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2004-05-1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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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5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16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18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21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오늘 제목을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라 삼았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복음을 핍박하는 것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악락하고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인가하는 것을 말씀을 통해 느낄 수가 있습니다. 고차원적인 시험이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웃으면서 칭찬을 하면서 찾아와 죽일려고 칼을 내미는 장면입니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 100년전에 이미 로마의 유대는 노예로, 속국이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일제치하에 있을 때에 일본에 돈안내고 세금안내는 것이 애국입니다. 불과 30여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습관으로 지금도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때 유대나라가 로마에 대해서 될 수 있으면 세금, 로마에 내지 않는 것을 애국으로 알고 있는 중 예수님께 나아와 세금을 내는 것이 가한지 불가한지 말을 하셨습니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민족의 반역주의가, 내라고 하면 로마의 공식적인 반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로마의 미움을 받아 죽게하려는 배경으로 시험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많은 경우, 적용될 것이 있습니다만, 먼저 붙잡고 기도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은 다 아신다’. 하나님은 속이는 것도, 위선도, 웃으며 칭찬하는 것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가 이점이 이해되지 않되기 때문에 잘못보다는 실패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 점이 되지 않아, 삶에서 낙심을 합니다. ‘18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고’ 하였습니다. 16절에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험하고자 하는 자는 안 오고 심부름꾼을 보내어 예수님을 잔뜩 높여놓고 예수를 올무에 빠뜨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 내어놓고 성내는 것보다도 더 악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삶에서 너무나 많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여기에서 많이 속게 됩니다. 사단의 역사 중에 이러한 역사가 참 많습니다. 엄청난 흑암의 배경을 가지고 웃으면서 찾아옵니다. 사단의 역사 중 천사처럼 나타나는 것이 제일 넘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다 넘어집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시험이 어떤 자의 배경인지를 다 아십니다. 억울함, 고통, 슬픔도 다 아십니다. 흔히 말을 합니다. ‘내 혼자만 이러한 시험을 당하지, 누구도 모른다.’ 고 말을 하면서 혼자 세상의 고독을 가진 것처럼 말을 합니다. 사춘기때의 고민같은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전능하시고, 나와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바보들아!’ 사단을 향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늘 말하지만, ‘나는 누구이며, 사단의 정체와 역사가 무엇이냐?’이것이 조금만 이해되면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체험됩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을 하며 하나님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이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하나님을 속이는 자들이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내 양심에 말하는 것을 제쳐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나쁜 것은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기도는 양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저 사람을 한방먹일까요?’기도할 때에 양심에 ‘너는 저 사람보다도 더하지 않냐?’라고 옵니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한방 쥐어박을려고 합니다. 목사님 주일날 이런 문제가 있는데 주일날 일을 해야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묻습니다. 이 사람은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나 목사님이 원하는 말을 해줄까? 기대하고 그것을 빌미로 양심을 어길려고 합니다. 기도할 때에 믿는척하면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조금만 마음문을 열고 맨정신을 가지고 양심으로 돌아가라! 본성으로 돌아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한 주간 응답주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성경이 날아다니는 새도 먹이고 들풀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라고 말합니다. 참새한마리보다, 들풀보다 여러분이 못합니까? 천배만배 가치를 더했습니다. 그런데도 안되면 여러분이 무언가 안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실질적으로 나의 통치자가 누군지 인식을 해야합니다. 본문에 셋돈(세금낼 돈)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가지고 오니, 이 얼굴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라고 하니, 가이사의 것이고 로마의 것이라고 하였고, 이때에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하였습니다. 내것은 챙기면서 하나님의 것은 챙기지 않습니다. 교회와서는 기도는 멋같이 이상하게 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것은 전혀 반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공식으로 미안합니다라고 하지만, 진짜로 미안하다는 마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이 말씀하면서 조금만 자신을 살펴보세요. 데나리온이라고 할 때에 은으로 만든 로마의 동전입니다. 이 가치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5-7만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질문하면서 너무나 모르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떤 상황에 속해있느냐? 네가 누구에게 다스림을 받고 있느냐? 셋돈을 가지고 오너라. 통용되는 돈이 누구의 것이냐?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으면 통치를 받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싶지 않는데도 로마에 세금을 전부 내니까, 이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 모두 반발을 하고 있습니다. 제일 미워했던 사람들이 세리들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창기와 세리들이 내는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로마에 바치는 세리를 미워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통치를 받고 있는 배경이 누구냐? 이것을 알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치받으라고 합니다. 빠져나오지 않는 한 통치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안되었다 할 때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흑암과 사단의 배경속에 통치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점을치고, 날을 받고, 풍수지리를 보는 것을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야 편한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정사와 권세를 잡고 있는 사단의 자녀로 이땅에 나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믿고 다락방에 왔다는 배경이 가장 중요한 배경이 내가 어디에 속해있는가? 최소한 내가 속해있는 자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입니다.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진노에 처해있는데, 건방을 떨면 얼마나 떨겠습니까? 이것이 안된 사람이 죽음앞에서 건방을 떨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합니까? 여기에서 나오너라!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것이 구속의 역사입니다. 그럴려면 자신의 형편의 모습과 처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내가 처해있는 본래의 모습이 무어냐? 이것을 아는 만큼 구속의 역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갑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붙잡아야 합니다. 영적문제가 인식이 되지 않을 때에 자기도 모르게 문제나 사건과 일이 부딪힐 때마다 율법에 빠지게 되고 어려운 문제에 빠질수록 자기도 모르게 애를 쓰다보니, 신비에 빠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자시도 모르게 빠지는 배경이 근본적으로 생명의 확인이 없어서입니다. 구원의 축복과 해방의 사실과 기쁨이 체험이 안되면 자꾸만 자신도 모르게 빠지게 되어있습니다. 신목사님에게 전화가 와서 먼저번보다 문제가 되는 것이 무어냐고 물으니, ‘말씀이 좋아서 치유를 받으려고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는데, 주용한 것은 근본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는데, 내가 받은 말씀이 좋고 은혜를 받았으니, 이것을 가지고 행동하고 치료하려고 고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잘하는 것입니다. 아는 죽었는데, 거기다가 옷을 입히는 것은 일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무얼 고친다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바아야 합니다. 은혜중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멸망, 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와야합니다. 여기에서 다음 문제는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되었는데, 평안이 오시옵소서!해도 안됩니다. 이것이 안되어있으니, 자꾸만 예수 열심히 믿고 노력을 해도 집안에 문제가 옵니다. 실패가 거듭됩니다. 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러한 문제는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말로는 백번천번 구원을 받았다 할 때에 무언가 문제가 안된다. 그러면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이것은 근본문제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망하기를 원합니까? 육신의 부모보다도 더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문제가 조금이라도 눈이 열리면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 전혀 응답이 없고, 계속해서 안된다고 하면 근본문제가 해결이 안되었습니다. 이들에게 기도하는 배경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무얼주옵소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기쁨과 평안을 체험키 원합니다. 멸망에서 건진 증거로 그리스도 체험되게 하옵소서입니다. 주예수 그리스도 내 안에 오시옵소서. 지금 이 자리에 오시옵소서. 그러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소속이 바꾸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 증거가 모든 문제나 사건이 생길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주님!에게 향합니다. 나도 모르게 돌아갑니다. 문제와 사건이 생길 때에 주님~!보다도 다른 것으로 돌아갑니다. 수단으로 돌아갑니다. 머리로 돌아가서는 주님께 돌아가지 않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 안되는 것입니다. 문제, 사건, 어려움, 힘든 일이 있느냐? 이럴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여~될 때에는 염려말고 걱정도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된 역사로 역사하십니다. 힘든일, 고통스러운 일이 있는 것 같아도 소속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이 계속 말한 것이 주아래서입니다. 죽음과 멸망과 죄악에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옮겨졌느냐? 여기에서 모든 것이 응답이 됩니다. 받아내는 것은 안 믿는 사람도 받아냅니다. 예수 그리스도 내가 그분을 통해 죽음과 멸망에 있던 나를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른 이름이 아니라, 오직 한 이름입니다. 어떤 사건이라도 오직 예수구나! 이렇게 돌아가는 것에 눈에 열렸을 때에 눈이 열렸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창3장에 눈이 열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원치않지만 고통당하는 것의 배경은 사단의 배경입니다. 욕한다고 되는 것이 안됩니다. 눈부셔도 안되고 애를 써도 안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됩니다. 이것이 마음에 박혀야 합니다. 습관, 체질보다도 마음에 박혀야 합니다. 문제와 사건속에서 나도모르게 주예수 그리스도! 믿음이 오면 문제가 없어졌다고 평안한 것이 아니라, 평안해집니다. 우리 체질이 안되니까,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을 할 것입니다. 1박2일동안 계속해서 들으면 예수 그리스도로 세뇌가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삶의 사실적인 역사와 응답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해놓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바치라. 영어로는 give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치라’의 원래 뜻은 무엇무엇이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빌려온 것이니, 그 사람에게 돌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것은, 우리가 헌금을 하고 헌심을 하고 할 때에 항상 우리 속에 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부하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우리 마음에 이러한 것들이 베겨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땅에 올 때에 하나님의 것으로 왔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알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으로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이 원리만 이해해도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 재정생활이 됩니다. 이것이 안되니, 하나님께 낼 때에 빼앗기는 것 같습니다. 빼앗기는 것이 안되니, 적게 낼려고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만원짜리는 넣고 천원짜리는 내는 것입니다. 다윗의 성전건축할 때에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기쁨마음으로 드립니다. 하나님이 다 부어주셨습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도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자기것인줄 알고 자기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려드린다는 의미로 항상 기억하라고 성경은 십일조 내라고 하였습니다. 아홉을 내라고 해도 내야하는데, 그 중 하나만 내라고 하였습니다. 십분의 일만 내는 신앙생활만 되어도 재정생활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내면서도 하나님의 것은 내지 않냐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말라기에서는 십일조내지 않을 때에 도적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할 때에 이해안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끔가다가 헌금문제를 결정할 때에 갈등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마음에 주는 것이 누가 주시며, 누구의 것이냐? 될 때에 갈등이 안됩니다. 하나님이 많이 주시고, 적게 주시고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맺으며, 나라, 경제 등이 어렵다는 배경속에서 내 것으로 인식하게 될 때에 하나님 앞에 서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이것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돈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만 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내 몸과 마음 전체를 드립니다. 먹던지 마시던지 전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때에 엄청나게 부었습니다. 유럽전체를 다닐 때에 돈이 안드는 정도가 아닙니다. 엄청나게 듭니다. 브리스가 부부가 도울 때에 돈이 안드는 것이 아닙니다. 혹자는 부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부었습니다. 이것이 많은 이들이 안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드리면 내것을 가지고 드린 것처럼 뻐기고 해서 딱 싫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믿음으로 조금만 헌신한다. 할 때에 진실한 마음으로 헌신을 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주신다는 말을 담는 것조차 부끄럽습니다. 아이들이 과자하나만 가져와서 할아버지~ 이러면, 그거 받아먹고 좋아서 하나더 사라고 내어줍니다. 손에 든 것이 만원이면 만원을 줍니다. 그러면 아이는 가치를 모르고 내어버립니다. 부자 아버지는 아끼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렵다 힘들다 안된다할 때에 진짜 바보멍텅구리입니다. 한번 믿어보세요. 록펠러 전기를 한번 읽어보십시오. 지금까지 그 부를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드려보세요. 정말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해보세요.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에 어떠한 역사가 나오는지 해보세요. 해보지도 않고, 믿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합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헌신할 수 있는 믿음을 회복시켜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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