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평강의 축복
2007-04-0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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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카타콤에 핍박가운데서 다니면서 인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어떤 부유층에 있는 교수님이 신문에 이런 내용을 기록했다. 아이들을 9명이나 둔 교수님인데 그 중에 8째까지는 딸이고 9째가 아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운다고 키웠는데 너무 많다 보니까 8째 아이에게는 무관심하게 그냥 내버려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까 8번째 아이가 사랑결핍으로 결국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고등학교 1,2학년 때 범죄에 들어가서 결국은 소년원에 들어가는 신세를 지게 되었다. 또 막내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을 놓고 보니까 너무 귀해서 너무 과잉보호를 하다보니까 또 망나니처럼 되어서 학교도 가는 둥 마는 둥, 이 아이조차도 안타깝게도 또 소년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아이들이 여럿이다 보니까 관심을 주지 못하고 여러 가지 말썽을 피워서 죄송하다고 신문에 나왔다. 육신의 부모는 아무리 잘한다할지라도 한계를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활하신 하나님, 부활의 성령으로 지금 우리 안에 함께 계신다. 이 축복의 역사를 오늘 부활절을 통해서 최고로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제목을 <평강의 축복>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하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 구원받게 되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우리 생활의 핵심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믿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활의 핵심이 있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본문에서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선언하신 내용이다. 이 축복을 받고 누리는 것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활의 핵심이다. 초대교회가 그 시대의 모든 사상과 문화를 정복하고 로마를 정복했던 귀중한축복은 다른 것에 있지 않았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그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가지고 초대교회는 전 세계를 복음화하게 되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있다면 절대적인 평안이다.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된 축복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선언하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축복의 선언이 그대로 이 땅에 다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혹이나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분들 중에 무언가 마음에 평안이 없다면 오늘 이 시간에 부활의 주님, 부활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참된 평안, 평강을 회복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평강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세 가지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는 부활은 내가 사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두 번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이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세 번째는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이 무엇인가?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참된 평강의 축복이 확인되는 한주가 되어야할 것이다.
첫 번째로 부활은 내가 사는 가장 중요한 길이 되어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실패 없는 삶이 된다. 왜 그런가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실패를 위해서 죽어주셨기 때문이다. 벧전2:24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실패를 끝냈다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 그러면서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 우리의 모든 실패,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실패의 역사를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막히심으로 말미암아 끝내버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근본적으로 죽음의 권세,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성경대로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대로의 죽음이란 이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사망권세를 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죽으실 것을 이미 성경에 예언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언된 것이다. 인간의 죽음도 성경에서 예언한대로 죽음이 이루어졌다. 창2:17에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와 맺은 언약이 있다.「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결국은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신을 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죄에 빠져서 보이지 않는 사단의 손에 장악되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고 그 죽음은 어떤 인생도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인생에 죽는 죽음은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서 기록된 대로 성경대로의 죽음이다. 히9:27에「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그 어느 누구도 한번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그 죽음이 죄의 값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죽음이 그냥 우연한 죽음이 아니라 성경대로의 죽음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도 성경대로의 죽음인데 이 예수님의 죽음은 인생의 죽음과 다르다. 모든 인간은 자기 죄 값으로 죽게 되어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 없으신 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을 대신해서 죽으신 죽음이다. 자기 죄 값으로 자기가 죽는 죽음은 자기의 죄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죄 없는 분이 오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막히신 것은 이미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죄가 아니라.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 자신의 죄가 아니라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못박힘바 되었다는 것이다. 마20:28에 보면「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3:15에도 똑같이 말씀하고 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인생들이 죽음의 문제를 대신 해결 받게 되어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죽음의 문제만 해결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사망을 완전히 폐하신 사건이 되었다. 딤후1:10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이제는 우리 구주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복음으로 말미암아 드러내셨다고 하고 있다. 그 어떤 인생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악한 사단이 마지막으로 인간을 붙잡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하면 죽음의 문제이다. 그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는 노릇하게 되어있고 일생을 벌벌 떨게 되어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죽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버렸다. 히2:14-15「14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할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 어떤 인생도 죽음 앞에서는 벌벌 떨게 되어있다. 종노릇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죽음에서 종노릇하는 모든 인생을 놓아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성경대로의 죽음인데 단순한 죄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고 사망을 피하신 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죽음이었다. 창3:15의 하나님의 뜻을 말씀했다.「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권세를 깨뜨려버릴 것을 말씀하셨다. 이게 바로 이 땅에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이 뜻을 성취시키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성경대로 죽으셨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나타내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 인생의 모든 죄의 문제와 사망의 문제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이 축복된 역사를 성취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라는 것이다. 창3:15에「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예언하셨고, 이 예언대로 사7:1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함이라」예언하셨다. 그 예언대로 오셨는데 마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예수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23절에「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바로 예수로 오신 그 분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신 그 분이요 임마누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대로의 죽으심을 깨닫는 만큼 참된 평안의 축복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뿐만 아니라 그 죽음의 권세를 해결하셨다는 증거로 부활하셨다. 부활하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바꾸어놓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도 성경대로였다면 부활하심도 성경대로이다. 시16편에 다윗을 통해서 예언하셨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친히 말씀하셨다. 마16:21에 보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수님 당신이 친히 먼저 말씀하셨다. 그 예언대로 고전15:4에 보면 성경대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고전15:20에 우리의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이다. 지금 부활의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거짓말하는 자이고,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고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불쌍한 자요, 가장 어리석은 자요, 거짓말을 하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고나서 무덤까지 내려가시고 무덤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내셨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렇게 설교를 하고 있다. 행2:31-32에 보면「31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이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지라. 행2장에 베드로가 마가다락방에서 설교한 내용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 드사 말씀했다. 무덤까지 내려가신 이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서 지금 우리에게 첫 열매로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새 생명을 가진 것을 말하고 있다. 새 생명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이 주어진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내가 이 땅에 있는 것보다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는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역사, 부활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믿을 수 있게 되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는 것은 부활하신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믿어지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부활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부활의 영, 생명의 영이 내 안에 살리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이것보다 큰 축복이 있을 수가 없다. 롬8:11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진정한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 이 땅의 인생에서 죽음의 문제보다 더한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그 분이 부활의 성령으로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 모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이 바로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영원한 축복이 여기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바울이 그 사실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고전15:55-56에 보면「55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그러면서 57절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말씀했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영으로 역사하시어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완벽한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롬8:31-39에 누가 우리를 정죄할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하셨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가 산영이 되었다.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를 절대 끊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분명히 말씀하셨다. 재림주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만왕이 무릎을 꾾고 만인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시인할 수밖에 없도록 재림주로 오시겠다고 약속 하셨다.행1:11에「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다. 약속하신대로 다시 이 땅에 재림주로 오실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누리는 만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이 축복의 역사들이 그대로 성취되게 되어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계속 불러야 하는가? 크게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 그리스도의 이름을 계속 불러야 하는가?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린다. 첫 번째로 사단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악한 사단이 분명히 끝까지 공격한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 때로는 우는 사자처럼, 때로는 광명의 천사처럼, 이 악한 사단이 믿는 자들조차도 공격을 한다고 하고 말슴하고 있다. 언제까지인가? 마25:41에 보면 권세만 꺾여졌지 계속해서 이 악한 사단이 이 지구상에 공중권세 잡은 자로, 세상의 주관자로 역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다.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다. 공중권세 잡은 자의 싸움, 세상 주관자와의 싸움인 것을 바울이 고백한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바울이 엡6장에 보면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 악한 사단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 무언가가 신앙생활이 안 되게 되어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무언가 풀려지지 않는 문제가 무엇 때문인가를 알아야 한다. 끊임없는 갈등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 악한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구원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고 참된 전도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분명히 악한 사단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악한 사단이 존재하면서 인간을 타락시키고 멸망의 길로 인생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지금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사단의 세력을 꺾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계속 말해야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사단의 세력을 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단과 영적인 싸움에서 다른 이름으로는 승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많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이 영적인 사실을 알지 못해서 구체적으로 영적인 힘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계속 불러야 하는가? 지금 우리의 현장에, 우리의 산업에,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가정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 사단의 권세를 꺾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
두 번째로 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야 하는가? 살리는 영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 이름밖에 없다. 요14:26-27에 이렇게 말했다.「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살리는 영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길은, 다른 말로 하면 부활의 성령의 인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길은 그리스도 그 이름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성령이 임하시게 되어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우리 신앙생활에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구원받았다는 말은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 성령의 내주는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구원받은 자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그 성령께서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가 조금만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몸부림을 칠 때 사실적인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어있고 그 성령의 인도를 지속적으로 받게 될 때 성령충만 속에 들어가게 되며, 그 성령충만을 받으면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성령 충만함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타락의 문화를 바꾸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성령인도 받는 것이다. 완전한 축복을 가지시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모자람이 없는 완전한 축복을 가지시고 우리 안에, 믿는 자 속에 성령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가 성령인도받기 위해서 기도를 하면 하늘 보좌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어있고 성령인도받기 위해서 기도를 하면 하늘 보좌의 문들이 열려짐과 더불어 거기에 천군과 천사들이 동원되게 되어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그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길이 그리스도 그 이름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래서 이 영적인 사실을 알면 알수록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모사는 참된 힘을 얻게 된다. 이 영적인 사실, 존재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되어진다. 왜 그러한가?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불신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평안함이 그 속에서 나타나게 되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이다. 이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에 방향 맞추고 나갈 때마다 거기에서 참된 행복과 평강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이 무엇인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의 메시지 가운데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마28:16-20에 말씀을 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막16:15-20에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치유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 주님의 관심에 방향 맞추고 나갈 때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게 되어있다. 요21:15-18에 후대들을 찾아 세우라. 후대들에게 힘을 주고 후대를 세우라고 말씀하고 있다. 눅24:13-35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 도성에 낙심해서 돌아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이다. 힘이 없어서 돌아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힘을 주셨다. 기존신자를 살려내서 힘을 주라. 그와 더불어 행1:8의 말씀처럼 성령충만함을 받으라.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이다. 우리가 응답받을 방향이다. 이 사실이 깨달아지고 이 사실에 방향 맞추어질 때마다 참된 행복이, 참된 평강이 오게 되어있다. 다른 말로 하면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 이 일을 위해서 후대를 세우는 것이 부활하신 하나님의 관심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신 이유가 있다면 주님께서 하고 싶어 하시는 이 일을 우리를 통해서 하고자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이 일을 감당할 때마다 이 속에서 오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걱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함과 참된 행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 시대에 축복할 사람, 축복할 자리에 세우셔서 그 일을 감당케 하시는 일, 그것이 바로 축복받는 일이다. 그 일에 우리를 세우셨다.
말씀을 맺는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사용할 때마다 또 주임이 원하시는 관심에 방향을 맞출 때마다 참된 행복과 평강, “너희에게 평각이 있을 지어다” 이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오늘 요20장에 제자들이 두려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떨고 있는 현장에 나타나셔서, 또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이 축복의 언약이 이번 한 주간 걸음 속에 구원의 축복을 누림으로, 전도캠프 현장에서 아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사용함으로, 주님의 관심에 방향맞춤으로 말미암아 참된 평강의 축복이 확인되고 누려지는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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