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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십자가로 주어진 은혜
(골1:20-23)
서론: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믿습니까?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신화적인 하나님으로, 위로를 주는 하나님으로 그냥 하나의 종교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적존재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문제와 하나님을 떠나게 한 사탄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앙고백을 정말로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내 마음으로, 영으로, 인생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근본적 변화가 있게 됩니다(고후5:17).
1.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게 하소서.
•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찾게 하소서.
나. 하나님이 강조하신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소서(요20:31).
• 예수가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게 하소서(요1:12).
• 십자가의 능력이 믿어지고 누려지게 하소서.
• 십자가의 복음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하소서.
다. 하나님이 아담 때부터, 창세 전부터 강조하신 것을 붙잡게 하소서.
• 아담에게 강조하신 여자의 후손을 붙잡게 하소서(창3:15, 창3:21).
• 유월절 어린양의 피 붙잡게 하소서.
• 날마다 나의 불신앙을 못 박게 하소서(고전15:31, 갈2:20).
2.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
가.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소서(골1:20).
•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과 화평하게 하소서(계3:20).
나. 땅에 있는 것과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리스도로 회복되게 하소서.
•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게 하소서(히12:2).
• 하나님 앞에 축복 누릴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골1:22).
결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인생에 답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도 모르게 관계가 무너지고, 가정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십자가가 나의 인생에 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월 2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십자가로 주어진 은혜”
(골1:20~23)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아멘.
골1:20-23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 황무한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십시다.’, 오늘 예배하는 가운데서 우리에게 한 가지만 남으면 됩니다. 바로 십자가로 주신 그 은혜, 그것만이 우리 마음속에 남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세례 받은 분들이 있고요, 또 유아세례, 또 입교에 임한 우리 렘넌트들이 있는데 이들의 마음속에서도 사실은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과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또 십자가로 주신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의 모든 삶에는 흑암의 역사들이 무너져 내리게 되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응답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축복된 응답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세례 받은 분들, 또 입교 받은 우리 모든 학생들, 유아세례, 우리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로 십자가로 주신 그 은혜, 그 풍성함 속에 오늘도 깊이 들어가고 우리 모든 성도들 또한 그 은혜를 확인하고 누리는 최고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십자가로 주어진 은혜’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을 믿습니까? 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느냐 하면 누구나 머뭇거리지 않고 ‘아멘, 네 믿습니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아요. 마지막 때일수록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부분들입니다. 갈수록 믿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세상의 문제들입니다.
지금 어떤 면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던 유럽교회,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한때 종교개혁을 이룰 만큼 기독교의 급성장이 이루어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교회, 교회들마다 문을 다 닫아버리고, 박물관이 되어버리고, 술집으로, 나이트클럽으로 바뀌어지는 그런 상황들을 맞이했습니다. 교회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머리 허연 늙은이들이, 연세 드신 분들이 교회를 지키고 있는 그러한 실정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젊은이들은 교회를 다 떠나버렸습니다. 오늘 유아세례 받은 것처럼, 그 유아세례를 받은 그 젊은이들이 이제는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내가 어릴 때 모르고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그 유아세례 물러줄 수 없느냐, 유아세례 취소할 수 없느냐? 그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 지금 유럽교회의 현실들입니다.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데, 그들이 믿는 믿음은 신화적인 하나님을 믿고 있고, 또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고, 뭔가 종교는 하나는 가져야 되니까, 그 여러 가지 종교 중의 하나로 교회를 다니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 실정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지, 나와 관계있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보지 않는다 라는 말이에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기 때문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뭐냐? 예수님의 부활조차도 믿지 않아요. 그래서 한 때 독일 중심으로 해서 나온 신학 중의 신학이 사신신학이라고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 라는, 사신 신학이 일어나게 되었고요, 또 부활을 믿지 않으니까 심지어 뭐라고 이야기 하고 있느냐? 예수님의 부활은 정신적인 부활이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이 정신적인 부활에 그쳤나요? 아니잖아요. 영·육간의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을 놓고, 안 믿으니까 그들이 안 믿는다는 말은 못하지만, 그러니까 뭐라 하느냐? 정신적인 부활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하나님을 안 믿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안 믿는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신학자들은 모세오경을 신화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성경을 신화라고 보는데, 모세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모세오경 아닙니까? 그 중에 특별히 창세기를 보면 인간의 창조와 함께 인간의 모든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창세기에 세밀하게 살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모세 오경을 믿지 아니하니까, 단순히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안 믿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 가진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도 안 믿고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적문제가 왔다는 것도 당연히 안 믿고요, 그래서 결국 우리를 실패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이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우리를 무너뜨리는데 이 사탄의 존재조차도 사실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개인의 성도들의 입장을 보았을 때에 신앙고백을 정말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정말로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내 마음으로, 내 영으로, 내 인생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인 것입니다. 들어서는 알고 있어요, 들어서는 알고 있는데 진짜 내 마음과 영과 내 모든 몸을 드려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의 고백자가 얼마나 되느냐? 입니다.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고백하면 흑암의 역사들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내가 과연 얼마나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고백하느냐 입니다.
어제 우리 세례 문답이 있었지요. 사실은 세례문답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 뭡니까? 왜 세례를 받느냐? 내가 지금까지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내가 살아왔는데, 내 욕심과, 내 계획과, 내 생각들 가지고 내가 살아왔는데, 지금부터는 나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신앙의 고백을 공식적으로 교인들 앞에서 선포하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그냥 단순히 우리가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세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축복인데,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 사실은 근본적인 변화들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씀했어요. 그리스도로 안에 있는 자는,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재창조된 축복 가운데 서 있는 것이 우리의 위치입니다. 정말로 그리스도 알면 모든 것 끝나버리는데, 얼마나 그리스도 제대로 알고 신앙의 고백을 하고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고, 또 뭔가 잘 풀리면 하나님이 있는 것 같은데, 뭔가 갈등이 일어나고, 어려움이 있고, 문제들을 당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여러분 갈등과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숨은 축복들을 찾아내야 되는데,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 살아 계신가? 하나님 안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오늘 두 가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1.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먼저는,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지고 근본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필요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설교를 듣기를 원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설교를 얼마만큼 잘하느냐에 따라 교회 성장도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어떤 면에서 서울 같은데 보면,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노동하는 그런 지역에 있다 보니까, 교회가 그런 쪽으로 메시지를 맞추다 보니까 위로받기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요. 물론 필요한 겁니다.
또 너무나 현실적으로 어렵고 절망적이니까 뭔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듣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그것도 잘 못 되었다, 잘 되었다 아닙니다. 맞는 겁니다. 또 병든 사람은 나름대로 우선적으로 병이 치유되는 것이 급한 것이지요. 그래서 병 치유 받는 그런 쪽으로 메시지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라는 거에요.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젊은 세월을 처절할 만큼 지친 날들을 보냈습니다, 노예 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요셉은 ‘나를 하나님이 언제 여기서 빠져나오게 할까?’, 그걸 생각하고, 그걸 기도한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요셉은 언제나 ‘언제쯤 되면 나도 허리 펴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잘 살겠지?’, 그런 생각과 그런 기도가 요셉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일까? 내가 지금 어려움 당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 문제를 당하고 있는데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계획하신 바가 무엇이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죠. 요셉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노예로 간, 또 감옥에 간 그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찾아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갔던 사실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요셉은 알았기 때문에 나중에 고백을 하게 되죠. 알았다는 고백이 무엇으로 나옵니까? 창세기45:5절에 보면은 “당신들이 나를 팔았기 때문에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신들 앞서 나를 먼저 보내셨다.”, 노예로 가고, 감옥에 가고, 그 모든 환경들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허락한 사건이었고, 그 이유를 깨달았는데 뭡니까? 하나님의 숨은 계획을 찾아냈다는 말이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이것은 바로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당신들 앞서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고백한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고 싶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찾아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을 통해서 무엇을 알기를 원하시느냐?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강조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성경을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은,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강조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아침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식사하시고, 빨리 세면도 하시고, 또 이 자리에 오셨는데 냉장고를 들고 오신 분은 없어요, 세탁기를 들고 오신 분은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냉장고, 세탁기 들고 올 필요 없어요. 집 비밀번호만 알고 서면 언제든지 그 냉장고, 세탁기를 우리가 활용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어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통장 다 있죠? 통장에 돈 얼마나 들었습니까? 여러분 얼마 들었든지 간에 그 통장에 든 돈을 내가 비밀번호만 알고 있으면 언제든지 쓸 수가 있어요. 아무리 많은 돈이 통장에 들어있다 할지라도 비밀번호를 놓치게 되면, 잃어버리게 되면은 그 가진 돈을 쓰지 못합니다, 사용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냐? 세상에 많은 것들을 성경에 말씀하고 있지만 성경에는 어떤 역사도 말하고 있고, 인물도 말하고 있고,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고 싶어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오직 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요한복음20:3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내가 이 성경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고,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조하신 것을 놓치면 성경은 단순히 한 책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강조하신 것을 놓치면 이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해도 결국은 세상에 훌륭한 책들, 많이 영향을 주고 있는 책들, 그 책들과 별 다를 바 없어요. 그래서 세계적인 문학가들이나 극작가들이 성경을 많이 인용했습니다마는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그 성경을 인용했느냐? 아니에요. 헤밍웨이 같은 경우에도 이 성경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이다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 과연 헤밍웨이가 이 말씀에 강조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믿었느냐?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일본에 전도 캠프를 처음에 한번 초기에 간 적이 있었어요. 제가 참 놀랐던 사실은 전도 캠프를 가정에 들어가서 캠프를 진행하는데 그 가정에 들어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부인 되시는 분이 교회에 신앙생활 하세요. 그러니까 가정에 복음화를 놓고 기도하시면서 이제 캠프 하러 왔으니까 저를 초청해서 함께 복음 듣기를 원함으로 이렇게 장을 마련했어요. 이 부인 되시는 분은 아주 신앙에 많은 열심을 내고 있는 분이고, 맡고 있는 교회에 충성하고 있는 분이에요. 그런데 가정에 들어가서 이제 식사를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었어요.
그런데 남편은 전혀 교회를 안 다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보다도 성경을 더 잘 알아요. 정말이에요, 저보다 더 잘 알아요. 그러니까 집에서 항상 성경을 보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를 믿느냐? 안 믿어요. 교회에 나가느냐? 당연히 안 나가죠. 그런데 성경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이런 분들에게 성경이, 그리스도 모르는 분들에게 과연 그 성경이 생명이고, 능력이 될 수 있느냐?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성경에서 강조하는 성경의 핵심인 그리스도를 알 때 이 성경은 일반적인 책이 아니라 이 성경을 내게 생명으로, 능력으로 우리에게 붙잡혀지고, 누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뭐냐?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습니까? 얼마만큼 많이 기도해야 구원받습니까? 여러분 선한 일 해야 되죠. 그런데 얼마만큼 선한 일을 많이 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아무리 많이 기도하고, 주변에서 다 칭찬할 만큼 ‘저 사람은 법이 없어도 살아갈 만한 사람이다.’, 다 칭찬할 만큼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모르면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12절에 말씀하고 있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었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강조하신 그리스도를 아셔야 되는 겁니다.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냐?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에요. 구약은 이 그리스도를 보낼 것이다에 대한 말씀이고요. 신약은 내가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보냈다고 쓴 책이 바로 신약입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은 한 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책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은 뭐냐? 여러분 신앙생활은 뭐냐?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오셨는지, 예수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 죽으셨는지, 예수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서 부활하셨는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령으로 왜 우리와 함께하시는지 그것을 하나하나 찾아 누리는 것을 가지고 신앙생활이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십자가를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십자가를 몰라요. 무슨 말이냐? 아니 십자가를 알고 있는데 무슨 십자가를 모른단 말이냐? 여러분 불신자들도 크리스마스 압니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가 압니까, 모르잖아요? 그런 것처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십자가 모르는 게 아닙니다, 압니다. 그런데 사실은 십자가 몰라요.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으냐? 십자가를 알고 있지만은 내가 죽을 그 자리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사실을 몰라요. 그리고 십자가를 알고 있지만은 운명에서 나를 완전히 자유케 하신 그 십자가의 능력을 믿지 않아요. 그건 십자가를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십자가 말은 하지만은 그 십자가를 삶 속에서 누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은 십자가 알고는 있는데 십자가를 모르고 있는 겁니다 사실은.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없다면은 우리의 부활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없다면은 우리의 원죄 문제 해결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가장 중요한 복음 중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여러분 십자가 이 복음의 역사가 가장 선명하게, 가장 분명하게 확인되고, 붙잡혀지는 그런 축복된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은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고요, 믿지도 않았어요. 3년 반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는데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반드시 십자가에 죽음 당할 것을 말씀하셨어요. 마가복음10:45절에 “내가 죽는 것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만약에 제자들이 대속물이라는 이 단어가 무엇인가 질문했다면 굉장한 응답들을 받았을 것인데 거기에 대한 질문하는 제자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내가 왔다. 그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거기에 대해서 도대체 이 대속물이라는 게 뭡니까? 라고 묻는 제자가 없다 라는 말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십자가의 죽음을 안 믿었다 라는 사실이에요.
마태복음16:16절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십니다. 살아계신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했어요.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로소 고난 당하실 것과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했어요.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내가 막겠습니다 나섰어요. 십자가를 모른 거죠, 십자가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감히 베드로가 그 예수님의 죽음을 내가 막겠습니다. 예수님 앞에 그런 십자가 사건은 절대 있을 수 없는, 내가 모든 걸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나왔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이로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벌이신 하나님의 일이에요. 그런데 이 사건을 모른다는 사실, 이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사실이에요.
하나님은 아담 때부터 창세 전부터 강조하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십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서 원죄 가운데 빠졌을 때에 바로 구원받을 수 있는 답을 주셨죠.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 그 방법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릴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방법이 뭐냐? 창세기3:21절에 가죽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무슨 말인가 알겠죠?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가 한숨 쉬고 있었고, 매일매일의 삶이 탄식의 삶이었고, 모두가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강조하신 것이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이야기한 것이죠. 여러분 정말로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십자가의 복음이 여러분 앞에 확실해지고, 분명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이나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도 갈등하고, 시험 들고, 문제에 빠질 때가 많잖아요? 우리가 시험 올 수도 있어요, 갈등이 올 수도 있어요, 문제가 올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순간순간마다 우리가 붙잡아야 될 것은 뭐냐? 십자가 붙잡으면 됩니다. 바울이 전도자로서 예수를 믿고 나서 자기 안에 많은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로마서 7장에 나오는 것인데요. 얼마나 많은 갈등이 왔느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로마서7: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면서 25절에 보면은 바로 이어서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무슨 말입니까? 갈등 있고, 고민되는 어려움 가운데서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 갈등 된 상황 속에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붙잡았다는 거에요. 그 앞에 24절 앞에 보면은 어떤 갈등이 있었느냐? 자기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기를 원했어요.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기를 원했는데 자기도 원치 않게 자꾸 옛날에 살던 죄가 체질 되어가지고 죄의 권세 아래 자기의 모습이 끌려가는 부분들을 놓고서 탄식했던 겁니다. 두 가지 안에 마음이 싸우고 있었어요. 하나님의 말씀 따라갈 것인가, 성령의 인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세상 따라갈 것인가, 육신 따라갈 것인가? 그 사실이 바울에게 갈등이 되어졌어요. 그때에 고백한 것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그때에 주저하지 않고 바로 이어서 고백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한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갈등 있을 수 있어요, 시험거리 있을 수 있어요, 문제와 어려움 있을 수 있어요. 그때 바로 십자가 그리스도를 붙잡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응답과 축복이 새롭게 보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이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기 위해서 날마다 죽노라 했어요. 고린도전서15:51절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갈라디아서2:20절에 우리가 잘 아는 고백이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여러분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바랍니다. 내가 주인 된 것을 내려놓으세요. 내 인생 5분 일을 알지 못하는, 한 치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내 인생인데 내가 주인 되어서 내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도록 우리의 자리를 내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때에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참된 평안과 안식과 축복으로 우리의 모든 전 생애를 축복 가운데 인도해 가시게 되어 있어요. 나의 욕심도 내려놓으시고요, 갈라디아서5:24절에 나옵니다마는 나의 모든 욕심들, 자랑들 모든 걸 내려놓으시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주인 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과 축복된 역사와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과 여러분 현장에 망대로 세워지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붙드세요,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붙잡고 나아가면 됩니다.
2.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
두 번째입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죠. 십자가의 은혜, 20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다는 말이에요. 그게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는 원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이고요. 이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멸망시키는 사탄에게서 참된 자유함을 주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고요. 하나님과 원수 된 그러한 우리 자리에 있었는데 하나님과 화목케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역사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거에요. 그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생명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여러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이 생명의 역사들을 하나님이 십자가의 은혜로 주신 것이니까 날마다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사람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습니까? 내가 이 사람을 이해한다. 그래서 이 사람을 배려하고, 이 사람에게 도움 주고, 물론 그럴 수 있겠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거에요.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것은 싫어합니다.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산법은 우리와 달라요. 하나님의 계산법은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무한대로 사랑하셨어요. 저와 여러분을 무한대로 용서하셨어요.
어느 정도냐? 죄는 내가 지었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죄를, 내가 지은 죄를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셨어요. 여러분 우리는 불신앙하고, 갈등하고, 시험 들고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여전히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고, 여전히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우리를 축복하고 계시다 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진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로 말미암아 화평을 이루셨다.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사람입니다. 가장 귀중한 사람입니다. 그게 바로 나와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진 사건 속에서 주어진 축복입니다. 계시록3:2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여러분 이 성경 구절을 중심으로 해서 그림을 그린 성화를 보셨어요? 그 성화 가운데 보면 문이 있는데 문고리가 예수님이 있는 쪽에는 문고리가 없어요. 사람 안쪽에 있는 사람에게 문고리가 있어요. 사람이 문을 열지 않으면 예수님이 못 들어가요. 그걸 혹시 보셨나요?
무엇을 말합니까?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 예수님이 열고 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오늘 예수님을 알지 못하신 분들이 있다면 여러분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혹이나 ‘예수를 나는 믿는데요?’, 좋습니다. 정말로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면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주인 되도록 여러분 마음 문을 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먹고 마시겠다, 하나님과의 교제함을 주시겠다 말씀했어요. 이게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화평케 하는 그 축복 가운데 세워나감으로 하나님이 교제하는 축복 가운데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승리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세웠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그다음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20절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여기에 땅에 있는 것들은 무엇을 말합니까? 육신적인 것을 말해요. 다시 말하면 운명과 저주와 재앙에 묶인 육신적인 것을 말해요. 여기에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하기를 원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되기를 원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운명에 묶인 사람들 있습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되기를 원하세요. 혹이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화목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혹이나 문제 있으면 사람 찾아가지 마세요. 그게 여러분 우울증 걸리는 방법이에요. 진정한 문제 있으면 우리도 모르게 어려움 당하니까, 답답하니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가서 이런 말, 저런 말 하잖아요? 여러분 갖고 있는 그 문제를 그 사람이 위로한다고 말해주는데 그 순간은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은 진짜 답이 될 수 있나요? 이런저런 사람 말 듣다 보면은 ‘결국 이 사람 말도 그거고, 저 사람 말도 그거고, 별 볼 일 없네?’, 더 우울함에 빠져요.
그냥 말이 아니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람 찾아가면은 결국 우울에 더 빠지게 돼요. 왜냐? 이 땅에는, 사람에게는 답이 없어요. 그래서 도울 바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했어요. 그러면 우리가 문제와 사건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되느냐? 오늘 우리 장로님 기도 가운데 이야기했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봅시다. 사람 바라보지 말고요, 도울 바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요. 진짜 그리스도 십자가 붙들고 나가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모든 것들을 책임지시고,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왜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를 하나님은 2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셨어요, 22절에 나오죠.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화목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하셨어요. 거룩한 삶을 살아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붙들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나가는 그 순간에 이미 우리는 거룩한 자입니다. 우리의 삶이 바르게 삶으로 거룩한 자가 아니라 구원받는 그 순간에 이미 우리를 거룩한 자라고 축복하셨어요.
그리고 그다음에 나오는 것이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다. 율법 속에 있으면 여러분 정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흠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책망하게 되죠. 그런데 복음 앞에 서게 되면은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어요. 정말로 복음 앞에 서길 바랍니다. 그 어떤 문제 앞에도, 그 어떤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도 여러분이 복음 앞에 서기를 바랍니다, 그게 사람을 살리는 거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뭐라고 했습니까? 22절 마지막에 그 앞에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함이라.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설 자로, 하나님 앞에 축복 누릴 자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인생의 답입니다. 이걸 딱 붙잡으세요. 나도 모르게 관계가 무너지고, 가정에 말 못할,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계속 되어집니까? 이미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것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백하세요. ‘정말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인생의 답입니다!’ 고백하게 될 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책임지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매일매일 십자가 붙들고 가야 합니다.
■ 십자가로 주어진 은혜를 입은 전도제자의 기도
1.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나의 믿음의 고백 되게 하옵소서.
2. 사망을 이기시고 모든 저주를 깨뜨리시고, 운명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의 능력으로 누려지게 하옵소서.
3. 나, 가정, 후대를 살리고 교회와 현장을 살릴 수 있는 복음의 능력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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