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스스로 개척하라
2022-11-09 15: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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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스스로 개척하라”
(수17:14-18)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아멘.
         수17:14-18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장자의 축복으로 237 시대, 1만 명 성도를 회복하십시다.’ 오늘 이 한날도, 이번 주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마음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을 당합니다. 평상시는 잘 인도를 받다가요,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도 모르게 그 문제 속에 묶이게 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또 안 좋은 조건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 문제만 보여서는 안 돼요. 그 문제만 보이기 때문에 거기에 우리도 원치 않게 그 문제에 묶이고, 매이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문제만 보면 안 되느냐? 우리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이 갖고 있는 그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이시고요, 우리에게 그 문제 속에서 현장에서 승리를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문제에 묶이고, 문제에 매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당할 때 보는 시각입니다. 두 가지 시각으로 나타나는데요, 문제를 당하면 그것을 발판삼지 않고 그 문제에 매이고 묶이는 사람이 있고요, 문제를 당하면 그 문제 속에서 그것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내고 낙심하지 않고 승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우리 자신들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실은 경중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들이 문제 가운데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 여러분들도 나름대로 이런 저런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고, 또 그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힙 입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온 분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에 내가 묶여 있고, 그 문제가 크게 보이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낙심하지 않고 승리하느냐? 여러분 정말로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모든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들을 통해서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계획을 그 속에서 찾아내시고 승리하는 그런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보면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나옵니다. 요셉의 자손들로서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기업이 분배되어지는 부분들이 나오는데요, 사실 이 두 지파는 이미 창세기 48장에 보면 48:8-22절에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에게 임할 축복을 야곱을 통해서 선언했고, 그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14절이 큰 민족을 이루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어지는 사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더 크게 본 겁니다. 그러니까 불평하게 되고, 핑계되게 되고, 불신앙에 빠지는 부분들이 오늘 본문에 나와요. 문제를,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님의 언약보다 더 크게 보았기 때문에 문제 앞에서 불평하고, 핑계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역사 속에 사로잡히는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내용들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당할 때에 그 문제에 사로잡히고 묶이고 매이느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문제에 매여요, 그 문제만 보여요.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도 사실 참 힘들고 어렵게 신앙생활 하고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를 향해서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또 오늘 15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스스로 개척하라 마지막 부분에 보면 18절에 보면 네가 개척하라, 스스로 개척하라, 네가 개척하라, 어떤 면에서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이 메시지가 제목만 딱 받아도 힘이 날 거에요. ‘그렇지, 내가 스스로 뭔가 해야지, 뭔가 애쓰고 노력해야지’, 뭔가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 스스로 개척하라, 네가 개척하라는 말은 네가 애쓰고 힘써서 밀어붙여서 뭔가 되도록 하라 그 말이 아니에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애써 가지고 뭔가 만들어내라 그 말이 아닙니다. 오늘 18절에 보면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사실 오늘 제목을 ‘스스로 개척하라’ 잡아 놓고도 고민하고 갈등했어요. ‘성도들이 자칫 착각해서 내가 뭔가 애쓰고 노력해야 되는 것으로 붙잡혀지지 않을까? 그렇지, 내가 이제는 힘내야 되겠다.’ 그렇게 나오지 않을까? 물론 힘내야지요. 그런데 제목을 바꾸려고 생각하다가 ‘아니다, 그냥 이 제목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이게 전제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네가 개척하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스스로 개척하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모든 것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새로 시작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능력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알고 문제 속에 빠져있지 말고 새로 시작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마음에 넘치는 은혜를 주사 새롭게 시작하게 하옵소서. 정말 오늘 여러분 어떤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이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새롭게 시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말씀하셨어요.

1. 본질을 회복하라
 그럼 먼저,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여러분 기억해야 합니다. 본질을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 나갈 때에 놓치지 말아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늘 항상 생각하고 확인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본질입니다. 안 될 때도 물론이고요, 뭔가 일들이 여러분에게 잘 되어질 때도 항상 놓치지 말아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본질입니다. 본질을 놓쳐버리게 될 때에 사실은 방향을 놓치게 돼요. 본질을 놓치게 될 때에 방향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방향 놓치니까 갈등들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뭔가 열심히 하는데 갈등들이 올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본질을 놓치게 되니까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데 뭔가 모르는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계속적인 승리의 축복된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늘 항상 본질을 생각하고 본질로 돌아갈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질만 제대로 확인하면 그 속에서 방향이 나오게 되어 있고요, 본질만 제대로 확인하면 그 속에서 사실 보는 눈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고요, 본질만 제대로 확인하면 본질이 제대로 선명하게 확인될수록 본질 아닌 것, 비본질적인 것, 주변의 것, 사변의 것, 모든 것들이 제대로 보여지기 때문에 그 어떤 일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본질만 제대로 붙잡으면 다 모든 것들은 다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이 바로 신앙의 원리에요.
 그래서 마태복음6:33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도 본질을 가지고 봐야 되고요, 저와 여러분 메시지를 들을 때도 본질을 가지고 메시지를 듣고 확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렘넌트들이 어른 되기 전에 반드시 어릴 때부터 훈련되어져야 될 부분들이 뭐냐? 본질을 찾는 거에요. 왜 본질을 어릴 때부터 찾는 훈련들이 되어지고, 이 사실들이 되어져야 되느냐? 세상은 대단해 보이고요, 화려하게 보임으로 말미암아 세상 성공과 유혹으로, 악한 사단은 우리 렘넌트들을 속여요. 그래서 본질을 찾지 못하면 세상의 대단해 보이는 성공과 화려함 속에서 다 미혹 당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본질을 찾지 못하면 당장 사람을 만나면 이런 저런 많은 말들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말들을 듣다보면 여러분, 사람의 말은 사람은 존중하고 그 말들은 들어요. 그런데 사람의 말의 결과는 뭔 줄 압니까? 결국은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지, 사람의 말을 듣고 보면 결국은 마지막에 불신앙만 남아요. 그리고 세상의 이런 저런 소리들 있잖아요? 세상에 나가보면 결국은 세상 현장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에 이런 저런 훌륭한 말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모든 주제는 결국은 뭐냐? 의식주에 대한 부분들이에요. 그런데 이런 부분들 계속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고, 본질을 잃어버리니까 정말로 내가 올바르게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인가 흔들리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렘넌트들은 어릴 때부터 다른 훈련이 아닙니다. 진짜 본질을 가지고 그 안에 세워져 나가는 훈련들이 되어져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 시대 자체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악한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모든 본질적인 부분들을 싹 빼버리고 거기에 다 속도록 만들기 때문에 정말로 우리가 본질을 제대로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1:14절에 말씀하고 있잖아요.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어떻게 하든지 미혹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교회 문제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한국교회 문제가 무엇이고, 세계교회 위기가 무엇 때문에 온 줄 아십니까? 사실은 다른 것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가져야 될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한국교회, 세계교회 위기가 온 것이고, 교회 위기가 오니까 현장에 위기가 다 찾아 온 거에요. 그래서 정말 우리가 늘 항상 점검하고 확인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본질로 돌아가는 겁니다. 내가 정말로 본질 위에 서 있느냐? 성공하면 성공하는 만큼 오히려 더 내가 본질위에 서 있느냐? 확인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신앙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고 있는데, 그 신앙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앙의 본질을 가지는 것인데, 신앙의 본질은 복음을 알고 누리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교회 다닐 수 있어요. 그래서 그냥 교회 다니기 때문에 신앙의 본질인 복음을 알고 누림이 안 되기 때문에, 결국은 교회 열심히 다니는데도 그의 삶은 종교생활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교회를 다닌다할지라도 종교생활로서 삶을 살아가게 되면 우상숭배 하는 자들과 똑같이 저주와 재앙과 실패는 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다시 말하면 신앙의 참된 본질을 회복하면 회복할수록 지금 갖고 있는 여러분 모든 갈등들, 하나하나 정리가 되게 되어 있어요. 신앙생활 하면서 뭔가 모르는 갈등들이 있잖아요. 교회 나오면서도 뭔가 모르는 갈등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말로 신앙의 참된 본질을 알면 다시 말해서, 진짜 복음을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여러분 지금 갈등하고 있는 부분들이 하나하나 새롭게 보여지고, 다 새롭게 정리가 되게 되어 있어요. 그렇지 않는 이상은 교회 다니면서도 여전한 갈등 속에 살아가요.
 제가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렘넌트이지요. 학교 휴학을 하고 교회를 나왔는데, 군 복무 대체하는 공익요원으로 근무를 하면서 교회를 나왔어요. 억수로 열심히 교회를 나와요.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그래서 한번 지나가다가 부딪혀가지고 제가 물어봤습니다. ‘말씀이 들려지느냐? 말씀이 믿어지느냐?’, 당장 하는 말이, 주저하지 않고 하는 말이 ‘목사님 솔직히 하나도 안 믿어집니다. 하나도 안 들려집니다.’, 안 들려지니까 안 믿어지는 거죠. 그 이야기를 해요. ‘그래.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놓고 기도하자. 하나님의 은혜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믿어지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도록 나도 기도할 테니까 기도하자.’, 그래서 시간들이 좀 지났습니다. 사실 그 친구가 똑똑한 친구인데 믿으려고 하는데도 안 믿어지니까 많은 갈등들이 있다 라는 거에요. 너무 힘들다는 거에요. 안 그렇겠습니까? 교회에 온 이유가 뭔가 말씀 듣고, 말씀 듣는 가운데 믿음 가지려고 했는데 이게 안 믿어지니까 거기에 오는 많은 갈등들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런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에 또 만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가만 보니까 이 친구가 어느 날 찬양대에 딱 앉아 있어요. ‘이상하다 어떻게 믿어지지도 않는 친구가 찬양하려고 찬양대에 앉아 있냐?’ 그런 생각들을 가졌어요. 그래서 한번 만나게 됐는데 물었습니다. ‘어떻게 찬양대에 다 앉네?’ 하니까 ‘목사님, 이제는 말씀이 들려지고 믿어져요.’ 이야기를 해요. 이 친구의 이야기였어요. 신앙생활 자기가 하려고 하고, 믿어지려고 그렇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안 믿어져서 너무 갈등들이 되어지다 라는 거에요. 그럴 수밖에요.
 아마 그런 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도 앉아 있을 줄로 믿습니다. 뭔가 믿으려고 하는데 안 믿어지는 것, 뭔가 말씀은, 말은 뭔가 맞는 것 같은데 나와 안 맞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갈등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러분 진짜 복음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여러분의 갈등들이 하나하나 정리가 되어져요. 신앙의 본질을 알면 알수록 정말로 여러분이 갖고 있는 모든 갈등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돼요. 그리고 더 복음의 사실을 깨닫고 깨닫는 만큼 결국 어떤 결론이 내려지느냐? ‘아, 하나님께서 이 복음 하나 속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는 모든 것들을 다 담아주셨구나!’ 깨닫게 돼요.
 그래서 다윗이 고백했잖아요?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복음을 알고 나니까 다른 것 다 필요 없다고 했어요. 그만큼 다윗은 복음의 가치를 깨닫고, 복음을 알고 누린 사람이에요. 사실은 저와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시편 23편은 다윗이 가장 어려울 때 고백한 내용입니다. 그 어려움 가운데 다윗의 고백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른 것, 모든 것 필요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복음 하나 안에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음을 이 다윗은 알고 누렸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복음을 그렇게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갈등들이 있다 할지라도 정말로 신앙의 본질인 복음을 알고 누림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모든 갈등들이 해결되어지는 그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힘들다고, 또 어렵다고 하는 모든 문제들이 있습니까? 여러분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있다면은 그 문제를 여러분이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요, 대부분이 내가 해결하려고 그래요 문제들. 그러나 내가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것을 그대로 내려놓고 어디로 돌아가느냐?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면은 문제와 갈등들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복음을 알고 누리는 것이다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복음에 대해서 안다고 합니다마는, 복음을 듣는다고 합니다마는 실제적으로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요. 모르겠습니다, 우리 하나교회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현장에서 만나보면 전부 다 교회에 다닌다 하고 그렇게 하지 복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여러분, 복음을 알고 누리지 않고서도 교회 다닐 수 있어요. 수고하고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복음 알고 누리지 못하고, 교회 수고하고 헌신하고 봉사한다? 시간 가면 갈수록 여러분 결국은 나오는 것이 실패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어떤 면에서 복음 없이도 수고하고 노력하고, 또 봉사함을 통해서 자기만족을 가질 수 있어요. 성취가 되니까, 자기 성취가 되니까 만족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결국은 나중에 실패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 교회를 다니는 자들이 아니라 복음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복음을 안다는 게 아니라 그 복음을 알고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안에 참된 기쁨과 행복이, 축복이 나오게 되어 있는 거에요. 여러분 사람들을 만나보면 모두가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죠. 그리고 물질을 위해서, 왜냐? 성공해야 되니까. 그리고 돈 있고, 뭔가 나름대로 어느 위치에 있으면 그 다음에 자신의 명예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정치도 나가게 되고, 그래서 나름대로 자기 이름을 나타내기를 원하세요.
 여러분 그것 통해서 참된 기쁨과 행복과 축복이 있을 수 있나요? 나름대로 뭔가 명예와 성공과 또 나름대로 돈을 벌고, 나름대로 어떤 만족함은 있겠죠. 그러나 그것이 있다고 해서 인생들에게 참된 기쁨과 행복은 가져다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 있는 사람들이 왜 자살합니까? 지식으로 똑똑한 사람들이 왜 어려움 당하면서 힘들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까? 왜 엄청난 자리에 있으면서도 영적인 문제로 무너지니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스스로 생을 끊습니까? 돈 있다고 행복한 게 아니고 기쁜 게 아니에요. 뭔가 이름을 나타내고 명예를 가졌다고 해서 행복하고 기쁜 게 아닙니다.
 진짜 행복과 기쁨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될 때에 그 속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1:27-28절,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죠.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형상 따라 창조된 인간에게 모든 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주셨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정복하고 다스려 나갈 때 그 속에서 오는 것이 기쁨이요,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은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 속에 있는 자란 말이에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 속에 있는 자, 그런데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난 죄로 말미암아 자신도 원치 않게 악한 사단의 운명에 사로잡힌바 되었어요. 그 하나님을 떠난 창세기 3장의 상태를 가지고 에베소서2:1절에 보면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 했어요. 여기서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말은 생명의 역사 관계에서 끊어졌다 라는 말이에요. 참된 생명의 축복의 역사 속에서 끊어졌다 라는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악한 사단이 인생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올 수밖에 없죠. 힘든 일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저주와 재앙이 계속 있을 수밖에요. 사단이 인생을 붙잡고 있는 것은 결국 멸망시키는 겁니다.
 지난주에 서론에 제가 말씀드렸죠.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아야 한다 라는 것, 구원 받는 순간에 우리는 응답과 축복의 시간표 속에 들어간다는 것,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지만은 그게 우리를 멸망시키지 못하고,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 왜 그렇습니까? 응답과 축복의 시간표 속에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못하면 어쩔 수가 없어요. 저주와 재앙의, 멸망의 시간표 속에 있는 겁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멸망 받아요. 아무리 똑똑해도 멸망 받아요. 요한복음10:10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도둑이 오는 것은 죽이고 도둑질하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했어요. 사단의 궁극적으로 뭐냐? 모든 인생을 멸망시키는 거에요.
 그래서 먼저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아야 돼요. 정말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의 시간표 속에 들어와야 돼요. 그런데 결국 죄와 허물로 죽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가 끝났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당연히 저주, 재앙이 인생 속에 올 수밖에요. 그러면 저주,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생들이 몸부림치는데 하나님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영이 죽어버렸으니까 누구를 찾습니까? 우상 찾는 거에요. 그래서 우상숭배 당연하게, 그들은 당연히 우상을 찾아갈 수밖에 없어요.
 왜 우상숭배 하느냐? 여러분 이해하지 못하지만은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없으니까 당연히 하나님 대신 우상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래서 우상숭배 하면 할수록 결국은 영적인 문제로, 아니 하나님 섬겨야 할 인생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엉뚱한 곳에 가서 복을 달라고 비니까 영적으로 무너질 수밖에요. 아니 하나님을 떠난 그 자체가 이미 영적으로 무너진 겁니다. 그래서 영적인 문제가 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속에 정신의 문제와 육신의 문제와 또 내세의 문제와 후손의 문제들이 계속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우리 인생을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이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바로 답을 주셨는데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사야7:14절에 그 여자의 후손을 똑같이 말씀하였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자의 후손, 처녀가 잉태하여 똑같은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생명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이에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데 그 처녀가 잉태한 아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생명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요한복음1:4절에 보면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뭐요? “빛이다” 했어요.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요한일서5:11-12절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있으면 나는 생명 가진 자입니다. 이 생명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생명 이룰 수 있는 관계를 완성하셨어요. 그래서 요한복음19:30절에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거에요. 여기서 다 이루었다는 말은 생명을 가질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다 완성했다는 말이에요. 그게 다 이루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어요,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고요,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으로 충분하고, 완전하고, 모든 것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다 끝내시고, 그 그리스도께서 참된 제사장으로 저와 여러분 축복 받을 수밖에 없는 근본의 사람으로 바꾸셨어요. 그래서 그리스도로 우리는 충분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참 왕으로 오셔서 저와 여러분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자로 바꾸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완전한 겁니다. 그리스도로 오셔서 선지자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자로서 모든 축복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끝냈을 뿐만 아니라 그 그리스도로 충분하고, 완전하고, 모든 것이 되는데 어떻게 모든 것이 되느냐? 참된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축복 받을 수밖에 없는 근본을 바꾸셨고요. 참된 왕으로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자로 우리를 인도하셨고요. 또 참 선지자로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연 귀한 축복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그래서 그리스도는 충분하고, 완전하고, 모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생명 이룰 수 있는 조건을 다 완성하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났어요. 그래서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완성되어진 겁니다. 그래서 계시록3:2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느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마음 문을 열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생명 관계의 축복을 누리겠다는 거에요.
 어떻게 합니까? 요한복음1: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속에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영접하는 순간에 재창조의 역사로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이걸 가지고 구원이라 이야기합니다. 구원 받은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지금도 세계복음화를 이루어 가시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을 가지고 복음의 본질이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 창세기 3장 문제로 말미암아 생명 관계가 끊어졌는데 이미 예언하시고, 예언하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생명 관계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을 이루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완성하시고, 그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에 구원의 축복을 누리고, 구원받은 자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함께 하시면서 그 성령께서 세계복음화를 이루어 가신다 라는 것, 이게 복음의 본질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정말로 복음의 본질을 깨닫는 만큼, 복음의 본질에 눈이 열려지는 만큼 세상 보는 눈이 열려집니다. 그토록 발전하고 뭔가 모르게 많은 것들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세상에 왜 그렇게 어려움 당하는지 세상 보는 눈이 열려지고요. 개인 보는 눈도 열려지고, 세상과 개인들이 왜 자꾸 고통 가운데 빠져드는가? 그리고 그 고통 배후에 악한 사단이 역사하는 부분들에 눈이 열려지고요. 거기에 내가 누구인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그 정체성이 열려지면서 그 정체성을 깨닫게 될 때에 거기서부터 참된 응답과 축복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신앙의 본질인 복음을 알고 누리는 자로 진짜 복음의 본질, 그 본질을 가진 자로 모든 것들을 보는 새로운 눈들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질을 놓치는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번째입니다. 오늘 본질을 놓친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나옵니다. 서론 부분에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자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야곱이 사실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자기 아들들에게 머리에 손을 얹어서 축복하죠.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로 말미암아 12지파,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모든 지파들은 한 지파, 한 기업을 얻게 되는데 사실은 요셉의 자손들은 두 지파를 얻게 돼요. 그게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를 얻게 됩니다. 그 내용이 창세기48:8-22절에 나옵니다.
 그런데 사실은 요셉은 본질을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본질을 아니까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요. 어떤 본질을 요셉은 가지고 있었느냐? 창세기37:1-11절, 세계복음화의 본질을 요셉은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노예로 가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거기에서 중요한 경제를 배우게 되고요. 감옥에 가도 전혀 어렵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거기서 오히려 정치를 배우게 되고요. 결국은 총리가 되어지고, 총리가 된 후에 끝난 것이 아니잖아요?
 창세기 47장에 보면은 결국 선교의 축복까지 누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이 고센 땅인데 그 고센 땅에 거주하면서 결국 애굽까지 살리게 되는 선교의 축복까지 누리게 됩니다. 본질을 깨달은 요셉, 좌절하거나 당황하지 않았고요,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고요, 높은 자리에 올랐다 할지라도 교만하지 않고요. 왜냐? 본질을 아니까, 낮은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본질을 아니까, 요셉은 본질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창세기45:1-8절에 보면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처럼 형들 앞에서 요셉이 붙잡은 본질이 나오잖아요?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들 앞서 먼저 보냈습니다 라고 이야기했어요. 요셉이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요셉의 자손들 가운데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는 그 본질을 놓쳐버렸어요. 좀 설명을 드린다면 야곱이 노년에 요셉을 통해서 그의 요셉의 형제들과, 자기 야곱의 아들들이죠. 아들과 함께 이제 요셉이 있는 애굽에 내려가게 됩니다. 내려갔는데 요셉이 자기 두 아들을 데리고 나옵니다. 자기 아버지에게,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두 아들입니다 데리고 나와요. 48장에 보면 그 내용들이 나오는데, 그러니까 야곱이 할아버지로서 당연히 이제 손자들을 축복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므낫세가 장자고, 에브라임이 차자입니다.
 그런데 장자의 축복 기회는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야곱도 사실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잖아요? 그런데 장자의 축복이 있기 때문에 장자에게 오른손을 얹어서 축복해야 되고, 차자에게는 왼손을 들어서 축복해야 되는데, 그렇다면은 사실 므낫세에게 오른손이 얹혀지고, 왼손은 에브라임에게 얹혀져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눈이 늙었다, 야곱이 눈이 늙었다 했어요. 요셉이 자기 두 아들을 데려갔는데 야곱이 눈이 늙었다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본문을 보면서 온통 인생을 살아오면서 인본주의로 살아왔다가 나중에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부분을 보면서 말년에는 제대로 영안을 열었구나, 좀 이따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연세가 들면 들수록 정말 영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지금 살아오는 대로 살아가지 마시고, 진짜 영안이 열려가지고 여러분 자녀와 후대를 마음껏 축복할 수 있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영안이 열려졌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축복하실 자가 누구인가를 야곱은 안 거에요. 그래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왔을 때에 눈이 어두웠지만은 요셉은 당연히 므낫세에게 오른손을 얹어서 축복하기를 원하고, 왼손으로 에브라임을 축복하기를 원하는데 이상하게 야곱은 손을 맞추어가지고 오른손을 에브라임에게, 왼손을 므낫세에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셉이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말렸어요. 그리고 또다시 했어요. 그래서 야곱이 뭐라 하느냐? ‘나도 안다’ 했어요. 나도 안다, 그러면서 이 큰 자에게, 므낫세에게도 한 땅을 주고, 그런데 에브라임을 축복하면서 그 아이가 큰 자를 능가하겠다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게 창세기 48장에 나와요. 에브라임이 므낫세를 능가하는 축복을 받겠다 말씀했어요. 그 사실대로 되어 진 거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여러분 그 아이가 형을 능가하는 축복을 받는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경륜이 중요해요. 오래 다닌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복음 없이 오래 다니면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사실은. 진짜 우리가 그리스도 제대로 알고, 축복받아야 성경에 보면 마태복음에 나옵니까?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19:30절에 있는데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는 먼저 될 자가 있다.”, 어떤 면에서 나중 된 자 에브라임이 먼저 된 거에요. 여러분 언제 우리가 먼저 되느냐?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먼저 되는 게 아니라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축복,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복음을 제대로 깨닫는 순간에 먼저 되는 겁니다. 오랜 신앙생활 경륜도 중요합니다마는 정말로 내가 복음을 올바로 깨닫는 순간에 먼저 된 자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결국은 본질을 놓쳤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게 나오죠. 가나안 땅을 거주하면서 그 땅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그게 결국은 본질을 놓쳐버린 거에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은 모든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라 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그 땅 거민을 쫓아내지 못했다 했어요. 16:10절에 한번 보세요. 16:10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주했다 했어요.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이죠.
 넘어가서 17:12절 보세요. 므낫세 자손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요. 17:12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은 그 땅의 모든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라 했어요. 민수기33:51절부터 쭉 나오는데 특별히 52절에 보면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라 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이 에브라임도 마찬가지고, 므낫세도 마찬가지고, 그 땅 거민과 함께 거주했다 라고 말씀했어요. 쫓아내지 않고, 그런데 쫓아내지 않고, 몰아내지 않게 될 때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 55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너희가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될 것이다.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가지고 너희가 거하는 땅에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다.”, 결국은 남겨 놓으면은 남겨놓은 그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고, 옆구리에 찌르는 자가 되어서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다 했어요.
 사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지파가 이 가나안 거민을 쫓아내지 못했다 라는 것, 중요한 것은 왜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내야 합니까? 불신앙이 그로 말미암아 오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그로 말미암아 오기 때문에, 여기서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신앙의 요소들을 제거해 버려야 된다는 것,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깨닫지 못하도록 만드는 우리 안에 나도 모르게 우리 안에 각인되고, 뿌리내린 모든 것들을 다 계속 버려야 된다 라는 것.
 여러분 우리 자신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복음을 받았지만은 그 사실을 알고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것들을 벗어버리고 계속해서 던져버려야 된다 라는 것, 왜?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그게 우리만 실패 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 후대들에게도 심각한 영적인 문제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불신앙이 우리 후대들에게 심각한 영적인 문제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염려하고, 불신앙하고, 인본주의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 가지고 나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후대들에게 심각한 영적인 문제를 가져온다는 것.
 반대로 말하면은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예배드립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은요, 여러분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들으면서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자녀들을 위해서 축복하고 기도하잖아요? 그 기도는 다 쌓입니다. 계시록 8장에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모든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쌓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만큼 그 기도가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시간표에 따라서 하나하나 다 우리 후대에게 응답으로 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믿음의 부모들이 중요하다 라는 것, 진짜 복음을 제대로 아는 부모들이 중요하다 라는 것이 거기에 있어요. 결혼할 때도 보면은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믿는 가정인가 살펴보잖아요? 그게 그냥 이야기가 아니에요. 복음 가지고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 놓은 것들이 쌓여 있어가지고, 결국 그 인생이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분명하게 응답으로 내려주시게 되어 있다 라는 것, 그래서 우리 안에 어떻게 하든지 간에 인본주의 쓰고, 염려하고, 세상 방법을 따라가는 삶의 모든 부분들을 어떻게 하든지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후대들에게 불신앙을 심어주게 되고, 그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우리 후대들에게 영적인 문제를 남기게 된다 라는 사실이에요.
 결국 오늘 본문에 보면 본질을 놓쳐버린 에브라임과 므낫세, 받은 축복을 다 잊어버리고 불만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불만을 터뜨리느냐? 14절에 보면은 “왜 이 한 분깃만 내게 줍니까?” 이것밖에 안 됩니까? 이 말이에요. 왜 한 분깃만 내게 줍니까? 불평하게 되죠. 그러면서 16절에 보면 핑계를 대는데 보세요. 16절에 마지막에 보면은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저 사람들은 철 병거가 있어서 막강하기 때문에 도저히 꺾을 수 없다 라고 핑계 댑니다. 왜 내게 이것만 줍니까? 한 분깃만 줍니까 하다가 또 핑계 댑니다. 저 땅에는 철 병거가 있어가지고 절대로 강하기 때문에 꺾지 못합니다. 여러분 상대가 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고백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제목입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스스로 개척하라, 그러면은 땅 끝까지 네 것이 될 것이다. 여러분 무슨 말이에요? 스스로 개척하라.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것을 힘입어서 새로 시작하라는 거에요. 때에 따라서 여러분 우리 앞에 가나안 땅에 있는 철 병거들이 강하게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문제들이 강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스스로 개척하라, 능히 내가 쫓아내리라는 약속이에요. 내가 능히 쫓아낼 테니까 새로 시작하라는 말이에요. 혹시나 여러분 앞에 세상이 너무 커 보이고, 거대해 보입니까? 주변 환경이 견고한 여리고 성처럼 여러분에 둘러싸여 있습니까? 어떤 면에서 난공불락의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다가와 있습니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절박한 문제가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은 능히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방법 중에 방법이 있다면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기에 해결되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주고, 성경에 보면은 응답과 축복을 잠시 멈추고 계시느냐? 아니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나갈 때 하나님이 당장 응답해 주시면 좋겠는데 응답과 축복도 멈추어진 것 같고, 뭔가 모르게 내게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고 해결되지 않는, 왜 그것을 남겨주시느냐? 여기에 중요한 답이 있어요. 여러분 인간관계 갈등들이 있습니까? 그 속에서 답을 가지고 그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 있는 사람에게 답을 주기 위한 겁니다. 혹시나 고질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왜 당장 응답 안 됩니까? 그 고질적인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 거기에 대한 답을 얻도록 해서 결국 그 문제에 있는 사람에게 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와 갈등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메시지인 겁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나의 모든 문제와 갈등, 하나님의 살아있는 메시지다.”, 문제 속에 있어봐야 문제 속에 있는 자들에게 답을 줄 수 있어요. 경제 가운데 어려움을 당한 자라야 경제 가운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답을 줄 수 있어요.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 있어봐야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 있는 사람에게 답을 줄 수 있어요. 그렇다면은 오늘 나의 문제와 갈등은 문제와 갈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사실이에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힘내서 살자는 말이 아니에요. 절대로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능력을 다 주셨으니까 그 능력으로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 우리 앞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핑계 대면서 삼림이 있고 철 병거가 있다고 했어요.
 그렇습니다. 때에 따라 우리 앞에 삼림이 있을 수 있고, 철 병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 삼림과 철 병거가 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우리를 어떤 자로 부르셨느냐? 17절입니다. 거기에 마지막 보면은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우리를 큰 민족으로, 큰 권능을 가진 자로 부르셨다는 거에요. 저와 여러분의 정체성입니다.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을 가진 자라, 그러니까 삼림이 있고 철 병거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라는 것. 다시 말하면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을 가진 자로 정체성만 회복하면은 오늘 18절에 말하고 있죠.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모든 것을 정복하는 축복을 주시겠다 라는 사실이에요.
 말씀 맺겠습니다. 문제 속에 빠져 있지 마세요, 살아있는 메시지에요. 갈등 속에 빠져 있지 마세요, 살아있는 메시지에요. 그 속에서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을 가진 자라는 정체성만 가지게 되면, 그 땅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모든 것을 완전히 정복하는 귀중한 전도자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이 누려지는 귀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복음의 본질을 회복할 전도제자의 기도
1. 복음의 본질이 나의 메시지로 정리되어 참된 응답과 축복을 누리는 영적인 비밀이 누려지게 하소서.
2. 우리에게 있는 문제와 갈등들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심을 메시지로 확인하고 오늘과 미래를 살리게 하소서.
3.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함으로 나, 교회, 현장을 정복하고 살리게 하소서.

2022년 10월 30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스스로 개척하라
(수17:14-18)
서론: 므낫세과 에브라임 지파처럼 우리도 불신앙 할 때, 여호수아를 통해 주신 ‘스스로 개척하라’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이미 주신 모든 것을 누리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주셨기에 새로 시작하게 하옵소서(수17:18). 
  
 1. 본질을 확인하라
 가. 놓치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본질을 붙잡게 하옵소서.
    • 늘 항상 본질을 생각하고 본질로 돌아감으로 지속적인 승리의 응답을 누리게 하옵소서.
    • 본질을 제대로 확인함으로 방향이 보여지고, 모든 것이 따라오는 역사를 확인하게 하옵소서(마6:33).
    • 복음 하나 때문에 다 되어지고, 다른 모든 것은 필요 없는 축복을 확인하게 하옵소서(시23:1).
 나. 복음을 알고 누리는 ‘신앙의 본질’에 눈이 열려지게 하옵소서.
    •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생명의 조건을 완전히 이루신 복음을 붙잡게 하옵소서.
    •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재창조의 역사 가운데 세상 끝 날까지 세계복음화를 이루시는 속에 우리와 우리 후대가 머물게 하옵소서.
    • 복음이 없어 멸망당하는 세상을 보게 하시고, 나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2. 본질을 놓치는 므낫세와 에브라임
 가. 본질을 놓치는 므낫세과 에브라임을 통해 깨닫게 하옵소서.
    • 내가 남겨놓은 사탄의 통로와 불신앙의 불씨들로 고통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는 복음에 방해되는 불신앙의 요소를 버리게 하옵소서(수16:10, 17:13, 민33:55).
 나.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불만을 통해 ‘스스로 개척하라’ 언약을 붙잡게 하옵소서.
    •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절박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능히 쫓아낼 수 있기에 방법 중의 방법인 임마누엘을 붙잡고 새로 시작하게 하옵소서(수17:17-18).
    • 문제에서 빠져나온 증거가 있어야 문제 속의 사람들에게 답을 줄 수 있음을 깨닫고, 지금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메시지를 찾아내고 붙잡게 하옵소서.
  
결론: 스스로 개척하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정체성을 깨닫고 시작함으로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는 완전 정복의 축복을 확인하게 하옵소서. 문제, 갈등에 매이거나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스스로 개척하는 한 주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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