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 바로 구원이지요. 은혜이고 믿음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주시고, 그리고 전 세계에 이 복음을 선포하고 전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실수를 하고 죄를 범하고 반복해서 넘어지는 볼 수 있습니다. 반복되어지는 실수와 죄를 보면서 하나님은 어떻게 아브라함을 보셨습니까? 성경에 다윗 왕이 나오지요. 이 다윗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도 이 다윗 왕은 압니다. 세계 최고의 왕으로 알고 있고, 이 작은 이스라엘을 많은 나라에 하나님을 알린 왕으로, 하나님을 안 믿는 불신자들도 이 다윗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위대한 왕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겼고, 평생에 하나님의 말씀 따라 간 위대한 왕이지요. 그런데 사무엘하11:1-27절에 보면 다윗의 범죄가 드러납니다. 특히 27절 말씀에 보면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기에 악하였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말하게 되고 다윗은 회개를 하게 되어집니다. 참된 회개를 하게 되어지는 것이지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율법이냐 복음이냐 라는 부분을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일만 성도를 향해서 갈 때, 우리 교회에 일만 성도가 이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고 또 열어주시겠지요.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인데, 이런 저런 사람들이 많이 올 겁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복음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이 일만 성도를 부어주시겠습니까?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율법이냐 복음이냐” 한번 깊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시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의 눈과 생각과 말이 어디에 있는가?
첫 번째입니다. 우리의 눈과 생각과 말이 어디에 있는가? 저와 여러분의 눈과 생각과 말이 어디에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지요.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님들에게 이렇게 책망을 합니다. “어리석도다.” 그 이유가 뭡니까?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못 박히시고 구원을 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눈앞에 보이거늘, 어찌하여 다른 것에, 틀린 것에 미혹되어 빠졌느냐 라고 책망을 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님에게 중요한 얘기를 오늘 3:1절에서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법대로 살고 또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경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1:25절 말씀에도요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그 곳에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고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라고 분명히 말씀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온전한 율법을 들으면서 잊어버리는 자가 아닌 실천하는 것,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율법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야고보서2:26절에도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해야 되겠지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 복음을 보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들의 행동, 그리고 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완전하고 윤리 도덕으로 무흠하면, 흠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실은 이런 삶이 되어져야 되겠지요.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기 때문에 사실은 이런 부분도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우리 자녀들을 다 키우신 분들도 계시고 이제 태영아부 부모님은 한창 자녀를 키우고 있지 않습니까? 자녀를 어떻게 키우고 계십니까? 미운 5살이 있지요. 얼마나 미우면 미운 5살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는 시기이지요.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을 키워 보셨습니까? 다 키워보셨겠지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반항합니다. 부모의 말 안 듣습니다. 이때부터는 반항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은 어떻습니까? 지옥입니다. 중학교 2학년을 키운다는 것은 북한 김정은씨도 두려워한다고 미국 FBI, 우리나라 국정원에서 발표했습니다. 그만큼 무서운 것이 중학교 2학년이지요.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이지요. 부모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간혹 가다가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고, 취업을 했는데도 한 번도 속을 썩이지 않는 아이도 있다고 합니다. 부모 속을 한 번도 썩이지 않는 아이도 있어요. 저도 현장에서 그런 아이들을 보고 또 들었습니다. AI로 태어 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어떻게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이지 않는 아이가 있습니까?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도 에베소서6:4절 말씀에도 기록되어 있지요. “또 아비들아, 부모님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노엽게 하는 건지, 우리 자녀가 부모님들을 노엽게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 율법은 당연히 무시되어지고 부모님의 말씀을 안 듣는 아이였지요. 아마 지금 커가고 있는 아이들, 우리 렘넌트들도 똑 같을 겁니다. 우리의 말을 잘 들어주면 좋을 텐데, 우리 법을 잘 지켜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성경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완벽한 삶을 살아갑니다. 율법에 단 일점도 흠이 없습니다. 그리고 흠되는 일을 하지도 않습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 보면 존경을 합니다. 그 사람들이 지나갈 때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사를 하고 절을 하고 너무나도 존경하는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이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서 저주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흠이 없는 하나도 죄가 없는 이 바리새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서 저주의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마태복음23:13절에 보면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 보면 굉장히 무서운 말씀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말이지요. 이 말이 뭡니까? 복음을 막는 자다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아니 그 어떤 죄가 복음 막는 것 보다 더 큰 죄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과 윤리, 삶이 완전한데 예수님은 틀렸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쭉 보면 계속해서 이들을 향해서 저주의 말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완전하고, 완벽한데, 흠이 없는데 율법으로 너무나도 잘못을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그들인데, 왜 예수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이들을 향해서 저주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인지요? 그것을 한번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깊게 한번 묵상을 해 보셔야 합니다.
2.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렇다면 두 번째입니다.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저와 여러분은 어디에 서 있어야 될까요? 나에게는 항상 율법으로 점검하고 조심하고 남에게는 항상 복음으로 대하면 좋겠지요. 그런데 늘 반대인 것 같아요. 나에게 늘 율법인 사람은 남에게도 율법으로 대하게 되어 있고, 나에게 복음인 사람은 남을 대할 때도 늘 복음으로 대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엇으로 각인, 뿌리, 체질되어 있는지 그대로 열매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복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이 되어 있으면 그 열매도 복음의 열매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완전한데, 죄도 없고 흠이 없고, 내 삶은 완벽한데 만약 복음이 없다면 사실은 저주의 열매가 나올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갈라디아서3:24절 말씀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이 율법에 대한, 초등교사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초등교사가 뭡니까? 우리 옛날 성경버전에는 몽학 선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몽학 선생은 옛날 그리스 귀족들이 자기 자녀들 6-16세까지 가르치는 선생을 뽑았는데요, 그 선생을 누구에게서 뽑았느냐? 노예에게서 뽑았어요. 그래서 이 노예를, 노예 중에도 똑똑한 노예를 뽑아가지고 자기의 아이 6-16세까지 교육하게 만든 게 몽학 선생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면 몽학 선생을 다시 노예 신분으로 보내버립니다. 그 사람은 잠시 교사로서 인정을 받다가 그 임무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전락해 버리는 거지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오늘 이 갈라디아서3:24절 이야기는 너무 중요한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가 율법을 통해서 아! 내가 이 죄구나 라고 깨닫게 되지요. 그것을 복음을 듣게 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내가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되고, 복음 안에 있다면 더 이상 율법이 필요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바로 몽학 선생에 대한 부분이지요. 복음은 완전하고 충분하고 그리고 모든 것입니다. 복음은 모자람이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 복음,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모든 것이고, 충분한 것이다. 그것을 지금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부분이 크냐? 복음이 크냐? 비교도 안 될 만큼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고, 말씀이고 복음 안에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교회 이제 일만 성도들이 몰려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우리는 복음만 준비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이 본문 읽었지 않습니까? 11절 말씀에도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박국2:4절에도“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로마서1:17절 말씀에도 복음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졌다라고 분명히 기록되어져 있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다가 구약도 그렇고 신약도 그렇고 ‘의’가 나옵니다. 아브라함도 오늘 의가 나오고, 신약에도 의라는 부분이 나오지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성경에 나오는 의는 사람의 판단에 의한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뭐냐? 예수 그리스도, 복음, 언약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성경을 읽다가 구약이든 신약이든 의라는 부분이 나오면 예수 그리스도, 복음, 말씀을 대입시켜보면 그 성경이 보이게 되어 있고, 깨달아지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복음을 자꾸 내 의, 내 주장, 내 옳음 이것으로 주장하게 되면 창세기3장 우리가 계속 듣고 있지 않습니까? 창세기3장의 나 중심에 자꾸 빠지는 것이지요. 내 의는 이렇다, 내가 옳은 것은 이거다, 내가 그른 것은 이런 거다, 자꾸 판단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저 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 같이 죄를 많이 짓고 실수하는 제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제게 복음으로 살려주고 복음의 말씀을 전해줘야 제가 살아나지요. 제가 죄라는 것을 알지만, 죄를 지적하고 벌을 내린다면 제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까?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말씀은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로 살리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죄를 짓는 자도, 늘 범하는 자도 그리고 넘어진 자도, 가난한 자도, 또 부자인 자도,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복음 안에서 살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오늘 성경 말씀에 그대로 기록돼 있죠. 아브라함에게 처음부터 복음을 주셨고, 이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달하라고 말씀을 주신 겁니다.
율법으로는 우리는 죽을 사람입니다. 율법으로 보면 여러분들 이 자리에 구원받을 사람 죄송합니다.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단 한 명도 여러분들 의로 구원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죠. 복음으로, 우리가 은혜로, 믿음으로, 그 믿음도 하나님이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만 명 몰려올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의 준비가 되어져야 되겠죠.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입니다. 완전한 게 그리스도입니다. 율법은 그냥 몽학 선생이에요. 근데 완전하고, 충분하고, 모든 것은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게 의입니다. 의롭다 함, 의, 의인 이게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받은 우리는 성화의 과정 속에 변해갑니다. 우리 조직신학적인 용어인데 구원론에 구원의 여정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칭의를 받게 되어지죠. 하나님의 자녀로 칭의를 받게 됩니다. 그건 단 한 번 사건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화, 거룩해지는 것, 우리가 말씀을 실천하고, 말씀을 행하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는 거죠.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오랜 기간 동안에 말씀으로 각인, 뿌리, 체질이 되어질 때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 성화라는 말도 사실은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성화도 이루어지는 거죠. 복음을 누리는 깊이 있는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우리 담임목사님께서 지난 주 전도학교 때도 그렇고 가끔씩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될 것이다. 복음으로 될 것이다.’ 여러분들이 하려고 하지 말고 복음으로 되게 해라. 복음을 듣고, 깨닫고, 누리다 보면 된다. 그리고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들려지면 될 것이다. 이게 바로 복음이죠. 저 사람의 행동과 율법적인 흠이나 율법적인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들어가면 된다 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에게 부어주시죠. 그러면 그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가 삶의 실천도 되어지고, 행함도 되어 진다는 거죠.
우리 여러분들 자녀가 부모님의 마음을 빨리 이해하고, 철이 들고, 깨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렘넌트가 부모님의 그 마음을 이해하고 깨닫는 데까지는 조금 오랜 기간에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교회 성도님들이 다 복음을 깊이 있게 각인, 뿌리, 체질 되어지면 좋겠지만 우리 교회 성도님들도 아직까지 복음을 잘 이해 못할 수도 있고, 또 각인과 뿌리, 체질이 잘 안 내려지는 그런 우리 성도님도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다려 주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저 사람도 만들어져 가고 있다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게 성화에요. 그게 복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디에 서 있습니까? 율법이냐? 복음이냐? 우리 교회가 이제 일만 성도가 오면 많이 복잡해지고, 답답할 수도 있고, 상식선에서 이해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겁니다. 그리고 정신문제가 너무 심해서 교회에서 고함도 지르고, 예배도 방해하고, 힘든 사람들도 많이 올 겁니다. 근데 우리는 그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눈과 생각과 말이 어디에 있어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어디에 서 있어야 되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서 있을 곳은 복음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문제를 지금 해결해가고 있는 여정이요, 과정이라는 겁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음에, 그 그리스도에 내가 각인, 뿌리, 체질이 되어져 있을 겁니다.
언제 한번 우리 담임목사님이, 뭐 제가 자랑하는 거 아닙니다. 담임목사님이 저보고 ‘복음이다’ 라고 한 번 말씀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근데 참 제가 가슴이 뿌듯하더라고요. 만약에 우리 담임목사님이 저 보면서 ‘너는 율법이다’라고 한다면 제가 생각을 많이 해야 되잖아요. 근데 다행히 복음이다 라고 하셨는데 전 압니다. 왜냐하면 제가 구멍이 많아요. 일을 잘 못해요. 시키신 일을 제가 잘 감당도 못하고 그냥 그래요. 어떨 때는 보고도 못할 때도 있고요. 왜 이런 사람 있잖아요. 마음은 있는데 잘 안 되는 제가 그런 스타일이에요. 실수도 많고.
근데 우리 부교역자들은 너무 다 복음이에요. 우리 부교역자들 계속해서 여러분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든 부교역자 분들 전부 다 복음입니다. 이래도 복음, 저래도 복음, 얼마나 귀합니까? 사람이 복음이 돼 있다는 것은 ‘아 저 사람이 조금 모자라고, 실수도 많고, 또 죄도 짓고 하지만 복음이니까, 복음이니까 멋있다’라고 보여져야 되는 거죠. 그게 복음의 사람입니다. 에베소서4:15절 말씀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며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여정이라는 겁니다.
지금 이 렘넌트의 모습을 보면 실수합니다. 지금 이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면 실수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줘야 되겠죠. 복음으로 자라도록, 복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에까지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되는 겁니다. 그게 복음의 사람이죠. 우리가 있어야 할 곳입니다. 어떤 죄를 지어도 괜찮은 겁니다. 어떤 것을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죄를 짓고 싶어서 지어도 괜찮고요. 실수하고 싶고, 계속 하나님께 반항하고 싶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여러분들 자녀 안 키워보셨습니까? 여러분들 자녀가 여러분들 얼마나 속상하게 하고, 여러분들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합니까. 자녀가 여러분들 말을 들을 때도 있지만 안 듣겠다 라고 끝까지 반항하는 자녀들 얼마나 많습니까? 뭐 저도 마찬가지고요. 왜 낳았냐 싶을 정도로 후회될 때도 있습니다. 잠시지만, 영원하진 않지만 잠시지만 그럴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어떻습니까? 복음으로 기다립니다. 우리 아이가 한 번도 속 썩인 적이 없다? 아닙니다. 나중에 크게 속 썩여요. 그때는 감당이 안 됩니다. 나중에 크게 속 썩이면 감당이 안 돼요. 근데 저의 자녀는 어떠냐? 잔잔하게 속 썩여요.
이렇게 한 번씩, 그래서 말씀으로 힘을 얻고, 복음으로 힘을 얻고 넘어가고, 또 복음으로 힘을 얻고 넘어가고, 이 걸 가지고 성장이라고 합니다. 영적인 성장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성화가 단번에 이루어집니까? 말씀 들음으로 성화의 과정, 그 구원의 여정 속에 우리가 들어가는 거죠. 우리가 어디에 서 있어야 되겠습니까? 이번 한 주간에 깊이 있게 한번 묵상해 보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율법적인 눈으로 사람을 보고, 생각하고, 판단해 버리면 일만 성도의 응답은 절대 받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와야 되고, 교회에 온 사람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교회 오는 사람이 어떻게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복음의 눈으로 보고, 복음을 얘기해 주고, 복음으로 기다려주는 거죠. 그 사람이 복음으로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줘야 된다는 겁니다.
전도자 바울도 로마서7:24절-8:2절에 그대로 기록돼 있잖아요. 전도자 바울도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래서 로마서8:1-2절에 결론을 딱 내리잖아요. “그러므로” 이 접속사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므로, 율법을 얘기하는 것은 내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까지입니다. 그게 율법의 정의에요.
근데 거기서 끝나버리면 안 되죠. 그러면 그 뒤의 것을 보면 로마서8:1-2절이에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리라” 할렐루야! 이게 바울의 신앙고백이고, 완전한 복음입니다. 힘들 수 있고, 율법으로 죄의식과 또 실수를 전하면서 내가 낙심하고, 낙담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죠, 사람인지라.
그러나 아니에요. 의인입니다. 의롭다 했습니다. 사람이 말하는 의가 아니에요. 저는 요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를 나타내더라고요. 자기 의, 복음이 아니에요. 용서를 못해요. 저는 복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다 용서되더라고요. 이렇게, 제가 그릇이 넓고, 크고 그게 아니고 그냥 복음이니까 다 용서되고, 아 그럴 수 있겠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하더라고요. 제가 그런 얘기하면, 아니 복음이면 다 되지 않습니까? 아니 어느 누가 여러분들이 어떻게 여러분들 스스로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복음을 완전히 깨달을 때 세계복음화를 이루었죠. 다윗도요, 복음을 완전히 깨달았을 때 전 세계복음화를 이루었습니다. 죄를 짓고, 실수하고, 벌을 내린다면 누가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일만 성도님들이 막 몰려오는데, 일만 사람들이 막 몰려오는데 그중에 죄 지은 사람, 실수한 사람, 오만 사람 다 오잖아요. 그걸 우리가 벌을 내린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살아갈 수 있냐는 거죠. 설령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다 행하고, 흠이 없고, 완벽하다 할지라도 복음이 없으면 저주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얘기를 계속 하고 있는 거에요. 복음이 없다, 그건 완벽한 그것이 저주다 라는 거죠.
과연 저와 여러분, 또 우리 교회는 어디에 서 있어야 될까요?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들이 복음으로 서 계셔서 현장을 살리시고, 70 현장을 복음으로 살려내는 전도자의 축복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년 3월 13일 주일 1부 예배 박관희 목사
율법이냐 복음이냐
(갈3:1-14)
서론: 여러분 주위에 죄 지은 자나 실수를 반복해서 하는 자가 있습니까? 그 사람을 볼 때 어떤 눈으로 보고 계십니까? 저를 비롯해 여러분도 실수나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나와 여러분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➀ 창12:1-3,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실수를 저지르고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반복 되어지는 실수와 죄를 보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➁ 다윗은 불신자들에게도 알려진 왕입니다. 작은 이스라엘을 전 세계에 알린 위대한 왕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범죄가 드러납니다.(삼하11:1-27)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말하고 다윗은 회개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율법이냐? 복음이냐? 본문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어디서 행할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의 눈과 생각과 말이 어디에 있는가?
가.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를 향해 ‘어리석도다’ 말을 함(1절)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눈앞에 밝히 보이는데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된 것을 지적
: 법대로 살고,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생활모습
(2)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에 우리의 행위가 중요(약1:25, 약2:26)
(3) 불신자들은 우리의 믿음을 볼 수 없고 우리의 행함으로 판단
나. 자녀를 키울 때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 내가 노엽게 하는 건지 자녀가 부모를 노엽게 하는 건지 모르지만 대부분 이렇게 살아감
다. 바리새인들은 완벽한 삶, 율법에 흠이 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음
(1)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음
(2) 완벽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무서운 책망을 하심(마23:13)
(3) 천국에 못 들어갈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 하는 자도 막는다 = 복음을 막는 자
=> 율법과 윤리, 삶이 완전한데 예수님을 틀렸다고 하심(율법으로 완전한가? 복음으로 완전한가?)
2.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가. 나에게는 항상 율법으로 점검하고 조심하고, 남에게는 항상 복음으로 대하라
(1) 그런데 늘 반대 => 나에게 율법인 사람은 남에게 율법, 나에게 복음인 사람은 남에게 복음
(2) 내게 무엇으로 각인, 뿌리, 체질 되어있는지 그대로 열매로 나타남
(3) 초등교사는 구 성경에는 몽학 선생으로 기록(갈3:24)
: 그리스 귀족들은 몽학 선생을 노예 중에 골라 6-16세 아이들에게 교육을 맡기고 성년이 되면 노예로 돌아감
=> 죄 가운데 있다가 그리스도를 만나면 복음 속에서 더 이상 율법이 필요치 않음(복음은 완전, 충분, 모든 것)
나.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옳고 그름의 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갈3:11, 합2:4, 롬1:17)
(1) ‘의’라는 부분이 나타나면 예수 그리스도, 복음, 언약으로 해석하면 다 통함
(2) 복음은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
: 죄 지은 자, 늘 실수하는 자, 어려운 자, 넘어진 자, 가난한 자, 부자, 배운 자, 못 배운 자도 모든 사람을 살림
(3)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주셨고,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라고 하심(이방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 율법으로는 죽을 사람인데, 복음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살아가는 것,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
다. 구원의 여정 -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우리는 ‘성화’ 되어지는 여정
(1) 거룩하게 되어지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여정(‘칭의’처럼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음)
(2) 담임목사 메시지 속에 ‘될 것이다’ - 복음 속에 있으면 되어짐(엡4:15)
(3) 저와 여러분이 서 있어야 할 곳은 복음, 오늘도 내일도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복음!
결론: 율법적인 눈으로 사람을 보고, 생각하고 판단해버리면 1만성도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교회만큼만 아무나 누구든지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롬7:24-8:2) 아브라함이 복음을 완전히 깨달을 때 전 세계를 복음화, 다윗이 복음 속에 있을 때 세계복음화를 이루었습니다. 설령 완전한 율법을 다 지킨다고 한들 복음 없으면 저주의 사람입니다. 살리는 사람으로 복음으로 서시길 축원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