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2007-06-1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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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본문의 12절「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의 말씀을 가지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제목을 붙잡았다. 옛날에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되어있었는데 여기에는 강조해서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하고 있다. 다시 인사하겠습니다. 지금이 최고의 축복받는 시간입니다.
이번 주간에 대구노회 캠프가 남시찰 중심으로 진행되어진다. 남시찰에 우리교회가 포함되어 있다. 송현교회를 베이스캠프로 해서 남시찰을 중심으로 한 교회들이 캠프에 인도받게 된다. 6월 12(화)부터 14일(목)까지 3일 동안 진행되어 진다. 여기에 우리교회도 8개의 지교회 중심으로 인도받게 된다. 현장 속에서 우리가 정복해야할 아낙산지를 발견하고 이를 정복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가나안땅을 점령하는데 가장 중요한 땅이 아낙산지이다. 가나안을 정복하는데 이 아낙산지가 중요한 고지이고 가장 해결해야할 부분이다. 민13:28에 보면 아낙자손에 대해서「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에서 아낙자손을 보았으며」사실 아낙자손, 산지는 크고 견고한 성, 거인 족속이다. 우리 안에 이 아낙자손처럼 불신앙의 크고 견고한 성들이 있다. 이 사실들이 무너져야만 하고 우리 가정, 가문, 교회, 직장, 교회 속에 아낙산지 같은 크고 견고한 거인 같은 것들이 정복되어져야 한다. 올해 우리 교회에 주신 기도제목 가운데 300지교회, 3000제자도 우리교회에 주신 아낙산지이다. 이 축복된 역사들을 우리가 아낙산지를 정복하면서 축복을 누려야 하겠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응답이 “내가 네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곳을 다 네게 주었다”는 언약을 잡고 나가게 될 때 세상의 신이 쫓겨져 가고 이 땅에 하늘군대가 동원되어지는 역사가 우리 현장에 일어날 것이다. 이번 한 주간 현장 속에서 우리가 정복할 산지들을 그림을 그리고, 캠프를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 현장에서 아낙산지를 점령하고 어떻게 내게 주신 산지를 정복할지 그림을 그리고 도장을 찍고, 언약을 가지고 모든 산지들을 정복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세 가지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룰 가지고 첫 번째로 성경에서 말하는 정복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세 번째로 캠프를 통해서 우리가 해야 될 부분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도록 한다.
첫 번째로 성경에서 말하는 정복은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성경적인 정복의 방법들이 세상의 정복 방법과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시대마다 세계정복의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세계를 정복한 사람은 없었다. 나폴레옹, 징기스칸, 시저, 알렉산더, 히틀러 등 세계정복을 꿈꾸지만 결과는 비참하게 죽어갔다. 그 어떤 것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없다. 복음으로만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성경적인 정복은 다른 사람을 패배시키고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고 치유하며 회복시키고 다른 사람을 응답받도록 하면서 내가 회복되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생존경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것에 익숙해져서 우리도 모르게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세상적인 싸움으로 정복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것이 승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고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응답받도록 만들고 거기에 더불어 내가 사는 것이 성경적인 정복이다. 세상에서의 정복은 군림이지만 성경적인 정복은 하나님나라의 확산을 말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것이 세계적인 정복이다.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는가? 생명의 언약을 가진 사람에게는 성경적인 축복이 그냥 따라오는 것이다. 창1:27-28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다스리고 정복하는 축복을 주셨다. 하나님 안에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될 때 다스리고 정복하는 축복이 당연히 따라 나온다. 요16:33에 승리하는 기독교인의 삶을 말하고 있는데,「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환란을 당할 수 있지만 담대할 수 있고, 그 어떤 환란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진 생명의 역사를 누리는 것이 현장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온 땅은 병들어 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 문화, 정치, 경제가 병들어 있다. 하나님의 뜻과 은혜, 영적인 축복을 받지 못한 체 과학과 지식이 발전해서 결국 병든 세상, 사람들이 되었다. 병든 사람들이 결국 마약과 도박과 음란과 세상적인 쾌락을 가지고 만족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영적문제에 빠진 인간의 모습이다. 모든 경제조차도 세상쾌락 쪽으로 같이 흐르고 있다. 전 세계의 경제의 현장이 바로 타락의 현장이요, 흑암의 현장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병든 세상, 병든 우리 개개인의 심령, 가정, 자녀, 직장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이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 그리스도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고 축복하신 이유가 병든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이다. 병든 세상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유하는 것을 전도라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흑암의 세력을 꺾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것으로는 되어지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비추어지게 될 때 흑암이 떠나가게 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다. 요1:4에「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는데 그 생명이 바로 생명의 빛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1:9에 보면「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 위에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그런데 이 빛을 세상 사람들이 받기를 거절했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요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빛으로 오신,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캠프란 흑암이 지배하고 있는 이 현장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 창조의 빛을 비추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축복하신 것이다. 이 병든 세상을 살리는 길은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지는 길밖에 없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정복의 주체는 누구인가? 하나님이 그 주체가 되신다. 내가 하려고 하면 힘이 들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한계를 가지고 오고, 실패, 포기를 가지고 오게 된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정복의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께 방향 맞추고 기도하고 나갈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다. 현장을 향한 주님의 탄식만 우리에게 있으면 된다. 정말로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우선순위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거기에 방향 맞추고 언약 붙잡고 기도하고 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현장정복의 축복을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정복의 역사를 우리로 말미암아 누리게 하신다. 구약에 가나안의 정복은 세계정복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의 언약을 붙잡았을 때 승리하게 되었다. 그 피의 언약은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리스도와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고 방향 맞추고 나갈 때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내가 하려고 해서 실패하게 된다. 그리스도와 세계복음화를 붙잡고 기도할 때 성령의 동행하심과 인도하심과 간섭하심이 우리의 모든 걸음과 사건 속에 나타나게 되어있다. 우리가 양육을 할 때 자녀들이 삐뚤어진 길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간섭을 한다. 자녀들은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내 자녀인 이상 내가 간섭하는 스케줄 속에 들어와 있다. 우리가 성령의 동행, 인도, 간섭하심이 내 중심으로 살아가는 체질이 되어있어서 그 부분이 거북스러울지 모르지만 성령의 동행하심, 인도하심, 간섭하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완벽하게 지키겠다고 하시는 약속 가운데 주신 것이다. 그 안에 있을 때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다. 하나님의 동행사심, 인도하심, 간섭하심 속에 있을 때 불꽃같은 손길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멸망할 수 없다. 성령의 인도, 간섭받는데서 모든 응답들이 나오고, 참된 평안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성령께서 내 개인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있는 모든 것들 속에 간섭하시며 역사하시는 것을 가지고 사도행전적인 것이라고 한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행전이라고도 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춘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에 관련된 모든 부분에 성령이 역사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서 세계복음화가 되어지는 것이 사도행전에 들어있는 우리의 삶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모든 축복의 문을 열어 가신다. 그 속에 우리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응답뿐 아니라 나로 인해 후대가 살아나고, 가정과 가문이 살아나고, 문화권이 바뀌고, 모든 현장들이 변화되어지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가 하는 일, 걸음,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완벽하게 축복하신 사실들이 나로 인해 나타나게 되어진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이다. 이 속에 지금 우리가 들어와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다. 실제로 이 축복된 역사들이 오늘도 지금 걸음 속에 진행되고 있음을 보는 눈이 열려지길 축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내가 응답받음으로 말미암아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이 살아나는 축복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의 축복이다. 이 축복된 역사 속에 우리가 있음을 알고, 이 축복의 비밀을 주신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깨닫고 누리길 바란다.
두 번째로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붙잡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가? 이 땅의 모든 모임들이 있지만 전도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는 모임은 없다. 다시 말해 전도의 모델이 이 땅에는 없다. 하나님이 우리교회와 우리를 축복하는 이유는 우리를 통해서 전도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디자이너가 자신에게 있는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서 모델에게 무언가를 자꾸 심어놓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 성경적인 전도의 모델이 없기 때문에 성경적인 전도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기 우해서 우리를 세우시고 이 일 때문에 축복하신다.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창3장의 원죄 가운데 빠져서 창3:16-19처럼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다. 이 창3장의 원죄, 저주, 재앙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전도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를 세우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죄를 이해하고 있지만 원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범죄를 이야기하고 있다. 교회조차도 가장 중요한 것이 원죄문제 해결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범죄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조차도 종교에 빠지고,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실패하는 역사를 가지고 오게 된다. 결국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원죄를 생각지 않고 자범죄를 붙잡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종교들과 같은 것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가지고 왔다. 결국 지금은 네피림, 세상 속에서 지고 있는 것이다. 창3장에서 말하는 원죄를 바로 알지 못하고 종교, 네피림에 빠지고 세상에 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우리의 자범죄 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니다. 우리와 관계없이 오게 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배경인 창3장의 원죄, 저주와 재앙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이 사실을 말하는 것을 가지고 전도하고 한다. 창3:15「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이를 현장에 선포하는 것을 전도하고 한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세우셨고 축복하신다. 마24:14에서「이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된 이후에야 끝이 오리라」누가 뭐래도 창3장 문제를 해결하는 창3:15이 이루어지는 이 사건 주심으로 모든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삶의 방향을 맞추게 될 때 모든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창3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도 속에 여러분의 생애가 들어오게 될 때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보장하고 있다. 이 땅에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다. 마24:1-13에 보면 기근과 전쟁과 지진들이 이 땅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지만 그것 때문에 끝이 온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된 이후에야 끝이 온다고 말씀하셨다. 원죄를 해결하는 창3:15의 비밀을 붙잡고 그 사역 속에서 방향 맞출 때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보장하고 계신다.
마지막 세 번째로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어떻게 이번 주간에 캠프에 응답을 받게 되고 우리가 속한 현장, 직장 속에서 아낙산지들을 정복하는, 크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릴 축복을 받은 것인가? 여호수아서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을 언약으로 붙잡아야할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언약을 먼저 붙잡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으면 된다. 수1장에 주신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모세가 죽고 난 후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서 두려워하지 말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시면서, 네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이미 다 너에게 주었다고 언약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떻게 캠프의 축복을 누려갈 것인가? 우리에게 이미 주신 약속이 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으면 된다. 두 번째로 현장에 수2장처럼 라합같은 준비된 일꾼이 있다. 캠프의 중요한 키가 바로 그것이다. 현장 속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라합같은 일꾼, 굵는 밧줄을 말하면 통하는 라합같은 일꾼이 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면 그 비밀을 들을 준비된 예비된 일꾼들을 찾는 것이 캠프이다. 이 캠프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속에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수3장의 요단을 건너는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을 회복시키셨다. 그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여리도성, 안된다고 하는 불신앙을 무너뜨리고 수7,8장에 있는 다른 동기를 가지지 않고 순수한 복음을 가지고 수10장의 말씀처럼 하나가 되어서 전무한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될 때에 여기에 나타는 응답의 축복이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우리에게 정복할 산지를 차지하게 되어지는 것을 누리게 된다.
말씀을 맺는다. 특별히 캠프 주간이다. 아낙산지들이 정복되어지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 일을 위해서 먼저 언약을 붙잡고 믿음을 회복하고 여러분 안에 있는 불신앙을 꺾고 순수한 복음적인 동기를 가지고 온 교회가 하나 되어서 기도하고 나가게 될 때 우리에게 정복하기로 약속되어있는 역사들이 보여 지고 기어코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 축복이 이번 한 주간 누려지는 걸음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캠프를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이 축복이 누려지게 되길 기도한다.
본문의 12절「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의 말씀을 가지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제목을 붙잡았다. 옛날에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되어있었는데 여기에는 강조해서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하고 있다. 다시 인사하겠습니다. 지금이 최고의 축복받는 시간입니다.
이번 주간에 대구노회 캠프가 남시찰 중심으로 진행되어진다. 남시찰에 우리교회가 포함되어 있다. 송현교회를 베이스캠프로 해서 남시찰을 중심으로 한 교회들이 캠프에 인도받게 된다. 6월 12(화)부터 14일(목)까지 3일 동안 진행되어 진다. 여기에 우리교회도 8개의 지교회 중심으로 인도받게 된다. 현장 속에서 우리가 정복해야할 아낙산지를 발견하고 이를 정복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가나안땅을 점령하는데 가장 중요한 땅이 아낙산지이다. 가나안을 정복하는데 이 아낙산지가 중요한 고지이고 가장 해결해야할 부분이다. 민13:28에 보면 아낙자손에 대해서「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에서 아낙자손을 보았으며」사실 아낙자손, 산지는 크고 견고한 성, 거인 족속이다. 우리 안에 이 아낙자손처럼 불신앙의 크고 견고한 성들이 있다. 이 사실들이 무너져야만 하고 우리 가정, 가문, 교회, 직장, 교회 속에 아낙산지 같은 크고 견고한 거인 같은 것들이 정복되어져야 한다. 올해 우리 교회에 주신 기도제목 가운데 300지교회, 3000제자도 우리교회에 주신 아낙산지이다. 이 축복된 역사들을 우리가 아낙산지를 정복하면서 축복을 누려야 하겠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응답이 “내가 네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곳을 다 네게 주었다”는 언약을 잡고 나가게 될 때 세상의 신이 쫓겨져 가고 이 땅에 하늘군대가 동원되어지는 역사가 우리 현장에 일어날 것이다. 이번 한 주간 현장 속에서 우리가 정복할 산지들을 그림을 그리고, 캠프를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 현장에서 아낙산지를 점령하고 어떻게 내게 주신 산지를 정복할지 그림을 그리고 도장을 찍고, 언약을 가지고 모든 산지들을 정복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세 가지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룰 가지고 첫 번째로 성경에서 말하는 정복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세 번째로 캠프를 통해서 우리가 해야 될 부분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도록 한다.
첫 번째로 성경에서 말하는 정복은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성경적인 정복의 방법들이 세상의 정복 방법과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시대마다 세계정복의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세계를 정복한 사람은 없었다. 나폴레옹, 징기스칸, 시저, 알렉산더, 히틀러 등 세계정복을 꿈꾸지만 결과는 비참하게 죽어갔다. 그 어떤 것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없다. 복음으로만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성경적인 정복은 다른 사람을 패배시키고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고 치유하며 회복시키고 다른 사람을 응답받도록 하면서 내가 회복되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생존경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것에 익숙해져서 우리도 모르게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세상적인 싸움으로 정복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것이 승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고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응답받도록 만들고 거기에 더불어 내가 사는 것이 성경적인 정복이다. 세상에서의 정복은 군림이지만 성경적인 정복은 하나님나라의 확산을 말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것이 세계적인 정복이다.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는가? 생명의 언약을 가진 사람에게는 성경적인 축복이 그냥 따라오는 것이다. 창1:27-28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다스리고 정복하는 축복을 주셨다. 하나님 안에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될 때 다스리고 정복하는 축복이 당연히 따라 나온다. 요16:33에 승리하는 기독교인의 삶을 말하고 있는데,「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환란을 당할 수 있지만 담대할 수 있고, 그 어떤 환란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진 생명의 역사를 누리는 것이 현장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온 땅은 병들어 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 문화, 정치, 경제가 병들어 있다. 하나님의 뜻과 은혜, 영적인 축복을 받지 못한 체 과학과 지식이 발전해서 결국 병든 세상, 사람들이 되었다. 병든 사람들이 결국 마약과 도박과 음란과 세상적인 쾌락을 가지고 만족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영적문제에 빠진 인간의 모습이다. 모든 경제조차도 세상쾌락 쪽으로 같이 흐르고 있다. 전 세계의 경제의 현장이 바로 타락의 현장이요, 흑암의 현장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병든 세상, 병든 우리 개개인의 심령, 가정, 자녀, 직장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이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 그리스도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고 축복하신 이유가 병든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이다. 병든 세상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유하는 것을 전도라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흑암의 세력을 꺾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것으로는 되어지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비추어지게 될 때 흑암이 떠나가게 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다. 요1:4에「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는데 그 생명이 바로 생명의 빛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1:9에 보면「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 위에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그런데 이 빛을 세상 사람들이 받기를 거절했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요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빛으로 오신,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캠프란 흑암이 지배하고 있는 이 현장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 창조의 빛을 비추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축복하신 것이다. 이 병든 세상을 살리는 길은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지는 길밖에 없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정복의 주체는 누구인가? 하나님이 그 주체가 되신다. 내가 하려고 하면 힘이 들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한계를 가지고 오고, 실패, 포기를 가지고 오게 된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정복의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께 방향 맞추고 기도하고 나갈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다. 현장을 향한 주님의 탄식만 우리에게 있으면 된다. 정말로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우선순위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거기에 방향 맞추고 언약 붙잡고 기도하고 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현장정복의 축복을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정복의 역사를 우리로 말미암아 누리게 하신다. 구약에 가나안의 정복은 세계정복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의 언약을 붙잡았을 때 승리하게 되었다. 그 피의 언약은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리스도와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고 방향 맞추고 나갈 때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내가 하려고 해서 실패하게 된다. 그리스도와 세계복음화를 붙잡고 기도할 때 성령의 동행하심과 인도하심과 간섭하심이 우리의 모든 걸음과 사건 속에 나타나게 되어있다. 우리가 양육을 할 때 자녀들이 삐뚤어진 길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간섭을 한다. 자녀들은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내 자녀인 이상 내가 간섭하는 스케줄 속에 들어와 있다. 우리가 성령의 동행, 인도, 간섭하심이 내 중심으로 살아가는 체질이 되어있어서 그 부분이 거북스러울지 모르지만 성령의 동행하심, 인도하심, 간섭하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완벽하게 지키겠다고 하시는 약속 가운데 주신 것이다. 그 안에 있을 때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다. 하나님의 동행사심, 인도하심, 간섭하심 속에 있을 때 불꽃같은 손길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멸망할 수 없다. 성령의 인도, 간섭받는데서 모든 응답들이 나오고, 참된 평안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성령께서 내 개인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있는 모든 것들 속에 간섭하시며 역사하시는 것을 가지고 사도행전적인 것이라고 한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행전이라고도 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춘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에 관련된 모든 부분에 성령이 역사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서 세계복음화가 되어지는 것이 사도행전에 들어있는 우리의 삶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모든 축복의 문을 열어 가신다. 그 속에 우리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응답뿐 아니라 나로 인해 후대가 살아나고, 가정과 가문이 살아나고, 문화권이 바뀌고, 모든 현장들이 변화되어지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가 하는 일, 걸음,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완벽하게 축복하신 사실들이 나로 인해 나타나게 되어진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이다. 이 속에 지금 우리가 들어와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다. 실제로 이 축복된 역사들이 오늘도 지금 걸음 속에 진행되고 있음을 보는 눈이 열려지길 축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내가 응답받음으로 말미암아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이 살아나는 축복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의 축복이다. 이 축복된 역사 속에 우리가 있음을 알고, 이 축복의 비밀을 주신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깨닫고 누리길 바란다.
두 번째로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붙잡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가? 이 땅의 모든 모임들이 있지만 전도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는 모임은 없다. 다시 말해 전도의 모델이 이 땅에는 없다. 하나님이 우리교회와 우리를 축복하는 이유는 우리를 통해서 전도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디자이너가 자신에게 있는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서 모델에게 무언가를 자꾸 심어놓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 성경적인 전도의 모델이 없기 때문에 성경적인 전도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기 우해서 우리를 세우시고 이 일 때문에 축복하신다.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창3장의 원죄 가운데 빠져서 창3:16-19처럼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다. 이 창3장의 원죄, 저주, 재앙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전도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를 세우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죄를 이해하고 있지만 원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범죄를 이야기하고 있다. 교회조차도 가장 중요한 것이 원죄문제 해결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범죄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조차도 종교에 빠지고,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실패하는 역사를 가지고 오게 된다. 결국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원죄를 생각지 않고 자범죄를 붙잡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종교들과 같은 것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가지고 왔다. 결국 지금은 네피림, 세상 속에서 지고 있는 것이다. 창3장에서 말하는 원죄를 바로 알지 못하고 종교, 네피림에 빠지고 세상에 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우리의 자범죄 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니다. 우리와 관계없이 오게 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배경인 창3장의 원죄, 저주와 재앙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이 사실을 말하는 것을 가지고 전도하고 한다. 창3:15「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이를 현장에 선포하는 것을 전도하고 한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세우셨고 축복하신다. 마24:14에서「이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된 이후에야 끝이 오리라」누가 뭐래도 창3장 문제를 해결하는 창3:15이 이루어지는 이 사건 주심으로 모든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삶의 방향을 맞추게 될 때 모든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창3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도 속에 여러분의 생애가 들어오게 될 때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보장하고 있다. 이 땅에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다. 마24:1-13에 보면 기근과 전쟁과 지진들이 이 땅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지만 그것 때문에 끝이 온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된 이후에야 끝이 온다고 말씀하셨다. 원죄를 해결하는 창3:15의 비밀을 붙잡고 그 사역 속에서 방향 맞출 때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보장하고 계신다.
마지막 세 번째로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어떻게 이번 주간에 캠프에 응답을 받게 되고 우리가 속한 현장, 직장 속에서 아낙산지들을 정복하는, 크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릴 축복을 받은 것인가? 여호수아서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을 언약으로 붙잡아야할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언약을 먼저 붙잡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으면 된다. 수1장에 주신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모세가 죽고 난 후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서 두려워하지 말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시면서, 네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이미 다 너에게 주었다고 언약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떻게 캠프의 축복을 누려갈 것인가? 우리에게 이미 주신 약속이 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으면 된다. 두 번째로 현장에 수2장처럼 라합같은 준비된 일꾼이 있다. 캠프의 중요한 키가 바로 그것이다. 현장 속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라합같은 일꾼, 굵는 밧줄을 말하면 통하는 라합같은 일꾼이 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면 그 비밀을 들을 준비된 예비된 일꾼들을 찾는 것이 캠프이다. 이 캠프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속에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수3장의 요단을 건너는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을 회복시키셨다. 그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여리도성, 안된다고 하는 불신앙을 무너뜨리고 수7,8장에 있는 다른 동기를 가지지 않고 순수한 복음을 가지고 수10장의 말씀처럼 하나가 되어서 전무한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될 때에 여기에 나타는 응답의 축복이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우리에게 정복할 산지를 차지하게 되어지는 것을 누리게 된다.
말씀을 맺는다. 특별히 캠프 주간이다. 아낙산지들이 정복되어지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 일을 위해서 먼저 언약을 붙잡고 믿음을 회복하고 여러분 안에 있는 불신앙을 꺾고 순수한 복음적인 동기를 가지고 온 교회가 하나 되어서 기도하고 나가게 될 때 우리에게 정복하기로 약속되어있는 역사들이 보여 지고 기어코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 축복이 이번 한 주간 누려지는 걸음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캠프를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이 축복이 누려지게 되길 기도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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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143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142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136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135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134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133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132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 3:8-18 | 2024-12-15 | |
1131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
1130 | 뜻을 정한 자 | 단1:1-9 | 2024-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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