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잃어버린 세 가지(박지온 목사)
2017-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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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목사
“잃어버린 세 가지”
(엡1:3~14)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 엡1:3~14

■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감사합니다. 연약한 종들을 통해서 세계복음화의 역사를 오늘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찬양과 영광을 높이 드립니다. 주의 종들에게 힘이 없는 것을 아시고 오늘도 성령의 역사 속에 인도 받게 하시고 이 은혜 속에 감사함으로 함께 모여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이 예배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큰 은혜의 역사로 각 심령 위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남미에 가 계시는 우리 담임 목사님께 은혜 입혀 주시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가는 곳마다 함께 하셔서 설 때마다 성령의 놀라운 축복과 역사로 임하여 주시고 변하는 축복의 역사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건강으로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잃어버린 세 가지를 찾자고 했는데 원래 설교를 저는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못합니다. 그냥 시작하면 그 속에 다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 가지를 찾으려면 여러분이 찾아야 합니다. 저는 그걸 잘 못하니까 그리 아시고 메시지 중에서 찾아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사실 다음 주에도 제가 설교를 할 수 있으면 오늘 어린이주일 설교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습니다. 설교를 늘 하는 게 아니고 어쩌다가 한 번 오는 기회에 날마다 렘넌트이니까, 매일, 매주일 렘넌트 아닙니까? 렘넌트, 렘넌트, 매주 들으시고 오늘은 하나님이 은혜주신 대로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강단에 늘 서면서 목회자로서 평소에 느끼는 것이 좀 있습니다. 오늘은 음악에 대해서도 조금 말씀이 나와야 되겠고, 음악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앞에 서서 감히 하기가 좀 힘들지만 목회자로서 오늘날 찬양에 대한 느낌과 우리 교회에서 찬송부르고 찬양하는 부분에 대해서 조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그저 마음에 담으시고 하나님이 마음 속에 심어주시는 대로 따라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전에 요즘 어떤 분이 예수를 믿고 특별히 복음으로 되었다 하면 참 평안이 있어야 하는데 복음이 되었다 하는 그 순간부터 유목사님 메시지를 따라간다면 전도에 부담이 많다, 그래서 뭘 잃어버리느냐 하면 가장 중요한 평안이 없어져버린다고 합니다.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평안이 없어야 합니다. 복음을 받고 복음의 깊이를 깨닫고 복음의 가치를 알면 알수록 짐이 됩니다. 뭘로? 전도해야 할 짐이 됩니다. 그런 감동이 없다면 여러분, 그것은 진짜 복음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은 평안이 없다고 하면 진짜 복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진짜 여러분, 복음을 깨닫고 확신 가지는 만큼 여러분은 짐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 내 주변에는 죽어가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에도 죽어가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짐이 된다는 정도가 아니고 어떤 이는 가정에도 그렇고 일가친척 속에서도 그렇고 만날 때마다 죽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메시지로 바꾸든지 아니면 감동을 해서 어떨 때는 메시지를 하다가 한 방 쥐어박고 싶은 생각도 들 정도로 그렇게 간절한 것이 여러분들에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평안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또 복음을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여기 있는 분들이 복음을 받았다면 아마 큰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참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교인들의 현실이냐? 성경을 보면 그게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바울도 로마서 9장 1절~2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그랬습니다. 도대체 바울이 무슨 큰 근심이, 큰 고통이 있느냐? 그렇게 평안하고 예수 믿는 전도자인데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 바울의 경우를 보면 옥중에서도 기뻐하고 세계복음화를 하는, 내가 아는 사명자 중에서 바울만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을 잘 못 보겠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바울이 무슨 그런 큰 근심이 있고 그런 고통이 있느냐? 이 다음 구절을 보면 3절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무슨 말인지 당장 이해가 되지요? 내가 이 복음을 받았지만 이 복음을 안 믿는 골육친척, 일가친척들, 그리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 또 가족들이 복음을 못 받고 죽어가는데 그들을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 앞에, 내가 오히려 하나님 앞에 끊어진다 해도, 그럴지라도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좋겠다, 말씀이 전파되면 좋겠다 하는 전도자의 진실한 고백입니다. 참말로 하노니. 거짓말을 아니하고. 바울이 언제 거짓말했습니까? 여기서 참말을 한다고 하면서 그의 고통을, 그리고 신앙의 고통을, 특히 복음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친척, 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문제 때문에, 또 전도의 문제 때문에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오히려 구원 받은 삶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구원 받았으면, 또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지는 근심이요 고통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또 보면 모세에게도 출애굽기 32장 32절을 보면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도대체 모세가 한 말이 무슨 말입니까? 왜 생명책에서, 하나님이 축복의 기록 속에서 나를 지워버리라고 합니까? 말하자면 지옥에 가겠다 그 말인데 왜 그런 말을 했느냐? 그것도 역시 이스라엘을 향해서, 자기 동족을 향해서 그들을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면 차라리 내가 죽더라도 그들이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나는 좋겠다, 모세의 고백입니다. 얼마나 큰 복음에 대한 고통이며 복음을 가진 자의 고통입니까? 우리가 쉽게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을 우리 자신이 또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아마 요즘 많은 경우 예수 믿으면 평안하다, 물론 평안해야 합니다. 그 평안이 이 고통 없는 평안은 아닙니다. 복음 증거하면서 내 이웃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를 보는 것에 대한 고통이 없다면 그 평안은 헛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늘도 이 말씀이 여러분 가슴 속에 담겨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다락방하던 사람들이 많이 따라갔습니다. 한때 미국 전역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다 따라갔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유목사님도 그런 말씀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전도학에서 그런 말씀을 한 것 같습니다. 내가 전도가 멀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참 무서운 얘기입니다. 전도에 관심이 없다면 하나님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런 메시지를 주신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다 전도 때문에 고민하고 내가 바울처럼 죽어야 하겠다는 식으로 말할 것은 없으나 가슴 속에 구원의 확신이 있는 만큼 이런 마음이 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그런 분이 있다면, 참 전도 못해서 고민이라면 정상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전도가 안 될까? 정상입니다. 고민하기보다도 그것은 성경에서 평안과 함께 오는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리 아시고 오늘 너무 그렇다고 해서 고민하고 그럴 것까진 없습니다. 대전도자 바울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는데 하물며 나 같은 인생이 그런 작은 고민조차도 없다면 그것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전도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 드러내 놓고 하나님, 이런 고민이 좀 있습니다 하면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고민을 안 하는 것 같다, 아마 하나님은 이런 대답을 하시지 고민 많이 한다는 소리는 별로 안 하실 것입니다. 진짜 구원의 확신이 있는 만큼 이 고민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말씀 속에서 보면 늘 이것을 강조라기보다 저는 평생의 제 신앙의 고백이기도 하면서 가장 안 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라 하면서 제일 못하는 부분이 또 이 부분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러분도 제일 안 되는 부분이 이 부분이고 하나님의 주권이라 하면서 고집만 키워왔는데 실제로는 이게 잘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도록,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인도 속에 맡기도록. 늘 성령 인도 성령 인도 그러는데 성령 인도 받지 않는 삶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뭔가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당신은 사단이 주는 마음이라 그럽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잘은 모르겠는데 어찌 성이 나던지요. 왜? 나는 작고 큰 일을 잘 하나 못하나 남이 보기에 비뚤게 하나 바로 하나 누구 인도를 받습니까? 성령 인도 받는다고 확신하고 살았거든요. 사단의 인도를 받고 있다면 이건 기분이 나쁜 정도가 아닙니다. 만약에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그건 아닙니다. 여러분, 왜냐하면 나는 이미 본성적으로 사단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이 나의 본질이 되어버렸는데 사단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도 받는다고 하면 오히려 어떤 면에서 그 사람은 성령의 인도보다 그 분이 사단의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성령모독죄입니다. 왜? 여러분이나 저나 사단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본질상. 속지 마십시오. 또 우리 교회에 영적 문제가 많이 있다고 하는데 영적 문제, 그것도 문제입니다. 왜? 복음 들어가면 영적 문제라는 것은 벌써 끝났습니다. 왜? 성령 인도 받는데 뭐 그리 영적 문제가 많습니까? 제가 이런 말을 이렇게 자꾸 자신 있게 말하고 싶은 이유는 제가 파킨슨병 때문에 너무, 그땐 완전히 정신병자였습니다. 그때 세강병원에서 투석할 때였는데 아마 교회에서 메시지를 들으면서 30분을 가만히 못 있었습니다. 이건 가만히 있을 수가 없고 어쨌거나 왔다갔다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이건 도저히 무어라 표현이 안 됩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건 영적 병이다, 아마 노이로제 같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제가 경대병원에 있을 때에 유목사님한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노이로제가 좀 심한 것 같습니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유목사님 얘기가, 왜 이 얘기를 하느냐 하면 이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목사님 절대로 목사님은 노이로제에 걸릴 수가 없습니다. 이미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과 사탄이 함께 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확실합니다. 내 안에 함께 있을 수가 없어요. 사탄은 놀랄 정도가 아니고 같이 베길수가 없어요. 혹시라도 내가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많은 위로보다도 더 확신 가졌다는 말 보다도 굳게 이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결국은 파킨스씨병이 떠나버렸어요. 약물중독이란 것이 판정되고 곧 죽을 지경인데도 퇴원하라고 그러더라고요, 집에 가서 일주일이 되니까 아! 이게 아니구나 그것도 삼성병원까지 가서 소화제 하나 먹고 다른 병은 안 나오거든요. 그때 똑같이 자기도 노이로제라고 그러더라구요. 한번 딱 먹는데 자기 생각도 그래요. 도저히 이것은 아니다 그래서 종일 잤어요. 눈만 깜고 계속 잤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먹었으면 큰일날뻔 했어요. 혼미해져서 정신이 나가버리더라고요. 이것을 계속 먹으면 병원에서 그러더라구요. 그런 줄 알았지요. 문제는 여러분들 지금 사탄에게 많은 경우 자꾸 속아요. 내 안에 성령이 계신다 하면서도 사람의 말에 속고, 저도 그래요. 받아 합시다. 나는 속고 살았다. 뭐에 속았어요. 사탄에게, 귀신에게...속았다 싶으면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데 확실한 계획을 세우시고 인도하시는구나 이게 안되면요, 자식들이 뭐라고 말해도 하나님의 저게 나를 배신하는구나 저것이 전에는 안그랬는데 내 품을 떠났다고 그러는구나 멀쩡한 것도 아닌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데 그렇게 생각이 든다 이겁니다. 그것도 속는 것입니다. 오늘도 당신에게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더 좋은 생각으로 내 환경이 어떠하다 내 지금 다가온 문제가 어떠하다 그 사건 통해서 더 좋은 역사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속에 일어나 축복의 계획입니다. 그 속에서 지금 살고 있어요. 여러분 얼굴이 활짝 피 고 감사가 안 나오고 이 축복속에 있는 자들에게서 응당하게 나와야 하는 것이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24시 기도한다. 나는 그것은 잘 몰라요. 저는 그런 기도 속에 살아보지를 못했어요. 지금 기도 속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문제와 사건과 일들 속에 늘 기도를 하니까 그런 것을 24시 기도라고 생각을 못 했으니까 그리고 심지어는 전에도 한번 이야기 했습니다마는 작은 것이라도 한번 잃고 나면 중간에 벌써요 분명히 내가 그 근처에서 잃었는데 찾으면 없어요. 그러면 무엇부터 하느냐 하면 기도를 해요. 그런데 신기하지요? 기도하면 바로 앞에 보여요. 나는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인도받고 그렇게 살았던 배경이 24시 기도인지 모르지만, 나의 삶이 또 어떤 것이 여러분의 삶이 아마 똑 같을 겁니다. 왜? 복음의 확신이 있고,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기도하게 되어 있어요. 저절로...확증이 있는 만큼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가 없다면 구원이 없는 사람이지요. 왜? 기도하면 이루어 주시니까 또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니까? 그것을 내가 믿어서 확신가지고 한다 그전에 내 본질이 내가 자연적으로 알게 된 믿음입니다. 이것이 흔들린다고 하면 불신앙이지요. 그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어떤 면에서 어려운 문제를 당했다 하면 기도하지요. 멀쩡하게 기도안하고 잘 살다가 어려운 문제 있으면 기도합니다. 그렇지요? 새벽기도 안 나가던 사람도 새벽기도 나가고 그렇더라구요. 구원의 맛만 봐도 그런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확증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이런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말로도 빌립보4:4~7절에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기뻐하면서 그냥 허허허 웃습니까? 기뻐하면서 나오는 것이 뭡니까? 기도이고, 찬송입니다. 찬양하는 것은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찬양을 잃었다, 찬양이 없어졌다. 그러면 좀 문제가 있어요. 누구의 속임수에 빠졌는지, 누구의 도움으로 지금 살아가는지 여러분 지금 잘 판단해야 되요. 왜? 항상 기뻐하라!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흥얼거림이 평소에 내가 감동받은 찬송이 있어야 나옵니다. 저는 늘 찬양을 인도하시는 장로님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찬송을 늘 성가대에서 잘 불러요. 오늘도 제가 한참 방황할 때에 그 찬송을 불렀기 때문에 방황할 때에 이 찬송이 나왔지요. 그 찬송 중에 나의 갈길 모르고 방황하잖아요. 그게 언제냐 하면 한참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지나서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산에 돌아다니면서 고함지르면서 방황할 때에 이 찬송을 많이 불렀어요. 갈 길 못 찾아 그것도 어떤 면에서는 기도입니다. 그것이 기뻐서 하는 게 아니고 슬퍼서 하는 것이거든요. 진짜 갈 길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현재로 안 믿는 사람들은 얌전하게 잘 사는데 나의 입장에서는 믿는 자 입장에서는 특별히 타락이었어요. 그때 술은 절대 지옥 간다고 배울 정도로 술을 안 먹어야 되는데 요즘은 술을 좀 먹어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왜? 술 먹고 교회 나왔어도 복음을 확실히 붙잡으면 되어요. 그렇다고 또 집에 가서 목사님 말씀 들으니까 술 먹어도 된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알아야 될 것은요, 복음이 확실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구원의 확증이 있으면 술 먹는 기쁨보다도 복음 속에서 노래하는 기쁨이 더 좋아요. 기도하는 기쁨이 더 좋아요. 그러면 뭐가 떨어져요? 주태백의 습관이 저절로 없어져 버려요. 난 이런 고백을 많이 들었거든요. 오늘도 술이 땡긴다 그러면 괜찮아요. 구원 확실히 받았다고 하면 그래도 되어요. 그러나 구원의 확증이 얼마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저절로 구원의 기쁨이 넘치기 때문에 술 먹는 기쁨보다 더하기 때문에 ..이 은혜가 나에게 기뻐하며 감사하며 나오는 것이 찬양이고, 구원의 감사이고, 구원의 기도입니다. 찬송이 저절로 나오지요. 내 속에 평소에 불렀던 찬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인된 찬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떤 면에서는 문화라고 그러는데 각인된 찬양도 문화입니다. 그런데 노래도 문화이고 지금 현재 젊은이들이 많이 하는 점술로 통해서 나오는 춤도 다 문화라고 그러지요. 제가 들었는데 하긴 뭐 동양철학과를 하겠다고 한 사람이 할 말은 없지만은 옛날에 한국무용 있잖아요. 전공한다고 하면 전부 점쟁이 되어야 되어요. 전통 무용이 딴 것이 없어요. 이상한 영을 받아서 춤추는 것이 전통무용이예요. 그러니까 그것을 전공하는 대학에서 전통무용 한다고 하면 다 점쟁이들이 하는 춤을 추어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래요. 제가 전공을 안하고 안 가봐서 잘 모르지만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날 찬양에 대해서 중요한 흐름이 좀 있어요. 내가 복음 받았다. 하나님의 주권이 내 안에 이루어진 만큼 뭐냐 하면 인제 말한 것처럼 다가오는 환경, 일, 사건 모든 문제는 나와 상관이 없어요.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더 좋은 축복과 환경으로 앞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 에베소서1:5절 말씀을 보면 “너희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심이니라”그랬거든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 확인되고 구원의 역사가 확인될수록 주님이 곧 오실 것 같아요.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지나쳐서 강조하면 종말론이 되어요. 옛날에 예수님이 몇 월 몇 일 날에 오신다하는...이것은 다 잘못된 사탄의 역사예요.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세계가 복음 받는 날 누가 오신다고요? 그리스도가 오신다고 했어요.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잔인하지가 않아요. 전 세계가 복음화 되도록 하나님이 환경과 모든 사건을 인도하시고 그제야 끝이 오리라 했어요. 지금은 아직은 아니예요. 전쟁, 지진 , 우리나라도 생전 안 나던 지진이 강도 6까지 나오고 굉장한데 제가 TV를 보니까 아마 종말이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건물이 흔들리고 건물이 못 서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복음 전할때까지 복음화 되기 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십니다. 빨리 돌아오라고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랬거든요.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기도로 전도를 위한 기도도 저절로 이루실 것이니까 감사함으로 찬양에서 기도가 빠지면 그것은 찬양이 아닙니다. 인도도 기도가 빠지면 그런데 우리나라 요즘의 젊은 사람들의 작곡하고 하는 그런 배경이 미국같은 배경하고 또 달라요. 예를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배경이 원래 무속배경입니다. 전부 숭배하고 점쟁이 찾아가고 좀 연결된 사람들 없는 집이 거의 없어요. 예수를 믿어도 신비주의자, 나도 좀 그런끼가 좀 있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열심히 믿는 사람들은 그런끼가 있어요. 사람을 보면 그때만 되어도 관상이 보여져요. 슬쩍 뭔가 말하면 그런게 맞아요. 천만에 몰라요. 착각하게 되는 그런것들이 쉽게 말하면 영이 깨끗하면 깨끗하지 무엇입니까? 기도를 많이 하면 자연적으로 그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감각이 좀 오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배경은 무속 배경이기 때문에 연구하고 작곡을 잘 한다해도 어디로 빠지기 쉬우냐? 배경을 따라 빠지기 쉽습니다. 제가 보면서 뭘 느끼냐하면은 미국같은 경우에는 이것이 민요입니다. 들려요? ~ 이게 뭔지 압니까? 미국 민요입니다. 민요라는 것은 뭔가 오래전부터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혼이 담겨있는 영적인 문제가 담겨내려 오는게 있어요. 미국은 원래 청교도들이 유럽에서 미국 새로운 신대륙을 발견하여 처음 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청교도들 아닙니까? 기독교인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오래 내려오면서 지역마다 불리는 노래가 있습니다. 스와니 강입니다. 강을 보면서 부른 노래가 민요로,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우리나라 같으면 아리랑은 같은 곡입니다. 이 곡은 무속배경에서 나온 곡 아닙니까? 우리배경은 전부은 무속 배경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오늘 민요를 들었지만 찬송같이 들려요. 여러분 찬송처럼 안 들립디까? 미국 민요를 잘 들어요. 들으면 괜히 편안해 지고 기분이 좋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미국의 배경은 신앙이 어떤 사건 신앙의 역사가 감동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신앙고백이 나오잖아요. 이 병이 걸렸다 나았다 저절로 고백 속에서 노래가 나옵니다. 기도도 나오고, 가사는 내가 갖고 있는데 노래를 만들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전에 들었던 노래 곡조가 각인이 되어 있잖아요. 이런 찬송가들이 많아요. 저녁에 상당히 오래 늦게까지 들어요. 늘 찬송을 듣는 것 같아요. 그런에 우리나라 배경은 안 그렇고요. 우리 젊은 애들이 노래를 만드는 배경이 모르겠어요. 얼마나 기독교 가정에서 찬송 속에서 1, 2, 3대도 힘들잖아요. 거의 무속 배경이고, 점술 배경입니다. 자연적으로 그들에게 흐르는 배경은 무속배경이고 점술배경입니다. 그런데 류목사가 보통 가사를 내어놓잖아요. 그 가사 따라서 곡을 만들어요. 거의 젊은 청년들이 전문적인 최고로 발동해서 곡을 만드는데 좀 어렵습니다. 따라하기 좀 힘들고, 그래서 상도 타고 그러는데 배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곡을 만들어서 찬양곡이 나왔잖아요. 이것이 오래 안가요. 말씀이 계속 흐르잖아요. 한때 좋다고 부르다가 없어져 버려요. 요즘 그런 나 같은 경우에는 잊어버려요. 늘 새로운 노래예요. 그리고 안 들었던 노래, 내가 못 따라 불러서 그러는지 이것이 기억이 안 되어요. 그리고 또 기도를 할 때 보면 그것을 보고 강의를 해요. 여러분 이 습관이 참 안 좋은 습관이예요. 그 배경이 설교예요. 내가 고백이 아니고, 일종의 설교예요. 설교보다 더 길어요. 다 읽어야 되니까...기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의 고백이고 내가 지금 느낌에 대한 간증아닙니까? 그것을 보고 혹시나 줄 잃어버릴까 해서 3분 요즘은 1분이 좋아요. 여기와서 강단에 서서도요. 설교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 같아요. 그날 설교하신 목사님을 위해 불말과 불병거의 역사가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되도록 그 시간 말씀을 위해서 억지로 하지 말아요. 평소에 저의 기도를 안하면 가증스러워요. 하나님이 보실때에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평소에 안하던 것이 기도시간에 합니까? 평소에 말씀도 잘 안들으면서 기도할때에 내가 혹시 그것을 썼거든 외우세요. A4 용지에 외우기 쉬워요. 진심으로 하나님 내 간증이 되고 내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처럼, 하나님의 계획따라 힘들다 싶어요. 짧으면 더 좋겠는데 여러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그런 것이 흐름이 되고 있어요. 기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천주교에서 그러다가 의식에 그쳤어요. 기도라는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중한 시간 강단으 정말 소원을 담아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대로 1분이라도 좋습니다. 생각하면 잠깐 써서 나오면 그것도 구원 못 받은 구원 못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그 자식 아니예요. 자기 아버지 아니든지..정말 여러분이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정말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너무 길어서 탈이지, 그러면 너무 오래할까 싶어서 3분이 길더라고요. 1분만 하세요. 이렇게 고개를 들고 하세요. 바로되면요 교회는 부흥되지 말라고 해도 부흥되어요. 여러분의 기도가 열심히 개인기도하면 그런데 참 구원의 깊이가 있으면 있을수록 안 나오면 그것은 성도가 아니지요.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믿어지면 하나님이 더 좋은 축복과 은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불신앙 해 버려왜 실패합니까? 실패인줄 알기 때문에 힘들 정도가 아닙니다. 무너져요. 나만 무너지느냐?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주변이 무너지고, 사건이 무너집니다. 만남이 무너집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서면 모든 것이 세워집니다. 아! 오늘도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만났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사람을 만났구나 밉든 곱든 여러분 상관없어요. 만나면 달라집니다. 저 미운놈 또 왔구나 하지말고 사람보면은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이구나 이렇게 보면 좀 달라집니다. 아마 사람 모임에 특별히 교인 생활에, 대인관계가 어려운 배경이 그것입니다. 왜 유달리 뭐라고 할까요 사람 성격이 그래요. 모난 성격이 좀 있어요. 이럴때가 있을지 몰라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다고 생각하면 관계가 끊어지는게 아니라 관계가 더 확실해 집니다. 저는 형수씨를 평소에 싫어했다고 보다는 차별한다고 좀 안 좋아했어요. 재밌지도 못하고 말 자체가 꼭 속 끌는 소리 내놓았지 다정하게 그렇게 못해요 남편에게도 조심해야 하고 한마디 한다는게 애교를 부린다는게 잘못될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이것만 바로잡으면 되어요. 복음이 들어가면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복음 받을 남편이다. 저 사람도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다. 하나님이 나를 만나게 했다고 달라지잖아요. 그러면 애교가 나와요. 다른데서 나오는게 아닙니다. 그러면 정말 기술로 애교를 하면은 할수록 이상해 집니다. 정말 복음 안에서 성령이 역사하면 말씀이 아름다워집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찬양 부르는 사람들 기도하고 찬양을 하세요. 그러면 안하고 하는것과 다릅니다. 왜냐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요. 어리든지 나이가 많든지 앞에서서 일단 무엇을 하든지 기도하고 나오세요. 그것만 되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뭔가 가사를 알려주고 하세요. 혼자 하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잖아요. 하나 가지고 10번을 해도 괜찮습니다. 아는 가사가 나오면 은혜가 되어요. 모르는 가사는 100번해도 은혜가 안되요. 차라리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내가 아는 가사이면 은혜가 되어요. 모르는 가사는 옛날의 금잔디 알면 나도 모르게 뭔가 가사라도 오늘 제가 말씀 한 것처럼 그게 은혜가 되어요. 가사도 모르고 곡도 모르는데 아무리 앞에서 부르면 무엇 합니까? 앞에 정말 좋은 가사라고 싶으면 우리가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저절로 나도 모르게 각인이 되어 있어요. 그것이 문화입니다. 그렇게 흐르면 교회 문화가 실제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승리하게 됩니다. 나이든 사람들이 찬송이 왜 그렇게 좋으냐 하면 가사도 거의 들었거든요. 내가 아니까 들었으니까 은혜가 되는거죠. 이장희 목사님이 썼는데 그때 참 어려울때입니다. 어느 날 나는 알았네. 다 같이 한번 불러봅시다. 어느 날 나는 알았네. 주가 그리스도 되심을 , 어느 날 나는 알았네, 길과 진리 생명 되신 그분을 ...그가 내 안에 , 내가 그 안에 있음이 항상 믿어질 때 나를 둘러싼 모든 어둠의 그늘들은 파도같이 물러가네~ 생명 있는 날까지 만민 중에 외치리 예수는 그리스도 호흡있는 그날까지 열방 중에 찬양하리 예수는 그리스도!
얼마나 좋습니까?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우리 교회가 핍박이 들어오고 그때 어려운 때에 이장희 목사님이 이 곡을 쓰신 겁니다. 요즘에 왜 잘 안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교단인데 이곡을 찬송가에 넣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했어요. 이장희 목사가 허락을 했어요. 이 곡이 가사 그대로 찬송가에 들어갔어요. 정말 내가 알고 그 곡에 은혜 받았다고 나도 모르게 이 찬양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스러운 계속 불러요. 완전히 인지가 되도록 계속 불러줘요. 곡이 마음에 각인되면 어디서든지 자기도 모르게 이 찬양이 노래가 되어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문화로 부흥되고 그리고 이 찬송으로 내가 각인되고 참 감동이 되면 그 찬송이 나옵니다. 모든 문제들이 회복되는 기쁨으로 충만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5월 7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목사
잃어버린 세 가지
(엡1:3-14)

서론: 복음을 알고 누릴수록 전도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부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도 가지고 있었던 부담입니다(롬9:1-3 내 주위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더라도).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출32:32 그들의 죄를 사하지 않으면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림). 구원의 확신이 있는 만큼 전도에 대한 고민 속에서 살게 됩니다.

1. 하나님의 주권 – 성령인도 받는 삶
가.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는 삶 – 나의 모든 것을 주장(나의 본질)
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때
1) 영적 문제 – 복음 속으로 들어가면 끝
2) 문제, 사건, 환경 – 더 좋은 것으로 역사(축복의 계획)
3)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 역사 하시는 과정
2. 구원의 확신 – 기도가 되어지는 삶
가.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당연히 나오는 것(빌4:4-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나. 다가오는 환경, 사건, 일 – 더 좋은 것으로 인도
1) 빌4:5 나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함, 주께서 가까우심 – 모든 사람들이 복음 듣는 날 예수님이 오심(전도를 위한 기도)
2) 빌4:6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 하나님이 이루어 가심
3. 표현 – 기도와 찬송
가. 찬양 속에 항상 기도가 포함 되어야 함 – 영적 배경을 가질 때 살아남
(우리나라 무속의 배경, 미국 신앙 역사의 배경)
나.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질 때 보는 눈이 달라짐(신앙생활, 인간관계)


결론: 모든 일을 하기 이 전에 기도가 나와야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됩니다. 찬양의 가사를 생각하면서 찬양 해야 됩니다. 그러면 가사가 각인 되고 은혜가 되어집니다. 이 때부터 문화가 되어집니다. 찬양으로 각인 되어지면 생활 속에서 찬양이 나오고 참된 기쁨이 나오게 됩니다. 이 축복 속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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