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2007-09-0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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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정체성을 확인합시다. 오늘 말씀 듣는 가운데서 우리의 정체성이 발견되는 그런 축복의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절에 보면「너희 중 한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여호수아가 그의 마지막 고별 설교에서 한사람이 천명을 쫓는다고 했다.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천이다. 이 고백은 광야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가나안땅의 역사 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알고 있는 여호수아의 고백이다. “한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현장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이 부분들의 고백이 바르게 주어지게 되어있다. 어떻게 한사람이 천명을 쫓느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싸우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의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본문에 수23, 24장은 여호수아가 이제 나이가 많아 늙어서 마지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는 내용이다. 말씀을 살펴보면 나이가 많아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멋진 전도자의 생애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중요한 고백들을 하고 있다. 자신이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고백하면서 또 후대에게 권면과 경고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전달하는 멋진 모습이 나온다.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를 할지 생각하시고, 지난 생애보다도 남은 생애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멋진 복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본문을 통해서 붙잡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로 생각을 하고자 한다. 첫 번째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언약, 주권으로만 설명되어지는 인생이 된다면 우리의 인생은 가치 있는 인생이 되어지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축복된 복음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후대에게 언약을 전달하는 자로 세워지게 될 때 여러분의 삶은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되어진다.
먼저 첫 번째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았다. 언약을 붙잡고 끝까지 변하지 않고 멋있게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누렸다는 말이다. 여호수아는 광야길을 걸어오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가운데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수하지 않는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어진다면 그 어떤 환경과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평안함을 누릴 수가 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발판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믿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안되게 되어있다. 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겪고 갈등하고 방황하는가? 하나님의 주권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의 주권을 안믿으니까 갈등하고 방황하고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일단은 하나님의 주권을 안 믿으면 삶이 안되게 되어있다. 이 사실을 너무 잘 아는 바울이 로마서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롬1-11장까지는 바울이 교리적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 12-16장까지는 마지막 삶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교리적인 부분에 마지막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 롬11:36에 보면「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다. 모든 교리의 결론을 하나님의 주권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롬12:2에 보면「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이렇게 살아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지 않고서는 삶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면 먼저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따지는 것으로 우리의 생각이 돌아간다. 누가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셔서 된 것이다. 누가 못해서 안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 하셔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고 한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주권이 인정되어진다면 어떤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인정하게 될 때 교만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게 된다. 본문 1절을 보면「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여호와께서’라고 말씀하고 있다. 3절에도 보면「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또 5절에「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고백하고 있다.
왜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려운가? 내가 하려고 하고, 내가 싸우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싸워서 사단을 이길 수 있는가? 그런데 내가 하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싸우려고 하냐면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고 계시는데 이것을 보지 못해서 우리가 하려고 한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힘이 드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싸움이 이것이다. 모든 삶 속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느냐, 아니면 내가 잡고 있느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안할 때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 그러나 문제가 닥치면 하나님의 주권은 없어지고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집에 아이들 문제가 닥쳐오니까 밤에 잠이 안왔다. ‘하나님, 제가 목사인데 이러면 어떻게 됩니까’하면서 잠이 안왔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인데’ 한참 문제 속에서 헤매다가 이를 깨달으니까 평안함이 왔다. 어떤 분이 그런 고백을 했다. 자신은 매사에 최선을 다해서 사는데 어떤 일이 안될 때에는 ‘하나님, 알아서 하십시오’하고 내팽겨 둔다고 한다. 그런데 내팽겨 두는데 내가 하는 것보다 더 완벽하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고 고백을 했다. 우리의 싸움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느냐 아니면 내가 하는가.
출3장부터 4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모세가 “내가 누군 줄 하나님이 아시지 않습니까”하면서 못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내 입이 뻣뻣해서 말도 못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할 말을 주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시는데 자꾸 자기 형편을 보고 자기 기준에서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중에 “주여 그래도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끝까지 자기중심으로, 자기 기준으로 자신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내가 하겠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에게 말을 주겠다, 말을 잘하는 아론을 네게 붙여주겠고, 너와 아론에게 할 말을 주겠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싸움이 바로 이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당하기 전에 일치감치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하고 내려놓을 때 평안함을 누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신앙생활이 왜 쉬운가? 영적인 싸움이 왜 평안한가? 하나님이 하시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밀하게 내 모든 것을 간섭하고 인도하고, 시시콜콜하게 모든 앉고 일어섬을 다 주관하고 계심을 알 때에 참된 평안함이 나온다. 시139:2-4에 보면「2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내 혀의 말도 하나님이 아시고, 앉고 일어섬, 나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시편기자가 이야기를 했다.
제가 언젠가 메시지 중에 말씀을 드렸었다. 이제 교회를 하나교회로 온지가 3년 정도가 되어간다. 입당예배를 드리고 나서 목사님이 편찮으셔서 교회를 잘 나오지 못하시고, 교회를 나오셔서는 예배시간에 겨우 앉아계시다가 들어가시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목사님이 교회를 나오시지 못하시다가 나오셨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들어가시는 길에 배웅을 하면서 교회에 대한 이런저런 부분을 보고를 드렸다. 그 보고 속에는 걱정스러운 불신앙의 부분이 들어있었다. 그러자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걱정하고 염려할 것 없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에 믿음이 생겼다. 하나님이 세계복음화 때문에 하나교회를 이곳으로 옮기게 하셨다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지, 하나님은 중요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이고, 이 하나교회를 통해서 세계복음화를 이루어나갈 것이다하는 믿음이 생겼다. 불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그 한 말씀을 들었는데 믿음이 생겼다.
진짜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믿게 될 때 모든 불신앙이 떠나가고 참된 평안함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다윗이 대상29:11,12에 중요한 고백을 했다. 이 고백은 공부해서 나온 것이 아니고, 배워서 나온 것도 아니다.「11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진짜 우리의 여러분의 생애가 하나님의 주권이 설명되어지는 생애가 되어진다면 여러분의 생애는 가치 있고 성공하는 삶이 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렘넌트 7명을 보면 하나같이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이 설명되어졌다.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도 여호수아서를 마지막 결론 맺으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고 하면서 마지막 24:15에 보면 중요한 고백을 한다.「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참된 하나님의 주권이 여러분의 삶에서 드러나는 축복된 생애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인가? 후대에게 언약을 전달하는 자로서의 삶이 된다면 여러분의 삶은 성공하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여호수아가 23장에서 권면과 경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전달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다면 살 것이고, 붙잡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 언약이다. 그런데 본문에 여호수아가 그 사실을 마지막 그의 자녀들에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6절에「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키는 율법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하게 붙잡아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6절 마지막에「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다시 말하면 바르게, 정확하게 알라는 말이다. 우리가 열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른 것을 알지 못하고 열심을 하면 망하는 것이다. 열심을 내도 올바르게 알고 정확하게 알고 열심을 내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하게 붙잡고 정확하게 알라는 것이다.
7절에 보면 걸림돌이 되어지는 우상과 불신앙의 역사를 통해서 그것을 섬기지 말고 그것들에게 맹세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8절에 보면「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구 성경에는 여호와를 친근히 하라고 했다. 늘 임마누엘하시는 축복을 사실적으로 누리라는 말이다. 그렇게 할 때에 10절에「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알고 언약을 확실히 붙잡고 누리게 될 때 한명이 천명을 쫓으리니. 우리의 영향력이 크게 미쳐진다는 것이다. 한사람이 천명을 살리는 역사로. 사60:22에「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이다. 진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게 될 때 한사람의 영향력이 천명을 살리는 일당천이 된다. 그러면서 11절에 보면「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이 분명히 사단이 실제로 살아서 역사하기 때문에 늘 언약을 붙잡고 기도를 하면서 성령충만한 삶을 살라는 말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일평생동안 하나님께 받았던 엄청난 은혜와 구원의 축복과 임마누엘을 간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고하는 내용들이 이어서 나온다. 12절부터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를 하는데「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구 성경에는 더 잘 설명이 되어있다.「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남아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왜 혼인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혼인을 하느냐. 퇴보하여서 그 땅의 민족과 친근하여져서 혼인을 하게 된다고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붙잡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이 퇴보하게 되면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의 믿음이 퇴보하게 되면 현실문제에 집착해서 자꾸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된다. 우리의 믿음이 퇴보하게 되면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속게 된다.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큰 것을 놓치게 된다. 여기에 만일 퇴보하여, 그러면서 남아있는 이 민족을 친근히 하며. 믿음이 퇴보를 해서 그들 민족과 친해져서 혼인하게 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축복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축복은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이다. 그래서 창1:27, 28에 보면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시면서 28절에 정복하고 다스리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 생명의 축복은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이다. 그런데 그 축복을 창3장의 원죄 사건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리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창3장의 원죄 사건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놓쳐버렸다. 그래서 사단의 영이 우리의 영을 주관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무리 많이 가져도 평안함이 없고, 아무리 열심히 성취해 놓고도 끊임없는 분쟁이 계속되어진다. 또한 마음에는 악한 사단의 인도와 지배를 받게 되어 결국은 육신의 질고와 마음과 정신이 병들어가고 결국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생명, 그 속에 있는 다스리고 정복하는 축복을 놓쳐버리니까 오히려 다스림을 당하고 정복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생명의 역사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연약을 주셨다. 창3:15의「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사7:14에「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그 분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요1:4에 그리스도께서 생명으로, 9절에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 요14:6에「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그리스도께서 바로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생명이다. 요11:25-26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말씀하셨다. 이 생명을 가지게 될 때에 세상을 타협하지 않고서도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된다. 그래서 성경에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말씀하고 있다. 이 생명 가진 자는 분명히 세상을 이기게 되어있다.
이 생명의 엄청난 축복을 모르니까 세상과 현실, 불신앙과 사단과 타협하는 것이다. 잘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비위를 맞추고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쓰고 자기가 힘써서 될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수단, 방법을 쓰고 사람의 비유를 맞추고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그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 승리하는 길인 줄 알지만 우리에게 하나도 도움 되지 않는다. 결국 13절에 보면「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도움을 줄줄 알았는데 그것이 결국은 시간이 지나서 나에게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채찍이 되고 눈의 가시가 되어 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명의 축복의 비밀을 바르게 누리게 될 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도 승리하고 정복하게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복음을 모르고 이 생명이 축복을 모르면 오히려 불신앙이 더 편하다. 그리고 진짜 이 복음의 비밀을 모르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내가 머리를 쓰는 것이 더 안심되고 편하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내가 대책을 세우는 것이 더 편하다. 이를 보고 종교생활, 인본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은 안되게 되어있다. 결국은 13절의 말씀처럼 전부 우리에게 덫이 되고, 채찍이 되고,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되어 진다는 것이다. 이 생명의 축복을 모르면 결국은 13절「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15절「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16절「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망할 자리에 있어서 망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축복의 자리, 아름다운 자리에서 망한다는 것은 이보다 억울한 일은 없다. 그리스도 그 생명의 축복을 모르게 될 때 결국은 아름다운 땅에 있어도 망한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능력, 임마누엘의 비밀, 그리스도의 그 이름의 비밀을 모르게 될 때에 결국은 실패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어떤 이름인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게 될 때 지금 하나님을 만난다.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름이다. 또한 지금 죄 문제에서 해방 받고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 받는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지금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사단의 세력이 떠나가는 이름이다. 이 엄청난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누리지 못한다면 아름다운 땅에서도 멸망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제대로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할 자리에 있어서 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리스도 그 이름에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망한다는 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무식한 것 같아도 오직 그리스도이다. 진짜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붙잡게 될 때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진다. 시81:11「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그러면서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청종하라. 그러면 내가 손을 들어서 원수와 대적을 멸하리라. 말씀하셨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하나님만을 바라 볼 때 하나님이 손을 들어서 역사하신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얻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만이 능력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축복이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다. 이 축복을 온전히 누림으로 아름다운 땅에서 아름다운 축복을 마음껏 증거하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결론을 맺는다. 14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모든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은 가야하는 길 속에 어떻게 우리가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인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후대에게 권면과 경고를 통해서 언약을 바르게 전달하는 삶이 되어질 때에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늘군대를 동원하셔서 대신 싸우신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에 홍해 앞서서 하나님의 사자가, 여리고 성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간담을 녹게 하셨다. 하나님의 역사가 먼저 있었다. 아모리 연합군과의 싸움 속에서 하나님이 우박을 내리시사 그래서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다고 했다. 하나님이 미리 싸우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이 언약을 후대에게 전달해야겠다고 각오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사자들을 동원하셔서 우리 대신 하나님께서 싸우신다. 이 땅에 사람들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그를 위해서 싸우시는 사람이 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있는가? 자신이 싸우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는 사람이 있다. 언약을 붙잡고 정말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후대에게 이 언약을 전달해야겠다고 결단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주의 군대를 동원하시사 싸우실 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 승리하는 여러분의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인사를 할 때 정체성을 확인하자고 인사를 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싸우십니다.” 그렇기에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천이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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