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2016-01-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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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신1:19~33)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23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24 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25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28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 신1:19~33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라들을 차지하십시오! 이 한 해 뜻하신 그곳에 서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될 때 나라들을 차지하는 응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 축복의 주역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016년도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답을 가지고 시작하기 위해서, 또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지난 주간부터 우리가 특별새벽기도회로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하셔서 기도하는 귀한 시간들을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우리 전체 본부에서 주신 메시지, 하나님의 목표, 나의 인생에 대한 목표, 나의 교회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같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에는 우리 교회에 주신 제목들입니다. 말씀운동, 기도운동, 전도운동을 통해 진짜 하나님의 언약을 각인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목표를 실현함으로 말미암아 나라들을 차지하는 그 응답을 누려야 할 것인데, 여러분, 특별히 귀한 시간들 많이 함께 참여하셔서 함께 인도받는 귀한 시간들 되시고 여러분 생에 최고로 은혜 받고 응답 받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한 해를 시작하시면서 말씀 붙잡고 모든 것을 가지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그 시작이 되어지면 됩니다. 말씀부터 붙잡고 모든 것을 기도 속으로 가지고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문들을 여시는 그 사실 속에 인도받게 되면 응답이 오는데 어떤 응답이 오느냐? 나라들을 차지하는 그 응답이, 우리의 수준과 상관없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모든 것을 기도 가운데 가지고 들어가는 그런 축복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입국을 압두고 정탐꾼을 내어보내게 됩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민수기 13장, 14장을 배경으로 한 본문인데, 그런데 그 정탐하고 나서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축복이 지연되고 심지어 사실 그 땅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실패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지난날 실패했던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본문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장면입니다. 특별히 이번, 이 한 해 우리가 “나라들을 차지하리라,” 이 응답을 누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역사의 실패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교훈을 삼아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 역사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바로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설이지만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분, 지나간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과거의 실패를 오늘의 역사에서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모든 축복을 다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여기 보면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두셨다는 말의 원래 뜻은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차려 놓으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것이니까 너희들이 들어가서 그 땅을 마음껏 차지하고 그 축복을 누리라는 의미가 여기 ‘두셨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축복을 하나님이 다 예비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이 축복을 놓쳐 버리거나, 이 축복된 역사 앞에서 지연되는 사실들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한 해 제대로 언약을 붙잡고 먼저 나를 살리고 우리 후대를 살리고 모든 세상을 살림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나라들을 차지하는 그 응답의 주역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문제의 바른 진단이 필요함
그러면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그 나라들을 차지하는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첫 번째입니다. 문제의 바른 진단이 필요합니다. 문제의 바른 진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모든 문제는 한 가지, 복음과 관련되어 모든 문제가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복음을 몰라서 실패하는 것이고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복음을 아는데 그 복음을 누리지 못해서, 결국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누리지 못해서 실패하는, 그런 인생을 산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열심히 사는 것, 인격적인 삶, 애쓰는 삶도 중요합니다만 그 이전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누리는 그 삶이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누리지 못하는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중심에는 내 기준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자꾸 실패하고 왜 자꾸 무너지고 왜 자꾸 한계를 당하고 그 한계를 왜 자꾸 넘어서지 못하느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개개인을 부르실 때는 우리 개인들만이 살기를 원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살리라고 우리를 있게 하셨고 지금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숭배하고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 내셔서 내가 너에게 복을 주는데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마가복음 3장 13절~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말씀하시면서“함께 있게 하시고.” 왜 원해서 부르느냐? 함께 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여러분,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중요한 말씀을 나셨습니다. 너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고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역을 살리고 우리 주변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축복된 역사를 가지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함께 있게 하시고.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복음의 역사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함께 있는 그 축복 속에서 살아나는 것, 그로 말미암아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 이 땅의 많은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그 축복된 증거의 주역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내가 예수 그리스도 믿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축복 가운데 우리를 부르셨는데, 왜 이리 엄청난 축복된 역사들을 누리지 못하느냐? 그것은 바로 절대적인 기준이 복음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기준 되어 있어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가진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영원히 함께 하시는 축복을 그냥 두면 모르기 때문에 선악과를 만드시고 그 선악과, 그 안에 약속을 담아 한 가지, 그 선악과를 지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영원히 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단이 우리 인간에게 찾아와서 거짓말로 속였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길이 있는 것처럼 속였는데 그게 바로 창세기 3장 5절에 보면 “하나님과 같이 되어,” 그러면서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하는 것을 알게 될 것,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하는 일에 너희도 알게 될 것이다, 거짓말로 우리 인간을 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창세기 3장 22절, 23절에 보면 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결국은 선악을 알게 되었다 말씀했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선악을 판단하는 일에, 아는 일에 우리 인간은 그 부분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악한 사단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서게 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맞다고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또 내가 틀리다고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가지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이 마지막에는 망하는 길이 될지는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기준 가지고 살아가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잠언서 14장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내가 좋다고 추구하는데 그것이 망하는 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기준 가지고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세계를 정복하고도 남을 수 있는 복의 근원으로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셨는데 왜 이 큰 축복된 역사를 못 누리느냐? 창세기 3장 5절에 바로 하나님 자리에 내가 서서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내 기준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 기준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네피림 문화 속에서 물질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고 내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창세기 11장에 거짓 성공인 바벨탑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내 기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착각하게 되는데 악한 사단도 응답을 줍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거기에 속는 것 아닙니까? 사도행전 13장, 16장, 19장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미신과 점술과 우상의 역사들로 말미암아 응답 받는 것 같은데 잠시 착각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응답을 받는 것 같은데 그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빠져드느냐? 악한 사단이 그 근본을 잡고 있기 때문에 개인은 멸망 가운데 여섯 가지 상태 속에 그대로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이 무엇이냐? 내 기준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내 기준을 가지면 가질수록, 저는 제 자신을 보면서 느낍니다. 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구나. 내 기준이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구나. 정말 그리스도 앞에 내가 뭔가 주장할 것, 내 기준 내세울 것이 없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논리적인 것도 아무리 합리적인 것도 아무리 인격적인 것도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기준이 되면 안 됩니다. 그 합리적이고 인격적이고 논리적인 그것도 인간이 세운 그 기준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기준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는 것들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는 그것이 우리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만히 성경을 보면 어떤 경우에는 우리에게 전혀 안 맞는 것, 그런 것들이 하나님은 옳다 여기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옳다 여기시는 그 일들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데 무조건적으로 축복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여러분, 창세기 38장에 보면 다말이 나옵니다. 누구인지 알지요? 자기 시아버지와 근친상간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라는 그 말이 아닙니다. 무슨 말입니까? 철저하게 복음인가 아닌가, 정말로 이게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는 것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그 일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내 기준이 너무 강해서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준비해놓고 계신대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열 명의 정탐꾼에 대한 말씀을 이야기하겠습니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실패가 어디에 있었느냐? 내 기준과 세상 배경 속에 있었기 때문에 실패했던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을 왜 못 누리느냐? 내 기준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세상 배경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이 배경이 되어야 하는데 세상 배경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에 보면 결국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니까 거기에 보기도 좋고 탐욕스럽고, 말씀하고 있지요? 눈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열매인지라. 그러니까 결국은 따먹게 되어 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명예와 권력과 물질과 칭찬, 그 모든 것들이 다 인 줄 알고 그것을 배경 삼고 살아가는 인생들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말로는 그리스도 배경이다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람 의지하잖아요. 그리고 사람의 눈을 의식하잖아요. 그리고 우리의 중심에 물질을 배경삼고 있고 나름대로 여러분 가진 권력들을 별것 아닌 권력과 별것 아닌 그 지식들을 여러분 배경으로 그것이 다 인줄 알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그렇게 되어지면 점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어 있고 결국은 거기에 흑암이 역사하는 것이고, 그 속에 결국은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아 놓고도 못 누리게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람 의지하지 말고요, 축복 받은 것 의지하지 말고, 응답 받은 것 있습니까? 좋은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응답 받은 것 조차도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리므로 진짜 끝까지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자기 배경 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알았어요. 그러니까 바울은 뭐라 했습니까? “나의 나 된 것은..” 고린도전서15:10절이지요.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응답 받은 것도, 축복 받은 것도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면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실제로 우리의 배경 삼은 부분들 하나님과 멀어지는 거예요. 전부다... 그것을 내려놓는 만큼 나라들을 차지하는 그 축복된 응답들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의 기준, 나의 배경, 정말로 내 중심한 것, 눈에 보이는 세상 중심한 것, 그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귀한 축복된 역사 세계를 살리는 한마디로 나라를 차지하는 그 응답들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2. 절대적인 기준, 절대적인 배경 - 오직 복음만
그러면 우리의 절대적인 기준, 절대적인 배경은 오직 그리스도만입니다. 오직 복음만입니다. 한번 받아 합시다. 우리의 아니 나의 절대적인 기준, 절대적인 배경은 복음만이다. 여러분 이 사실을 붙잡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 붙잡지 말고요, 진짜 우리의 절대적인 기준, 절대적인 배경은 오직 복음만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 여러분 가나안 땅을 차지하라 했습니다. 올라가서 차지하라. 너희 앞에 준비해 두셨으니 올라가서 차지하라 했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 따라 올라가서 차지하면 됩니다. 괜히 12명의정탐꾼 보낼 이유가 없어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가나안 입국은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이기 때문에 탈취하여서 얻게 되는 땅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12명의 정탐꾼을 보낸 것은 사실 아무 필요 없는 정탐꾼을 보내게 된 거예요.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이 아니었어요. 가나안 땅을 차지하라고 하니까 백성들이 그러면 그 땅을 우리가 먼저 정탐해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어느 길로 가는 것이 낫고, 어떤 성읍이 어떻게 생겼고, 그 안에 어떤 형편인가 우리가 봐야 할 것이 아닌가 가나안을 진격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나름대로 살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이야기들이 백성들 가운데 일어나서 그 이야기들을 모세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그것을 좋게 받아 들였다라고 22~23절에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각 지파가운데 대표되는 한 사람씩을 세워가지고 12명의 정탐꾼을 내어 보내게 되지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좀 전에 제가 말씀 드렸던 것 처럼 그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그들이 전쟁해서 탈취해서 얻어낼 땅이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약속하신 말씀이 이미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2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누가요? 하나님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땅이라는것.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다시 말해서 이미 조상들에게 주리라 약속한 땅이기 때문에 그 땅을 그냥 올라가서 취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치 모세가 죽고 난 이후에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해서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그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해서 무너뜨렸습니까? 아니예요. 화살 한 대 쏘지 않고, 창 한번 던지지 아니하고 그냥 일곱 번 돎으로 말미암아 여리고성이 무너졌어요. 왜냐?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기 때문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리라 약속하신 땅, 그것도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없이 성취되어지는 그 축복된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 땅을 그냥 들어가서 차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능력이나 자격이나 시험을 통과해야, 전쟁을 통해서 그 땅을 회복할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의 조건을 묻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조상들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니까 들어가서 취하라는 것입니다. 올라가서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무턱대고 올라간다는 것, 아마 우리 같아도 그랬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냥 무턱대고 올라가는 것 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땅이 어떠한 것인가를 봐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서 그 정탐꾼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정탐꾼들의 보고가 무엇이냐 결국은 하나님이 없는 ‘나’ 중심의 보고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수기 14장에 보면 밤새도록 통곡하면서 대책이 나오게 된 것이지요. 모세를 원망하면서 대책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한 장관을 세워가지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여러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중심한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면서 결국은 대책을 세우면서 그 대책 세운 말들 속에서 민수기14:27~28 거기에 보면 “내 귀에 내 말들이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 그래서 결국은 그들이 원망한 대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걸어온 모든 10명의 정탐꾼들과 함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되어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없고 나 중심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물론 우리가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복음이 약하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 준비 없이 하나님 말도 아닙니다. 준비하는 것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의 모든 기준과 배경은 오직 복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들어가라고 했지 언제 정탐꾼을 보내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요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기들 스스로 대책을 세운다고 세웠는데 여러분 한번 살펴보세요. 우리가 대책을 안 세워서 안 되었습니까? 우리 인생의 일에 있어서 대책을 안 세워서 안 되었습니까? 아니예요. 결국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이기 때문에 들어가면 되는데 그들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내 중심 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론 10명의 정탐꾼의 보고, 부정적인 보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그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의 보고는 정확했어요. 사실을 제대로 봤어요. 28절에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요. 우리가 어디로 가야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고,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자손을 보았다. 아낙자손은 거인 족속인데 정확하게 사실적으로 봤어요. 그런데 이 정탐하고 나온 이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27절에 나오지요. 장막 중에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므로...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가 ‘나’ 중심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 기준한 보고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였어요. 하나님이 크게 보여야 하는데 ‘나’ 중심에서 ‘나’ 기준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이스라엘 10명의 정탐꾼이 실패했던 부분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진노하는 것은 창세기3:5절에 말씀하신 대로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해석한 것 때문이라는 사실이예요. 그러니까 여기에 악한 사탄은 박수치면서 좋아할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도 대부분 여기에 빠질 수 있어요 사실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하면서도 현장에 가면 하나님은 안 보이고, 내 기준에 의해서 보고 판단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버트 폴검(Robert Lee Fulghum)이라는 주경 신학자 중의 한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삶을 사는 동안에 중요한 지식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그리고 중요한 지식은 고급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 지식에 있다.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여러분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순합니다. 복잡하지 않아요. 지난 주간에 우리가 말씀 받으면서 그렇게 말씀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진짜 이 한 해 우리의 신앙을 단순화 시키자. 말씀부터 붙잡고 모든 문제 속에, 사건 속에서 말씀부터 주시는 하나님이시니까 말씀부터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자 단순화 시키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진짜 기도하면 하나님의 손에 있는, 복음 안에 있는 미래를 알게 하실 것이다. 그 길 따라 우리는 가면 되는 것이다. 같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진짜 응답 받는 사람은 단순해요. 그런데 응답 받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복잡합니다. 뭔가 모르게 복잡합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일수록 다른 것 필요치 않아요. 젖만 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 진짜 응답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이면 끝입니다. 그런데 응답 받지 못하니까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그 중심에는 내 기준과 내 배경이 있는 거예요.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뭔가 복잡한 거예요. 복잡한 그 중심에는 내 기준이, 내 배경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정말로 여러분 여호수아와 갈렙은 열명의 정탐꾼과 다르게 똑같은 땅을 정탐하고 돌아 와서 그들은 자기 기준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이 크게 보였어요. 그래서 민수기13~14장에 보고할 때 보면 우리가 올라가자 그들의 보호자는 이미 떠났고 그 땅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무슨 말입니까? 철저하게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하나님 기준으로, 복음기준으로 봤다는 거예요. 내 기준으로 본 게 아니예요. 10명의 정탐군은 내 기준과 내 배경으로 봤지만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만 보여졌어요. 나 중심, 내 기준이 보여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은 승리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돈, 사람, 자리, 너무 크게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도 모르게 돈, 사람, 자리 어떤 배경들, 내가 갖고 있는 배경들, 너무 크게 보이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칭찬 받으면 좋고요, 좀 그렇지 않은 말 들으면 낙심하게 되고요, 그런데 칭찬 받으면 좋고, 그렇지 않은 말 들으면 기분 나쁘고 그 배경에도 내 배경, 내 기준이예요. 여러분 정말로 그리스도 복음 외에 모든 기준들을 다 내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흑암이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 복음만 기준으로 가직 있고, 배경 삼고 있다면 어떤 응답과 축복을 누리느냐? 30절입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리 앞서 행하시고 우리 대신 싸우시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세요. 우리가 오직 복음 기준으로...그리스도가 절대적인 배경가지고 살아가는 삶에 하나님께서 앞서서 친히 하나님이 싸우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우리의 싸움을 싸우면 물론 승리할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결국은 힘 빠지고 나중에 가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그 어떤 싸움도 우리가 싸워서 승리하는 것은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대신 싸워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백을 했지요. 하나님 나와 다투는 자와 하나님이 다투어주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하나님이 싸워 주옵소서.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절대적인 배경과 절대적인 기준을 복음으로 붙잡고 나갈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앞서 행하시면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신다는 사실이예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축복을 우리에게 예비해 놓고 계시느냐? 31절입니다. 복음기준으로, 복음 배경으로 나가게 될 때에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 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 가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참된 쉼을 얻기 바랍니다. 정말 절대적인 기준과 절대적인 배경의 이 복음이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 가시는 참된 쉼을 얻으세요. 왜 그렇게 고달프고 힘든 인생을 삽니까? 분명히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안으사” 라고 말씀했어요. 어떤 분이 자기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가만히 자기 뒤를 돌아보니까 모래 위에 네 발자국이 찍혀 있었어요. “아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축복된 걸음이었구나!”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두 발자국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때가 언제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가장 어렵고 힘들 때였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불평했어요. 아니 하나님이 동행하신다고 말씀해놓고 내가 가장 어렵고 힘들 때는 왜 나를 피하셨습니까? 왜 나를 떠나셨습니까?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를 떠난 것이 아니라 너를 업고 뛰었노라. 여러분 인생에 어렵고 힘든 부분이 있습니까? 오직 복음 기준하고 오직 복음 배경가지고 나아가게 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 가시는 그 축복된 역사들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복음 배경으로 기준으로 살아가게 될 때에 33절에 보면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여러분 먼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어떻게 역사하시느냐?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우리가 피곤한 줄 아시고 먼저 쉬게 하신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면서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데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자시니라.” 흑암을 결박하시면서 우리가 힘없는 줄 아시고 하나님께서 먼저 힘 쓰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 기준, 복음 배경 가지고 살아가는 자의 삶을 어떻게 하나님이 축복하시는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복음 기준, 복음 배경으로 살아간다는게 무슨 말입니까? 언약 붙잡고 기도하며 나간다는 말입니다. 그게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방법이에요.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이 안에 주어지는 강단의 말씀 붙잡고 그 모든 것들을 기도 속으로 가지고 나가면 그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이죠. 그게 바로 복음을 절대적인 기준과 배경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지면 우리도 모르게 어느 날 세계복음화가 되어 지고 어느 날 후대들이 살아나는 축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나라들을 차지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언약 붙잡고 나아가는 걸음 속에 밟은 모든 땅이 정복되어지는, 그래서 나라들을 차지하는 그 응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올라가서 취하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의 절대적인 기준, 우리의 절대적인 배경을 오직 그리스도 복음만으로 삼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현장에서 정복하고 다스리는 나라들을 차지하는 그 응답의 주역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년 1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신1:19-33)


서론: 2016년도는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길을 알고, 답부터 가지고 시작하면 됩니다. 말씀 잡고 모든 것을 기도로 가져가면 우리의 수준과 상관없이 나라들을 차지하는 응답이 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한 것을 회상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훈 삼아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을 축복을 다 예비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축복을 놓치거나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하셨기에(22절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우리는 먼저 자신을 살리고 후대와 세상을 살리고 나라들을 차지하는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1. 문제의 바른 진단 - 이 땅의 모든 문제는 복음과 관련(모르거나, 누리지 못하는)된 문제임
가. 자신이 중심인 “나 기준”으로는 절대로 안됩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만을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님(창12:1-3, 막3:13-15)
2) 내 기준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함으로(선악과 창3:22-23) 2가지 문제 가운데 결국 망하게 됨(잠14:12)
나. 세상 배경으로 살아가도 실패하게 됩니다.
1)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명예와 권력, 물질이나 칭찬을 배경으로 삼고 살아감(창3:6)
2) 하나님의 자녀로서 측복과 응답조차도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 끝까지 쓰임받아라

2. 절대적인 기준, 절대적인 배경 - 오직 복음만!!
가. 10명의 정탐꾼은 철저히 실패하였습니다.
1) 이미 주신 땅이었는데(신1:21) 하나님이 없는 나 중심의 정탐과 보고를 하였음
2) 원망과 불신앙대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가나안 땅도 차지하지 못하며 죽게 됨 (민14:27~28)
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1) 하나님만 보여지니, 승리할 수 밖에 없었음 - 그들의 보호자는 이미 떠났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2) 복음 외에 모든 기준은 내어버려라! - 이때 흑암이 무너짐
다. 정말 복음만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
1) 하나님께서 그동안 하셨던 것처럼 이제도 우리를 위해 대신하여 싸우심(30절)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처럼 안고 다니시며 참된 쉼을 주심(31절)
3) 하나님께서 먼저 역사(장막을 치고 불기둥 구림기둥으로 인도하시며 흑암을 결박)하심

결론: 복음을 기준으로 배경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바로 언약 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행입니다. 우리가 한걸음 한걸음 언약 잡고 나간 걸음 속에 밟은 땅을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 후대들을 살리는 가운데 나라들을 차지하게 할 것입니다. “올라가서 취하라!” 한주간 이 응답의 주역이 되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의 모든 문제는 복음을 모르거나 누리지 못함으로 온 문제인 것을 알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 기준’과 ‘세상 배경’의 모든 각인과 뿌리와 체질을 철저히 바꾸고 오직 복음으로만 절대적인 기준, 절대적인 배경이 되길 소원합니다. 한주간 언약 잡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심을 체험하고 참됨 쉼과 인도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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